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6권 공생활 셋째 해(2) p95~p103

409. 평야에서의 기적적인 이삭줍기(2)
1944. 9. 27.
예수께서는 그분의 사도들과 함께 익은 곡식으로 완전히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을 지나가고 계신다. 아침 이른 시간인데도 몹시 덥다. 수확하는 농부들은 밀 이삭이 가득 찬 밭이랑들을 따라 낫질을 하여 황금빛 밀 사이에 빈 공간들을 만든다. 낫들은 햇빛을 받아 한 순간 번쩍하다가 키 큰 이삭들 사이로 사라진 다음 다른 쪽에 한 순간 다시 나타나고, 밀대들은 꺾여, 마치 여러 달 동안 서 있는 데 싫증이라도 난 듯 해가 달구어놓은 땅에 드러눕는다.
여자들은 낫질하는 사람들의 뒤에서 밀단들을 묶으며 따라간다. 모든 들판이 이 일로 분주하다. 수확은 풍성하고, 그래서 수확하는 농부들은 몹시 기뻐한다.
사도단이 지나가는 길 가까이에 농부들이 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잠깐 동안 작업을 멈추고 자루가 긴 낫에 기대서서 땀을 닦으며 바라보고… 밀단을 묶는 여자들도 똑같이 한다. 연한 빛깔의 옷을 입고 머리에 흰 수건을 쓴 여자들은 밀이 베어진 땅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개양귀비, 수레국화, 데이지 따위의 꽃들과도 같아 보인다. 회색이나 누르스름한 짧은 잠방이를 입은 남자들은 눈길을 덜 끈다. 그들이 몸에 걸친 유일한 가벼운 소품은 노끈으로 머리에 묶고 남은 끈을 목과 뺨으로 늘어뜨린 헝겊 한 조각밖에 없다. 흰 천으로 둘러싸인 햇볕에 탄 그들의 얼굴들은 훨씬 더 검게 보인다.
예수께서는 그분을 쳐다보는 농부들을 보실 때면 지나가시면서 인사하신다.
“하느님의 평화와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그들이 대답한다.
“하느님의 축복이 당신께 돌아가기를!”
또는 더 간단하게 대답한다.
“당신과도 함께!”
더 말이 많은 사람들은 추수에 대하여 예수의 관심을 끌며 말한다.
“올해는 농사가 잘 됐습니다. 이 잘생긴 이삭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밀 이삭들이 밭이랑에 얼마나 빽빽하게 들어찼는지 보세요. 이걸 베는 건 힘든 일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빵인 걸요!…”
“주님께 감사하시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감사하는 마음은 말이 아니라 행위로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당신들이 많은 곡식을 거둘 수 있도록 밭에 이슬과 햇볕을 주심으로써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생각하고, 이 수확물로 자비를 베푸시오. 신명기의 가르침을 기억하시오. 하느님께서 당신들에게 주신 재물을 거두어들이면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당신들의 것 일부를 남겨주시오. 그것은 여러분의 이웃을 위한 사랑이기에 거룩한 기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보십니다. 탐욕스럽게 주워 모으는 것보다는 기꺼이 주는 편이 더 낫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너그러운 사람들을 축복하십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데에 더 큰 행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의로우신 하느님으로 하여금 동정심을 가졌던 사람에게 더 풍성한 상급을 주시도록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지나가시며 그분의 사랑의 권고를 되풀이하신다.
햇볕이 더 뜨거워진다. 수확하는 농부들은 일을 멈춘다. 가까운 곳에 집이 있는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은 나무 그늘에 모여서 쉬고, 먹고, 존다.
예수께서도 들판 가운데 있는 작은 숲으로 더위를 피해 들어가 풀 위에 앉아 기도하시고 빵, 치즈, 올리브들로 이루어져 있는 간소한 음식을 바치신 다음 각자에게 나누어주시고, 사도들과 말씀을 나누시며 그것들을 드신다. 여기 그늘, 시원함, 고요가 있다. 여름 날 태양이 작열하는 시간들의 정적이다. 잠으로 이끌어가는 정적이다. 과연 그들 중 대다수는 식사 후에 졸고 있다. 예수께서는 졸고 계시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쉬시며, 꽃 위에서 일하고 있는 곤충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신다.
