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인들/103위 순교성인 -30일묵상

[9일] 조선교구 설정(1831년 9월 9일)/ 교구와 본당 / 초창기 신자/ 능동적 자세

Skyblue fiat 2025. 9. 9. 00:22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 9일 ]

 

일제 강점기였던 1931년 9월 26일,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 축하식·경축행사’ 현장(서울 계성여학교)

 

조선교구 설정 (1831년 9월 9일)

 

조선 지역은 처음에 중국 남경교구에 포함되었지만, 1792년 북경교구 구베아 주교의 지도 아래 많은 도움과 영향을 받으면서 실질적으로는 북경교구에 속하게 되었다.

1784년 이벽의 권유로 이승훈이 북경에 들어가 세례를 받고 귀국한 다음, 그때까지 천주교 교리를 연구하던 것에서 벗어나 신앙 공동체를 구성하여 명실공히 한국천주교회의 기초를 확립했다. 최초의 신자들은 스스로 신앙을 찾아 교리를 연구하면서 그 정신을 실천했는데, 이는 세계 교회 사상 유례가 없는, 자율적으로 교회를 설립하는 업적과 전통을 세웠다는 점에서 커다란 특징이 아닐 수 없다.

교리책을 보고 평신도끼리 성직자의 임무를 나누어 맡았던 '가성직제도(假聖職制度)'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교회 성립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그러나 성품을 받은 성직자의 필요성을 절감한 다음에는 성직자 영입운동을 전개하여 처음으로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게 되었다.

신부 요청은 주교 요청으로까지 진전되어, 1811년 권기인 등 8명의 평신도가 로마 교황청에 주교 파견을 요청함으로써 교구 설정 노력이 구체화되었다. 교황청에서 조선교구 설정을 결심하게 된 것은 1825년에 발송한 정하상 유진길 등의 간절한 청원서에 기인하며, 북경 주교의 호의도 큰 구실을 했다.

조선교회에 깊은 관심을 가진 교황청 포교성성 장관 카펠라리(Cappellari)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어 그레고리오 16세로 즉위했고, 드디어 1831년 9월 9일 조선교구가 설정되었다. 본래 명칭은 조선대목구(代牧區)이지만 조선교구로 불렀다. 조선교구 사목은 교황청 요청에 따라 파리 외방선교회에서 맡았고, 초대 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는 입국을 눈앞에 두고 병사했다.

2대 교구장은 앵베르 주교, 3대는 페레올 주교, 4대는 베르뇌 주교, 5대는 다블뤼 주교, 6대는 리델 주교, 7대는 블랑 주교, 8대는 뮈텔 대주교였다.

1841년 8월 22일에는 로마 교황한테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교회 주보로 윤허받아 모시게 되었고, 순교로 기초를 다진 이 땅의 천주교회는 순교자들의 모후이신 성모 신심을 키워 나갔다.

 


교구와 본당

 

교구는 우리 천주교회를 지역적으로 구분하는 단위로, 교회 행정 구역을 말한다. 교구는 대교구(大敎區)·교구(敎區)·대목구(代牧區)·지목구(知牧區)로 구분되는데, 우리나라는 조선교구였을 때 대목구였다가 오랫동안 발전해 오면서 지방별로 지목구로 분할되어 왔고, 1962년 3월 10일 한국 가톨릭 교계제도 설정에 따라 대교구와 교구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교구는 교황이 임명한 주교 중심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하느님 백성 교회를 말하는데, 교구가 되기 위해서는 적정수의 신자와 성직자, 재정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본당은 교구장인 주교한테서 권한을 위임받은 주교직의 협조자인 사제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신자 공동체를 뜻한다. 하나의 지역사회 속에서 기초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단위 교회인 본당은 본당 관할 지역 형편에 따라 신부가 상주한 곳에서 먼 거리에 있는 공소(公所)와 구분해 본당 운영과 신자들의 일치를 이루는 데 노력한다.

본당이란 '이웃에 살다' 또는 '함께 살다'의 뜻을 가진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어 라틴어 Paroecia(파로치아 또는 파뢰치아)로 표기하는데, 이 말이 중국에서 본당(本堂)이라는 말로 번역되어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본당과 교구를 설명하는 것은, 교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지역 안에 적정수의 신자와 성직자가 있어서 하나의 공동체로서 면모를 갖추어야 하는데, 우리 조선교구 설정이 평신도에 의해 빨리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교구 설정 과정은 본당에서 출발하여 신부와 신자들이 증가함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우리 조선교구는 평신도들의 간절한 요청과 탄원에 따라 그것도 교황에게 탄원하여 이루어졌다.

