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6권 공생활 셋째 해(2) p377~p384

449. 아침에 호숫가 마을에서 전도하시다
1946. 6. 27.
지금은 시원한 아침나절이다. 호숫가 마을의 사람들은 예수께서 집에서 나오셔서 설교를 시작하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주민들이 전날 행해진 기적들, 메시아를 자기들 가운데 모신다는 기쁨으로 인하여 깊이 감격하고, 그분의 현존의 시간을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로 인하여 간밤에 잠을 거의 자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밤늦게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집집마다 사건들을 개괄하고, 이생과 내세에서 하느님에게서 은총을 얻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그분께서 찬사를 보내고 선언하신 모든 고통스러운 사건을 거슬러 자기들의 영혼이 믿음, 소망, 사랑을 가지고 있는지 살피느라고 장시간 이야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께서 아침 일찍 나와 떠나실까봐, 그리고 그분께서 떠나실 때 자신들이 거기 있지 못하게 될까봐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있다. 그리하여 집들의 문이 빨리 열리고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는데, 그들은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도 많이, 사실상 모두가 모인 것을 보고 서로에게 말한다.
“같은 생각이 우리의 마음들을 움직여 그것들을 일치시킨 것은 진짜 이번이 처음인 걸.”
그들 모두는 새롭고, 다정하고, 형제적인 우정을 가지고 같은 마음으로 예수께서 묵고 계시는 집을 향하여 가서 소리 내지 않고, 참을성 있게, 지치지 않고, 그분께서 밖으로 나오시자마자 따라가기로 단단히 결심하고, 집을 에워싸고 있다.
많은 야채 재배자들이 여전히 이슬로 덮여 있는 과일들을 자기들의 밭에서 따와서 떠오르는 햇볕과 먼지와 파리를 막으려고 그것들을 싱싱한 포도나무 잎들이나 무화과나무의 넓은 잎들로 덮어놓았는데, 톱니 모양의 그 잎들 사이로 세밀화 화가가 그린 것 같은 불그스름한 사과들, 호박이나 줄마노와 같은 포도 알들, 또는 갖가지 종류의 부드럽고 둥근 무화과들이 보인다. 그것들 중 어떤 것들은 달디 단 섬유질 위에서 섬세하게 마른 껍질 안에 단단하게 닫혀 있고, 어떤 것들은 마치 잘 다려진 비단으로 덮여 있고, 그 끝에는 금강석 파편들로 장식된 것처럼 부풀어 오르고 매끄러우며, 어떤 것들은 종류에 따라 황금빛, 분홍빛, 진홍빛 섬유를 내보이며 벌어져 있다.
몇 명의 어부들은 작은 바구니들에 몇 마리의 생선을 담아 왔다. 그들이 잠을 희생하고 밤사이에 잡은 고기들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어떤 놈들은 아직 살아 있어 임종의 경련을 일으키며 마지막 고통스러운 숨을 쉬고 있는데, 그놈들의 헐떡거림과 약한 몸부림은 버드나무나 포플라 나무의 회청색 잎들이 덮인 바닥 위에 누워 있는 그놈들의 배와 등의 은빛이나 섬세한 푸른빛을 더 짙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동안 호수는 빛이 동틀 녘에 물에 부여하는 섬세한 우윳빛으로부터―그것은 천사와 같고, 거의 추상적이라고 내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몹시 깨끗한 색깔을 띠고 있고, 그 파도들은 천천히 자갈밭 호반으로 밀려오고, 조약돌들 사이에서 미묘하게 소곤거릴 정도로 몹시 잔잔하다―더 인간적이랄까 휘황하게 반짝이는데, 나는 이것을 새벽의 살색이라고 말하고 싶다.
