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7권 공생활 셋째 해(하) p266~p278

509. 놉에서. 가리옷 사람이 거짓말하다
1946. 10. 11.
예수께서는 놉에 계신다. 그런데 예수께서 열두 사도를 네 사람씩 세 그룹으로 나누어 그들을 각 집들로 배정하고 계시는 것으로 보아 방금 전에 이곳에 도착하신 것이 분명하다. 그분께서는 베드로, 요한, 가리옷의 유다, 열성당원 시몬을 그분과 함께 있게 하시고, 마태오, 알패오의 유다, 필립보로 이루어진 무리는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우두머리이고, 셋째 무리는 바르톨로메오가 우두머리인데, 그에게는 알패오의 야고보, 안드레아, 토마스가 복종한다.
“저녁식사 후에 너희는 너희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곳으로 갔다가 아침에 이리로 돌아오너라. 그러면 나는 너희가 해야 할 일을 말해주겠다. 우리는 식사시간들에는 함께 있을 것이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해라. 너희는 너희의 생활방식, 그리고 너희 서로간의 생활방식, 너희를 자기들의 집에 받아들이는 사람들과의 생활방식을 통하여 내 가르침을 전파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의 대화, 행동, 시선에 있어 냉철하고, 참을성 있고, 정직하여 정의가 향기처럼 너희로부터 흘러나오게 해라. 너희는 세상 사람들의 눈이 우리를 중상하거나 조사하기 위하여, 또는 존경심으로 인하여 항상 얼마나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존경하는 눈들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눈들 중 극소수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극소수에게 최대한의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의 조사는 이 소수의 믿음을 때려 부수기 위하여 그것을 겨냥하고 있으며, 모든 것이 착한 사람들의 나에 대한 사랑, 결국 너희에 대한 사랑을 파괴하는 데 있어 무기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의 거룩하지 못한 생활방식으로 세상을 도와주지 말고, 내 적대자들의 덫들로부터 자신들의 믿음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을 분개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짐을 가중시키지 마라. 추문(scandal)은 영혼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그들을 떨어져나가게 하며, 약화시킨다. 영혼들을 분개하게 만드는 사도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그는 자기의 선생과 자기의 이웃, 하느님과 그분의 양떼를 거슬러 죄짓는다. 나는 너희를 믿는다. 극도로 심대한 내 고통이 너희로부터 유래하는 다른 고통에 의하여 증가되지 않게 해라.”
“선생님, 염려하지 마십시오. 사탄이 저희 모두를 길 잃게 하지 않는 한, 저희가 당신을 더 고통스럽게 해드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엘리자와 함께 부엌에 있던 아나스타시카가 안으로 들어와서 말한다.
“선생님,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음식이 식기 전에 내려와서 드십시오.”
“가자.”
예수께서는 일어서서 작은 계단으로 내려가는 여자를 따라가신다. 그 계단은 이미 몇 개의 침대들이 준비되어 있는 위층 방에서 작은 정원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활활 타는 불로 유쾌해진 부엌으로 들어가신다.
늙은 요한은 불 옆에 있고, 음식을 차리느라 분주하면서도 어머니같이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들어오고 계시는 예수를 보기 위하여 뒤돌아본다. 그 다음에 그녀는 양젖에 삶은 밀알들인지 보리알들인지를 큰 그릇에 서둘러 붓는다. 나는 알패오의 마리아가 요한과 신티케의 출발 전에 나자렛에서 그 음식을 요리하여 내놓는 것을 이미 본 적이 있다.
“좋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이것을 좋아하신다고 클레오파의 마리아가 저에게 말해준 것을 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만들려고 제일 좋은 꿀을 남겨두었습니다. 이것은 마르지암을 위한 것이기도 했는데… 저는 그 애가 오지 않아서 섭섭합니다…”
“이사악과 그 애가 내일 새벽에 떠날 예정이고, 니까가 아주머니도 아시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예리코에까지 마차를 이용할 것이기 때문에, 이사악과 함께 그 애를 데리고 있습니다.”
“무슨 임무입니까, 선생님?”
가리옷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묻는다.
