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6권 공생활 셋째 해(2) p85~p94

408. 사도들이 말하다
1946. 4. 5.
“나는 빨리 산위로 올라갔으면 좋겠어!”
베드로가 숨을 몰아쉬며 두 뺨과 목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외친다.
“뭐라고? 산을 미워했었던 자네가 지금은 산을 갈망한다는 겐가?”
가리옷의 유다가 비꼬며 묻는다. 그는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염려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다시 거만하고 당돌해졌다.
“그래, 지금 나는 진정으로 산들을 원하네. 일 년 중 요맘때는 산들이 좋아. 바다와 똑같지는 않지만… 바다, 아! 그런데… 밭들은 왜 수확기가 지난 다음에 더 더운지 나는 모르겠어. 해는 여전히 똑같은데 말이야, 그러나…”
“밭들이 더 뜨거운 것이 문제가 아니야. 사실은 밭들이 이삭들로 가득 차 있을 때보다 이런 상태일 때 그 밭들을 보면 더 음울해 보이고, 더 을씨년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런 거야.”
마태오가 조리 있게 말한다.
“아니야, 시몬의 말이 맞아. 수확이 끝난 다음에는 밭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 나는 이런 더위는 겪어보지 못했어.”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겪어보지 못했다고? 그럼 우리가 니까의 집에 갈 때에 시달렸던 더위는 어떻고?”
유다가 대꾸한다.
“이렇게 지독한 더위는 한 번도 없었어.”
안드레아가 대답한다.
“놀랄 것도 없지! 여름이 40일 앞으로 다가왔으니 해가 작열하는 거야.”
유다가 고집한다.
“밀 그루터기가 이삭으로 가득 찬 밭들보다 열을 더 발산한다는 것은 사실이야. 이유는 분명해. 전에는 이삭들의 꼭대기에서 머물던 태양 광선들이 이제는 벌거벗어서 뜨거워진 땅을 직접 달궈놓지. 그리고 땅은 열기를 아래로 내려 보내는 해와는 반대로 그 열기를 위로 반사해. 그래서 사람은 이 두 개의 불들 사이에 있게 되는 거지.”
바르톨로메오가 격언조로 말한다.
가리옷 사람은 비꼬듯이 웃으며 자신의 동료에게 절하면서 말한다.
“나타나엘 라삐님, 저는 당신께 인사드리며, 당신의 박식한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 무례하다.
바르톨로메오는 그를 바라보고… 침묵한다. 대신 필립보가 그를 변호한다.
“빈정거릴 필요 없어! 바르톨로메오의 말이 정확해! 자네는 양식을 가진 수백만의 사람들이 참되고 논리적이고 증명할 수 있다고 판단한 진리를 부인하려는 건 분명히 아니겠지.”
“물론! 물론! 나도 알아, 자네들 모두가 유식하고, 전문가들이고, 분별력 있고, 착하고, 완전한 사람들이라는 걸… 자네들이야말로 모든 것이지! 모든 것이라고! 나만이 흰 양들 가운데 있는 검은 양이야!… 나만 사생자 양이고, 폭로된 불명예이고, 그래서 수양의 뿔을 뒤집어쓰지… 나만이 죄인이고, 불완전한 자이고, 우리 사이에서, 이스라엘에서, 세상에서 모든 악의 원인이지… 아마 별들에서도 그렇겠지…
나는 더 이상 이것을 참을 수 없어! 내가 꼴찌라는 것을 보기 때문이 아니라 선생님과 말하고 있는 저 두 바보들처럼 아무것도 아닌 인간들이 마치 거룩한 두 신탁처럼 찬미 받는 것을 보기 때문에 이제 나는 지긋지긋해…”
“잘 들어, 총각…”
베드로가 말하기 시작한다. 그는 더위보다는 자제하려는 노력으로 인하여 더 얼굴이 벌게져 있다.
그러나 유다 타대오가 그의 말에 끼어든다.
“자네는 자네 자신의 척도로 다른 사람들을 헤아리려 하는가? 자네도 내 형 야고보와 제베대오의 요한처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려고 힘쓰게. 그러면 더 이상 사도단에 불완전들이 있지 않게 될 걸세.”
“자 보게, 내 말이 옳은지! 나는 불완전이야! 아! 이건 너무해! 그러나 그것은…”
“맞아, 요셉이 우리에게 술을 너무 많이 마시게 한 것 같아. 이 더위에 술기운이 자네를 어지럽히고 있어… 그건 피의 반응이야…”
토마스가 고조되기 시작하는 언쟁을 농담으로 돌리려고 아주 침착하게 말한다.
그러나 베드로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그는 자제하려고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한다.
