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인들/103위 순교성인 -30일묵상

[24일] 성 남경문 베드로/ 성 허협 바오로/ 성 권득인 베드로/ 성 조신철 가롤로(보속의 삶)

Skyblue fiat 2025. 9. 24. 00:04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 24일 ]

 

 보속의 삶

성 남경문 베드로/ 성 허협 바오로/ 성 권득인 베드로/ 성 조신철 가롤로

 

 

성 남경문(南景文) 베드로(1796-1846년 51세)

회장·군인(금위영 소속), 9월 20일 포청 옥에서 교수

성 남경문 베드로는 서울 중인 집안에서 태어나, 스무 살 때 교우 허 바르바라와 결혼하면서 입교했다. 얼마 후 중병이 들어 대세를 받았다가 병이 낫자 열심히 계명을 따르며 신앙생활에 매진했다. 유방제 신부를 도우며 선교에 힘쓰다 회장으로 임명받았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었다가 배교해 석방된 뒤에는 냉담하여 첩까지 거느리며 방탕한 생활을 3년 동안 계속했다. 그러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지난 생활을 뉘우치고, 죄를 보속하기 위해 순교를 결심하고 열심히 수계했다.

김대건 신부가 입국하자 그를 도와 활동하던 중 1846년 5월 김대건 신부와 함께 체포된 임성룡의 밀고로 7월에 체포되었다.

체포될 때 신분이 금위영의 군인이었기에 관원들에게 가혹한 형벌과 고문, 달콤한 배교의 유혹을 받았지만 이 모든 것을 꿋꿋하게 이겨냈다. 9월 20일 포청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아 마침내 자신의 소원대로 순교하여 천상에서 빛나는 주님의 종이 되었다.

성 남경문 베드로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남경문 베드로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는 겸손한 자세로 모든 고통을 극복해 나가도록 빌어주소서.

 

 

성 허(許)협 바오로(1795-1840년 46세)

군인(도감의 병사). 1월 30일 포청에서 옥사

성 허협(또는 허혐·허임) 바오로는 독실한 교우 집안에서 태어났다. 기해박해가 치열했던 1839년 8월 무렵 체포되었는데, 체포될 때의 신분이 훈련도감 병사여서 포청의 형벌과 고문은 남달리 혹독했다.

심한 고문과 혹형에 못 이겨 배교해 풀려나왔으나 곧 후회해 배교를 취소했다. 포교가 배교를 취소한다는 표시로 똥물을 마셔야 한다고 했을 때, 서슴지 않고 한 사발을 떠서 마시고 또 두 번째로 떠 마시려 하자 오히려 포졸들이 깜짝 놀라 그를 말렸다.

그 뒤 여러 달 동안 포청 옥에서 치도곤 130대 이상을 맞는 혹형과 고문을 당했지만 한결같은 신앙으로 이겨내고 1840년 1월 30일 옥사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참된 군인답게 일생을 마쳐 놀라운 순교의 영예 안에서 천상 군대의 긍지를 누리게 되었다.

성 허협 바오로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허협 바오로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우리나라 군인, 특히 교우 군인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권득인(權得仁) 베드로(1805-1839년 35세)

성물공(聖物工). 5월 24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 권득인 베드로(일명 성도)는 태중 교우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열여섯 살 때는 어머니마저 여읜 후 결혼해 형한테서 분가하면서 성패聖牌와 성물聖物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갔다. 그는 매우 부지런하여 새벽닭이 울 때 일어나 날이 밝을 때까지 먼저 기도하고 일을 시작했고 누구한테나 친절했다.

1839년 1월 가족과 함께 체포되어 혹형과 고문을 이겨내면서, 배교하고 풀려난 가족에게 순교를 권하는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다. 5개월 동안 굶주림과 추위의 옥중 생활을 이겨내고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여 기도로 뵈옵던 주님을 직접 만나는 무한한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

성 권득인 베드로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권득인 베드로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가 언제나 꾸준히 기도하도록 빌어주소서.

 

 


성 조신철(趙信喆) 가롤로(1795-1839년 45세)

승려에서 환속. 마부(馬夫). 9월 26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 조신철 가롤로(일명 덕칠)는 최영이 성녀의 남편으로 강원도 회양의 비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가 얼마 안 되는 가산을 탕진하자 절에 들어가 머리를 깎고 승려 생활을 시작했다. 몇 해 동안 승려 생활을 하다 환속하여 서울로 와서 스물세 살 때부터 동지사冬至使의 마부로 일했다.

서른 살 때 성직자 영입운동을 하던 정하상·유진길 등과 알게 되어 입교했으며, 북경 가는 길에 세례·견진·성체·고해성사를 받는 행운을 누렸다. 마부로서 북경교회와 연락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면서 중국인 유방제 신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앵베르 주교 등의 입국을 적극 도왔다.

가난한 교우들을 도와주었고 비신자들을 가르쳐 입교시키는 중에 고집 센 아내를 인내와 노력으로 훌륭한 교우로 만들어 선종하게 했다. 아내가 죽은 다음 독실한 교우인 최창흡의 딸 최영이와 재혼했다.

1839년 봄, 북경에서 돌아오던 그는 꿈속에서 “금년에는 순교하는 은혜를 주겠노라." 하시는 예수님 말씀을 두 번이나 듣고 땅에 엎드려 감사드렸다. 6월 어느 날 외출했다가 돌아오는데 처가를 습격한 포졸들이 어린 젖먹이까지 잡아가는 것을 보고 포청까지 따라가 자수했다.

그의 집에서 발견된 성물과 교회 서적 때문에 혹독한 형벌을 당했으나 어떤 형벌이나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다. 끝까지 신앙을 지키던 그는 9월 26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천국의 문을 열고 영원한 안식처로 옮겨갔다.

성 조신철 가롤로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조신철 가롤로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모든 교우 운전자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보속의 삶

 

오늘 우리가 만난 네 분 성인은 군인과 마부, 성물을 만들어 파는 사람 등으로 특별한 직업을 가진 분들인데 그분들의 삶과 순교에도 특이한 점이 있다.

남경문 성인은 배교까지 했다가 다시 참회하여 보속의 삶을 살다가 순교했고, 허협 성인은 배교를 취소하는 증거로 똥물까지 마신, 참으로 놀라운 분이다. 군인 신분의 순교여서 교우 장병들의 훌륭한 귀감이 된다. 성패와 성물을 만들어 팔았던 권득인 성인의 부지런하고 열심한 기도 생활은 누구나 본받아야 할 모범이다.

조신철 성인은 한때 절에 들어가 승려 생활을 했고 마부로서 북경을 오갔으니 교우로서 자동차 운전이나 비행기 또는 배를 조종하는 직업의 수호성인으로 모셔야 할 것이다.

이처럼 순교성인은 생활하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을 순교정신으로 받아들였다. 아울러 신앙 선조로서 우리의 의식구조와 생활양식의 맥을 잇는 성인들이기에 더할 수 없는 친근감으로 후손들을 잘 돌보아 주시리라 확신한다.

우리는 늘 순교정신을 생각하면서 한시라도 순교자들의 후예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신분과 직업에 따라 필요한 은총을 청하는 기도를 꾸준히 바치면서, 지금 이 순간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후손의 도리일 것이다.

 

 

 

-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박도식 엮음 / 바오로딸
  (그림자료: 의정부교구 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