어떤 순간에 예수께서는 요한, 가리옷의 유다, 그리고 나이든 사도들 중 한 사람인 바르톨로메오에게 손짓을 하신다. 그들이 당신께 다가오자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이 작은 곤충이 하고 있는 일을 보아라. 나는 조금 전부터 이놈을 지켜보고 있다. 이놈은 이 미소한 꽃받침 아래 부분에 가득 차 있는 꿀을 가져가고 싶은데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지 보아라. 이놈은 먼저 작은 다리 하나를 뻗고, 그 다음에는 다른 다리 하나를 뻗어 그 두 다리를 꿀 속에 담근 다음 꿀을 먹는다. 이놈은 꿀을 거의 다 먹었다.
하느님의 섭리가 얼마나 놀라운지 보아라! 초록빛 풀밭 위로 날아다니는 주황빛과 초록색을 띤 이 곤충이 특정 기관들이 없으면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르시지 않는 하느님의 섭리는 이놈의 다리들에 아주 가는 털을 갖추게 해주셨다. 그것들이 보이느냐? 바르톨로메오 너는? 안 보여? 들여다보아라. 나는 이제 이놈을 잡아서 빛에 비추어서 너희에게 보여주마.”
그분께서는 광택 나는 금처럼 보이는 풍뎅이를 살짝 집어서 그분의 손등에 뒤집어놓으신다.
풍뎅이는 죽은 체하고 있고, 세 사람은 그 작은 다리들을 살펴본다. 그러다가 곤충은 도망치려고 다리들을 움직여보지만, 물론 성공하지 못한다. 예수께서는 그놈을 도와 바른 자세로 놓아주신다. 곤충은 그분의 손바닥 위를 기어가 손가락 끝으로 가서 매달리며 날개들을 편다. 그러나 그놈은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이놈은 내가 모든 존재의 유익만을 원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놈은 본능밖에 가지고 있지 못한데, 그것은 그 본성에 비하면 완전하고 그 모든 필요들에는 충분하지만, 사람의 생각에 비하면 대단히 열등하다. 그러므로 곤충은 무언가 나쁜 일을 해도 책임지지 않는다.
사람은 책임진다. 왜냐하면 사람 안에는 지성의 우월한 빛을 가지고 있고, 그가 하느님의 일들 안에서 더 많이 배우게 되면 그 빛은 더 커질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사람은 자기의 행동들에 대하여 책임진다.”
“그렇다면 선생님, 저희는 당신께 배우기 때문에 무거운 책임을 집니까?”
바르톨로메오가 여쭌다.
“그렇다, 아주 무겁다. 그리고 미래에 희생이 완수되고, 구속이 힘과 빛인 은총과 함께 올 때에는 그 책임이 훨씬 더 커질 것이다. 그것 다음에 너희로 하여금 의지력(willpower)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실 분께서 오실 것이다. 그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책임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구원받게 되겠군요!”
“바르톨로메오야, 왜?”
“사람은 아주 약하니까요!”
“그러나 그가 나를 믿음으로써 자기의 약함을 강하게 한다면, 그는 강해진다. 너희는 내가 너희의 갈등들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느냐? 보이느냐? 사탄은 저 가느다란 나뭇가지에서 이 줄기로 자기의 덫을 놓고 있는 저 거미와 비슷하다.
저 거미줄은 몹시 가늘고 기만적이다! 저 거미줄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보아라. 그것은 만져서는 느껴지지 않는 선 세공 줄처럼 보인다. 저 거미줄은 밤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고, 내일 새벽에는 그것은 보석들로 빛날 것이다. 더러운 음식을 찾아 밤에 돌아다니는 조심성 없는 파리들과, 반짝이는 것에 끌려드는 경박한 나비들이 그것에 걸려든다…”
다른 사도들이 선생님께 다가와 식물계와 동물계에서 끌어낸 교훈을 듣고 있다.
“…그런데 내 사랑은 사탄에 대하여 내 손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을 한다. 그것은 거미줄을 파괴한다. 거미가 어떻게 도망가고 숨는지 보아라. 이놈은 더 강한 것을 무서워한다. 사탄도 더 강한 것을 무서워한다. 그런데 더 강한 것은 사랑이다.”
“이놈을 처치해버리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요?”
결론들을 내리는 데 있어 대단히 실제적인 베드로가 여쭌다.
“그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거미도 그놈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그놈이 그토록 아름다운 불쌍한 작은 나비들을 죽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놈은 병자들에게서 건강한 사람들에게로, 시체들로부터 산 사람들에게로 질병들과 전염병을 옮기는 수많은 더러운 파리들도 없애준다.”
“그런데 저희의 경우에 거미는 무엇을 합니까?”