“잘 듣게, 총각. 나는 자네에게 한 가지 조언밖에 해줄 게 없네. 잠깐 떨어져 있게…”
“나더러 떨어져 있으라고? 자네의 명령에 따라? 선생님만이 나에게 명령하실 수 있고, 나는 그분께만 복종할 거야. 자네가 뭐야? 보잘것없는…”
“무식하고, 거칠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어부지. 자네의 말이 맞아… 나는 그렇게 말하는 첫째야. 모든 곳에 계시고, 모든 것을 보시는 야훼 앞에서 내가 말하는데, 나는 첫째보다는 꼴찌가 되기를 더 좋아하고, 자네나 다른 누군가가, 그러나 특히 자네가 내 자리에 있는 것을 보기 바란다고 선언하네. 그래서 나는 자네가 스스로를 불공정하게 만드는 질투의 괴물에서 해방되고, 그래서 내가 자네에게 복종하기만 하면 되기를 바랄 뿐이야, 이 젊은이야… 정말이지 그렇게 된다면, 나는 ‘첫째’로서 자네에게 말해야 하는 것보다 훨씬 덜 힘들 거야.
그러나 자네들 가운데 나를 ‘첫째’로 지명하신 분은 선생님이셔… 그러니 나는 무엇보다 우선하여 그분께 순종해야 하고 다른 누구에게보다 그분께 더 순종해야 하네. 물론 자네도 순종해야 하지. 어부로서의 나의 양식으로 내가 자네에게 말하는데, 자네가 달래는 내 말을 분노의 말로 오해한 것처럼 우리와 헤어지라는 것이 아니라 잠깐 동안 우리와 떨어져서 혼자서 묵상하라는 거야…
자네는 베텔에서 계곡까지 올 때 우리 모두의 후미에 있었지? 다시 그렇게 하게… 선생님께서는 선두에… 자네는 후미에… 우리…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은 중간에… 이해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려면, 혼자 있기만 하면 되는 거야… 내 말을 듣게…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더 나아. 물론 먼저 자네에게 더 좋은 일이지…”
그는 그렇게 말한 다음에 유다의 팔을 붙잡아 무리에서 끌어내면서 말한다.
“우리가 선생님에게 가는 동안 여기 머물러 있게. 그 다음에… 천천히, 천천히 오게… 그러면 곧 폭풍우가 잦아드는 것을 보게 될 걸세.”
베드로는 그를 거기 두고, 이미 몇 미터 앞서 간 자기의 동료들과 합류한다.
“후유! 나는 그 사람에게 말하느라 걷는 것보다 더 땀을 많이 흘렸네… 무슨 놈의 성질머리가 그 모양인지 원! 그렇지만… 우린 언제 그에게서 뭘 좀 얻어낼 수 있으려나?”
“시몬, 결코 없을 걸세. 내 형제는 집요하게 그를 붙잡아두시지만… 그에게서 어떤 선도 얻어내지 못하실 거야.”
유다 타대오가 그에게 대답한다.
“그는 우리에 대한 진정한 징벌이야!”
안드레아가 속삭이며 결론을 내린다.
“요한과 나는 그를 무서워하다시피 하고 말다툼이 커질까봐 염려하면서 항상 입 다물고 있어.”
“사실 그게 최상의 방책이야.”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나는 입 다물고 있을 수 없어.”
타대오가 실토한다.
“나도 입 다물고 있기가 참 어렵지만… 나는 그렇게 되는 비결을 발견했네.”
베드로가 말한다.
“어떤 비결인데? 우리한테도 말해주게…”
그들 모두가 말한다.
“쟁기질하는 황소처럼 일하는 거야. 심지어 쓸데없는 일이라도 해서… 내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는 걸… 유다가 아닌 어떤 것에 배출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
“아! 알겠어! 그래서 자네가 계곡으로 내려가서 나무들을 무더기로 꺾었구먼! 그래서 그랬지, 응?”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묻는다.
“바로 그거야… 그러나 오늘은… 이곳에… 손해를 입히지 않고 부러뜨릴 것이 전혀 없었네. 거긴 유실수들 밖에 없었는데 그걸 엉망을 만들어놓는다면, 그건 죄 되는 일이니까… 나는 세 배나 열심히 노력했네… 나 자신을 꺾느라고… 내가 카파르나움의 옛 시몬이 되지 않으려고… 그래서 내 뼈들이 욱신거릴 지경이네…”
바르톨로메오와 열성당원은 같은 몸짓을 하며 같은 말을 쏟아낸다. 그들은 베드로를 껴안으며 외친다.
“그런데도 자네는 그분께서 자네를 우리 중에서 첫째로 지명하신 것에 놀라나? 자네는 우리에게 선생이야…”
“내가? 그 때문에?… 그 하찮은 일!… 나는 보잘것없는 사람이야… 나는 자네들에게 지혜로운 조언, 단순하고 다정한 조언만을 나에게 해줌으로써 나를 사랑해주기만을 부탁하네. 내가 자네들처럼 될 수 있도록 사랑과 솔직함을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너무 많이 괴로워하시는 그분을 위해서만 사랑해주게…”
“자네의 말이 옳아. 우리는 적어도 그분의 고통의 원인이 되지는 말아야 해!”
마태오가 외친다.
“나는 요안나가 그분을 모셔오도록 사람을 보내왔을 때 큰 두려움을 느꼈었네. 먼저 갔던 자네들 두 사람은 진짜로 아무것도 모르나?”
토마스가 묻는다.
