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6권 공생활 셋째 해(2) p176~p183

420. 너희 자신을 무익한 종들로 여겨라
1946. 4. 24.
달은 없지만 아주 청명한 밤이어서 자갈밭이 하얗다. 수천수만의 큰 별들이 동방의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그것은 달빛과 같이 강한 빛은 아니지만 이미 부드러운 인광이어서, 눈이 어둠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자신들이 어디를 걸어가고 있는지, 그들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있게 해준다.
부드러운 별빛에 여기 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는 여행자들의 오른쪽 갈대와 버드나무와 키 큰 나무들로 이루어진 식물의 경계가 드러나 보인다. 빛이 희미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나무들이 중단 없이 이어져서 동쪽으로 달리는 흰 선을 그리다가 지금은 말라붙은 작은 지류의 첫 번째 굴곡에서 하나의 간격이 나 있는, 침입할 수 없는 촘촘한 담처럼 보인다.
반면 왼쪽에서는 여행자들은 사해를 향하여 투덜거리고, 한숨 쉬고, 졸졸거리고, 고요하고, 평화롭게 흘러내려가는 반짝이는 물을 식별할 수 있다. 밤에 청람색 물의 빛나는 선과 풀과 관목들과 교목들의 어둡고 불투명한 덩어리 사이의, 어떤 곳에서는 넓어졌다 다른 데서는 좁아졌다 하는 자갈밭의 밝은 띠는 가끔 아주 작은 웅덩이들로 끊겨 있다.
그것들은 여전히 물이 약간 남아 있는 전의 홍수의 잔재로서 그 물이 천천히 땅속으로 스며들어가는데, 그곳에는 아직 푸른 풀무더기가 남아 있다. 반면 다른 곳에는 해가 내리쬐는 시간에는 자갈밭 위에 있는 풀들이 말라 있다.
사도들은 이 작은 물웅덩이들이나 샌들을 신고 있는 그들의 맨발에 칼날처럼 위험한 마른 골 풀들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가끔씩 헤어졌다가 다시 선생님의 주위로 모일 수밖에 없다. 예수께서는 항상 위엄 있게 성큼성큼 걸어가시는데, 대체로 침묵하시고, 눈은 땅을 내려다보시기보다는 별들을 올려다보신다.
그러나 사도들은 조용하지 않다. 그들은 낮에 일어났던 사건을 요약하고, 결론들을 끌어내거나 미래의 발전들을 예견하며 서로 대화하고 있다. 직접적인 질문에 대답하시거나, 오류나 몰인정한 생각을 바로잡아주기 위하여 가끔씩 하시는 예수의 말씀이 열두 사도들의 대화에 끼어든다.
한밤의 행진은 이 광야의 강변에서의 밤의 적막함에 사람의 목소리와 발소리라는 새로운 요소들을 더한다. 나이팅게일들은 일상적인 물소리와 바람의 속삭임을 방해하며 그것과 섞여 들려오는 불협화음의 거친 소리들에 놀라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거장다운 그들의 독창을 그치고 침묵한다.
그러나 과거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일에 관한 직접적인 질문이 경멸이나 분노로 흥분한 날카로운 목소리들의 날카로운 어조로 행해져, 반란과 같은 난폭함으로 밤의 평온뿐 아니라 보다 내밀한 마음의 평화마저 깨뜨린다. 필립보가 그들이 집에 가게 될지, 간다면 며칠 후에 가게 될지를 묻는다. 사도임과 동시에 남편이고 아버지이며, 보살펴야 할 이해관계들을 가지고 있는 나이 지긋한 사도의 단순한 질문에는 은근한 휴식의 필요, 말은 하지 않지만 이해할 수 있는 가족에 대한 애정이 들어 있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아시고, 돌아서서 필립보를 바라보신다. 필립보는 마태오, 나타나엘과 함께 약간 뒤에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를 기다리시며 걸음을 멈추신다. 그가 다가오자 예수께서 한 팔로 그의 어깨를 감싸며 말씀하신다.
“내 벗아, 곧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에게 다른 작은 희생을 베풀어주기를 부탁한다. 만일 네가 그전에 나와 헤어지기를 원치 않는다면 말이다…”
“제가… 당신과 헤어지다니요? 결코 안 됩니다!”
