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 11일 ]
가정주부 (겸손한 마음으로)
성녀 권진이 아가타/ 성녀 최영이 바르바라 / 성녀 박큰아기 마리아/ 성녀 박아기안나

성녀 권진이(權珍伊) 아가타(1819-1840년, 22세)
주부. 1월 31일 당고개에서 참수.
성녀 권진이 아가타는 한영이 성녀의 딸로 서울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권 진사가 천주교를 믿으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 뜻을 따라 어머니와 함께 입교했습니다.
열세 살 때 교우 청년과 결혼했으나 너무 가난해 남편과 떨어져 정하상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1833년 중국인 유방제 신부가 입국한 후로는 신부의 처소를 돌보았고, 그 뒤 유 신부가 조선을 떠나자 어머니에게 돌아가 한집에 살게 된 이경이와 함께 열심히 수계했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7월 17일 배교자의 밀고로 어머니와 이경이와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평소 권진이와 이경이의 아름다움을 탐내던 밀고자의 간교로 한영이만 포청으로 끌려가고 권진이와 이경이는 사관청에 갇혔다가 밀고자가 납치하려 하자 포졸의 도움으로 사관청을 탈출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숨어 있던 교우 집에서 다시 체포되어 이듬해 1월 31일 당고개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여 영원하신 하느님 가족이 되었습니다.
성녀 권진이 아가타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권진이 아가타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교회 안에 새로 태어나는 교우 가정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최영이(崔榮伊) 바르바라(1818-1840년, 23세)
주부. 2월 1일 당고개에서 참수.
성녀 최영이 바르바라는 조신철 성인의 아내입니다. 서울에서 최창흡 성인과 손소벽 성녀 부부의 딸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 입교하여 부모의 모범을 따라 열심히 살았습니다.
스무 살 때 상처한 조신철과 결혼해 아들 하나를 두었고, 성직자 영입운동을 전개하던 남편을 도와 헌신적으로 교회 일에 참여하여 봉사했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남편과 함께 피신했으나 6월에 친정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친정 식구들과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체포될 때 어린 젖먹이 때문에 배교할까 염려되어 친척에게 맡기고 포청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는 남편이 중국에서 가져온 교회 서적과 성물 때문에 두 번의 주뢰와 태장 260대를 맞는 혹형을 당했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았고, 형조에서도 세 번의 형문을 이겨내고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1840년 2월 1일, 당고개에서 교우 2명과 함께 참수형을 받아 위대한 순교자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성녀 최영이 바르바라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최영이 바르바라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교회 내 모든 가정주부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박큰아기(朴大阿只) 마리아(1786-1839년, 54세)
주부. 9월 3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녀 박큰아기 마리아는 박희순 성녀의 언니로 서울 비신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중년에 이르기까지 조카 집에서 살았는데, 자유롭게 천주교를 믿기 위해 대궐을 나온 동생 박희순의 가르침과 권면으로 입교해 열심히 계명을 따랐습니다. 동생 박희순의 덕행이 뛰어나고 널리 알려져 언니 마리아는 크게 인정받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평소는 물론 죽을 때 훌륭한 신앙 행위와 위대한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동생의 주선으로 가족과 함께 궁녀 출신 전경협의 집으로 피신했으나 4월 15일 그곳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포청과 형조에서 고문과 형을 받았지만 용맹히 이겨냈고, 9월 3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하여 무한히 인자하신 하느님의 영원한 딸이 되었습니다.
성녀 박큰아기 마리아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박큰아기 마리아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 모두가 변함없는 겸손을 지니도록 빌어주소서.

성녀 박아기(朴阿只) 안나(1783-1839년, 57세)
주부. 5월 24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녀 박아기 안나는 강원도 강촌 출신으로 서울 한강변에 살면서 어머니와 함께 교리를 배워 입교했습니다. 기억력이 둔하여 교리문답과 기도문 배우는 걸 무척 힘들어했는데 기도는 열심히 했습니다. 열여덟 살 때 교우 태문행(太文行)과 결혼하여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습니다.
1839년 2월 가족이 모두 체포되었는데 포청에서 당한 혹형과 고문으로 남편과 자식들은 배교하고 석방되었으나, 혼자 배교를 거부하고 온갖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혹형으로 살이 찢어지고 뼈가 튀어나왔지만 평온한 얼굴로 고통을 참아내면서 함께 갇힌 교우들과 찾아오는 가족을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5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여 평생 찾았던 자비로우신 하느님 품에 안겼습니다.
성녀 박아기 안나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박아기 안나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신자 가정주부들이 헌신적으로 생활하도록 빌어주소서.
겸손한 마음으로
오늘 만난 네 분 성녀는 모두 가정주부로, 겸손하게 모든 것을 참아가면서 가족과 교우들을 위해 헌신한 분들입니다. 남편을 도와 내조에 몸을 아끼지 않은 성녀, 동생의 덕행에 가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성녀, 남편과 어린 자식들은 배교했지만 하느님과 가족을 위해 스스로 모든 혹형과 고문을 참아 나간 성녀는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순교자의 후손으로서 가난을 원망하지는 않았는지, 부모의 권고나 유언을 잘 따랐는지, 남편을 내조하는 일에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육친의 정으로 신앙에 방해되는 일은 없었는지, 성경과 성물을 소중하게 다루었는지, 사람들 앞에 드러내기를 좋아하지는 않았는지, 기도를 게을리하지는 않았는지, 육체적 고통을 잘 참아내고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겠습니다. 특히 주부의 본분을 다했는지 깊이 생각해 봅시다.
-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박도식 엮음 / 바오로딸
(그림자료: 의정부교구 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