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6권 공생활 셋째 해(2) p32~p41

402. 평야의 엠마오로 가며
1946. 3. 27.
새벽은 시원하고 고요한 계곡 위 높이 있는 창공에 희뿌연 미광을 비추고 있다. 빛이기도 하고 아직 빛이 아니기도 한 이 미광이 두 비탈의 꼭대기에 도달한다. 그 미광은 유다의 산들의 가장 높은 부분들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봉우리를 덮고 있는 노목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여기 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다. 나는 새벽보다 먼저 동쪽에서 오면서 어둠을 쫓아버리고,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새로운 날의 빛, 활동, 축복을 가져온다.’
산꼭대기들은 나뭇잎들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들과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의 소리와 최초의 미광에 잠에서 깨어난 첫 번째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로 잠에서 깨어난다. 새벽은 점점 더 내려온다. 관목 숲으로, 풀로, 비탈로 점점 더 내려와,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점점 더 커지는 새들의 지저귐과 풀 속의 초록도마뱀들이 내는 부스럭 소리로 인사 받는다.
미광은 마침내 계곡 바닥의 작은 급류에 이르러, 그 시커먼 물을 꾸준하게 선명해지고 밝아지는 희부연 은빛 반짝임으로 바꾸어놓는다. 그 동안 저 높이 하늘에서는 밤의 남색이 초록빛을 띤 연청색으로 옅어져 분홍빛이 감도는 하늘색으로 만들어 일출의 최초의 선언이 나타난다… 그 다음에 부풀어 오른, 작은 분홍빛 거품과 같은 권운이 나타난다…
예수께서는 동굴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보신다… 그러고 나서 그분께서는 시냇물에서 몸을 씻으시고, 머리를 매만지시고, 옷을 입으시고, 동굴 안을 들여다보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사람들을 부르지 않으시고… 산으로 올라가 돌출해 있는 산봉우리 위에서 기도하신다. 그 산봉우리는 꽤 높아서 지금은 새벽빛으로 완전히 장밋빛으로 물든 동쪽과 아직 양람색(indigo)으로 물들어 있는 서쪽을 넓게 조망할 수 있다.
그분께서는 기도하신다… 그분께서는 무릎을 꿇으시고, 팔꿈치를 땅에 대시고, 거의 엎드리다시피 하시고 열렬히 기도하신다… 그분께서는 잠에서 깨어나 그분을 부르는 제자들의 목소리들이 들릴 때까지 그 자세로 기도하신다.
예수께서는 일어나 대답하신다.
“나는 가겠다!”
그러자 좁은 계곡은 그 완벽한 목소리를 몇 번이나 메아리치게 한다. 계곡이 서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평야에 주님의 “나는 가겠다”는 약속을 전하여, 미리 그 약속을 즐기게 하시려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한숨을 쉬시며 걷기 시작하시고, 그분의 기도를 요약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말씀을 소리 내어 하신다.
“아버지, 저를 위로해주십시오…”
예수께서 빨리 내려오신다. 그분께서는 아래에 이르시자 매우 다정한 미소와 늘 하시는 말씀으로 그분의 사도들에게 인사하신다.
“이 새 날에 평화가 너희와 함께 있기를”
“또한 선생님, 당신께도요.”
사도들이 대답한다.
유다도 화나 있거나 따로 놀지 않는다. 나는 그가 자기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다른 사도들과 똑같이 대하시는 예수의 침묵으로 그가 안심해서 그러는지, 아니면 밤사이에 곤경에서 빠져나올 계획을 세워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그는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묻기까지 한다.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갈 겁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약간 되돌아가서 저 다리를 건너가야 합니다. 저 다리 건너편에는 예루살렘으로 곧장 가는 길이 있습니다.”
“아니다. 우리는 평야의 엠마오로 갈 것이다.”
“아니, 왜요? 그럼 오순절은 어떡하고요?”
“아직 시간이 있다. 나는 해안 쪽으로 가는 평야를 따라 가 니코데모와 요셉을 만나고 싶다.”
“그런데 왜요?”
“나는 아직 그곳에 가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착한 제자들이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요안나가 그렇게 말씀드렸습니까? 그래서 그녀가 당신을 오시게 한 겁니까?”
