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 10일 ]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녀 원귀임 마리아/ 성녀 김루치아/ 성녀 이경이 아가타/ 성녀 조 막달레나/ 성녀 김임이 데레사/성녀 정정혜 엘리사벳

성녀 원귀임(元貴任) 마리아(1818-1839년, 22세)
동정녀. 삯바느질함. 7월 20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녀 원귀임元貴任 마리아는 경기도 고양군 용머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거지 신세가 되어 아버지를 따라 떠돌아다니다 아홉 살 때 서울로 올라와 친척 원 루치아 집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똑똑하고 온순했던 그는 열다섯 살 때 세례를 받고 동정을 지키겠다는 서원을 한 다음 머리를 얹어 결혼한 여자 행세를 했습니다. 1839년 2월 포졸들이 몰려왔을 때 다행히 몸을 숨길 수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의 밀고로 붙잡혔습니다. 처음에는 잠시 당황하여 정신을 잃었으나, 이 세상에서는 주님 뜻이 아닌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믿음을 되새기면서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배교를 강요하는 포교에게 "제 영혼을 하느님께 맡긴 지 오래되었으니 더 이상 묻지 마십시오. 배교하면 제 영혼을 영원히 잃게 됩니다."라면서 배교를 거부했습니다. 허기와 갈증, 전염병으로 옥살이 4개월 동안 고통이 심했습니다.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7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하여 순결한 영혼을 영원히 간직한 채, 모든 것을 섭리하고 다스리시는 하느님 품에 안겼습니다.
성녀 원귀임 마리아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원귀임 마리아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우리나라 모든 직업 청소년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김루시아(金累時阿) 루치아(1818-1839년, 22세)
동정녀. 7월 20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녀 김루시아(金累時阿) 루치아는 강원도 강촌(江村)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아홉 살 때 어머니한테서 천주교를 알게 되어 입교했습니다. 열네 살 때 이미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했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가산을 팔아 장례를 치르고 자신을 받아주는 교우들의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살았습니다.
1839년 4월 함께 살던 이매임·이정희·이영희·김성임·허계임 등과 순교할 마음으로 포졸들에게 자수했습니다. 포청과 형조에서 고문과 혹형을 받았으나 변함없는 신앙과 순수한 태도로 이겨냈으며, 교리 내용을 신문할 때도 기막힌 비유와 논리정연한 대답으로 포교들을 감동시켰습니다. 하느님을 보았느냐는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 것을 보면 그의 총명함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골에 사는 백성들이 임금님을 뵈옵지 않았다고 해서 임금님이 계신 것을 믿을 수 없습니까?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보고 저는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신 대왕(大王)과 가장 높으신 아버지를 믿는 것입니다."
포장은 이들이 제 발로 자수하여 들어온 것을 괘씸하게 여겨 다른 신자들보다 더 혹독한 형벌을 내렸지만 의연하게 참아냈으며, 3개월 동안 옥살이를 한 다음 7월 20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받아 영원하고 아름다운 하느님 나라로 갔습니다.
성녀 김루시아 루치아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김루시아 루치아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교회 활동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녀 이경이(李瓊伊) 아가타(1813-1840년, 28세)
동정녀. 1월 31일 당고개에서 참수.
성녀 이경이(李瓊伊) 아가타는 시골 교우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혼기에 이르자 어떤 내시에게 속아 결혼했으나 곧 집으로 돌아왔고, 앵베르 주교에게 청하여 그 결혼이 무효임을 인정받았습니다.
그 뒤 아버지를 여의고 생계가 막막해지자 어머니를 외삼촌에게 맡기고 상경하여 한영이·권진이 집에 기거하면서 두 모녀와 함께 언제나 기도하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났을 때 배교자의 밀고로 한영이와 권진이 모녀와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평소 이경이의 미모를 탐내던 밀고자의 계교로 한영이만 포청으로 끌려가고 이경이는 권진이와 함께 사관청에 갇혔습니다. 밀고자가 이경이와 권진이를 납치하려 했지만 포졸의 도움으로 사관청을 탈출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숨어 있던 교우 집에서 다시 체포되어 1840년 1월 31일 당고개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여 밤낮으로 찾았던 주님 나라로 올라갔습니다.