“그놈이 무엇을 하느냐고, 시몬아? (시몬도 장년의 남자이고, 류마티스를 호소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놈은 너희 안에서 착한 뜻이 하는 일을 한다. 그놈은 미온성(tepidity), 무관심(apathy), 헛된 자만심(vain conceit)을 없앤다. 그놈은 너희로 하여금 깨어 있도록 강요한다. 무엇이 너희로 하여금 상 받을 자격이 있도록 만드느냐? 투쟁과 승리다. 싸우지 않는다면 어떻게 너희가 이길 수 있겠느냐? 사탄의 존재는 끊임없는 조심성을 강요한다. 그렇기에 너희를 사랑하는 사랑(Love)은 그의 존재가 반드시 해로운 것이 되지 않게 만든다. 만일 너희가 사랑에 붙어 있다면, 사탄은 유혹하겠지만 실제적인 해를 끼칠 수는 없게 된다.”
“항상이요?”
“큰일들이나 작은 일들에 있어 항상. 작은 일 하나를 예로 들자. 사탄은 너에게 네 건강을 돌보라고 조언하지만, 헛된 일이다. 그것은 너를 나에게서 떼어내려는 기만적인 권고이다. 그러나 사랑이 너를 단단히 붙잡고 있다, 시몬아, 그래서 네 고통은 네 눈에도 중요하지 않게 된다.”
“오! 주님! 당신께서는 아십니까?…”
“그래, 나는 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라. 힘내라! 류마티스로 인하여 떨고 있는 네 인간성을 보고 최초로 미소 짓는 자인 사랑(Love)은 너에게 크나큰 용기를 줄 것이다…”
예수께서는 겸연쩍어하는 그분의 사도를 보고 웃으시며, 그를 위로하기 위하여 그분의 두 팔로 끌어당겨 꼭 껴안으신다. 그분께서는 웃으실 때에도 위엄이 넘치신다. 다른 사람들도 웃는다.
“누가 저 불쌍한 할머니를 도우러 가겠느냐?”
예수께서 삼복더위를 무릅쓰고 수확이 끝난 밭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한 작은 노파를 가리키시며 말씀하신다.
“제가요.”
요한, 토마스, 야고보가 대답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요한의 소매를 잡아 당겨 약간 옆으로 데리고 가 그에게 말한다
“누가 저 불쌍한 할머니를 도우러 가겠느냐?”
예수께서 삼복더위를 무릅쓰고 수확이 끝난 밭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한 작은 노파를 가리키시며 말씀하신다.
“제가요.” 요한, 토마스, 야고보가 대답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요한의 소매를 잡아 당겨 약간 옆으로 데리고 가 그에게 말한다
(이어서 계속)
“선생님께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기뻐하시는지 그분께 여쭈어보게. 나도 여쭈어보았지만, 그분께서는 나에게 이렇게만 말씀하셨다네. ‘내 행복은 한 영혼이 빛을 찾고 있는 것을 보는 데 있다.’ 그렇지만 자네가 그분께 여쭙는다면… 그분께서는 자네에게는 모든 것을 말씀해주시니까.”
요한은 한편으로는 조심성, 다른 한편으로는 알고 싶기도 하고 베드로를 만족시키고도 싶은 욕망에 이끌려 망설이고 있다. 그는 이미 밭에서 이삭을 줍고 계시는 예수께로 천천히 다가간다. 노파는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을 보고 막막함을 나타내는 몸짓을 하면서 더 바쁘게 일하려고 애쓴다.
“할머니! 할머니! 저는 당신을 위하여 이삭을 줍고 있습니다. 햇볕에 서 계시지 마세요. 제가 할게요.”
예수께서 외치신다.
작은 노파는 그토록 큰 친절에 매우 놀라 예수를 응시하더니 순종하여 구부러지고 온몸을 약간 떨며 밭 가장자리에 있는 좁은 그늘로 간다. 예수께서는 이삭을 주우시며 빨리 움직이신다. 요한은 가까이에서 그분을 따라가고, 토마스와 야고보는 좀 더 떨어져서 따라간다.
요한이 헐떡이며 말한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어떻게 그 많은 이삭들을 찾아내십니까? 저는 바로 옆 고랑에서 이렇게 조금밖에 찾아내지 못하는데요!”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지만, 말씀은 하지 않으신다. 나는 맹세까지는 할 수 없지만, 하느님의 눈이 닿는 모든 곳에서 베였으나 거두어들여지지 않은 밀 이삭들이 생겨난다는 생각이 든다. 그분께서는 이삭들을 모으시며 미소 지으신다. 그분께서는 품 안에 큰 밀단을 안고 계신다.
