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영문판번역)/7권 공생활 셋째 해(하)

하사시7권 [520. 예리코에서. 자캐오의 사도직(2) 521. 예리코에서. 두 가지 비유: 병자와 건강한 사람, 바리사이와 염세리(1)]

Skyblue fiat 2026. 3. 27. 13:12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7권 공생활 셋째 해(하) p353~p364


520. 예리코에서. 자캐오의 사도직(2)

1946.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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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부분)
사람들이 예수를 몹시 기다린다. 많은 사람들이 시내에 가까운 들판에서 그분을 기다리고 있다. 높은 호두나무에 올라가 있는 망보는 사람이 소리 지른다.

“하느님의 어린양께서 오신다!”

그 소리와 동시에 사람들은 일어나서 안개 낀 이른 황혼 빛을 받으며 오고 계시는 예수께로 달려온다.

“선생님! 선생님! 저희는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희 병자들! 저희 자녀들! 당신의 축복을! 노인들은 평안한 임종을 위하여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 만일 당신께서 저희에게 강복해주신다면, 저희에게 불행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 모두가 동시에 말한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반복적으로 한 손을 들어 강복하시며 거듭 말씀하신다.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 평화!”

여전히 그분과 함께 있는 사도들은 군중에게 치여 예수로부터 떨어져 있고, 그분께서는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부드럽게 불평하는 바로 그 사람들로 인하여 제대로 걸으실 수 없다.

가엾은 자캐오는 예수께로 가려고, 자기의 말을 예수께 들리게 하거나 적어도 자기를 그분의 눈에 띄게 하려고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분투한다. 그러나 그는 몹시 키가 작고, 날쌔지도, 힘이 세지도 못하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군중의 파도에 밀려나게 되고, 그의 목소리는 떠들썩한 소리에 묻혀버리고, 그의 몸은 들썩이는 머리들, 팔들, 옷들의 혼란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가 동정을 얻기 위하여 애원하고 때로 비난해도 그것은 헛수고일 뿐이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들에게 쾌락을 주는 것에는 이기적이고, 약한 이웃에게는 잔인하다.

가엾은 자캐오는 자기의 온갖 노력으로 녹초가 되고, 그 노력의 무용함을 확신하고는 더 이상 기꺼이 다툴 의지를 잃고, 완전히 낙심하여 체념한다. 사실 사람들이 똑같은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개울들처럼 모든 길들에서 예수께서 걷고 계시는 길로 쏟아져 들어오는데, 어떻게 그가 성공할 수 있겠는가? 새로운 물결들처럼 흘러들어와 군중을 점점 빽빽하게 만들어 그 안에 갇히는 것이 무서울 정도인 새 지류 하나하나가 가엾은 자캐오를 뒤로 밀어낸다.

타대오가 그를 보고, 군중이 밀어붙여 가로막고 있는 길모퉁이에서 그를 나오게 하려고 군중을 뚫고 길을 내보려고 해본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다 타대오도 뒤에서 미는 사람들에게 밀려나게 되어 그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토마스가 똑같은 목적으로 자기의 건장한 체구를 믿고 팔꿈치로 밀면서 그 우렁찬 목소리로 외친다…

“비키시오.”

아아! 그러나 사람들은 바위보다 더 단단하고, 동시에 생고무보다 더 탄력 있는 담장이다. 그 담은 휘기는 하지만, 뚫리지는 않는다. 이제는 감싸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끊을 수 없는 사슬이다. 토마스도 단념한다.

디디모가 사람의 물결에 휩쓸려 간 마지막 사도이기 때문에 자캐오는 모든 희망을 잃었다. 마침내 사람의 흐름이 지나간다… 다 지나갔다… 헝겊 조각, 옷술, 옷단, 머리핀, 옷의 죔쇠 따위가 땅 위에 널려 있어 북새통이 얼마나 지독했는지를 증언해준다. 작은 어린이 샌들 한 짝까지 있는데, 완전히 납작하게 찌그러져서 그것을 잃은 작은 발을 서글프게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자캐오도 군중에 의하여 어린 주인에게서 벗겨진 그 작은 신발처럼 서글프게 사람들을 뒤따라가기 시작한다.

예수께서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구부러진 길로 인하여 불쌍한 자캐오의 눈에는 예수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군중의 꽁무니에서 한때 그가 계산대를 가지고 있었던 광장에 이르렀을 때, 그는 사람들이 멈추어 서서 소리 지르고, 간청하고, 애원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는 또한 예수께서 어떤 집의 낮은 층계 위에 올라서서 머리와 두 팔을 흔드시는 것을 본다. 그분께서 무어라고 말씀하시지만, 군중의 함성 때문에 그는 알아들을 수 없다.

마침내 그는 예수께서 어렵게 받침대에서 내려와 다시 걸으시다가 바로 그의 집이 있는 구역을 향하여 방향을 바꾸시는 것을 본다. 그러자 자캐오는 다시 대담해진다. 사람들이 많지만 광장이 넓어 군중이 덜 밀집되어 있다… 그래서 결심이 굳건하고 부상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마치 그것이 그다지 두껍지 않은 산울타리인 것처럼 뚫고 지나갈 수 있다.

그래서 자캐오는 쐐기, 쇠뇌, 공성구가 되어, 사람들에게 부딪치고, 들이받고, 암시하면서 주먹질을 하거나 얼굴을 주먹으로 맞고, 팔꿈치에 배가 찔리고, 정강이에 발길질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군중 사이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 그는 광장 반대편에 있다… 그러나 광장은 여기서 좁아진다. 그는 다시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담을 만난다. 그는 이미 그의 집 가까이에 서 계시는 예수와는 몇 발짝만 떨어져 있다. 그러나 설혹 사막들과 강들이 그의 집과 그 사이에 있다 하더라도, 그는 그분께 도달하는 데 더 큰 희망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는 화나서 명령조로 외친다.

“나는 내 집으로 가야 하오! 나를 지나가게 해주시오! 당신들은 그분께서 내 집으로 들어가시려 하시는 걸 보지 못하시오?”