본당이 먼저 생겼다기보다 자생적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에서 성직자의 영입을 적극 추진했고, 성직자가 없던 기간에는 신자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교회가 발전해 왔다. 특히 회장들의 피눈물 나는 헌신적 노력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



초창기 신자

 

신자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설립된 초창기 한국천주교회는 신자들의 순교정신으로 성장했다. 평신도들은 무서운 박해 중에도 목숨을 걸고 끝까지 교회를 지켰다.

초창기 신자들은 가족이나 친족 관계로 연결되어 신앙생활을 했고, 비신자들을 피해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정신적 일치는 말할 수 없이 깊었다. 지독하게 가난했지만 박해를 피해 다니는 교우들끼리 마을을 이루었고, 서로 돕고 협력하면서 정신적 위로와 극진한 사랑으로 신앙 공동체를 이루었다.

교우촌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기도 생활과 교리 지식에 대한 것이었고, 특히 순교정신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실시되었다. 회장들은 교우를 친가족처럼 돌보았으며 강론이나 성경해설, 교리 설명과 예비자 교육뿐 아니라 고아와 노약자를 돕는 일까지 했다. 한마디로 복음을 생활화했다. 이러한 회장들의 활동은 교우뿐 아니라 비신자한테까지 칭송받았고, 삶의 모범으로 선교하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가장 높이 평가되어야 하는 초창기 신자들의 정신은 순교정신이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목숨과 바꾸어야 하는 절박하고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신앙을 버리지 않았으며, 포졸들에게 발각·체포되면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비록 짧은 기간 동안 신앙생활을 한 교우라도 기꺼이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단련된 순교정신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교정신이 없었더라면 순교 전통은 이룰 수 없었을 뿐 아니라 한두 차례의 큰 박해로 교회는 위축되어 지하로 숨어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신앙을 올바르게 받아들이고 순교의 위대함을 목격하면서 순교정신은 더욱 힘차게 이어졌고, 계속되는 박해에 만여 명의 순교자가 태어나면서 민족 복음화의 뿌리는 더욱 굳건해졌다. 한국 순교성인 93명 가운데 92명이 평신도라는 사실에서 우리나라 초창기 천주교회가 평신도 중심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초창기 신자들은 위대한 순교정신의 소유자들이었고, 피로 신앙을 지키고 전한 훌륭한 신앙 선조들이다.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의 사랑을 어느 민족보다 많이 받은 선조들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평신도의 특수 사명이 더욱 부각되었다. 평신도는 세상의 빛과 소금, 누룩으로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의 증인이 되어야 함을 생각할 때 우리 신앙선조들의 사도직 정신과 생활은 가장 큰 모범이다. 신앙선조들은 평신도로서 교회에 대한 사랑으로 주어진 본분에 충실했으며, 무서운 박해 앞에서 순교로 세상 모든 것을 초극하는 용덕과 열정을 보여 주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한국의 수호자 성모 마리아님,

우리나라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순교자들의 모후 성모 마리아님,

우리나라 천주교회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안드레아 김대건과 바오로 정하상과 모든 순교자시여,

우리나라 신자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능동적 자세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는 '듣고 따르는 교회'를 강조하여 평신도는 한낱 수동적 존재였지만 공의회 이후 평신도의 위치와 역할이 크게 부각되었다. 평신도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자녀로 복음 선포는 물론 사회질서를 개선해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맡겨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우리 신앙선조들은 이러한 평신도 역할을 200년 전에 실천했다. 여러 번 밝혔지만 한국천주교회의 초창기 평신도들은 놀라운 일을 했다. 선조들의 순교정신과 교회 발전을 위한 헌신적 노력 앞에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해야겠다.

순교자들의 끊임없는 기도, 고향을 등지기까지 용단을 내렸던 신앙심, 이웃을 자기 몸처럼 돌본 희생정신, 순교한 교우가족을 돌본 정성과 사랑, 배교자를 회개시키는 일, 서로 순교할 각오를 북돋아 주면서 포교 앞에서 용감하게 신앙을 증거한 자세, 묵묵히 칼을 받고 순교하는 모습…. 조상들의 이러한 열성은 북경을 놀라게 했고 교황청을 감동시켰다. 그래서 조선교구가 빨리 설정되었고, 신자들의 꾸준한 헌신으로 교회는 크게 발전했다.

나는 지금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우리 교회를 위해 얼마만큼 보탬이 되는가? 교회라는 믿음의 공동체에 대한 나의 애정은 어떠한가? 나는 이웃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며 봉사하고 있는가?

 

 

-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박도식 엮음 / 바오로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