“그럼… 나는 너를 얼마 동안 더 벳사이다가 아닌 곳으로 데려가겠다. 나는 사마리아를 거쳐 해항 카이사리아로 가고자 한다.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나자렛으로 갈 터인데,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나와 함께 갈릴래아에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나는 카파르나움에서 너희와 합류하겠다… 나는 거기서 너희를 훨씬 더 유능하게 만들기 위하여 너희를 교육하겠다. 그러나 필립보야, 만일 네가 벳사이다로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가거라. 거기서 다시 만나자…”
“아닙니다, 선생님. 저는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당신께서도 아시다시피… 집은 즐겁습니다… 그리고 제 딸들은… 앞으로 제가 그 애들과 많은 시간 동안 함께 있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 애들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그러나 만일 제가 그 애들과 당신 중에서 골라야 한다면, 저는 당신을 선택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필립보가 한숨을 쉬며 결론을 내린다.
“내 벗아, 잘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네 딸들보다 먼저 너에게서 떠날 테니까…”
“오! 선생님!…”
필립보가 슬퍼하며 말한다.
“필립보야, 사실이 그렇다.”
예수께서는 사도의 관자놀이에 입 맞추시며 말씀을 마치신다.
가리옷의 유다는 예수께서 카이사리아를 언급하셨을 때부터 투덜거리다가 마치 필립보에게 해주신 그분의 입맞춤으로 인하여 자제력을 잃기라도 한 것처럼 목소리를 높인다. 그가 말한다.
“그분께서는 무익한 일을 많이도 하시지! 우리가 왜 카이사리아에 가야 하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어!”
그는 분노하여 격렬하게 말한다. 그는 마치 ‘거기 가려고 하는 당신은 바보요’ 하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가 하는 일의 필요성에 대한 판단은 자네가 아니라 그분께서 하셔.”
바르톨로메오가 그에게 대답한다.
“정말로? 왜 아니겠어? 마치 그분께서 자연의 필요들을 분명히 아시기라도 하시는 것처럼 말이야!”
“내가 말하겠네! 자네는 미쳤나, 아니면 제 정신인가? 자네는 지금 자네가 누구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베드로가 유다의 팔을 흔들며 묻는다.
“나는 미치지 않았어. 나는 제 정신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야.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
“자네는 참 말을 곱게 하는구먼!”
“그 말들을 참작하지 마십사고 하느님께 청하게!”
“겸손은 자네의 장점이 아니구먼!”
“카이사리아에 가면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겁내는 것 같구먼.”
제베대오의 야고보, 열성당원 시몬, 토마스, 알패오의 유다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가리옷 사람이 알패오의 유다에게 대답한다.
“나는 아무것도 무서워할 게 없고, 자네들은 아무것도 알아낼 게 없어. 하지만 나는 우리가 이 잘못에서 저 잘못으로 넘어가 우리 자신들을 망치는 것을 보는 데 지쳤어. 산헤드린 위원들과의 갈등들, 바리사이들과의 언쟁들, 로마인들이 마지막 지푸라기야…”
“뭐라고? 불과 두 달도 못 되는 기간 전에 자네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자신만만했었어. 자네는, 저네는… 모든 것이었어. 왜냐하면 클라우디아가 자네의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지!”
바르톨로메오가 비꼬며 지적한다. 그는 가장… 비타협적이면서도 선생님께 순종한다는 유일한 이유로 로마인들과의 접촉을 거부하지 않는 사람이다.
유다는 한동안 침묵하고 있다. 왜냐하면 빈정거리는 그 말의 논리가 분명하여 자기가 전에 했던 말을 취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곧 생각을 가다듬고 말한다.
“내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건 로마인들 때문이 아니야. 적으로서의 로마인들 때문이 아니란 말이지. 그들은… 결국 네 사람, 기껏해야 대여섯 명에 불과한 로마 귀부인들인데, 그들은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킬 거야. 그러나 그것은 그것이 그분의 원수들의 증오심을 증가시키기 때문이야. 그런데 그분께서는 그걸 깨닫지 못하셔. 그래서…”
“그들의 증오는 강렬하다, 유다야. 그리고 너도 나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알고 있고, 심지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예수께서 ‘더 잘’이란 말을 강조하시며 침착하게 말씀하신다.
“제가요? 제가요? 당신의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누가 당신보다 일들을 더 잘 알고 있습니까?”
