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영문판번역)/7권 공생활 셋째 해(하)

하사시7권 [537. 예수와 제베대오의 요한 538. 예수와 요한과 마나엔, 3년차의 끝(1)]

Skyblue fiat 2026. 4. 22. 08:04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7권 공생활 셋째 해(하) p522~531

 


537. 예수와 제베대오의 요한

1946. 12. 14.

맑지만 혹독한 겨울 아침이다. 서리가 흰 가루와 같은 그 결정체들로 땅과 풀들을 하얗게 덮었고, 땅바닥에 놓여 있는 마른 잔가지들을 진주 가루를 뿌린 값진 보석처럼 만들어놓았다.

요한이 동굴에서 나온다. 짙은 개암열매 빛 옷을 입고 있는 그의 얼굴은 매우 창백하다. 그는 아주 춥거나 몸이 불편한 모양이다. 나는 잘 모르겠다. 그는 정말로 시체처럼 창백하고,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처럼 걷는다. 그는 개울 쪽으로 가서 두 손을 물에 담글까 말까 망설인다.

그러다가 그는 결심하고 두 손을 오목하게 모아 맑지만 매우 차가울 것이 틀림없는 물을 한 모금 마신다. 그는 두 손을 흔들어 물을 털어내고 옷자락으로 손을 마저 말린다. 그 다음에 그는 망설인다… 그는 예수께서 계시는 폐허와 자기 자신의 동굴을 바라보고 나서 자기 피신처를 향하여 천천히 돌아온다.

그러나 그가 동굴 입구에 이르렀을 때 그는 일종의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린다. 그가 반쯤 무너진 벽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는 넘어질 것이다. 그는 팔을 구부린 다음에 거기에 머리를 대고 벽에 기대 한 동안 거기 그대로 서 있다가 머리를 들어 주위를 둘러본다…

그는 자기의 동굴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는 벽을 스치며 초벽도 발라지지 않은 돌출되어 있는 울퉁불퉁한 돌들을 붙잡고 예수께서 계시는 외양간으로부터 떨어져 몇 걸음을 걸어간다. 그가 거의 그 입구에 이르렀을 때 무릎을 꿇고 신음한다.

“예수님, 나의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즉시 예수께서 나타나신다.

“요한이냐?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너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

“오! 나의 주님! 저는 배가 고픕니다! 저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저는 배고프고 춥습니다…”

그는 매우 창백한 얼굴로 이를 딱딱 마주친다.

“오너라! 안으로 들어오너라!”

예수께서 그를 도와 일어서게 하시며 말씀하신다.

요한은 예수의 팔로 부축을 받으며 머리를 예수의 어깨에 기대고 울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주님, 제가 당신께 불순종했어도 저를 벌하지 마십시오…”

예수께서는 미소 지으시며 대답하신다.

“너는 이미 벌을 받았다. 너는 임종하는 사람과도 같다… 여기 이 돌 위에 앉아라. 나는 지금 불을 피우겠다. 그리고 너에게 먹을 것을 주마…”

예수께서는 부싯깃으로 마른 가지들에 불을 붙여 문 옆에 있는 투박한 화덕에 불을 활활 일으키신다.

불타는 나뭇가지들의 냄새와 유쾌한 밝은 불꽃이 볼품없는 동굴 안에 퍼진다. 예수께서는 불 가까이에서 잔가지에 두 조각의 빵을 꿰어 불꽃에 내미신다. 그분께서는 빵조각들이 따뜻해진 것을 느끼시고는 목자들이 놓고 간 치즈를 빵 위에 펴신다. 치즈가 부드러워지고 빵 위에서 녹을 때 예수께서는 그 조각들을 마치 접시처럼 불꽃 위에 받쳐 드신다.

“지금 먹어라. 그리고 울지 마라.”

그분께서는 줄곧 미소 지으시며 말씀하시고, 빵을 요한에게 건네주신다. 요한은 기진맥진한 어린 아이처럼 조용히 운다. 그는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음식을 탐욕스럽게 먹으면서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구유로 가셨다가 몇 개의 사과들을 가지고 돌아오신 다음 장작 받침쇠로 쓰이는 두 개의 돌들 사이에서 타고 있는 나무의 열로 뜨거워진 재속에 그것들을 묻으신다.

“지금 너는 기분이 나아지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그분의 사도 가까이에 앉으시며 말씀하신다. 그는 여전히 울면서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인다.

예수께서는 한 팔로 그의 양어깨를 감싸 그분 자신께로 끌어당기신다. 그러자 그는 너무 지쳐 있고, 아마도 꾸중 듣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이렇게 따뜻하게 대접받게 된 감격으로 인하여 우는 일 말고 다른 일은 할 수 없어 더 심하게 운다.

예수께서는 사도가 먹는 동안에 말없이 그를 꼭 껴안고 계신다. 그러다가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지금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사과들은 나중에 먹어라. 나는 너에게 약간의 포도주를 주고 싶지만, 포도주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그저께 아침에 땔나무들과 음식을 외양간 밖에서 발견했다. 그러나 포도주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포도주를 줄 수 없다.

시간이 이렇게 이르지 않다면, 나는 내가 개울 건너편에서 양떼에게 풀을 뜯기고 있는 것을 보았던 목자들에게서 약간의 양젖을 얻어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서리가 녹기 전까지는 양떼들을 데리고 나오지 않는다.”

“주님, 저는 이미 나아졌습니다… 저 때문에 걱정하지 마십시오.”

“너는 마치 햇볕에 서리가 녹아내리는 나무처럼 보이는데, 무엇을 그리 염려하느냐?”

예수께서는 훨씬 더 환하게 미소 지으시고 요한의 이마에 입 맞추시며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저는 가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그리고… 예! 저를 놔주십시오! 저는 무릎 꿇고 당신께 말씀드리고 너를 용서해달라고 당신께 청해야 합니다…”

“가엾은 요한아! 네 능력을 초월하는 노력으로 인하여 네 지성마저 약해졌구나. 너는 내가 너를 심판하고 네 죄를 사해주기 위하여 네 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

“예, 예.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저도 압니다. 그러나 저는 제 죄를, 아니 제 죄들을 당신께 말씀드릴 때까지는 평화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저를 놓아주십시오. 제가 제 죄들을 고발하게 해주십시오.”

“좋다, 만일 그것이 너에게 평화를 준다면, 말해라.”

요한은 무릎 꿇고 눈물 젖은 얼굴을 들고 말한다.

“저는 불순종과 주제넘음과… 제가 그것을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올바른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인성(humanity)으로 죄지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것이 저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고, 제가 얼마나 무익한 종이고, 그보다 한술 더 떠서 이기적이고 타락한 종인 제가 깨닫게 해주는 저의 최근의 가장 중한 죄입니다.”