“몰라, 확실한 것은 전혀 몰라.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이 뭔가를 꾸미고 있는 저 뒤에 있는 친구와 관계가 있구나 하고 생각해오고 있네.”
베드로가 대답한다.
“조용히 해! 나도 안식일에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을 때 똑같이 의심했었네.”
유다 타대오가 수긍한다.
“나도 그랬어.”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덧붙인다.
“오!… 나는 그것을 생각지도 못했어… 그날 저녁 유다가 그토록 침울하고 그토록 무례한 걸 보았을 때도 말이야, 나는 이것을 말해야겠어.”
토마스가 말한다.
“됐어! 그것에 대하여 잊어버리세. 우리의 사랑과 희생들로… 그 사람을 향상시키도록 노력하세. 마르지암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처럼 말이야.”
베드로가 말한다.
“마르지암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안드레아가 미소 지으며 묻는다.
“그걸 누가 알겠어!… 우리는 머지않아 그 애와 같이 있게 될 거야. 나는 그 애를 보고 싶어 죽겠어… 이런 이별은 정말로 고통스러워.”
“나는 선생님께서 왜 이런 이별을 원하시는지 모르겠어. 지금은… 마르지암도 우리와 같이 있을 수 있을 텐데 말이지. 그 애는 이제 어리고 허약한 소년이 아니야.”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그리고 그때… 그 애가 그토록 허약한데도 그렇게 먼 길을 걸었다면, 지금 그 애는 훨씬 잘 걸을 수 있을 거야.”
필립보가 말한다.
“나는 그분께서 그 애에게 어떤 좋지 않은 것을 보지 않게 하시려고 그러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마태오가 말한다.
“아니면 그 애에게 어떤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게 하려고 그러시거나…”
가리옷 사람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타대오가 불평한다.
“아마 자네 두 사람의 생각이 다 옳을 거야.”
베드로가 말한다.
“결코 그렇지 않아! 그분께서는 그 애가 더 건강해지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고 계시는 거야. 두고 봐, 내년에는 그 애가 우리와 함께 있을 테니.”
토마스가 단언한다.
“내년! 내년에도 선생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실까? 그분의 말씀들이 나에게는 몹시 암시적인 것으로 생각돼…”
바르톨로메오가 생각에 잠겨 말한다.
“그건 말하지 말게!”
다른 사람들이 간청한다.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네.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일어나도록 정해져 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야.”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가 다가오는 몇 달 동안에 훨씬 더 향상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되네…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그분께 고통을 드리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말이야. 내 말은 우리가 갈릴래아에서 쉬게 된 지금, 특히 우리 열두 사람을 가능한 한 많이 가르쳐주시기를 바란다는 뜻이야… 어쨌든 우리는 머지않아 갈릴래아에 가 있게 될 테니까…”
“그래, 나도 그것을 고대하고 있네. 나는 늙어서 이런 더위에 걷는 것이 무척 힘들어.”
바르톨로메오가 고백한다.
“나도 그래. 나는 악인이었고, 그래서 자네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더 늙었어. 방탕한 생활… 아! 나는 지금 그 모든 결과들을 뼛속에서 느끼고 있어. 그리고 우리 레위의 자손들은 생래적으로 그런 문제로 고통당해…”
“나는 또 어떻고? 나는 여러 해 동안 병자였기 때문에… 끔찍한 소량의 음식으로 동굴에서 사는 그 생활, 그 모든 환경들의 영향을 느끼고 있네.”
열성당원이 말한다.
“그렇지만 자네는 병이 고쳐진 후부터는 항상 건강하게 느껴진다고 말해왔지, 아마? 기적의 효과가 아마 끝난 모양이지?”
그들을 따라잡은 유다가 열성당원의 뒤에서 말한다.
열성당원의 일그러졌지만 표정이 풍부한 얼굴이 특유의 인상을 쓰는데,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가 여기 와 있습니다! 주님, 저에게 인내를 허락해주십시오!’
하지만 그는 아주 상냥하게 대답한다.
“아니야. 기적의 효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네. 자네도 그걸 볼 수 있어. 나는 다시 병들지 않았고, 힘세고, 건강하네. 하지만 나이는 나이이고, 피로는 피로야. 마치 우리가 개울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땀으로 흠뻑 젖게 만드는 이 더위와, 낮의 더위와 비교하면 얼음장 같다고 할 수 있고, 그래서 우리가 흘린 땀을 얼리는 이 밤들과, 이미 땀에 젖은 옷을 더 습기 차게 만들어놓는 이슬, 이 모든 것들이 분명히 내 몸에 이롭지는 않아.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돌볼 수 있도록 휴식을 취하기를 고대하고 있는 거야. 특히 우리가 한데서 잠을 잔 날 아침이면, 나는 온 몸이 뻣뻣하고 아프네. 만일 내가 환자가 된다면, 무슨 쓸모가 있겠나?”
“자네는 고통당할 수 있을 거야. 예수께서는 고통이 일과 기도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셔.”
안드레아가 그에게 대답한다.