“그것은 필요 없었다. 파스카 때 제자들이 나에게 직접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저라면 거기 가지 않겠습니다… 그들은 아마 이미 예루살렘에 가 있을 겁니다… 명절이 임박했으니까요… 어쨌든… 당신께서는 원수들을 만나실 수도 있고, 그리고…”
“나는 모든 곳에서 원수들을 만난다. 그들은 항상 내 가까이에 있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고통거리인 사도를 쏘아 보신다…
유다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는 그것을 느끼고, 침묵한다.
요한과 안드레아가 작은 열매들을 가지고 돌아와 그분께 드리는데, 그것들은 산딸기나 딸기과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빛깔이 약간 더 짙은데, 덜 익은 블랙베리와 유사해 보인다.
그들이 말한다.
“당신께서는 이것들을 좋아하십니다. 어제 저녁에 저희는 이것들을 보았는데, 당신께 드리려고 방금 올라가서 따 왔습니다. 선생님, 이것들을 드십시오. 맛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열매들을 개울물에 씻은 넓은 나뭇잎에 얹어서 드리는 착하고 젊은 두 사도를 쓰다듬어주신다. 그들은 그분께 열매보다는 사랑을 더 드린다. 그분께서는 가장 좋은 열매들을 골라서 각 사도에게 조금씩 주신다. 그들은 그 열매들을 빵과 함께 먹는다.
“저희는 당신을 위하여 양젖을 구하려고 노력해보았지만, 아직 이 주위에 목자들이 없었습니다…”
안드레아가 변명하듯이 말한다.
“그건 상관없다. 너무 더워지기 전에 우리가 엠마오에 도착하도록 빨리 걷자.”
그들이 길을 떠나는데, 더 시장한 사람들은 시원한 계곡을 따라 걷는 동안에 계속 먹는다. 계곡은 점점 넓어지다가 아주 비옥한 평야가 나타난다. 그곳에서는 수확하는 농부들이 이미 열심히 일하고 있다.
“저는 니코데모가 엠마오에 집들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바르톨로메오가 말한다.
“엠마오가 아니라 더 먼 곳에 있다. 부모로부터 유산으로 받은 땅이다…”
예수께서 설명하신다.
“정말 아름다운 밭들이로군!”
타대오가 탄성을 올린다.
그것은 실로 꿈처럼 아름다운 과수원들과 이미 탐스러운 포도송이를 예고하고 있는 포도원들이 군데군데 끼여 있는 황금빛 밀 이삭의 바다이다. 가까이에 있는 산들에서 내려오는 수많은 작은 개울이 관개가 가장 필요한 몇 달 동안 물을 대주고, 지하수맥이 흐르고 있어 이곳은 실로 농업의 에덴동산이다.
“흠! 작년 것보다 더 아름다운 걸. 적어도 물과 과일들은 있잖아…”
베드로가 중얼거린다.
“사론평야는 더 아름다워.”
열성당원이 대답한다.
“여기는 사론평야가 아닌가?”
“아니야, 사론평야는 이 들판 너머에 있어. 그러나 이 들도 이미 사론평야의 영향을 받고 있어.”
두 사도는 서로 말하며 일행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이건 바리사이들의 소유지겠지, 그렇지?”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아름다운 들판을 가리키며 묻는다.
“이건 틀림없이 유다인들의 것이겠지. 그들은 가장 좋은 밭들을 이전 주인들에게서 온갖 방법으로 빼앗았어.”
타대오가 대답한다. 그는 재산을 잃고 쫓겨난 유다에 살았던 자기의 조상들의 재산에 대하여 생각하는 모양이다.
가리옷 사람이 그 말에 발끈하며 말한다.
“자네들이 그 재산들을 빼앗긴 이유는 자네들 갈릴래아 사람들이 덜 거룩하고 열등하기 때문이야…”
“나는 자네가 알패오와 요셉이 다윗 가문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라네. 칙령으로 인하여 그분들은 유다의 베들레헴으로 등록하러 갈 수밖에 없었어. 그래서 그분께서는 그곳에서 태어나신 거야.”
알패오의 야고보가 자기의 성미 급한 동생의 신랄한 대답을 예상하고, 마태오, 필립보와 말씀하시는 주님을 가리키며 침착하게 대답한다.
“오! 좋아! 나는 어디에나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다고 말하겠네. 우리는 장사할 때 여러 종족의 사람들을 상대해보았는데, 나는 모든 종족들에서 정직한 사람들과 부정직한 사람들을 만났다고 자네에게 분명히 말하겠네. 어쨌든… 유다인이라는 것을 왜 자랑해? 혹시 우리가 그것을 바라기라도 했나?