그는 실로 눈물로 얼굴을 흠뻑 적시고 있다. 그 동안 그분의 미소는 점점 더 환해진다. 예수께서는 눈물 흘리고 있는 그분의 사도 위로 몸을 약간 숙이고 계시는데, 그분의 멋진 미소는 요한의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애무이다. 그러나 요한은 너무 상심한 나머지 그 미소로도 위로받지 못한 채 말을 잇는다.

“저는 당신께 불순종했습니다. 당신께서는 헤어지지 말라고 저희에게 말씀하셨는데, 저는 제 동료들과 즉시 헤어져서 그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저는 제가 죄짓고 있다고 지적하는 가리옷의 유다에게 반박했습니다. ‘어제 자네는 그렇게 했어. 오늘 나도 이렇게 하네. 자네는 자네의 어머니의 소식을 들으려고 그렇게 했는데, 나는 선생님과 함께 있고, 그분을 지키고 보호하려고 이렇게 하네…’

그렇게 하려고 했으니, 저는 제 힘을 과신한 것입니다. 보잘것없는 바보인 제가 당신을 보호해드리다니! 그리고 저는 당신을 흉내 내기를 원했으니 저는 주제넘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분께서는 틀림없이 기도하고 단식하실 거야. 나도 그분이 하시는 것을 그분과 같은 의향으로 할 거야.’ 그런데 반대로…”

인간의 미약함과 영혼의 의지를 압도하는 물질에 대한 고백이 요한의 입술에서 나오는 동안 그의 울음은 흐느낌으로 변한다.

“그런데 반대로… 저는 잤습니다. 저는 바로 곯아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날이 환하게 밝았을 때 잠에서 깨어나 당신이 개울에 가셔서 세수하시고 이리로 돌아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당신을 방어할 준비를 갖추기도 전에 그들이 당신을 붙잡았을 수도 있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속죄하고 단식하기를 원했습니다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가지고 있었던 작은 빵을 다 먹어버릴까 두려워하면서도 첫날 그것을 조금씩 다 먹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신께서도 제가 다른 것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아시지요. 저는 다 먹었는데도 배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저는 훨씬 더 배고팠습니다.

그리고 간밤에는… 오! 그저께 밤에 저는 배고프고 추워서 거의 자지 못했고, 간밤에는 전혀 자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굶어 죽을까 무서워 이리로 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기도하고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깨어 있지 못한 반면, 굶주림의 고통으로 인해서는 깨어 있었다는 것이 가장 괴롭습니다… 저는 악하고 어리석은 종입니다. 예수님, 저를 처벌해주십시오!”

“가엾은 것! 나는 온 세상이 그런 죄들을 외쳐야 한다면 좋겠다! 그러나 들어라, 일어나서 내 말을 들어라. 그러면 네 마음이 평화로워질 것이다. 너는 요나의 시몬에게도 불순종했느냐?”

“아닙니다, 선생님. 저는 당신께서 마치 그가 저희의 맏형인 것처럼 저희가 그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저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에게 ‘나는 그분께서 혼자 떠나시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이 편치 않네’ 하고 말했더니 그가 대답했습니다. ‘자네의 말이 맞네. 그러나 나는 자네들 모두를 인도해야 한다는 분부를 받았으니 갈 수 없네. 자네가 가게. 하느님께서 자네와 함께 계시기를 바라네.’

다른 사람들은 음성을 높였고, 유다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했습니다. 그들은 순종을 언급했고, 시몬 베드로를 비난했습니다.”

“그들이 그를 비난했느냐? 요한아, 솔직해라.”

“그것은 사실입니다, 선생님. 유다는 시몬을 비난했고, 저를 구박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단지 ‘그분께서는 함께 있으라고 우리에게 명하셨는데’라고만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저에게 그렇게 말했지 저희의 우두머리에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대답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행위의 목적을 아시네. 그래서 그분께서는 용서하실 걸세. 그리고 선생님께서도 그것을 용서하실 걸세. 그것이 사랑으로 행해지니까.’

그는 당신께서 쿠자와 함께 호수 건너편으로 가신 날과 같이 저를 축복하고, 저에게 입 맞추고, 당신을 뒤따르도록 저를 보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죄에 대하여 너를 사해줄 것이 없다…”

“그 죄가 너무 중하기 때문에요?”

“아니다. 죄가 없기 때문이다. 요한아, 이리로, 네 선생님 곁으로 와서 가르침을 들어라. 우리는 명령을 표현하는 말들만이 아니라 그 명령의 영을 이해하면서 정의와 분별력을 가지고 그 명령들을 실천할 줄을 알아야 한다. 나는 ‘헤어지지 마라’고 말했다. 그런데 너는 그들과 헤어졌다. 따라서 너는 죄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전에 말했다.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일치해 있으면서 베드로에게 순종해라.’ 나는 이 말들로 판단하고 너희에게 명령하는 전권을 가진 내 합법적인 대리자로 너희 중에서 베드로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없는 동안에 베드로가 해온 것이나, 할 것은 잘 하는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에게 너희를 인도할 권한을 주었으므로,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성령께서 그의 안에도 함께 계시고, 상황들이 요구하고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지혜(Wisdom)에 의하여 우두머리 사도(the chief Apostle)에게 권유할 명령을 그가 내리는 데 있어 그에게 조언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베드로가 너에게 ‘가지 마라’고 말했는데도 네가 지금과 똑같이 왔다면, 네 행동의 좋은 이유, 즉 위험한 순간에 나를 지키고 나와 함께 있으려는 사랑으로 인하여 나를 따라오려는 네 소원마저도 네 죄를 없애는 데는 충분치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정말로 내 용서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네 우두머리인 베드로는 너에게 가라고 말했다. 그에 대한 너의 순종이 너를 완전히 정당화해준다. 너는 확신하느냐?”

“예, 선생님.”

“내가 네 주제넘음의 죄를 용서해주어야 하겠느냐? 내가 네 마음을 읽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에게 말해라. 너는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내 자신의 의지로 내 육체의 필요들을 없앴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하여 나를 본받고 싶다고 교만하게 가정했느냐? 그것에 대하여 주의 깊게 생각해보아라…

요한은 곰곰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그가 말한다.

“아닙니다, 주님. 제가 저 자신을 주의 깊게 살펴보니 저는 그런 이유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보속이 육체에는 고통스럽지만 영혼에는 빛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이 저희의 약함을 강화해주고, 하느님에게서 많은 것을 얻어내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께서는 그것을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그것을 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만일 그토록 강하시고 그토록 거룩하신 당신께서 그렇게 하신다면, 저는, 우리 모두는 만일 항상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덜 약하고 덜 물질적이기 위하여 항상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저는 항상 배가 고프고 몹시 졸립니다…”

요한의 눈에서 눈물이 천천히 겸손하게 그의 얼굴로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인간능력의 한계에 대한 참다운 고백이다.