그는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말로 인하여 선생님을 다른 집들로 모시려는 사람들의 소원이 재점화된다. 어떤 사람들은 가엾은 자캐오를 조롱하며 웃고, 어떤 사람들은 그에게 심술궂게 대답한다. 그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오히려 그들은 선생님께서 자캐오를 보시고 그의 말을 들으시는 것을 막으려고 소리 지르고 흥분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외친다.

“늙은 죄인인 당신은 그분에게서 이미 너무 많이 받았소!”

나는 과거의 징세와 분노의 기억이 그토록 심한 악의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초자연적인 것에 더 경도되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재물에 대한 사랑이 살아 있는 조그만 구석이 거의 항상 남아 있고, 거기에는 재물을 모으는 데 해를 끼친 사람에 대한 기억이 더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러나 자캐오에게 시련의 때는 지나갔다. 예수께서 그의 인내에 상을 주신다. 예수께서 큰소리로 외치신다.

“자캐오! 나에게로 오시오! 나는 자캐오의 집으로 들어가려 하니 그를 지나가게 해주시오.”

그들은 순종할 수밖에 없다. 군중은 자리를 내주기 위하여 자기들끼리 더 밀착하고, 자캐오는 피로로 얼굴이 붉어지고, 기쁨으로 상기되어 앞으로 나아온다. 그는 자기의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단추가 떨어진 옷과 허리띠의 술들이 앞에 있지 않고 등 뒤에 있어 그 허리띠를 바로잡으려고 애쓴다. 그는 자기의 겉옷을 찾는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그것은 상관없다. 이제 그는 예수 앞에 경의를 표하며 상체를 숙이고 있다. 공간이 부족하여 그는 상체를 더 숙일 수 없다.


“자캐오, 당신에게 평화. 내가 당신에게 평화의 입 맞출 수 있도록 이리로 오시오. 당신은 그걸 받을 만한 자격이 있소.”

예수께서는 참으로 기쁜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시는데, 그 미소는 그분을 젊어보이게 하는 젊은이다운 미소이다.

“오! 예, 주님. 저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주님, 당신께로 오기란 얼마나 어려운지요.”

자캐오는 자기에게 입 맞추시려고 몸을 숙이시는 예수와 같은 높이에 이르기 위하여 발끝으로 서서 가능한 한 한껏 키를 키우며 말한다. 그가 그렇게 하자 오른뺨의 할퀴어진 상처로 인하여 피가 흘러내리고 있고, 한쪽 눈이 멍들어 있는 것이 보인다. 아마 누군가의 팔꿈치로 그 부위를 얻어맞은 것일 게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입 맞추어주신 다음 말씀하신다.

“나는 이 수고 때문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나는 알고 있는 당신의 다른 노력들 때문에 당신에게 상주는 것이오. 그렇소, 그것은 사실이오. 나에게 이르는 것은 어렵소. 그러나 나를 만나는 데 있어 군중이 유일한 장애물이 아니고, 가장 어려운 장애물도 아니오.

그러나 나를 헹가래치다시피 한 여러분, 가장 어렵고, 가장 조직적이고, 죽이거나 극복하려고 애쓴 뒤에 늘 다시 생겨나는 장애물은 자기의 자아입니다. 나는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보았고, 모든 것을 평가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보았습니까? 나는 회개한 한 죄인을, 냉혹하고, 안락함을 좋아하고, 교만하고, 허영심이 많고, 음란하고, 인색했었던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사소한 일들에 있어서도 자기의 옛 자아를 버리고, 자기의 행동과 애정들도 바꾸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구세주에게로 오기 위하여, 그에게로 오기 위하여 투쟁하고, 겸손하게 간청하고, 조롱과 질책을 참을성 있게 받아들이고, 군중과 부딪쳐 육체에 고통당하고, 내가 전혀 눈길도 주지 않는 가운데서 그의 마음속에서 인내의 끝까지 밀고나갔습니다.

또한 나는 그에게서 다른 것들을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그것들을 알고, 그것들이 여러분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여러분은 그것들을 고려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은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와 함께 살지 않는데 어떻게 그것을 아십니까?’ 나는 대답합니다. 내가 사람들의 마음속을 알듯이 나는 사람들의 행동들도 압니다.

그리고 나는 의롭게 되는 방법을 알고, 나에게 이르기 위하여 걸어온 길의 거리에 비례하여, 영혼을 뒤덮었던 야생의 숲을 뿌리째 뽑아내고, 생명나무가 아닌 것을 제거하여 좋은 땅을 만들고, 생명나무를 자기의 자아의 왕으로 삼고, 그 나무가 공경 받을 수 있도록 성덕의 나무들로 에워싸고, 기어 다니기 때문에, 즉 부패를 원하거나 음탕하거나 아무 일도 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이것은 다양한 악한 열정들을 말하는 것입니다―부정한 어떤 짐승도 그 숲 안에 깃들지 못하도록 살피고, 다만 여러분의 이 영혼이 선하고 주님을 찬미할 수 있는 것, 즉 초자연적인 애정들, 노래하는 새들과 기꺼이 희생되려 하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인하여 완전한 찬미에 경도된 온유한 어린양들만이 거기에서 살도록 살피는 노력에 비례하여 상 줄 줄도 압니다.

내가 자캐오의 행동, 생각들, 수고를 본 것처럼, 나는 이 도시에서 나를 환영했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영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라는 것도 보았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정의에 따라 나를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동향인을 동정했을 것이고, 그의 과거를 그에게 상기시켜서 그를 모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과거는 자캐오가 취소했고, 하느님께서도 기억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다시 죄짓지 않는 한 하느님께서는 그분께서 이미 하셨던 용서를 번복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새 죄로 다시 심판받지, 이미 용서받은 죄로 심판받지는 않습니다.