새벽은 그 장밋빛 구름들을 반사하게 하여 물이 붉은 색을 띠게 한다. 호수는 새벽의 순수한 빛 안에서 하늘색이 되고, 휘저어져 달려 나가 호반에서 유쾌하게 포말들로 부서진 다음 다른 잔물결들과 함께 춤추며 돌아와 아침 미풍에 의하여 비단 같은 푸른 물 위에 던져진 가벼운 순백의 레이스로 호수의 천과 같은 전체 수면을 장식하는 그 잔잔한 물결들과 함께 다시 살아 고동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첫 햇살이 저기 타리케아 쪽에 있는 물을 내리비춘다. 그곳은 물이 반사한 숲으로 인하여 청록색이었는데, 금빛을 띠며 해에 맞아 깨진 거울처럼 반짝인다. 거울은 끊임없이 팽창하여 여전히 푸른 물에 금빛과 황옥 빛을 띠게 하고, 물결에 반사된 구름들의 장밋빛 색조를 지우고, 고기잡이를 마치고 돌아오고 있는 마지막 배들의 용골들과 호수로 나가는 최초의 배들의 용골들을 감싸고 있고, 돛들은 떠오른 태양의 승리의 빛 안에서 하늘의 파란 빛과 야산들의 초록빛을 배경으로 하여 천사들의 날개들처럼 하얗게 보인다.
그 비옥한 호반으로 우리의 가르다 호수를 나에게 연상시키고, 그 신비스러운 평화로 우리의 트라시메노 호수를 연상시키는 참으로 아름다운 갈릴래아 호수는 팔레스티나의 보석으로서, 예수의 공생활의 대부분의 배경이 될 만한 곳이다.
예수께서는 그분께서 유숙하시는 집의 대문에 나타나 그분을 기다리고 있는 참을성 있는 주민들에게 그분의 두 팔을 들어 강복하시며 미소 지으신다.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여러분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여러분은 내가 여러분에게 작별인사를 하지 않고 도망칠까봐 염려했습니까? 나는 항상 내 약속들을 지킵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여러분과 함께 있고, 내가 약속한 대로 여러분과 함께 있으면서 여러분의 집들과 채소밭들과 배들에게 강복하고, 그리하여 각 가정이 거룩하게 될 수 있게 하고, 여러분의 일도 거룩하게 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여러분과 함께 있겠습니다.
그러나 내 강복이 효과를 내려면, 그것이 여러분의 착한 뜻에 의하여 도움 받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그리고 한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 거룩하게 되려면, 그 가족을 활기 있게 만드는 것은 착한 뜻이라는 것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남편은 머리여야 하지만, 그는 자기의 아내, 자녀들, 하인들의 폭군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왕이어야 합니다. 이 단어의 성경적인 의미에서 참된 왕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열왕기 1권8장을 기억하십니까?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함께 모여 사무엘이 살고 있는 라마로 가서 그에게 말했습니다. ‘보시오, 당신은 늙었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길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 우리를 판단하게 해주십시오.’
그러므로 왕은 ‘재판관(judge)’이라는 뜻이고, 따라서 그는 자기의 신민들을 전쟁들, 권력남용, 부당한 무거운 세금들로 여기 땅에서 불행하게 만들지 않고, 음란함과 악습을 허용하는 나라로 다스려 영원한 삶에서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기 위하여 올바른 재판관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하고, 자기의 백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백성들의 악들을 못 본 체하고, 동맹국들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할 유일한 목적으로 정의에 반하여 형성한 동맹으로 백성들의 고통에 책임이 있게 되는 그러한 왕들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들의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자기의 가족들의 필요들과 결점들에 대하여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며, 가족에게 분노나 고통의 원인이 되고, 결혼은 생식 외에도 남자와 여자의 향상과 위로를 위하여 의도된 것이라는 것을 숙고하지 않고, 부유하고 권력 있는 집안과의 동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타협에 의한 무가치한 결혼을 비굴하게 추진하는 그러한 아버지들에게도 화가 있을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의 의무이고 임무(mission)이지 흥정이 아니며, 그것은 고통이 아니고, 남편이나 아내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은 사랑이지 미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가장은 지나친 냉혹함이나 허세, 또는 지나친 관대함과 약함이 없고 의로워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이 두 가지 과도한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차라리 후자를 고르시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그것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너희는 왜 그렇게 착했느냐?’ 하고 말씀하실 수 있겠지만, 적어도 여러분을 단죄하지는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나친 친절은 다른 사람들이 착한 사람들을 거슬려 제멋대로 행하는 거만한 행동으로 인하여 그에게 이미 하나의 벌인 반면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냉혹함에 대해서는 항상 여러분을 질책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가장 가까운 이웃에 대한 사랑의 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내는 가정에서 자기의 남편, 자기의 자녀들과 하인들에게 의로워야 합니다. 그녀는 자기의 남편에게 순종하고, 그를 존경하고, 그를 위로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자기의 순종이 죄에 대한 동의를 함축하지 않는 한 그녀는 순종해야 합니다.