성녀 이경이 아가타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이경이 아가타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가 육신의 허영을 물리치는 용기를 갖도록 빌어주소서.

성녀 조 막달레나(1807-1839년, 33세)
동정녀. 9월 어느 날 포청에서 옥사.
성녀 조 막달레나는 이 가타리나 성녀의 딸로 시골에서 태어나 어려서 어머니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했습니다. 여덟 살 때 천주교를 반대하던 비신자 친척을 피해 외가에 살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열여덟 살 때 혼담이 오가자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교우들의 집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다가 다시 고향에 내려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비신자 아이들을 가르치고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대세를 주는 등 열심히 교회 일을 도왔습니다.
1838년 고향에서 사사로운 박해가 일어나자 어머니와 두 동생과 함께 가산을 버리고 서울로 피신하여 조 바르바라 교우 집에 머물던 중, 1839년 6월 어머니와 주인집 세 모녀와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포청에서 어머니와 함께 배교를 강요당하며 한 차례 신문과 주뢰형을 받고 별다른 형벌이나 고문 없이 옥에 갇혔습니다. 쇠약해진 몸으로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며 지내다가 옥살이 3개월 되던 9월 병에 걸려 빛의 나라 천국에서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성녀 조 막달레나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조 막달레나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모든 주일학교 교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김임이(金任伊) 데레사(1811-1846년, 36세)
동정녀. 9월 20일 포청 옥에서 교수형.
성녀 김임이(金任伊) 데레사는 서울 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신앙생활에 몰두했습니다. 스무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오라버니 베드로와 함께 친척 집을 전전하며 살다가 1839년 기해박해 후에는 이문우의 양어머니 오 바르바라 집에서 살았습니다.
1845년부터는 김대건 신부의 처소를 돌보았는데, 1846년 5월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자 신부 집에 있던 여교우들과 함께 현석문이 마련한 새집으로 피신했습니다. 7월 11일 현석문·정철염·이간난 등과 함께 체포되어 9월 20일 매를 맞아 거의 반죽음이 된 몸으로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여 천사들의 손을 잡고 하늘나라로 올라갔습니다.
성녀 김임이 데레사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김임이 데레사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성직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정정혜(丁情惠) 엘리사벳(1797-1839년, 43세)
동정녀. 12월 29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녀 정정혜丁情惠 엘리사벳은 정하상 성인의 동생으로 경기도 광주 마재에서 태어났습니다. 네 살 때 1800년 박해를 피해 가족을 따라 서울로 이사했고, 이때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았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다섯 살의 나이로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으나 아버지와 이복 오빠 정철상이 순교한 후 나머지 가족과 함께 석방되어 마재의 작은아버지 정약용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 후 서울에서 성직자 영입운동을 전개하던 정하상이 거처를 마련하자 어머니와 함께 상경, 성직자들의 처소를 돌보며 기도와 희생으로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7월 11일 어머니와 오빠와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포청에서 일곱 번 신문을 받으면서 곤장 320대를 맞고 형조에서도 여섯 번의 신문과 가혹한 고문을 당했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켰습니다. 12월 2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라는 최상의 영광을 안고 천국으로 올라갔습니다.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과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과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늘 우리가 만난 여섯 분의 성녀는 모두 동정녀로, 신앙생활에만 충실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이나 작은 일에서 이웃을 위해 봉사한 분들입니다. 모두 가난하게 살면서도 하느님을 위해 동정을 결심하고 교회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린 원귀임 성녀는 우리나라 모든 직업 여성의 수호성인으로 모실 만한 분입니다. 김루시아 성녀는 자헌치명자로 포졸들에게 자수했을 뿐 아니라 형리에게 교리를 조리 있게 설명하는 총명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경이 성녀는 기도와 속죄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조 막달레나 성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여 주일학교 교사들의 수호성인으로 모실 만한 분입니다. 김임이 성녀와 정정혜 성녀는 성직자들의 생활을 뒷바라지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하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직업에 대한 사랑과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해 틈나는 대로 기도하고 모든 것을 속죄 정신으로 인내하는 자세, 보이지 않게 희생 봉사하는 생활, 이웃에게 드러나지 않는 겸손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여섯 분의 성녀에게 하느님께 전구해 주시길 청하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반성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박도식 엮음 / 바오로딸
(그림자료: 의정부교구 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