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시

II. 공생활 첫 해 12. 예수께서 베싸이다의 베드로의 집에서 필립보와 나타나엘을 만나시다

Skyblue fiat 2016. 2. 27. 15:56

 

II. 공생활 첫 해

 

12. 예수께서 베싸이다의 베드로의 집에서 필립보와 나타나엘을 만나시다

 


나중(9시 반)에 나는 이것을 서술해야 한다.


요한이 예수께서 초대받으신 집의 문을 두드린다. 한 여인이 앞으로 나아와서 누구인지를 보고 예수를 부른다.
그들은 평화의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예수께서 “요한아, 일찍 왔구나” 하고 말씀하신다.
“시몬 베드로가 선생님께 베싸이다를 들러 가시라고 청한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시몬은 많은 사람에게 선생님 말씀을 했습니다. 저희들은 지난 밤에는 고기를 잡지 않았습니다. 저희들은 아는 대로 기도를 드리고, 안식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돈벌이는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거리로 다니면서 선생님 말씀을 했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생님, 오시겠습니까?”
 “예루살렘에 가기 전에 나자렛에 가야 하지만, 가마.”
 “베드로가 그의 배로 선생님을 베싸이다에서 티베리아에 모셔다 드릴 것입니다. 그러면 더 빨리 가실 순 있어요.”
 “그럼 가자.”
예수께서는 겉옷을 입으시고 배낭을 집어 드신다. 그러나 요한이 배낭을 빼앗는다. 그들은 집주인에게 인사를 한 다음 떠난다.


환상에는 작은 마을에서 나가는 것과 베싸이다로 가는 길의 시초가 보인다. 대화는 들리지 않고 환상이 중단되기까지 한다. 환상은 베싸이다 어귀에서 다시 시작된다. 베드로와 안드레아와 야고보가 보이고, 동구에서 이들과 같이 기다리는 여자들이 보이기 때문에 이 읍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있기를. 자 내가 왔다.”

 “선생님, 저희로서도 기다리는 사람들로서도 고맙습니다. 안식일은 아니지만, 선생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겠다, 네 집에서 말하겠다.”
베드로는 몹시 기뻐한다. “그러면 오십시오. 이 사람은 제 아내이고, 이 부인은 요한의 어머니, 그리고 저 부인들은 이 여자들의 친구들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우리 친척들과 친구들입니다.”
 “내가 오늘 저녁 떠날 터인데, 그전에 그들에게 말하겠다고 알려주어라.”


그들이 가파르나움에서 해질 무렵에 떠났는데, 아침에 베싸이다에 도착하는 것을 보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빼먹었다.
“선생님, 제발 제 집에서 하룻밤 쉬십시오. 제 배로 티베리아까지 모셔서 지름길을 가시게 해 드린다해도 예루살렘까지의 길은 멉니다. 제 집은 가난하긴 하지만 정직하고 환대하는 집입니다. 오늘 밤은 저희들과 같이 계십시오.”
예수께서는 대답을 기다리는 베드로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신다.

그들을 바라보시며 살펴보다가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그러지.”
베드로가 또다시 기뻐한다.


사람들이 문으로 들여다보고 눈짓을한다. 한 남자가 야고보의 이름을 불러 예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가만히 말한다. 야고보가 그렇다는 표시를 하니, 그 사람은 네거리에 머물러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이야기한다.
일행은 베드로의 집으로 들어온다. 연기에 검게 그을린 넓은 부엌 한구석에는 그물들과 밧줄들과 고기 담는 바구니들이 있다. 한가운데에는 넓고 낮은 화덕이 있는데, 지금은 불이 없다. 마주 나있는 문으로는 한편에는 길이 보이고, 한편에는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있는 작은 정원이 보인다. 길 저쪽으로는 호수의 담청색 물결이 보이고, 작은 정원 너머로는 다른 집의 짙은 색 벽이 보인다.


“선생님께 제가 가진 것을 제가 아는 방식으로 드립니다.”
“좋다. 네가 사랑으로 주니, 그보다 더 낫게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수께 목을 축이시라고 물을 드리고, 그 다음에는 빵과 올리브들을 드린다.
예수께서는 받아들인다는 것을 보이시려고 몇 입을 드시고는 나머지는 사양하시며 물리치신다.