“그런데, 너는 육체의 이 작은 비참함이 무익했다고 생각하느냐? 오! 미래에 네가 네 제자들과 신자들을 엄하고 까다롭게 대하려는 유혹을 받을 때 너는 이것을 잘 기억할 것이다! 그것이 네 마음에 떠올라 너에게 말할 것이다. ‘너도 피로와 허기에 굴복했었다는 것을 기억해라. 다른 사람들이 너보다 더 강하기를 기대하지 마라. 그날 아침에 선생님께서 너에게 아버지였던 것처럼 너도 네 신자들에게 아버지가 되어라.’

너는 어렵지 않게 밤을 지새우고, 그 다음에는 시장기를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를 겸손하게 해주시려고, 점점 더 겸손하게 해주시고, 너와 같은 사람들을 동정하게 해주시려고 네가 그런 육체의 욕구를 겪도록 허락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유혹과 저질러진 죄의 차이를 구별할 줄을 모른다. 유혹은 공로를 주고 은총을 빼앗아가지 않는 시험이고, 죄는 죄인에게서 공로와 은총을 없애는 타락이다. 다른 사람들은 자연적인 사건들과 죄들 간의 차이를 분간하지 못해서 죄지었다고 가책을 가지는데, 사실은 네 경우에도 그러한데, 그들은 좋은 자연법칙들에 복종했을 뿐인 것이다. ‘좋은’이라고 말하면서 나는 자연법칙들을 억제되지 않은 본능들과 구별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지금 ‘자연법칙’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이 사실은 자연법칙이 아니고, 좋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최초의 부모들에게 주셨던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모든 법칙들은 좋았다. 음식, 휴식, 음료에 대한 욕구 말이다. 그러다가 동물적인 본능들, 방종, 모든 종류의 육욕이 죄를 통하여 자연법칙들을 대체했고, 그 과도함으로 좋았던 것을 더럽히며 자연법칙들과 섞였다. 그리고 사탄은 그의 유혹들로 불이 꺼지지 않게 하고, 악덕들을 자라게 했다.

지금 너는 휴식과 음식에 대한 욕구에 굴복하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도락, 술 취함, 장기적으로 놀고 지내는 것은 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려는 욕구도 죄가 아니다. 반대로 하느님께서는 사람들로 땅을 채우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관능만을 만족시키기 위한 성행위는 더 이상 좋지 않다. 너는 그것도 확신하게 되었느냐?”

“예, 선생님, 그러나 저에게 한 가지 말씀해주십시오. 자녀를 낳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은… 하느님께 죄짓는 것입니까? 당신께서는 언젠가 동정의 상태가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가장 완전한 것이다. 자기들의 재산을 선용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완전히 버리는 사람들의 상태가 가장 완전한 것처럼 말이다. 그것들은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완전들이다. 그것들은 큰 상을 받을 것이다.

세 가지가 가장 완전한 것들이다. 자발적 가난(voluntary poverty), 항구적 순결(perpetual chastity), 죄가 아닌 것에 있어서의 절대적 순종(absolute obedience in what is not sinful)이 그것들이다. 이 세 가지는 사람을 천사들과도 같게 만든다.

그리고 한 가지가 그 모든 것들보다 훨씬 더 완전하다.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자기의 형제들에 대한 사랑으로 자기의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나와 비슷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를 절대적인 사랑으로 들어올리기 때문이다. 완전히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비슷하고, 하느님 안에 잠기고, 하느님과 결합한다.

그러니 내 사랑하는 요한아, 안심해라. 네 안에는 죄가 없다. 내가 너에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너는 왜 훨씬 더 심하게 울고 있느냐?”

“왜냐하면 한 가지 잘못이 여전히 저에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필요할 때 당신께로 오지 않고, 시장기로 인하여 깨어 있을 줄 알았지, 사랑으로 인하여 깨어 있을 줄은 몰랐던 잘못 말입니다.

저는 결코 저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결코 다시 저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당신께서 고통당하고 계실 때 더 이상 자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당신이 울고 계실 때 잠에 빠짐으로써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요한아, 미래를 맹세하지 마라. 네 영혼은 하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육체에 압도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네가 했었던 약속을 육체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지킬 수 없었다는 것을 네가 기억한다면, 너는 깊이, 그러나 무익하게 상심할 것이다. 보아라. 네가 어떤 일을 당하든 마음의 평화를 가지기 위하여 네가 해야 할 말을 내가 말해주마. 나와 함께 말해라. ‘나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한 다시는 육체의 둔함에 굴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리고 그 결심을 굳게 지켜나가거라.

그런데 만일 어느 날 너의 의지에 반하여 지치고 괴로워하는 육체가 네 의지를 이기게 된다면, 그때 너는 네가 지금 말하는 것처럼 말해라. ‘나는 내가 나의 모든 형제들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이것이 내 교만을 꺾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오! 요한아! 나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은 죄 없는 네 잠이 아니다! 이것들을 받아라. 이것들이 너를 완전히 회복시켜줄 것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우리에게 준 사람을 축복하며 나누어먹자.”

그분께서는 잘 익은 아주 뜨거운 사과들을 꺼내 세 개는 요한에게 주시고, 세 개는 그분의 몫으로 가지신다.

“주님, 누가 이것들을 당신께 드렸습니까? 누가 당신을 찾아왔습니까? 당신께서 여기 계시는 것을 누가 알았습니까? 저는 목소리도 발소리도 듣지 못했는데요. 그렇지만 저는 첫날밤 후에는 끊임없이 살폈습니다…”

“나는 동틀 녘에 바깥에 나갔었다. 입구 근처에 땔나무들이 있고, 그 위에 빵과 치즈와 사과들이 있었다. 나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단지 몇 사람들만이 순례와 사랑의 행동을 되풀이하기를 원했을 수 있다…”

예수께서 천천히 말씀하신다.

“맞습니다! 목자들입니다! 그들은 말했었습니다. ‘다윗의 땅으로 가세… 요사이는 추억의 날들이야…’ 그렇지만 그들은 왜 머무르지 않았을까요?”

“왜냐고? 그들은 경배했다. 그리고…”

“그리고 동정했군요. 그들은 당신께 경배하고, 저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들은 저희보다 낫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자기들의 착한 뜻을 간직했고, 그 착한 뜻은 점점 더 착해졌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선물이 그들에게 해롭게 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더 이상 미소 짓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곰곰 생각하시고 침울해지신다. 그러다가 그분께서는 정신을 가다듬고 요한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신다.

“그럼 떠나볼까? 너는 더 이상 피곤하지 않느냐?”

