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다른번역)/6권 공생활 셋째 해(2)

하사시6권 [446. 막달라에서. 선한 의지와 악한 의지의 비유]

Skyblue fiat 2025. 12. 16. 18:16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6권 공생활 셋째 해(2) p352-p362

 

 

446. 막달라에서. 선한 의지와 악한 의지의 비유

1946. 6. 24.

“어디로요? 선생님?”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배의 조작과 항행의 준비를 마치고, 그분을 따라갈 준비를 갖춘 작은 선대의 선두에서 자기 배를 타고 있는 베드로가 묻는다.

“막달라로 가자. 나는 라자로의 마리아에게 약속했다.”

“좋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한 다음 옳은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키를 조작한다.

요안나는 선생님, 복되신 동정녀, 클레오파의 마리아, 마르지암, 마태오, 알패오의 야고보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과 같은 배에 타고 있다. 그녀는 마치 하늘에서 자수정들이나 활짝 핀 등나무 꽃송이들의 소나기가 쏟아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황혼의 빛을 보랏빛 베일들로 살짝 가린 듯한 고요한 여름날 저녁에 호수에 떠 있는 많은 배들을 가리킨다.

그녀는 말한다.
“아마 저 배들 중에는 로마여자들의 배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고요한 저녁에 고기잡이를 흉내 내는 것이 그 여자들의 오락들 중의 한 가지입니다.”

“그렇지만 그 배들은 더 멀리 남쪽에 있을 것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 생각을 피력한다.

“오! 아니에요, 벤야민. 그들은 빠른 배들과 능란한 뱃사공들을 가지고 있어요. 그들은 여기까지 와요.”

“그들은 손대지 않는 일이 없어…”


베드로가 투덜거린다. 그는 항행과 고기잡이를 소일거리가 아니라 직업으로, 엄격하고 유익한 법으로 완전히 규제되는 종교에 가까운 것으로 여기는 비타협적인 어부이기에, 그것의 부적절한 사용은 그에게는 모독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향, 꽃들, 향수들, 그 밖의 악마적인 것들로 물을 오염시키고, 음악, 고성, 언어로 물고기들을 방해하고, 연기 나는 등잔불들로 물고기들을 놀라게 하고, 무턱대고 던지는 그들의 저주받은 그물들로 호수 바닥과 물고기의 번식을 망쳐놓지… 그것은 금지되어야 해. 갈릴래아 바다는 어부들이기도 한 갈릴래아인들의 것이지, 창녀들과 그들과 함께 놀아나는 자들의 것이 아니잖아…

내가 주인이라면! 나는 너희의 버르장머리들을 고쳐놓을 거야. 여기 하느님, 우리 하느님의 이 물 위에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너희의 …을 가져오는 너희 이교도들의 추잡한 배들, 너희 떠 있는 악덕의 소굴들, 배, 떠다니는 악의 소굴, 벽감들아, 오! 저것 좀 봐! 저 배들이 이리로 직진해오고 있어! 우리가 저것을 참을 수 있어?… 아니 저것을 가만둘 수 있어? 아니…”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분노로 얼굴을 붉히고 씩씩거리며, 마치 자기가 지옥의 세력들과 싸우고 있는 듯 숨을 헐떡이며 이스라엘 사람과 어부로서의 자기의 영혼을 온통 쏟아내는 비난의 사설을 중단시키신다.

“네가 주인이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다. 그들과 너 자신을 위해서. 왜냐하면 너는 그들이 좋은 충동, 유다인들이 아닌 로마인들로 태어난 것에 잘못이 없는 이 사람들을 인도하시는 영원하신 자비에 의해서 그들의 영혼에 ―그들이 이교도라는 것을 나도 동의하지만, 천성적으로 착한 영혼 말이다― 각인된 충동을 따르는 것을 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선한 것에 이끌리는 것을 보시기 때문에 그들을 자비로운 눈으로 보신다. 그리고 너는 사랑을 어기는 행위와 겸손을 어기는 행위를 저지르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너 자신에게 해를 끼칠 것이다.”

“겸손이라니요? 저는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호수의 주인이기 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대로 호수를 다루어도 법에 어긋나지 않을 텐데요.”