어린 아이들이 정원과 길에서 신기한듯이 예수를 살펴본다. 그러나 그들이 베드로의 아이들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베드로가 눈짓을 하여 이 어린 침입자들을 못들어오게 한다는 것뿐이다.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내버려 두어라.”
 “선생님, 쉬시겠습니까? 여기는 제 거처이고, 저기는 안드레아의 거처입니다.

  마음대로 골라쓰십시오. 쉬시는 동안에는 소리를 내지 않갰습니다.”
 “옥상 정원도 있느냐?”
 “예, 포도나무도 있구요. 아직 거의 잎이 없지만, 그늘을 조금 만들어 줍니다.”
 “그리로 데려다 다오. 그 위에서 쉬는 것이 좋겠다. 생각도 하고 기도도 드리겠다.”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오십시오.”


작은 정원에서 작은 층계가 지붕으로 올라가는데, 지붕은 평평하고 낮은 담이 둘러쳐져 있다. 거기에도 그물과 밧줄들이 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얼마나 빛이 많이 내려오고, 바다는 또 얼마나 새파란가!
예수께서는 걸상에 앉으셔서 어깨를 낮은 담에 기대신다. 베드로는 돛 하나를 집어서 포도나무 위와 옆에 펴서 해를 막아 드린다. 거기에는 산들바람과 정적이 있을 뿐이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그것을 즐기신다.
“선생님, 저는 가겠습니다.”
 “가거라. 그리고 너와 요한은 해가 질 무렵에 내가 여기서 말한다고 가서 일러주어라.”


예수께서는 혼자 남으셔서 오랫동안 기도하신다.

제 둥지로 갔다가 돌아오곤 하는 비둘기 두 쌍과 지저귀는 참새들 외에는 기도드리시는 예수 주위에 아무 소리도 없고 살아 움직이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여러 시간이 조용하고 평화롭게 흘러간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는 일어나셔서 옥상을 한바퀴 도시고, 호수와 길에서 노는 어린이들을 내려다보신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고 미소를 보내시니, 어린이들도 미소로 응답한다. 예수께서는 집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광장 쪽을 보신다. 그런 다음 내려오셔서 부엌으로 가시며 말씀하신다. “아주머니, 호숫가를 한바퀴 돌고 오겠습니다.”


예수께서는 나가셔서 실제로 그쪽 방향으로 아이들 곁으로 가신다. 그리고 “뭣들 하니?” 하고 물으신다.
“전쟁놀이를 하고 싶었는데 얘가 싫다고 해서 고기잡이 놀이를 하고 있어요.”
전쟁놀이를 원치 않는 어린이는 가냘프지만 눈이 매우 빛나는 작은 남자이다. 아마 그는 가냘프기 때문에 “전쟁을 하다가” 다른 아이들이 떠밀 것을 알고, 그 때문에 평화의 편을 드는 모양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그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애 말이 옳다. 전쟁은 사람들을 벌하기 위한 하느님의 벌이다.

전쟁은 사람이 이제는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낸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에 해, 바다, 별, 강, 초목, 짐승 따위 모든 것을 만드셨지만, 무기는 만들지 않으셨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랑의 눈길을 가지라고 눈을 주셨고, 사랑의 말을 하라고 입을 주셨고, 그 사랑의 말을 들으라고 귀를 주셨고, 도움을 주고 어루만져 주라고 손을 주셨고, 가난에 쪼들리는 형제에게로 서둘러 달려가라고 발을 주셨으며,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지능과 말과 애정과 감정을 주셨지만, 미워함은 주지 않으셨다. 왜? 그것은 하느님의 피조물인 사람은 하느님이 사랑하신 것과 같이 사랑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이 하느님의 피조물로 남아 있었더라면 사랑 속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고, 인간 가족은 전쟁과 죽음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얘가 전쟁놀이를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언제나 지기 때문에 그래요.”(나도 그렇게 짐작하였었다).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우리를 해치는 것을 우리를 해친다는 이유로 거절해서는 안된다. 어떤 일이 모든 사람을 해칠 때에는 거절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나는 지겠으니까 이건 싫다’ 하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기주의이다. 참된 하느님 아들은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얘들아, 내가 이기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너희들이 여기서 손해를 볼테니까 이건 하지 말자’하고. 오! 그 아이는 으뜸가는 계명을 정말 잘 알아들은 어린이다 ! 누가 그 계명을 말하겠니?”