지금 나는 여러분에게 말하고, 이것을 밤의 묵상의 주제로 여러분에게 줍니다. 나에 대한 참다운 사랑은 박수갈채에 있지 않고 내가 행하고 가르치는 것을 행하는 데 있으며, 상호간의 사랑을 실천하고, 겸손하고 자비롭게 되는 데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여러분의 물질적인 부분은 먼지만으로 만들어져 있고, 그 먼지는 항상 늪에 이끌리며, 그래서 그것은 결과적으로 만일 지금까지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이 여러분을 늪 위로 들어 올려 지탱하고 있는 힘, 즉 영혼이 실패들을 맛본 적이 없다 해도―그런데 사람은 죄인이고 하느님만이 죄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합니다―미래에 여러분의 영혼은 패배들을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지금 은총을 향하여 새로 태어난 늙은 죄인의 실패들보다 그 수와 중대성에 있어 더 큰 실패들을 맛볼 수도 있다는 것에 유의하면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는 자기가 죄인이었다는 기억에서 오는 겸손과 선을 행하는 데 전적으로 봉헌된 긴 여생을 채우는 데 필요하고 충분하고도 넘칠 만큼 선을 행하여 그가 저질렀을 수 있는 모든 잘못들을 속죄하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은총을 통하여 갓 태어난 아기처럼 젊고 새로워졌습니다.

나는 내일 여러분에게 말하겠습니다. 나는 이 저녁을 위하여 충분히 말했습니다. 가서 내 충고를 명심하고, 외관상의 건강의 허울 아래 있는 생명을 갉아먹는 숨은 병들처럼 영적인 건강의 허울 아래 숨어 있는 여러분의 육욕을 잘라내는 의사를 여러분에게 보내주신 하느님을 찬미하시오. 자캐오… 오시오.”

“예, 나의 주님. 저는 늙은 하인 한 사람만을 데리고 있어 제가 직접 대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그 문과 함께 당신의 무한한 선하심으로 한없이 감격한 제 마음의 문도 열어드리겠습니다.”

그는 대문을 연 다음 예수와 사도들을 들어가게 한다. 그리고 그는 텃밭이 된 정원을 통하여 예수를 집 쪽으로 모시고 간다. 집안의 모든 사치품들이 없어졌다. 자캐오는 등불을 켜고, 하인을 부른다.

“우리가 왔네. 선생님께서 오셨어. 그분께서는 여기서 그분의 사도들과 함께 주무시고, 여기서 저녁식사를 하셔야 하네. 자네는 내가 자네에게 말한 대로 다 준비했나?”

“예, 지금 제가 끓일 야채를 빼놓고는 다 준비되었습니다.”

“그럼 옷을 갈아입고 내가 자네에게 말한 사람들에게 가서 선생님께서 오셨으니 오라고 그들에게 말하게.”

“저는 가겠습니다, 주인님. 저에게 행복한 임종을 허락해주시려는 당신께서는 찬미 받으십시오!”

그가 떠나간다.

“저 사람은 제 아버지의 하인이었는데, 저와 함께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다른 모든 하인들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저 사람은 저에게 소중합니다. 그는 제가 죄지을 때 결코 침묵하지 않는 목소리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저는 저 사람을 구박하곤 했었습니다. 지금 그는 당신 다음으로 다른 누구보다 제가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나의 벗들이여, 이리 오시오. 여기에는 난로가 있고, 피로하고 추운 사지를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제 방으로 가시지요…”

자캐오는 복도 끝에 있는 방으로 예수를 모시고 간다.

그는 들어가서 문을 닫고, 물병에 뜨거운 물을 붓고, 예수의 샌들을 벗기고 그분을 섬긴다. 그분의 발에 샌들을 다시 신겨드리기 전에 그는 맨발 한쪽에 입 맞추고 그 발을 들어 자기의 목에 얹으며 말한다.

“이렇게 하십시오! 이 발이 옛 자캐오의 나머지를 밟아 으깨실 수 있도록이요!”

그는 일어서서 자기의 입술 위에서 떨고 있는 미소를 머금고 예수를 쳐다본다. 그것은 마치 눈물에 젖어 있는 듯한 겸손한 미소이다. 그는 손짓으로 방 전체를 가리키며 말한다.

“저는 여기서 아주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맛을 가진 것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하려고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추억들도요… 저는 약합니다… 저는 아무 장식도 없는 이 벽들에, 이 딱딱한 침대에 제 회개의 기억만이 살아 있기를 원했습니다… 나머지는… 저에게는 더 이상 돈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저는 선행을 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것들을 팔아 돈을 만들었습니다. 선생님, 앉으십시오…”

예수께서는 나무의자에 앉으시고, 자캐오는 예수의 발 앞, 방바닥에 앉는데, 절반은 앉고, 절반은 무릎 꿇고 있다. 그는 다시 말하기 시작한다.

“저는 제가 잘했는지, 당신께서 제 행동을 칭찬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저는 제가 마쳤어야 할 지점에서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오로지 늙은 염세리만이 그들에게 반감을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니 제가 잘못 말했습니다. 늙은 세리만이 아니라 당신께서도 그렇습니다. 아니 진실로 그들을 사랑하라고 저에게 가르쳐주신 분은 당신이십니다. 과거에 그들은 악습에 있어 제 공범자들이었지만, 저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었습니다. 지금 저는 그들을 나무랍니다만, 그들을 사랑합니다. 당신과 저는 사랑합니다. 전적으로 거룩하신 분과 회개한 죄인이요. 당신께서는 결코 죄짓지 않으셨고, 당신의, 죄 없는 사람(the Man without sin)의 기쁨을 저희에게 주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당신이십니다. 그리고 저는 너무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용서받고 구속되고 새롭게 된다는 것에서 오는 평화가 얼마나 유쾌한 것인지를 알기 때문에 저입니다…

저는 그들도 그 평화를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찾았습니다.

오! 그것은 처음에는 정말로 어려웠습니다! 저는 그들을 착하게 만들기를 원했는데, 저 자신을 향상시켜야 했었습니다… 정말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살펴야 했습니다. 그들이 저를 살펴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찮은 것 하나도 그들을 멀어지게 하는 데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많은 이들이 필요에 의하여, 직업으로 인하여 죄지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더 적게 벌고 더 힘들지만 정직한 다른 직업을 얻을 때까지 그들을 부양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팔아서 돈을 만들었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아직도 오는데, 그들은 반은 호기심으로, 반은 짐승이 아닌 사람이 되고 싶어서 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새 멍에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할례 받았습니다. 참 하느님께로 향한 첫걸음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의 비참함을 안을 수 있는 넓은 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의 비참함을 역겨워할 수 없습니다. 저희가 당신처럼 죄짓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저도 당신께서 모든 이들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것을 그들에게 주고 싶은데, 가책 없이 사는 기쁨이 그것입니다.