“아니다, 요나의 시몬아. 아니야, 네 생각은 틀렸다. 우리 소유의 물건들도 하느님께서 그것들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에 우리 소유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제한된 시간 동안에 그것들을 소유한다 해도, 우리는 항상 모든 것을 시간이나 분량의 제한 없이 소유하시는 분은 유일하신 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유일하신 분은 주님이시다. 사람들은… 오! 그들은 큰 우주의 조각들의 관리인들일 뿐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주님이시고, 나의 아버지시고 너의 아버지시며,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의 아버지시다. 나아가 그분께서는 하느님이시고, 그래서 그분의 모든 생각들과 모든 행동들에 있어 지극히 완전하시다.

만일 지금 하느님께서 진리를 향한 이 이교도들의 마음의 움직임을 호의적으로 바라보시고, 바라보기만 하실 뿐 아니라 그 움직임에 선을 향한 점점 더 강한 움직임을 전달하심으로써 그 움직임을 격려하신다면, 사람인 네가 그것을 막기를 원함으로써 너는 하느님께서 무언가를 하시는 것을 네가 사실상 방해하기를 원하는 셈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런데 너는 언제 무언가를 막느냐? 네가 그것이 좋지 않다고 여길 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네가 하느님께서 좋지 않은 일을 하고 계신다고 생각하는 셈이 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결점들을 가지고 있고, 인식과 판단의 능력이 아주 제한적이어서 열 번 중 일곱 번은 그의 판단이 틀리기 때문에, 만일 우리의 형제들을 판단하는 것이 옳지 않다면, 하느님의 행동에 관하여 그분을 판단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악한 것이다.

시몬아, 시몬아! 루치페르는 하느님의 생각들 중 하나를 판단하기를 원했고, 그래서 그는 그것이 틀렸다고 간주하고, 자기를 하느님보다 더 의롭다고 생각하며, 그분을 대신하기를 원했다. 시몬아, 루치페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너도 안다. 그리고 너는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들이 그 교만으로 인하여 왔다는 것도 안다…”

“선생님, 당신의 말씀이 옳습니다! 저는 불쌍한 놈입니다!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선생님!”

언제나 충동적인 베드로는 키의 손잡이를 놓고 예수의 발 앞에 엎드린다. 그러자 갑자기 표류하게 된 배는 클레오파의 마리아와 요안나, 그리고 베드로의 육중한 배가 자기들에게 직진하여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본 가벼운 쌍둥이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파도를 타고 무섭게 기우뚱거린다.

다행히도 마태오가 재빨리 키의 손잡이를 다시 잡자, 배는 무섭게 흔들린 다음 원래의 항로를 되찾는다. 다른 배의 사람들이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이 배를 떨어뜨려놓느라 힘껏 노를 저어 물을 휘저어놓았기 때문에 이 배가 더 심하게 흔들린 측면도 있다.

“이봐, 시몬! 언젠가 자네는 로마인들이 우리를 덮치려고 했기 때문에 그들을 풋내기 뱃사공으로 취급하면서 욕했었지. 그러나 오늘은 자네가 꼴사납게 됐구먼… 설상가상으로 바로 그들의 눈앞에서 말이야. 그들이 자기네들 배에서 모두 일어서서 구경하고 있는 것을 좀 보게…”

가리옷 사람이 로마인들이 배들을 가리키며 베드로를 놀리며 말한다. 막달라 앞의 거울같이 잔잔한 물에 떠 있는 그 배들은 아주 가까이 와 있어 그 갑판 위에 있는 사람들은 저녁의 보랏빛 베일들이 햇빛을 희미하게 하면서 점점 어두워지는데도 분명하게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시몬, 자네는 바구니 하나와 작은 물통 하나도 잃었네. 갈고리들로 그것들을 건져 올려볼까?”

다른 배에 타고 있는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말한다. 방금 전의 사건 직후에 모든 배들이 베드로의 배 둘레로 모여들었기 때문에 야고보의 배도 이제 아주 가까이에 와 있다.

“형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한 거야?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야!”

안드레아가 다른 배에서 큰 소리로 말한다.

그들은 모두 거의 동시에 말했는데, 베드로는 그들 모두에게 순차적으로 대답한다.