열 한 개의 입이 다같이 목소리를 맞추어 말한다.

 “‘네 하느님을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입니다.”
 “오! 너희는 착한 어린이들이로구나. 너희들 모두 학교에 다니니?”
 “예.”
 “누가 제일 착하냐? ”
 “얘요.” 전쟁놀이를 하기 싫어하는 가냘픈 어린이이다.
 “이름이 무엇이냐? ”
 “요엘 입니다.”
 “훌륭한 이름이다. 그 사람은 ‘약한 사람은「나는 강하다!」하고 말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란다. 그렇지만 무엇에 강한 사람이 되란 말이냐? 참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는데 강해서 최후 심판의 골짜기에서 하느님이 당신의 성인이라고 선언하실 사람들 축에 끼도록 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벌써 심판이 가까웠다.

 심판의 골짜기에가 아니라 구속의 산에서 말이다. 거기에서 해와 달이 여지껏 들어본 적이 없는 무서운 광경으로 인하여 흐려지고, 별들은 불쌍히 여겨 떨면서 울 때에 빛의 아들들과 어둠의 아들들이 갈라질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그의 하느님이 오셨다는 것을 알 것이다. 하느님을 알아볼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의 마음에는 꿀과 젖과 맑은 물이 내려올 것이고 그들에게는 가시가 영원한 장미꽃이 될 것이다. 너희들 중에서 누가 하느님께 거룩한 사람이라는 선언을 받고 싶으냐? ”
 “저요, 저요, 저요.”
 “그러면 너희들은 메시아를 사랑하겠니? ”
 “예! 예! 선생님!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좋아요! 우리는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요.

시몬과 야고보 아저씨가 그걸 말해 주었구요. 엄마들도 우리에게 그 말을 했어요. 우리를 데려 가세요!”
 “정말이지 너희가 착하게 굴면 너희를 데려가겠다. 그렇지만 이제는 상스러운 말도 하지 말고, 주먹을 휘두르지도 말고, 다투지도 말고, 아버지 어머니께 버릇없는 대답을 하지도 말아라.

기도하고, 공부하고, 일하고, 순종해라. 그러면 너희를 사랑하고 너희와 같이 있으마.”


어린이들은 모두 예수를 빙 둘러싼다. 마치 짙은 파란색의 긴 암술을 둘러싸고 있는 꽃잎들 같다.
약간 나이 든 남자가 호기심을 가지고 가까이 왔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옷을 잡아당기는 어린 아이를 쓰다듬어 주려고 돌아서시다가 그를 보셨다. 예수께서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신다. 그 사람은 얼굴을 붉히며 인사한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리 오너라! 나를 따라라!”
 “예, 선생님.”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에게 축복하시고 필립보(예수께서는 그의 이름을 부르신다)와 나란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신다.

그들은 작은 정원에 앉는다.


“내 제자가 되기를 원하느냐?”
 “원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되기를 감히 바라지 못합니다.”
 “내가 너를 부른 것이다.”
 “그러면 저는 선생님의 제자입니다. 여기 이렇게.”
 “내가 누구인지 알았느냐?”
 “안드레아가 선생님 말씀을 제게 해 주었습니다. 안드레아는 ‘자네가 갈망하던 분이 오셨네’ 하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메시아를 갈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네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다. 내가 네 앞에 있으니까.”
 “제 선생님이시고 제 하느님이십니다!”


 “너는 옳은 의향을 가진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네게 나타나서 보여주는 것이다. 네 친구인 또 한 사람도 기다리고 있는데, 그 사람도 진실한 이스라엘 사람이다. 가서 그에게 말하여라. ‘우리는 다윗 가문의 요셉의 아들 나자렛의 예수를 만났네. 모세와 예언자들이 말한 그분을 말이야’ 하고. 가라!”