흠! 나는 내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유다인이 무엇이고, 갈릴래아인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었네. 나는 그저 거기 있었고… 그게 전부였어. 내가 태어났을 때 나는 따뜻한 배내옷에 싸여 있었는데, 내가 유다의 공기를 마시고 있는지, 갈릴래아의 공기를 마시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어. 나는 엄마의 젖꼭지밖에 몰랐어… 자네들 모두도 나와 마찬가지일 거야. 그렇다면 왜 누구는 북쪽에서 태어났고, 누구는 남쪽에서 태어났다고 이렇게 흥분하는 건가? 우리 모두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가?”
토마스가 온유하고 조리 있게 말한다.
“토마스, 자네의 말이 맞네.”
요한이 대답한다. 그 다음에 그가 결론짓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오로지 한 줄기, 예수께 속하는 사람들이야.”
“맞아, 그분께서는 유다 가문이시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갈릴래아에서 잉태되셨고, 거기서 사셨네. 마치 그분께서는 북쪽부터 남쪽까지 이스라엘 전체의 구세주시라는 것을 일어난 사실들의 증거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처럼 말이야.
나는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분파들은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에 어긋나는 것이고, 그분께서는 성서에서 말하는 병아리들을 품는 암탉처럼 모든 사람을 모으시기 위하여 파견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를 원하셨다고 생각해. 그분께서 ‘갈릴래아 사람’이라고 불리신다는 이유만으로도 갈릴래아 사람들을 업신여겨서는 안 되네.”
알패오의 야고보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발짝 앞서 가시면서 마태오와 필립보와 말씀을 나누시면서 듣지 않으시는 것 같던 예수께서 돌아서시며 말씀하신다.
“알패오의 야고보야, 네 말이 맞다. 너는 진리(the Truth)와 진리들(truths), 하느님의 모든 행위들의 정의를 이해한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올곧은 사람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보상하시지 않는 법이 없듯이, 그분께서는 어떤 것도 목적 없이 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이 이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가장 작은 일들에서도 하느님의 이유들을 보고, 사람들의 희생들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들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은 복되다.”
베드로가 뒤돌아보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말하지 않고, 그분의 사도들의 후미에 계시는 자기의 선생님께 미소 짓기만 한다. 그들은 황금빛 들판 사이의 넓은 간선도로를 걷고 있다.
그들은 엠마오를 향하여 나아간다. 엠마오는 지척에 있는데, 그곳은 익어가는 황금빛 옥수수밭들과 비옥한 푸르른 과수원들 가운데에 있는 일군의 하얗게 빛나는 집들이다.
“선생님! 선생님! 멈추십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여기 있습니다!”
멀리서 외치는 목소리들이 들려오면서 몇 명이 사과나무 과수원의 그늘에서 쉬고 있는 농부들을 떠나 햇볕이 내리쬐는 길을 따라 예수를 향하여 달려온다. 전에 목자였다가 나중에 세례자의 제자가 되었던 마티아와 요한이다. 그들과 함께 나콜라오, 전에 나병환자였던 아벨, 사무엘, 에르마스테오, 그밖에 다른 사람들도 있다.
“너희에게 평화. 너희는 여기 있느냐?”
“예, 선생님. 저희는 모든 해변을 돌아다녔고, 지금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멀리 북쪽에는 스테파노가 다른 제자들과 같이 있고, 그보다 더 앞에는 헤르마와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작은 선생인 이사악이 그보다 더 북쪽에 있습니다. 적어도 그는 거기 있었습니다. 티모네오가 요르단 강 너머에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 모두가 오순절 명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을 것입니다. 저희는 이렇게 여러 개의 작지만 활동적인 무리들로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저희를 박해한다 해도, 그들은 몇 명은 잡을 수 있지만, 저희 모두를 잡을 수는 없습니다.”
마티아가 설명한다.
“너희는 일을 잘했다. 나는 남쪽 유다 어디에서도 너희를 만나지 못해 의아했었다…”
“선생님… 당신께서 그리로 가셨는데… 누가 당신보다 더 잘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쨌든… 오! 유다는 거룩하게 되는 데 필요한 것 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늘의 말을 자기들에게 가져가는 사람들에게 돌들을 던집니다.
