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공생활 첫 해
4. 요한에게는 아무 표시도 필요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요한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는 아무 표시도 필요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미리 거룩하게 된 그의 정신은 초자연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아담의 죄가 없었더라면 사람은 누구나 다 이 초자연적인 지능을 가졌을 것이다.
만일 사람이 은총지위에 그대로 있었고 죄없는 가운데 창조주께 끝까지 충실하였더라면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을 통하여 하느님을 보았을 것이다. 창세기에는 주 하느님께서 죄없는 사람과 친숙하게 말씀하셨고, 사람은 그 목소리를 듣고 기절하지 않았으며, 그 목소리를 틀리지 않고 구별하였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운명은 이러하였다. 한 아들이 아버지에 대하여 그런 것과 같이 하느님을 보고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죄가 와서 사람은 감히 하느님을 쳐다보지 못하게 되었고, 하느님을 발견하고 이해할 줄을 모르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하느님을 점점 더 모르게 되었다.
그러나 요한은, 내 종형인 요한은 전에는 임신하지 못하는 여인이었었는데 임신을 한 그 엘리사벳을 껴안으려고 은총을 가득히 입은 분이 사랑으로 몸을 숙였을 때 죄가 깨끗이 씻어졌었다. 아기는 태중에서 죄의 딱지가 마치 상처가 나을 때에 딱지가 떨어지듯 그의 영혼에서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기뻐서 뛰었었다. 마리아를 구세주의 어머니로 만드셨던 성령께서는 사람이 된 구원을 담은 산 성합이었던 마리아를 통하여 그 아기를 위한 구원사업을 시작하셨던 것이다. 멀지 않아 태어나게 될 그 아기는 혈연 관계로뿐 아니라 말을 하는 사명으로도 나와 결합하기로 되어 있었다. 사실 우리는 말을 만들어내는 입술과 같은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복음과 순교자로서의 그의 운명으로 선구자였고, 나는 요한이 시작한 복음과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당한 그의 순교에 숭고한 완전을 주는 사람이었다.
요한에게는 아무 표시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정신이 둔하기 때문에 표시가 필요하였다. 사람들의 느린 눈과 게으른 귀가 식별하였을 부인할 수 없는 증거 말고 어디에다 그의 주장의 근거를 두었겠느냐? 나도 역시 세례가 필요없었다. 그러나 주님의 지혜는 우리가 만나는 순간과 방식이 이러해야 한다고 판단하셨던 것이다. 요한을 그의 동굴에서 광야로 나오게 하시고, 나를 집에서 나오게 하여 그 순간에 우리를 결합시키고, 내 위에 하늘이 열리게 하시고, 하느님의 비둘기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어야 할 사람 위에 당신 자신인 하느님의 비둘기를 하늘에서 내려오게 하시고, 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는 내 아버지의 천사 같은 이 생각보다 더 강력한 통고를 하늘에서 내려오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나를 따라야 할지 어떨지 핑계를 대거나 의심을 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표시가 여러 번 있었다. 탄생 후에 첫 번째 표시는 동방박사들의 표시였고, 두 번째는 성전에서였으며, 세 번째는 요르단강 강변에서였다. 그 다음에는 수많은 다른 표시들이 왔는데 그것들을 네게 알려주겠다. 그것은 내 기적들은 내 부활과 승천 같은 맨 마지막 기적에 이르기까지 내 천주성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내 조국에는 내 표시가 가득 찼었다. 마치 동서남북 사방에 뿌린 씨와 같이 그 표시들은 인생의 모든 계층에 모든 장소에 이르렀었다. 목자들에게, 권력자들에게, 학자들과 쉽게 믿지 않는 사람들과 사제들과 지배자들과 어린이들과 군사들과 히브리인들과 외교인들에게 이르렀었다.
지금도 내 표시들은 되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 때와 마찬가지로 그것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단념하지 않는다. 나는 너희들을 구하기 위하여, 너희들을 내게 대한 믿음으로 데려오기 위하여 같은 일을 되풀이한다.