“그들이 나를 보았다고? 상관없어! 그들이 내 마음도 보았으면 좋았을 걸. 그리고… 베드로야. 그건 말하지 않는 편이 더 낫겠다… 그렇지만 자네가 나를 속상하게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히 알아두게. 그건 조종의 실수로 인한 것이 아니라 좋은 이유로, 나를 망신당하게 할 수 있는 이유로 일어난 일이니 말이야…

야고보, 신경 쓰지 마! 낡아빠진 것들이 가라앉은 거야. 나는 내 안에서 저항하고 있는 낡은 사람도 그것들처럼 물속에 던져버릴 수 있으면 좋겠네! 나는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될 수 있기 위하여 모든 것을, 내 배마저 잃어버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네…

내가 어떻게 그런 실수를 했느냐고? 아! 나는 하느님에게까지 영에 관한 일들에 대하여 가르치려 하는 나 자신, 내 교만에 대하여 나는 배에 관한 일들에 있어서도 완전히 바보라는 것을 증명한 거야… 이 사건은 나에게 도움이 되네. 나는 나 자신을 위하여 나 자신에 관한 비유를 만든 거야… 그렇지 않습니까, 선생님?”

예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으신다… 그분께서는 어두워져가는 허공을 배경으로 흰 모습으로 늘 앉으시는 자리인 고물에 앉아 계시고, 저녁바람에 머리카락이 가볍게 물결치는데, 그분의 모습은 마치 평화로운 빛의 천사처럼 황혼 속에서 두드러져 보이신다.

로마인들의 배들이 와서 그들에게 접근해 있다.

“저 배들은 아주 좋은 선체와 완벽한 돛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공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저 배들은 물총새처럼 속도가 빠릅니다. 저들은 가벼운 바람도, 작은 물살도 다 이용합니다…”

“노 젓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크레타 섬이나 나일 지역에서 온 노예들이예요.”
요안나가 설명한다.

“나일 강 삼각주의 뱃사람들은 아주 기량이 훌륭하지요. 크레타 섬의 뱃사람들도 그렇고요. 그렇지만 이탈리아의 뱃사람들도 매우 훌륭합니다… 그들은 쉴라와 카립디스를 통과해 다니거든요… 그들이 훌륭한 뱃사람이라는 건 더 이상 말할 나위 없지요.”

벤야민이라는 이름의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말한다.

“주님, 우리는 어디로 갈까요? 막달라로… 아니면… 보십시오. 막달라 사람들이 이리로 오고 있습니다…”

과연 그 고장의 모든 작은 배들이 자갈투성이의 호반과 작은 항구를 떠나 카파르나움의 배들 쪽으로 향하여 오는데, 사람들을 무서울 정도로 가득 태워 뱃전이 거의 수면 위에 있을 지경이다.

“아니다. 시내에서 떨어져 있는 여기서 멈추자. 나는 배에서 말하겠다…”

“저는 저 무모한 사람들이 빠져 죽을까봐… 걱정입니다. 선생님, 보십시오! 호수가 물방앗간의 물처럼 잔잔하기는 합니다만… 물은 항상 물이고, 무게는 항상 무게입니다… 그런데 저기… 저 사람들은 물 위가 아니라 뭍에 있는 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돌아가라고 명령하십시오… 저 사람들은 물에 빠져죽을 겁니다…”

“믿음이 부족한 사람아! 너는 네가 내 초대를 믿는 동안에는 너는 물위를 마치 단단한 땅 위인 것처럼 걸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저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무게와 밀도 간의 균형의 법칙들에도 불구하고 물이 저 과적한 배들을 떠받쳐줄 것이다.”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오늘 저녁은 정말 큰 기적의 저녁이 되겠군요.”

베드로가 배를 정박시키려고 작은 닻을 던지면서 자기의 양어깨를 으쓱하며 중얼거린다. 이렇게 하여 이 배는 몇 척은 카파르나움, 몇 척은 막달라, 몇 척은 티베리아스에서 온 배들이 이루는 원의 중심에 남아 있게 된다. 티베리아스의 배들은 로마여자들의 배인데, 그 배들은 카파르나움의 배들의 뒤로 가서 호수 중심 쪽에 조심스럽게 자리 잡는다.

예수께서는 그 배들에 등을 돌리시고, 막달라의 배들 쪽, 라자로의 마리아의 크고 그늘진 정원 쪽, 호숫가로 펼쳐져 있고, 밤에 그 흰 빛이 두드러지는 작은 집들 쪽을 바라보신다.