“요한아, 내 밀단을 받아라. 너도 많이 줍겠구나. 저 작은 할머니가 기뻐하시겠다.”
“하지만 선생님… 당신께서는 기적을 행하고 계시죠? 당신께서 이렇게 많은 이삭을 발견하시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쉬! 이것은 저 작은 할머니를 위한 것이다… 내 어머니와 네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한 일이다. 저분이 얼마나 작고 늙은 영혼인지 보아라!… 갓 태어난 새 새끼도 배불리 먹이시는 좋으신 하느님께서는 저 할머니의 작은 곡식창고를 채워주기를 원하신다. 할머니는 살아계시는 몇 달 동안 빵을 가지시게 될 것이다.
저분은 내년의 추수를 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저분이 마지막 겨울 동안 굶주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지금 너는 할머니의 외침을 들을 것이다. 요한아, 네 귀의 고막이 찢어지는 것에 대비해라. 내가 저분의 눈물과 키스 세례를 받을 각오를 하고 있듯이 말이다.”
“예수님, 당신께서는 며칠 전부터 아주 유쾌하시군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네가 알기를 원하느냐, 아니면 누군가가 너를 보냈느냐?”
요한의 얼굴은 이미 피로로 상기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홍당무가 된다.
예수께서는 알아차리신다.
“너를 보낸 사람에게 말해라. 병들었던 내 형제 중의 한 사람이 고쳐지기를 원한다고. 회복되려는 그의 선의는 나를 기쁨으로 가득 채운다.”
“선생님, 그게 누굽니까?”
“네 형제들 중 예수가 사랑하는 한 사람, 한 죄인이다.”
“그렇다면 저희 중 한 사람은 아니군요.”
“요한아, 너는 너희 가운데 죄가 없다고 생각하느냐? 너는 내가 너희로 인해서만 기뻐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선생님. 저는 저희도 죄인이고 당신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발견되려 하는 악이 있었을 때 너에게 말했다. ‘알려고 하지 마라.’ 나는 선이 동터오고 있는 지금도… 같은 말을 한다.
할머니, 당신에게 평화! 여기 우리가 주운 이삭들이 있습니다. 제 동료들은 그들의 이삭을 가지고 올 겁니다.”
“젊은이, 하느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기를. 당신은 어떻게 이렇게 많이 주웠소? 사실 나는 눈이 잘 보이지 않아요. 그렇지만 이건 진짜 커다란 단이… 아주 큰 단이… 두개나 되는데요.”
노파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만져보고, 쓰다듬고, 들려고 하지만… 들지 못한다.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당신의 집은 어딥니까?”
“저거요.”
노파가 밭들 너머에 있는 작은 집을 가리킨다.
“당신은 혼자 사시지요?”
“맞아요. 당신은 어떻게 그것을 아시오? 젊은이는 누구요?”
“저는 어머니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 이 사람은 당신의 동생이오?”
“이 사람은 제 친구입니다.”
예수의 등 뒤에서 그분의 친구는 노파에게 커다란 몸짓들을 해 보인다. 그러나 백내장이 낀 노파의 두 눈은 그것들을 볼 수 없다. 게다가 그녀는 예수를 쳐다보는 데 너무 골몰해 있다. 그 늙은 어머니의 마음은 깊이 감동해 있다.
“젊은이, 당신은 땀으로 흠뻑 젖었구려. 여기 이 나무 그늘로 오시오. 앉아요. 땀이 얼마나 줄줄 흐르는지 봐요! 내 베일로 땀을 닦으시오. 이건 해어지기는 했지만 깨끗해요. 자, 받아요, 젊은이.”
“고맙습니다, 할머니.”
“이렇게도 착한 아들의 어머니이신 당신의 어머니는 복되시오. 나에게 댁의 이름과 어머니의 이름을 말해주시오. 내가 당신들에게 강복하시도록 하느님께 당신들의 이름을 말씀드리게요.”
“마리아와 예수입니다.”
“마리아와 예수…, 마리아와 예수… 기다려요. 한때 나는 쓰라린 눈물을 흘렸었어요. 내 손자가 자기의 아들을 보호하다가 살해당했고, 그래서 내 아들이 상심해서 죽었어요… 그때 사람들은 사람들이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이를 찾기 때문에 그 죄 없는 사람들이 살해당했다고 말했어요… 지금 나는 죽음의 문턱에 와 있어요. 그런데 그 이름이 나에게 돌아오는군요…”
“그럼 당신은 그 이름 때문에 우셨군요. 그 이름이 이제 당신에게 축복할 수 있기 바랍니다…”
“당신이 그 예수로군요… 죽음이 임박했는데, 자기의 고통이 이스라엘을 위한 메시아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저주하지 않고 살아 온 불쌍한 여인에게 그렇다고 말해주시오!”