“매우 여성적인 임무이다. 유아를 기르는 임무야. 그러나 그 아이는 젖을 필요로 하지 않고, 믿음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그는 영혼 안에서 유아니까. 그러나 여자는 언제나 어머니이고, 그래서 여자는 그런 일들을 할 줄 안다. 그리고 여자가 일단 이해하게 되면!… 여자는 남자와 대등하고, 어머니다운 상냥함의 능력으로는 여자는 남자를 능가한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저희에게 정말 인자하십니다!”
엘리자는 마치 예수를 어루만지는 듯한 눈길로 그분을 보면서 말한다.
“나는 진실을 말합니다, 엘리자. 우리 이스라엘 남자들은― 그리고 우리만이 아닙니다―여자를 열등한 존재로 바라보고, 여자가 열등하다고 여기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설령 여자가 남자의 권위 아래 있다 해도―그것은 정당합니다―설령 여자가 하와의 죄로 인하여 더 엄하게 처벌받았다 해도, 설령 여자의 임무가 현란한 행위나 큰 소리 없이 베일 속에서 그늘 속에서 행해지게 되어 있다 해도, 설령 여자에게는 모든 것이 마치 베일로 덮어씌워진 것처럼 일어나는 것 같다 해도, 여자는 남자보다 덜 강하지도, 덜 능력 있지도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여자들을 상기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여자의 마음(heart)에는 큰 힘이 있다고 여러분에게 말하겠습니다. 여자의 마음 안에요. 우리 남자들의 지성 안에 힘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나는 여러분에게 풍습과 다른 많은 것들에 관하여 여자의 지위가 바뀌려 하고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정당한 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모든 남자들(men, 또는 사람들)을 위하여 은총과 구속을 얻을 것처럼 한 여인(a Woman)이 특별히 여자들을 위하여 그것들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여인이라고요?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여자가 구속할 거라고 기대하실 수 있습니까?”
가리옷의 유다가 냉소적인 웃음을 웃으며 말한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하는데, 그 여인은 이미 구속하고 있다. 너는 구속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아느냐?”
“물론 저는 압니다! 그것은 죄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렇다. 그러나 죄에서 구해내는 것이 크게 도움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수(Opponent)는 영원하고 그는 처음부터 다시 덫들을 놓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상낙원으로부터 한 목소리 즉 하느님의 목소리가 와서 말했다.
‘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그 여자는 네 머리를 으스러뜨릴 것이고, 너는 그 여자의 발꿈치에 덫들을 놓을 것이다.’ 덫들을 놓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여인은 원수를 패배시킬 것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자기 안에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여인은 그녀가 존재하는 순간부터 구속해 오고 있다. 감추어져 있지만 능동적인 구속이다. 그러나 그 여인은 머지않아 세상 앞에 나타날 것이고, 여자들은 그 여인 안에서 강하게 될 것이다.”
“당신께서 구속하신다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저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선생님!”
“너는 토빗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그의 찬미가를?”
“예,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합니다.”
“예루살렘에 하느님께서 계시는 장막이 여전히 있느냐? 하느님께서 그분의 영광으로부터 성전의 담장들 안에서 자행되는 죄들의 현장에 계실 수 있겠느냐? 다른 장막이 필요했다. 오류에 빠진 사람들을 지극히 높으신 분께로 다시 데려올 별이 될 거룩한 장막이 말이다. 그것은 시대들을 통틀어 구속된 사람들의 어머니가 되어 환호할 공동구속자(the Co-Redeemer) 안에서 성취되었다.
‘너는 찬란한 광채와 함께 빛나리라. 땅의 모든 민족들이 네 앞에 엎드릴 것이다. 나라들이 먼 곳으로부터 선물들을 가지고 너에게 올 것이고, 네 안에서 주님을 경배할 것이다… 민족들은 너의 큰 이름을 부를 것이다… 네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은 그 저주받은 자들 가운데 있을 것이고, 네 주위에 모이는 사람들은 복될 것이다… 너는 네 자녀들 안에서 행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 가까이에 모여 있는 복된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동구속자(Co-Redeemer)의 참된 찬미가다. 그것을 보고 있는 천사들은 하늘에서 이미 이 찬미가를 부르고 있다… 천상의 새 예루살렘(the new heavenly Jerusalem)이 그 여인 안에서 시작된다. 오! 그렇다. 이것은 진리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 여인을 모르고,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라삐들도 그 여인을 모른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생각에 침잠해 계신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누구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시나?”