마리아야, 네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아니 오히려 네게 복음서를 보여줌으로써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아느냐? 이것은 사람들을 내게로 데려오기 위한 더 강력한 시도이다. 너는 열렬한 기도로 사람들을 내게로 데려오기를 갈망하였다. 나는 이제 말로만 만족하지 않는다. 말은 사람들을 피로하게 하고 멀어지게 한다. 그것은 죄이다. 그러나 그런걸 어떻게 하겠느냐? 그래서 나는 환시, 내 복음서의 환시의 힘을 빌고, 그 환시를 더 명백하고 더 매력있게 하기 위하여 설명한다.
네게는 환상의 위안을 주고, 모든 사람들에게는 나를 갈망하고 알 방법을 준다. 그리고 만일 이번에도 이 환시가 소용이 없고, 그들이 매정한 어린이들과 같이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물리친다면, 네게는 은혜가 남아 있을 것이고, 그들에게는 내 분개가 갈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옛날 꾸지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피리를 불었는데, 너희는 춤을 추지 않았고, 우리가 통곡을 하였는데, 너희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상관없다. 그들 “회개의 가망이 없는 사람들”은 그들 머리 위에 뜨거운 숯불을 자꾸 모아놓게 내버려두고, 목자를 알려고 애쓰는 양들 쪽으로 몸을 돌리리라. 목자는 나이고, 너는 양들을 내게로 데려오는 목자의 지팡이이다.”
신부님이 보시는 바와 같이 제가 서둘러서 이 지엽적인 점들을 말하였는데, 저는 그것들이 하찮은 것이기 때문에 깜빡 놓쳤었지만, 신부님은 그것을 알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적어놓은 것을 읽다가 신부님의 규칙으로 쓰일 수 있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주의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신부님은 제 독특한 문체로 한 묘사들을 알릴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사람들에게 알려지는데 대해 진짜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저는 그것이 매우 기뻤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스승께서 이 공책의 최근 받아쓰기에 불러주신 것과 반대된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네가 더 주의를 기울이고 더 정확하면 (제가 보는 것에 대한 묘사가 말이지요) 그럴수록 내게로 오는 사람들의 수효가 많을 것이다.” 이것은 묘사들이 알려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것들 덕택으로 많은 영혼이 예수께로 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 점을 신부님께 맡겨드리니,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대로 하십시오. 인간적으로는 저도 신부님과 같은 의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인간적인 것의 영역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메가폰의 인간적인 것까지도 사라져야 합니다. 오늘 불러주신 것에서도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네게 복음서를 보여주는 것으로 나는 사람들을 내게로 끌어오기 위한 더 강력한 시도를 한다. 나는 이제 말로만 만족하지 않는다…. 나는 환시의 힘을 빌고, 환시를 더 명백하고 더 매력있는 것이 되게 하려고 그것을 설명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보잘것없는 사람이고 또 저 자신으로서는 즉시 내성적인 사람이 되기 때문에, 신부님의 의견을 듣고 불안에 빠졌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반대로 샘내는 자(마귀)는 기뻐합니다. 어느 정도까지 불안에 빠졌느냐 하면 이제는 제가 보는 것은 쓰지 않고 불러주시는 것만 쓰겠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였습니다. 마귀는 제 마음에 이렇게 속삭입니다. “모르겠니? 터무니 없는 네 환상들은 아무 짝에도 소용이 안된단 말이다! 너를 미친년으로 취급받게 하는 데나 소용될 뿐이다. 사실 네가 미친년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네가 보는 것이 무엇이냐 말이다. 이상해진 네 뇌의 악령들이다. 하늘을 볼 자격을 얻으려면 분명히 다른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하루 종일 제게 그 지독한 유혹의 분출을 당하게 합니다. 정말이지 제 크나큰 육체의 고통도 이것만큼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마귀는 저를 절망으로 끌어가려고 합니다. 오늘 제 금요일은? 정신적인 유혹의 금요일입니다. 저는 광야에 계신 예수님, 게쎄마니에 계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저 간사한 마귀를 즐겁게 해주지 않으려고 제가 졌다고 인정하지 않고 마귀와 또 제 안에 있는 덜 영적인 것과 싸우면서 오늘 제 기쁨을 신부님께 편지로 알려드립니다. 동시에 저로서는 제 가장 큰 기쁨인 이 환시의 은혜를 예수께서 거두어가시면 매우 기쁘리라는 것을 확실히 말씀드립니다.
예수께서 제게 사랑과 자비를 계속 베풀어주시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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