“그건 다 좋아. 그렇지만 나는 사도로서 그분께 봉사하는 것을 선호해. 그리고…”
“그리고 자네도 지쳤다는 말이지. 그것을 인정하게. 자네는 기분 좋은 시간들에 대한 어떤 전망도 없고, 반대로 박해들과… 패배를 예측하면서 이 생활을 계속하는 데 지친 거지. 자네는 다시 자네가 추방당한 자가 될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는 것을 곰곰 생각하기 시작하고 있어.”
가리옷의 유다가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숙고하고 있지 않네. 나는 내가 병들어 가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하고 있어.”
“오, 그분께서 한번 자네를 고쳐주셨으니!…”
유다는 냉소적으로 웃는다.
바르톨로메오는 또 다른 말다툼이 임박했음을 느끼고, 분위기를 바꾸기 위하여 예수를 부른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해주실 말씀은 없습니까? 당신께서는 줄곧 저희보다 앞서가시니 말입니다.”
“네 말이 옳다, 바르톨로메오야. 지금 쉬는 것이 좋겠다. 저 작은집이 보이지? 해가 너무 뜨거우니 그 집으로 가자. 저녁에 다시 출발하자. 오순절이 임박했으니 우리는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네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나?”
유다 타대오가 자기의 형에게 묻는다.
“한 번 상상해봐! 우리는 아리마태아의 요셉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하여 나자렛에 있던 요아킴의 옛 토지와 그분의 습관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했어. 가능한 한 추수한 것의 반은 그분을 위하여 남겨놓고, 나머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셨던 그분의 습관 말이야. 이 일은 나자렛의 노인들이 썩 잘 기억하고 있는 일이지.
두 의인 안나와 요아킴은 얼마나 절제하는 생활을 하셨겠어! 그분들이 그분들의 따님의 기적, 그 따님의 기적을 얻으신 것은 놀랄 일이 아니지!… 그리고 예수와 함께 나는 과거를, 우리가 아이들이었을 때를 회상하고 있었어…”
그들이 햇볕이 내리쬐는 밭들 가운데에 있는 집을 향해 가는 동안 그들의 대화는 계속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1944. 9. 27.에 본 (평야의 에마오와 예루살렘 가는 길에 있는 산악지방의 엠마오 사이에 있는 들판에서의) 작은 노파를 대신한 기적적인 이삭줍기의 환상을 여기 삽입해라.”
409. 평야에서의 기적적인 이삭줍기(1)
1944. 9. 27.
예수께서는 그분의 사도들과 함께 익은 곡식으로 완전히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을 지나가고 계신다. 아침 이른 시간인데도 몹시 덥다. 수확하는 농부들은 밀 이삭이 가득 찬 밭이랑들을 따라 낫질을 하여 황금빛 밀 사이에 빈 공간들을 만든다. 낫들은 햇빛을 받아 한 순간 번쩍하다가 키 큰 이삭들 사이로 사라진 다음 다른 쪽에 한 순간 다시 나타나고, 밀대들은 꺾여, 마치 여러 달 동안 서 있는 데 싫증이라도 난 듯 해가 달구어놓은 땅에 드러눕는다.
여자들은 낫질하는 사람들의 뒤에서 밀단들을 묶으며 따라간다. 모든 들판이 이 일로 분주하다. 수확은 풍성하고, 그래서 수확하는 농부들은 몹시 기뻐한다.
사도단이 지나가는 길 가까이에 농부들이 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잠깐 동안 작업을 멈추고 자루가 긴 낫에 기대서서 땀을 닦으며 바라보고… 밀단을 묶는 여자들도 똑같이 한다. 연한 빛깔의 옷을 입고 머리에 흰 수건을 쓴 여자들은 밀이 베어진 땅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개양귀비, 수레국화, 데이지 따위의 꽃들과도 같아 보인다. 회색이나 누르스름한 짧은 잠방이를 입은 남자들은 눈길을 덜 끈다. 그들이 몸에 걸친 유일한 가벼운 소품은 노끈으로 머리에 묶고 남은 끈을 목과 뺨으로 늘어뜨린 헝겊 한 조각밖에 없다. 흰 천으로 둘러싸인 햇볕에 탄 그들의 얼굴들은 훨씬 더 검게 보인다.
예수께서는 그분을 쳐다보는 농부들을 보실 때면 지나가시면서 인사하신다.
“하느님의 평화와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그들이 대답한다.
“하느님의 축복이 당신께 돌아가기를!”
또는 더 간단하게 대답한다.
“당신과도 함께!”
더 말이 많은 사람들은 추수에 대하여 예수의 관심을 끌며 말한다.
“올해는 농사가 잘 됐습니다. 이 잘생긴 이삭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밀 이삭들이 밭이랑에 얼마나 빽빽하게 들어찼는지 보세요. 이걸 베는 건 힘든 일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빵인 걸요!…”
“주님께 감사하시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감사하는 마음은 말이 아니라 행위로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당신들이 많은 곡식을 거둘 수 있도록 밭에 이슬과 햇볕을 주심으로써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생각하고, 이 수확물로 자비를 베푸시오. 신명기의 가르침을 기억하시오. 하느님께서 당신들에게 주신 재물을 거두어들이면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당신들의 것 일부를 남겨주시오. 그것은 여러분의 이웃을 위한 사랑이기에 거룩한 기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보십니다. 탐욕스럽게 주워 모으는 것보다는 기꺼이 주는 편이 더 낫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너그러운 사람들을 축복하십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데에 더 큰 행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의로우신 하느님으로 하여금 동정심을 가졌던 사람에게 더 풍성한 상급을 주시도록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지나가시며 그분의 사랑의 권고를 되풀이하신다.
