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인들/103위 순교성인 -30일묵상

[27일] 성녀 박봉손 막달레나/ 성녀 홍금주 페르페투아/ 성녀 김 바르바라/ 성녀 이간난 아가타(평범한 일상에서)

Skyblue fiat 2025. 9. 27. 00:04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 27일 ]

 

평범한 일상에서

성녀 박봉손 막달레나/ 성녀 홍금주 페르페투아/ 성녀 김 바르바라/ 성녀 이간난 아가타

 


성녀 박봉손(朴鳳孫) 막달레나(1796-1839년 44세)
과부. 9월 26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녀 박봉손 막달레나는 서울 비신자 집안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 때 시골로 출가했다. 그러나 딸 둘을 낳고 과부가 되자 친정으로 돌아와 계모 김 체칠리아의 권면과 가르침으로 1839년 입교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친정 식구와 함께 살던 교우들은 피신했으나 홀로 집을 지키던 박 막달레나는 7월 초 잠시 집에 들른 외삼촌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과 형조에서 가혹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켰고, 최후로 포교에게 “여기까지 온 것은 위주치명(爲主致命: 하느님을 위해 순교함)하기 위해서이니 국법대로 죽여주십시오."라고 신앙을 고백하며 사형선고를 받았다. 9월 26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하여 천상 교회의 일원으로 영원한 찬미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성녀 박봉손 막달레나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박봉손 막달레나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모든 교우가 깊은 순교정신을 지니도록 빌어주소서.

 

 


성녀 홍금주(洪今珠) 페르페투아(1804-1839년 36세)
과부. 9월 26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녀 홍금주 페르페투아는 서울 근처 비신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손에 자랐다. 열 살 때 입교했으나 열다섯 살 때 비신자와 결혼한 뒤에는 냉담한 생활을 했다.

남편이 사망하자 교우들의 격려에 힘을 얻어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더욱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어린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와 교우들의 집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면서도 열심히 계명을 지켰다. 사람들은 "종처럼 모든 일에 이웃을 도와주었다." 라며 그의 희생심을 칭찬했다. 홍 페르페투아는 평소에 "나는 붉은 옷을 입는 것이 소원이다."라며 순교할 뜻을 밝혔다.

1839년 3월 행랑살이를 하던 최 필립보의 집에서 그의 제수와 함께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혹형을 겪었으나 기꺼이 이겨내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형이 집행될 때까지 6개월 동안 형조 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함께 갇힌 교우와 죄수들을 돌보며 사랑의 봉사를 계속했다. 드디어 9월 26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자신이 바라던 순교의 붉은 옷을 입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 안에서 살게 되었다.

성녀 홍금주 페르페투아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홍금주 페르페투아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가 언제나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배우도록 빌어주소서.

 

 


성녀 김(金) 바르바라(1805-1839년 35세)
과부. 5월 27일 포청에서 옥사

성녀 김 바르바라는 가난한 시골 집안에서 태어나 열세 살 때 서울 황 마리아 교우 집 식모로 보내졌으나 그곳에서 교리를 배워 세례성사를 받았다.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했지만 혼기가 되자 부모의 강요로 비신자와 결혼해 남매를 낳았다. 결혼한 지 15년 만에 남편이 죽자 딸을 데리고 살면서 신앙생활에 전념했다.

1839년 3월쯤 집주인과 함께 체포되어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끝까지 배교하지 않고 견뎌냈다. 석 달 동안의 옥살이 끝에 굶주림과 열병을 이기지 못하고 5월 27일 감옥 마룻바닥에 누워 숨을 거두어 마침내 천국 복락을 누리면서 영원히 굶주리지 않게 되었다.

성녀 김 바르바라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김 바르바라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가 병고를 신앙으로 참아 나가도록 빌어주소서.

 

 


성녀 이간난(李干蘭) 아가타(1814-1846년 33세)
과부. 9월 20일 포청 옥에서 교수

성녀 이간난 아가타는 서울 비신자 집안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 때 결혼했지만 3년 만에 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와 살았다. 이때 외할머니의 가르침과 권면으로 입교하여 유방제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아 하느님 자녀가 되었다.

1846년 5월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자 포졸들의 수색을 피해 현석문 회장이 마련한 집에 피신해 있다가 7월 11일 현석문·정철염·김임이·우술임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9월 20일 포청에서 매를 맞아 거의 반죽음이 되어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고 자애로우신 하느님의 품에 안겨 한없는 복락을 누리게 되었다.

성녀 이간난 아가타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이간난 아가타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도 순교자의 뒤를 따라 순교정신을 실천하도록 빌어주소서.

 




평범한 일상에서

오늘 만난 성인들은 남편을 잃고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만도 어려운 형편에도 신앙생활에 전념하며 순교정신으로 살았던 분들이다. 과부의 삶 자체가 고통이며 희생이고 외로움인데, 모든 아픔을 순교정신으로 이겨낸 과부 순교자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온갖 형벌에도 굽히지 않고 신앙고백을 한 박봉손 성녀, 사람들에게 마치 자신이 종이 된 것처럼 도움을 준 홍금주 성녀, 석 달 동안 갇혀 지내면서 온갖 어려움을 순교정신으로 이겨낸 김 바르바라 성녀, 수없이 매를 맞으면서도 믿음을 끝까지 지킨 이간난 성녀의 모범은 우리를 일깨우며 마음을 뜨겁게 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는 순교정신을 지닐 수 있다. 순교정신은 신앙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곧 믿음으로 생활하면서 사람들에게 그 믿음을 행위로 증거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자신을 이겨 나가노라면 우리 삶에도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자신과 세상과 악마를 이기는 전투에서 필요한 것은 꾸준한 순교정신이다.

 



-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박도식 엮음 / 바오로딸
  (그림자료: 의정부교구 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