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인들/103위 순교성인 -30일묵상

[28일] 성 조화서 베드로/ 성 이명서 베드로/ 성 손자선 토마스/ 성 정원지 베드로/ 성 조윤호 요셉(고향을 떠나)

Skyblue fiat 2025. 9. 28. 00:01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 28일 ]

 

고향을 떠나

성 조화서 베드로/ 성 이명서 베드로/ 성 손자선 토마스/ 성 정원지 베드로/ 성 조윤호 요셉

성 조화서 베드로(1815-1866년 52세)
복사. 12월 1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난 성 조화서 베드로는 최양업 신부의 복사이며 조윤호 성인의 아버지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아버지 조 안드레아가 순교하자 충청도 신창으로 옮겨 한 막달레나와 결혼해 아들 윤호를 두었으며 최양업 신부의 복사로 신부를 도왔다.

1864년 전주 성지동으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아내가 사망하자 김 수산나와 재혼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지방으로 확산되자 그해 12월 5일 성지동을 습격한 포졸들에 의해 이명서와 정원지, 아들 윤호와 함께 체포되었다.

옥에서 아들에게 “네 마음이 변할까 염려된다. 관장 앞에서 진리대로 말하여라.” 하고 격려하자 아들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버지께서도 조심하십시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들과 함께 순교를 각오하고 여러 차례 신문을 당했는데, 후손이 끊어지는 것을 염려하는 체하며 배교를 권유하는 관장의 유혹을 여러 번 받아야 했다.

모든 유혹과 고문을 이겨내고 12월 1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성지동과 대성동에서 체포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여 화려한 천상 가족이 되었다. 아들 윤호도 10일 후인 12월 23일 같은 장소에서 순교하여 3대가 순교하는 영광을 얻었다.

성 조화서 베드로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조화서 베드로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가 육정에 대한 유혹을 물리치는 용덕을 얻도록 빌어주소서.

 


성 이명서 베드로(1821-1866년 46세)
방랑생활. 12월 1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

성 이명서 베드로(일명 재덕)는 충청도 교우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신앙 문제로 고향을 등지고 여러 지방을 유랑하며 살다가 병인박해가 일어나기 몇 해 전 전주 부근에 있는 교우촌 성지동에 정착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지방으로 확산되자 전라도 지방에서는 교우촌인 성지동과 대성동이 가장 먼저 피해를 입게 되었다. 12월 5일 성지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조화서·조윤호 부자, 정원지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명서는 체포되기 전 중병에 걸려 조화서가 여러 번 피신을 권유했으나 이를 뿌리치고 체포되었다. 전주 감영에서는 중병에 있는 이명서를 배교시키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여 가장 먼저 신문하고 혹형과 고문으로 배교를 강요했다. 그러나 “내가 몇 번 죽는 한이 있어도 하느님을 버릴 수 없습니다.” 하고 모든 고통을 이겨내면서, 함께 체포된 교우들과 열렬한 기도로 순교를 준비했다.

12월 1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성지동과 대성동에서 체포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 그는 이 세상의 방랑생활을 끝내고 영원한 고향 천국으로 올라갔다.

성 이명서 베드로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이명서 베드로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의 영원한 고향이 천국임을 깨닫도록 빌어주소서.

 


성 손(孫)자선 토마스(1844-1866년 23세)
농부. 3월 31일 공주 옥에서 교수

성 손자선 토마스는 충청도 홍주 거더리 마을의 부유한 농가이자 3대째 천주교를 신봉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1866년 3월 거더리에서 다블뤼 주교가 체포될 때 압수한 돈과 물건을 찾아가라는 기별을 받았으나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자 혼자 물건을 찾으러 갔다가 체포되었다.

덕산 관아에서 혹형과 고문을 당한 후 해미로 이송되었고, 해미에서 두 다리가 부러질 만큼 고문을 당했으나 배교하지 않았다. 결국 공주 감영으로 이송되어 3월 31일 공주 옥에서 교수형을 받아 천상의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성 손자선 토마스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손자선 토마스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모든 농민, 특히 교우 농민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정(鄭)원지 베드로(1846-1866년 21세)
방랑생활. 12월 1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

성 정원지 베드로(일명 원조)는 충청도 진잠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나 전주 부근의 수널마루에서 살다가 금구 지방으로 이사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에는 전주 성지동 조화서 집에 셋방을 얻어 노모와 형, 아내와 살았다.

1866년 12월 5일 포졸들이 성지동 조화서 집을 습격할 때 산으로 피신했으나 동정을 살피러 내려왔다가 조화서 일행을 체포한 포졸들에게 들켜 전주 감영으로 끌려갔다. 옥에서 효성이 지극했던 그는 노모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으나 함께 갇힌 교우들의 위로와 권면으로 혹형과 고문을 이겨냈다.

12월 13일 가족에게 '우리는 천국에서 만날 것입니다. 그러니 제 죽음을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라는 위로 편지를 남겼다. 그는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성지동과 대성동에서 체포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여 영원한 정착지인 천국으로 힘차게 올라갔다.

성 정원지 베드로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정원지 베드로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자녀들이 부모를 모시는 데 최선을 다하도록 빌어주소서.

 

 


성 조윤호 요셉(1848-1866년 19세)
농사. 12월 23일 전주에서 장사(杖死)

성 조윤호 요셉은 조화서 성인의 아들로 충청도 신창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났다. 1864년 아버지를 따라 전주 부근의 교우촌 성지동으로 이사한 후, 교우 처녀 이 루치아와 결혼했다.

1866년 12월 5일 성지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아버지 조화서, 정원지와 이명서 등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감영에서 부자가 함께 예닐곱 번의 신문과 형벌을 받았으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아버지가 순교한 지 10일 후인 12월 23일 전주에서 최후로 곤장 16대를 맞고 거의 죽게 되었을 때, 형리들의 교살로 순교하여 영원한 하늘나라 가족이 되었다. 이로써 3대로 이어지는 순교자 가문이 되는 영광을 얻었다.

성 조윤호 요셉과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조윤호 요셉과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가 가정을 소중히 여기며 성가정을 만들어 나가도록 빌어주소서.


 

고향을 떠나

 

땅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우리 민족이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무척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아무리 좋은 목적으로, 또는 성공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는 경우라고 해도 슬픈 일이다. 그런데 우리 순교자들은 신앙 때문에 대부분 고향이나 가정을 떠났다. 신앙생활에 대한 갈망으로 때로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고향을 떠나야 했다.

고향을 떠나 이 마을 저 고을로 다녔던 수많은 순교자, 그 대표 순교성인이 정원지와 이명서다. 조화서 성인도 수원에서 태어나 충청도를 거쳐 전주까지 이사를 다녔는데, 아들 조윤호 성인의 순교까지 3대를 이은 순교자 가정이 되었다.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난 손자선 성인은 주교의 물건을 찾으러 관가에 갔다가 체포되어 용감하게 신앙을 증거했는데, 농업인들의 수호자로 모시면 좋을 분이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마치 철새와 같다. 그러나 인간적으로는 철새지만 신앙적으로는 영원한 천국의 가족임을 믿고 살았던 순교자들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마음을 다잡아 구체적 계획을 세워 순교정신을 본받도록 해야겠다. 순교정신을 본받는 것만큼 꾸준한 노력을 요구하는 정신은 없을 것이다.

그저 막연한 생각이나 원의, 욕심만으로는 순교정신을 얻을 수 없다. 순교정신은 마음으로만 원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교하겠다는 마음으로 실천하려는 노력이 요구됨을 잊지 말아야겠다.


 

-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박도식 엮음 / 바오로딸
  (그림자료: 의정부교구 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