엘리야와 요셉은 키드론 골짜기에서 얻어맞아 요르단 강 건너 솔로몬의 집으로 갔습니다. 요셉은 머리에 돌을 맞아 죽을 뻔했습니다. 그들은 여드레 동안 당신께서 보내신 사람과 함께 깊은 동굴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산의 모든 비밀들을 알았습니다. 그 다음에 밤에 그들은 천천히 강을 건너갔습니다…”
제자들과 사도들은 이 박해의 추억과 소식으로 동요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셔서 그들을 진정시키신다.
“죄 없는 아기들이 죄 없는 그들의 피로 그리스도의 길을 물들였다. 그 길은 하느님의 길에서 악의 흔적들을 지우기 위하여 몇 번이고 계속 붉게 물들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왕도(a regal road)이다. 순교자들은 나를 위하여 그 길을 붉게 물들인다. 복된 이들 중 복된 이들은 나로 인하여 박해받는 사람들이다.”
“선생님, 저희는 저 농부들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지금 말씀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황혼에 내가 엠마오 성문 근처에서 말하겠다고 그들에게 가서 말해라. 지금은 햇볕이 나를 가로막고 있다. 가거라. 하느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나는 이 길의 끝에 있겠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강복하시고 그늘을 찾아 다시 걷기 시작하신다. 왜냐하면 하얀 길 위에 폭염이 내리쬐고 있는데, 길 양쪽에 두 줄로 심겨진 나무들이 그 길에 약간의 그늘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403. 어린 미카엘. 평야의 엠마오 근처에서의 설교
1946. 3. 28.
엠마오의 성문 곁에 한 농가가 있다. 온 식구가 밭에 나가 일하고 있기 때문에 조용하다. 지난 며칠간 거두어들인 곡식 단들이 마당에 쌓여 있고, 건초들은 투박한 건초창고에 쌓여있다. 작열하는 정오의 햇볕 아래에서 뜨거운 냄새가 이 건초와 곡식 단에서 물씬 풍겨 나온다.
비둘기들의 구구거리는 소리와 항상 시끄럽고 다투기를 좋아하는 참새들의 짹짹거리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비둘기와 참새들은 끊임없이 지붕이나 근처의 나무들에서 곡식 단들과 건초 단들로 날아와 그것들을 맛보는 놈들 중에서 첫 번째 놈들은 꼿꼿하게 서 있는 이삭을 쪼고, 양심의 가책이 없는 탐욕스러운 전사들처럼 자기들의 날개로 서로를 치고 더 많은 낟알을 차지하거나 가장 부드러운 건초 부스러기를 훔치려고 서로 다툰다.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유일한 도둑들이다. 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남의 재산을 매우 존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들의 문을 열어둔 채 집을 비워도 되고, 마당이나 포도밭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진짜 강도들과 산골짜기에서 사람들을 습격하는 산적들 말고는, 좀도둑들이나 남의 과일이나 새끼 집비둘기를 훔쳐가는 탐욕스러운 사람들도 없다. 모든 이들이 제 갈 길을 가고, 이웃의 소유지를 가로질러갈 때 그들은 눈이나 손이 없는 것같이 행동한다.
숙식을 제공하는 일이 광범위하게 실천되고 있기 때문에 먹을 것을 얻기 위하여 도둑질할 필요가 없다. 예수께 국한해서만, 그리고 나그네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오랜 습관을 거부할 정도로 큰 증오로 인하여, 집들이 그분께만 숙소와 음식을 주는 것을 거절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동정심이 있고, 특히 낮은 계급의 사람들은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사도들이 그 집의 문을 두드린 다음 아무 대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농기구들과 빈 항아리들이 놓여 있는 헛간으로 피해 들어간다. 그들은 마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건초 단을 가져다 깔고 앉고, 우물에서 물을 길으려고 동이를 가져오고, 물을 마시려고 물주전자들을 가져오고 딱딱한 빵조각과 식은 어린양고기 조각들을 물에 적셔 거의 말없이 그것들을 먹는다. 그들은 몹시 졸리고 햇볕으로 몽롱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음대로 건초단과 그릇들을 사용하고 나서 이내 좋은 냄새가 나는 건초 위에 누워 즉시 음조와 선율이 제각각인 코골이 합주를 시작한다.