“예, 선생님. 저는 사지가 무감각하여 상태가 썩 좋지는 않지만, 걸을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떠나자. 내가 남아 있는 것을 내 배낭에 넣는 동안에 너는 가서 네 배낭을 가져오너라. 그 다음에 떠나자. 우리는 예루살렘을 피하기 위하여 요르단 강으로 가는 길로 가자.”

요한이 돌아오자 두 사람은 그들이 온 길로 다시 가며, 12월의 온화한 햇볕에 따뜻해지는 들판 가운데로 멀어져간다.

 


538. 예수와 요한과 마나엔, 3년차의 끝(1)

1946. 12. 16.


두 사람은 대상들의 흔적과는 거리가 먼 사해 주위의 영향을 받는 땅에 와 있는데, 그들은 똑바로 동북쪽을 향하여 간다. 날카로운 돌들, 소금 결정들, 키 작은 가시덤불들로 길바닥이 울퉁불퉁하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걷기가 꽤나 좋고, 무엇보다도 조용하다. 왜냐하면 시선이 미치는 곳까지 사람 하나 없고, 날씨는 온화하고, 땅은 말라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 대화하고 있다. 지난 며칠 동안 그들은 몇 명의 목자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머물렀음이 틀림없다. 그들이 목자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병이 고쳐진 소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서로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며 평화롭게 걷고 있다. 그들이 침묵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들은 소중한 친구와 함께 있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의 다정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마음으로 서로 대화한다.

그들은 쉬거나 약간의 음식을 먹기 위하여 앉았다가 다시 길을 가곤 하는데, 항상 그들을 보기만 해도 내 마음에 평화를 주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그렇게 한다.

“길갈이 저기 있다.”

예수께서 앞에 동북쪽의 작은 언덕 위에서 햇빛을 받고 있는 일군의 흰 집들을 가리키며 말씀하신다.

“여기서는 강이 가깝다.”

“그럼 우리는 길갈에 들어가서 밤을 지낼 겁니까?”

“아니다, 요한아. 나는 모든 도시들을 의도적으로 피했는데, 이 도시도 피하겠다. 만일 우리가 한 목자를 만난다면, 우리는 그와 함께 머무를 것이다.

우리는 곧 큰길에 다다르게 될 터인데, 만일 우리가 밤을 지내려고 걸음을 멈추려고 하는 대상들을 본다면, 그들의 천막에 우리를 받아들여달라고 청하자. 사막의 유목민들은 항상 손님을 잘 대접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대상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만약에 아무도 우리에게 숙소를 제공해주지 않는다면, 노천에서 우리 겉옷들을 덮고 자자. 그러면 천사들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오! 어떤 경우라도 그 음울한 밤, 제가 베들레헴에서 지냈던 마지막 밤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너는 왜 즉시 나에게로 오지 않았느냐?”

“왜냐하면 저는 제가 죄인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인자하시기에 나를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위로해주실 것이다. 당신께서 실제로 그렇게 하신 것처럼요. 그렇게 된다면 내가 하기를 원하는 보속은 어찌될 것인가?’”

“요한아, 우리는 그 보속을 함께 했을 것이다. 나는 아침에 음식물과 땔나무를 발견했지만, 음식을 먹지 않고 불도 피우지 않은 채로 있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신과 함께 있을 때는 아무것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제가 당신과 함께 있을 때 저는 어떤 것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면 저는 행복합니다.”

“나는 안다. 그리고 나는 내 생각이 누구에게도 내 요한에게만큼 깊이 새겨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나는 네가 이해할 줄 알고, 필요할 때는 침묵을 지킬 줄 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너는 나를 이해한다. 너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요한아, 내 말을 들어라. 머지않아…”

“무엇 말씀입니까, 주님?”

요한은 즉시 그분의 말씀을 막고 그분의 팔을 붙잡고, 겁에 질린 의아해하는 눈과 몹시 창백해진 얼굴로 그분의 얼굴을 들여다보려고 예수를 멈추어 서시게 하면서 묻는다.

“머지않아 내가 복음을 전한 지 3주년이 된다. 나는 군중들에게 그들이 들어야 할 말은 다했다. 지금은 나를 사랑하고 나를 따르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은 이제 확실하게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은 사실들로 인하여 설득될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사실들을 보고도 귀머거리인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그들에게 몇 가지 할 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말하겠다. 왜냐하면 자비만이 아니라 정의도 섬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자비는 여러 번, 그리고 많은 것들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생은 영원히 입을 다물기 전에 재판관의 엄격함을 가지고도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에게 그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머지않아 내 양떼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내가 그들에게 해야 할 모든 말을 한 다음에 기도하고 준비하는 데 내 생각을 모으기 위하여 아주 자주 물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기도하지 않을 때 나는 너희 모두에게 나 자신을 바치겠다. 나는 내가 처음에 한 것을 마지막에도 하겠다.

여자제자들이 올 것이고, 내 어머니께서도 오실 것이다. 우리 모두는 파스카를 위하여 준비할 것이다. 요한아, 지금부터 나는 여자제자들에게 아주 많이 헌신해줄 것을 너에게 부탁한다. 특히 내 어머니께…”

“나의 주님, 당신의 어머니께서는 이미 풍부하게, 저희 모두에게 주실 수 있을 만큼 풍부하게 가지고 계시는데, 제가 그분께 무엇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네 사랑이다. 네가 그분의 둘째 아들이라고 상상해라. 그분께서는 너를 사랑하시고, 너도 그분을 사랑한다. 그분의 육체의 아들이고, 그분의 마음의 아들인 나는 항상 점점 더… 내 일에… 몰두하여 그분을 떠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아시기 때문에 괴로우실 것이다… 어머니는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지 아신다.
너는 나를 대신해서도 그분을 위로해드려야 하고, 그분께 참으로 다정하게 대해드려서 그분께서 네 가슴에서 우시고, 위로받으실 수 있게 해야 한다. 너는 내 어머니를 안다. 너는 내 어머니를 모시고 산 적이 있다.
그러나 제자로서 선생님의 어머니를 경의를 가지고 사랑해드리는 것과 아들로서 그렇게 해드리는 것은 다르다. 나는 내 어머니가 나를 더 이상 가지지 못하게 되셨을 때 좀 덜 괴로워하시도록 네가 아들로서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

“주님, 당신께서는 돌아가시려고 하십니까? 당신께서는 죽어가는 사람이 말하듯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당신께서는 저를 슬프게 하고 계십니다…”

“나는 내가 죽어야 한다는 말을 몇 번 너희 모두에게 했다. 그런데 그것은 마치 내가 다른 데 정신이 팔린 아이들이나 머리가 아둔한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과 똑같구나. 그렇다, 나는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하겠지만, 나중에 하겠다. 그러나 지금 나는 너에게 말하고 있다. 요한아, 그것을 기억해라.”