햇볕이 더 뜨거워진다. 수확하는 농부들은 일을 멈춘다. 가까운 곳에 집이 있는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은 나무 그늘에 모여서 쉬고, 먹고, 존다.
예수께서도 들판 가운데 있는 작은 숲으로 더위를 피해 들어가 풀 위에 앉아 기도하시고 빵, 치즈, 올리브들로 이루어져 있는 간소한 음식을 바치신 다음 각자에게 나누어주시고, 사도들과 말씀을 나누시며 그것들을 드신다. 여기 그늘, 시원함, 고요가 있다. 여름 날 태양이 작열하는 시간들의 정적이다. 잠으로 이끌어가는 정적이다. 과연 그들 중 대다수는 식사 후에 졸고 있다. 예수께서는 졸고 계시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쉬시며, 꽃 위에서 일하고 있는 곤충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신다.
어떤 순간에 예수께서는 요한, 가리옷의 유다, 그리고 나이든 사도들 중 한 사람인 바르톨로메오에게 손짓을 하신다. 그들이 당신께 다가오자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이 작은 곤충이 하고 있는 일을 보아라. 나는 조금 전부터 이놈을 지켜보고 있다. 이놈은 이 미소한 꽃받침 아래 부분에 가득 차 있는 꿀을 가져가고 싶은데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지 보아라. 이놈은 먼저 작은 다리 하나를 뻗고, 그 다음에는 다른 다리 하나를 뻗어 그 두 다리를 꿀 속에 담근 다음 꿀을 먹는다. 이놈은 꿀을 거의 다 먹었다.
하느님의 섭리가 얼마나 놀라운지 보아라! 초록빛 풀밭 위로 날아다니는 주황빛과 초록색을 띤 이 곤충이 특정 기관들이 없으면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르시지 않는 하느님의 섭리는 이놈의 다리들에 아주 가는 털을 갖추게 해주셨다. 그것들이 보이느냐? 바르톨로메오 너는? 안 보여? 들여다보아라. 나는 이제 이놈을 잡아서 빛에 비추어서 너희에게 보여주마.”
그분께서는 광택 나는 금처럼 보이는 풍뎅이를 살짝 집어서 그분의 손등에 뒤집어놓으신다.
풍뎅이는 죽은 체하고 있고, 세 사람은 그 작은 다리들을 살펴본다. 그러다가 곤충은 도망치려고 다리들을 움직여보지만, 물론 성공하지 못한다. 예수께서는 그놈을 도와 바른 자세로 놓아주신다. 곤충은 그분의 손바닥 위를 기어가 손가락 끝으로 가서 매달리며 날개들을 편다. 그러나 그놈은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이놈은 내가 모든 존재의 유익만을 원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놈은 본능밖에 가지고 있지 못한데, 그것은 그 본성에 비하면 완전하고 그 모든 필요들에는 충분하지만, 사람의 생각에 비하면 대단히 열등하다. 그러므로 곤충은 무언가 나쁜 일을 해도 책임지지 않는다.
사람은 책임진다. 왜냐하면 사람 안에는 지성의 우월한 빛을 가지고 있고, 그가 하느님의 일들 안에서 더 많이 배우게 되면 그 빛은 더 커질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사람은 자기의 행동들에 대하여 책임진다.”
“그렇다면 선생님, 저희는 당신께 배우기 때문에 무거운 책임을 집니까?”
바르톨로메오가 여쭌다.
“그렇다, 아주 무겁다. 그리고 미래에 희생이 완수되고, 구속이 힘과 빛인 은총과 함께 올 때에는 그 책임이 훨씬 더 커질 것이다. 그것 다음에 너희로 하여금 의지력(willpower)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실 분께서 오실 것이다. 그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책임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구원받게 되겠군요!”
“바르톨로메오야, 왜?”
“사람은 아주 약하니까요!”
“그러나 그가 나를 믿음으로써 자기의 약함을 강하게 한다면, 그는 강해진다. 너희는 내가 너희의 갈등들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느냐? 보이느냐? 사탄은 저 가느다란 나뭇가지에서 이 줄기로 자기의 덫을 놓고 있는 저 거미와 비슷하다.
저 거미줄은 몹시 가늘고 기만적이다! 저 거미줄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보아라. 그것은 만져서는 느껴지지 않는 선 세공 줄처럼 보인다. 저 거미줄은 밤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고, 내일 새벽에는 그것은 보석들로 빛날 것이다. 더러운 음식을 찾아 밤에 돌아다니는 조심성 없는 파리들과, 반짝이는 것에 끌려드는 경박한 나비들이 그것에 걸려든다…”
다른 사도들이 선생님께 다가와 식물계와 동물계에서 끌어낸 교훈을 듣고 있다.
