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3. 사무엘, 가리옷의 유다와 요한. 꿀벌들의 비유
1947. 2. 10.
예수께서는 에프라임 서쪽의 울창한 숲 속을 생각에 깊이 잠기신 채 혼자서 천천히 걸어가신다. 개울에서는 물이 흘러내려가는 소리가 올라오고, 나무들에서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봄날의 밝은 햇빛은 우거진 가지들 아래에서 화사하고, 풍성한 풀밭의 양탄자를 밟는 발걸음은 조용하다. 햇살은 푸른 풀 위에 움직이는 둥근 양탄자들과 초록빛 풀 위에 황금빛 줄무늬들을 그려놓고, 아직 이슬에 젖어 있는 어떤 꽃들은 주위는 온통 그늘인데 둥그런 빛살을 정면으로 받아, 그 꽃잎들이 마치 귀중한 보석들이라도 되는 양 반짝인다.
예수께서는 아래의 텅 빈 공간 위에서 발코니처럼 돌출해 있는 바위를 향하여 올라가신다. 그 발코니 위에는 거대한 참나무 한 그루가 우뚝 솟아 있고, 블랙베리, 들장미, 인동초, 참나리들이 그 아래로 늘어져 있는데, 그것들은 자기들이 사는 곳이 그것들의 넘치는 생명력을 발휘하기에는 너무 비좁아 뻗거나 의지할 데가 없어서 그놈들이 기댈 무언가를 찾아내기를 바라며 풀어헤쳐지고 부스스한 머리채처럼 허공으로 축 늘어져 있다.
예수께서는 지금은 돌출해 있는 바위와 같은 높이에 계신다. 그분께서는 우거진 넝쿨을 옆으로 제치시며 돌출부의 맨 끝을 향하여 가신다. 한 떼의 작은 새들이 놀라 짹짹거리며 푸드덕 날아올라 다른 데로 날아간다.
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분보다 먼저 그리로 올라와 있는 사람을 살펴보신다. 그는 돌출한 바위의 거의 가장자리의 풀 위에 엎드려 팔꿈치를 땅에 대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예루살렘 쪽의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요나탄 벤 우지엘의 이전 제자 사무엘이다. 그는 생각에 잠겨 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머리를 흔든다…
예수께서는 그의 주의를 끌기 위하여 나뭇가지를 흔드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분의 시도가 헛된 것을 보시고 풀 속에서 돌 하나를 주워서 그것을 오솔길 아래로 굴려 내려 보내신다. 비탈 아래에서 튀어 오르는 돌의 소리에 젊은이는 정신을 차리고 놀라서 뒤돌아보며 말한다.
“거기 누가 있소?”
“사무엘, 나요.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기도장소들 중 하나에 나보다 먼저 왔소.”
예수께서 오솔길 끝에 있는 참나무의 거대한 줄기 뒤에서 나타나시며 말씀하시는데, 그분께서는 마치 그곳에 방금 도착하신 것처럼 말씀하신다.
“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는 즉시 당신의 자리를 내드리겠습니다.”
사무엘이 벗어 바위에 깔았던 겉옷을 집으면서 서둘러 일어나며 말한다.
“아니오. 왜? 두 사람이 있을 만한 자리가 있는데. 이곳은 참으로 아름답소. 외따로 떨어져 있고, 고적하고, 허공에 매달려 있고, 햇빛이 잘 들고, 전망이 넓게 펼쳐져 있소! 당신은 왜 이곳을 떠나기를 원하오?”
“글쎄요… 당신께서 자유롭게 기도하시게 하려고요…”
“우리가 함께 기도할 수는 없겠소? 아니면 우리가 서로 대화하고, 우리의 영혼들을 하느님께로 들어 올리고… 사람들과 그들의 결점들을 잊고,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착한 뜻을 가지고 그분을 찾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인자하신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생각하며 묵상할 수는 없겠소?”
사무엘은 예수께서 ‘그리고 사람들과 그들의 결점들을 잊고…’라고 말씀하실 때 놀라움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다시 앉는다.
예수께서는 그의 곁 풀 위에 앉아 말씀하신다.
“여기 앉으시오. 함께 있읍시다. 오늘은 날씨가 쾌청하여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시오. 만일 우리가 독수리의 눈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예루살렘 주위의 산꼭대기들 위의 하얀 마을들을 볼 수 있을 거요. 그리고 아마도 우리는 허공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한 지점, 즉 하느님의 집의 황금 돔들을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우리의 심장들은 고동칠 거요…
보시오. 저기 베텔이 있소. 당신은 그곳의 흰 집들을 볼 수 있을 거요. 그리고 저기 베텔 너머에는 브에롯이 있소. 그곳과 그 인근의 주민들은 얼마나 교활하고 교묘했었소! 비록 속임수는 결코 좋은 무기가 아니지만, 그것은 좋은 결과를 내었소. 왜냐하면 그 간교로 인하여 그들이 하느님을 섬기게 되었기 때문이오.