“저는 당신의 말씀을 기억하려고 항상 노력합니다만… 이 말씀은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네 말의 뜻은 너는 그것을 잊으려고 모든 것을 다한다는 말이지? 가엾은 아이야! 잊는 것은 네가 아니다. 기억하는 것도 네가 아니다. 너는 네 뜻을 가지고 있다. 네 인간성이 견뎌낼 수 있는 능력보다 월등히 크고, 너무 커서 그것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극악무도할 것인지, 너무 커서 마치 높은 곳에서 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바위처럼 너를 기절시키는 이것을 기억할 수없는 것은 네 인간성 자체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렇게 될 것이다. 나는 머지않아 죽을 것이고, 내 어머니께서는 혼자 남게 되실 것이다. 만일 내가 네가 내 어머니의 한 ‘아들’인 것을 본다면, 나는 내 고통의 대양 속에서 한 방울의 감미로움을 가지고 죽을 것이다…”

 

 

(다음회에 이어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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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오! 나의 주님! 만일 제가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베들레헴에서와 같은 일이 저에게 일어나지 않는다면, 저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는 아들의 마음으로 그분을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당신을 잃으신다면, 제가 무엇으로 그분을 위로해드릴 수 있겠습니까? 저도 모든 것을 잃고 고통으로 실성한 사람처럼 되어 있을 터인데, 제가 무엇을 드려 그분을 위로해드릴 수 있겠습니까? 현재의 평온 가운데에서도 하룻밤을 깨어 있지 못하고, 약간의 시장기 때문에 고통당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두려워하지 마라. 이 기간 동안에 너는 아주 많이 기도해야 한다. 나는 많은 시간 동안 나와 함께 그리고 내 어머니와 함께 너를 데리고 있겠다. 요한아, 너는 우리의 평화이다. 그리고 너는 그때도 우리의 평화일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요한아. 네 사랑이 모든 것을 할 것이다.”

“오! 주님! 가능한 한 저와 함께 계셔주십시오. 당신께서는 제가 드러나거나 기적들을 행하기를 열망하지 않고, 사랑하기만을 원하고, 사랑할 줄만 안다는 것을 아십니다…”

예수께서는 그분께서 동굴에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요한의 관자놀이 위 이마에 입 맞추신다.

그들은 강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이는 곳에 있다. 몇 명의 여행자들이 여기 있는데, 그들은 밤이 되기 전에 쉴 수 있는 곳에 갈 수 있도록 그들이 타고 있는 짐승들을 막대로 찔러 몰거나 걸음을 재촉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몸을 포근하게 감싸고 간다. 왜냐하면 해가 진 다음에 공기가 아주 차고, 추위가 매서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도 강을 향하여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는 두 여행자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말 탄 사람 하나가 거의 질주라고 할 수 있는 지속적인 구보로 그들을 지나쳐 가더니 몇 걸음을 더 가 몇 마리의 나귀들이 큰 시내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근처의 도로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정지한다. 급류처럼 보이는 그 시냇물은 요르단 강 또는 사해 쪽으로 거품을 일으키며 흘러간다. 그는 건너가는 데 있어 자기의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 뒤돌아보고는 놀라는 몸짓을 한다. 그는 말에서 내린 다음에 말고삐를 잡고, 그를 알아보지 못한 예수와 요한을 향하여 되돌아온다.

“선생님! 당신께서 어떻게 여기 계십니까? 그리고 당신께서는 요한과만 함께 계십니까?”

말 탔던 사람은 그의 터번을 뒤로 젖히며 묻는다. 그는 두건처럼 그것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바람과 먼지를 막기 위한 마스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마나엔의 씩씩한 갈색 얼굴이 나타난다.

“마나엔, 당신에게 평화. 나는 강을 건너려고 강 쪽으로 가고 있소. 그러나 나는 어두워지기 전에 내가 강을 건널 수 있을는지 확신할 수 없소. 그런데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소?”

“마케루스로요. 추악한 소굴로요. 당신께서는 숙소를 가지고 계십니까? 저와 함께 가시지요. 저는 대상들의 도로변에 있는 어떤 여관으로 서둘러 가고 있었습니다. 아니면 당신께서 원하신다면 저는 강변 나무 아래 천막을 치겠습니다. 저는 안장 위에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천막이 더 좋소. 그러나 당신은 분명히 여관이 더 좋겠지요?”

“나의 주님, 저는 당신이 더 좋습니다. 저는 당신과의 이 만남을 은총으로 여깁니다. 가십시다. 저는 강변을 제 집의 복도들처럼 잘 압니다. 길갈의 언덕 아래에는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숲이 있고, 제 말이 먹을 풀과 불을 피울 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기라면 유쾌할 것입니다.”

그들은 여울이나 예리코로 가는 길을 떠나 확실하게 동쪽으로 돌아서 빨리 걸어간다. 그들은 이내 언덕의 비탈을 타고 내려와 제방 쪽 방향 평야로 퍼지는 우거진 숲의 자락에 이른다.

“저는 저 집으로 가보겠습니다. 그들은 저를 압니다. 저는 우리 모두를 위하여 약간의 양젖과 짚을 청하겠습니다.”

마나엔이 말하며 말을 타고 갔다가 빨리 돌아오는데, 짚단들을 어깨에 메고 양젖이 들어 있는 구리 통을 들고 두 사람이 따라온다.

그들은 말없이 숲 속으로 들어온다. 마나엔은 그 두 사람에게 짚을 바닥에 깔게 한 다음에 그들을 돌려보낸다. 그는 안장들의 주머니에서 부싯깃 통을 꺼내 땅에 깔려 있는 많은 나뭇가지에 불을 붙인다. 불은 그들을 기쁘고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요한이 가져온 돌 두개에 올려놓은 냄비가 뜨거워진다.

그 동안에 마나엔은 말에서 안장을 내려놓은 다음에 부드러운 낙타털 천막을 땅에 박은 두 개의 말뚝에 매고, 매우 오래된 나무의 튼튼한 줄기에 기대어 친다. 그는 또한 안장에 매두었던 양가죽을 풀 위에 깔고 그 위에 안장을 놓으면서 말한다.

“선생님, 오십시오. 이것은 사막의 기마자들의 피신처입니다. 이것은 이슬과 땅의 습기를 막아줍니다. 저희에게는 충분한 짚이 있습니다.

선생님, 제가 분명히 당신께 말씀드리는데, 왕궁의 값진 양탄자들과 닫집들과 의자들이 당신의 이 어좌와 이 천막과 이 짚보다 덜, 훨씬 덜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제가 몇 번 맛본 고급 요리도 절대로 우리가 이 천막 아래에서 함께 맛볼 양젖과 빵의 맛은 결코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행복합니다.”

