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영문판번역)/7권 공생활 셋째 해(하)

하사시7권 [521. 예리코에서. 두 가지 비유: 병자와 건강한 사람, 바리사이와 염세리(2)522. 자캐오의 집에서 회개한 사람들과 함께. 영혼과 윤회설의 오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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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7권 공생활 셋째 해(하) p365~p374

 

521. 예리코에서. 두 가지 비유: 병자와 건강한 사람, 바리사이와 염세리(2)

1946.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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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부분)
예수께서는 자캐오의 집에서 나오신다. 아침 늦은 시간이다. 그분께서는 자캐오, 베드로, 알패오의 야고보와 함께 계신다. 다른 사도들은 아마 벌써 시골로 흩어져서 선생님께서 시내에 와 계신다는 것을 알리고 있는 것 같다.

예수, 자캐오, 사도들의 무리 뒤에는 얼굴 모습과 나이와 옷이 꽤나… 다양한 또 다른 무리가 있다. 그 무리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어쩌면 서로 적대적인 종족들에 속해 있다고 우리는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인생의 우여곡절로 인하여 팔레스티나의 이 도시로 와서, 깊은 곳으로부터 빛을 향하여 올라오기 위하여 모여 있다.

그들은 주로 인생을 여러 가지로 이용하고 남용한 사람들의 퇴색한 얼굴들이고, 그들 중 대다수는 공금횡령이나 짐승 같은 명령을 내리는 데 오래 익숙해져서… 탐욕스럽고 냉혹한 시선을 보이는데, 때로는 그들의 과거의 시선이 새 생활에 의하여 덮인 초라하고 생각에 잠긴 베일을 들치고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일은 특히 예리코의 사람들이 업신여기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거나 그들에게 불손한 말을 내뱉을 때 일어난다. 그러다가는 그들의 눈길은 다시 지치고 겸손한 눈길이 되고, 그들의 머리는 절망적으로 숙여진다.

예수께서는 멀리 뒤에서 두 번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분의 말씀을 위하여 선택된 장소에 그들이 다가옴에 따라 걸음의 속도를 늦추는 것을 보시고, 걸음을 늦추시며 그들을 기다리시다가 마침내 말씀하신다.

“나를 앞서가시오. 겁내지 마시오. 당신들은 악을 행할 때 세상에 저항했으니, 악을 떨쳐버린 지금 세상을 무서워하면 안 됩니다. 과거에 세상을 제압하기 위하여 당신들이 사용했었던 것, 즉 세상으로 하여금 판단하는 데 지치게 만드는 유일한 무기인 세상의 판단에 대한 무관심을 지금도 사용하시오. 그러면 세상은 당신들과 연관되는 데 지칠 것이고, 비록 느리겠지만 당신들을 흡수하여 당신들을 큰 익명의 대중 속으로, 즉 이 비참한 세상 속으로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지나치게 중요시합니다.”

열다섯 명인 그 사람들은 순종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선생님, 시골의 병자들이 저기 있습니다.”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예수를 향하여 가며 양지바른 구석을 가리키면서 말한다.

“내가 가겠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

“사람들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당신을 보았으니 곧 올 것입니다. 솔로몬, 엠마오의 요셉, 에페소의 요한, 아르벨라의 필립보도 그들과 함께 있습니다. 그들은 아르벨라의 필립보의 집으로 가고 있는데, 야포, 리따, 모딘에서 왔습니다. 그들은 해안지방의 남자들과 여자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사실 그들은 한 여자를 판단하는 데 있어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당신께 말씀드릴 겁니다…”

과연 예수께서는 곧바로 경건하게 인사드리는 다른 제자들에게 둘러싸이신다. 그들 뒤에는 최근에 예수의 가르침에 이끌린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에페소의 요한이 없어 예수께서 그 이유를 물으신다.

“그는 어떤 여자와 그 여자의 부모와 함께 군중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한 집에 있습니다. 그들은 그 여자가 마귀 들린 사람인지, 예언자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 고장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 여자는 놀라운 것들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몇몇 율법학자들은 그 여자의 말을 들은 다음에 그 여자를 마귀 들린 여자로 판정했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몇 번 구마자들을 불렀었지만, 그들은 그 여자에게 들려 있으면서 그 여자에게 말하게 하는 마귀를 쫓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한 사람이 그 여자의―그 여자는 친정에 그대로 있는 처녀과부입니다―아버지에게 말했답니다. ‘당신의 딸에게는 메시아 예수가 필요하오. 그분께서는 당신의 딸의 말들을 알아듣고 그것들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 것입니다. 나는 그 여자 안에서 말하는 영에게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고 명하려고 해보았습니다. 어둠의 영들은 내가 이 이름을 썼을 때 항상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이 도망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부터 나는 이렇게 추론합니다. 즉 말하는 자가 베엘제붑 자신이고 내가 부르는 이름에도 직접 맞설 수 있거나, 아니면 그것이 하느님의 성령 자신이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하느님의 영은 그리스도와 오직 한분이시므로 두려워하지 않으신다고 말입니다. 나는 전자보다 후자를 더 믿습니다. 그러나 확실하게 하려면 그리스도만이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말을 알아들을 것이고, 그 말의 기원도 아실 것입니다.’

그는 거기 있는 율법학자들에게 구박당했습니다. 그들은 그 사람도 그 여자와 당신처럼 마귀 들린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저희가 이런 말씀을 드려야 하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몇몇 율법학자들은 결코 저희를 떠나지 않았고, 그 여자를 지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여자가 당신의 도착에 관하여 소식을 듣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가 자기는 당신의 얼굴과 당신의 목소리를 알고, 그래서 수천수만 명의 사람들 가운데서라도 당신을 알아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15년 전에 그녀의 남편이 될 사람이 결혼식 전날 죽었을 때부터 그 여자는 자기의 마을을 떠난 적이 결코 없고 자기 집 밖으로 나온 적도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당신께서 베틀레키라는 그녀의 마을로 지나가신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도 증명되었습니다.

그래서 율법학자들은 그 여자가 마귀 들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이 마지막 시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즉시 그 여자를 보시겠습니까?”

“아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말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여기 이 군중 가운데서 그들을 만난다면 너무 소란스러울 것이다. 가서 에페소의 요한, 그 여자의 부모, 그리고 율법학자들에게 내가 해지기 시작할 무렵에 강 옆의 숲, 여울로 가는 오솔길에서 그들을 기다리겠다고 말해라. 가거라.”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대표하여 말한 솔로몬을 보내신 다음 병이 낫기를 청하는 병자들에게 가셔서 그들을 고쳐주신다. 그들 중에는 관절염으로 관절에 경직이 생긴 나이든 여인, 남자 마비환자, 저능한 젊은이, 내가 보기에 결핵에 걸린 소녀, 두 명의 안질환자들이 있다.

군중은 기쁨의 환성을 지른다.

그러나 병자의 무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슬픔으로 인하여 몰골이 흉하게 된 한 여인이 두 명의 친구 또는 친척의 부축을 받으며 와서 무릎 꿇고 말한다.