“…그런데 내 사랑은 사탄에 대하여 내 손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을 한다. 그것은 거미줄을 파괴한다. 거미가 어떻게 도망가고 숨는지 보아라. 이놈은 더 강한 것을 무서워한다. 사탄도 더 강한 것을 무서워한다. 그런데 더 강한 것은 사랑이다.”
“이놈을 처치해버리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요?”
결론들을 내리는 데 있어 대단히 실제적인 베드로가 여쭌다.
“그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거미도 그놈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그놈이 그토록 아름다운 불쌍한 작은 나비들을 죽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놈은 병자들에게서 건강한 사람들에게로, 시체들로부터 산 사람들에게로 질병들과 전염병을 옮기는 수많은 더러운 파리들도 없애준다.”
“그런데 저희의 경우에 거미는 무엇을 합니까?”
“그놈이 무엇을 하느냐고, 시몬아? (시몬도 장년의 남자이고, 류마티스를 호소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놈은 너희 안에서 착한 뜻이 하는 일을 한다. 그놈은 미온성(tepidity), 무관심(apathy), 헛된 자만심(vain conceit)을 없앤다. 그놈은 너희로 하여금 깨어 있도록 강요한다. 무엇이 너희로 하여금 상 받을 자격이 있도록 만드느냐? 투쟁과 승리다. 싸우지 않는다면 어떻게 너희가 이길 수 있겠느냐? 사탄의 존재는 끊임없는 조심성을 강요한다. 그렇기에 너희를 사랑하는 사랑(Love)은 그의 존재가 반드시 해로운 것이 되지 않게 만든다. 만일 너희가 사랑에 붙어 있다면, 사탄은 유혹하겠지만 실제적인 해를 끼칠 수는 없게 된다.”
“항상이요?”
“큰일들이나 작은 일들에 있어 항상. 작은 일 하나를 예로 들자. 사탄은 너에게 네 건강을 돌보라고 조언하지만, 헛된 일이다. 그것은 너를 나에게서 떼어내려는 기만적인 권고이다. 그러나 사랑이 너를 단단히 붙잡고 있다, 시몬아, 그래서 네 고통은 네 눈에도 중요하지 않게 된다.”
“오! 주님! 당신께서는 아십니까?…”
“그래, 나는 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라. 힘내라! 류마티스로 인하여 떨고 있는 네 인간성을 보고 최초로 미소 짓는 자인 사랑(Love)은 너에게 크나큰 용기를 줄 것이다…”
예수께서는 겸연쩍어하는 그분의 사도를 보고 웃으시며, 그를 위로하기 위하여 그분의 두 팔로 끌어당겨 꼭 껴안으신다. 그분께서는 웃으실 때에도 위엄이 넘치신다. 다른 사람들도 웃는다.
“누가 저 불쌍한 할머니를 도우러 가겠느냐?”
예수께서 삼복더위를 무릅쓰고 수확이 끝난 밭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한 작은 노파를 가리키시며 말씀하신다.
“제가요.”
요한, 토마스, 야고보가 대답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요한의 소매를 잡아 당겨 약간 옆으로 데리고 가 그에게 말한다.
~94p (다음회에 이어서 계속)
p 95
“선생님께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기뻐하시는지 그분께 여쭈어보게. 나도 여쭈어보았지만, 그분께서는 나에게 이렇게만 말씀하셨다네. ‘내 행복은 한 영혼이 빛을 찾고 있는 것을 보는 데 있다.’ 그렇지만 자네가 그분께 여쭙는다면… 그분께서는 자네에게는 모든 것을 말씀해주시니까.”
요한은 한편으로는 조심성, 다른 한편으로는 알고 싶기도 하고 베드로를 만족시키고도 싶은 욕망에 이끌려 망설이고 있다. 그는 이미 밭에서 이삭을 줍고 계시는 예수께로 천천히 다가간다. 노파는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을 보고 막막함을 나타내는 몸짓을 하면서 더 바쁘게 일하려고 애쓴다.
“할머니! 할머니! 저는 당신을 위하여 이삭을 줍고 있습니다. 햇볕에 서 계시지 마세요. 제가 할게요.”
예수께서 외치신다.
작은 노파는 그토록 큰 친절에 매우 놀라 예수를 응시하더니 순종하여 구부러지고 온몸을 약간 떨며 밭 가장자리에 있는 좁은 그늘로 간다. 예수께서는 이삭을 주우시며 빨리 움직이신다. 요한은 가까이에서 그분을 따라가고, 토마스와 야고보는 좀 더 떨어져서 따라간다.
요한이 헐떡이며 말한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어떻게 그 많은 이삭들을 찾아내십니까? 저는 바로 옆 고랑에서 이렇게 조금밖에 찾아내지 못하는데요!”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지만, 말씀은 하지 않으신다. 나는 맹세까지는 할 수 없지만, 하느님의 눈이 닿는 모든 곳에서 베였으나 거두어들여지지 않은 밀 이삭들이 생겨난다는 생각이 든다. 그분께서는 이삭들을 모으시며 미소 지으신다. 그분께서는 품 안에 큰 밀단을 안고 계신다.