신성에 다가가려면 항상 인간적인 명예를 잃는 편이 좋소. 설령 인간적인 명예가 크고 귀하다 해도, 신성에 다가가는 것은 겸손하고, 알려지지 않는 것이오. 그렇지요?”
“예, 선생님. 당신의 말씀이 옳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로 인하여 당신은 행복해야 할 텐데 슬퍼하고 있소. 당신은 울적해하고 하오. 당신은 고통당하고 있소. 당신은 외롭게 지내고 있소. 당신은 당신이 떠나온 곳들을 바라보곤 하오. 당신은 새장의 창살 속에 갇혀서 그놈이 좋아하던 곳을 몹시 동경하며 바라보는 새장에 갇힌 새와도 같소. 나는 당신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하지는 않겠소. 당신은 자유롭소. 당신은 가도 되오. 그리고…”
“주님, 유다가 혹시 저에 대해서 나쁘게 말했기 때문에 당신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오. 유다는 나에게 말하지 않았소. 그는 나에게가 아니라 당신에게 말했소. 그래서 당신이 슬퍼하는 거요. 그리고 당신은 그 때문에 낙심하여 외롭게 지내고 있는 거요.”
“주님, 아무도 당신께 그것을 말씀드리지 않았는데도 당신께서 그 모든 것들을 아신다면, 당신께서는 제가 회개한 것을 후회하거나,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거나, 사람들이 저에게 그들이 저를 처벌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입하여 제가 그들을 두려워하여 당신을 떠나기를 원하기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아실 것입니다.
제가 저쪽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예루살렘 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리로 돌아가기를 갈망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의 취지는 제가 과거의 저로 돌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분명히 다른 모든 사람처럼 하느님의 집으로 들어가 지극히 높으신 분께 경배하기를 좋아하는 한 이스라엘 사람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신께서 그것을 이유로 저를 책망하실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두 개의 내 속성 안에서(in My double Nature) 그 누구보다 그 제단을 갈망하고, 그 제단이 명실상부하게 거룩함으로 둘러싸여 있기를 바라오. 하느님의 아들로서 그분을 영예롭게 해드리는 것은 무엇이든 나에게 감미로운 목소리이고, 사람의 아들, 이스라엘 사람, 따라서 율법의 아들로서 나는 성전과 그 제단을 이스라엘의 가장 신성한 장소라고, 우리 인성이 신성에 다가갈 수 있고, 하느님의 어좌를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의 향기에 젖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오.
사무엘, 나는 율법을 폐지하지 않소. 그것은 내 아버지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 신성한 것이오. 나는 그것을 완성하고 새 부분들로 그것을 완전하게 만드오. 하느님의 아들로서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소.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소. 나는 내 교회의 영적인 성전을 세우러 왔는데, 사람들도, 마귀들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오.
율법의 석판들은 그 안에서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할 것이오. 왜냐하면 그것은 영원하고, 완전하고, 불가침의 것이기 때문이오. 하느님의 눈에 의롭게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그 정교한 간결함 속에 함축하고 있는 그 석판들에 포함된 ‘이러이러한 죄를 짓지 마라’는 계명은 내 말에 의하여 폐지되지 않소.
반대로! 나도 당신들에게 그 십계명을 주오. 나는 이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키라고, 즉 당신들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당신들의 아버지이신 당신들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지키라고 말하오.
나는 아들들인 당신들의 손을 당신들의 아버지의 두 손 안에 놓아드리려고 왔소. 얼마나 긴 세월 동안 그 손들이 떨어져 있었소! 벌이 그것들을 갈라놓았고, 죄도 그것들을 갈라놓았소. 구속자가 와 있는 지금 죄가 막 취소되려 하오. 장벽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소. 당신들은 다시 하느님의 아들들이 되오.”
“그것은 사실입니다. 당신께서는 선하시고, 위로해주십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아십니다. 그러니 저는 제 고민을 당신께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께 여쭙겠습니다. 사람들은 왜 이다지도 악하고, 실성해 있고, 어리석습니까? 그들은 어떻게, 무슨 방법들로 저희에게 악한 일들을 하도록 악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저희는 무슨 연유로 실제 사실들을 보지 못하고 거짓 사실들을 믿도록 눈이 멀 수 있습니까? 그리고 저희가 어떻게 그런 마귀들이 될 수 있습니까? 그리고 당신 가까이에 있는 자가 어떻게 집요하게 마귀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까?
저는 저기를 바라보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 저는 얼마나 많은 독의 물줄기들이 그곳에서 흘러나와 이스라엘의 자녀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라삐들의 지혜가 사람들을 속이기 위하여 사실들을 왜곡하는 그렇게도 많은 불의와 결합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특히 그것을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격정적으로 말하던 사무엘이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다…
예수에서 그 문장을 마무리하신다.