예수께서도 피로하시다. 그분의 슬픔은 피로보다 더하다. 그분께서는 한참동안 자고 있는 사도들을 바라보시고, 기도드리시고, 생각하신다. 그분께서는 눈으로는 참새들과 비둘기들이 다투는 모습과 제비들이 해가 내리쬐는 마당 위를 쏜살같이 날아다니는 광경을 기계적으로 바라보시며 생각에 깊이 잠겨 계신다. 비행의 전문가인 그 제비들의 날카로운 부르짖음이 예수께서 그분 자신께 던지고 계시는 고통스러운 질문들에 대하여 확실한 해결책들이 되는 것 같다.
그러다가 그분 자신도 건초 위에 누우신다. 그분의 다정하고 서글픈 사파이어 색 두 눈이 눈꺼풀에 덮인다. 그분의 얼굴은 잠들어 움직이지 않는데, 아마 그분께서 무거운 마음으로 잠드셔서 그렇겠지만, 그분의 얼굴은 그분의 미래의 임종 시의 모습처럼 몹시 피로에 지치고 고통스럽게 보인다…
집주인 농부들이 돌아온다. 남자들과 여자들과 어린이들이. 방금 전에 보았던 제자들도 그들과 함께 있다. 그들이 건초 위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와 사도들을 보자 그들을 깨우지 않기 위하여 그들의 목소리가 속삭임으로 변한다. 어떤 어머니들은 입을 다물려고 하지 않는 아이를 손바닥으로 때리거나, 때리겠다고 위협한다.
한 꼬마가 입에 한 손가락을 물고 어린 멧비둘기 걸음으로 베개 대신 구부린 팔로 머리를 받친 채 주무시고 계시는 그분을 살펴보고는 그분께서 ‘가장 잘 생긴’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티아와 요한을 필두로 하여 나머지 사람들 모두가 그 꼬마를 흉내 내어 신발을 벗고 발끝으로 걸어가 예수께서 건초 위에 누워 주무시는 것을 보고 깊이 감동한다.
마티아가 말한다.
“우리 선생님께서 갓 태어나 맨 처음 주무실 때처럼… 지금도 주무시는데… 그때보다 덜 행복하시네… 이분께서는 이분의 어머니를 그리워하기도 하시고…”
“그래, 그러시네. 박해만이 항상 이분의 가까이에 있어. 그렇지만 우리는 항상 그분을 사랑할 것이고, 항상 사랑해 왔어. 그때처럼…”
요한이 대답한다.
“우리는 그때보다 더 사랑해, 마티아. 훨씬 더. 그때 우리는 믿음으로만 사랑했고, 아기를 사랑하는 것이 기쁘기 때문에 사랑했어. 하지만 지금 우리는 우리가 이분을 알기 때문에도 이분을 사랑해…”
“요한, 이분께서는 아기 때부터 미움 받으셨어. 이분을 죽이려고 그들이 저지른 일을 생각해보게!…”
마티아는 그 일을 회상하며 얼굴이 창백해진다.
“그건 사실이야… 그러나 그 고통은 복된 거야!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이분을 잃지는 않았어. 그 사실이 중요한 거야. 만일 이분께서 돌아가셨다면, 우리가 여전히 부모를 모시고 있고, 집과 보잘것없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게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것은 사실이야, 마티아. 자네의 말이 옳아. 이분께서 더 이상 이 세상에 안 계신다면, 설령 우리가 온 세상을 가진다 해도 그게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나에게 그런 말은 하지도 말게… 그때 우리는 정말로 버림받은 사람이 될 거야. 당신들은 가보시오. 우리가 이분 곁에 남아 있을 테니까요.”
요한이 농부들을 내보내며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이분들에게 열쇠를 줄 것을 생각지도 못해 유감입니다. 그랬더라면 이분들이 집안으로 들어가실 수 있을 거고, 그랬더라면 좀 더 편안하셨을 텐데요.”
집안에서 가장 연장자인 노인이 말한다.
“우리가 이분께 그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이분께서는 여러분의 사랑만으로도 행복하실 것입니다. 이제 가보세요…”
농부들이 집으로 간다. 굴뚝에서 올라오는 연기는 그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중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들은 어린이들을 제지하고, 소리를 최대한 적게 내며, 조심스럽게 일한다… 그 다음에 그들은 소리 없이 제자들에게 음식을 가져오며 말한다.
“저희는 저분들의 몫은 따로 남겨두었습니다… 저분들이 잠에서 깨어나시면 드리려고요.”