예수께서는 필립보가 나타나엘 바르톨로메오와 같이 올 때까지 혼자 계신다.
 “속임수를 모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 오는구나. 나타나엘. 네게 평화가 있기를.”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
 “필립보가 너를 부르러 가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밑에 있는 것을 보았다.”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밑에서 곰곰히 생각하고 있을 때 너를 보았다고 내가 말하였기 때문에 믿느냐?

너는 이보다 훨씬 중요한 일을 볼 것이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하늘이 열리고, 너희는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 즉 네게 말하고 있는 내 위로 내려왔다 올라갔다 하는 것을 볼 것이다!”


 “선생님 ! 저는 그런 특별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나를 믿어라. 그러면 하늘에 가기에 마땅한 사람이 될 것이다. 믿기를 원하느냐?”
 “원합니다.”

 

환상이 잠깐 끊어졌다...  그러다가 사람이 잔뜩 모인 옥상에서 다시 시작된다. 사람들은 작은 정원 안에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집과 아내와 자녀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빛이 그들을 지배하고,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내 말을 듣기를 바랬습니다. 말씀(제 2위 성자 예수를 가리킴)이 말합니다. 성실한 사람들에게는 기쁘게 말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괴로워하며 말합니다. 거룩한 사람들과 순결한 사람들에게는 사랑을 가지고 말하고, 죄인들에게는 연민을 가지고 말합니다. 말씀은 거부하지 않습니다. 말씀은 물을 갈망하는 땅을 적시는 강과 같이 와서 그들에게 시원한 물과 물에 실려온 진흙의 영양을 줍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아버지의 말씀이신 메시아의 제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하십니다. 그런데 메시아는 거룩하고 변함없는 십계명의 말씀을 다시 듣게 하려고 이스라엘 백성을 모으러 왔습니다. 그리고 십계명의 말씀이 벌써 이 세상에 있음으로 해서 성화의 근원이 되었으니, 구속과 천국의 때가 오면 사람이 얼마나 더 거룩하게 되겠습니까?
나는 귀머거리들과 소경들과 벙어리들과 문둥병자들과 마비환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일어나시오, 나으시오, 생기를 되찾아 걸으시오. 당신들이 나를 보고 내 말을 듣고 나에 대하여 말할 수 있도록 많은 빛과 말과 음파가 당신들에게 옵니다’ 하고. 그러나 나는 여러분의 육체보다는 오히려 여러분의 정신에 말합니다.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은 두려워 말고 내게로 오시오. 만일 여러분의 정신이 상처를 입었으면, 내가 그 정신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겠습니다. 병들었으면 고쳐 주겠습니다. 죽었으면 다시 살리겠습니다. 나는 다만 여러분의 착한 뜻만 원할 뿐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까? 아닙니다. 나는 유다교 교사들이 요구하는 것과 같은 수백가지, 수백가지, 수백가지 계명을 여러분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십계명을 지키시오’하고 말합니다. 율법은 하나이고 변함이 없습니다. 율법이 방금 태어난 인간과 같이,그 줄기에 피어나기 시작하는 장미꽃과 같이 아름답고 깨끗하고 신선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주어진 때부터 많은 세기가 지났습니다. 간단하고 분명하고 지키기 쉬운 율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사람의 죄와 성벽이 부담과 제한과 힘드는 결구(結句)를 가진 법률과 규칙 따위로 율법을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주신 그대로의 율법으로 여러분을 도로 데려가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이익을 위하여 제발 부탁이지만, 그것을 그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은 성실한 마음으로 받으시오.