“나도 행복하오, 마나엔. 그리고 분명히 요한도 그럴 것이오. 섭리는 이 저녁에 우리 서로의 기쁨을 위하여 우리를 모아놓았소”

“선생님, 오늘 저녁, 내일, 그리고 모레도 제가 당신께서 당신의 사도들 가운데 안전하게 계시는 것을 제가 알 때까지입니다. 저는 당신께서 사도들에게 가고 계시는 것으로 짐작합니다만…”

“그렇소. 나는 그들에게 가고 있소. 그들은 솔로몬의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소”

마나엔이 그분을 쳐다본다. 그 다음에 그가 말한다.

“저는 예루살렘에 들렀다가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들었습니다… 베타니아를 통해서요. 그래서 저는 당신께서 왜 거기 머무르지 않으셨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당신께서 그곳을 떠나신 것은 아주 잘하신 일입니다. 예루살렘은 독과 부패가 가득한 몸과 같습니다. 가엾은 라자로보다 더요…”

“당신은 그를 보았소?”

“예, 보았습니다. 그는 몸의 고통과 당신에 대한 마음의 고통으로 괴로워합니다. 그는 몹시 고통당하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희 동포들의 죄를 보느니 저도 차라리 죽고 싶습니다.”

“예루살렘은 술렁이고 있었습니까?”

불을 살피고 있는 요한이 묻는다.

“크게 술렁이고 있습니다. 두 패로 갈라져서요. 그리고 이상한 일은 로마인들이 전날의 반란으로 인하여 체포된 몇 사람들에게 관대하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동요가 확대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조치라고 은밀히 말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총독이 이내, 통상의 기간 전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것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헤로데도 분명히 총독을 모방할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그것은 저에게는 분명히 좋은 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당신 곁에 가까이 있을 수 있을 테니까요. 좋은 말로는―안티파스의 마구간에는 아주 빠른 아랍 말들이 있습니다―시내에서 강까지 순식간에 갈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께서 그곳에 머무르시려 하신다면 말입니다…”

“그렇소, 나는 그곳에 머무르겠소. 적어도 당분간은…”

요한이 뜨거운 양젖을 가져온다. 각자는 예수께서 빵을 바치시고 강복하신 다음 그 빵을 양젖에 담근다. 마나엔은 약간의 꿀과 같은 황금빛 야자대추들을 드린다.

“당신은 이렇게 많은 물건을 어디에 보관하셨습니까?”

요한이 놀라 묻는다.

“기마자의 안장은 조그마한 시장이오, 요한. 타는 사람과 말을 위한 모든 것들이 거기 있어요.”

마나엔은 그의 갈색 얼굴에 솔직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그는 잠시 생각한 다음 묻는다.

“선생님, 저희를 섬기고, 아주 자주 사람보다 더 충실하게 섬기는 짐승들을 사랑하는 것은 율법에 맞는 일입니까?”

“당신은 왜 그런 질문을 하오?”

“왜냐하면 저는 최근에 달리고 나서 땀에 젖어 있는 제 말을 지금 우리의 천막으로 쓰이는 담요로 덮어주는 것을 본 어떤 사람들에게서 조롱과 비난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소?”

마나엔은 당황하여 예수를 쳐다보며… 잠자코 있다…

“솔직하게 말하시오. 당신은 나에게 그들이 나를 더 헐뜯으려고 했던 말을 하는 것은 누군가를 헐뜯거나 나를 모욕하는 것이 아니오.”

“선생님.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시는군요. 당신께서는 참으로 모든 것을 아시니 저희의 생각이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당신께 숨기는 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그 사마리아인의 제자라는 걸 알겠소. 당신은 부정한 짐승들을 만짐으로써 부정하게 되어 안식일들을 어기는 그자와 마찬가지로 이교도요.’”

“아! 그것은 틀림없이 이스마엘이었을 것입니다!”

요한이 외친다.

“맞아요. 그리고 그와 함께 있던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어요.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만일 당신들이 내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짐승을 돌보았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말하지 않고, 내가 안티파스의 궁궐에 살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말한다면 당신들을 이해하겠소.’

그들의 무리 중에는 헤로데 당원들도 있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헤로데 당원들을 보기가 쉬운데, 전에는 그들 사이에 심각한 불화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것은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그들은 저에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안티파스의 행동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행동들을 비판하고 있소. 세례자 요한도 마케루스에 있었고, 왕과 접촉하고 있었소. 그러나 그는 의인으로 남아 있었소. 반대로 당신은 우상숭배자요…’

사람들이 저희 주위에 모여들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자제했습니다. 저는 그 도시의 주민들을 자극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얼마 전부터 그들은 당신의 몇몇 거짓 추종자들에 의하여 흥분해 있습니다. 그들은 당신께 반대하는 사람들을 거슬러 봉기하라고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당신의 제자들이며 당신에게서 파견되었다고 말하며 당신의 이름을 파는 자들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 심하네요! 선생님? 그들이 어디까지 갈까요?”

요한이 흥분하며 말한다.

“그들은 한계 너머로 갈 수 없다. 나만이 그 한계 너머로는 나아갈 것이고, 빛(the Light)이 빛날 것이며, 아무도 더 이상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두 사람 다 내 가까이로 와서 내 말을 들으시오. 그러나 그전에 나무를 불에 더 넣으시오.”

두 사람은 매우 기뻐하며 예수의 발 앞 땅바닥에 깔려 있는 두꺼운 양가죽 위로 다가온다. 예수께서는 나무줄기에 의지하여 세운 천막에 기대놓은 진홍색 안장 위에 앉아 계신다. 마나엔은 거의 눕다시피 땅바닥에 한 팔꿈치를 대고, 머리를 한손으로 받친 채 그분을 바라보고 있다. 요한은 여느 때의 그의 자세와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그분의 가슴에 기대고 한 팔로 그분을 껴안고 있다.

“창조주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분의 모습대로 그분과 비슷하게 창조된 사람이 세상의 왕으로 만들어졌을 때, 그분께서는 모든 피조물들을 사람에게 보여주시며 그가 한 가지를 다른 것으로부터 분간하기 위하여 그것들 각자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를 원하셨소. 그래서 우리는 창세기에서 ‘아담이 지어준 각각의 이름이 좋았고, 그것이 그 이름이 되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소.

또한 창세기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다음에 ‘우리 모습대로 우리와 닮은 사람을 만들어 바다의 물고기들, 공중의 새들, 집짐승들과 모든 들짐승들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파충류들을 다스리게 하자’는 말씀을 읽을 수 있소.

그리고 하느님께서 아담을 위하여 아담처럼 하느님의 모습으로 그분과 닮도록 만드신 여자를 아담의 반려자로 창조하셨을 때 누워 기다리고 있는 유혹자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남자를 유혹하여 그를 훨씬 더 음란하게 타락시키는 것은 좋지 않으므로 그분께서는 남자와 여자에게 말씀하셨소. ‘자녀들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을 채우고, 땅을 정복해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들, 공중의 새들, 땅 위의 모든 살아 있는 동물들의 주인들이 되어라.’