“…왜냐하면 내 제자인 유다는 그의 정체가 그렇고, 나와 내 주위에 있거나 당신처럼 나에게 오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이오. 나도 아오. 유다는 당신을 여기서 떠나보내려고 애쓰고 있고, 그래서 그는 당신에게 암시들을 주고 당신을 조롱하는 것이오…”
“그는 저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예. 그는 정의를 향하여 온 제 기쁨을 독살합니다. 그가 얼마나 교묘하게 제 기쁨을 독살하는지, 저는 여기서 당신과 저 자신을 배반하는 배반자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저는 제가 당신의 파멸의 원인이 되었을 터인데, 더 착해졌다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아직 저 자신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만일 제가 성전의 사람들을 만난다면, 제 결심을 포기하고, …될지도 모릅니다. 오! 만일 제가 그때 그렇게 했다면, 저는 당신이 무엇이지를 알지 못한다는 변명거리를 가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당신에 대해서 저를 저주받은 사람이 되게 만들려고 사람들이 저에게 말하는 대로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만일 제가 지금 그렇게 한다면! 하느님의 아들의 배반자가 받을 저주는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여기서…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예. 저는 저 자신과 그들에게서 저를 구하기 위하여 어디로 도망칠까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느 먼 곳으로 도망쳐서 디아스포라의 사람들과 합류할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먼 곳으로, 마귀가 저로 하여금 죄짓지 못하게 하려고…
당신의 사도가 저를 믿지 않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그는 저를 압니다. 왜냐하면 그는 저희의 지도자들을 알기에 저희 모두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저를 의심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당신은 그분이 우리에게 우리가 약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는 걸 모르오? 한 번 상상해보시오. 우리는 그분의 사도들이고 그래서 우리는 그분과 오랫동안 같이 있어 왔소. 그런데 옛 이스라엘에 찌들어 있는 당신은 이제야 왔고, 상황들이 우리를 몸서리치게 하는 시기에 온 당신이 의롭게 남아 있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오?’ 하고 그가 말할 때 그의 말은 옳습니다.”
그는 낙심하여 고개를 떨어뜨린다.
“사람의 아들들이 그들 자신들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는지! 사탄은 참으로 그들의 이런 기질을 활용하여 그들을 완전히 공포에 질리게 만들고, 그들을 구해주려고 그들을 향하여 오는 기쁨(the Joy)에서 그들을 갈라놓소. 왜냐하면 영혼의 슬픔, 내일에 대한 공포, 걱정들은 항상 사람 자신이 상상하는 똑같은 환상들로 그를 두렵게 만드는 그의 원수의 손에 들려주는 무기들이오. 또한 진정으로 사탄과 동맹하여 그의 형제들을 두렵게 만드는 데 있어 사탄을 돕는 다른 사람들이 있소.
그러나 내 소중한 아들이여, 하늘에 한 아버지께서 계시지 않소? 이 바위틈에서 이 풀을 위하여 공급해주시는 한 아버지―이 틈에는 흙이 가득 차 있는데, 매끈한 저 돌 위에서 흐르고 있는 이슬의 습기가 이 가는 고랑에 모이도록 되어 있어, 이 여린 풀포기가 살아서 이 작은 꽃을 피울 수 있게 하오. 그런데 이 작은 꽃은 그 아름다움에 있어 저 위에서 빛나고 있는 위대한 태양보다 덜 감탄스러운 것이 아니오. 그것들은 둘 다 창조주의 완전한 작품이오. 한 아버지께서 바위 위에서 자란 풀포기를 보살펴주시는데, 그분께서는 그분을 섬기기를 굳게 원하는 그분의 아들들 중의 한 사람을 보살펴주시지 없겠소? 오!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사람의 ‘착한’ 소원들을 실망시키지 않으시오. 왜냐하면 당신들의 마음 안에서 그것들을 불붙이시는 분은 바로 그분이시기 때문이오.
그분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의 소원들을 격려하시기 위하여, 그리고 불완전한 길로 나아가면서 그분을 공경하고자 하는 소원을 바로잡고 완전하게 해주어, 올바른 길을 따라가면서 그분을 공경하고자하는 욕망으로 이끌어 가기 위하여 섭리적으로, 그리고 지혜롭게 상황들을 창조하시오.
당신은 후자 가운데 있었소. 당신은 나를 박해함으로써 하느님을 공경한다고 믿었고, 그것을 원했고,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소.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마음이 하느님을 증오하지는 않고, 다만 당신이 하느님의 원수이고 영혼들을 타락시키는 자라고 들었던 그 사람을 세상에서 없앰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를 갈망하는 것을 보셨소.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당신의 주님께 영광을 드리려는 당신의 소원을, 찬미하겠다는 당신의 욕망을 들어주시기 위한 상황들을 조성하셨소. 그렇게 하여 지금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게 된 거요.
그런데 당신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이리로 데려오신 지금 그분께서 당신을 버리실 거라고 믿을 수 있소? 오로지 당신이 그분을 버릴 경우에만 악의 힘이 당신을 압도할 수 있을 거요.”
“저는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제 뜻은 진실합니다!”
그가 언명한다.