“요한아, 내 밀단을 받아라. 너도 많이 줍겠구나. 저 작은 할머니가 기뻐하시겠다.”
“하지만 선생님… 당신께서는 기적을 행하고 계시죠? 당신께서 이렇게 많은 이삭을 발견하시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쉬! 이것은 저 작은 할머니를 위한 것이다… 내 어머니와 네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한 일이다. 저분이 얼마나 작고 늙은 영혼인지 보아라!… 갓 태어난 새 새끼도 배불리 먹이시는 좋으신 하느님께서는 저 할머니의 작은 곡식창고를 채워주기를 원하신다. 할머니는 살아계시는 몇 달 동안 빵을 가지시게 될 것이다.
저분은 내년의 추수를 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저분이 마지막 겨울 동안 굶주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지금 너는 할머니의 외침을 들을 것이다. 요한아, 네 귀의 고막이 찢어지는 것에 대비해라. 내가 저분의 눈물과 키스 세례를 받을 각오를 하고 있듯이 말이다.”
“예수님, 당신께서는 며칠 전부터 아주 유쾌하시군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네가 알기를 원하느냐, 아니면 누군가가 너를 보냈느냐?”
요한의 얼굴은 이미 피로로 상기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홍당무가 된다.
예수께서는 알아차리신다.
“너를 보낸 사람에게 말해라. 병들었던 내 형제 중의 한 사람이 고쳐지기를 원한다고. 회복되려는 그의 선의는 나를 기쁨으로 가득 채운다.”
“선생님, 그게 누굽니까?”
“네 형제들 중 예수가 사랑하는 한 사람, 한 죄인이다.”
“그렇다면 저희 중 한 사람은 아니군요.”
“요한아, 너는 너희 가운데 죄가 없다고 생각하느냐? 너는 내가 너희로 인해서만 기뻐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선생님. 저는 저희도 죄인이고 당신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발견되려 하는 악이 있었을 때 너에게 말했다. ‘알려고 하지 마라.’ 나는 선이 동터오고 있는 지금도… 같은 말을 한다. 할머니, 당신에게 평화! 여기 우리가 주운 이삭들이 있습니다. 제 동료들은 그들의 이삭을 가지고 올 겁니다.”
“젊은이, 하느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기를. 당신은 어떻게 이렇게 많이 주웠소? 사실 나는 눈이 잘 보이지 않아요. 그렇지만 이건 진짜 커다란 단이… 아주 큰 단이… 두개나 되는데요.”
노파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만져보고, 쓰다듬고, 들려고 하지만… 들지 못한다.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당신의 집은 어딥니까?”
“저거요.”
노파가 밭들 너머에 있는 작은 집을 가리킨다.
“당신은 혼자 사시지요?”
“맞아요. 당신은 어떻게 그것을 아시오? 젊은이는 누구요?”
“저는 어머니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 이 사람은 당신의 동생이오?”
“이 사람은 제 친구입니다.”
예수의 등 뒤에서 그분의 친구는 노파에게 커다란 몸짓들을 해 보인다. 그러나 백내장이 낀 노파의 두 눈은 그것들을 볼 수 없다. 게다가 그녀는 예수를 쳐다보는 데 너무 골몰해 있다. 그 늙은 어머니의 마음은 깊이 감동해 있다.
“젊은이, 당신은 땀으로 흠뻑 젖었구려. 여기 이 나무 그늘로 오시오. 앉아요. 땀이 얼마나 줄줄 흐르는지 봐요! 내 베일로 땀을 닦으시오. 이건 해어지기는 했지만 깨끗해요. 자, 받아요, 젊은이.”
“고맙습니다, 할머니.”
“이렇게도 착한 아들의 어머니이신 당신의 어머니는 복되시오. 나에게 댁의 이름과 어머니의 이름을 말해주시오. 내가 당신들에게 강복하시도록 하느님께 당신들의 이름을 말씀드리게요.”
“마리아와 예수입니다.”
“마리아와 예수…, 마리아와 예수… 기다려요. 한때 나는 쓰라린 눈물을 흘렸었어요. 내 손자가 자기의 아들을 보호하다가 살해당했고, 그래서 내 아들이 상심해서 죽었어요… 그때 사람들은 사람들이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이를 찾기 때문에 그 죄 없는 사람들이 살해당했다고 말했어요… 지금 나는 죽음의 문턱에 와 있어요. 그런데 그 이름이 나에게 돌아오는군요…”
“그럼 당신은 그 이름 때문에 우셨군요. 그 이름이 이제 당신에게 축복할 수 있기 바랍니다…”
“당신이 그 예수로군요… 죽음이 임박했는데, 자기의 고통이 이스라엘을 위한 메시아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저주하지 않고 살아 온 불쌍한 여인에게 그렇다고 말해주시오!”
요한의 몸짓이 커지고, 예수께서는 잠자코 계신다.
