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시

I. 복음 준비 61. “이 집에서는 질서가 존중된다”

Skyblue fiat 2016. 1. 10. 23:22

 

I. 복음 준비

 

61. “이 집에서는 질서가 존중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너와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한 교훈이 네가 보는 것들을 통하여 주어진다.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에, 특히 특별히 비통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 가정들에게 추천하는 겸손 체념완전한 화합의 교훈이다.


너는 초라한 집을 보았다. 그런데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외국에 있는 초라한 집이라는 것이다.


   아주 조그만 고생도 하지 않고 물질적으로 편한 생활, 순탄하고 행복한 생활을 갈망하는 ‘그저 쓸 만한’신자들이 많다. 그것은 그들이 기도와 영성체를 영혼들의 절실한 필요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지 않고, 오직 ‘자기들의’ 필요를 위하여만 하기 때문이다 (사실, 기도할 때에 이기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요셉과 마리아는 참 하느님인 나를 그들의 아들로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가난하다는 것을 느끼는 조그마한 만족조차 누리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고향(나자렛)에서, 또 그들의 조국(이스라엘)에서는 그들이 알려져 있고, 적어도 ‘그들의’ 작은 집 한 채는 있었기 때문에, 다른 모든 문제에 주택 문제까지 겹쳐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조국에서는 몹시 가난해도 자그마한 만족을 누릴 수 있었다. 그들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일거리를 얻고 생활문제에 대비하기가 더 쉬웠을 것이다. 그들은 나 때문에 위험을 당하고 겨우 살아남은 두 사람으로서, 풍토도 다르고, 갈릴래아의 기분 좋은 들판과 비교하면 몹시 쓸쓸한 나라에서, 그들을 알지 못하고 말과 풍속도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피난민들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흔히들 가지는 경계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작은 집에 있는 저 편안하고 애지중지하는 가구들과 저 보잘 것 없으면서도 필요한 많은 물건을 가지지 못했다. 그것들이 거기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었는데, 여기서는 이렇게 아무것도 없고 보니, 마치 부자집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사치품과 같이 매우 아름다운 것 같이 생각된다. 그들은 고향과 집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그들의 생각은 그곳에 남겨두고 온 저 보잘것없는 물건들, 이제는 아마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을 채소밭으로, 포도나무로, 무화과나무와 다른 유익한 초목들에게로 달려간다. 그들은 매일 먹을 양식과 옷과 불, 그리고 자기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줄 수 없는 어린 나를 위하여 마련해야 할 필요에 처해 있다. 게다가 마음속 고통이 많이 있다. 향수도 그렇고 내일에 대한 걱정도 그렇고, 사람들의 불신임도 그렇다. 사람들은 특히 처음 얼마 동안은 까다로워서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이 일을 시켜달라는 것을 쉽게 들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도 보았지만, 이 집에는 평온과 미소와 화합이 감돌고, 일치단결하여 이 집을 더 아름답게 하려 애쓰고, 보잘것없는 채소밭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떠나온 집과 같게 하고, 한층 더 편안하게 하려고 힘쓴다. 한 가지 생각밖에는 없다. 적의를 품은 땅이 거룩한 나에게, 하느님에게서 온 나에게 덜 비참한 땅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것은 수많은 보살핌으로 나타나는 믿는 사람과 부모로서의 사랑이다. 가외로 많은 시간 일을 해야 하는 염소와 나무 조각 남은 것을 가지고 파서 만든 작은 장난감들을 보아라. 그리고 자기들은 한 입거리 음식까지 희생해 가면서 나만을 위하여 사오는 과일들을 보아라.


   이 세상의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는 하느님께 얼마나 사랑을 받으셨습니까!

하늘 높은 곳에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이 세상의 구세주가 된 하느님 아들의 사랑을 말입니다.


   이 집에는 신경질적이고 격하기 쉬운 사람도 없고, 무뚝뚝한 표정도 없으며, 서로 비난하는 것도 없고, 그들에게 물질적인 안락을 크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는 하느님께 대하여는 더구나 비난을 하지 않는다. 요셉은 마리아 때문에 자기가 손해를 보았다고 비난하지 않고, 마리아는 요셉에게 더 안락하게 해 주지 않는다고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거룩하게 서로 사랑한다. 그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관심사는 그 둘의 개인적인 이익이 아니고 배우자의 이익이다. 참다운 사랑은 이기주의를 모른다. 그리고 참다운 사랑은 이 방면에 있어서 동정인 두 부부의 사랑만큼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항상 순결하다. 사랑과 결합한 순결은 그 뒤에 다른 덕행들을 줄줄 따라오게 하며 순결하게 사랑하는 두 사람을 위하여 부부로서의 완전을 이룩한다.


   내 어머니와 요셉의 사랑은 완전하였다. 이 사랑은 일체의 다른 덕행으로 이끌어 갔고, 특히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이끌어 갔다. 하느님의 거룩한 뜻이 육체와 마음에 괴로워도 이들은 항상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이 두 성인에게서는 정신이 더 생생하게 살아 있어 모든 것을 지배하였다. 이 정신으로 그들은 주께서 그들을 당신의 영원한 아들의 보호자로 택하신 것을 감사하며 주를 찬미하게 되었었다.


