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인들/103위 순교성인 -30일묵상

[18일] 성녀 현경련 베네딕타/ 성녀 김루치아 / 성녀 정철염 가타리나/ 성녀 김 데레사

Skyblue fiat 2025. 9. 18. 00:16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 18일 ]

 

영적 성장을 위한 독서

성녀 현경련  베네딕타/ 성녀 김루치아 / 성녀 정철염 가타리나/ 성녀 김 데레사

 

 


성녀 현경련(玄敬連) 베네딕타(1794-1839년 46세)
과부·여회장. 12월 29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녀 현경련玄敬連 베네딕타는 순교한 현석문 성인의 누나로 서울의 역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가 순교하고, 그 후 어머니를 따라 자주 이사를 다녔다. 1810년 열일곱 살 때 최창현의 아들과 결혼했지만 3년 만에 남편을 여의고 친정에 돌아와 삯바느질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규칙적인 독서와 묵상기도를 하는 등 남달리 신앙생활에 몰두한 그는 뛰어난 교리 지식으로 여회장직을 맡아 비신자를 가르치고 무지한 교우들을 일깨워주었다. 또 쉬는 교우를 권면하고 어린이와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대세를 주었으며, 여회장으로서 열정을 다해 교회 일을 성심껏 도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잠시 피신했으나 6월에 체포되었고, 동생 현석문과 주교의 피신처를 알아내려는 포졸들에게 두 번의 주뢰와 300여 대의 매를 맞는 혹형을 겪었다. 가혹한 형벌로 상처투성이 몸에서 피와 고름이 흘러내렸다.

옥중에서 동생에게 신망애 삼덕에 대한 내용을 써서 보냈는데 편지를 읽은 신자들이 감동했다고 한다. 12월 29일 드디어 서소문 밖 형장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해 신망애 삼덕의 원천이신 하느님 품에 안겼다.

성녀 현경련 베네딕타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현경련 베네딕타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 교우들이 신망애 삼덕을 키우도록 빌어주소서.

 

 

성녀 김(金) 루치아(1769-1839년 71세)
꼽추 루치아(장애인). 9월 어느 날 포청에서 옥사

성녀 김金 루치아는 서울의 비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신자였던 그를 비신자들은 '꼽추 할멈'이라고 불렀고 교우들은 '꼽추 루치아'라고 불렀다. 1801년 신유박해 이전에 입교했으나 남편과 가족이 모두 비신자라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어 결국 집을 나와 교우들의 도움을 받으며 궂은일과 병약자들을 돌보는 일에 온갖 정성을 기울여 주위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는 장애인이고 무식했지만 신앙에 대한 조리 있는 대답은 상식 이상이었다. 어느 날 양반이 "지옥이 좁다고 하니 어떻게 많은 사람이 지옥에 들어갈 수 있을꼬?" 하자 그는 "당신의 작은 마음에 만 권이나 되는 서책을 품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좁다고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라고 조리 있게 되물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포청과 형조에서 끔찍한 고문을 받았지만 비명 한마디 지르지 않고 인내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형조에서 내린 사형선고문에 '사학죄인邪學罪人'이라는 글을 보고 천주교는 사학이 아니라 거룩하고 참된 종교라고 주장하면서 수결(手決: 자기 성명이나 직함 아래 도장 대신 자필로 직접 글을 씀)을 거부했으나, 형리가 억지로 손을 끌어다가 수결하게 했다.

4년간 감옥에 있으면서 언제나 온화한 모습으로 한결같이 기도했다. 누이와 함께 순교하기를 바랐지만, 옥에서 얻은 병으로 1838년 11월 25일 복되고 영원한 주님 나라로 들어갔다.

