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인들/103위 순교성인 -30일묵상

[19일] 성 유정률 베드로/ 성 임치백 요셉/ 성 박후재 요한/ 성 장성집 요셉(놀라운 은총)

Skyblue fiat 2025. 9. 19. 00:47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 19일 ]

 

놀라운 은총

성 유정률 베드로/ 성 임치백 요셉/ 성 박후재 요한/ 성 장성집 요셉

 

 

성 유정률(劉正律) 베드로(1837-1866년 30세)

짚신 장사. 2월 17일 평양에서 장하치명(杖下致命)

성 유정률 베드로는 평양 대동군 율리면 답현리(일명 논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고아가 되자 짚신을 만들어 팔면서 어렵게 살았다.

1864년 무렵 천주교를 알게 되자 곧바로 서울로 올라와 베르뇌 주교에게 세례성사를 받았다. 세례성사를 받은 후 고향에 돌아와 지난날 방탕하고 난폭했던 생활을 반성하고 속죄하기 위해 짚신끈으로 자신의 몸을 편태하며 극기와 인내를 보이며 열성적인 신앙생활을 하자 그의 아내도 큰 감화를 받아 입교했다.

1866년 2월 16일 설날 친척들에게 세배를 드리며 마치 자신의 순교를 예감한 듯 “안녕히들 계십시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그날 저녁 이웃 마을 고둔리 공소에서 교우들과 함께 성경을 낭독하다가 집주인 정 빈첸시오 회장과 우세영 등 5명의 교우와 함께 체포되어 평양 감영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백여 명의 교우와 함께 문초를 받았는데, 혹형과 고문으로 대부분 배교했지만 홀로 굳건히 신앙을 지켰다. 이에 화가 난 감사 정지용은 배교한 백여 명에게 그를 세 대씩 때리게 하여 체포된 다음날인 2월 17일 300여 대의 매를 맞으면서 장하치명(곤장을 맞고 그 자리에서 목숨이 끊어짐)하여 천상 기쁨을 천 배로 받는 순교의 영광을 누렸다.

성 유정률 베드로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유정률 베드로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우리나라 북녘 교회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임치백(林致百) 요셉(1804-1846년 43세)

상업. 9월 20일 포청 옥에서 교수

성 임치백 요셉(일명 군집君執)은 서울 한강변의 부유한 비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830년 무렵 처음으로 천주교를 알게 되었는데 입교하지는 않았지만 호감을 가지고 신자들을 도와 천주교 신자로 인정받았다.

1846년 5월, 선주(船主) 아들 임성룡이 김대건 신부와 함께 체포되자 아들이 갇혀 있는 옹진수영을 찾아가 아들을 만나기 위해 천주교 신자라고 속이고 자수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며칠 후 서울로 압송되었고 포청에서 김대건 신부를 만났다. 김대건 신부에게 처음으로 천주교 교리에 대한 강론을 듣고 세례성사를 받았다. 하느님 은총의 힘을 입어 순교를 결심하고 9월 20일 정오부터 해가 질 때까지 매를 맞은 후 포청 옥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포도대장이 “십계명도 외우지 못하면서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느냐?” 하자 “무식한 자녀들도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부모에게 효도하듯이, 나는 배운 것은 없지만 하느님이 제 아버지이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해 불충분한 교리 지식을 넘어 하느님께 향한 마음은 누구보다 열렬함을 보여주었다.

성 임치백 요셉과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임치백 요셉과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교우들이 교회 말씀을 정성되이 경청하도록 빌어주소서.

 

 

 

성 박후재(朴厚載) 요한(1799-1839년 41세)

짚신 장수. 9월 3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 박후재 요한(일명 명관)은 경기도 용인의 교우 집안에서 태어났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 박 라우렌시오가 순교한 다음, 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가족을 데리고 서울 한강변에 살면서 미투리를 엮어 팔며 생활했다.