“제 아들이 죽어갑니다. 저는 그 애를 이리 데려올 수 없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당신은 제한 없이 믿을 수 있소?”

“저는 모든 것을 믿습니다, 나의 주님!”

“그렇다면 집으로 돌아가시오.”

“제 집으로요?… 당신을 모시지 않고요?…”

그녀는 한동안 몹시 불안해하며 예수를 쳐다본다. 그러다가 그녀는 알아듣는다. 그녀의 가엾은 얼굴이 환하게 변한다. 그녀가 외친다.

“저는 가겠습니다, 주님. 당신과 당신을 보내신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찬미 받으시기를!”

그녀는 동행한 여자들보다 더 날쌔게 뛰어간다…

예수께서는 예리코의 한 점잖은 주민에게 물으신다.

“저 여자는 유다인입니까?”

“아닙니다. 적어도 태생으로는 아닙니다. 저 여자는 밀레토 출신입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저희 중 한 사람과 결혼했고, 그때부터 우리 종교를 믿고 있습니다.”

“저 여자는 많은 히브리인들보다 더 잘 믿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어떤 집의 높은 계단 위에 올라가 강연을 시작하시기 전에 침묵을 명하시기 위하여 여느 때처럼 두 팔을 벌리신다. 소음이 가라앉자 그분께서는 그 몸짓을 하실 때 가슴 앞에서 벌어졌던 겉옷의 주름들을 모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은 맹세하는 사람의 자세로 뻗으시며 말씀하신다.

“예리코의 주민 여러분, 주님의 비유들을 들으시오. 그 다음에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묵상하여 여러분의 영혼의 양식이 될 교훈들을 이끌어내시오. 여러분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어제부터나 지난달이나 지난겨울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선생이 되기 전에 내 선구자 요한이 나의 내림(來臨)에 관하여 여러분을 준비시켰고, 내가 선생이 된 다음부터는 내 제자들이 이 땅을 일곱 번씩 일곱 번이나 쟁기질로 갈아엎어 내가 그들에게 준 씨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말과 비유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죄인들이었다가 회개한 사람들을 누구와 비교할까요? 나는 그들을 회복된 환자들과 비교하겠습니다. 공공연하게 죄짓지 않았거나, 검은 진주들보다 더 드물지만 은밀하게라도 중죄들을 지은 적이 없는 다른 사람들을 누구와 비교할까요? 나는 그들을 건강한 사람들과 비교하겠습니다.

세상은 영의 문제에 있어서나 살과 피의 문제에 있어서 이 두 가지 부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설령 비유들이 같다 해도, 세상이 몸의 질병들에서 회복된 환자들에게 쓰는 방법은 세상이 회개한 죄인들, 즉 영혼이 병들었다가 건강하게 된 사람들을 다루는 방법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가장 위험한 환자여서 그 위험 때문에 가장 격리되어야 하는 나병환자도 치유의 은총을 얻게 되면 사제에게 검사받고 정결례를 행한 다음에 사회에 다시 받아들여지고, 그의 도시의 사람들은 그가 고쳐지고, 그래서 삶으로 돌아오고, 그의 가족과 그의 사업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를 따뜻하게 환영합니다.

나병환자가 그 은총을 얻고, 그래서 건강해질 때 그의 가정과 그의 도시에서 큰 잔치가 벌어집니다! 그의 친척들이나 동료 시민들은 앞 다투어 다양한 물건들을 그에게 가져다주고, 만일 그가 홀몸이고 집이나 가구가 없다면, 그들은 침대나 가구를 그에게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말할 것입니다. ‘저 사람은 하느님의 특은을 받은 사람이다. 그분의 손이 그를 낫게 하셨다. 그러니 그를 공경하고, 그를 창조하시고 재창조하신 그분을 공경하자.’ 그렇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어떤 사람이 나병의 초기 증세를 보인다면, 함께 있는 동안에 그의 부모와 친구들은 애정으로 얼마나 그를 압도합니까? 마치 그들이 여러 해 동안 그에게 주었을 애정을 단번에 주어서 그가 살아 있는 존재의 무덤으로 그것들을 가져가게 하려는 듯이 말입니다.

그럼 왜 그들은 다른 병자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죄짓기 시작하고, 그의 친척들과 특히 동향인들은 그것을 봅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사랑의 노력을 기울여 그 사람을 죄에서 빼내려고 애쓰지 않습니까?

어머니, 아버지, 아내, 자매는 여전히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별로 그렇게 하지 않고, 사촌형제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동향인들 중에서 더 의로운 사람들은 비판하고, 비웃고, 욕하고, 눈살을 찌푸리고, 죄인의 죄들을 과장하고, 그에게 손가락질하고, 그가 마치 나병환자인 것처럼 그를 멀리할 줄 밖에 모르고, 의롭지 못한 사람들은 그 사람의 비용으로 즐기기 위하여 그의 공범자들이 됩니다. 그러나 한 입과 특히 한 마음이 연민, 굳셈, 참을성, 초자연적인 사랑을 가지고 그 불행한 사람에게 가서, 죄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중단하도록 걱정하며 애쓰는 것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왜요? 영혼의 병이 더 중하고, 참으로 중하고 치명적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병이 한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영원히 빼앗아가지 않습니까? 하느님과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의 최초의 형태가 그의 영혼의 유익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 죄인을 고쳐주는 노심초사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한 죄인이 회개했을 때 사람들은 왜 그를 집요하게 판단하고, 그가 영적인 구원으로 돌아온 것을 거의 유감스러워하다시피 합니까? 여러분의 동향인 한 사람의 확실한 영벌에 대한 여러분의 예측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닫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은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거짓이라고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자비로우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이고, 여러분이 더 중대하거나 덜 중대한 죄를 저지른 후에 여러분을 위로해주시려고 그분의 풍성한 그분의 선하심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어떤 마음의 착한 뜻이 깨끗하고, 훌륭하고, 형제들의 존경 아니 감탄을 받을 만하게 만든 것을 여러분은 왜 더럽혀지고, 업신여길 만하고 격리된 채로 남아 있어 마땅한 것으로 여기기를 고집하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 나귀, 낙타, 양떼의 양, 여러분의 애완 비둘기가 병들었다가 나으면 몹시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낯선 사람이 나병환자로 격리되어 있을 때 그에 대하여 들었기 때문에 겨우 이름이나 기억하는 사람이 치유된다면 분명히 기뻐합니다.

그런데 왜 이 영적인 치유들, 하느님의 이 승리들을 보고는 환호하지 않습니까? 한 죄인이 회개할 때 하늘은 환호합니다. 하늘 즉 하느님과 가장 순수한 천사들, 죄짓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사람들인 여러분은 하느님보다 더 엄격하기를 원합니까?

정직한 마음을 가지시오. 그리고 주님의 거룩하심이 성전의 분향의 연기와 찬미가들 속에, 그 이름이 가리키는 것처럼 거룩해야 하는 곳이나 대사제 안에서만 주님의 현존을 알아보지 말고, 다시 살아난 이 영혼들의 경이들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제물을 태우기 위하여 그 불과 함께 내려오시는 이 재봉헌된 제단들의 경이들 안에서도 알아보시오.”