죄는 서민인 여러분보다도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말보다는 마음으로 한층 더 원망을 합니다. 나는 그것을 압니다. 신명기에는 해야 할 일이 모두 적혀 있고, 거기에 덧붙일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적용하면서 자기 자신들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하지 마시오. 여러분은 하느님께 말씀하시는 것을 하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계명을 완전히 지키도록 힘쓰시오.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모든 힘을 기울여 하느님을 사랑하면 여러분은 죄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죄는 하느님께 고통을 끼쳐드리는 것이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은 고통을 주기를 원치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웃을 여러분 자신과 같이 사랑하면, 여러분은 오직 부모를 공경하는 아들이 되고, 배우자에게는 충실한 남편이나 아내가 되고, 장사할 때에 정직한 사람이 될 뿐일 것이고, 원수에게 대하여 폭력을 쓰지 않고, 증언할 때에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이 가진 것을 탐내지 않으며, 남의 아내에 대하여 음란한 욕망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게 하기를 원치 않을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하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즉 훔치거나 죽이거나 중상하거나 뻐꾸기처럼 남의 둥지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의 두 가지 계명에 순종하는 것을 완전에까지 이끌어 가시오. 즉 여러분의 원수까지도 사랑하시오’ 하고.
오! 만일 여러분이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것과 같이 사랑할 줄을 안다면, 원죄와 개인적인 죄로 인하여 당신의 원수가 된 사람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느님, 사람들에게 구세주를, 당신의 아들인 어린 양. 즉 여러분에게 말하는 나를 여러분의 모든 죄를 대속하도록 약속하신 메시아를 보내실 정도로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겠습니까!


사랑하시오. 사랑이 여러분에게 사다리가 되어, 야곱의 환상에서와 같이 천사가 되어 그 사다리로 하늘에까지 올라가 아버지께서 모든 사람과 각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네가 어디에 가든지 내가 네 보호자가 되겠고, 이 나라에, 즉 하늘나라, 영원한 나라에 너를 데려다 주겠다’ 하는 말씀을.
여러분께게 평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

 

사람들은 감격한 찬성의 말들을 하면서 천천히 물러간다.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가 남아 있다.
 “선생님, 내일 떠나십니까?”
 “내일, 네가 귀찮지 않으면 새벽에 떠나겠다. ”
 “선생님이 떠나시는 것은 섭섭합니다. 예, 그렇지만 시간은 괜찮습니다. 오히려 유리한 시간입니다. ”
 “고기잡이를 하겠느냐?”
 “오늘 밤 달이 뜰 무렵에 하겠습니다. ”


 “시몬 베드로, 네가 지난 밤에 고기잡이를 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다. 안식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었으니까.

느헤미야는 그의 개혁안에 유다에서 안식일을 존중하라고 하였다.

지금도 아직 너무나 많은 사람이 압착기에서 일하고, 나뭇단을 지고 다니고, 포도나 과일들을 운반하며 생선과 어린 양들을 팔고 사고한다. 너희들은 이 일을 엿새 동안 할 수 있다.

안식일은 주의 날이다. 안식일에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너희들의 이웃을 도와주는 일이다. 그러나 그 일에서 이익은 절대로 배제해야 한다.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안식일을 어기는 사람은 하느님에게서 벌밖에 받을 수가 없다. 너희가 이득있는 일을 하느냐? 그러면 다른 엿새 동안에 손해를 보는 것으로 보상을 할 것이다.

너희가 보수를 받지 않는 일을 하느냐? 그러면 최고의 지혜가 육체를 위하여 제정하신 휴식을 그 육체에 주지 않고, 무익한 피로로 생기는 초조로 정신을 약화시키며, 저주에까지 이름으로써 너희들의 육체를 쓸 데 없이 피곤하게 하는 것이다. 안식일은 하느님과 일치한 마음으로 다정스러운 사랑의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흘러 가야 할 터인데 말이다. 모든 일에 충실해야 한다. ”


 “그렇지만... 우리에게 대단히 엄격한 율법교사들과 박사들은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고, 또 빵을 내주는 피로를 피하려고 이웃에게 빵조차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리대금은 안식일에도 행합니다. 그것이 육체적인 일은 아니니까, 고리대금은 안식일에도 할 수 있습니까? ”
 “절대로 안된다. 안식일에도 다른 날에도 안된다. 고리대금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파렴치하고 잔인한 사람이다. ”
 “그러면 율법교사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시몬아, 판단하지 말아라. 다만 너로서는 그렇게 하지 말도록 하여라.”
 “그렇지만 저는 보기 위해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몬아, 볼 것이 악밖에 없느냐?”
 “아닙니다, 선생님.”
 “그러면 왜 악만을 본다는 것이냐?”
 “선생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러면 내일 새벽에 요한과 같이 떠나겠다.”
 “선생님 ...”
 “시몬아, 무슨 일이냐?”
 “선생님은 예루살렘에 가시지요?”
 “너도 잘 알지 않느냐?”
 “저도 과월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갑니다. 안드레아와 야고보도 가고요.”
 “그래서? 나하고 같이 가고 싶다는 말이지. 그럼 고기잡이는 어떻게 하고? 또 돈벌이는 어떻게 하고?