호수는 더 이상 이물들과 노들에 의하여 출렁이지 않고, 다시 잔잔해진다. 그것은 초저녁 달빛이 은빛으로 반사되고, 이물마다 밝혀져 있는 횃불의 불꽃들이 호수에 반사되어 토파즈나 루비 비늘들이 뿌려진 거대한 판유리와도 같다.

얼굴들은 붉고 노란 빛들과 달빛이 대조되어 이상하게 보인다. 어떤 얼굴들은 아주 선명하게 보이고, 어떤 얼굴들은 겨우 보일락 말락 하며, 어떤 얼굴들은 가로나 세로로 둘로 잘린 것 같아서, 이마나 턱 또는 한쪽 뺨만이 불빛을 받아 얼굴 반쪽 옆얼굴은 선명하게 드러나고, 다른 쪽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사람들의 눈은 반짝이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의 눈은 빈 안와처럼 보인다. 마찬가지로 어떤 입들은 튼튼한 치아들을 드러내며 유쾌하게 웃고 있는데 반하여 다른 입들은 그늘진 얼굴들에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볼 수 있도록 카파르나움의배들과 막달라의 배들에서 많은 현등을 넘겨주어 몇 개는 예수의 발 앞과 작은 의자들 위에 올려놓고, 몇 개는 쓰지 않는 노에 매달아 이물과 고물의 뱃전에 놓고, 돛을 내린 돛대에도 매단다. 이렇게 하여 예수께서 계시는 배는 그 주위를 원형으로 에워싸고 있는 배들 가운데에서 휘황하게 빛나고 있고, 그래서 지금 그분께서는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아서 잘 보이신다. 로마인들의 배들만이 여전히 그들의 붉은 횃불들로 인하여 불그스름하게 보이는데, 아주 가벼운 미풍으로 그 불꽃들이 펄럭인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배가 가볍게 흔들리는데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흔들림 없이 일어서신 자세로 두 팔을 벌려 강복하신 다음에 말씀을 시작하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이 잘 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말씀을 이어나가신다. 그분의 듣기 좋은 목소리는 고요한 호수 위에서 힘차게 퍼져나간다.

“방금 전에 내 사도들 중의 한 사람이 나에게 한 비유거리를 제공하여 지금 나는 그것을 여러분에게 말하고자 합니다. 그 비유는 모든 이가 이해할 수 있어 모든 이에게 유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들으시오.

어떤 사람이 오늘 저녁처럼 고요한 저녁에 호수를 항행하며 자만한 나머지 자기 스스로를 결점이 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배를 부리는 데 있어 아주 기량이 뛰어났고, 그래서 그는 자기가 물 위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확신했습니다.

다른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즐기기 위하여 호수 위로 왔고, 따라서 그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일상적으로 일하며 얻은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한편 그는 착한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는 자기가 모든 성덕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컨대 그는 실제로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에 그는 자신 있게 항행하며 감히 자기의 이웃에 대하여 판단했습니다. 그가 보기에 그 이웃은 자기의 이웃이라고 여기기에는 너무 멀었습니다. 그와 그의 이웃 간에는 민족으로든, 사업으로든, 믿음으로든 아무런 유대도 없었고, 그래서 그는 어떠한 민족적, 종교적, 사업적 연대감의 제약도 없이 솔직하다 못해 가혹하기까지 할 정도로 그 이웃을 조롱하고, 자기가 그곳의 주인이 아닌 것에 대하여 불평했습니다. 만일 자기가 주인이라면, 자기는 거기서 자기의 이웃들을 내쫓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불관용적인 신앙으로 자기가 하는 것을 자기와는 다른 사람들이 하게 해주시고, 자기가 사는 곳에 살도록 허락하시는 것에 대하여 지극히 높으신 분을 거의 비난하다시피 했습니다.