가리옷 사람이 자기 곁에 있는 필립보에게 묻는다.
필립보가 대답하기 전에, 식탁 위에 치즈와 검은 올리브를 놓고 있던 엘리자가 꽤 거칠게 말한다.
“선생님께서는 그분의 어머니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시는 거요. 당신은 알아듣지 못하겠소?”
“나는 그분께서 예언자들에 의하여 순교자로 언급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오로지 구속자만이 언급되고, 그리고…”
“그럼 당신은 육체의 고통만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거요? 그리고 당신은 한 어머니에게는 자기의 아들이 죽는 것을 보는 고통과 비교할 만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해요? 당신의 정신이,―나는 당신의 심장이 무엇과 함께 뛰는지 알지 못하니 당신의 마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어요―당신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당신의 정신이 한 어머니가 자기 아들의 신음소리를 듣느니 차라리 열 번 고통과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당신에게 말해주지 않아요?
이봐요. 당신은 남자이고, 당신에게는 학식이 있어요. 나는 단지 여인이고, 어미일 뿐이에요. 그렇지만 내가 당신에게 분명히 말하겠는데, 당신은 나보다 더 무식해요.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의 어머니의 마음조차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오! 당신은 나를 모욕하고 계십니다!”
“아니오. 나는 늙었고, 그래서 당신에게 충고하고 있는 거요. 당신의 마음을 지혜롭게 하시오. 그러면 당신은 눈물과 벌을 피할 수 있을 거요. 만일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세요.”
사도들, 특히 알패오의 유다, 제베대오의 야고보, 바르톨로메오, 열성당원은 살짝 서로를 바라보며, 자기를 완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도에 대한 엘리자의 솔직한 말들로 인하여 자신들의 입술에 감도는 조롱 섞인 미소를 숨기기 위하여 고개를 숙인다. 예수께서는 여전히 생각에 잠겨 계셔서 아무것도 듣지 못하신다.
엘리자가 아나스타시카를 향하여 말한다.
“이분들이 식사를 끝내시는 동안에 침대 두개를 더 준비하러 가자. 세 개로는 모자라니까.”
그녀가 막 나가려고 한다.
“엘리자 아주머니, 분명히 당신의 침대를 주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베드로가 외친다.
“그건 옳지 않습니다. 요한과 저는 널빤지 위에서 잘 수 있어요. 저희들은 그것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아니에요, 시몬. 엮인 울타리들과 돗자리들이 있어요. 그것들이 따로 모아져 있어요. 우리는 지금 그것들을 가대들에 올려놓으려는 거예요.”
그렇게 말한 다음에 그녀는 아나스타시카와 함께 나간다.
사도들은 피곤한 나머지 따뜻한 부엌에서 거의 졸다시피 한다. 예수께서는 팔꿈치를 식탁에 올려놓으시고 한손으로 머리를 받치신 채로 생각에 잠겨 계신다.
대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린다. 문에 가장 가까이 있는 토마스가 일어나 문을 열더니 외친다.
“요셉 당신이? 그리고 니코데모와 함께?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들어오세요!”
“선생님, 당신께 평화, 그리고 이 집 안의 모든 이에게 평화. 선생님, 저희는 라마로 가려고 합니다. 니코데모가 저를 그리로 초대했습니다. 저희는 이곳을 지나가면서 말했습니다. ‘여기 들러 선생님께 인사드립시다.’ 저희는… 그들이 당신을 찾으려고 요셉의 집으로 갔었기 때문에, 당신께서 또다시 곤경을 치르셨는지 여부를 간절히 알고 싶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당신께서 그 소경을 고쳐주신 후부터 사방으로 당신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들이 성곽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어기지 않기 위하여 의자 하나 옮겨놓지 않고,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찾고 바르톨마이를 따라가려면, 오! 그들은 한계를 훌쩍 넘어 걸어 다녔습니다!”
“그렇지만 당신께서는 길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는데, 그들이 어떻게 알았습니까?”
마태오가 묻는다.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고쳐졌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회당에 갔다가 니까와 그녀의 집에 머무르고 있는 이사악과 마르지암에게 작별인사하려고 니까의 집에 갔엇습니다. 그러다가 일몰 후에 우리는 재빨리 이리로 왔으니까요.”
