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인들/103위 순교성인 -30일묵상

[16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Skyblue fiat 2025. 9. 16. 00:19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 16일 ]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1821-1846년 26세)
첫 한국인 사제.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


성 김대건 안드레아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로 아명(兒名)은 재복(再福)이고 보명(譜名)은 지식(芝植)이며, 대건(大建)은 관명(冠命)으로 알려지고 있다. 1821년 8월 21일 충청도 솔뫼(충남 당진군)에서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대건 신부의 증조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순교로 신앙을 증거했으며, 양반 집안이었으나 천주교로 말미암아 전락되어 온갖 어려움을 겪었다.

1836년 열여섯 살 때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최양업 토마스와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그 이듬해 마카오에 도착해 사제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1844년 부제품을 받은 후 선교사의 입국을 위한 준비로 서울에 잠입했으며 이듬해인 1845년 4월 김 부제는 라파엘호라고 이름 붙인 작은 배를 타고 제물포를 떠나 상해로 향했다. 그해 8월 17일 상해 부근 긴가함(Kinkaham: 金家巷) 교우촌 성당에서,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한테서 사제품을 받았다. 우리나라 첫 사제가 이국땅에서 사제품을 받은 것이다.

김대건 신부는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를 모시고 라파엘호로 상해를 떠나 천신만고 끝에 10월 12일 충청도 서해안 나바위에 상륙했다.

모국에 돌아온 김 신부는 선교 활동에 힘쓰는 한편 외국 신부의 입국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국경은 경비가 삼엄해 황해를 이용할 계획을 세우고, 연평도를 거쳐 백령도에 이르러 중국 선원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돌아오던 길에 체포되었다. 1846년 6월 5일이었다.

해주 감영에서 네 번의 문초를 받으면서 중국 어부들에게 맡긴 편지와 지도를 모두 압수당했고, 사건의 중대성이 드러나 서울로 압송해 포청에 갇혔다. 무려 마흔 번의 신문을 받는 동안 김 신부의 탁월한 지식과 외국어 실력에 탄복한 일부 대신들은 그를 배교시켜 이용하려 했지만, 김 신부가 도리어 관원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들자 끝내 사학의 괴수라는 죄목을 붙여 사형을 선고했다.

김대건 신부는 사제생활 1년 1개월 만인 1846년 9월 16일 한강변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장렬하게 순교했다. 순교하기 전 김 신부는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의 마지막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 귀를 기울여 들어주십시오. 내가 외국 사람과 통한 것은 오직 종교를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을 위해 나는 죽습니다. 여기서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여러분도 죽은 다음 영원한 행복을 얻고자 하면 천주교 신자가 되십시오. 하느님은 당신을 업신여기는 사람에게 끝없이 괴로운 벌을 주십니다."

김대건 신부의 사상은, 이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임자(天主: 하느님)와 이 임자에 대한 효애孝愛사상으로 일관되었으며, 이를 순교로 보여주었다. 임자에 대한 효애, 곧 하느님께 대한 효애 신심은 교회 장상에 대한 철저한 순종의 모범으로 나타났고, 신자들에게 깊은 사랑을 베푸는 일로도 나타났다.

성모 신심이 깊었던 김대건 신부는 위험한 고비를 넘길 때마다 성모님의 도움을 간절히 청했으며, 성모님의 보호와 도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음을 그의 행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 효애 가운데 부모에 대한 효성 또한 깊어, 순교하기 전 어머니를 보살펴 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모든 한국 성직자의 주보이며, 우리 민족의 위대한 인물로 세계적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선각자의 고통이 클수록 후대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는 사실을 우리는 절감한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우리나라 모든 성직자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우리나라 모든 신학생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우리나라 모든 신자가 사제성소 증가에 힘껏 노력하도록 은총을 빌어주소서.


 

겸손하게 기도하며


9월 16일은 성 김대건 신부가 새남터에서 장렬하게 순교한 날이다. 오늘 우리는 숙연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아야겠다.

첫째, 교회의 바탕이요 주인이 되는 사람은 평신도이지만, 평신도를 하느님께 인도하고 성사 집행으로 온갖 은총을 빌어주고 봉사하는 이는 성직자다. 그리스도의 구원 은총은 공식적으로 성직자의 거룩한 직무를 통해 주어지므로, 교회 안에서 성직자는 반드시 필요하다. 성직자의 직무는 성스럽다. 우리는 성직자의 외모나 재주가 아닌, 성스러운 성사 집행 권한을 가진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존경해야 한다.

성직자를 존경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성직자들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현시대에 성직자들 또한 덕을 쌓으려고 애써야 한다. 성직자들은 무엇보다 겸손하며, 글자 그대로 밤낮없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신자들은 오만한 성직자 백 명보다 겸손한 성직자 한 사람을 더 원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신자들은 맞갖은 태도로 성직자들을 존경하며 그들의 영적 지시를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이에 대해 반성하고 잘못이 있다면 뉘우치며 성 김대건 신부에게 기도를 청하자.

둘째, 신자들은 성직자의 삶과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도와야 하며, 그들이 바라는 교회 사업이 이루어지도록 합심해야 한다. 가끔 주변에 성직자의 교회 업무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감정적으로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못이 있다면 돌아서서 흉보기보다 합리적으로 건의하고 진언하여 고쳐 나가도록 해야 한다.

성직자는 자신에게 독선적인 면이 없는지 반성하면서 지도자가 아니라 봉사자로서 일한다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하며 신자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 김대건 신부에게 도움을 청하자.

셋째, 성소자가 늘어나도록 성직자와 신자들이 한마음이 되어 노력해야 한다. 생활이 편리해질수록 사제·수도성소가 줄어드는데, 날로 증가하는 신자 수에 따라 성직자들도 많이 태어나야 한다. 신자는 물론 성직자들도 본당 사목 활동을 통한 성소 증가 운동을 꾸준히 효과적으로 펼쳐 나가야 한다.

신학교에 많은 학생을 입학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학생과 사제들의 성소 보존과 발전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며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신부는 사제가 되기 위한 공부도 외국에서 했고 조국을 위해 일하는 목자가 되는 사제품도 외국에서 받았다. 그런데 젊은 사제의 푸른 꿈이 2년도 안 되어 장렬한 순교로 맺고 말았다.

김대건 신부의 염원은 한국천주교회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뻗어 나갈 것이다. 성인의 염원, 곧 조국의 복음화라는 간절한 바람을 오늘 이 땅의 모든 사제가 활발하게 펼쳐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에게 특별한 신심으로 기도하여 이 땅의 복음화가 활발하게 진행되기를 기원하고 노력하는 것이 신자들의 본분이다.

 

 

-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박도식 엮음 / 바오로딸
  (그림자료: 의정부교구 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