“그럼 당신은 무엇을 걱정하오? 한 사람의 말에 대해서요? 그 사람이 말하도록 내버려두시오. 그는 그 자신의 생각으로 생각하오. 그런데 사람의 생각은 항상 불완전하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돌보겠소.”
“저는 당신께서 그를 질책하시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죄짓지 않을 것이라는 당신의 확인이라면, 그것으로 저에게 충분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확인하오. 당신은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당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요. 아들이여, 알겠소? 당신의 영혼을 그리스도에 대한 증오로부터 지키고, 그런 증오에 대한 처벌을 면하기 위하여 디아스포라나 세상의 끝까지 간다 해도 그것은 당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요.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으로는 그 죄(the Crime)로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을 거요. 그러나 그들은 나를 단죄하고, 그 선고를 집행할 사람들보다 죄가 덜하지 않을 거요.
나는 이 문제들에 대하여 당신에게 말할 수 있소.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모든 것이 그것들을 위하여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오. 당신은 가장 무자비한 내 원수들의 이름들과 생각들을 알고 있소. ‘유다는 모든 지도자들을 알기 때문에 저희 모두를 압니다’ 하고 당신은 말했소.
그러나 만약 그가 당신들을 안다면, 당신들은 주요한 행성들 가까이에 있는 작은 행성들과 같기 때문에, 당신들도 무엇이 행해지고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행해지고 있는지, 누가 그것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음모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어떤 방법들이 연구되고 있는지를 알고 있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과 말할 수 있소.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말할 수 없을 거요… 내가 어떤 고통을 당할 수 있고, 무엇을 견뎌야 하는지를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오…”
“선생님, 그러나 당신께서는 그것을 아시면서 어떻게 그렇게… 누가 오솔길로 올라오지?”
사무엘이 보려고 일어선다. 그가 외친다.
“유다가!”
“그렇소, 나요. 나는 선생님께서 여기를 지나가셨다고 들었는데, 그분 대신 당신을 만나는구려. 그럼 당신의 생각에 잠겨 있도록 나는 돌아가겠소.”
유다가 교활하게 웃는데, 그 웃음은 너무 가식적이어서 올빼미의 울음소리보다 더 음산하다.
“나도 여기 있다. 사람들이 마을에서 나를 찾느냐?”
예수께서 사무엘의 뒤에서 나타나시며 말씀하신다.
“오! 당신께서! 그럼 사무엘, 당신은 좋은 동반자와 함께 있었구려! 선생님, 당신께서도 그러시고요.”
“그렇다. 정의를 포옹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항상 좋다. 그럼 너는 나와 함께 있으려고 나를 찾고 있었구나. 오너라. 네가 앉을 자리가 있다. 만일 요한이 너와 함께 왔다면, 그의 자리도 있었을 것이다.”
“요한은 저 아래 마을에서 다른 순례자들과 드잡이하고 있습니다.”
“순례자들이 있다면 내가 가야겠구나.”
“아닙니다, 그들은 내일까지 하루 종일여기 있을 거랍니다. 요한은 그들이 머무를 수 있도록 우리 침대들에 자리를 배정해주고 있는 중입니다. 그는 그렇게 하는 걸 기뻐합니다. 물론 그 사람은 모든 것을 기뻐합니다. 당신과 그 사람은 정말 닮으셨습니다. 저는 어떻게 당신과 그가 일들이 가장 염려스러울 때에도 항상 행복하실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왔을 때 나도 똑같은 질문을 하려던 참이었소.”
“아! 그래요? 그렇다면 당신도 자신을 행복하지 않은가 보오. 그리고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처지보다 훨씬 더… 어려운 처지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데 대하여 놀라고 있구려.”
“나는 불행하지 않소. 나는 나 자신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 않았소. 나는 자신의 미래를 알고 계시면서도 그 무엇에도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으시는 선생님의 침착성이 어떤 근원에서 오는지 생각하고 있었소.”
“물론 천상의 근원에서 오는 거지요! 그건 당연하오! 선생님께서는 하느님이시니까! 당신은 그것을 의심하오? 하느님께서 고통당하실 수 있소? 그분은 고통을 초월해 계시오. 그분께는 그분의 아버지의 사랑은 취하게 하는 술과 같소… 그리고 그분의 행동들은… 세상의 구원이라는 확신은 그분에게는 취하게 하는 술이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가지는 육체적인 반응들을 가지실 수 있겠소? 그것은 상식에 어긋나오.
만일 죄 없는 아담이 어떤 종류의 고통도 느끼지 않았고 무죄한 채로 남아 있었다면 그는 고통을 알지도 못했을 터인데, 더할 수 없이 무죄하시고, ―나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소― 하느님이시니 창조되지 않으셨거나, 부모들이 계시니 창조되신 인간이신… 오! 나의 선생님, 미래의 세대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불가해한 ‘왜’들이 있겠습니까! 만일 아담이 그의 무죄로 인하여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웠다면, 예수께서 고통당하셔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소?”
예수께서는 고개를 숙이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다시 풀 위에 앉으셨다. 그분의 얼굴은 그분의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어 나는 그분의 표정을 보지 못한다.
