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 15일 ]
승화된 모정
성녀 권희 바르바라/ 성녀 조증이 바르바라/ 성녀 손소벽 막달레나 (승화된 모정)

성녀 권희(權喜) 바르바라(1794-1839년 46세)
주부, 9월 3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녀 권희 바르바라는 비신자 집안에서 태어나 이광헌과 결혼했다. 1817년 무렵 남편 이광헌과 함께 입교하여 열심히 계명을 지키며 박해로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회장 직무를 맡은 남편을 도와 성직자들을 집에 맞아들여 교우들을 미사에 참여하게 하고 강론을 듣게 했다.
1839년 4월 온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다. 바르바라는 배교를 강요하는 많은 형벌을 받았으나 그를 더 괴롭힌 것은 어린 자녀들의 고통이었다. 열두 살밖에 안 된 아들이 고문을 당하는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며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졌지만 끝내 모든 유혹과 형벌을 참아내며, 모성애의 뜨거운 고통을 순교정신이라는 맹렬한 불길 속에 태웠다.
어느 날 포졸들이 아이들을 따로 불러 부모가 배교해 집에 돌아가 기다린다고 속였으나 오히려 아이들은 “부모님이 배교하고 안 하고는 그분들의 일입니다. 저희는 저희가 섬겨 온 하느님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해 포졸들을 놀라게 했다. 포졸들은 다시 아이들을 이용해 바르바라의 배교를 강요했다. 그러나 살이 터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봉헌하면서 주님의 은총이 자녀들과 함께하길 빌 뿐이었다.
5개월 동안 계속된 처참한 옥살이 끝에 9월 3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로 치명하여 주님의 나라로 거처를 옮겼다. 자식을 위한 모성애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은총으로 하나 되게 한 놀라운 모범이었다.
성녀 권희 바르바라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권희 바르바라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아이들에게 참사랑을 베푸는 부모가 되도록 빌어주소서.

성녀 조증이(趙增伊) 바르바라(1782-1839년 58세)
주부. 12월 29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녀 조증이 바르바라는 경기도 이천 양반 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고, 열여섯 살에 남이관과 결혼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났을 때 친정아버지와 시부모가 순교하고, 남편이 경상도 단성으로 유배되자 친정이 있는 이천으로 내려가 10여 년을 고생하며 살았다.
그 후 다시 서울로 올라와 먼 친척 되는 정하상을 도와 성직자 영입에 필요한 자금 마련을 위해 애썼으며, 1832년 유배에서 풀려난 남편과 함께 유방제 신부를 보필하고 공소를 세우는 등 교우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남편을 자신의 친정으로 피신시키고 어린 딸과 함께 집을 지키다가 7월에 체포되었다. 남편 남이관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관원들에게 혹독한 고문과 형벌을 받았으나 끝까지 입을 다물고 신앙을 지켰다. 성녀는 12월 2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하여 성모님의 손을 잡고 천국으로 올라가 끝없는 영광을 누렸다.
성녀 조증이 바르바라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조증이 바르바라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모든 아내가 남편에게 내조를 잘하도록 빌어주소서.

성녀 손소벽(孫小碧) 막달레나(1801-1840년 40세)
주부. 1월 31일 당고개에서 참수
성녀 손소벽 막달레나는 서울의 열심한 교우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가 순교하고 얼마 안 되어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열일곱 살 때 최창흡과 결혼한 손소벽은 남편과 함께 다시 교리를 배우고, 1821년 전국에 콜레라가 퍼지자 부부가 함께 대세를 받았으며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그해 6월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 후 사위 조신철이 북경에서 가져온 교회 물건 출처로 세 번의 주뢰와 태장 260대를 맞는 혹형과 고문을 받았다. 이런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내 힘만 가지고는 내 몸을 뜯어먹는 빈대·벼룩조차 잠시라도 견뎌내지 못할 것입니다. 시련을 참아 받는 힘은 하느님한테서 옵니다."
형조에서도 세 번의 형문을 겪었으나 모두 이겨내고 1840년 1월 31일 6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참수형을 받아 천국으로 올라갔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도우심이라고 믿는, 살아 있는 신앙은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점이다.
성녀 손소벽 막달레나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손소벽 막달레나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교우들이 어떠한 시련에도 주님을 외면하지 않는 신앙정신을 갖도록 빌어주소서.
승화된 모정
오늘 우리가 만난 세 분 성녀는 모두 회장 부인으로, 가정과 교회에 대한 열의가 놀라웠다. 이 밖에도 회장 부인이 있지만 오늘은 세 성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기로 하자.
권희 바르바라 성녀는 남편을 도와 교회 일에 헌신하다가 체포되었다. 고문과 형벌 가운데 가장 괴로운 것이 어린 자녀에게 가해지는 고문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순교정신으로 본능적 모정을 거룩하게 승화했으며, 그러한 어머니의 위대함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어 어린 아들도 용감하게 신앙을 증거했다. 하느님의 은총은 놀랍고 성녀의 순교정신 또한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에 어떤 어머니가 어린 아들이 고문당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 뜻을 굽히지 않고 견딜 수 있겠는가?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평소 참된 신앙교육과 진지한 기도 생활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조증이 성녀는 남편 남이관 성인의 긴 유배 생활과 성직자 영입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고 공소를 세우는 등 교회 일을 헌신적으로 도왔으며, 남편 때문에 가혹한 형벌과 고문을 당했지만 회장 부인으로서 훌륭한 모범을 보였다.
손소벽 성녀는 교회 성물을 정성스럽게 보관했는데, 그 출처 때문에 심한 고통을 받았지만 하느님의 도우심에 끝까지 의지하고 모든 고통을 참아 받았다. 또 회장 부인이라는 이유로 심한 혹형을 받았다.
세 분 성녀의 순교정신을 통해 교회 사업에 대한 지금까지의 우리 삶을 반성하고, 비록 직책을 갖지 않았더라도 교회 발전을 위하는 일이라면 자신의 능력대로 힘껏 도우며 아이들에게 생생한 믿음을 삶으로 가르치는 부모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자.
-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박도식 엮음 / 바오로딸
(그림자료: 의정부교구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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