나의 주님, 제가 너무 대담한 일을 하지 않았는지 지금 말씀해주십시오.”

“자캐오, 잘 했소. 당신은 그들에게 내가 사람들에게 주기를 원한다고 당신이 바라고 생각하는 것 이상의 것을 주고 있소. 용서받고 가책이 없는 기쁨뿐 아니라, 머지않아 내 하늘나라의 주민이 되는 기쁨도 주고 있소. 나는 당신이 하고 있는 이 일들을 잘 알고 있었소. 나는 당신이 힘들지만 영광스러운 사랑의 길로 전진하는 것을 지켜보았소. 왜냐하면 그것은 사랑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사랑이기 때문이오.

당신은 그 나라의 말을 이해했소. 옛 사고방식이 자기들이 이미 거룩하고 유식하다고 믿는 믿음과 함께 사람들 안에 살아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한 사람이 별로 없소. 당신의 마음에서 과거가 치워지자 당신은 빈 상태로 남아 있었고, 그래서 당신은 당신 안에 새 말씀, 미래, 영원한 것을 넣을 수 있었소. 아니 넣기를 원했소.

자캐오, 그렇게 계속하시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의 주 예수의 모집인(collector)이 될 거요.”

예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고, 자캐오의 머리에 한 손을 얹으시며 결론지으신다.

“주님, 당신께서는 제가 한 것을 인정하십니까? 모든 것에 대해서요?”

“자캐오, 모든 일을 인정하오. 나는 당신에 대해서 나에게 말하고 있었던 니까에게도 그렇게 말했소. 그녀는 당신을 이해하오. 그녀는 보편적인 자비에 대하여 열려 있소.”

“그녀는 저를 많이 도와주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저는 한 달에 한 번 새 달이 될 때만 그녀를 봅니다… 저도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습니다만, 예리코가 저의 새 일에 유리합니다…”

“그녀는 예루살렘에 오래 머물지 않을 거요… 당신은 옮겨봐야 거기 오래 있지 못할 거요. 나중에 그녀는 이리로 돌아올 거요…”

“주님, 얼마 후에요?”

“내 왕국이 선포된 후에.”

“당신의 나라… 저는 그때가 두렵습니다. 지금 자기들이 당신께 충실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때도 충실할 수 있을는지요? 왜냐하면 틀림없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들 간에 소요들과 갈등들이 있을 테니까요…

주님, 그들은 다수를 형성할 준비가 되어 있는 추종자들을 만들어 자기들의 생각을 상대편에게 강요하기 위하여 백성들의 찌꺼기인 노상강도들까지 매수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저는 제 불쌍한 형제 중의 한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

오! 합법적으로 도둑질하는 사람과 누군가의 명예를 훔치고, 여행자에게 강도질하는 사람 사이에는 아마 많은 차이가 있겠지요? 저도 당신께서 저를 구해주실 때까지는 합법적으로 도둑질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저는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지지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사람은 젊은이이고, 도둑입니다. 예, 도둑입니다. 어느 날 저녁에 저는 제가 몇 마리의 소들을 염가에 사서 에프라임에서 오는 세 사람의 제 친구들을 기다리려고 아둠밈 산 쪽으로 갔었을 때 좁은 골짜기에서 매복하고 있는 그를 만났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가족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제가 자녀들을 가지고 있었다면, 저는 그들에게 생활을 바꾸라고 설득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어떻게, 왜 도둑이 되었는지를 저에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오! 나쁜 일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는 것 같은 사람들이 진짜 죄인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다시는 도둑질하지 말게. 배고프면 내가 자네를 먹여줄 수 있네. 나는 자네에게 정직한 일거리를 구해주겠네. 자네는 아직 살인자가 되지 않았으니 여기서 멈추고, 자네 자신을 구하게.’

저는 그를 설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저에게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돈을 받고 매수되었기 때문에 자기 혼자 남았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그들은 백성들을 분개하게 만들기 위하여 자기들이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며 소요들을 일으킬 태세를 갖추고, 파사엘 쪽 키드론 개울의 동굴들과 무덤들, 그리고 시 북쪽 동굴들, 왕들과 판관들의 무덤들 사이에 숨어 있답니다… 주님, 그들은 무엇을 하고 싶어 합니까?”

“여호수아는 해를 멈추게 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그들의 모든 수단을 써서도 하느님의 뜻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거요.”

“주님, 그들은 돈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전은 부자입니다. 성전에 바친 황금도 그것이 그들이 승리하는 데 이바지한다면, 그들에게는 그것이 하느님께 바쳐진 것(Corban)이아닙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소. 힘은 내 것이오. 그들의 건물은 마치 한 어린이에 의하여 성의 모양으로 만들어진 마른 잎들이 가을바람에 쓰러지듯이 쓰러질 거요. 자캐오, 염려하지 마시오. 당신의 예수는 예수일 거요.”

“하느님께서 그렇게 해주시기를!… 주님! 사람들이 우리를 부르는군요. 가십시다.” …



 521. 예리코에서. 두 가지 비유: 병자와 건강한 사람, 바리사이와 염세리

1946. 11. 2.

예수께서는 자캐오의 집에서 나오신다. 아침 늦은 시간이다. 그분께서는 자캐오, 베드로, 알패오의 야고보와 함께 계신다. 다른 사도들은 아마 벌써 시골로 흩어져서 선생님께서 시내에 와 계신다는 것을 알리고 있는 것 같다.

예수, 자캐오, 사도들의 무리 뒤에는 얼굴 모습과 나이와 옷이 꽤나… 다양한 또 다른 무리가 있다. 그 무리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어쩌면 서로 적대적인 종족들에 속해 있다고 우리는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인생의 우여곡절로 인하여 팔레스티나의 이 도시로 와서, 깊은 곳으로부터 빛을 향하여 올라오기 위하여 모여 있다.