서 있는 유다 앞에 서 있는 사무엘이 대답한다.
“그러나 만일 그분께서 구속주가 되셔야 한다면, 그분께서는 실제로 고통당하셔야 하오. 당신은 다윗과 이사야를 기억 하지 못하오?”
“나는 그들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소! 그러나 비록 그들은 구속주의 얼굴을 보았다 해도, 그들은 그분이… 뭐랄까, 고문당하면서도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받았을 무형의 도움은 보지 못했던 거요.”
“무슨 도움이오? 사람은 그의 의덕의 완전함에 따라 고통을 사랑하거나 체념으로 그것을 당할 수 있을 거요. 그러나 그는 언제나 고통을 느낄 거요. 그렇지 않다면… 만일 그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닐 거요.”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오.”
“그러나 그분께서는 유령이 아니시오! 그분께서는 진짜 육체시오! 육체는 고문당하면 고통을 느끼오. 그분께서는 참다운 사람이시오! 그리고 사람의 생각은 모욕당하고 무시당하면 고통을 당하오.”
“그분의 하느님과의 결합은 그분 안에서 그런 인간적인 것들을 제거하오.”
예수께서는 얼굴을 드시고 말씀하신다.
“유다야,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하는데, 나는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니 모든 사람보다 더 고통당하고 있고, 앞으로도 고통당할 것이다. 그러나 나도 하느님의 뜻을 그들의 유일한 신부로 선택했기 때문에 세상의 슬픔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한 사람들의 거룩하고 영적인 행복을 향유하며 똑같이 행복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 같은 행복과 행복에 대한 염려에 관한 인간적인 개념을 극복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
나는 사람들이 행복의 요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과 정확히 정반대의 것에 내 기쁨을 둔다. 그것은 사람이 부담스럽고 고통스럽다고 여기기 때문에 회피하고 업신여기는 것들이다. 나는 한 시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는 한 시간이 영원한 삶 안에 가져올 수 있는 결과들을 생각한다. 내 에피소드는 끝나겠지만, 그 열매는 지속된다. 내 고통은 끝나겠지만, 내 고통의 가치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내가 수년 동안 추구한 끝에 마침내 얻은 한 시간이 영원한 삶 안에서 나와 함께 기쁨으로 오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함께 하지 못하고, 나 혼자만이 그것을 즐겨야 한다면, 그 한 시간으로 땅에서 소위 ‘행복한 상태’라고 부르는 것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만일 당신께서 승리하신다면, 당신의 추종자인 저희는 당신의 행복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유다가 외친다.
“너희에게? 그런데 내 고통이 기쁨을 가져다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수많은 무리와 비교해볼 때 너희는 누구냐? 나는 땅의 행복 너머 멀리 본다. 나는 그것을 넘어서 초자연적인 것들을 본다. 나는 내 고통이 수많은 사람들의 영원한 기쁨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완전한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큰 힘으로서 고통을 포옹한다. 그 완전한 행복이란 자기의 이웃에게 기쁨을 주기 위하여 고통당하고 그를 위하여 죽을 정도로 사랑하는 것이다.”
“저는 그 행복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유다가 말한다.
“너는 아직 지혜롭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너는 그것을 이해할 것이다.”
“그럼 요한은 지혜롭습니까? 그는 저보다 더 무식한데요.”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그는 무지하다. 그러나 그는 사랑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
“좋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랑이 몽둥이들을 몽둥이들이 아니게 하고, 돌들을 돌들이 아니게 하고, 그것들이 때리는 몸이 고통당하지 않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께서는 고통이 당신께는 사랑이기 때문에 그것이 당신께 소중하다고 항상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진짜로 붙잡혀 고문당하게 되셨을 때에도―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말입니다―여전히 똑같이 생각하실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당신께서는 당신이 고통을 피하실 수 있는 동안에 그것을 생각하시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 고통은 무서울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만일 사람들이 당신을 붙잡을 수 있다면… 오! 그들은 당신을 존경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바라보신다. 그분께서는 매우 창백하시다. 크게 뜨인 그분의 두 눈은 유다의 얼굴 너머로 그분을 기다리고 있는 모든 고통들을 보고 계시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눈들은 슬픔에도 불구하고 온유하고, 친절하시며, 무엇보다 차분하시다. 평온한 무죄한 사람의 맑은 두 눈이다. 그분께서 대답하신다.
“나도 안다. 나는 네가 알지 못하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의 자비를 바란다. 죄인들에게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나에게도 자비로우실 것이다. 나는 그분께 고통당하지 않기를 청하지 않고, 고통당할 줄 알게 해주시기를 청한다. 그러면 지금 가자. 사무엘, 당신은 우리보다 약간 앞서 가 내가 곧 마을에 도착할 것이라고 요한에게 말하시오.”
사무엘은 절하고 나서 빨리 떠나간다. 예수께서는 내려오기 시작하신다.