베드로가 말한다.
“당신들은 알지 못했지요. 그러나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은 알았어요. 당신들은 보지 못했지만, 나는 보았어요. 그들 중 두 사람이 선생님께서 소경의 눈을 만지실 때 그곳에 있었소. 그들은 여러 시간 동안 기다리고 있었소.”
“도대체 왜요?”
가리옷의 유다가 순진한 표정으로 묻는다.
“당신이 나에게 묻고 있소?”
“그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묻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선생님께서 어디 계시든 그곳에는 항상 염탐꾼들이 있다는 것은 훨씬 더 이상한 일이오.”
“독수리들은 사냥감이 있는 곳으로 가고, 늑대들은 양떼에게 다가가는 거지요.”
“그리고 도둑들은 대상이 있다고 그들의 공범들이 알려주는 곳으로 가오. 당신의 말이 맞소.”
“당신은 무엇을 암시하고 계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오. 나는 사람들에게 적용하여 당신의 격언을 완성한 거요. 예수님은 사람이시고, 사람들이란 그분께 덫들을 놓는 사람들이니까요.”
“우리에게 말해주세요. 요셉 어른, 우리에게 말해주세요…”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말한다.
“만일 선생님께서 원하신다면, 나는 여러분에게 말해주려고 왔소.”
“더 크게 말하시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러자 요셉은 자기가 목격한 것을 상세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는 소경에게 예수께서 머무르고 계시는 곳을 알려준 사람이 유다라는 한 가지의 세부사항은 빼놓는다.
마음에 따라서 분개하거나 괴로워하는 등 의견들이 분분한데, 가리옷의 유다가 (겉으로는) 가장 괴로워하고,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특히 선생님의 잘 알려진 친절을 믿고 안식일에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길에 나타난 분별없는 소경에게 가장 많이 화낸다…
“이분께 그 사람을 가리킨 건 자네였잖아! 나는 자네의 가까이에 있었고, 그래서 나는 들었어.”
필립보가 깜짝 놀라 말한다.
“가리키는 건 무언가를 하라고 명령하는 건 아니야.”
“오! 나도 자네가 감히 선생님에게 기적을 행하시라고 명령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네…”
타대오가 말한다.
“내가? 그것과는 거리가 멀어. 나는 선생님께 설명을 청하려고 그 사람을 가리켰을 뿐이야.”
“그래. 그러나 가리키는 행동은 때로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것이기도 해. 그런데 자넨 그렇게 했어.”
타대오가 대꾸한다.
“자네는 그렇게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야.”
유다가 뻔뻔스럽게 단언한다.
“사실이 아니라고? 당신은 정말로 그렇게 확신하오? 당신이 그 소경에게 예수에 대하여 전혀 말하지 않았다는 것, 당신이 예수께 간청하도록 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이 예수께서 시내를 떠나시기 전에 즉시 그렇게 하라고 그 사람을 부추기지 않았다는 것이 당신이 살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확실하오?”
아리마태아의 요셉이 묻는다.
“물론 나는 확신합니다! 누가 그 사람과 말을 한 적이 있단 말입니까? 분명히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밤낮으로 항상 선생님과 함께 있고, 내가 이분과 함께 있지 않을 때는 동료들과 함께 있는 걸요.”
“나는 자네가 어제 여자들과 함께 나갔을 때 그렇게 했다고 생각했네.”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어제라고! 나는 갔다가 제비보다 더 빠르게 돌아왔네. 어떻게 내가 그렇게 짧은 시간에 소경을 찾아다니다가 발견하고 그에게 말할 수 있었겠나?”
“자네는 그를 만났을 수도 있어…”
“나는 결코 그를 보지 않았어!”
“그러면 그가 거짓말쟁이요. 왜냐하면 당신이 그에게 오라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라고 말했고, 예수님이 당신의 청은 들어주실 거라고… 그에게 장담했다고 그가 진술했으니 말이오. 그리고…”
아리마태아의 요셉이 말한다.
유다가 그의 말을 거칠게 중단시킨다.