그들은 주로 인생을 여러 가지로 이용하고 남용한 사람들의 퇴색한 얼굴들이고, 그들 중 대다수는 공금횡령이나 짐승 같은 명령을 내리는 데 오래 익숙해져서… 탐욕스럽고 냉혹한 시선을 보이는데, 때로는 그들의 과거의 시선이 새 생활에 의하여 덮인 초라하고 생각에 잠긴 베일을 들치고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일은 특히 예리코의 사람들이 업신여기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거나 그들에게 불손한 말을 내뱉을 때 일어난다. 그러다가는 그들의 눈길은 다시 지치고 겸손한 눈길이 되고, 그들의 머리는 절망적으로 숙여진다.

예수께서는 멀리 뒤에서 두 번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분의 말씀을 위하여 선택된 장소에 그들이 다가옴에 따라 걸음의 속도를 늦추는 것을 보시고, 걸음을 늦추시며 그들을 기다리시다가 마침내 말씀하신다.

“나를 앞서가시오. 겁내지 마시오. 당신들은 악을 행할 때 세상에 저항했으니, 악을 떨쳐버린 지금 세상을 무서워하면 안 됩니다. 과거에 세상을 제압하기 위하여 당신들이 사용했었던 것, 즉 세상으로 하여금 판단하는 데 지치게 만드는 유일한 무기인 세상의 판단에 대한 무관심을 지금도 사용하시오. 그러면 세상은 당신들과 연관되는 데 지칠 것이고, 비록 느리겠지만 당신들을 흡수하여 당신들을 큰 익명의 대중 속으로, 즉 이 비참한 세상 속으로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지나치게 중요시합니다.”

열다섯 명인 그 사람들은 순종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선생님, 시골의 병자들이 저기 있습니다.”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예수를 향하여 가며 양지바른 구석을 가리키면서 말한다.

“내가 가겠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

“사람들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당신을 보았으니 곧 올 것입니다. 솔로몬, 엠마오의 요셉, 에페소의 요한, 아르벨라의 필립보도 그들과 함께 있습니다. 그들은 아르벨라의 필립보의 집으로 가고 있는데, 야포, 리따, 모딘에서 왔습니다. 그들은 해안지방의 남자들과 여자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사실 그들은 한 여자를 판단하는 데 있어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당신께 말씀드릴 겁니다…”

과연 예수께서는 곧바로 경건하게 인사드리는 다른 제자들에게 둘러싸이신다. 그들 뒤에는 최근에 예수의 가르침에 이끌린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에페소의 요한이 없어 예수께서 그 이유를 물으신다.

“그는 어떤 여자와 그 여자의 부모와 함께 군중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한 집에 있습니다. 그들은 그 여자가 마귀 들린 사람인지, 예언자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 고장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 여자는 놀라운 것들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몇몇 율법학자들은 그 여자의 말을 들은 다음에 그 여자를 마귀 들린 여자로 판정했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몇 번 구마자들을 불렀었지만, 그들은 그 여자에게 들려 있으면서 그 여자에게 말하게 하는 마귀를 쫓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한 사람이 그 여자의―그 여자는 친정에 그대로 있는 처녀과부입니다―아버지에게 말했답니다. ‘당신의 딸에게는 메시아 예수가 필요하오. 그분께서는 당신의 딸의 말들을 알아듣고 그것들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 것입니다. 나는 그 여자 안에서 말하는 영에게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고 명하려고 해보았습니다. 어둠의 영들은 내가 이 이름을 썼을 때 항상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이 도망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부터 나는 이렇게 추론합니다. 즉 말하는 자가 베엘제붑 자신이고 내가 부르는 이름에도 직접 맞설 수 있거나, 아니면 그것이 하느님의 성령 자신이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하느님의 영은 그리스도와 오직 한분이시므로 두려워하지 않으신다고 말입니다. 나는 전자보다 후자를 더 믿습니다. 그러나 확실하게 하려면 그리스도만이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말을 알아들을 것이고, 그 말의 기원도 아실 것입니다.’

그는 거기 있는 율법학자들에게 구박당했습니다. 그들은 그 사람도 그 여자와 당신처럼 마귀 들린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저희가 이런 말씀을 드려야 하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몇몇 율법학자들은 결코 저희를 떠나지 않았고, 그 여자를 지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여자가 당신의 도착에 관하여 소식을 듣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가 자기는 당신의 얼굴과 당신의 목소리를 알고, 그래서 수천수만 명의 사람들 가운데서라도 당신을 알아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15년 전에 그녀의 남편이 될 사람이 결혼식 전날 죽었을 때부터 그 여자는 자기의 마을을 떠난 적이 결코 없고 자기 집 밖으로 나온 적도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당신께서 베틀레키라는 그녀의 마을로 지나가신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도 증명되었습니다.

그래서 율법학자들은 그 여자가 마귀 들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이 마지막 시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즉시 그 여자를 보시겠습니까?”

“아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말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여기 이 군중 가운데서 그들을 만난다면 너무 소란스러울 것이다. 가서 에페소의 요한, 그 여자의 부모, 그리고 율법학자들에게 내가 해지기 시작할 무렵에 강 옆의 숲, 여울로 가는 오솔길에서 그들을 기다리겠다고 말해라. 가거라.”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대표하여 말한 솔로몬을 보내신 다음 병이 낫기를 청하는 병자들에게 가셔서 그들을 고쳐주신다. 그들 중에는 관절염으로 관절에 경직이 생긴 나이든 여인, 남자 마비환자, 저능한 젊은이, 내가 보기에 결핵에 걸린 소녀, 두 명의 안질환자들이 있다.

군중은 기쁨의 환성을 지른다.

그러나 병자의 무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슬픔으로 인하여 몰골이 흉하게 된 한 여인이 두 명의 친구 또는 친척의 부축을 받으며 와서 무릎 꿇고 말한다.

“제 아들이 죽어갑니다. 저는 그 애를 이리 데려올 수 없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당신은 제한 없이 믿을 수 있소?”