오솔길은 몹시 좁아 두 사람이 나란히 내려올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다가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저 사람을 너무 믿으십니다. 저는 그가 누군지 당신에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는 요나탄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성마르고 흥분하기 쉬운 사람입니다.
물론 지금은 너무 늦었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저 사람의 손아귀에 집어넣으셨습니다. 저 사람은 당신 가까이에 있는 밀정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한 번 이상 저를 밀정이라고 생각하셨고, 다른 사람들은 당신보다 더 여러 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밀정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돌아보신다. 고통과 위엄이 그분의 얼굴과 그분의 사도를 응시하시는 예수의 두 눈에 섞여 있다.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그렇다, 너는 밀정이 아니다. 너는 마귀(a demon)다. 너는 사람들을 하느님에게서 떼어놓기 위하여 유혹하고 속이는 뱀의 특권(the Serpent’s prerogative)을훔쳤다. 네 행동은 돌도, 몽둥이도 아니지만, 돌이나 몽둥이로 때리는 것보다 나에게 더 상처 입힌다. 오! 나의 소름끼치는 고통 중에 순교자(the Martyr)를 고통스럽게 하는 네 행동보다 더 큰 것을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마치 그토록 끔찍한 공포를 숨기기를 원하시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오솔길로 뛰어내려오기 시작하신다.
유다는 그분의 뒤에서 외친다.
“선생님! 선생님! 당신께서는 왜 저를 괴롭히십니까? 그 거짓말쟁이가 분명히 당신께 중상했군요… 제 말을 들으십시오, 선생님!”
예수께서는 듣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날다시피 내리막길을 뛰어 내려오신다. 그분께서는 인사드리는 벌목꾼들과 목자들을 지나치실 때 멈추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손을 흔드시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으신다. 유다는 체념하고 침묵한다…
그들이 거의 다 내려왔을 때 그들은 요한과 마주친다. 그는 그의 조용한 미소로 환해진 맑은 얼굴로 그들을 향하여 올라오고 있다. 그는 벌집을 빨아먹으며 재잘거리는 한 어린 소년의 손을 잡고 있다.
“선생님, 제가 왔습니다! 그 사람들은 카이사리아 필리피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당신께서 여기 계신다는 것을 듣고 왔답니다. 참 이상합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데, 모두들 당신께서 어디 계시는지 아니 말입니다! 그들은 지금 쉬고 있습니다. 그들은 피로에 지쳐 있습니다.
병자 한 사람이 있어 저는 디나에게 가서 양젖과 꿀을 얻어 왔습니다. 저는 그를 제 침대에 눕혔습니다. 저는 무섭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린 안나가 저와 함께 오고 싶어 했습니다. 선생님, 이 애를 만지지 마십시오. 얘는 온통 꿀로 끈적거립니다.”
착한 요한은 많은 꿀방울들이 떨어져 있고 손가락 자국들이 나 있는 옷을 입은 채 웃는다. 그는 반쯤 빨아 먹은 벌집을 예수께 드리러 가려고 하면서 외치는 어린이를 제지하려고 애쓰며 웃는다.
“오세요. 선생님, 당신께 드릴 게 많이 있어요!”
“예. 디나의 집에서는 벌집들을 떼어내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벌들이 얼마 전에 분봉했거든요”
요한이 설명한다.
그들은 다시 출발하여 첫 번째 집에 이른다. 그곳에서는 양봉가들이 벌통 옆에서 귀를 윙윙거리게 만드는 예의 큰 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다. 벌떼가―그것들은 이상하게 생긴 커다란 포도송이처럼 보인다―한 나무의 가지들에 매달려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들을 새 벌통들로 가져가려고 따고 있다. 더 먼 곳에서는 지치지 않고 윙윙거리는 벌들이 이미 자리 잡은 벌통들에 들락날락한다.
남자들이 예수께 인사드리고, 한 여자가 매우 아름다운 몇 개의 봉방들을 가지고 다가와 그것들을 그분께 드린다.
“당신은 왜 이것들을 나에게 주시오? 당신은 이미 요한에게도 몇 개를 주었잖소…”
“오! 제 벌들은 많은 꿀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드리는 것은 제 기쁨입니다. 그렇지만 새 분봉들에 강복해주십시오. 보세요. 저 사람들은 마지막 분봉을 거두고 있습니다. 올해 저희는 벌통들을 곱절로 늘렸습니다.”
예수께서 벌들의 작은 도시들로 가셔서 일하기를 멈추지 않는 일벌들이 윙윙거리는 가운데 손을 들어 한 통, 한 통 강복하신다.
“벌들은 모두 기뻐하고 있고, 흥분해 있습니다. 새 집이니까요…”
한 남자가 말한다.
“그리고 새 결혼식인 것 같아요. 이놈들은 정말로 혼인잔치를 준비하는 여자들 같아요.”
다른 남자가 말한다.
“맞아요, 그러나 여자들은 일하기보다 수다를 더 떨지요. 그러나 벌들은 반대로 말없이 일합니다. 그리고 이놈들은 혼인잔칫날에도 일을 합니다. 이놈들은 자기들의 나라와 재산을 만들려고 끊임없이 일합니다.”