아내는 복종해야 하지만, 품위가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오, 아내들이여, 어떤 죄 되는 친절에 대하여 하느님 다음으로 가장 먼저 여러분을 판단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의 말을 따르라고 여러분을 설득하는 여러분의 남편들이라는 것에 유의하시오.
그들은 항상 사랑의 욕망은 아니고, 여러분의 성덕에 대한 시련들이기도 합니다. 비록 그 순간에는 여러분의 남편이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그가 ‘내 아내는 매우 관능적이다’라고 혼자 생각하는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당신들의 정절을 의심하기 시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결혼생활에서도 순결하시오. 여러분이 순결하게 행동함으로써 여러분의 순결이 여러분의 남편들로 하여금 사람이 순결한 것들에 대하여 가지는 자제를 가지도록 강요하시오. 그래서 그들이 여러분을 노예들이나 ‘쾌락’을 위해서만 두고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게 되었을 때는 내쳐버리는 첩들로서가 아니라 자기와 동등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하시오.
유덕한 아내, 즉 결혼 후에 태도, 말, 애정의 표현에 있어 ‘무언가’ 처녀다운 것도 간직한다고 내가 말하고 싶은 아내는 자기의 남편을 관능에서 감정으로 고양되도록 이끌어, 그 남편이 육욕을 버리고 자기의 아내를 자기 자신의 일부와 똑같은 존경심을 가지고 취급하여 자기의 아내와 함께 참으로 ‘하나’가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내는 ‘그의 뼈들에서 나온 뼈이고, 그의 살에서 나온 살’인데 아무도 자기의 뼈들이나 자기의 살을 학대하지 않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이 옳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는 최초로 혼인한 부부들처럼 서로를 바라보되 성적인 나체로 보지 않고, 품위를 떨어뜨리는 수치 없이 영혼으로 인하여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는 자기의 남편에게 인내해야 하고, 모성적이어야 합니다. 그녀는 그를 자기의 맏아들로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남자에게는 참을성 있고, 사려 깊고, 다정하고, 위로하는 어머니가 항상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남편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그를 뒷받침하는 어머니가 되고, 그에 의하여 인도되는 그의 딸이 될 줄 아는 여자는 복됩니다.
아내는 근면해야 합니다. 일은 자기의 지갑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백일몽들을 없앰으로써 정직성에도 유익합니다. 아내는 백해무익한 어리석은 질투들로 자기의 남편을 괴롭히지 말아야 합니다. 남편이 정직합니까? 그렇다면 어리석은 질투는 그를 집밖으로 몰아내 창녀의 덫에 빠질 위험에 노출시킵니다. 남편이 정직하지 않고, 충실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질투하는 아내의 분노가 그를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원한도 없고 무례하지도 않은 그녀의 의젓하지만 여전히 다정한 태도가 그로 하여금 숙고하게 하고, 이성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격정이 여러분의 남편들을 여러분에게서 갈라놓을 때 여러분이 젊은 날에 여러분의 아름다움을 통하여 그들을 사로잡았던 것과 똑같이 여러분의 성덕을 통하여 그들을 되찾는 법을 배우시오. 그리고 그 의무를 위한 힘을 얻고, 여러분을 불공정하게 만들 수도 있는 심적 고통에 저항하기 위하여 여러분의 자녀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행복을 생각하시오.