“저는 모든 것을 믿습니다, 나의 주님!”

“그렇다면 집으로 돌아가시오.”

“제 집으로요?… 당신을 모시지 않고요?…”

그녀는 한동안 몹시 불안해하며 예수를 쳐다본다. 그러다가 그녀는 알아듣는다. 그녀의 가엾은 얼굴이 환하게 변한다. 그녀가 외친다.

“저는 가겠습니다, 주님. 당신과 당신을 보내신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찬미 받으시기를!”

그녀는 동행한 여자들보다 더 날쌔게 뛰어간다…

예수께서는 예리코의 한 점잖은 주민에게 물으신다.

“저 여자는 유다인입니까?”

“아닙니다. 적어도 태생으로는 아닙니다. 저 여자는 밀레토 출신입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저희 중 한 사람과 결혼했고, 그때부터 우리 종교를 믿고 있습니다.”

“저 여자는 많은 히브리인들보다 더 잘 믿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어떤 집의 높은 계단 위에 올라가 강연을 시작하시기 전에 침묵을 명하시기 위하여 여느 때처럼 두 팔을 벌리신다. 소음이 가라앉자 그분께서는 그 몸짓을 하실 때 가슴 앞에서 벌어졌던 겉옷의 주름들을 모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은 맹세하는 사람의 자세로 뻗으시며 말씀하신다.

“예리코의 주민 여러분, 주님의 비유들을 들으시오. 그 다음에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묵상하여 여러분의 영혼의 양식이 될 교훈들을 이끌어내시오. 여러분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어제부터나 지난달이나 지난겨울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선생이 되기 전에 내 선구자 요한이 나의 내림(來臨)에 관하여 여러분을 준비시켰고, 내가 선생이 된 다음부터는 내 제자들이 이 땅을 일곱 번씩 일곱 번이나 쟁기질로 갈아엎어 내가 그들에게 준 씨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말과 비유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죄인들이었다가 회개한 사람들을 누구와 비교할까요? 나는 그들을 회복된 환자들과 비교하겠습니다. 공공연하게 죄짓지 않았거나, 검은 진주들보다 더 드물지만 은밀하게라도 중죄들을 지은 적이 없는 다른 사람들을 누구와 비교할까요? 나는 그들을 건강한 사람들과 비교하겠습니다.

세상은 영의 문제에 있어서나 살과 피의 문제에 있어서 이 두 가지 부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설령 비유들이 같다 해도, 세상이 몸의 질병들에서 회복된 환자들에게 쓰는 방법은 세상이 회개한 죄인들, 즉 영혼이 병들었다가 건강하게 된 사람들을 다루는 방법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가장 위험한 환자여서 그 위험 때문에 가장 격리되어야 하는 나병환자도 치유의 은총을 얻게 되면 사제에게 검사받고 정결례를 행한 다음에 사회에 다시 받아들여지고, 그의 도시의 사람들은 그가 고쳐지고, 그래서 삶으로 돌아오고, 그의 가족과 그의 사업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를 따뜻하게 환영합니다.

나병환자가 그 은총을 얻고, 그래서 건강해질 때 그의 가정과 그의 도시에서 큰 잔치가 벌어집니다! 그의 친척들이나 동료 시민들은 앞 다투어 다양한 물건들을 그에게 가져다주고, 만일 그가 홀몸이고 집이나 가구가 없다면, 그들은 침대나 가구를 그에게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말할 것입니다. ‘저 사람은 하느님의 특은을 받은 사람이다. 그분의 손이 그를 낫게 하셨다. 그러니 그를 공경하고, 그를 창조하시고 재창조하신 그분을 공경하자.’ 그렇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어떤 사람이 나병의 초기 증세를 보인다면, 함께 있는 동안에 그의 부모와 친구들은 애정으로 얼마나 그를 압도합니까? 마치 그들이 여러 해 동안 그에게 주었을 애정을 단번에 주어서 그가 살아 있는 존재의 무덤으로 그것들을 가져가게 하려는 듯이 말입니다.

그럼 왜 그들은 다른 병자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죄짓기 시작하고, 그의 친척들과 특히 동향인들은 그것을 봅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사랑의 노력을 기울여 그 사람을 죄에서 빼내려고 애쓰지 않습니까?

어머니, 아버지, 아내, 자매는 여전히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별로 그렇게 하지 않고, 사촌형제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동향인들 중에서 더 의로운 사람들은 비판하고, 비웃고, 욕하고, 눈살을 찌푸리고, 죄인의 죄들을 과장하고, 그에게 손가락질하고, 그가 마치 나병환자인 것처럼 그를 멀리할 줄 밖에 모르고, 의롭지 못한 사람들은 그 사람의 비용으로 즐기기 위하여 그의 공범자들이 됩니다. 그러나 한 입과 특히 한 마음이 연민, 굳셈, 참을성, 초자연적인 사랑을 가지고 그 불행한 사람에게 가서, 죄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중단하도록 걱정하며 애쓰는 것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왜요? 영혼의 병이 더 중하고, 참으로 중하고 치명적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병이 한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영원히 빼앗아가지 않습니까? 하느님과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의 최초의 형태가 그의 영혼의 유익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 죄인을 고쳐주는 노심초사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한 죄인이 회개했을 때 사람들은 왜 그를 집요하게 판단하고, 그가 영적인 구원으로 돌아온 것을 거의 유감스러워하다시피 합니까? 여러분의 동향인 한 사람의 확실한 영벌에 대한 여러분의 예측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닫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은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거짓이라고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자비로우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이고, 여러분이 더 중대하거나 덜 중대한 죄를 저지른 후에 여러분을 위로해주시려고 그분의 풍성한 그분의 선하심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어떤 마음의 착한 뜻이 깨끗하고, 훌륭하고, 형제들의 존경 아니 감탄을 받을 만하게 만든 것을 여러분은 왜 더럽혀지고, 업신여길 만하고 격리된 채로 남아 있어 마땅한 것으로 여기기를 고집하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 나귀, 낙타, 양떼의 양, 여러분의 애완 비둘기가 병들었다가 나으면 몹시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낯선 사람이 나병환자로 격리되어 있을 때 그에 대하여 들었기 때문에 겨우 이름이나 기억하는 사람이 치유된다면 분명히 기뻐합니다.