“그만해두세요! 그자는 자기가 한 모든 거짓말들로 인하여 다시 소경이 되어 마땅합니다! 나는, 나는 그를 본 적은 있지만 그에게 말한 적은 전혀 없습니다. 나는 그것을 성소를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예, 그건 정말로 충분하군요. 가리옷의 유다, 당신의 행동들이 거룩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신의 영혼은 말짱하군요. 당신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행복한 사나이요.”
요셉은 그를 찌르는 듯한 눈으로 그를 준엄하게 바라보며 말한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죄가 없으니까요.”
“우리 모두는 죄짓소, 유다. 그런데 우리가 처음에 죄들을 지은 다음에 분명히 뉘우치고 그 수와 악성을 더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렇게 나쁜 것만도 아니오!”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니코데모가 말한다. 그 다음에 그는 선생님을 향하여 말한다.
“난처한 일은 세포리스의 요셉이 만일 그가 다시 당신께 숙소를 제공하면, 회당의 출입을 금지하겠다고 위협받았다는 것과 바르톨마이가 이미 회당에서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부모들과 함께 회당에 갔지만, 바리사이들이 그의 회당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그에게 파문을 외쳤답니다.”
“그건 너무합니다! 오, 주님, 언제까지…”
많은 이들이 부르짖는다.
“조용히 해라! 조용히 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바르톨마이는 이미 하늘나라의 길에 들어서 있다. 그렇다면 그가 무엇을 잃었느냐? 그는 빛 가운데 있다. 그럼 그는 과거의 그보다 더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냐? 오! 가치들을 혼동하지 마라! 침착해라! 침착해!
우리는 더 이상 요셉의 집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사악이 내 어머니와 알패오의 마리아를 그리로 모셔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유감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이미 필요한 조치를 해놓았으니 불과 몇 시간 동안만 그럴 뿐이다.”
예수께서 놉의 요한을 향하여 돌아서며 말씀하신다.
“어르신, 당신은 산헤드린을 무서워하십니까? 사람의 아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려면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 당신은 아시겠지요…
당신은 연세가 많으십니다. 그리고 당신은 충실한 이스라엘 사람이십니다. 당신은 당신의 만년의 안식일들에 회당에서 쫓겨나실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견디실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말씀하십시오. 만일 당신이 두려워하신다면, 저는 가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산에 여전히 하느님의 아들을 위한 동굴 하나쯤은 있을 것입니다…”
“주님, 제가요? 그런데 제가 하느님 말고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저는 무덤의 입구를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친구처럼 바라봅니다. 그런 제가 사람들의 입을 무서워한다는 말씀입니까? 만일 제가 사람들이 무서워서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제 집에서 쫓아낸다면, 저는 하느님의 심판만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좋습니다. 당신은 의인이십니다… 저는 여기 머무르겠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인근 마을들에 가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을 때는요.”
“라마의 제 집으로 오십시오, 주님!”
니코데모가 말한다.
“그러다가 그 때문에 당신이 해를 입는다면요?”
“바리사이들이 악의를 가지고 당신을 초대하지 않습니까? 저는 당신의 마음을 알아보기 위하여 그렇게 할 수 없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선생님. 라마로 가십시다. 제 아버지가 집에 계신다면, 그분은 몹시 기뻐하실 겁니다. 자주 그러시는 것처럼, 만일 그분이 집에 안 계신다면, 그분이 돌아오실 때 당신의 강복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토마스가 간청하며 말한다.
“첫째 목적지로 라마로 가자. 내일…”
“선생님, 저희는 떠나겠습니다. 밖에 저희의 나귀들이 준비되어 있으니 2시가 끝나기 전에 라마에 도착할 것입니다. 길들이 마치 창백한 태양이 비추어주는 것처럼 달빛으로 밝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선생님. 선생님께 펑화.”
니코데모가 말한다.
“선생님께 평화… 원로 요셉의 올바른 충고를 들으십시오.좀 약아지십시오. 당신의 주위를 둘러보시고, 눈을 뜨시고, 입을 다무십시오. 행동하시되, 당신께서 무엇을 하시려는지 결코 미리 말씀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한참 동안 예루살렘에 오지 마십시오. 만일 오시더라도 기도하는 데 필요한 시간 이상은 성전에 머무르지 마십시오. 당신께서는 제 말씀을 알아들으시겠습니까? 안녕히 계십시오, 선생님. 당신께 평화.”