그 다음에 다시 한 번 적막이 집을 감싼다. 아마 새벽부터 수확하는 일을 한 농부들이 작열하는 햇볕이 내리쬐는 이 시간들에는 들에 남아 있는 것이 불가능하여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침대에 누워 있는 모양이다. 제자들도 졸고 있다… 비둘기와 참새들도 쉬고 있다. 제비들만이 지치지도 않고 쏜살같이 날아다니는데, 그놈들의 날렵한 비행 모습은 공중에는 파란 말들을 쓰고, 흰 마당에는 그림자의 말들을 쓴다…
방금 전에 보았던 꼬마, 이 무더운 시간에 옷이라고는 아주 짧은 샤쓰만 걸친 예쁜 어린이가 자신의 작은 갈색 머리를 부엌문 밖으로 내밀고 찬찬히 살펴보더니, 땅바닥이 뜨거워 발바닥이 따끔거릴 텐데도 귀여운 작은 발로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온다. 아이의 헐렁한 샤쓰는 포동포동한 어깨 아래까지 흘러내려온다.
그는 제자들 있는 곳으로 와서 그들을 넘어가 다시 예수를 보려고 해본다. 그러나 그의 작은 다리들이 너무 짧아서 어른들의 실팍한 몸을 뛰어넘을 수 없어 마티아 위에 걸려 넘어진다. 그는 잠이 깨어 울상이 된 아이의 당황해하는 작은 얼굴을 본다. 그는 미소 지으며 아이가 무슨 일을 꾸미는지를 알아차리고 말한다.
“이리 오너라. 나는 너를 예수와 나 사이에 놓아주마. 그렇지만 너는 움직이지 말고 조용히 있어야 한다. 그분께서 주무시도록 놔둬라. 그분께서는 피곤하시니까.”
그러자 아이는 행복하게 앉아서 예수의 아름다운 얼굴을 흠숭하고 있다. 그는 그분을 들여다보고 뜯어본다. 그는 예수를 쓰다듬고 그분의 금발을 만져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다. 그러나 마티아가 웃으며 감시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자 아이가 작은 소리로 묻는다.
“이 아저씨는 항상 이렇게 자?”
“이분께서는 항상 이렇게 주무신다.”
마티아가 대답한다.
“아저씨는 피곤해? 왜?”
“이분께서는 아주 많이 걸으시고, 아주 많이 말씀하시니까.”
“이 아저씨는 왜 말하고 걸어?”
“이분과 함께 하늘에 가게 하기 위하여 착하게 되고 주님을 사랑하도록 어린이들을 가르치시려고.”
“저기 저 높은 곳 말이야? 거기는 어떻게 해야 가? 거긴 먼데…”
“네 영혼, 너는 영혼이 뭔지 아니?”
“아니!”
“그것은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야. 그리고…”
“우리 눈들보다 더 아름다운 거야? 우리 엄마는 내 두 눈이 두 개의 별이라고 말하는데. 별들은 예뻐, 아저씨는 알아?!”
제자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다.
“영혼은 네 눈의 작은 별들보다 더 아름답다. 왜냐하면 착한 영혼은 해보다 더 아름다우니까.”
“오! 영혼이 어디 있어? 나는 그것을 어디에 가지고 있어?”
“여기, 네 작은 마음 속에. 영혼은 모든 것을 보고 들으며, 절대로 죽지 않는다. 우리가 나쁘게 굴지 않고 의인으로 죽으면, 우리의 영혼은 주님과 함께 저 위로 날아 올라간다.”
“아저씨와 함께?”
꼬마는 예수를 가리킨다.
“이분과 함께.”
“그렇지만 아저씨에게도 영혼이 있어?”
“이분께서는 영혼과 천주성을 가지고 계신다. 네가 들여다보는 이분께서는 하느님이시니까.”
“아저씨는 그걸 어떻게 알아? 누가 아저씨에게 말해줬어?”
“천사들이 말해주었어.”
마티아에게 기대고 앉아있던 아이는 이 소식을 조용히 받아들일 수 없어 벌떡 일어나며 묻는다.
“아저씨는 천사들을 봤어?”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티아를 쳐다본다. 아이는 그 소식이 너무 놀라워 잠시 예수를 잊는다. 그래서 그 아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낸 소리로 인하여 잠에서 깨어나 눈을 반만 뜨셨다가, 미소 지으시며, 다시 눈을 감고, 머리를 반대쪽으로 돌리시는 것을 보지 못한다.
“조용히 해라! 봐라! 너는 이분을 깨우고 있어… 나는 너를 내보내야겠다.”