그런데 왜 이 영적인 치유들, 하느님의 이 승리들을 보고는 환호하지 않습니까? 한 죄인이 회개할 때 하늘은 환호합니다. 하늘 즉 하느님과 가장 순수한 천사들, 죄짓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사람들인 여러분은 하느님보다 더 엄격하기를 원합니까?

정직한 마음을 가지시오. 그리고 주님의 거룩하심이 성전의 분향의 연기와 찬미가들 속에, 그 이름이 가리키는 것처럼 거룩해야 하는 곳이나 대사제 안에서만 주님의 현존을 알아보지 말고, 다시 살아난 이 영혼들의 경이들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제물을 태우기 위하여 그 불과 함께 내려오시는 이 재봉헌된 제단들의 경이들 안에서도 알아보시오.”

예수의 말씀은 찬미의 환성을 올리며 그분을 경배하기를 원하는 방금 전의 어머니로 인하여 중단된다. 예수께서는 그녀의 말을 들으시고 그녀를 축복하시고, 집으로 돌려보내시고 나서 중단된 말씀을 다시 시작하신다.

“그리고 만일 한 죄인의 행동이 여러분에게 분개의 원인이 되었다가 지금은 교훈적인 모범을 보인다면, 그것을 조롱하지 말고, 오히려 본받으시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Good)은 설령 그것이 한때 비난받았을 만한 사람에 의하여 행해진 것이라 해도 항상 받아들여야 하는 교훈입니다. 그를 본받고, 그를 도와주시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주님을 찬미하게 되고, 여러분이 말씀(the Word)을 이해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행동이 말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이 마음속에서 은밀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처럼 되지 마시오.

오히려 여러분의 모든 착한 행동이 여러분의 모든 착한 말의 왕관이 되게 하시오. 그렇게 된다면,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호의적으로 여러분을 보시고, 여러분의 청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눈에 어떤 것들이 가치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위하여 이 다른 비유를 들으시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자주 발견되는 나쁜 생각을 바로잡도록 여러분에게 가르쳐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 자신들의 재판관들입니다. 그들 모두는 천 명 중 한 명만이 겸손한데 자기가 그 유일한 완전한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자기의 이웃에게서는 수백 개의 잘못들을 찾아냅니다.

어느 날 볼 일이 있어서 예루살렘에 갔었던 두 사람이, 착한 이스라엘사람이라면 누구나 성도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그렇게 하듯이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전자는 상점들의 세를 받고 성도 가까이에 살고 있는 자기의 관리인들에게서 회계보고를 받기 위하여 갔습니다. 후자는 그가 징수한 세금을 바치고, 배와 그물에 대한 세금을 낼 수 없는 과부를 위하여 동정을 구하기 위하여 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맏아들이 하는 고기잡이로는 그녀의 많은 자녀들을 먹이기도 빠듯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기 전에 바리사이는 상점들의 임차인들에게 들러 상점들을 둘러보았는데, 그 상점들에 상품과 사는 사람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흡족해하며 임차인을 불러 그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자네의 장사가 번창하고 있는 것을 보네.’

‘예, 하느님의 은총으로요. 저는 제 일에 만족합니다. 저는 상품의 재고를 늘릴 수 있었는데, 그것을 더 늘리기를 바랍니다. 저는 상점을 개량했습니다. 그래서 내년에 저는 진열대들과 선반들에 대한 지출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더 많을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좋네! 아주 좋아! 나는 기쁘네! 자네는 이곳의 세를 얼마 내나?’

‘한 달에 100드라크마입니다. 이곳은 비싸지만, 목이 좋습니다…’

‘자네의 말이 맞네. 상권이 좋네. 따라서 나는 세를 곱절로 올리겠네.’

‘하지만 나리, 나리께서 그렇게 하시면 저에게는 이익이 전혀 남지 않습니다!’

임차인이 부르짖었습니다.

‘내 말이 맞네. 내가 내 재산으로 자네를 부자로 만들어주어야겠나? 즉시 2천 4백 드라크마를 내게. 아니면 나는 자네를 내쫓고 물건을 내가 가지겠네. 이 장소는 내 것이니, 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그는 첫째, 둘째, 셋째 임차인에게 그렇게 하여 임대료를 그들 모두에게 곱절로 올리고, 그들의 간청을 못 들은 체했습니다. 대가족을 거느리고 있는 셋째 임차인이 저항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는 경찰을 부르고 관리로 하여금 문에 압류표시를 붙이게 하고, 그 불쌍한 임차인을 내쫓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기의 저택에서 관리인들을 게으름뱅이들로 몰아 벌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로 떼어둔 몫까지 압류할 구실을 찾아내기 위하여 관리인들의 장부를 검사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죽어가고 있는 아들을 두고 있어 많은 지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약값을 치르기 위하여 그의 주인의 기름을 일부 팔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탐욕스러운 주인에게 줄 것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나리,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제 가엾은 아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음에 제가 더 일하여 나리께서 정당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을 갚아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리께서도 아시다시피 제 형편상 나리께 드릴 것이 없습니다.’

‘자네가 줄 수 없어? 자네가 나에게 줄 수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자네에게 보여주겠네.’ 그는 그 가엾은 관리인을 데리고 기름 압착기로 가서 그가 자기의 가족들을 위하여, 그리고 밤에 자기의 아들 곁에서 그를 간호할 수 있게 해줄 등잔에 기름을 넣으려고 남겨두었던 소량의 기름을 빼앗아갔습니다.

한편 세리는 자기의 상관에게 갔는데, 그 상관은 그가 징수한 세금을 받은 다음 그에게 말했습니다. ‘3백 70아스가 모자라는구먼. 어떻게 된 일인가?’