예수의 말씀은 찬미의 환성을 올리며 그분을 경배하기를 원하는 방금 전의 어머니로 인하여 중단된다. 예수께서는 그녀의 말을 들으시고 그녀를 축복하시고, 집으로 돌려보내시고 나서 중단된 말씀을 다시 시작하신다.

“그리고 만일 한 죄인의 행동이 여러분에게 분개의 원인이 되었다가 지금은 교훈적인 모범을 보인다면, 그것을 조롱하지 말고, 오히려 본받으시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Good)은 설령 그것이 한때 비난받았을 만한 사람에 의하여 행해진 것이라 해도 항상 받아들여야 하는 교훈입니다. 그를 본받고, 그를 도와주시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주님을 찬미하게 되고, 여러분이 말씀(the Word)을 이해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행동이 말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이 마음속에서 은밀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처럼 되지 마시오.

오히려 여러분의 모든 착한 행동이 여러분의 모든 착한 말의 왕관이 되게 하시오. 그렇게 된다면,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호의적으로 여러분을 보시고, 여러분의 청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눈에 어떤 것들이 가치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위하여 이 다른 비유를 들으시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자주 발견되는 나쁜 생각을 바로잡도록 여러분에게 가르쳐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 자신들의 재판관들입니다. 그들 모두는 천 명 중 한 명만이 겸손한데 자기가 그 유일한 완전한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자기의 이웃에게서는 수백 개의 잘못들을 찾아냅니다.

어느 날 볼 일이 있어서 예루살렘에 갔었던 두 사람이, 착한 이스라엘사람이라면 누구나 성도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그렇게 하듯이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전자는 상점들의 세를 받고 성도 가까이에 살고 있는 자기의 관리인들에게서 회계보고를 받기 위하여 갔습니다. 후자는 그가 징수한 세금을 바치고, 배와 그물에 대한 세금을 낼 수 없는 과부를 위하여 동정을 구하기 위하여 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맏아들이 하는 고기잡이로는 그녀의 많은 자녀들을 먹이기도 빠듯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기 전에 바리사이는 상점들의 임차인들에게 들러 상점들을 둘러보았는데, 그 상점들에 상품과 사는 사람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흡족해하며 임차인을 불러 그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자네의 장사가 번창하고 있는 것을 보네.’

‘예, 하느님의 은총으로요. 저는 제 일에 만족합니다. 저는 상품의 재고를 늘릴 수 있었는데, 그것을 더 늘리기를 바랍니다. 저는 상점을 개량했습니다. 그래서 내년에 저는 진열대들과 선반들에 대한 지출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더 많을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좋네! 아주 좋아! 나는 기쁘네! 자네는 이곳의 세를 얼마 내나?’

‘한 달에 100드라크마입니다. 이곳은 비싸지만, 목이 좋습니다…’

‘자네의 말이 맞네. 상권이 좋네. 따라서 나는 세를 곱절로 올리겠네.’

‘하지만 나리, 나리께서 그렇게 하시면 저에게는 이익이 전혀 남지 않습니다!’

임차인이 부르짖었습니다.

‘내 말이 맞네. 내가 내 재산으로 자네를 부자로 만들어주어야겠나? 즉시 2천 4백 드라크마를 내게. 아니면 나는 자네를 내쫓고 물건을 내가 가지겠네. 이 장소는 내 것이니, 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그는 첫째, 둘째, 셋째 임차인에게 그렇게 하여 임대료를 그들 모두에게 곱절로 올리고, 그들의 간청을 못 들은 체했습니다. 대가족을 거느리고 있는 셋째 임차인이 저항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는 경찰을 부르고 관리로 하여금 문에 압류표시를 붙이게 하고, 그 불쌍한 임차인을 내쫓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기의 저택에서 관리인들을 게으름뱅이들로 몰아 벌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로 떼어둔 몫까지 압류할 구실을 찾아내기 위하여 관리인들의 장부를 검사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죽어가고 있는 아들을 두고 있어 많은 지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약값을 치르기 위하여 그의 주인의 기름을 일부 팔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탐욕스러운 주인에게 줄 것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나리,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제 가엾은 아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음에 제가 더 일하여 나리께서 정당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을 갚아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리께서도 아시다시피 제 형편상 나리께 드릴 것이 없습니다.’

‘자네가 줄 수 없어? 자네가 나에게 줄 수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자네에게 보여주겠네.’ 그는 그 가엾은 관리인을 데리고 기름 압착기로 가서 그가 자기의 가족들을 위하여, 그리고 밤에 자기의 아들 곁에서 그를 간호할 수 있게 해줄 등잔에 기름을 넣으려고 남겨두었던 소량의 기름을 빼앗아갔습니다.

한편 세리는 자기의 상관에게 갔는데, 그 상관은 그가 징수한 세금을 받은 다음 그에게 말했습니다. ‘3백 70아스가 모자라는구먼. 어떻게 된 일인가?’

‘예, 제가 말씀드리지요. 그 마을에는 슬하에 일곱 명의 자녀를 둔 한 과부가 있습니다. 맏이만 일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애는 자기의 배를 몰고 호숫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는 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애의 팔이 너무 약해서 노들과 돛을 조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애는 배를 부릴 조수를 부릴 돈도 없습니다. 그 애는 호숫가 근처에서만 고기잡이를 하기 때문에 고기를 많이 잡지 못해서 그가 잡는 고기로는 불쌍한 여덟 식구를 먹여 살리기에도 벅찹니다. 그래서 저는 세금을 거둘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지난회에 이어서 계속)

 

‘알겠네. 하지만 법은 법일세. 법이 동정적인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일 걸세! 모두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한 이유들을 찾아낼 테니까. 그들이 세금을 낼 수 없다면, 그 젊은이에게 직업을 바꾸고 배를 팔라고 하게.’

‘그것이 그들의 밥벌이입니다. 미래에도 그렇고요…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아버지의 추억이기도 하고요.’

‘나는 이해할 수는 있네. 하지만 타협하는 것은 불가능해.’

‘좋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들의 유일한 재산을 빼앗긴 불행한 여덟 사람을 눈 뜨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제가 3백 70아스를 내겠습니다.’

이런 일들을 하고 나서 두 사람은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헌금함이 있는 방을 지나가면서 바리사이는 보라는 듯 품에서 묵직한 돈주머니를 꺼내 마지막 한 닢까지 헌금함에 털어 넣었습니다. 그 주머니 속에는 상점 임차인에게서 받아낸 돈과 관리인에게서 빼앗아 즉시 장사꾼에게 판 기름 값이 들어 있습니다. 한편 염세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떼어놓은 다음 한 줌의 작은 동전들을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두 사람 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을 다 바쳤습니다. 바리사이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마지막 한 푼까지 바쳤기 때문에, 외관상으로는 더 후하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저택에 다른 돈을 가지고 있고, 돈 많은 환전상들에게 빌려준 돈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주님 앞으로 갔습니다. 바리사이는 맨 앞, 히브리인들의 마당이 있는 경계, 성소 바로 앞으로 갔고, 세리는 뒤쪽 거의 여자들의 마당으로 통해 있는 둥근 천장 밑에서 하느님의 완전에 비하여 자기는 얼마나 비참한가 하는 생각에 짓눌려 몸을 숙인 채로 있었습니다. 두 사람 다 기도했습니다.