요셉은 내가 밑줄 친 말들을 아주 강조하며 말했다. 그는 말하면서 예수를 강렬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의 눈길 자체가 하나의 경고였다.
그들은 달빛 아래 새하얀 작은 정원으로 나온다. 그들은 호두나무 줄기에 매여 있는 튼튼한 나귀들의 고삐를 풀어 올라타고 인적 없는 흰 길을 따라 출발한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사도들과 함께 부엌으로 돌아오신다.
“결국 그의 말은 무슨 뜻일까?”
“바리사이들이 어떻게 알아냈을까?”
“그들은 세포리스의 요셉에게 어떻게 할까?”
“아무것도 아니다. 말뿐이다. 말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잊어라. 그것은 다 지나갔고 어떤 결과도 남기지 않는다. 자, 기도드리자. 그리고 밤을 지내러 헤어지자.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강복하시고,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신 다음 당신과 함께 지내기로 하신 네 사람과 함께 침대들이 있는 방으로 올라가신다.
510. 파괴된 마을의 폐허에서
1946. 10. 12.
나는 예수께서 계시는 곳이 어딘지 모른다. 그분께서는 분명히 산 속, 지각운동이나 격전으로 인하여 파괴된 다음 버려진 장소에 계신다. 후자가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집들의 잔해들 중 비를 맞지 않은 천장들에 불의 흔적들이 검은딸기나무, 담쟁이, 사방에서 자라고 있는 덩굴식물이나 기생식물이 얽혀 있는 가운데에서도 아직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탈리아에서도 보았지만 이름은 모르는 어떤 나무의 넓고 잔털 많은 잎이 깎아지른 작은 산처럼 보이는 큰 폐허를 덮고 있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한 벽만이 똑바로 서서 무너진 집의 잔해를 홀로 내려다보고 있는데, 서양풍조목 덤불, 펠리트륨, 참으아리가 침입해 들어와 그 가지들이 한 때는 옥상이었던 만(卍)자 무늬의 난간에 매달려 풀어헤쳐진 머리카락처럼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중앙부는 허물어졌지만 외벽들은 여전히 서 있는 다른 한 채의 집은 거대한 화분처럼 보이는데, 한 때는 방들이었던 공간에 자생적으로 자라난 나무들이 꽃줄기들 대신 들어 있다. 계단들, 벽들의 잔해와 함께 그 일부가 서 있는 다른 집은 모종의 의식을 위하여 준비되고 온통 초록빛으로 꾸며진 제단처럼 보인다. 폐허의 정상 바로 그 지점에 칼날처럼 가늘고 곧은 포플라 한그루가 마치 그 재앙의 이유를 하늘에 물어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집과 집 사이, 잔해들과 잔해들 사이에 이제는 퇴화하고 야생화된 끈질긴 유실수들이 떨어진 열매로부터 벽들의 틈새들이나 말라버린 우물에서 자라나, 뒤틀리거나, 곧거나, 땅바닥을 기며 다른 식물들에게 짓눌리거나 다른 식물들을 짓누르는 광경은 마술에 걸린 숲을 보는 기분이다. 폐허의 갈라진 틈들에서 새들과 비둘기들이 나와서 한때는 경작되었겠지만 지금은 봄철에 다시 돋아나도록 땅에 씨를 떨어뜨리려고 꼬투리를 벌리고 있는 햇볕에 마른 단단한 살갈퀴와 독보리와 잡초들이 우거져 있는 근처의 들을 향하여 탐욕스럽게 날아들고 있다.
비둘기들이 멀리 떨어진 어떤 곳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씨에서 돋아난 수수 씨나 삼씨를 찾아온 더 작은 새들을 사나운 날갯짓으로 쫓는다. 그 씨앗들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먼 과거의 씨앗으로부터 우발적인 파종을 통하여 버려진 땅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다. 새들, 특히 다투기 좋아하는 참새들은 자기들의 둥지로 가져가려고 키 작은 비쩍 마른 수수 이삭들을 빼앗음으로써 복수한 다음 수숫대의 무게와 거추장스러움 때문에 잔뜩 몸을 숙이고 어렵사리 날아간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사도들만이 아니라 수많은 제자들과도 함께 계시는데, 그 중에는 늙은 회당장 클레오파의 아들들인 엠마오의 클레오파와 헤르마, 그리고 스테파노도 있다. 거기에는 또한 남자들과 여자들도 있는데, 그들은 마치 예수를 자기네 마을로 모셔가기 위하여 어떤 마을에서 왔거나 그분께서 그들의 마을에 들르신 다음에 그분을 따라오고 있는 사람들 같다.