~ 41p (다음회에 이어서 계속)
(42p~)
“나는 얌전히 있을게. 그런데 천사들은 어떻게 생겼어? 아저씨는 언제 천사들을 봤어?”
아이의 목소리는 다시 속삭임으로 돌아간다.
그러자 마티아는 다시 그의 품으로 돌아와 황홀하게 앉아 있는 아이에게 성탄의 밤에 일어났던 일을 참을성 있게 들려준다. 그는 또한 아이의 모든 질문들에 참을성 있게 대답해준다.
“왜 아저씨는 구유에서 태어났어? 아저씨네는 집이 없었어? 집을 얻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었어? 지금은 아저씨네는 집이 있어? 아저씨에게는 엄마가 없어? 아저씨네 엄마는 어디 있어? 사람들이 아저씨를 죽이려고 하는 걸 알면서, 엄마는 왜 아저씨를 혼자 내버려둬? 엄마는 아저씨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질문들의 소나기이고, 대답들의 소나기이다. 마지막 질문에 마티아가 대답한다.
“이분의 거룩하신 어머니께서는 하느님이신 그분의 아들을 매우 사랑하시지만,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아들이 가게 해주는 괴로움을 희생으로 바치신다. 그 어머니께서는 그분 자신을 위로하기 위하여 그분의 아드님을 사랑할 수 있는 착한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고 생각하신다.”
이 말이 이런 대답을 유발한다.
“그런데 그 엄마는 아저씨를 사랑하는 어린이들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해? 그 엄마는 어디 있어? 나한테 말해줘, 그럼 내가 가서 말하겠어. ‘울지 마세요. 나는 당신의 아들에게 내 모든 사랑을 드리겠어요.’ 아저씨는 어떻게 생각해? 그 엄마가 좋아할까?”
“그분께서는 아주 많이 좋아하실 거다, 얘야.”
마티아가 아이에게 입 맞추며 말한다.
“아저씨도 좋아할까?”
“그러실 거다. 아주 많이. 이분께서 깨어나시면, 네가 그분께 말씀드려라.”
“오! 알겠어요!… 그렇지만 아저씨는 언제 깰까?”
아이는 걱정이 된다…
예수께서는 더 이상 참으실 수 없다. 그분께서는 눈을 크게 뜨시고 환한 미소를 띠시고 돌아누우시며 말씀하신다.
“너는 이미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모든 것을 들었으니까. 얘야, 이리 오너라.”
오! 아이는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예수에게 몸을 던지며, 그분을 쓰다듬고, 그분께 입 맞추고, 손가락으로 그분의 이마와 금빛 눈썹과 속눈썹을 만지고, 그분의 푸른 눈을 들여다보고, 그분의 수염과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어루만지고, 한 가지씩 발견할 때마다 되풀이해 말한다.
“아저씨는 정말로 멋져! 멋져! 멋져!”
예수와 마티아는 빙그레 웃는다.
이제는 아이가 그다지 조심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깨어나는데 따라, 제자들과 사도들도 반쯤 벗은 포동포동한 자그마하고 귀여운 아이의 그 주의 깊은 검사를 보고 빙그레 웃는다. 아이는 예수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살펴보기 위해 몹시 기뻐하며 그 몸 위를 왔다 갔다 한다.
마침내 그가 말한다.
“뒤로 돌아봐!”
그러고 나서 아이가 이유를 설명한다.
“나는 아저씨의 날개들을 보려고 그래.”
아이가 실망하며 묻는다.
“아저씨에게는 왜 날개들이 없어?”
“얘야, 나는 천사가 아니란다.”
“그렇지만 아저씨는 하느님이잖아! 아저씨에게 날개들이 아주 많지 않다면, 어떻게 하느님이 될 수 있어? 하늘에는 어떻게 올라갈 거야?”
“나는 하느님이다. 나는 하느님이기 때문에 날개들이 필요 없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좋아, 그럼, 내 두 눈도 아저씨 것처럼 만들어줘. 아저씨의 눈들은 예쁘니까.”
“아니다. 네가 가진 눈은 내가 준 것이다. 나는 지금의 네 눈을 좋아한다. 대신 네가 점점 더 나를 사랑할 수 있도록 네 영혼을 올바르게 만들어달라고 나에게 청해라.”
“그것도 아저씨가 나에게 주었으니까 아저씨는 지금 그대로를 좋아할 거야.”
아이가 어린애다운 논리로 말한다.