요한의 몸짓이 커지고, 예수께서는 잠자코 계신다.
“오! 나에게 말해줘요. 그게 당신이오? 내 삶의 끝에 나에게 강복해줄 분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해주시오.”
“그 사람이 접니다.”
“아!” 노파가 땅에 엎드린다.
“나의 구세주님! 저는 기다림 속에서 살아 왔는데, 더 이상 당신을 뵈올 것을 바라지 못했습니다. 제가 당신의 승리를 보게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할머니. 모세처럼 당신도 그 날을 알지 못하고 돌아가실 겁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미리 하느님의 평화를 드릴 것입니다. 나는 평화입니다. 나는 길입니다. 나는 생명입니다.
의로운 자녀들의 어머니이시고 할머니이신 당신은 내가 또 다른 영원한 승리 안에 있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의 아들에게, 당신의 아들의 아들에게, 그리고 그의 소년 아기에게 그 문들을 열어줄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죽은 그 아기는 주님께 거룩합니다! 할머니, 울지 마세요!…”
“저는 당신을 만졌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저를 위하여 이삭을 주우셨습니다! 오! 제가 어떻게 이런 영광을 받을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까?!”
“당신의 거룩한 체념(resignation) 때문입니다. 당신의 집으로 가십시다. 이 밀이 당신의 육체를 위한 양식이 되는 것보다 더 당신의 영혼을 위한 양식이 되기를. 나는 모든 마음들의 배고픔을 만족시켜주기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참된 빵입니다. 너희는… (토마스와 야고보도 주운 곡식을 가지고 그들에게 합류하였다.) 이 밀단을 들어라. 가자.”
세 사도들은 밀단들을 짊어지고 간다. 예수께서는 울면서 작은 소리로 기도하는 작은 노파와 함께 그들을 뒤따라가신다. 그들이 작은 집에 도착한다. 두 개의 작은 방들, 작은 부엌, 무화과나무 한 그루, 그리고 작은 포도밭이 있다. 깨끗하고 가난하다.
“여기가 당신의 집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주님, 이 집에 강복해주십시오.”
“저를 아들이라고 부르세요. 그리고 제 어머니가 그분의 고통 안에서 위안을 찾으실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당신은 어머니의 고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시니까요. 할머니,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참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을 축복합니다.”
예수께서는 한 손을 들어 작은 집에 강복하신 다음 몸을 숙여 작은 노파를 끌어당겨 그분의 가슴에 꼭 껴안으시고, 가느다란 백발이 덮여 있는 머리에 입 맞추신다. 노파는 울면서 자기의 입술을 예수의 손에 비비며 경의와 사랑을 나타낸다…
그 광경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왜냐하면 제 어머니가 예수님 당신을 뵈었을 때 그분은 두려워했을 것이라고 제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왜 당신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왜? 이번 받아쓰기 후에 네 마음속에 많은 물음표들이 있다. 나는 마지막 물음에 대답하는 것부터 시작하겠다. (중략) 네가 네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다른 질문은 언제나 유다를 구원하려는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었느냐는 것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왜 기뻐했느냐? 그 이유는 유다의 마음의 황야에 있는 한 송이 꽃이었던 그 단순한 갈망만이라도 있음으로 인하여 내가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할 수 없었던 내 제자를 아버지께서 인자하게 보시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마음 위의 하느님의 눈! 아버지께서 너희 모두를 사랑으로 보시는 것 외에 무엇을 내가 바라겠느냐? 나는 그 불행한 사람에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방법도 주기 위하여 기뻐해야만 했다. 그가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보는 내 기쁨이라는 장려책(incentive)을 말이다.
내 죽음 후 어느 날 요한은 이 진리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는 베드로, 야고보, 안드레아와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말해주었다. 왜냐하면 내가 내 마음의 모든 비밀들을 알고 있었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제자에게 그렇게 하도록 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것을 알게 되어 그들에게 말해주었고, 그래서 모든 사람이 제자들과 신자들의 지도를 위한 규칙을 가지게 되었다.
한번 잘못하여 넘어진 다음에 하느님의 사제에게 와서 친구나 아들, 남편이나 형제에게 저지른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며 ‘저를 당신 곁에 두어주십시오. 저는 하느님과 당신께 고통을 드리지 않기 위하여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는 영혼에게, 다른 것들 중에서도 그 영혼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을 생각하며 우리가 행복해하는 것을 보는 만족을 거절해서는 안 된다.
