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인들/103위 순교성인 -30일묵상

[12일]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 김제준 이냐시오/ 성 홍병주 베드로/ 성 홍영주 바오로(성직자 수도자의 부모 -기도하는 마음)

Skyblue fiat 2025. 9. 12. 11:52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 12일 ]

 

성직자 수도자의 부모 (기도하는 마음)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 김제준 이냐시오/ 성 홍병주 베드로/ 성 홍영주 바오로

 

 

성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1805-1839년, 35세)

회장. 9월 12일 포청에서 옥사.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일명 영환, 이명(異名) 영술, 보명(譜名) 치운)는 두 번째 한국인 사제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로 충청도 홍주 다락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이 교회 설립 때부터 천주교를 믿어왔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고, 결혼한 다음에는 가족과 상의하여 교우들이 많이 사는 서울로 이주했습니다.

그러다가 비신자들의 탄압이 심해지자 가산을 버리고 서울을 떠나 강원도 금성, 경기도 부평을 거쳐 과천 수리산에 정착해 교우촌을 이루고 신앙생활에 몰두했습니다. 1836년에는 큰아들 최양업이 모방 신부에 의해 신학생으로 뽑혀 마카오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는 타고난 성질이 괄괄해 불같이 일어나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해 어려운 일이 많았으나 신앙정신으로 노력한 결과, 사람들은 그의 본래 성품이 온순한 것으로 생각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1839년 초대 회장으로 임명되었지만 곧이어 기해박해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순교자들의 유해를 거두어 안장했으며, 신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돌보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1839년 7월 31일 서울에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일가 등 교우 40여 명과 함께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습니다. 아들을 나라 밖으로 내보내 신학공부를 시킨다는 죄가 추가되어 남달리 혹심한 형벌로 큰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태장 340대, 곤장 110대를 맞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잃지 않았고, 9월 11일 최후로 곤장 25대를 맞은 다음날인 12일 옥중에서 일생을 마쳐 순교라는 놀라운 기쁨을 안고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 교회에 성소자가 더 많아지도록 빌어주소서.

 

 

성 김제준(金濟俊) 이냐시오(1796-1839년, 44세)

회장. 9월 26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 김제준 이냐시오(일명 시명)는 한국의 최초 사제 김대건 성인의 아버지이며, 충청도 면천 지방 솔뫼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 김진후와 큰아버지의 권면으로 입교했고, 신앙생활을 위해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해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서양 신부들이 입국하자 모방 신부를 찾아가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고 용인에서 회장으로 교회 일을 보며 활약하는 한편, 열다섯 살의 큰아들 김대건을 모방 신부에게 맡겨 마카오로 유학 보냈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그해 8월 사위 곽씨를 앞세운 밀고자 김여상 일당에게 체포되었습니다. 포청과 의금부에서 아들을 외국에 내보낸 국사범으로 처리되어 혹독한 형벌과 고문으로 한때 배교했으나 형조로 이송된 뒤에는 배교를 취소하고 신앙을 훌륭하게 지켰습니다. 그는 9월 26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해 인자하신 하느님 나라로 올라갔습니다.


성 김제준 이냐시오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김제준 이냐시오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 교회 모든 성직자·수도자 가정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홍병주(洪秉周) 베드로(1798-1840년, 43세)

회장. 1월 31일 당고개에서 참수.

성 홍병주 베드로는 홍영주 성인의 형이며, 명문 양반의 후예로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로 할아버지 홍낙민이 순교하자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 서산 여사울로 이사했습니다.

그곳에서 자라면서 대대로 이어온 신앙을 물려받아 열심히 기도하며 계명을 지켰고, 동생 영주와 함께 충청도 내포 지방의 회장이 되어 교회 일에 헌신했습니다. 형제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은 오로지 신앙과 견실한 학식뿐으로, 이 유산을 잘 이어받고 이용하여 천주교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그해 9월 신부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사실이 탄로나 동생과 함께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습니다. 포청에서 몇 차례 형문을 당하고 형조로 이송되었습니다. 친척인 형조판서에게 직접 신문을 받지 않았지만, 형조판서한테서 배교시키라는 명령을 받은 형리에게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1840년 1월 31일 당고개에서 교우 6명과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하여 하느님 얼굴을 영원히 바라보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성 홍병주 베드로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홍병주 베드로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가 신앙 안에서 깊은 형제애를 키우도록 빌어주소서.

 

성 홍영주(洪永周) 바오로(1801-1840년, 40세)

회장. 2월 1일 당고개에서 참수.

성 홍영주 바오로는 홍병주 성인의 동생이며, 명문 양반의 후예로 서울에서 태어나 충청도 내포 지방 여사울에서 자랐습니다. 대대로 내려온 신앙을 이어받아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고, 형 홍병주와 함께 내포 지방 회장으로 임명되어 교회 일에 헌신했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고 서양 신부들이 체포되자 9월 말 형과 함께 서양 신부들의 은신처를 제공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습니다. 1840년 2월 1일 하루 먼저 순교한 형의 뒤를 따라 2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참수형을 받아 장렬하게 순교하여 드디어 순교자 대열에 들어 주님을 영원히 찬미하게 되었습니다.

성 홍영주 바오로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홍영주 바오로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신자들 사이에 직장이나 학력으로 인한 불목이 없도록 빌어주소서.




기도하는 마음

 

신부 아들을 둔 두 아버지와 두 형제가 회장직을 맡아 교회를 위해 헌신하다가 목숨까지 바친 성인들을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성직자와 수도자를 둔 부모들은 번민과 근심 걱정이 떠날 줄 몰라 끊임없이 기도합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겸손하고 교회 일에 헌신적이어야 합니다.

최경환 성인은 본래 성격이 괄괄했지만 얼마나 자신을 억제했는지 주위에서 온순한 사람으로 여길 정도였습니다. 성직자 부모로서 모범이 될 만하고, 김제준 성인은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로서 회장직을 맡아 성실히 교회를 위해 봉사했습니다.

홍병주와 홍영주 형제도 회장으로서 교우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헌신한 사실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직자와 수도자 성소가 늘어나도록 얼마나 노력했는가? 성직자와 수도자를 위해 기도로 도와준 적이 있는가? 자녀들이 사제·수도자 성소를 받도록 기도한 적이 있는가? 성직자와 수도자가 헌신하는 교회 일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협조했는가? 성직자와 수도자를 둔 집안 부모나 가족으로서 겸손되이 행동했는가? 지나친 자랑으로 오만한 적은 없었는가? 자식이나 형제자매가 성직자·수도자라고 거만하게 행동한 적은 없는가?

사목회장이 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도와주었는지, 뒤돌아서서 비방하지는 않았는지, 도움을 구하는 회장의 합당한 요청에 이유 없이 거절한 적은 없는지, 회장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교회 일에 참여한 적이 있는지 되돌아봅시다.

 

 

 

-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박도식 엮음 / 바오로딸

  (그림자료: 의정부교구 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