여자는 자기의 자녀들 안에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쁨, 그녀가 참으로 집안과 자기 남편의 여왕인 행복한 시간들을 위한 왕관, 부부생활의 배신이나 다른 고통스러운 경험들이 이마에 채찍질하고, 특히 순교자 배우자로서의 그녀의 슬픈 왕권의 가시들로 심장을 찌르는 고통스러운 시간들에 있어서의 향유 따위를 말입니다.
여러분은 깊이 낙심하여 이혼하고 친정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거나, 여자를 갈망하면서도 배신당한 아내의 마음을 동정하는 체하는 거짓 친구에게 보상받기를 바랍니까? 그러지 마시오, 여자들이여, 그러지 마세요! 여러분의 자녀들, 더 이상 평온하거나 의롭지 않은 가정의 분위기로 인하여 너무 이르게 이미 불안해하고 슬퍼하는 여러분의 죄 없는 자녀들은 그들의 어머니, 그들의 아버지, 한 집안의 위안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한 사랑이 죽었다 해도, 다른 사랑이 그들을 지키기 위하여 깨어 있습니다.
그들의 죄 없는 눈들은 당신들을 바라보고, 여러분을 연구하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합니다. 여러분의 죄 없는 자녀들을 결코 분노하지 않게 하고, 육체의 약함과 뱀의 계략에 대한 순수한 금강석으로 만든 백합들의 방벽 안으로 피신하듯이 그들에게로 피신하시오.
여자는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아들딸들의 어머니임과 동시에 자매가 되어야 하고, 그와 동시에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특히 그녀는 모든 일에 있어서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그녀는 자기 아들딸들을 보살피고, 부드럽게 그들을 바로잡아주고, 그들을 부축해주고, 그들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편애 없이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모두가 같은 씨와 같은 태에서 나왔기 때문이고, 착한 자녀들이 주는 기쁨으로 인하여 그들이 사랑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착하지 않은 자녀들도 비록 고통스러운 사랑으로라도 사랑하는 것이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느님보다 더 엄격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유념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착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착하지 않은 사람들도 사랑하시고, 그들을 착하게 만드시고, 그렇게 시도해보시려고, 그들이 착하게 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방법과 시간을 주시려고 그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이 죽기까지 그들을 참아주시고, 사람이 더 이상 속죄할 수 없을 때 정의로운 심판자가 되실 권리를 그분 자신에게 유보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이 주제와는 무관하지만, 여러분이 유념해두는 것이 유익한 무언가를 이야기하겠습니다. 아주 자주, 너무 자주 우리는 악인들이 선인들보다 더 부유하고, 그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겉모습들로, 그리고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하지 마시오.’ 겉모습들은 자주 오류이고, 하느님의 판단은 땅 위에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내세에서 그것을 알게 될 것이고, 악인들의 덧없는 행복은 그들을 선으로 이끄는 수단으로, 그리고 가장 악한 사람도 할 수 있는 작은 선행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졌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내세의 올바른 빛으로 사물들을 보게 될 때 여러분은 죄인의 기쁨의 시간은 봄에 개울의 자갈바닥에서 자라나 여름에 말라버리는 풀잎의 일생보다 더 짧은 반면, 하늘의 영광의 단 한순간도 지금까지 살았던 그 누군가의 가장 떵떵거리는 삶보다 더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의 번영을 부러워하지 말고, 착한 뜻을 통하여 의인들의 영원한 보물을 소유하게 되도록 분투하시오.
그러면 내 강복이 집안에 유익하게 남아 있게 하기 위하여 가족들과 한 집의 식구들이 어떠해야 하는지로 돌아가서 나는 너희 어린이들에게 말하겠는데, 너희 부모에게 공손하고, 그분들을 존경하고 순종해라. 그렇게 함으로써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도 그렇게 될 수 있다.