바리사이는 마치 자기가 그곳의 주인이고, 자기가 거기 있는 것이 방문객들에게 영광이라도 되는 듯이 꼿꼿이 서서 말했습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영광인 집안에 계시는 당신을 공경하러 왔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제 안에 계신다는 것을 느끼지만, 제가 의인이기 때문에 왔습니다. 저는 의인으로 행동할 줄 압니다. 저는 제 공로만으로도 제가 의롭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율법에 규정된 대로 제가 의인인 것에 대하여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저와 동시에 한 줌의 작은 동전들을 헌금함에 집어넣은 저 세리와 같이 탐욕스럽지도 않고, 불의하지도 않고, 간통자도 아니고, 죄인도 아닙니다. 저는 당신께서도 보셨다시피 제가 몸에 지닌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이와 반대로 저 인색한 자는 자기의 돈을 두 몫으로 만들어 작은 몫을 당신께 바쳤습니다. 그자는 틀림없이 다른 몫은 진수성찬과 여자들을 위하여 남겨놓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깨끗합니다. 저는 더럽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깨끗하고 의롭습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제가 가진 모든 것에 대하여 십일조를 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거룩하기 때문에 깨끗하고, 의롭고, 복됩니다. 오, 주님, 이것에 유의하십시오.’

세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구석에서 성전의 값진 문들을 향하여 감히 눈을 들지 못하고 자기의 가슴을 치면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여기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의로우시고 거룩하시지만, 여전히 제가 여기 머무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는 사람은 죄인이고, 만일 그가 당신께로 오지 않는다면 마귀가 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오! 나의 주님! 저는 밤낮으로 당신을 공경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많은 시간 동안 제 일에 묶인 노예처럼 지냅니다. 그것은 제 이웃들 중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통의 원인이기 때문에 저를 낙심하게 하는 불유쾌한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 상관들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 매일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오, 나의 하느님, 제 상관들에 대한 의무를 불쌍한 제 형제들에 대한 사랑으로 완화시킬 줄 알게 하시어 제가 제 일로 인하여 단죄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사랑으로 행해진다면, 모든 일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사랑이 항상 제 마음속에 머물러 있게 하시어, 당신께서 큰 죄인인 저를 참아주시듯이 비참한 인간인 제가 제 부하들을 인내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주님, 저는 당신을 더 섬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전에 드리기로 되어 있는 돈을 헌금함에 넣어 죄 없는 불쌍한 사람 여덟 명에게 비참하게 눈물 흘리게 하기보다는 그 불행한 여덟 마음을 구해주기 위하여 그것을 쓰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 주님, 그러나 만일 제가 잘못 생각했다면, 알려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마지막 한 푼까지 당신께 바치고 빵을 구걸하면서 걸어서 제 고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저로 하여금 당신의 정의를 깨닫게 해주십시오. 주님, 저는 큰 죄인이오니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이것이 비유입니다. 내가 엄숙하게 여러분에게 말하겠는데, 바리사이는 모리아 산을 올라가기 전에 그가 저질러 왔던 죄들에 새 죄를 보태서 성전에서 나온 데 반해 세리는 의롭게 되어서 성전에서 나왔고, 하느님의 축복이 그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가서 거기 머물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겸손하고 자비로웠고, 그의 행동들은 말보다 훨씬 더 거룩했었던 반면, 바리사이는 말과 겉으로만 착하고, 마음속으로는 그의 마음의 교만과 냉혹함으로 인하여 마귀가 되었고, 마귀로 행동했고, 그래서 하느님께서 그를 미워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조만간 낮아질 것입니다. 현세에서가 아니라면, 내세에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입니다. 사람의 행동의 참다운 실재가 보이는 하늘에서는 특히 그러할 것입니다.

자캐오, 갑시다. 자캐오와 함께 있는 여러분과 내 사도들과 제자들도 가자. 나는 여러분에게 개별적으로 계속 말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분께서는 겉옷으로 감싸시고 자캐오의 집으로 돌아가신다.

 



522. 자캐오의 집에서 회개한 사람들과 함께. 영혼과 윤회설의 오류

1946. 11. 3.

그들은 모두 넓고 아무런 장식이 없는 방에 모여 있다. 한때 이것은 틀림없이 아름다웠겠지만, 지금은 큰방일 뿐이다. 그들 모두는 식당이나 침실들에서 의자들과 작은 침대들을 가져다놓고 선생님의 주위에 앉아 있다. 그들은 그분을 긴 털 양탄자를 깐, 조각된 나무로 만들어진 일종의 안락의자에 앉으시게 하였다. 그것은 집안에서 가장 호화로운 가구다.

자캐오는 그들끼리 추렴한 돈으로 산 작은 농장에 대하여말하고 있다.

“저희는 결국 뭔가를 해야 했습니다! 한가함은 죄를 피하는 데 좋은 약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직은 비옥한 땅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저희처럼 방치되었었고, 저희처럼 가시덤불, 돌, 척박함, 잡초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니까가 저희에게 자기의 농부 하인들을 보내서 방치되었던 우물들을 청소하고, 밭을 깨끗이 정리하고, 남아 있는 몇 그루밖에 안 되는 나무들을 전지하고, 새 나무들을 심는 방법을 가르쳐주게 했습니다.

저희는 참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람의 거룩한 노동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희에게 몹시 생소한 이 일에서 저희는 정말로 새로운 삶을 찾아냅니다. 저희 주위의 어떤 것도 저희의 과거를 생각나게 하지 않습니다. 저희의 양심들만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저희는 죄인입니다… 당신께서는 그것을 보러 가시겠습니까?”

“우리는 함께 이곳을 떠나 요르단 강 쪽으로 가면서 여러분의 농장에 들르겠소. 당신은 그것이 강으로 가는 길가에 있다고 나에게 말했지요…”

“예, 선생님. 그러나 그것은 유쾌한 볼거리가 아닙니다. 집은 허물어져 가고 있고, 그 안에는 가구가 전혀 없습니다. 저희는 모든 것을 살만한 돈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저희의 이웃에게 저희가 입힌 손해를 배상한 후에는 말입니다. 너무 나이가 많아서 어떤 불편들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여기서 자는 데메티스, 발렌스, 레위를 빼놓고는 약간의 건초로 임시변통해야 합니다, 주님.”

