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인들/103위 순교성인 -30일묵상

[26일] 성녀 박희순 루치아/ 성녀 전경협 아가타/ 성녀 김유리대 율리에타( 궁녀 신분 동정녀)

Skyblue fiat 2025. 9. 26. 00:00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 26일 ]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게 한 순교정신

성녀 박희순 루치아/ 성녀 전경협 아가타/ 성녀 김유리대 율리에타

 

성녀 박희순(朴喜順) 루치아(1801-1839년 39세)
동정녀·궁녀. 5월 24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녀 박희순 루치아는 박큰아기 성녀의 동생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뛰어난 미모와 재주로 궁녀로 뽑혔는데, 순진하고 총명하여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열다섯 살 때 어린 순조純祖의 후궁으로 뽑히는 것을 용기와 덕으로 물리쳐 그 명성이 세간에 널리 퍼졌다.

그는 서른 살 때 천주교를 알아 입교하고는 궁중에 매인 몸으로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려워 병을 핑계 삼아 궁중에서 나왔다. 그러나 아버지가 천주교를 무척 싫어해 조카 집에 머물면서 신앙생활에 몰두했고, 언니 박큰아기와 조카 식구들을 권면하여 입교시켰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면서 천주교 신자로 밀고되자 조카 가족과 함께 전경협의 집으로 피신하여 4월 15일 박해를 피할 방법을 의논하고 있을 때 포졸들이 급습하여 체포되었다.

형조로 이송되어 곤장 30대를 맞아 다리가 으스러지면서 골수가 흐르는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이제서야 예수님과 성모님의 괴로움이 어떠했는지 조금 깨닫게 되었다.”고 하면서 교우들에게 감동적인 권면 편지를 보냈다.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처지인데도 신앙의 고통을 스스로 받아 안은 그는 모든 유혹과 형벌과 고문을 참아내다 5월 24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받고 하늘나라로 갔다.

성녀 박희순 루치아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박희순 루치아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가 육신의 욕정을 잘 다스리도록 빌어주소서.

 


성녀 전경협(全敬俠) 아가타(1787-1839년 53세)
동정녀·궁녀. 9월 26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녀 전경협 아가타는 서울 비신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여읜 후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때 오빠가 결혼을 강요하자 이를 물리치고 궁에 들어가 궁녀가 되었다. 그는 궁녀로 살면서 가까이 지내던 박희순(朴喜順)을 따라 입교했다.

그 후 박희순이 자유롭게 천주교를 봉행하기 위해 궁을 떠나자, 자신도 병을 핑계 삼아 궁을 나와 교우들의 집에 머물면서 오로지 신앙생활에만 전심전력했다. 병을 앓으면서도 불평하는 일이 없었고, 궁중의 사치와 풍족한 음식을 그리워하는 일 없이 기쁜 마음으로 거친 옷을 입고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서 가난을 참아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4월 15일 자신의 처소에 피신해 있던 박희순, 박큰아기 자매와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과 형조에서 궁녀 신분으로 국법에서 금하는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심한 혹형과 고문, 배교를 강요당했지만 “만 번 죽사와도 주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관직에 있던 오빠가 관리를 매수하여 독사(毒死)·장사(杖死)시키려 했지만 이것도 이겨냈다. 5개월 동안 옥고를 참아낸 다음 9월 26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여 자애로우신 주님 품 안에 안겼다.

성녀 전경협 아가타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전경협 아가타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가 지나친 물질적 욕구를 자제하도록 빌어주소서.

 


성녀 김유리대(金琉璃代) 율리에타(1784-1839년 56세)
동정녀·궁녀. 9월 26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녀 김유리대 율리에타는 시골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따라 상경하여 서울에서 자랐다. 열일곱 살 때 혼담이 있었으나 정결을 지킬 것을 결심하여, 부모의 혼인 강요를 뿌리치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모조리 뽑아 혼담을 중지시켰다.

1801년 신유박해를 겪은 다음 부모는 냉담하여 시골 고향으로 내려갔으나, 그는 홀로 서울에 남아 궁녀로 뽑혔다. 10년 동안 궁녀 생활을 했으나 신앙생활이 어려워 결국 대궐에서 나와 교우들 집에서 열심히 일을 해 집을 장만하여 홀로 살면서 기도하며 교우들을 위해 봉사했다. 말과 행동에 조심스럽고 성품이 강직하여 교우들한테서 '절대 나쁜 짓을 하지 않을 여인'으로 평판이 높았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 7월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많은 매를 맞았지만 순교의 열망으로 불타오른 그의 용기를 꺾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9월 26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의 화관을 쓰고 천국의 복락을 끝없이 누리게 되었다.

성녀 김유리대 율리에타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김유리대 율리에타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교우들이 바른 언행을 하도록 빌어주소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게 한 순교정신

오늘 우리가 만난 세 분 성녀는 궁녀 신분으로 호화롭고 풍족한 궁중 생활을 미련 없이 떠나 신앙으로 십자가 길을 걷다가 순교한 분들이다.

김유리대 성녀는 동정을 지킬 결심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뽑았으며 후에 궁녀가 되어 10년 동안 궁궐 생활을 했다. 우리가 성녀한테서 반드시 본받아야 할 것은 무엇보다 말과 행동에 조심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이 많고 남의 말을 잘하는데, 성녀를 본받아 말에 실수가 없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어린 임금의 유혹까지 물리친 박희순 성녀는 궁궐에서 나와 모든 어려움을 참으며 신앙생활을 하다가 체포되었고, 고문을 받는 중에도 감옥에서 교우들에게 감동적인 편지를 써 뜨거운 믿음을 전했다.

전경협 성녀는 궁궐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도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가난을 참아 받았다. 백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물질적 풍요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아야겠다.

또한 성녀들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게 한 신앙은 곧 순교정신이었음을 알아들으면서 우리도 꾸준히 노력해 그분들의 뒤를 따라야겠다. 작은 불편도 참지 못하고 편리하고 좋은 것만 찾거나 호화 생활을 꿈꾸는 것은 순교정신과 너무나 멀리 있는 것이다.

 



-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박도식 엮음 / 바오로딸
  (그림자료: 의정부교구 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