“오! 나에게 말해줘요. 그게 당신이오? 내 삶의 끝에 나에게 강복해줄 분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해주시오.”
“그 사람이 접니다.”
“아!”
노파가 땅에 엎드린다.
“나의 구세주님! 저는 기다림 속에서 살아 왔는데, 더 이상 당신을 뵈올 것을 바라지 못했습니다. 제가 당신의 승리를 보게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할머니. 모세처럼 당신도 그 날을 알지 못하고 돌아가실 겁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미리 하느님의 평화를 드릴 것입니다. 나는 평화입니다. 나는 길입니다. 나는 생명입니다.
의로운 자녀들의 어머니이시고 할머니이신 당신은 내가 또 다른 영원한 승리 안에 있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의 아들에게, 당신의 아들의 아들에게, 그리고 그의 소년 아기에게 그 문들을 열어줄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죽은 그 아기는 주님께 거룩합니다! 할머니, 울지 마세요!…”
“저는 당신을 만졌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저를 위하여 이삭을 주우셨습니다! 오! 제가 어떻게 이런 영광을 받을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까?!”
“당신의 거룩한 체념(resignation) 때문입니다. 당신의 집으로 가십시다. 이 밀이 당신의 육체를 위한 양식이 되는 것보다 더 당신의 영혼을 위한 양식이 되기를. 나는 모든 마음들의 배고픔을 만족시켜주기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참된 빵입니다. 너희는… (토마스와 야고보도 주운 곡식을 가지고 그들에게 합류하였다.) 이 밀단을 들어라. 가자.”
세 사도들은 밀단들을 짊어지고 간다. 예수께서는 울면서 작은 소리로 기도하는 작은 노파와 함께 그들을 뒤따라가신다. 그들이 작은 집에 도착한다. 두 개의 작은 방들, 작은 부엌, 무화과나무 한 그루, 그리고 작은 포도밭이 있다. 깨끗하고 가난하다.
“여기가 당신의 집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주님, 이 집에 강복해주십시오.”
“저를 아들이라고 부르세요. 그리고 제 어머니가 그분의 고통 안에서 위안을 찾으실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당신은 어머니의 고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시니까요. 할머니,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참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을 축복합니다.”
예수께서는 한 손을 들어 작은 집에 강복하신 다음 몸을 숙여 작은 노파를 끌어당겨 그분의 가슴에 꼭 껴안으시고, 가느다란 백발이 덮여 있는 머리에 입 맞추신다. 노파는 울면서 자기의 입술을 예수의 손에 비비며 경의와 사랑을 나타낸다…
그 광경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왜냐하면 제 어머니가 예수님 당신을 뵈었을 때 그분은 두려워했을 것이라고 제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왜 당신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왜? 이번 받아쓰기 후에 네 마음속에 많은 물음표들이 있다. 나는 마지막 물음에 대답하는 것부터 시작하겠다. (중략) 네가 네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다른 질문은 언제나 유다를 구원하려는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었느냐는 것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왜 기뻐했느냐? 그 이유는 유다의 마음의 황야에 있는 한 송이 꽃이었던 그 단순한 갈망만이라도 있음으로 인하여 내가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할 수 없었던 내 제자를 아버지께서 인자하게 보시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마음 위의 하느님의 눈! 아버지께서 너희 모두를 사랑으로 보시는 것 외에 무엇을 내가 바라겠느냐? 나는 그 불행한 사람에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방법도 주기 위하여 기뻐해야만 했다. 그가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보는 내 기쁨이라는 장려책(incentive)을 말이다.
내 죽음 후 어느 날 요한은 이 진리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는 베드로, 야고보, 안드레아와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말해주었다. 왜냐하면 내가 내 마음의 모든 비밀들을 알고 있었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제자에게 그렇게 하도록 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것을 알게 되어 그들에게 말해주었고, 그래서 모든 사람이 제자들과 신자들의 지도를 위한 규칙을 가지게 되었다.
한번 잘못하여 넘어진 다음에 하느님의 사제에게 와서 친구나 아들, 남편이나 형제에게 저지른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며 ‘저를 당신 곁에 두어주십시오. 저는 하느님과 당신께 고통을 드리지 않기 위하여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는 영혼에게, 다른 것들 중에서도 그 영혼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을 생각하며 우리가 행복해하는 것을 보는 만족을 거절해서는 안 된다.
마음들을 고치는 데에는 무한한 요령이 필요하다. 지혜인 나는 비록 내가 유다의 경우에는 그것이 무익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든 사람에게 자신들을 구속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고 도와주는 기술을 가르치는 요령을 가졌었다.
이제 나는 가나안 사람 시몬에게 내가 했던 말을 너에게 한다. ‘힘내라.’ 그리고 나는 너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네가 느끼도록 해주기 위하여 너를 내 품에 꼭 껴안는다. 나의 두 손은 벌들을 주지만 애무들도 주고, 내 입은 엄한 말들도 하지만 만족의 말들도 하는데, 후자가 더 많고 훨씬 더 큰 기쁨으로 발해진다.
마리아야, 평안히 가거라. 너는 네 예수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았다. 그것이 네 위안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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