그의 배에는 정의를 가지고 그를 사랑하고, 그래서 그가 지혜롭기를 원하고, 필요하다면 그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기도 하는 한 친구, 한 착한 친구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그 친구는 뱃사공에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왜 그렇게 생각하나? 사람들의 아버지께서는 유일하시지 않은가? 그분께서는 우주의 주님이 아니신가? 혹시 그분의 해가 모든 사람을 비추어 그들을 따뜻하게 해주지 않고, 혹시 그분의 구름들이 히브리인들의 밭들에 비를 내려주듯이 이방인들의 밭들에도 비를 내려주지 않는가? 그분께서 사람의 물질적인 필요들을 위하여 그렇게 하신다면, 그의 영적인 필요들을 위해서도 그와 같이 배려해주시지 않겠는가? 그런데 자네는 하느님께서 무엇을 하셔야 한다고 그분께 제안하려고 하나?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

그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불관용성에는 많은 무지와 많은 그릇된 생각들이 있었지만, 그는 악한 뜻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하느님께 죄지으려는 의향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느님의 이익을 옹호하려는 의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지혜로운 자기 친구의 발 앞에 엎드려 어리석은 말을 한 것에 대하여 자기를 용서해달라고 청했습니다.

그가 친구에게 너무 성급하게 용서를 청하다보니 키와 돛과 파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깜빡하여 하마터면 그는 그 배를 침몰하게 하고,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물에 빠지게 하여 큰 재앙을 불러일으킬 뻔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릇되게 판단한 첫 번째 실수에 뒤이어 오조종이라는 또 다른 실수를 저지름으로서 자기가 보잘것없는 심판자일 뿐 아니라 서투른 뱃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증명했습니다.

비유는 이것입니다. 이제 잘 들으시오. 여러분이 보기에 이 사람은 하느님께 용서받았겠습니까, 받지 못했겠습니까? 기억하시오. 그는 하느님과 자기의 이웃의 행동들을 판단함으로써 하느님과 이웃에 대하여 죄지었었고, 하마터면 자기의 동료들을 죽일 뻔 했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대답하시오…”

예수께서는 팔짱을 끼시고 모든 배들을, 가장 멀리 있는 배들까지, 뱃전 위로 귀족부인들과 노 젓는 사람들의 주의 깊은 얼굴들이 일렬로 드러나 있는 로마인들의 배들까지 둘러보신다.

사람들은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서로 의논한다… 겨우 들릴까 말까하는 웅성거리는 목소리들이 선체에 부딪쳐 가볍게 찰랑거리는 물소리에 섞인다. 판단은 어렵다. 그러나 다수는 그가 죄지었기 때문에 그는 용서받지 못했다는 의견이었다. 적어도 그는 첫째 죄에 대해서는 용서받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이런 뜻으로 점점 커지는 속삭임을 들으신다. 그분의 지극히 아름다운 두 눈은 밤인데도 달빛 아래 두개의 사파이어처럼 빛난다. 달빛이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밝아져 많은 사람들이 횃불들과 현등을 끄고 인광을 발하는 달빛 아래 머무른다.

“시몬아, 이 불들도 꺼라. 창공에 흩뿌려져 있는 항성들과 행성들에 비하면, 이 빛들은 불똥들처럼 초라하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다. 그는 군중의 심판을 기다리며 긴장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등불들을 떼어내기 위하여 손을 내미는 동안에 그를 어루만지시며 물으신다.

“너는 왜 그렇게 불안해 보이느냐?”

“왜냐하면 당신께서는 이번에는 제가 사람들에게 심판받게 하시니까요…”

“오! 너는 왜 그들을 두려워하느냐?”

“왜냐하면… 저처럼… 그들도 불공정하기 때문입니다…”

“시몬아, 그러나 심판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아직 저를 용서해주지 않으셨고, 지금은 용서해주시기에 앞서 저들의 판단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선생님, 당신의 생각이 옳습니다… 저는 구제불능입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당신의 가엾은 시몬에게 왜 하느님의 이 심판을 당하게 하십니까?…”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어깨에 손을 얹으신다. 베드로는 배의 낮은 부분에 서 있고, 예수께서는 고물 즉 베드로보다 훨씬 높은 곳에 서 계시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쉽게 그렇게 하실 수 있다. 그분께서는 미소 지으신다… 그러나 그에게 대답하지는 않으신다. 대신 그분께서는 사람들에게 물으신다.

“뭐라고요? 말하시오. 배별로 순서대로.”

”아아! 가엾은 베드로! 만일 하느님께서 여기 있는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심판하셨다면, 그분께서는 베드로를 단죄하셨을 것이다. 사도들의 배들까지 포함하여 세 척만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배들이 그를 단죄한다.