“나는 아주 자주 그것조차도 가지지 못했었소. 자캐오 나도 건초 위에서 자겠소. 나는 최초의 잠들을 건초 위에 잤는데, 그 잠들은 사랑에 의하여 지켜지고 있었기 때문에 평화로웠소. 오늘 밤에 나도 건초 위에서 잘 수 있는데, 나는 착한 뜻이 되살아난 사람들 가운데에서 잘 것이기 때문에 그 잠이 불안하지 않을 거요.”

그분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최초로 구속된 여러 나라 출신의 사람들을 참으로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시는데, 그분의 눈길은 마치 애무와도 같다.

그들도 그분을 바라본다… 그들은 쉽게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아니다. 반대로 그들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흐르게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의 얼굴들은 그대로 그들의 악한 과거가 쓰여 있는 책들과도 같다. 지금은 그들의 새 생활이 그 말들의 거칠음을 가려준다 해도, 그들이 어떤 심연에서 빛을 향하여 올라오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을 만큼은 그 말들을 듣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착한 뜻의 사람들이 되었다고 선생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때 그들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구름이 걷히고 그 얼굴들이 환하게 빛나며, 그들의 눈은 자신감을 얻고, 초자연적인 소망과 정신적인 만족감의 빛이 그들의 눈에서 빛난다.

그러자 자캐오가 말한다.

“그럼 당신께서는 제가 해온 것을 승인하시는 겁니까? 보십시오. 선생님, 그날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저는 정말로 신체적으로 당신을 따르기를 원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날 저녁에 데메티스가 어떤 일로… 그의 악명 높은 일들 중 하나로 인하여 저에게 왔었습니다… 그에게는 돈이 필요했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오는 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도시가 거룩하다고 말합니다만, 그것은 치욕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그 도시에 치욕을 가져오는 최초의 사람들은 마치 저희가 나병환자들인 것처럼 저희에게 돌을 던지기를 원하는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 죄들을 말해야 하지, 그들의 죄들을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는 남아 있는 돈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것 모두를 당신께 드렸으니까요. 제 집에 아직 있는 돈도 이미 준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가 고리대금으로 빼앗았던 사람들에게 돌려주려고 그 돈을 나누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나에게는 돈이 없네. 그렇지만 나는 보물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가지고 있네.’

저는 제 회심과 당신의 말씀들과 제가 제 안에 가지고 있는 평화를 그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말을 많이 했는지 새벽빛이 안으로 비쳐 들어와 저희의 얼굴들을 희게 비추었고, 제가 여전히 말하고 있는 동안에 등불들이 불필요해졌습니다.

제가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가 저희가 앉아 있던 식탁을 주먹으로 세게 치면서 이렇게 외쳤다는 것은 기억합니다. ‘메르쿠리우스가 한 추종자를 잃었고 사티로스들이 한 동무를 잃었네. 이 돈도 받게. 이 돈은 범죄적 행위에는 충분하지 않지만, 거지에게 빵을 사줄 수는 있을 걸세. 그리고 나도 받아주게. 나는 그 숱한 악취를 맡은 다음에 향기와 친해지고 싶네.’ 그렇게 하여 그는 저와 함께 남아 있었습니다.

저희는 함께 예루살렘으로 갔었습니다. 저는 몇 개의 물건들을 팔려고, 그는 모든 약속들을 취소하려고요. 그리고 돌아오면서 저는 말했습니다.―저는 오래간만에 성전에서 어린이와 같이 깨끗하고 평화로워진 마음으로 기도했었습니다―저는 독백했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을 따르는 길이 아닐까? 그리고 예리코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마도 그분을 더 잘 따르는 것이 아닐까? 거기에서는 나처럼 불행한 나의 세리 친구들, 노름꾼들, 뚜쟁이들, 고리대금업자들, 갤리선 노예들과 도형수들, 노예들의 감독들, 모든 비참한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사람들, 무법천지이고 동정심 없는 군인들, 취중에 가책을 잊기 위하여 소란 떠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이 그들의 저주받은 돈을 투자하거나, 사업을 제안하거나 나를 연회들이나 다른 불명예스러운 더러운 짓들을 하자고 권하러 오니까 말이야.

시민들은 나를 업신여기고, 히브리인들은 나를 항상 죄인으로 여기지만, 저 사람들은 자신들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와 같다. 그들은 불결하지만, 마음속에 그들을 선으로 이끄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는 악을 행하는 데 있어 그들을 도왔다. 어쩌면 그들은 내 권유 때문에, 내가 간혹 그들에게 부탁한 것 때문에 죄지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선을 향하여 오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 의무다. 내가 피해를 입힌 사람들에게 보상한 것처럼, 내가 내 동료 시민들에게 배상한 것처럼, 나는 그들에게 행한 모든 잘못들을 바로잡도록 힘써야 한다.’

그래서 저는 여기 남아 있었습니다. 어느 때는 이 사람이, 어느 때는 저 사람이 이 도시나 저 도시에서 왔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들 모두가 데메티스처럼 행동하지는 않았습니다. 더러는 저를 조롱하고 나서 도망쳤고, 더러는 주저했고, 더러는 여기 머물렀지만, 얼마 후에는 그들의 비참한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이 사람들은 남았습니다. 지금 저는 이것이 저희 자신과 싸우면서, 저희를 용서할 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견뎌내면서 제가 당신을 따르는 길이고, 저희는 이렇게 당신을 따라야 한다고 느낍니다. 세상이 잊어주지 않는 것을 볼 때, 기억들이 되살아날 때 저희 마음은 피를 흘립니다… 그런데 그 기억들은 너무 많고, 너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어떤 기억들에서는 그것들이…”

“항상 저희의 얼굴에 저희의 죄를 집어던지고, 내세에서 복수를 다짐하는 무시무시한 네메시스입니다.”

한 사람이 말한다.

“그것들은 그들이 기진맥진함에도 불구하고 일을 시키느라고 제가 때렸던 사람들의 통곡들입니다.”

“그것들은 고리대금으로 그들의 전 재산을 빼앗은 다음에 노예로 만든 사람들의 저주들입니다.”

“그것들은 제가 법의 이름으로 그들의 마지막 소유물까지 몰수했던 세금을 낼 능력이 없었던 과부와 고아들의 애원들입니다.”

“그것들은 정복된 나라들에서 패전으로 인하여 공포에 떠는 무방비상태의 사람들에게 행한 잔학행위들입니다.”

“그것들은 제가 모든 것을 흥청망청하며 낭비하는 동안 궁핍으로 인하여 죽은 제 어머니, 제 아내, 제 딸의 눈물들입니다.”

“그것들은… 오! 제 죄에는 붙일 이름이 없습니다! 주님, 제 두 손은 피로 더럽혀지지 않았고, 저는 돈을 훔치지 않았고, 지나친 세금을 매기지 않았고,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았고, 패배한 원수들을 때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모든 불행들을 이용했고, 패전한 사람들의 죄 없는 딸들과 고아 소녀들과 한 조각 빵을 얻기 위하여 상품처럼 팔려온 여자들을 희생시켜서 돈을 벌었습니다.