예수께서는 무너진 집터들을 지나치시며 자주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시다가 더 높은 곳에서 잔해들과 식물이 뒤엉켜 있는 곳을 조망하실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에서 걸음을 멈추신다. 그곳에서 생명을 나타내는 것은 비둘기들뿐인데, 그 놈들은 한 때는 틀림없이 온순하고 길들여졌었겠지만, 지금은 야생이고 사나운 놈들이 되어 있다. 그분께서는 팔짱을 끼고 머리를 약간 숙이신 채 관찰하시는데, 그분께서 주위를 둘러보실수록 점점 더 창백해지시고 침울해지신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왜 여기 멈추어 계십니까? 저는 이곳이 당신을 침울하게 만든다는 것을 분명히 알겠습니다. 이곳을 바라보시느라 지체하지 마십시오. 제가 당신을 이리로 지나가시게 만든 것이 저는 유감스럽습니다. 그러나 이 길은 상당한 지름길입니다.”
엠마오의 클레오파가 말한다.
“오! 나는 너희가 보는 것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
“그럼 당신께서는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주님? 아마 당신께서는 과거의 사건을 다시 보시는 거겠지요? 분명히 그것은 무서운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로마의 방식입니다…”
엠마오 출신의 다른 사람이 말한다.
“너희는 이것을 보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모두들 보아라. 여기에는 도시가 있었다. 그것은 크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도시였다. 이곳에는 초라한 집들보다는 호화로운 저택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이곳들은 지금은 황량한 숲이지만, 부자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황폐하고 검은딸기나무들, 독보리들, 그리고 쐐기풀들로 뒤덮여 있는 이 메마른 밭들도 부자들의 소유였다…
그때 이 땅은 풍요로운 과수원들과 곡식들로 가득한 밭들이었다. 그리고 꽃들로 가득한 정원들과 우물들, 그리고 비둘기들이 미역을 감고 어린이들이 노는 분천들이 있는 집들은 아름다웠다. 이곳의 모든 주민들은 행복했었다. 그러나 행복이 그들을 의롭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들은 주님과 그분의 말씀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집들도, 꽃들도, 분천들도, 곡식들도, 과일들도 더 이상 없다. 비둘기들만이 남아 있을 뿐인데, 그놈들도 옛날처럼 행복하지 못하다. 전에는 그놈들이 실컷 먹던 황금빛 낟알과 회향 대신 지금은 거친 살갈퀴와 쓴 독보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싸운다. 그리고 그놈들은 가시덤불 사이에 돋아난 보리 이삭 하나라도 발견할 때는 잔치라도 하는 것처럼 즐거워한다!
그리고 나는 비둘기들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얼굴들과 얼굴들을 본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는 잔해들과 잔해들, 검은딸기나무 덤불과 야생 포도나무, 살갈퀴들이 우리 조국의 땅을 뒤덮고 있는 광경을 본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주님을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새들보다 더 불행한 기진맥진한 어린이들이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 새들에게 여전히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움은 주시지만, 그 아기들은 보편적 징벌(general punishment)에 얻어맞아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그들의 어머니들의 말라붙은 가슴 위에서 쇠약해지고, 궁핍과 고통과 형언할 수 없는 공포로 죽어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자기들의 가슴 위에서 굶어죽은 자기의 자녀들로 인하여 어머니들이 통곡하는 소리들, 남편을 잃은 아내들과 승리자들의 쾌락을 위하여 붙잡힌 동정녀들과 전쟁에서 온갖 수치스러운 일을 경험한 다음에 감옥에 갇혀야 하는 남자들과 오래 살아서 다니엘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보게 된 노인들의 애가들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잔해들 사이로 부는 이 바람 소리와 돌무더기들 가운데에서 우는 비둘기들의 울음소리에서 이사야의 지칠 줄 모르는 목소리를 듣는다. ‘주님께서 외국어로, 상스러운 말로 이 민족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이곳이 내가 쉴 곳이다. 피로한 사람들을 쉬게 해주어라. 그것이 내 위안이다.’