너는 돈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말하였지. 그런데 나는 여러날 머물러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어머니집에 가고, 돌아을 때에도 들르겠다. 전도하기 위하여 들르겠다.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베드로는 두 가지 욕망 사이에 끼여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러나 나중에는 결심한다.

 “저는 가겠습니다. 돈보다는 선생님이 먼저이십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저두요.”
 “우리도 가지, 필립보?”
 “그러면 오너라. 나를 도와다오.”
 “오!‥‥” 베드로는 예수를 도와드린다는 생각에 깜짝 놀란다.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내가 말해주마. 너희가 잘 하려면,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

순종하는 사람은 언제나 잘 한다. 즉시 기도를 드리자. 그리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여라.”


 “선생님은 뭘 하시겠습니까?”
 “나는 또 기도를 드리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그러나 또한 사람의 아들이기도 하다. 이 이유로 나는 인간의 죄를 속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항상 영원한 빛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기도하자.”


예수께서는 시편의 노래를 읊으시는데, 이런 말로 시작되는 노래이다.

 “지존하신 분의 거처에 몸을 숨기고 전능하신 분의 그늘 아래 머무는 사람아,

 야훼께서 네 피난처시요 네 요새이시며 네가 의지하는 너의 하느님이라고 말하여라.

 그분이 너를 사냥하는 자의 덫과 악의에 찬 말에서 구해 주시리라…….”


나는 이 노래를 제 4권에서 찾아냈다. 제 4권의 둘째 노래, 제90번인*것 같다(내가 로마 숫자를 제대로 읽었다면).
-환상은 여기서 끝난다.

 

나는 성경을 펼쳤다. 우연히 집회서 23장 1절에서 4절이 눈에 띄었다. 내마음에 드는 기도이다.


생각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마음이 교만으로 가득차는 일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아니,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이렇게 되기는 싫습니다. 주여, 이것은 당신을 잃는다는 뜻인데. 저는 당신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채찍과 징계를 사용하십시오. 그러나 당신의 “오랑캐꽃”을 땅에 그대로 있게 하여 주십시오.
열 두시에 나는 예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예, 주님, 제 손을 잡아 인도해주십시오(나는 예수께서 베니냐 수녀에게 하신 말씀 한 구절을 읽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 구절이 그날의 내 묵상거리였다). 저는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원하고, 다른 것은 원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이 무섭습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어떤 공포에 대하여 말하는지 아시고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들이 네가 하고 있는 것이 내 이름으로 또 내 뜻에 따라 한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거절하면서 침묵을 강요하면, 너도 베드로와 요한이 절름발이를 낫게 한 다음에 최고 법원에서 대답한 말을 대답하여라. ‘우리(내)가 하느님의 말씀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옳은 일이겠는지 한번 판단해 보시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고.

 뿐만 아니라, 너는 내가 네게로 와서 네가 보고 듣고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너로서는 세상에 빛을 주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말씀보다도 하느님께 침묵을 강요하고자 하는 세상의 말을 듣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만일 내가 그것을 원한다면, 누가 내게 장애가 되겠느냐?”

 

*역주 : 공동번역에는 91번

 

집회서 23장 1절에서 4절

1  제 생명의 주인이신 아버지 주님 그들의 음모에 저를 넘기지 마시고 그들 때문에 제가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해 주소서.  
2 누가 제 생각에 채찍질을 하고 제 마음에 지혜로운 교훈을 내려 제 잘못을 그냥 두지 않고 저의 죄악을 그냥 넘기지 않도록 도와주겠습니까? 
3 그리하여 제 실수가 불어나거나 제 죄가 넘쳐 나지 않게 되어 적대자들 앞에서 제가 넘어지지 않고 제 원수가 넘어진 저를 보고 즐거워하지 않게 해 주겠습니까? 또 누가 당신의 자비에 대한 희망이 그들에게서 멀리 있도록 해 주겠습니까? 
4   제 생명의 하느님이신 아버지 주님 저에게 오만한 눈길을 허락하지 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