또한 그분께서는 말씀하셨소. ‘보라, 나는 너희에게 땅 위에 있는 모든 씨 맺는 식물들과 씨 맺는 과일나무들을 준다. 그것들은 너희와 땅 위의 모든 동물들과 공중의 모든 새들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 먹이가 될 것이다.그리고 그것들은 그 자신들 안에 살아 있는 영혼(a living soul)을 가지고 있어 그들이 살 수 있다.’

창조주께서 사람에게 유익하도록 창조하신 동물들과 식물들, 그리고 모든 것들은 아버지께서 그분의 자녀들의 보호에 맡겨진 사랑의 선물이고 상속재산인 것이오. 그리하여 그들이 그것을 유익하게 모든 섭리의 제공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용하게 하려는 것이오. 그러므로 그것들은 적절한 보살핌으로 사랑받고 관리되어야 하는 것이오.

아버지가 한 아들에게 옷, 가구, 돈, 밭들, 집들을 주면서, ‘나는 너에게 너와 네 후계자들을 위하여, 너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을 너희가 가질 수 있도록 이 모든 것들을 준다. 그것을 너에게 주는 내 사랑을 기억하며 사랑으로 그것을 사용해라’고 말했는데, 만일 그들이 모든 것이 파괴되도록 내버려두거나, 그들의 모든 재산을 낭비한다면, 당신들은 그 아들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겠소? 당신들은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았고, 그분과 그분의 선물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할 거요.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하느님께서 섭리적인 배려로 그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두신 것을 돌보아야 하오.

보살핌은 동물들이나 식물들이나 다른 어떤 것에 대한 우상숭배나 무절제한 터무니없는 애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오. 보살핌은 우리를 섬기면서 그것들 자신들의 생명 즉 그것들의 감수성을 가진 덜 중요한 것들에 대한 동정과 감사의 감정을 의미하는 것이오.

창세기에 언급된 열등한 피조물들의 살아 있는 혼은 사람의 영혼과 같은 것이 아니오. 그것은 생명, 물질, 감정의 양면에 있어 실재하는 것들에 민감한 단순한 생명일 뿐이오. 어떤 짐승이 죽으면 그것은 무감각하게 되는데, 죽음이 그것의 진짜 끝이기 때문이오. 그놈에게는 미래가 없소 그러나 그놈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놈은 추위, 배고픔, 피로를 느끼고, 상처, 고통, 사랑, 미움, 질병들, 그리고 죽음에게 복종하오.

그래서 사람은 땅 위에서의 그의 귀양살이를 덜 힘들게 만드는 그러한 수단을 주신 하느님을 기억하여 동물들, 그의 열등한 하인들에게 인정이 있어야 하오. 모세의 책에서 그것들이 새들이든, 네발짐승들이든, 동물들에게 인정을 가지도록 규정되어 있지 않소?

내가 진실로 당신들에게 말하는데, 정의를 가지고 창조주의 작품들을 바라보아야 하오. 만일 우리가 정의를 가지고 그것들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그것들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오.

좋은 것들은 항상 사랑받아야 하오. 우리는 그것들이 좋은 목적으로, 그리고 사랑의 충동으로 주어진다는 것과, 우리는 유한한 존재 너머로 우리를 위하여 그것들을 창조하신 무한하신 존재를 보면서 그것들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오. 우리는 그것들이 유익한 것이고, 그러한 것으로 사랑받아야 한다는 것을 아오.

우주 안에 목적 없이 창조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유의하시오.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완전한 능력을 무익한 것들에 낭비하지 않으시오. 이 풀잎도 우리의 임시 피신처가 묶여 있는 이 커다란 나무줄기보다 덜 유익하지 않소. 이슬방울과 작은 진주 같은 서리도 광대한 바다와 똑같이 유익하오. 각다귀도 코끼리만큼 유익하고, 진흙 속에서 사는 지렁이도 고래보다 덜 유익하지 않소.

우주만물에 무익한 것은 없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좋은 목적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만드셨소. 사람은 모든 것을 올바른 목적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써야 하오. 그분께서는 땅 위의 모든 것을 그에게 주시어 그것들이 만물의 왕에게 복종하게 하셨소.

마나엔, 당신은 동물들이 자주 사람들이 사람을 섬기는 것보다 더 낫게 사람을 섬긴다고 말했지요. 나는 동물들, 식물들, 광물들, 자연의 요소들은 수동적으로 창조계의 법칙들을 따르거나, 창조주에 의하여 주입된 본능들을 능동적으로 따르거나, 그것들이 창조된 목적을 위하여 길들여지는 데 굴복함으로써 복종하는 데 있어 사람을 능가한다고 말하겠소.

만물의 진주여야 할 사람은 너무 자주 만물 안의 추물이오. 그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천상의 합창에 가장 조화를 이루는 음이어야 할 터인데, 그는 너무 자주 저주하거나, 신성을 모독하거나, 반역하거나, 자기의 노래를 창조주께 바치는 대신 피조물을 찬미하는 데 바치는 불협화음이오. 따라서 그것은 우상 숭배, 모욕, 더러움이오. 그리고 그것은 죄요.

그러므로 마나엔, 안심하시오. 당신을 섬기느라고 땀에 젖은 말에게 연민을 가지는 것은 죄가 아니오. 자기와 같은 사람들에게 흘리게 하는 눈물과 사람의 모든 사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하느님에 대한 모욕인 무절제한 사랑이 죄요.”

“그런데 제가 안티파스 곁에 있다면, 저는 죄짓는 것입니까?”

“당신은 왜 거기 머무르고 있소? 즐기기 위해서?”

“아닙니다, 선생님. 당신을 지켜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당신께서는 바로 지금 그리고 가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아십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들이 당신을 반대하도록 그를 부추기기 위하여 사자들을 보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죄가 없소. 당신은 나의 가난한 생활을 공유하며 나와 함께 있는 것을 더 좋아하지 않겠소?”

“당신께서 그것을 저에게 묻고 계십니까? 저는 처음에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천막 아래에서의 이 밤과 우리가 먹은 보잘것없는 음식은 저에게는 비교의 대상이 없습니다. 오! 만일 뱀들의 쌕쌕거리는 소리를 듣기 위하여 그것들의 소굴 가까이에 머물러 있어야할 필요가 없다면, 저는 당신과 함께 머무를 것입니다!