   이 집에서는 기도를 하였다. 지금은 가정들에서 너무도 기도를 적게 한다. 새벽과 황혼에도 그렇고, 식탁을 대하고 앉을 때에도 주를 생각하지 않는다. 또 새로운 날을 보게 허락하시고, 다시 밤을 맞이하게 허락하셨으며, 너희들의 피로에 강복하셔서 너희들에게 그 음식, 그 불, 그 옷, 그 집, 그리고 너희들의 인간 처지에서 역시 필요한 저 모든 물건들을 마련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신 주께 대한 생각은 안한다는 말이다. 인자하신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항상 ‘좋다’. 비록 그 재물이 초라하고 풍족하지 않더라도, 사랑은 그것들에 맛과 가치를 준다. 영원하신 조물주를 너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로 보게 하는 사랑이 말이다.


   이 집에서는 소찬에 만족하였다. 돈이 없지 않았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살기 위하여 먹었지, 폭음폭식가와 같이 게걸스럽게 그리고 미식가들과 같이 변덕스럽게 식도락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먹지는 않았다. 폭음폭식가들과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들은 배불리 먹지 못하는 사람이나 음식을 절약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이 절제하면 많은 사람에게 굶주림의 고통을 면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몸이 둔해지도록 음식을 먹으며 비싼 물건으로 그들의 재산을 낭비한다.


   이 집에서는 노동을 사랑한다. 돈이 풍부하다 하더라도 노동을 사랑할 것이다. 일을 함으로써 사람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움직이지 않는 덩어리 같은 게으름뱅이들을 끈질긴 담쟁이같이 꽉 죄어 숨막히게 하는 악습을 면하기 때문이다. 일을 잘 하고 난 뒤에는 음식이 맛있고 휴식이 기분 좋고 마음을 만족스럽게 하며, 이 일과 다음 일 사이에 일순간의 휴식의 값을 알게 된다. 노동을 사랑하는 사람의 집과 정신에는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 악습이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악습이 거기서 자라지 않기 때문에 상호간의 애정과 존중과 존경이 발전한다. 순결한 분위기 속에서는 성덕의 꽃이 필 미래의 가정을 이룩할 다정스러운 자식들이 무럭무럭 자란다.


   이 집에서는 겸손이 지배한다. 오만한 너희들에게는 얼마나 큰 겸손에 대한 교훈이냐! 마리아는 인간적으로 말하면 교만해지고 그의 배우자의 숭배를 요구할 만한 수없이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여자들 중에는 남편보다 더 넓은 교양을 가졌다든지, 더 고귀한 집안 출신이라든지, 재산이 더 많다든지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고 정배이다. 그러나 배우자를 섬기고, 배우자더러 자기를 섬기게 하지 않으며, 그에 대하여 온갖 애정을 기울인다. 요셉은 하느님께서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신 집안 어른이며. 가장이 되어 강생하신 말씀과 영원하신 성령의 정배를 보호하라는 책임을 하느님에게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인정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마리아에게 피로와 일을 덜어 주려고 온갖 주의를 기울여 보살핀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대로 마리아에게 피로를 면해 주기 위하여 집안의 가장 궂은일들은 도맡아 하며, 할 수 있는데까지 마리아를 기쁘게 해 주고, 집을 더 편리하게 하고 작은 정원을 꽃으로 더 명랑하게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애를 쓴다.


   이 집에서는 초자연적, 도덕적, 물질적 질서를 존중한다.

하느님은 가장 높으신 어른이시므로 그분께 공경과 사랑을 드린다. 이것이 초자연적인 질서이다.

요셉은 가장이므로, 그에게 애정과 존경과 복종을 드린다. 이것은 도덕적 질서이다.

집은 옷과 가구와 더불어 하느님의 선물이다. 무슨 일에든지 하느님의 섭리가 나타난다. 양들에게 털을 주시고, 새들에게는 깃을, 풀밭에는 푸르름을, 가축들에게는 여물을, 가금들에게는 낟알과 잎을 주시며 골짜기의 백합들에게는 옷을 주시는 하느님의 섭리가 나타나는 것이다. 집과 옷과 가구들을 그것들을 주시는 하느님의 손을 찬미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고, 주의 선물로서 경건하게 다루며, 그것들이 초라하다고 해서 마지못해 바라보지도 않고, 섭리를 남용하여 그것들을 망가뜨리지도 않는다. 이것은 물질적인 질서이다.


   너는 나자렛 사투리로 주고받은 대화를 알아듣지 못하였고, 기도의 말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실을 보는 것이 큰 교훈이 되었다. 많은 일에 하느님을 모욕하고, 그 중에도 내 어머니와 아버지였던 거룩한 부부가 절대로 소홀히 하지 않았던 일에서 하느님을 모욕한 탓으로 많은 고통을 당해야 하는 너희들은 이 교훈을 묵상하여라. 
  그리고 너는 어린 예수를 기억하면서 기뻐하여라. 그의 작은 어린아이 걸음을 생각하면서 미소하여라.

얼마 안 있어 그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볼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눈물의 환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