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복음 준비
69. 예수의 행방불명으로 인한 마리아의 고통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작은 요한(마리아 발또르따)아, 참아라. 이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그런데 네 지도신부를 기쁘게 하고 작품을 완성하기 위하여 이 다른 이야기를 다루자. 이 일은 재의 수요일인 내일로 미루기를 원한다. 나는 네가 이 힘든 일을 끝내기를 원한다. 너를 나와 같이 고통을 당하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뒤로, 대단히 뒤로 물러가자. 내가 열두살 때에 토론을 하고 있는 성전으로 돌아가자.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과 예루살렘에서 성전으로 가는 길에까지로 돌아가자.
너는 남자들의 집단과 여자들의 집단이 모였을 때의 마리아의 고통을 알겠지. 마리아는 내가 요셉과 같이 있지 않은 것을 본다. 마리아는 그러나 남편에 대하여 화를 내서 냉혹하게 비난을 하지 않는다. 모든 여자가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그 여자들은 그보다 훨씬 못한 일을 가지고도 남자가 항상 가정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잊고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의 얼굴에 나타나는 고통이 그 어떤 비난보다도 더 요셉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마리아는 일장의 극적인 장면을 벌이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못한 일을 가지고도 다른 여자들은 사람들의 주목과 동정을 끌려고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몸을 떨고 얼굴이 창백해지고 눈이 엄청나게 떨리는 것으로 마리아가 고통을 억제하고 있다는 것이 하도 분명해서 울고 불고 하는 것보다도 더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마리아는 이제 피로도 허기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하루의 행정이 길었고, 벌써 오래 전부터 아무 음식도 들지 않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버려둔다. 사람들이 준비하던 잠자리도 나누어 주려는 음식도 모두 다 버려둔다. 온 길을 되돌아간다. 저녁때라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상관없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한다. 마리아는 대상들과 순례자들을 붙잡고 물어본다. 요셉은 마리아를 따라가며 도와준다. 하루를 반대방향으로 걷고 나서 성도를 돌아다니며 안타깝게 찾는다.
그의 예수가 어디에, 대관절 어디에 있을까?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마리아가 나를 어디에 가서 찾아야 할지 모르도록 허락하신다. 어린이를 성전에서 찾는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어린아이가 대관절 성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느냐 말이다. 고작 시내에서 길을 잃어 성전에까지, 그 안에까지 그 작은 발걸음으로 돌아왔다면, 그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엄마를 불러 어른들과 사제들의 주의를 끌었을 것이고, 이들은 대문들에 게시판을 달아 부모를 찾을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게시판도 없었고, 시내에서 아무도 그 어린아이에 대하여 아는 것이 도무지 없었다. 예쁘다고? 금발이라고? 튼튼하게 생겼다고? 그러나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어린이는 얼마든지 있다! ‘내가 그 애를 보았습니다. 여기 있었습니다. 저기 있었습니다’ 하고 누가 단언할 수 있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의 미래의 3일간의 고민의 상징인 사흘 후에 마리아는 기진맥진하여 성전으로 들어가서 마당들과 현관들을 돌아다닌다. 아무것도 없다. 어린아이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엾은 엄마는 달려가고 또 달려간다. 그리고 매애 하고 우는 어린 양들의 목소리까지도 그가 찾는 아들의 목소리같이 들린다. 그러나 예수는 울지 않고, 가르치고 있다. 마리아는 한떼의 사람 저쪽에서 들려오는 정다운 목소리를 듣는다.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이 돌들이 떨릴 것입니다...’하고. 마리아는 군중 사이로 길을 내려고 애를 써서 마침내 그렇게 하는 데 성공한다. 박사들 가운데 똑바로 서서 팔을 벌리고 있는 아들이 저기 있다.
마리아는 신중한 동정녀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고통으로 인하여 그의 조심성을 떨쳐버렸다. 그것은 어떤 장애물도 무너뜨리는 터진 둑과 같다. 마리아는 아들 쪽으로 달려가 의자에서 들어올려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껴안는다. 그러면서 외친다. ‘아이고! 왜 우리에게 이런 짓을 했느냐? 사흘 전부터 우리는 너를 찾아 헤매고 있다. 얘야, 엄마는 걱정으로 죽을 뻔했다. 아버지는 기진맥진하셨다. 예수야, 왜 이랬느냐?’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왜’라고 묻지 말아야 한다. ‘왜’ 그런 행동방식을 취했는지를 말이다.
부름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왜’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의 목소리를 따르느냐고 묻지 말 것이다. 나는 지혜였으므로 알고 있었다. 나는 어떤 사명에 ‘부름을 받았었고’ 그 사명을 다하고 있었다. 세상의 아버지 어머니 위에 하느님, 아버지 하느님이 계시다. 그분의 이익이 우리 이익을 앞지르고, 그분의 애정이 다른 모든 애정보다 앞선다. 나는 내 어머니에게 그 말을 하였다. 나는 박사들의 모후인 마리아를 가르침으로 박사들에 대한 가르침을 끝마쳤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 가르침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 겸손하게 순종하는 내 손을 잡을 때에 한 줄기 햇빛이 그의 마음에 돌아왔다, 그러나 내 말은 그의 가슴에 남아 있었다. 내가 아직 세상에 있을 21년 동안 해가 쨍쨍 내리쬐는 많은 날과 구름 낀 많은 날이 하늘 아래서 흘러갈 것이다. 이 뒤에 올 나머지 21년 동안에 그의 마음에는 많은 기쁨과 많은 근심과 눈물이 번갈아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가 다시는 ‘얘야, 왜 우리에게 그렇게 했느냐?’하고 묻지 않을 것이다. 너희 거만한 인간들아, 이 교훈을 배워라.
나는 네가 보는 환상인 내게 대해서 가르쳐주고 설명해 주기를 원하였다. 그것은 네가 그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는 상태에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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