태형 30대를 맞고 쓰러져 예수 마리아를 부르다가 9월 어느 날 옥에서 운명해 드디어 예수 마리아의 집으로 올라가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성녀 김 루치아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김 루치아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이 땅의 모든 장애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정철염(鄭鐵艷) 가타리나(1817-1846년 30세)

양반집 하인. 9월 20일 포청 옥에서 교수

성녀 정철염(鄭鐵艷) 가타리나는 경기도 수원 교우 집안에서 태어났다.

성장해서 포천의 김씨 성을 가진 양반집에 하인으로 들어갔는데, 이때 주인 가족의 한 사람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스무 살 때 주인한테서 미신적인 동짓날 행사에 참석하라는 명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해 주인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이듬해 봄에 다시 그런 사태가 일어나자 서울로 피신해 그때부터 교우들 집에 몸 붙여 살았다.

1845년 김대건 신부가 머물던 집에 들어가 살림을 맡아 살다가 이듬해 5월 김 신부가 체포되자 현석문이 마련한 집에 피신해 있던 중 7월 11일 현석문·김임이·이간난·우술임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한결같은 신앙으로 이겨냈다. 9월 20일 다시 매를 맞아 거의 반죽음이 된 몸으로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으로 순교하여 영원한 천국의 가족이 되었다.

성녀 정철염 가타리나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정철염 가타리나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가 모든 미신행위를 근절하는 용단을 내리도록 빌어주소서.

 

 

성녀 김 데레사(1796-1840년 45세)
과부. 1월 9일 포청 옥에서 교수

성녀 김金 데레사는 1816년 대구에서 순교한 김종한의 딸이며, 성 김대건 신부의 당고모로 충청도 솔뫼의 독실한 교우 집안에서 태어났다.

열일곱 살 때 교우 손연욱과 결혼했으나 1824년 남편이 해미에서 순교하자 혼자 살면서 열심히 기도하며 계명을 지켰다. 가난으로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매주 두 차례 대재를 지키고 유방제 신부의 처소를 정정혜와 함께 돌보았으며, 앵베르 주교가 입국한 후에는 주교의 처소도 돌보았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7월 11일 정하상 일가와 함께 체포되었으며, 주교의 은신처를 알아내려는 형리들에게 여러 차례 혹형과 고문을 당했으나 순교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범을 따라 꿋꿋이 이겨냈다. 포청 옥에서 만난 이광헌의 어린 딸 이 아가타와 함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하였다.

6개월 동안 온갖 문초를 당한 끝에 1840년 1월 9일 포청 옥에서 이 아가타와 함께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여 영원한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성녀 김 데레사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김 데레사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의 희생 극기 수련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영적 성장을 위한 독서

순교성인 가운데 유일한 여회장인 현경련 성녀는 우리가 본받을 점이 많은 분이다. 나이도 많고 장애를 가진 루치아 성녀는 병약자를 돌보는 생활을, 정철염 성녀는 미신행위를 반대하는 모범을, 김 데레사 성녀는 대재를 지키며 희생극기하는 모범을 보였다.

연약한 여자로 당시 그분들의 생활은 초인에 가까웠다. 우리는 오늘 이 네 분 성녀에게 머리 숙여 기도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은총을 빌어 달라고 간청해야겠다.

척추장애를 가진 루치아 성녀한테는 육체적·정신적 장애인들을 위해 특별한 도움을 청하며, 날마다 규칙적으로 신앙 서적을 읽었다는 현경련 성녀에겐 모든 신자가 신심 서적을 많이 읽도록 하는 은혜를 전구한다. 가톨릭 신자라면 반드시 성경을 읽고, 깊은 신앙을 위해 교회에서 발간하는 책을 읽어야 한다. 새로운 책이 나올 때 바로 구입해 읽는다면, 영적 성장은 물론 교회 출판물 발전과 아울러 선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 만난 성녀들을 떠올리면서 순간순간을 성실하게 살아가고, 특히 신심 서적에 대한 독서 태도를 돌아보도록 하자.



-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박도식 엮음 / 바오로딸
  (그림자료: 의정부교구 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