저는 당신의 사명의 진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잘못 생각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깨닫는 데 이바지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이상 정의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보시오! 아무것도 무익하지 않소. 잘못도 선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선을 얻는 방법이 되오. 잘못은 번데기의 껍질처럼 떨어져나가고, 기형이 아닌 나비가 나와서 악취를 풍기지 않고, 기지 않고, 꽃받침과 빛살을 찾아 날아다니오.

착한 영혼들도 이와 같소. 그들은 잠시 동안 비참함과 어려움에 둘러싸일 수는 있소. 그 다음에 그들은 해방되어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이 성덕에서 저 성덕으로, 완전을 향하여 날아가오.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로도 사람의 마음속과 그의 주위에서 활동하는 그분의 지속적인 자비의 일들에 대하여 그분을 찬미합시다.

예수께서는 무릎 꿇고 기도하신다. 왜냐하면 천막이 낮고 좁아서 다른 자세는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천막 앞에 불을 붙여놓고 말을 매놓은 다음에 그들은 교대로 불과 말을 보살피기로 서로 약속하며 쉴 준비를 한다. 마나엔은 말의 잔등 위에 두꺼운 양털을 덮어주어 밤의 냉기로부터 말을 보호한다.

예수와 마나엔은 짚 위에 누워 자기들의 겉옷을 덮고 잠을 청한다. 요한은 잠들까봐 두려워하며 천막 밖에서 왔다 갔다 하며 불에 나무를 집어넣고 말을 보살핀다. 말은 영리한 검은 두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리드미컬하게 굽으로 땅을 치며, 머리를 흔들며, 마구의 은사슬들을 울리게 하고, 그놈이 매여 있는 나무 아래 돋아난 향내 나는 야생 회향 줄기를 뜯어먹는다. 그리고 요한이 좀 더 먼 곳에 난 더 좋은 것들을 가져다주자 말은 만족하여 히힝 하고 울며 그 부드러운 분홍빛 코를 사도의 목에 비비려 한다. 밤의 깊은 적막 속에서 멀리 강물이 조용히 흘러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이렇게 하여 내 공생활 셋째 해도 끝났다. 이제 내 수난을 위한 준비기간이 온다. 그것은 모든 것이 불과 몇 가지의 활동들과 극소수의 사람들에 한정되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이다. 그것은 거의 내 모습과 내 사명을 매도한다. 실제로는 패배하고 거절된 것처럼 보이는 그가 자기의 절정기(apotheosis)를 준비하고 있는 주인공이었고, 그의 주위에서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들의 격정이 집중되어 이 가장 높은 정점을 향하여 올라갔다.

미리 있었고, 어떤 삽화들의 경우에는 악의적이거나 피상적인 독자들에게는 아마도 목적이 없는 것으로 보였을 모든 것이 지금 그 음울하거나 밝은 빛으로 조명된다. 특히 가장 중요한 모습들이 그러하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려 하지 않는 모습들이 알면 유익하다. 왜냐하면 바로 그것들이 그 어느 때보다 참된 영혼의 선생들이 되기 위하여 더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는 지금의 선생들을 위한 교훈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요한과 마나엔에게 말한 것처럼 하느님께서 하시는 어떤 것도 무익하지 않은데, 얇은 풀 한포기도 그러하다. 이와 같이 이 작품의 어떤 것도 불필요하지 않다. 장려한 모습들도, 약하고 음울한 모습들도 필요하다. 오히려 영혼의 선생들에게는 윤곽이 완벽하고 영웅적인 모습들보다 약하고 음울한 모습들이 더 유익하다.

산 위 정상이 가까운 곳에서는 산의 전체 구조와 나무들, 급류들, 풀밭들과 평지에서부터 정상에 이르는 비탈들의 존재이유들을 파악하고, 경치의 모든 아름다움을 보고, 하느님의 작품들은 모두가 유익하고 놀라우며, 서로 보완하고 완성하여 모든 것이 만물의 아름다움을 형성하는 데 이바지한다는 것을 더 깊이 확신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올바른 영혼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선생으로서의 내 일이라는 산의 정상에서 내려다본 이 복음전파의 3년 동안의 모습과 에피소드들과 가르침들의 다양성은, 내가 선생님이었고, 구속자가 된, 죄악에 이르기까지 이기적이거나 희생할 정도에 이르기까지 이타적인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집단적, 영적인 그 복합체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주는 데 이바지한다.

나는 그 복합체 안에서 선생님이었고, 구속주가 되었다. 한 드라마의 장엄함은 한 장면에서 보이지 않고, 그 모든 부분들에서 보이는 것이다. 주인공의 모습은 부차적인 부분이 그것을 비추는 서로 다른 빛들로부터 드러난다.

우리는 지금 정상에 가까이 있는데, 그 정상은 내가 육화한 이유인 그 희생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의 모든 가장 은밀한 감정들과 파당들의 모든 음모들이 드러남에 따라 우리는 정상에 이른 여행자가 하는 일 즉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바라보는 것밖에 할 것이 없다. 그것은 유다인의 세계를 알게 되는 것과 내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나는 관능들, 이기심, 증오를 초월해 있는 사람, 복수하고, 권력을 추구하고, 결혼과 가정생활의 정직한 기쁨들을 바라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유혹받아야 했던 사람, 세상의 불완전과 죄와 내 완전 사이에는 무한한 거리가 있기 때문에 세상 안에서 살면서 모든 것을 견뎌야 했고, 그것에 의하여 고통당해야 했던 사람, 그리고 세상, 사탄, 내 인간의 자아의 모든 목소리들, 모든 유혹들, 모든 반응들에 대하여 아니라고 대답한 사람이었다. 또한 나는 순결하고, 충실하고, 자비롭고, 겸손하게 남아 있었고,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했다.

나는 사탄과 세상의 점점 더 강해지는 공격들에 맞서 현대사회를 강화해주기 위하여 나 자신에 대한 이 지식을 현대사회에 주는데, 그것은 이 모든 것을 이해할까?

20세기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내가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상대방들은 상반되는 말을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나는 거절당하는 표지(sign)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거절이 아니라 내가 그들 안에서 휘저어놓는 것에 대한 거절이다.

착한 사람들,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은 목자들과 겸손한 사람들의 착한 반응들을 보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날들의 율법학자들, 바리사이들, 사두가이들, 사제들처럼 나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주는 법이다(One gives what onehas).

악한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는 착한 사람은 그들 안에 더 큰 악의 격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성 금요일에 심판이 행해진 것처럼, 사람들에게 무한한 자비의 새로운 시도로 다시 한 번 자기를 알린 선생님을 어떻게 판단했고 받아들였고, 따랐느냐에 따라 심판이 행해질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이 열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그분이야! 그래서 그분이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서를 설명해주실 때 우리의 마음들이 우리 안에서 불탔던 거야’ 하고 말할 것인가? 내 평화가 그들에게와, 작고, 충실하고, 다정한 내 요한, 너에게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