그러나 그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고, 주님께서는 그분의 백성 가운데에서 휴식을 발견하실 수 없었다. 자기의 땅을 두루 다니며 가르치고, 병을 고쳐주고, 돌이키게 하고, 위로해주느라 피로에 지친 사람(the tired One)이휴식을 발견하지 못하고 박해당한다. 그는 위안을 발견하지 못하고, 덫들과 배반을 만난다.
아들은 아버지와 하나이다. 그리고 만일 진리(the Truth)가 형제에게 베푼 모든 자비의 행위는 하느님 자신에게 베푼 것이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준 물 한 잔도 보상될 것이라고 너희에게 가르쳤다면,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머리를 베고 휴식할 수 있는 길의 돌마저도, 창조주의 관대하심으로 인하여 솟아나는 산의 샘물마저도, 병들었거나 익지 않아서 가지에 잊힌 채로 달려 있는 과일마저도, 비둘기들과 경쟁한 이삭마저도 그에게 거절하고, 그의 목을 조르고, 그래서 그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이미 밧줄을 준비해둔 자들에게는 그 벌이 어떠하겠느냐?
오! 정의와 하느님의 자비를 잃어버린 비참한 이스라엘아!
여기, 이곳의 저녁 바람 속에서 죽음의 새의 부르짖음보다 더 무서운, 두 범죄자들을 거의 단죄하기 위하여 지상낙원에서 울려 퍼진 목소리만큼이나 무서운 이사야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오! 소름끼치는 일이다! 이 예언자의 목소리에는 그때처럼 용서의 약속이 결합되어 있지 않다! 아니고말고! 하느님을 조롱하는 자들, ‘우리는 죽음과 동맹을 맺었고, 지옥과 계약을 체결했다. 파괴하는 채찍이 지나가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치지 않을 터인데, 그 이유는 우리가 거짓(Falsehood)에게 우리의 희망들을 두었고, 능력 있는 그것에게 보호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고 말하는 자들에게는 용서가 없기 때문이다.
자, 여기 이사야가 주님에게서 그가 들은 것을 되풀이하는 말이 여기 있다. ‘나는 시온의 기초로 엄선한 귀중한 모퉁이들을 놓겠다. 그리고 나는 정의를 척도로 만들고, 진실성을 다림줄로 만들 터인데, 우박이 거짓에 거는 희망을 쓸어버릴 것이고, 홍수들이 장막을 엄습할 것이며, 죽음과 맺은 너희의 동맹은 파기될 것이고, 지옥과 체결한 너희의 조약은 무효화될 것이다.
파괴의 채찍이 지나갈 때 그것은 너희를 으깨놓을 것이고, 그것이 지나갈 때마다 너희를 내리칠 것이며, 벌들만이 너희에게 교훈을 얻게 할 것이다.’
불행한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메마른 살갈퀴와 쓴 독보리만이 남아 있고 알곡은 없어진 이 밭들처럼 될 것이고, 주님을 원치 않은 땅은 자기의 자녀들에게 줄 빵이 없을 것이며, 피로한 자(the tired One)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했던 자녀들은 떠돌아다닐 것이고, 얻어맞고, 야만인이 되어, 갤리선의 노예들처럼 그들이 열등한 존재들이라고 업신여기던 자들의 노예가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교만한 민족을 그분의 정의의 무게로 치실 것이고, 그분의 심판의 방망이로 부수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 폐허에서 보는 것이다. 폐허! 폐허! 동서남북 어디나, 그리고 특히 중심부가, 심장부가 폐허가 될 터인데, 거기서는 그 죄지은 도시가 고약한 냄새가 나는 구덩이로 변할 것이다…”
두 줄기 눈물이 예수의 창백한 얼굴로 천천히 흘러내린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겉옷을 들어 얼굴을 가리시고, 고통스러운 환시로 인하여 커진 두 눈만을 드러내 보이신다.
그분께서는 다시 길을 가기 시작하시는데, 동행하는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간신히 속삭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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