마음들을 고치는 데에는 무한한 요령이 필요하다. 지혜인 나는 비록 내가 유다의 경우에는 그것이 무익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든 사람에게 자신들을 구속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고 도와주는 기술을 가르치는 요령을 가졌었다.
이제 나는 가나안 사람 시몬에게 내가 했던 말을 너에게 한다. ‘힘내라.’ 그리고 나는 너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네가 느끼도록 해주기 위하여 너를 내 품에 꼭 껴안는다. 나의 두 손은 벌들을 주지만 애무들도 주고, 내 입은 엄한 말들도 하지만 만족의 말들도 하는데, 후자가 더 많고 훨씬 더 큰 기쁨으로 발해진다.
마리아야, 평안히 가거라. 너는 네 예수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았다. 그것이 네 위안이 되기를.

410. 골짜기의 백합
1946. 4. 8.
사도들의 무리는 평야를 뒤로 하고, 산들과 계곡들 사이의 기복이 심한 길을 따라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 있다. 여정을 단축하기 위하여 그들은 큰 길로 가지 않고, 인적이 드물고 험난한, 아주 빠른 지름길을 택하여 걷고 있다.
지금 그들은 물이 풍부하고 작은 꽃들이 많은 초록빛 계곡의 바닥에 있다. 거기에는 수많은 향기로운 꽃들도 있는데, 타대오는 그 꽃들을 ‘골짜기의 백합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지당하다고 말하며 연약하면서도 강인하고 은은한 향기가 나는 그 꽃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그렇지만 이건 물구나무선 백합이야. 이 꽃들은 위를 보지 않고 아래를 보잖아.”
토마스가 말한다.
“이 꽃들은 얼마나 눈곱만한지! 우리에게는 더 화려한 꽃들이 많이 있어. 나는 사람들이 왜 이 꽃을 그토록 찬양했는지 이해할 수 없어…”
유다가 피어 있는 은방울꽃 한 무더기를 후려치며 멸시하듯이 말한다.
“안 돼! 왜 그래? 이 꽃들이 얼마나 우아한데 그래!”
안드레아가 가엾은 꽃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개입한다. 그는 몸을 숙여 부러진 꽃줄기들을 줍는다.
“이건 다름 아닌 건초처럼 보여. 용설란이 더 아름다워. 그건 위엄 있고 당당하잖아. 하느님께 어울리고, 하느님을 위하여 드릴만한 꽃이야.”
“나는 이 작은 꽃부리들에서 하느님을 더 많이 보네… 이것들이 얼마나 우아한지 보게! 톱니 모양에다 아주 오목하고… 이 꽃들은 설화석고나 아주 작은 손으로 가공한 순수한 밀랍 같아… 그런데 이것들을 만드신 분께서는 무한하신 분이야! 오! 하느님의 능력!…”
안드레아는 꽃들과 창조주의 완전을 묵상하며 관조하느라고 거의 황홀경에 빠져 있다.
“자네는 신경증을 앓는 가련한 작은 여자 같네!…”
가리옷의 유다가 사악하게 웃으며 놀린다.
“아니야. 나는 금세공사이기 때문에 이런 일에 전문가인데, 사실 나도 이 줄기들은 완전하다고 보네. 금속으로 이것들을 만들기는 용설란을 만들기보다 더 어렵네. 이 사람아, 장인의 솜씨를 드러내는 것은 무한히 작은 물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해.
안드레아… 줄기 하나를 이리 주게. 그리고 딱부리 눈을 가지고 거창한 것만을 찬미하는 자네는 이리 와서 살펴보게. 어떤 장인이 이것들처럼 가볍고 완전한 잔을 만들어 아래 바닥 부분을 작은 황옥들로 장식하고, 이것들을 이렇게 우아하게 휘어진 선 세공으로 줄기와 연결할 수 있겠나?… 이건 경탄할 만한 것이야!…”
토마스가 말한다.
“오!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일어났는가! 토마스, 자네마저 이렇게…”
“나는 바보도, 가련한 작은 여자도 아니고, 자네도 알다시피 한 예술가, 감수성이 예민한 예술가야. 나는 그것이 자랑스러워. 선생님, 이 꽃들이 당신의 마음에 드십니까?”
토마스가 아무 말 없이 줄곧 듣기만 하시는 예수님을 부른다.