저는 군대를 따라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기근이 든 곳, 강이 범람하여 식량이 없어진 곳, 전염병으로 어린 생명들이 보호받지 못한 채 있는 곳에서 그 기회들을 잡아 그들을 악명 높은, 그러나 죄 없는 상품으로 거래했습니다. 제가 거기서 돈을 벌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악명 높은 것이었고, 그것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것인지를 그들은 아직 알지 못했기 때문에 죄 없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제 두 손에는 유혹당한 소녀들의 처녀성이 있고, 정복된 도시들에서 잡아온 젊은 아내들의 정절이 있습니다. 제 상점들과… 유곽들은 유명했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그것을 아시는 지금 저를 저주하지 마십시오!…”

사도들은 무의식중에 지금까지 말한 이 마지막 사람에게서 떠났다. 예수께서는 일어서서 그에게 다가가신다. 그분께서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사실이오! 당신의 죄는 중하오. 당신은 많이 속죄해야 하오. 그러나 자비인 나는 당신이 마귀 자신이고 땅의 모든 죄들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해도,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은 모든 것에 대하여 속죄할 수 있고, 참되시고 위대하시고 아버지다운 하느님께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당신에게 말하오.

만일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의 뜻을 내 뜻에 합치시오. 나도 당신이 용서받기를 원하오. 나와 일치하시오. 그토록 악명 높고, 황폐하고, 상처자국들로 가득 차 있고, 당신이 죄를 버린 후에 낙심한 당신의 불쌍한 영혼을 나에게 주시오. 나는 당신의 영혼을 가장 큰 죄인들을 넣는 내 심장 위에 올려놓고 그것을 구속하는 제물로 나와 함께 가져가겠소. 가장 거룩한 피, 내 심장의 피, 사람들을 위하여 불살라질 그의 마지막 피가 가장 심한 폐허들에 부어져서 그것들을 재생시킬 거요.

당신의 희망을 당신의 엄청난 죄악보다 더 크게 하고, 하느님의 자비 안에 있게 하시오. 여보시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비는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한이 없기 때문이오.”

그는 자기의 어깨에 얹힌 그 손을, 자기의 갈색 옷과 건장한 어깨 위에 비하여 너무 창백하고 너무 야윈 그 손을 잡아 입 맞추고 싶어 하지만,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한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알아차리시고, 그에게 한 손을 내미시며 말씀하신다.

“여보시오. 이 손바닥에 입 맞추시오. 나는 그 입맞춤을 다시 찾아낼 터인데, 그것이 내 고통을 치료해줄 것이오. 입맞춤을 받은 손, 상처 입은 손, 사랑으로 입맞춤 받은 손, 사랑을 위하여 상처 입은 손. 오! 나는 모든 사람이 큰 희생자(the great Victim)에게 입 맞출 줄 알고, 그래서 그 희생자가 상처들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그 상처 하나하나에 구속된 모든 사람들의 입맞춤들과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죽기를 바라오!”

예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그분의 손바닥을 그 사람의 면도한 입술에 대고 계신다. 그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때 그는 로마인인 것 같다. 그분께서는 마치 그가 주님의 자비를 하느님의 손바닥에서 마심으로써 자기의 타는 듯한 가책의 갈증을 끈 다음에 만족하여 그분의 손에서 입술을 뗄 때까지 그대로 계신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자리로 돌아오신다. 그분께서는 지나가시며 아주 젊은 사람의 곱슬머리 위에 그분의 손을 얹으신다. 내가 보기에 그는 기껏해야 스무 살이나 되었을 것 같고, 그보다 더 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지금까지 전혀 말하지 않았다. 그는 분명히 히브리인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신다.

“그런데 내 아들, 자네는 자네의 구세주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텐가?”

젊은이는 고개를 들고 그분을 쳐다본다… 그 눈길에는 많은 말들이 들어 있다. 그것은 고통, 증오, 뉘우침, 사랑의 이야기이다.

예수께서는 약간 그에게로 상체를 숙이시고 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시며, 거기서 말없는 어떤 이야기를 읽으신 다음 말씀하신다.

“그래서 나는 자네를 ‘아들’이라고 불렀네. 자네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야. 같은 피를 나눈 모든 사람들과 외국인들을 하느님께서 자네를 용서하시는 것처럼 용서하게. 그리고 자네를 구원해준 사랑(Love)을 사랑하게. 잠깐 나를 따라 오게. 나는 자네에게 개인적으로 한 마디하고 싶네.”

젊은이가 일어나 예수를 따라간다. 그들 둘이서만 있게 되었을 때,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아들이여, 나는 자네에게 이것을 말하고 싶네. 주님께서는 자네를 많이 사랑하셨네. 비록 피상적인 판단으로는 그것이 나타나지 않지만 말일세. 자네는 인생에게 호된 시련을 당했네. 사람들은 자네에게 심각하게 상처를 입혔네. 그 두 가지는 자네를 돌이킬 수 없도록 파멸시킬 수 있었네. 그것들 뒤에는 자네의 영혼을 시샘하는 사탄이 있었네.

그러나 자네의 위에는 하느님의 눈이 있었고, 그 복되신 눈이 자네의 원수들을 중지시켜주셨네. 그분의 사랑은 자네가 가는 길에 자캐오를 보내셨네. 그리고 그분께서는 자캐오와 함께 지금 자네에게 말하고 있는 나를 보내셨네.

지금 나는 이 사랑 안에서 자네는 자네가 지금까지 가지지 못했던 모든 것을 발견해야 하고, 자네의 마음을 상하게 했던 것을 잊어야 하고, 자네의 어머니를 용서하고 또 용서해야 하고, 악명 높은 자네의 주인을 용서해야 하고, 자네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고 자네에게 말하겠네.

아들이여, 악한 방식으로 자네 자신을 미워하지 말게. 자네의 죄의 시간을 미워하지 그 죄를 떠나는 데 성공한 자네의 영혼을 미워하지는 말게. 자네의 생각이 자네의 영혼의 좋은 친구가 되게 하고, 그래서 그것들이 함께 완전에 이를 수 있게 하게.”

“제가, 완전이라고요!”

“자네는 내가 저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지? 그렇지만 저 사람은 심연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 있었네!… 그리고 아들이여, 고맙네!”

“무엇 때문에요, 나의 주님? 제가 주님께 감사드려야 할 텐데요…”

“자네가 나를 배반하도록 사람들을 매수하는 사람들에게로 가기를 원치 않은 것에 대해서 말일세.”

“오! 주님. 당신께서는 노상강도들인 저희마저도 업신여기지 않으시는 것을 제가 아는데, 그런 제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도 주님께 크릿 산에 어린양을 가져다 드린 사람들 중에 있었습니다.

저희 중 한 사람이 지금 로마인들에게 붙잡혀 있습니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그는 확실히 초막절 전부터 노상강도들의 피신처에서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그는 당신께서 모딘 근처의 어떤 계곡에서 하셨던 말씀을 저에게 말해주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저는 아직 노상강도들과 함께 있지는 않았으니까요. 저는 지난 아다르 달 말에 그들에게 갔다가 에타님 달 초에 그들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의 감사를 받을 만한 일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서는 친절하셨습니다. 저도 착해지기를 원했고, 그래서 저는 당신의 한 친구 분에게 알렸습니다… 제가 자캐오를 그렇게 부를 수 있습니까?”