‘예, 제가 말씀드리지요. 그 마을에는 슬하에 일곱 명의 자녀를 둔 한 과부가 있습니다. 맏이만 일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애는 자기의 배를 몰고 호숫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는 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애의 팔이 너무 약해서 노들과 돛을 조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애는 배를 부릴 조수를 부릴 돈도 없습니다. 그 애는 호숫가 근처에서만 고기잡이를 하기 때문에 고기를 많이 잡지 못해서 그가 잡는 고기로는 불쌍한 여덟 식구를 먹여 살리기에도 벅찹니다. 그래서 저는 세금을 거둘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다음회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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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네. 하지만 법은 법일세. 법이 동정적인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일 걸세! 모두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한 이유들을 찾아낼 테니까. 그들이 세금을 낼 수 없다면, 그 젊은이에게 직업을 바꾸고 배를 팔라고 하게.’

‘그것이 그들의 밥벌이입니다. 미래에도 그렇고요…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아버지의 추억이기도 하고요.’

‘나는 이해할 수는 있네. 하지만 타협하는 것은 불가능해.’

‘좋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들의 유일한 재산을 빼앗긴 불행한 여덟 사람을 눈 뜨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제가 3백 70아스를 내겠습니다.’

이런 일들을 하고 나서 두 사람은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헌금함이 있는 방을 지나가면서 바리사이는 보라는 듯 품에서 묵직한 돈주머니를 꺼내 마지막 한 닢까지 헌금함에 털어 넣었습니다. 그 주머니 속에는 상점 임차인에게서 받아낸 돈과 관리인에게서 빼앗아 즉시 장사꾼에게 판 기름 값이 들어 있습니다. 한편 염세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떼어놓은 다음 한 줌의 작은 동전들을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두 사람 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을 다 바쳤습니다. 바리사이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마지막 한 푼까지 바쳤기 때문에, 외관상으로는 더 후하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저택에 다른 돈을 가지고 있고, 돈 많은 환전상들에게 빌려준 돈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주님 앞으로 갔습니다. 바리사이는 맨 앞, 히브리인들의 마당이 있는 경계, 성소 바로 앞으로 갔고, 세리는 뒤쪽 거의 여자들의 마당으로 통해 있는 둥근 천장 밑에서 하느님의 완전에 비하여 자기는 얼마나 비참한가 하는 생각에 짓눌려 몸을 숙인 채로 있었습니다. 두 사람 다 기도했습니다.

바리사이는 마치 자기가 그곳의 주인이고, 자기가 거기 있는 것이 방문객들에게 영광이라도 되는 듯이 꼿꼿이 서서 말했습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영광인 집안에 계시는 당신을 공경하러 왔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제 안에 계신다는 것을 느끼지만, 제가 의인이기 때문에 왔습니다. 저는 의인으로 행동할 줄 압니다. 저는 제 공로만으로도 제가 의롭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율법에 규정된 대로 제가 의인인 것에 대하여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저와 동시에 한 줌의 작은 동전들을 헌금함에 집어넣은 저 세리와 같이 탐욕스럽지도 않고, 불의하지도 않고, 간통자도 아니고, 죄인도 아닙니다. 저는 당신께서도 보셨다시피 제가 몸에 지닌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이와 반대로 저 인색한 자는 자기의 돈을 두 몫으로 만들어 작은 몫을 당신께 바쳤습니다. 그자는 틀림없이 다른 몫은 진수성찬과 여자들을 위하여 남겨놓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깨끗합니다. 저는 더럽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깨끗하고 의롭습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제가 가진 모든 것에 대하여 십일조를 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거룩하기 때문에 깨끗하고, 의롭고, 복됩니다. 오, 주님, 이것에 유의하십시오.’

세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구석에서 성전의 값진 문들을 향하여 감히 눈을 들지 못하고 자기의 가슴을 치면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여기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의로우시고 거룩하시지만, 여전히 제가 여기 머무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는 사람은 죄인이고, 만일 그가 당신께로 오지 않는다면 마귀가 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오! 나의 주님! 저는 밤낮으로 당신을 공경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많은 시간 동안 제 일에 묶인 노예처럼 지냅니다. 그것은 제 이웃들 중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통의 원인이기 때문에 저를 낙심하게 하는 불유쾌한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 상관들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 매일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오, 나의 하느님, 제 상관들에 대한 의무를 불쌍한 제 형제들에 대한 사랑으로 완화시킬 줄 알게 하시어 제가 제 일로 인하여 단죄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사랑으로 행해진다면, 모든 일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사랑이 항상 제 마음속에 머물러 있게 하시어, 당신께서 큰 죄인인 저를 참아주시듯이 비참한 인간인 제가 제 부하들을 인내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주님, 저는 당신을 더 섬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전에 드리기로 되어 있는 돈을 헌금함에 넣어 죄 없는 불쌍한 사람 여덟 명에게 비참하게 눈물 흘리게 하기보다는 그 불행한 여덟 마음을 구해주기 위하여 그것을 쓰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 주님, 그러나 만일 제가 잘못 생각했다면, 알려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마지막 한 푼까지 당신께 바치고 빵을 구걸하면서 걸어서 제 고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저로 하여금 당신의 정의를 깨닫게 해주십시오. 주님, 저는 큰 죄인이오니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이것이 비유입니다. 내가 엄숙하게 여러분에게 말하겠는데, 바리사이는 모리아 산을 올라가기 전에 그가 저질러 왔던 죄들에 새 죄를 보태서 성전에서 나온 데 반해 세리는 의롭게 되어서 성전에서 나왔고, 하느님의 축복이 그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가서 거기 머물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겸손하고 자비로웠고, 그의 행동들은 말보다 훨씬 더 거룩했었던 반면, 바리사이는 말과 겉으로만 착하고, 마음속으로는 그의 마음의 교만과 냉혹함으로 인하여 마귀가 되었고, 마귀로 행동했고, 그래서 하느님께서 그를 미워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조만간 낮아질 것입니다. 현세에서가 아니라면, 내세에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입니다. 사람의 행동의 참다운 실재가 보이는 하늘에서는 특히 그러할 것입니다.

자캐오, 갑시다. 자캐오와 함께 있는 여러분과 내 사도들과 제자들도 가자. 나는 여러분에게 개별적으로 계속 말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분께서는 겉옷으로 감싸시고 자캐오의 집으로 돌아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