세 번째 사람이 말한다.
“덕행을 위하여 항상 일하는 것은 옳은 일이고, 의무이기도 하오. 이익을 얻기 위하여 끊임없이 일하는 것은 그렇지 않소. 자기들이 하느님의 날에 공경 받으셔야 할 한 하느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그렇게 할 수 있소. 말없이 일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벌들에게서 배워야 할 공로입니다. 왜냐하면 거룩한 일들은 침묵 중에서만 거룩하게 행해지니까요. 의덕에 있어서 당신들의 벌들처럼 지칠 줄 모르고 침묵하며 일하시오. 하느님께서 보시고, 그분께서 갚아주시오. 당신들에게 평화.”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두 사도와 따로 계시게 되자 말씀하신다.
“나는 특히 하느님의 일꾼들에게 나는 벌들을 그들의 본보기로 제시한다. 그놈들은 끊임없는 노동으로 건강한 꽃부리들에서 따서 그놈들 안에서 만들어진 꿀을 벌통의 은밀한 속에 저장한다. 그놈들이 그토록 많은 선, 의지, 황금빛 점들처럼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니고, 그러고 나서는 즙을 가득 채우고 들어와 그놈들의 은밀한 방들 안에서 꿀을 정성들여 만들어내는지, 그놈들의 피로는 피로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꿀과 같은 덕행과 정의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많은 건강한 요소들로부터 추출해낸 꿀처럼 진정한 성덕의 즙들을 생산할 수 있는 가르침들, 건전한 교리들과 건전한 우정들을 골라 적극적으로 모아들여진 것을 사용하여 정교하게 다듬기 위하여 외따로 떨어져서 살아야 하는데, 중요한 요소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착한 뜻이다. 그것이 없다면, 여기저기서 모아들여진 즙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가 보고 들은 좋은 것에 대하여 우리는 마음속으로 겸손하게 묵상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일벌들 가까이에 여왕벌들이 있어도, 즉 묵상하는 사람 곁에 그보다 더 의로운 사람이 있어도 시샘하지 말고, 자기의 마음속 은밀한 곳에서 겸손하게 묵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벌통 안에는 여왕벌들과 일벌들 둘 다 필요하다. 만일 그놈들 모두가 여왕벌들이거나 일벌들이라면, 그것은 재앙일 것이다. 여왕벌들과 일벌들이 다 죽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벌들이 없다면, 여왕벌들이 먹을 것이 없어 생식하지 못할 것이고, 여왕벌들이 생식하지 못한다면, 일벌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왕벌들을 질투하지 말아야 한다. 그놈들도 그놈들의 노동과 그놈들의 인내가 있는 것이다. 그놈들은 자신들의 유일한 짝짓기 비행 시에 단 한번만 태양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전과 그 후에는 그놈들은 벌통의 호박색 벽들 안에서 영구적인 격리 안에 있다.
각자는 그놈의 임무를 가지고 있고, 각 임무는 임명이며, 각 임명은 영예일 뿐 아니라 책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벌들은 헛되이 날아다니거나 병들거나 독 있는 꽃들 주위에서 위험한 비행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놈들은 모험적인 시도들을 하지 않는다. 그놈들은 그놈들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그놈들이 창조된 목적을 거슬러 거역하지 않는다. 오! 경탄할 만한 작은 존재들! 너희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가르치느냐!…”
예수께서는 침묵하시며 묵상에 잠기신다.
유다는 갑자기 자기가 어딘지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거의 뛰어서 멀어져간다.
예수와 요한만이 남아 있다. 요한은 예수께서 눈치채지지 않게 그분을 바라본다. 근심하는 사랑의 열렬한 시선이다. 예수께서는 머리를 들고 약간 돌아서서 그분을 살펴보고 있는 그분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사도의 두 눈을 보신다. 그분의 얼굴이 환해지며 그를 그분께로 끌어당기신다.
요한은 이렇게 안긴 채로 걸으며 묻는다.
“유다가 또 다시 당신을 고통스럽게 했지요, 그렇죠? 그리고 그는 사무엘의 마음도 어지럽혔을 것입니다.”
“왜? 그가 너에게 무어라 말했느냐?”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알았습니다. 그는 이렇게만 말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말 착한 분 곁에서 살면 착하게 되네. 그렇지만 유다는 3년 동안이나 선생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착하지 않아. 그는 마음속 깊은 곳까지 타락하여 그리스도의 선하심이 그를 관통하지 못해. 그만큼 그는 악으로 가득 차 있어.’
저는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유다는 왜 그 모양입니까? 그가 결코 변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요? 하지만… 저희는 모두가 같은 가르침들을 받고 있고… 그가 저희 가운데 왔을 때 그는 저희보다 더 나쁘지도 않았는데요…”
“나의 요한! 나의 온유한 아이!”
