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복음 준비
63. “나는 성장(成長)의 법칙이 면제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기를 원치 않았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이 세상이 가졌던 성인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두 성인의 애정에 감싸여 있었기 때문에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행복하였던 내 어린 시절을 보여줌으로써 너를 위로하였다.
요셉이 내 양부였다는 말들을 한다. 물론 그는 남자였으므로 자기 젖으로 나를 기른 마리아처럼 내게 젖을 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내게 빵과 튼튼하게 하는 음식을 마련해 주기 위하여 일하느라고 몸이 고달팠었다. 요셉은 내게 대하여 친어머니와 같은 애정을 가졌었다. 나는 그에게서 어린 아이를 어른이 되게 하는, 그것도 밥벌이를 해야 하는 어른이 되게 하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그보다 더 훌륭한 선생을 모셨던 제자는 일찍이 없었다.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내 지능은 완전하였지마는, 나는 성장의 법칙이 면제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기를 원치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고 또 그렇게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으로서의 나의 완전한 지능을 인간적인 이해력의 수준에까지 낮추어서, 사람을 스승으로 가지고, 스승의 필요를 느끼도록 나 자신을 억제하였다. 그 후 내가 빨리 배웠다 하더라도, 이것으로 인하여 내가 스스로 한 사람에게 매여 있었다는 공로가 내게서 없어지지도 않고, 또 그 의인에게서도 내 어린 지능을 생활에 필요한 지식으로 길러 준 공로가 없어지지 않는다.
장난하는 것처럼 하면서 나로 하여금 일을 할 수 있게 되도록 이끌어 가던 요셉 곁에서 지낸 즐거운 시간들을, 나는 천국에 있는 지금 잊지 못하겠다. 추정상의 내 아버지와 작은 정원과 연기로 검게 된 작업장을 머리에 다시 떠올릴 때면, 집을 희한한 것이 되게 하고 나를 몹시 기쁘게 하던 그 미소를 머금은 엄마가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 같다.
다른 누구도 서로 그렇게 사랑하지 못했을 만큼 서로 사랑한 부부의 이 완전에서 가정들은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워야 하겠느냐 !
요셉은 가장이었다. 가정에서 그의 권위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 권위 앞에서는 하느님의 정배이며 어머니인 분의 권위도 공손히 굴복하였고, 하느님의 아들도 그 권위에 복종하였다. 이론도 없고 이의도 없고 반대도 없이 요셉이 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모두가 잘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의 말은 우리가 따르는 우리의 작은 법률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얼마나 겸손하였느냐! 권력의 남용이 절대로 없었고, 그가 권위를 가졌다는 사실에서 오는 이치에 맞지 않는 기분은 절대로 없었다. 아내는 그의 친절한 고문이었고, 크나큰 겸손으로 아내가 자기를 그의 배우자의 종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요셉은 은총이 가득한 그 여자의 지혜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그를 인도하는 빛을 얻어내곤 하였다.
그리고 나는 나를 보호하고 사랑하기 위하여 내 위에서 서로 얽히는 두 사람 사이에서 기운찬 두 그루 나무의 보호를 받는 꽃과 같이 자라고 있었다.
내가 어려서 세상을 모르는 동안은 천국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마리아가 하느님 아버지와 성령이 충만하였기 때문에 그분들이 그곳을 떠나 계시지 않았었고, 그 집에서 그들을 멀리 떠나게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천사들도 그곳에 줄곧 머물러 있었다. 나는 천사들 중의 하나가 육체를 취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육체의 짐에서 해방되어 오직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의 이익만을 돌보는 일과 치품천사(熾品-세라핌-Seraphim)들이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그분을 사랑하는 데에만 전념하는 천사와 같은 영혼을 가진 요셉이었다. 요셉의 눈길! 땅의 정욕을 모르는 별의 빛과 같이 조용하고 깨끗한 눈길. 그것은 우리의 안식이요 우리의 힘이었다.