“방금 전에 너는 필요들을 알고 있고, 그것들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자연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그 말씀이 맞습니다. 당신께서는 초자연적인 일을 누구보다 더 잘 아신다고 저는 말씀드립니다.”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 너에게 너는 나보다 내 원수들의 증오심과 그들의 목적들… 같은 불쾌하고, 수치스럽고, 네 말마따나 자연적인 것들을 더 잘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저는 제 영혼을 두고, 제 어머니를 두고, 야훼를 두고 맹세합니다…”
“그만해두어라! 맹세하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엄하게 명하시는데, 그분의 얼굴은 마치 조각상의 얼굴처럼 딱딱해지는 것 같다.
“좋습니다, 저는 맹세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노예가 아니라서 말씀드리는데, 카이사리아로 가 로마인들과 말하는 것은 필요하지도, 유익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누가 너에게 말해주었느냐?”
예수께서 물으신다.
“누구냐고요? 모든 것이요! 당신께서는 무언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어떤 자취를…”
유다는 분노로 인하여 자기가 너무 많은 것을 말한다는 것을 깨닫고 말을 중단했다가 다시 말을 잇는다.
“그래서 저는 당신께서는 저희의 이해관계도 생각하셔야 한다고 당신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저희에게서 집, 돈벌이, 애정들, 평화 등 모든 것을 빼앗아가셨습니다. 저희는 당신으로 인하여 박해당하고 있고, 나중에도 박해당할 것입니다. 당신께서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말씀하시는 것처럼 당신께서는 어느 날에는 떠나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파멸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내가 더 이상 너희 가운데 있지 않을 때 너는 박해받지 않을 것이다. 진리인 내가 너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말하는데, 나는 네가 나에게 자발적으로, 그리고 끈질기게 주는 것을 받아왔다. 그러니 너는 네가 머리를 빗을 때 빠지는 머리카락 한 올도 내가 권력을 남용하여 빼앗았다고 말할 수 없다. 너는 왜 나를 비난하고 있느냐?”
지금 예수께서는 덜 엄하시다. 그분의 슬픈 얼굴은 유다를 친절하게 이성으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갈망을 표현하고 있다. 나는 예수의 자비는 그토록 충만하고 숭고하여 죄인에게 별로 동정적이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억제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유다도 그것을 깨닫고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힘에 이끌린 그의 영혼의 갑작스러운 변화들 중의 하나로 땅바닥에 엎드려 자기의 이마와 가슴을 치며 외친다.
“왜냐하면 저는 마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귀입니다. 선생님, 저도 구해주십시오, 당신께서 수많은 마귀 들린 사람들을 구해주시는 것처럼요! 저를 구원해주십시오! 저를 구원해주세요!”
“구원받으려는 네 갈망이 무력해지지 않게 해라.”
“저에게는 그 갈망이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그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나에 의하여. 너는 내가 모든 것을 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이므로 네 자유의지를 존중한다. 나는 네가 ‘저는 분명히 원합니다(I do want)’라고 말하도록 너에게 힘을 주겠다. 그러나 노예가 되지 않기를 원하는 것은 너에게서 나와야 한다.”
“저는 분명히 원합니다! 저는 분명히 원합니다! 그러나 카이사리아로 가지 마십시오! 가지 마세요! 당신께서 아코르에 가고자 하셨을 때 요한의 말을 들으셨던 것처럼 제 말을 들으십시오. 저희 모두는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는 똑같이 당신을 섬깁니다. 저희가 하는 것으로 인하여 당신께서는 저희를 만족시켜주실 의무가 있습니다… 당신께서 요한을 대하셨던 것과 똑같이 저도 대해주십시오! 저는 그것을 원합니다! 그와 저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영혼이 다르네! 내 아우는 절대로 자네가 말했던 것처럼 말하지는 않았을 걸세. 내 아우는…”
“조용히 해라, 야고보야. 내가 말하겠다. 모두에게. 그리고 너는 일어나서 주인의 발 앞에서 신음하는 노예가 아니라 내가 너를 대하듯이 사람으로 처신해라. 네가 요한처럼 취급되기를 그렇게도 원하니, 사람이 되어라. 요한은 순결하고 사랑으로 하기에, 참으로 사람 이상이다.
가자. 시간이 늦었다. 나는 새벽에 강을 건너고 싶다. 그 시간에는 어부들이 바다가재를 잡는 통발을 건져 돌아오기 때문에 강을 건너가줄 배를 구하기 쉽다. 지금은 하순이어서 가느다란 하현달이 점점 높이 뜬다. 우리는 더 밝아진 달빛으로 인하여 빨리 걸을 수 있다.
잘 들어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아무도 자기의 의무를 다한 것을 자랑해서는 안 되고, 의무를 다한 것으로 인하여 특별한 배려를 요구해서도 안 된다.