예수께서는 그의 넓고 깨끗한 이마에 입 맞추시고, 가볍게 물결치는 그의 금발에 대고 속삭이신다.
“자기들 안에 있는 선을 파괴하기 위하여 사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너는 어부이니 폭풍이 휘몰아칠 때 돛이 어떻게 하는지 알지. 그것은 물 가까이로 심하게 기울어져서 거의 배를 뒤엎어 배에 위험이 된다.
그래서 때로는 돛을 내리고 날개들 없이 자기의 둥지로 돌아와야 한다. 왜냐하면 폭풍에 휘말린 돛은 더 이상 날개가 아니라 바닥짐이 되어 배를 구원이 아니라 물밑으로, 죽음으로 끌고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폭풍의 격렬한 바람이 잠깐이라도 가라앉기만 하면, 돛은 즉시 다시 날개가 되고, 그 배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어 항구를 향하여 빨리 달려간다.
많은 영혼들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격정들의 폭풍이 가라앉기만 하면, 굽혀 있던 영혼, 말하자면 좋지 않은 것 속에 거의 잠겼던… 영혼이 다시 선을 향하여 갈망하기 시작한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그러나… 그건 그렇고…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언젠가 유다가 당신의 항구에 이르겠습니까?”
“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도들 중 한 사람의 미래를 바라보게 하지 마라. 나는 내 앞에 내 고통들이 그들에게는 무익할 수백만의 영혼의 미래를 가지고 있다!… 나는 내 앞에 세상의 모든 비열한 행동들을 가지고 있다… 그 메스꺼움이 나를 어지럽힌다. 강물이 땅을 덮고 있고, 덮을, 서로 다른 모습으로, 그러나 시간의 끝까지 항상 완전(the Perfection)에게 끔찍할 더러운 것들이 부글부글 끓는 역겨움 말이다. 나로 하여금 보게 하지 마라! 나로 하여금 부패의 맛이 없는 샘에서 내 목마름을 가라앉히고 위로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고, 내 평화인 너만을 바라보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의 해충으로 뒤덮인 부패를 잊게 해다오!”
그분께서는 깨끗하고 다정한 사도의 맑은 두 눈을 깊숙이 들여다보시며 다시 그의 미간에 입 맞추신다…
그들은 집안으로 들어온다. 사무엘은 노파에게 불 피우는 수고를 덜어주려고 부엌에서 장작을 패고 있다.
예수께서 여인에게 물으신다.
“순례자들은 자고 있습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저는 탈 짐승들에게 이 물을 가져다주겠습니다. 그놈들은 땔감 창고에 있습니다.”
“할머니, 그것은 제가 할게요. 당신은 라헬의 집으로 가시는 편이 더 낫겠어요. 그녀는 약간의 신선한 치즈를 주겠다고 저에게 약속했습니다. 제가 안식일에 그녀에게 돈을 주겠다고 하더라고 그녀에게 말씀하세요.”
요한이 물이 가득 찬 두 개의 물통을 집어 들며 말한다. 예수와 사무엘만이 남아 있다. 예수께서는 불 위로 몸을 숙이고 불꽃을 일으키려고 불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그분의 한 손을 얹으시며 말씀하신다.
“유다가 저 위에서 우리 이야기를 방해했소… 나는 안식일 다음 날 당신을 사도들과 함께 보내기를 원한다고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소. 아마 당신은 그 편을 낫게 여기겠지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당신 곁에 있지 못하는 것이 유감입니다만, 저는 당신의 사도들에게서도 다시 한 번 당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예, 저는 유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을 더 낫게 생각합니다. 저는 감히 그것을 당신께 청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좋소. 그렇게 결정되었소. 그리고 내가 그를 동정하는 것처럼 그를 동정하시오. 그리고 베드로나 다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시오…”
“저는 침묵할 줄 압니다. 선생님 !”
“제자들이 나중에 올 거요. 헤르마와 스테파노가 있고, 이사악이 있소. 두 현인과 한 의인, 그리고 많은 다른 사람들이 있소. 당신은 참 형제들 가운데 있는 것을 좋아할 거요.”
“예, 선생님, 당신께서는 저희를 이해해주시고, 도와주십니다. 당신께서는 참으로 좋으신 선생님이십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예수의 손에 입 맞춘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다른번역) > 8 수난준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사시8권 [561. 거짓 제자들이 스켐에 도착하다. 에프라임에서 클라우디아 프로쿨라의 벙어리 노예를 고쳐주시다] (0) | 2026.02.03 |
|---|---|
| 하사시8권 [562. 야브느엘 사람] (0) | 2026.02.03 |
| 하사시8권 [564. 예수의 어머니와 여자제자들이 라자로와 함께 에프라임에 도착하다] (0) | 2026.02.03 |
| 하사시8권 [565. 찢어진 옷의 비유와 출산 중인 여인의 기적. 도둑질하다 잡힌 가리옷의 유다] (0) | 2026.02.03 |
| 하사시8권 [566. 에프라임에 대한 작별인사. 에프라임에서 실로로] (1) | 2026.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