우리 집을 지키던 이 성인의 눈길이 사라졌을 때 내가 인간적으로 괴로워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하느님이었고, 또 하느님인 만큼 요셉의 복된 운명을 알고 있었고, 또 이 이유로. 림보(Limbes)에서 잠깐 머물게 한 다음 하늘나라의 문을 그에게 열게 되었던 그의 떠남을 슬퍼하지 않았지만, 사람으로서의 나는 그의 다정스러운 존재가 없어진 집에서 울었다. 나는 사라진 친구를 슬퍼하며 울었다. 내게 그다지도 가깝던 이 성인의 떠남을 내가 슬퍼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느냐? 아주 어렸을 적에 그 가슴에서 잠을 잤던 이 성인, 그렇게도 여러 해 동안 나를 사랑으로 감싸 주었던 이 성인의 떠남을 말이다.
끝으로 나는 세상의 부모들에게 어떻게 요셉이 교육학적 소용과 도움 없이 나를 착실한 일꾼을 만들 수 있었는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내가 연장을 다룰 수 있는 나이가 되자마자, 요셉은 나를 무위 속에 오래 머물러 있게 내버려두지 않고 일을 시작하게 하였고, 마리아에게 대한 내 사랑을 그의 첫째 보조자를 만들어 나를 일하도록 격려하였다. ‘엄마를 위하여 유익한 물건들을 만들어라’, 요셉은 이렇게 하여 아들이면 누구든지 엄마에게 대하여 가져야 할 존경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는 미래의 목수를 양성하는 데 존경과 사랑이라는 이 지렛대에 의지하는 것이었다.
오늘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을 어린 자녀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그들에게 노동을 사랑하게 하는 가정이 어디 있느냐? 지금은 자녀들이 집안에서 폭군이다.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에 대하여 냉혹하고 무관심하고 무례하게 자란다. 그들은 부모를 그들의 하인으로, 그들의 종으로 본다. 자녀들은 부모를 사랑하지 않고, 그들에게서도 별로 사랑을 받지 못한다. 그것은 너희들이 너희 아들들을 성질내는 난폭한 자들을 만들어서, 부끄럽게도 그들과 갈라져서 서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 아들들은 모든 사람의 아들들이다. 20세기의 부모들아, 그러나 그들은 너희들의 것이 아니다. 그들은 훨씬 더 유모나 가정교사의 아들들이며, 너희가 부자인 경우에는 그들이 중학교에 속해 있다. 너희들이 가난한 사람이면, 그들은 동무들에게, 거리에, 학교에 속해 있다. 그들이 이제는 너희들 것이 아니다. 너희들 어머니는 그들을 낳아 준다. 그 뿐이다. 너희들 아버지는 그들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아들은 다만 육체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다. 지능과 마음과 정신을 가진 인간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이 지능과 이 마음과 이 정신을 도와야할 권리와 의무를 아버지와 어머니보다 더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믿어라.
가정은 존재하고, 또 존재해야 한다. 파멸을 초래하지 않고 이 진리에 대립하는 이론이나 진보는 없다. 해체되는 가정에서는 장차 점점 더 타락하고 더 큰 파멸을 가져오는 남녀 밖에 올 수가 없다. 그래서 너희에게 단단히 이르는 말이지만, 원숭이족들이 화합해 있는 것보다 화합을 이루지 못하는 가정들과, 덕행과 근로와 사랑과 종교의 학교가 아니라 제대로 맞추어지지 않아서 결국은 부서지고야 마는 톱니바퀴 장치 모양으로 각자가 자기를 위하여 사는 무질서한 가정들이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세상에 결혼이 없어지고 아이들이 없게 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부수고 해체하여라. 사회 중에서 가장 거룩한 사회의 이 해체의 결과를 너희는 보고 또 겪는다.
자, 너희들이 그러고 싶으면 계속하여라. 그러나 이 세상이 점점 더 지옥이 되고 가정과 민족을 잡아먹는 괴물들의 소굴이 된다 해도 한탄하지 말아라. 너희들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니, 그렇게 되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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