넉넉지 않은 생활에도 꼿꼿한 마음과 뛰어난 덕행으로 교우들의 귀감이 되었다. 서른여섯 살 때 박 안나와 결혼한 후에 더욱 깊은 신앙심으로 아내와 함께 열심히 살았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아내를 피신시키고 5월에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치도곤 40대를 맞아 살이 찢어지고 뼈가 드러나 피가 낭자했으나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옥에 갇힌 교우들을 격려하고 흉악한 죄수들에겐 천주교의 바른 도리를 설교했다.

형조로 이송되어 온갖 고문을 당했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드디어 9월 3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여 인자하신 주님의 사랑을 영원히 받게 되었다.

성 박후재 요한과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장(張)성집 요셉(1786-1839년 54세)

한약방에서 일함. 5월 26일 포청 옥에서 장사(杖死)

성 장성집 요셉은 서울에서 태어나 한강변 서강(西江)에서 살았고, 한약방에서 일하며 두 번 결혼했으나 두 번 다 아내를 잃었다. 서른 살 때 천주교를 알기 시작해 예비신자로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교리에 대한 의심으로 확신을 가지지 못하자 재산 모으는 일에 몰두하며 세속 향락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교리 지식이 깊은 신자 친구들의 가르침과 권면으로 신앙생활로 되돌아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보속의 삶에 전념했다. 참회 생활이 대단하여 방에 틀어박혀 추위와 굶주림을 참아가면서 기도와 성경 연구에 몰두했다.

부모가 고생하는 아들을 보고 “예전처럼 자유롭게 드나들며 생활하는 것이 너의 신앙생활에 그렇게 방해되느냐?" 하고 걱정하자 그는 “제가 지은 죄는 모두 의식(衣食)을 넉넉히 하려는 욕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시 그런 죄를 짓는 것보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는 것이 더 낫습니다."라며 확고한 뜻을 굽히지 않았다.

1838년 4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았고, 많은 신자가 박해 때 고문과 죽음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는 말을 듣고 뜨거운 감동과 은총의 힘을 느꼈다. 순교할 결심을 하고 자수하려 했지만 대부의 만류로 자수하지 않고 있다가 1839년 4월 5일 체포되었다.

체포될 때 중병을 앓아 포졸들이 가마에 태우려 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포청까지 걸어갔으며, 포청에서도 관원들에게 맑은 정신으로 자세히 교리를 설명한 후 혹형과 고문을 기쁘게 이겨냈다. 5월 26일 치도곤 20대를 맞고 장사杖死 순교해 성경을 통해 뵈옵던 하느님 사랑 안에서 끝없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

성 장성집 요셉과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장성집 요셉과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모든 신자가 참회하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빌어주소서.

 



놀라운 은총

오늘은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진 성인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독특한 순교정신을 배웠다. 짚신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간 성인, 상업에 종사하거나 한약방에서 일한 성인들은 신앙으로 살아가는 직업인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또한 놀라운 것은 평양에서 순교한 유정률 성인이다. 배교한 신자 백 명한테서 각각 세 대씩 매를 맞았는데, 때리는 배교자들의 마음도 괴로웠겠지만 형제들에게 배교의 매를 맞은 성인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그때 그는 때리는 신자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했을 것이다. 유정률 성인을 평양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우리나라 통일을 위해 특별히 간구해야겠다.

임치백 성인의 순교도 놀라운 은총이다. 그가 성 김대건 신부의 강론을 진심으로 경청하며 겸손되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순교할 수 있었을까? 그의 순교는 놀라운 은총이며 오늘 우리에게 강론을 열심히 들어야 하는 이유를 각별히 일깨운다. 물론 김대건 신부의 열렬한 강론에 영향을 받았음을 명심해야 한다.

박후재 성인의 꼿꼿한 마음, 장성집 성인의 철두철미한 참회 생활은 큰 감동을 준다. 네 분 성인에게 감사드리면서 그분들의 뒤를 따르는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박도식 엮음 / 바오로딸
  (그림자료: 의정부교구 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