유다는 너희가 모든 것을 나에게 주었다는 것을 나에게 상기시켰다. 또한 그는 그 대가로 너희를 만족시키는 것이 내 의무라고 말했다. 그러나 들어보아라. 너희 가운데에는 몇 명의 어부들도 있고, 몇 명의 지주들도 있고, 몇 명은 작업장을 가졌었고, 하인 한 사람을 두었던 열성당원도 있다. 그렇다면 배의 조수들이나, 올리브 밭이나 포도밭이나 밭에서 하인처럼 너희를 도와주는 사람들이나, 공장의 견습공들이나, 집안의 살림을 돌보거나 식사 시중을 드는 충직한 하인이 그들의 일을 마쳤을 때 너희는 그들의 시중을 들기 시작하느냐? 모든 집과 모든 일터에서 그렇게 하지 않지 않느냐?
너희는 쟁기질하거나 양을 치는 하인이나, 작업장의 일꾼을 둔 사람이, 하인이 일을 끝냈을 때 그 하인에게 ‘빨리 가서 식사하게’ 하고 말하느냐?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인이 밭에서 돌아오거나 작업도구를 내려놓으면 모든 주인은 말한다. ‘내 식사를 차리고, 몸을 깨끗하게 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내가 식사하는 동안에 시중을 들어라. 너는 그 다음에 먹고 마셔라.’
누구도 이것을 무정하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인은 자기의 주인을 섬겨야 하지만, 주인은 자기의 하인에게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하인은 아침에 자기의 주인이 자기에게 하라고 명한 것을 했기 때문이다.
주인은 하인에게 인정이 있어야 하지만, 하인에게도 게으르거나 낭비하지 않고, 자기에게 옷과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을 위하여 일할 의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너희는 너희 배의 조수들, 농부들, 인부들, 집안의 하인들이 ‘내가 일했으니, 내 시중을 드시오’ 하고 말하는 것을 참겠느냐? 나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너희가 나를 위하여 해온 것과 지금 하고 있는 것, 그리고 미래에 내 일을 계속하고 너희의 선생을 계속 섬기기 위하여 너희가 할 것을 생각하면서 너희는 항상 말해야 한다. ‘저희의 의무를 다했을 뿐이니 저희는 무익한 하인들입니다.’(루카 17, 10 참조)
왜냐하면 너희가 하느님에게서 받은 것과 동등하게 하려면, 마땅히 해야 하는 것보다 항상 훨씬 적게 일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너희가 이렇게 추론한다면, 너희는 더 이상 너희 마음속에 주제넘은 생각들이나 발끈하는 생각들이 너희 안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고, 따라서 너희는 정의에 따라 행동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침묵하신다. 그들 모두가 생각에 잠긴다.
베드로는 달빛을 받아 남색에서 회청색으로 변한 물을 푸른색 눈으로 응시하면서 생각에 잠겨 있는 요한을 팔꿈치로 건드리며 말한다.
“사람이 자신의 의무 이상의 일을 할 때는 언제냐고 그분께 여쭈어보게. 나는 내 의무 이상의 일을 하게 되었으면 좋겠어. 나는…”
“시몬, 나도 여쭈어보고 싶어. 나도 바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요한이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다음 큰 소리로 여쭌다.
“선생님, 당신을 섬기는 사람이 자기의 의무 이상의 일을 하고, 그래서 당신을 완전히 사랑한다고 당신께 말씀드릴 수는 결코 없는지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얘야(Child),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아주 많이 주셨기에 모든 공평함의 견지에서 볼 때 너의 모든 영웅적 행위는 별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참으로 인자하셔서 너희가 그분께 드리는 것을 그분의 무한한 척도로 재지 않으시고, 인간 능력의 제한적인 척도로 재신다.
그래서 그분께서 너희가 후한 척도로 인색함이 없이 넘치도록 너그럽게 드리는 것을 보시면, 그때 그분께서는 말씀하신다. ‘나의 이 종은 자기의 의무인 것보다 나에게 더 많이 주었다. 그러므로 나도 그에게 내 상급을 넘치도록 주겠다.’”
“오! 저는 몹시 기쁩니다! 저는 넘치도록 받기 위하여 넘쳐흐르는 척도를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가 외친다.
“그래, 너는 나에게 그것을 줄 것이고, 너희 모두가 그것을 줄 것이다. 진리를 사랑하고 빛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나에게 그것을 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나와 함께 초자연적으로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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