만일 너희가 보는 아버지 어머니의 간단한 명령들에도 복종하기를 배우지 않는다면, 너희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주어지는 그분의 명령들에 너희가 어떻게 복종할 수 있겠느냐? 또한 만일 너희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랑하듯이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이 좋은 것들밖에 명령할 수 없다는 것을 믿기를 배우지 않는다면, 너희가 어떻게 하느님의 명령이라고 너희에게 말해진 것들이 선하다고 믿을 수 있겠느냐? 하느님께서는 사랑하시고, 그분께서는 아버지시다. 너희는 아느냐?
사랑하는 어린이들아, 그분께서 너희를 사랑하시고 너희가 그분과 함께 있기를 원하신다는 바로 그 이유로 인하여 그분께서는 너희가 착하기를 원하신다. 너희가 착하게 되기를 배우는 최초의 학교는 너희의 가족이다. 너희는 거기서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을 배우고, 거기서 너희를 하늘로 인도하는 길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착하고, 공손하고, 유순해라. 너희 아버지들이 너희를 꾸중하실 때도 그분들을 사랑해라. 왜냐하면 그분들은 너희 자신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렇게 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너희의 어머니들이 그분들의 경험으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아시는 행동들을 너희에게 하지 못하게 하시더라도 그분들을 사랑해라. 너희 부모를 공경하고, 너희의 나쁜 행동들로 인하여 그분들이 얼굴을 붉히게 만들지 마라.
교만은 좋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거룩한 교만이 있는데, ‘나는 내 부모님을 슬프게 해드리지 않았다’고 말하는 교만이 그것이다. 부모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에 그분들 곁에 있는 기쁨을 누리게 하는 그런 행동은 그분들의 죽음의 상처에 평화가 되지만, 한 아들이 자기의 부모에게 흘리게 하는 눈물은 녹은 납처럼 악한 아들의 가슴을 후벼 파고, 그 상처를 가라앉히기 위한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통스럽고, 부모가 세상을 떠나 아들이 잘못을 속죄할 수 없게 될 때는 더욱 더 고통스럽다. 오! 어린이들아, 만일 너희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싶다면 항상 착해라.
끝으로 주인들의 정의로 인하여 그 하인들도 의롭게 되는 집은 거룩합니다. 주인들은 나쁜 행동이 하인들의 고통을 악화시키고, 그들을 타락시킨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인들은 자신들의 나쁜 행동이 주인들을 역겹게 한다는 것에 유념해야 합니다. 각자가 자기 위치를 지키되, 이웃에 대한 사랑의 유대로 하인들과 주인들 사이에 있는 차별을 메워야 합니다.
나에게 강복 받은 집은 그 강복을 보존할 것이고, 주님께서 그 안에서 사실 것입니다.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일해도 되는 날들에 거룩하게 일하고, 거룩한 안식일들에는 하느님을 공경하는 데 헌신하며, 어부나 야채 재배자로서 여러분의 생활을 영위해나가고, 여러분이 물건을 팔 때나 무게를 달 때 속임수를 쓰지 않고, 여러분의 일을 저주하지도 않고, 일은 여러분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하늘을 주시니 하느님보다 일을 선호함으로써 일을 여러분의 생활의 주권자로 삼지 않는다면, 내 강복과 그로 인한 내 보호가 배들, 채소밭들, 경작과 어로를 위한 도구들 위에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럼 이제 집들과 배들과 노들 채소밭들과 괭이들에게 강복하러 갑시다. 그 다음에 요한이 사제에게 가기 전에 그의 은신처 가까이로 가서 말합시다. 왜냐하면 나는 다시 이리로 오지 않을 터인데, 그가 적어도 한번은 내 말을 듣는 것이 공평하니까요.
빵과 생선과 과일을 가져오시오. 우리는 그것들을 숲으로 가져가 고쳐진 나병환자 앞에서 먹으면서 제일 좋은 몫을 그에게 주어 그의 육체도 즐겁게 해주고, 그가 주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이미 한 형제가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합시다.”
예수께서 출발하시자 마을 사람들과 인근 고을들에서 온 사람들이 그분을 따라간다. 아마 밤사이에 이 마을 사람들이 인근 고을들에 가서 구세주께서 이 호반에 와 계시다는 소식을 전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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