“그럼, 그렇게 부를 수 있네.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내 친구들일세. 자네도 내 친구야. “

“오!… 저는 당신께서 경계하시도록 알려드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알려드리는 것은 감사받을 만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자네에게 되풀이해 말하네만, 나는 자네가 나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자네 자신을 팔지 않았기 때문에 자네에게 감사하는 걸세. 그것이 중요하네.”

“그러면 알려드린 것은 그렇지 않고요?”

“아들이여, 그 어떤 것도 증오가 나를 공격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네. 자네는 급류가 범람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

“예, 저는 그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야베스 길앗 근처에 있었는데, 그때 저는 요르단 강으로 흘러들어가기 전에 범람한 강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것을 보았습니다.”

“무언가가 그 물을 막을 수 있었을까?”

“아무것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이 범람하여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몇 채의 집들도 휩쓸려갔습니다.”

“증오도 그와 같네. 그러나 증오는 나를 휩쓸어가지 못할 것이야. 나는 증오에 잠기기는 하겠지만, 파멸하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그 쓰디쓴 시간에 죄 없는 사람을 미워하려고 하지 않았던 사람의 사랑이 내 위안이 될 것이고, 어둠(Darkness)의 그 시간에 어둠 속에서 내 빛이 될 것이고, 쓸개와 몰약을 섞은 포도주의 잔속에서 내 단맛이 될 걸세.”

“당신께서…? 당신께서는 당신 자신에 대하여 마치 …인 것처럼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치… 그 잔은 노상강도들을 위한 것,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으로 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도둑이 아니십니다! 당신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당신께서는…”

“구속자일세. 아들이여, 나에게 입 맞추어주게.”

예수께서는 두 손으로 젊은이의 머리를 잡고 그의 이마에 입 맞추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그 젊은이의 입맞춤을 받으시려고 몸을 숙이신다. 그것은 야윈 뺨을 스치는 수줍은 입맞춤이다… 그 다음에 젊은이는 울며 예수의 가슴에 쓰러진다.

“아들이여, 울지 말게! 나는 사랑에 의하여 희생되네. 비록 그것이 인성에는 고통스럽다 해도, 그것은 항상 즐거운 희생일세.”

그분께서는 젊은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품에 안고 계시다가 그의 손을 잡고 방금 전에 베드로가 있던 자리로 돌아오신다.

예수께서는 다시 말씀하기 시작하신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동안에 당신들 중의 한 사람,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사람이 어떤 것을 설명해달라고 나에게 청했소. 우리는 곧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간 다음에 서로 헤어져야 할 테니 지금 물어보시오.”

“제가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것을 알고 싶어 합니다. 자캐오도 그것을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저희 중에 당신의 종교를 따르는 다른 사람들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저희는 당신의 제자들이 이곳으로 지나갔을 때 그들에게 물었습니다만, 그들도 저희에게 분명하게 설명해주지 못했습니다.”

“당신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이오?”

“저희는 저희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저희는 적어도 그것을 알기는 했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희 조상들이… 그러나 저희는 고대의 책들을 읽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짐승 같았으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더 이상 이 영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희는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영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혹시 우리의 이성인가요?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다면 저희는 영혼이 없이 살아왔어야 할 테니까요. 그런데 저희는 영혼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는 그것이 무형의 것이고 불사불멸의 것이라고 들었는데, 만일 그것이 이성이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생각은 형체가 없지만 그것은 우리 생명과 함께 끝나므로 불멸의 것은 아닙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은 다음에는 더 이상 생각하지 못하게 되니까요.”

“여보시오, 영혼(a soul)은 생각이 아니오. 영혼은 영(the spirit)이고, 생명의 무형의 주요원인(prime cause)이고, 사람 전체에게 생명을 주고 사람이 죽은 후에도 존속하는, 만져서 느낄 수는 없지만 참된 원리(true principle)요. 그것은 참으로 숭고한 것이어서 가장 강력한 생각도 그것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오.

생각에는 끝이 있지만, 영혼에는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소. 지복을 누리든, 지옥에 떨어지든 그것은 계속 존재하오. 그 영혼을 깨끗하게 보존하거나 그것을 더럽혔다가 다시 깨끗하게 하여 창조주께서 사람에게 그의 인성을 살리기 위하여 주셨던 대로 그분께 돌려드릴 줄 아는 사람들은 복되오.”

“그렇지만 영혼은 저희 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눈처럼 우리 위에 있습니까?”

“우리 안에 있소.”

“그럼 죽을 때까지 갇혀 있겠군요? 노예로요?”

“아니오. 여왕이오. 영원하신 생각 안에서 영혼(soul) 즉 영(spirit)은 사람 안에서, 창조되고 사람이라고 이름 지어진 동물 안에서 다스리는 것이오. 영혼은 여왕의 권위와 운명을 가진 여왕으로 창조되었는데, 그것은 모든 왕들과 아버지들의 왕이시고 아버지이신 분, 그분의 숨결과 모습, 그분의 선물과 권리로부터 오고, 그 사명은 사람이라고 불리는 피조물을 위대한 영원한 나라의 왕으로, 내세에서 신(a god)으로, 가장 숭고하시고 유일하신 하느님의 집에서 ‘산 자(a living being)’로 만드는 것이오.

그의 시녀들은 사람의 모든 성덕들과 기능들이고, 대신은 사람의 착한 뜻이고, 하인은 생각이고, 사람의 생각은 그의 종이고 그와 동시에 제자요. 생각은 영으로부터 능력과 진리, 정의와 지혜를 얻고, 왕의 완전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오. 영의 빛이 없는 생각은 항상 허점투성이이고 모호할 것이고, 자기 영혼의 왕권을 잃었기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 분리된 사람들에게는 신비들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인 진리들의 이유를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거요.

사람의 생각은 그것이 이해하고, 땅을 떠나 지성(the Intelligence), 능력(the Power), 한마디로 말하여 천주성(the Divinity)을 향하여 위로 급히 올라가는 데 필요불가결한 지렛대와 그 받침점이 없다면, 눈이 침침하고 어두울 거요.

데메티스,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소. 왜냐하면 당신이 항상 환전상만은 아니었으므로 당신은 이것을 이해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오.”

“선생님, 당신께서는 참으로 선견자십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환전상만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그것은 빛이 내려오는 마지막 단계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만일 영혼이 여왕이라면, 그것은 왜 사람의 악한 생각과 악한 육체를 다스리지 않고, 굴복시키지 않습니까?”

“굴복시키는 것은 자유도, 공로도 아닐 것이오. 그것은 압제일 거요”

“그러나 생각과 육체는 영혼을 압도하기도 합니다. 이건 저와 저희에 대하여 말하는 것입니다만, 그것들은 너무 자주 영혼을 노예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영혼이 우리 안에 노예의 모습으로 있느냐고 여쭌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그토록 숭고한 것을―당신께서는 그것을 ‘하느님의 숨결과 그분의 모습’이라고 부르셨지요―하등의 존재들에 의하여 비하되도록 허락하실 수 있습니까?”