로마인들의 배는 자신들의 의견을 표명하지 않고, 그런 요청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배들 역시 그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 배에서 저 배로―로마인들의 배는 세 척이다―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게 하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놀라서 휘둥그레진 베드로의 두 눈은 예수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그분의 사파이어 빛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한층 더 다정한 시선, 평화의 시선을 만난다. 그는 사랑으로 빛나는 얼굴이 자기에게로 숙여지는 것을 보고, 자기가 예수에게로 끌려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그의 반백의 머리는 예수의 가슴에 기대고, 선생님의 팔은 그의 어깨를 껴안아 그분께 밀착시키게 된다.

“나의 자녀들이여, 그것이 바로 사람의 판단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그는 용서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서 용서받아야할 것을 찾아내지도 못하신다.’ 왜냐하면 용서는 죄를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죄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의 머리를 흔들며 불평하지 마시오. 나는 반복하여 말합니다. 여기에는 죄가 없었습니다.

언제 죄짓습니까? 죄짓겠다는 의지가 있을 때, 죄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어떤 행동이 죄라는 것을 안 다음에도 죄짓기를 원하는 집요함이 있을 때 죄짓습니다.

모든 것이 유덕한 것인지, 죄 되는 것인지는 사람이 그 행위를 할 때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분명히 좋은 행위를 하면서도 그것이 좋은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나쁜 행위라고 믿는다면, 그는 마치 그가 나쁜 행위를 한 것처럼 죄를 짓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어떤 사람에게 한 원수가 있는데, 그는 그 원수가 병들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또한 의사의 지시로 그의 원수가 찬물 아니 어떤 액체도 마셔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우정을 가장하고 자기의 원수에게 문병을 갑니다. 그는 병자가 신음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는 목말라, 나는 목말라!’

그는 동정하는 체하면서 서둘러 아주 찬 우물물을 먹여주며 말합니다. 내 친구여, 마시게. 나는 자네를 사랑하네. 그래서 나는 자네가 그토록 목말라하며 괴로워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네. 보게나, 내가 자네에게 일부러 물을 가져왔네. 아주 시원하네. 마시게, 병자들을 도와주고, 목마른 사람들에게 마실 것을 주는 사람들은 큰 상을 받으니 말일세.’ 그는 그 사람에게 마실 것을 줌으로써 그에게 죽음을 가져다줍니다.

여러분은 그 자체로서는 착한 그 행위가 악한 목적으로 행해진 지금 그것이 두 개의 자비의 행위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착한 행위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착한 행위가 아닙니다.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술꾼인 아버지를 가진 아들이 자기의 아버지가 과음하여 돌아가시지 않도록 포도주 저장실을 잠그고, 아버지에게서 돈을 빼앗고, 술을 마시고 자기 자신을 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마을에 가지 못하게 한다면, 여러분은 그가 자기 아버지를 비난하고, 자기 아버지에게도 자기가 마치 가장이라도 되는 듯이 행동한다는 이유만으로 넷째 계명을 어긴다고 생각합니까? 언뜻 보면 그는 자기의 아버지를 괴롭히고, 그래서 그에게 죄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착한 아들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아버지를 죽음에서 구하기를 원하는 그의 뜻이 착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행위들의 가치들을 정하는 것은 언제나 그의 의지입니다.

예를 하나 더 들겠습니다.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군인은 살인자입니까? 만일 그의 영혼이 살육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만일 그가 어쩔 수 없이 싸우고, 전쟁의 엄격한 법과 자기의 부하로서의 처지가 부과하는 최소한의 인간성을 가지고 싸운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자, 애국자, 어부로서의 좋은 뜻을 가지고, 자기의 생각으로는 신성모독자들인 그들을 용납하지 않은 그 뱃사람은 자기의 이웃에 대한 사랑을 어기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웃 사랑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뿐인 것입니다.

그는 또한 하느님께 불경죄를 저지르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에 대한 그의 분개는 그의 착하기는 하지만 균형 잡혀있지 않거나 밝지 못한 신자의 영혼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용서를 청하려는 좋은 의지로 배의 항로이탈을 야기했기 때문에 살인죄를 짓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항상 식별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비타협성이시라기보다 자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착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십니다. 그것이 참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참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여시며,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나라를 가리키시며 모든 사람에게 ‘오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자유롭게 그렇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유일하시고, 보편적이시고, 창조주이시고, 영원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의로우시오. 이것들을 기억하시오. 여러분이 불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것들을 알아듣는데, 여러분은 알아듣지 못한 채로 남아 있지 마시오.