“나는 모든 피조물을 다 좋아한다. 하지만 이 꽃들은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들에 속한다.”
“왜요?”
몇몇 사도들이 묻는다.
동시에 유다도 묻는다.
“당신께서는 독사들도 좋아하시나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가 웃는다.
“그렇다. 독사들도 유용하다…”
“무슨 용도에요?”
여러 사람이 묻는다.
“무는 데. 아! 아! 아!”
유다가 무례하게 웃으며 말한다.
“그럼 자네는 독사들을 굉장히 좋아하겠구먼.”
타대오가 아주 분명한 암시로 유다의 웃음을 비꼰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이 그 재치 있는 말로 인하여 웃는다.
예수께서는 웃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오히려 창백하고 침울하시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열두 사도들을 바라보시고, 특히 한 사람은 분노에 차서, 다른 한 사람은 엄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고 있는 두 적대자를 바라보신다. 그분께서는 유다에게 개별적으로 대답하시고,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신다.
“하느님께서 그놈들을 만드셨다면, 그것은 그것들이 유익하다는 뜻이다. 악만이 확실히 전적으로 해롭고, 악이 자신들을 무는 것을 허용하는 사람들은 불행하다. 악에게 물린 결과들 중의 하나는 악으로부터 선을 구별하지 못하는 무능력이고, 그 결과 악한 것들을 향하여 길을 잃은 이성과 양심의 일탈이 일어나고, 영적 맹목(spiritual blindness)이 뒤따른다.
시몬의 유다야, 이 영적 맹목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사소한 것들 위에서도 빛나는 하느님의 능력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분의 능력이 이 꽃에 쓰여 있다. 그 아름다움과 향기를 통하여, 다른 어떤 꽃과도 아주 다른 그 모양을 통하여, 작은 꽃잎의 밀랍 빛깔의 끝에 매달려 떨고, 반짝이며, 모든 것을 만드신, 모든 것을 솜씨 있고, 유익하고, 다양하게 만드신 조물주에 대한 감사의 눈물처럼 보이는 이 이슬방울을 통하여 말이다. 첫째 조상들에게는 그들의 눈이 죄로 흐려질 때까지는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고 쓰여 있다…
그리고 물건들 안에, 아니 그들의 눈 안에 하느님을 보는 능력을 왜곡시킨 액체가 주입될 때까지는 모든 것이 그들에게 하느님에 대하여 말해주었다. 요즘에도 영혼이 사람 안에서 더 주권을 가질수록, 하느님께서는 그분 자신을 더 드러내신다…”
“솔로몬은 하느님의 경이들을 노래했고, 다윗도 그러했습니다만, 그들의 영혼들은 그들의 주권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이번에 당신의 잘못을 현장에서 붙잡았습니다.”
“자네는 참으로 무례하구먼!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하나?”
바르톨로메오가 화를 내면서 말한다.
“이 사람이 말하도록 놔두어라… 나는 그의 말들에 유념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람에 흩어지는 말들이고, 풀과 나무들이 분개하지 않는 말들이다. 우리만이 그 말들을 들었는데, 우리는 그 말들에 합당한 중요성을 부여할 줄 안다. 그렇지 않느냐? 우리는 더 이상 그 말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흔히 지각없는 행동을 한다.
바르톨로메오야. 너는 그것을 동정해야 한다… 내가 왜 골짜기의 백합화를 선호하는지를 누군가가 물었다… 내 대답은 이렇다. ‘그것의 겸손 때문이다.’
이 꽃의 모든 것이 겸손에 대하여 말한다… 이 꽃이 좋아하는 장소가 그렇고… 이 꽃의 태도가 그렇다… 이 꽃은 내 어머니를 상기시킨다… 이 꽃이… 이토록 작은 꽃이! 그렇지만 이 꽃 한 송이가 얼마나 달콤한 향기를 풍기느냐. 주위에 있는 공기가 이 꽃으로 향기로워진다…
내 어머니께서도… 말없이 겸손하고, 알려지지 않으시고,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 계시기만을 바라신다… 그러나 그분의 성덕의 향기는 참으로 강하여 하늘로부터 나를 이끌어왔다…”
“당신께서는 이 꽃에서 당신의 어머니의 상징을 보십니까?”
“그렇다, 토마스야.”
“그리고 당신께서는 우리 조상들이 골짜기의 백합을 찬양할 때 그분을 예견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그분을 다른 식물들과 꽃들, 올리브나무와 장미꽃에 비교했고, 가장 온유한 짐승들인 멧비둘기들, 집비둘기들과 비교했습니다.”