 

 

(다음회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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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생각에 의하면 영혼은 노예상태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소. 당신은 하느님과 사람의 원수에 대하여 잊고 있소? 지옥의 영들은 당신들에게도 알려져 있소.”

“예. 그런데 그 모든 영들은 잔인한 욕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어린 시절을 돌이켜볼 때 저는 제가 이런 인간이었고, 이런 인간이 되어 노년의 문턱에까지 이른 것은 오로지 지옥의 영들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그 시절의 길 잃은 어린이를 다시 찾아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제 어린 시절의 순수함으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어린이가 될 수 있겠습니까?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 가능합니까?”

“되돌아갈 필요는 없소.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거요. 흘러간 날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소. 흘러간 시간을 돌아오게 할 수도 없고,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소. 그리고 그것은 필요하지도 않소.

당신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피타고라스학파의 학설이 알려진 곳에서 왔소. 그것은 틀린 학설이오. 영혼들은 땅 위에서 그들이 머무르는 기간이 지난 다음에는 어느 육체를 입고 땅 위로 되돌아오지 않소. 영혼들은 동물의 육체를 입을 수도 없는데, 그와 같이 초자연적인 존재가 야수의 안에서 사는 것은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오. 그것은 사람의 육체 안으로도 돌아올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그 영혼이 여러 육체들로 옷 입었었다면, 그 육체가 최후의 심판 때 어떻게 상받을 수 있겠소?

그 학설을 믿는 사람들은 영혼은 연속적인 삶들 안에서 연속적인 정화들을 통하여 마지막 윤회전생(reincarnation)에 이르러서야 상 받을 만한 완전에 이르기 때문에 마지막 육체가 환호한다고 말하오.

그것은 오류이고, 모욕이오! 그것은 하느님께서 제한된 수의 영혼들만을 창조하실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오류이고, 하느님에 대한 모욕이오. 또한 그 이론은 사람이 너무 타락하여 큰 어려움을 통해서만 상 받을 만한 자격을 얻는다고 여기므로 오류이고, 사람에 대한 모욕이 되는 것이오.

백 명 중 아흔아홉 명에게는 즉시 상이 주어지지 않고, 내세에서 정화(purification)가 요구될 거요. 그러나 정화는 기쁨에 대한 준비요. 그러므로 정화중인 사람은 이미 구원받았소. 사람이 한번 구원받으면 최후의 심판 후에 자기의 몸과 함께 환호하게 될 거요.

사람은 여기서 한 번의 삶을 살았기에 그는 자기의 영혼을 위하여 하나의 육체만을 가질 것이며, 그는 자기의 부모가 만들어준 육체와, 창조주께서 자기의 육체에 생명을 주도록 창조해주신 영혼과 함께 상급을 받고 기뻐하게 될 거요.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다시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하오. 그러나 자기의 자유의지를 통하여 재창조되는 것은 가능하고, 하느님께서는 그런 의지를 축복하시고, 도와주시오. 당신들 각자는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소.

그리하여 죄 있고, 사악하고, 더럽고, 비행을 저지르고, 도둑질하고, 타락하고, 타락시키고, 살인자이고, 불경하고, 간통자인 사람이 회개의 정화를 통하여 영적으로 다시 살아나고, 마치 구속되려는 의지가 보물을 감추고 있는 유해한 껍질을 공격하여 파괴하는 산(酸)처럼 옛 사람의 부패한 알맹이를 부수고, 훨씬 더 타락한 심리적 자아를 흩어버리고, 자신의 영혼을 발가벗긴 다음 그것을 정화시키고, 건강하게 회복시켜 그는 새로운 정신상태 즉 새롭고 깨끗하고 좋고 어린이와 같은 옷으로 옷 입게 되오.

오! 그것은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고, 재창조된 영혼을 합당하게 덮어 그를 온전한 거룩함인 그 영혼의 초창조(supercreation)에 이르기까지 보호하고 도와줄 수 있는 옷이오. 즉 그 완성된 거룩함은 내일에는, 인간적인 생각과 인간적인 시간의 단위로 보면 먼 장래이겠지만, 영원의 생각으로 보면 매우 가까운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광스러울 것이오.

모든 사람은 만일 자기가 원하기만 한다면, 자기 안에 자기의 어린 날의 소년, 어머니가 그 품안에 껴안고,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하느님의 천사가 사랑하고,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감탄하셨던 다정하고, 겸손하고, 솔직하고, 착한 소년을 재창조할 수 있소.

당신들의 어머니들! 그분들은 아마도 큰 성덕의 여인들이었을 것이오… 하느님께서는 그분들의 덕행을 상주시지 않고 내버려두지 않으실 거요.

그러므로 모든 유덕한 사람들을 위하여 유일한 것, 즉 착한 사람들을 위한 하느님의 나라만이 있을 때, 그분들과 결합될 수 있도록 똑같이 유덕하게 되려고 애쓰시오. 혹시 그분들이 착하지 않아서 그분들이 당신들의 파멸에 이바지했을 수도 있소.

그러나 설혹 그분들이 당신들을 사랑하지 않았고, 당신들이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고, 사랑의 결핍으로 인하여 당신들이 나쁘게 되었다 해도, 하느님의 사랑이 당신들을 포옹한 지금 당신들은 거룩하게 되어 천상의 기쁨을 가지고 모든 사랑을 능가하는 사랑(the Love) 안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하시오. 다른 질문이 더 있소?”

“없습니다, 주님. 저희는 모든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저희에게 다른 질문은 없습니다…”

“나는 며칠 동안 요한과 안드레아를 당신들에게 남겨두겠소. 그 다음에 나는 착하고 지혜로운 제자들을 당신들에게 보내주겠소. 나는 야생 망아지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주님의 길들과 그분의 목장들을 알기를 원하오. 왜냐하면 나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왔고, 모든 이들을 똑같이 사랑하기 때문이오. 일어나시오, 갑시다.”

그분께서는 앞장서서 개간된 정원으로 나오시고, 그분의 사도들이 그분을 바짝 따라 나오며 부드럽게 불평하며 말한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당신께서 택하신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일이 드물 정도로 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그것에 대하여 불평하느냐? 너희는 자기들이 사랑하는 누군가의 마음을 끌기를 원할 때 세상에서도 그렇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나 자신들의 전존재로 우리를 사랑하는 것을 우리가 아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기교가 필요치 않다. 서로 기쁨과 평화 속에 있으려면, 서로를 바라보기만 하면 충분하다.”

예수께서는 하느님다운 미소, 참으로 하느님다우셔서 기쁨을 전달하기에 충분한 그런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신다.

그러자 사도들은 더 이상 불평하지 않고, 서로를 사랑하는 큰 기쁨 속에서 더 없이 행복하게 서로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