종교와 조국에 대한 과도하고 무질서한 사랑도 죄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기심이기 때문입니다. 이기심은 항상 죄의 이유와 원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기심은 죄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나쁜 뜻을 뿌려 하느님과 그분의 계명을 거스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의 정신은 더 이상 하느님도, 그분의 진리도 분명히 보지 못합니다. 교만이 이기주의자 안에 매연을 뿜어 진리가 흐려지게 만듭니다.

정신은 더 이상 그것이 교만해지기 전에 보았던 것과 같이 진리의 순수한 빛을 보지 못하고, 일련의 의문들을 제기하기 시작하고, 질문들에서 의심으로 넘어가고, 의심에서 하느님과 그분의 정의에 대한 사랑과 믿음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그분의 벌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무관심으로 넘어갑니다. 그렇게 하여 그는 쉽게 죄짓게 되고, 그렇게 쉽게 죄짓는 데서부터 하느님에게서 벗어난 영혼의 고독으로 넘어가게 되고, 더 이상 하느님의 뜻을 인도자로 가지지 못하게 되므로 죄인인 자기 자신의 뜻의 법에 빠지게 됩니다.

오! 죄인의 뜻은 끔찍한 사슬입니다. 그 사슬의 한쪽 끝은 사탄에게 잡혀 있고, 다른 쪽 끝은 그 사람의 두 발에 채워져 있는 무거운 쇠공이 달려 있어 허리가 휘도록 그를 더러움과 어둠 속에 노예로 붙잡아둡니다. 자기의 악한 뜻에만 끌려 다니니 사람이 죽을죄들(mortal sins)을 짓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오로지 그럴 때만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착한 뜻을 가지고 살아 있고 자발적으로 유덕한 행위를 한다면, 그는 분명히 진리를 소유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착한 뜻은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지극히 거룩한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는 착한 뜻을 가진 그분의 자녀들을 도우시고, 강복하시고, 용서하시려고 사랑과 연민과 관용을 가득히 가지시고 굽어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배에 있었던 사람은 죄짓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죄짓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집으로 평안히 가시오. 별들이 전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고, 달은 깨끗함으로 세상을 감싸고 있습니다. 가시오. 그리고 별들처럼 순종하고, 달처럼 깨끗하게 되시오. 하느님께서는 순종하고 영 안에서 깨끗한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그분께서는 모든 행위에 있어 하느님과 자기의 형제들을 사랑하고 그분의 영광과 형제들의 유익을 위하여 자기의 착한 뜻을 적용하는 사람들에게 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예수께서는 두 팔을 다시 뻗어 강복하시고, 예수를 둘러싸고 있던 배들은 대열을 벗어나 멀어지며 각기 제 갈 길을 간다.


베드로는 너무 행복한 나머지 떠날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마태오가 그를 흔든다.

 

“시몬, 자네는 안 갈 거야? 나는 배를 조종할 줄 모르는데…”


“그렇구먼!… 오! 나의 선생님! 그럼 당신께서는 저를 단죄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몹시 두려워했었는데요…”

“요나의 시몬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를 구원하려고 선택했지, 잃어버리려고 선택하지 않았다. 나는 네 착한 뜻 때문에 너를 택했다…
힘내라. 요나의 시몬아, 키를 잡고 북극성을 바라보고 자신 있게 나아가거라. 머뭇거리지 마라… 너의 모든 항행에서… 하느님인 네 예수는 네 영적인 배의 이물에, 항상 네 곁에 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항상 너를 이해할 것이다, 요나의 시몬아. 너는 알아듣겠느냐? 항상 말이다.
그리고 네가 약한 어린이처럼 넘어질 수는 있어도, 넘어지겠다는 나쁜 뜻은 결코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는 너를 용서해야 할 것도 없을 것이다… 기뻐해라, 요나의 시몬아.”

베드로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너무 감격하여 사랑으로 숨이 막히다시피 하여 말을 못하고, 키 손잡이를 잡은 손이 상당히 떨린다. 그러나 그가 바로 그의 곁에서 빛나는 흰 대천사처럼 작은 배의 끝에 서 계시는 자기의 선생님을 바라볼 때 그의 얼굴은 평화와 신뢰와 사랑으로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