알패오의 야고보가 묻는다.
“그들 모두는 그들이 피조물 중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내 어머니께로 돌렸다. 그분께서는 참으로 피조세계의 미의 여왕(the Beauty)이시다. 만일 내가 어머니의 찬가를 불러야 한다면, 나는 그분을 골짜기의 백합화, 평화의 올리브나무라고 부르겠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어머니를 생각하시며 명랑해지시고 얼굴이 환해지시며 혼자 계시기 위하여 발걸음을 재촉하신다…
계곡 안에 나무들이 연이어 있어 해를 가려주기 때문에 그들은 한낮의 더위에도 불구하고 계속 걸어간다.
잠시 후 베드로가 자기의 보폭을 늘려 선생님을 따라잡는다. 그는 작은 소리로 그분을 부른다.
“나의 선생님!”
“나의 베드로야!”
“제가 당신과 함께 간다면, 당신께 방해가 되겠습니까?”
“아니다, 내 벗아. 너는 무슨 말을 그리 급히 하고 싶기에 네 선생의 곁으로 오게 되었느냐?”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 저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분의 사도를 보시며 빙그레 웃으신다.
“그래서 저는 많은 것들을 알기를 좋아합니다.”
“내 베드로야, 그것은 결점이다.”
“저도 압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에는 그것이 결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제가 마땅치 않은 어떤 것이나 악한 짓들을 알기를 원한다면, 오! 그런 경우에는 그것이 결점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께서도 아시다시피, 저는 당신을 베텔로 오시게 했었던 것과 유다가 무언가 관련이 있었는지를 여쭈어보지 않았고, 그래서…”
“하지만 너는 몹시 알고 싶어 했다…”
“예, 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더 큰 공로입니다, 그렇죠?”
“그것은 더 큰 공로이다. 자제하는 것이 큰 공로이듯이 말이다. 그것은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에게 영적 삶에 있어 실제적이고 적극적인 이해와 선생님의 가르침들의 축적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래서 당신께서는 기쁘십니까?”
“오! 베드로야, 너는 왜 나에게 묻느냐? 나는 기쁘기 그지없다.”
“당신께서는 정말로 기쁘십니까? 오, 나의 선생님! 그럼 당신을 그토록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이 당신의 보잘것없는 시몬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너는 알지 못했느냐?”
“저는 감히 그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몹시 기뻐하시는 것을 보고, 저는 어제 요한을 시켜 당신께 여쭈어보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향상하고 있는 사람이 유다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가 그 증거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요…
그러나 제가 잘못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요한은 저에게 당신께서는 경건해지고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다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방금 전에 당신께서는 제가 나아지고 있기 때문에 기쁘다고 말씀하셔서 지금은 제가 압니다. 당신을 행복하고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은 보잘것없는 저, 시몬이라는 것을요… 그렇지만 지금 저는 제 희생이 유다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질투하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을 완전히 행복하게 해드리기 위하여 저희 모두가 완전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성공할까요?”
“시몬아, 신뢰해라. 신뢰하고 인내해라.”
“저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당신을 위하여…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서도요. 왜냐하면 그 사람도 항상 이런 상태로 있는 것을 좋아할 수 없다고 저는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는 제 아들 뻘입니다. 흠! 솔직히 저는 마르지암의 아버지인 편이 더 낫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가 당신께 어울리는 영혼이 되게 하기 위하여 애쓰며 그에게 한 아버지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너에게도 어울리는 사람이 되도록 말이다, 시몬아.”
예수께서 고개를 숙여 그의 머리카락에 입 맞추신다.
베드로는 참으로 행복하다… 잠시 후에 그가 묻는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다른 이야기는 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더 이상 좋은 소식, 당신께서 어디서나 만나시는 가시들 가운데의 꽃이 없습니까?”
“그래, 있다. 빛을 찾아오고 있는 요셉의 친구이다.”
“정말입니까? 그는 산헤드린 위원입니까?”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 우리는 그 목적을 위하여 기도하고, 고통당해야 한다. 너는 그게 누군지 나에게 묻지 않겠느냐? 너는 몹시 알고 싶지 않느냐?”
“저는 몹시 알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께 여쭈어보지 않으렵니다. 그 미지의 사람을 위한 희생입니다.”
“시몬아, 너는 축복 받기를! 너는 오늘 나를 정말 기쁘게 해주고 있다. 그렇게 계속해라. 그러면 나는 너를 점점 더 사랑하게 될 것이고, 하느님께서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지금은 걸음을 멈추고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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