“그렇다. 지금은 네 영혼이 죄가 없으니까 나는 그것을 아주 좋아한다. 그렇지만 네 눈은 언제나 익은 올리브 빛깔 그대로겠지만, 만일 네가 나쁜 사람이 된다면, 네 영혼은 하얗다가 까맣게 된다.”
“아니야, 나는 나쁘지 않아. 나는 아저씨를 많이 좋아해. 그리고 아저씨가 태어났을 때 천사들이 말한 것을 나도 할래. ‘하늘에는 하느님께 평화, 땅에서는 마음이 착한 사람들에게 영광.’”
아이가 실수하여 어른들이 폭소를 터뜨리게 되었고, 그러자 아이는 그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여 입을 다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이의 말을 바로잡아주시며 그를 위로해주신다.
“얘야,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평화이시다. 그분께서는 평화이셔. 천사들은 구세주가 태어났기 때문에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고, 사람들에게는 내 탄생에서부터 유래할 평화를 얻기 위하여 ‘착한 뜻을 가지라’는 첫째 규칙을 주었다. 네가 원하는 착한 뜻 말이다.”
“응, 그럼 그걸 나에게 줘, 이 아저씨가 내가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자리에 넣어줘.”
그는 두 손의 검지로 자기의 작은 가슴을 몇 번 두드린다.
“그래라, 내 작은 친구야. 네 이름은 뭐니?”
“미카엘.”
“능력 있는 대천사의 이름이구나. 좋다, 미카엘아, 나는 너에게 착한 뜻을 준다. 너는 천사인 네 수호자가 말한 것처럼 박해자들에게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 하고 말하면서 참 하느님의 증거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이제와 항상 복되기를 바란다.”
예수께서 그에게 그분의 두 손을 얹으신다.
그러나 꼬마는 확신하지 못한다. 그가 말한다.
“아니야, 여기 내 영혼에 입 맞춰줘. 그러면 아저씨의 강복이 그 안으로 들어가서 거기 갇혀 있을 거야.”
아이는 자기의 작은 육체와 예수의 숭고한 입술 사이에 어떤 장애물도 없이 예수께서 입 맞추시도록 자기의 작은 가슴을 드러낸다.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빙그레 웃는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감동한다. 당연하다! 예수께 다가간 무죄한 어린이의 놀라운 믿음을 혹자는 본능적이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의 영의 추동에 의해서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지적하시며 말씀하신다.
“아! 모든 사람이 어린이의 마음을 가졌으면!…”
그 동안 시간이 흘렀다. 집이 다시 활기를 띤다. 여자들, 어린이들,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한 어머니가 외친다.
“미카엘아! 미카엘아! 어디 있니?”
그녀는 대문으로 갔다가 마음에 끔찍한 생각이 들어 겁 먹은 채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는 것이 보인다.
“아주머니, 염려하지 마시오. 당신의 아들은 나와 함께 있어요.”
“오! 저는 걱정했습니다… 얘가 하도 물놀이를 좋아해서요…”
“사실 이 아이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물에게 왔소.”
“이 애가 당신을 힘들게 했군요… 이 애가 살그머니 빠져나오는 바람에 저는 이 애의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여인이 변명하며 말한다.
“오! 아니오! 이 아이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었어요! 어린이들은 절대로 예수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아요.”
남자들과 다른 여자들이 예수께 다가온다. 가장이 말한다.
“안으로 들어오셔서 식사하십시오. 그리고 저희가 당신을 뵌 첫 순간부터 저희 집의 주인으로 모시지 못했다면… 저희를 용서해주십시오.”
“나는 여러분을 용서할 것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여기서 아주 편하게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경의로 존중받았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음식을 가지고 있었고, 당신의 우물물은 시원하고, 건초는 부드럽습니다. 사람의 아들에게 이것은 필요 이상의 것입니다. 나는 시리아의 태수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을 뒤에 거느리고 음식을 드시려고 넓은 부엌으로 들어가신다. 그 동안에 남자들은 마당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벌써 사방에서 오는 사람들을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고, 다른 남자들은 서둘러 음료와 식량을 준비하고 복음전파자들에게 여행용 양식을 드리기 위하여 어린양의 가죽을 벗긴다.
몇 명의 여자들은 달걀과 버터를 가져오는데, 버터는 베드로의 항의를 유발한다. 그는 더위에 바로 녹기 때문에 그것을 배낭에 넣어 가져갈 수는 없다고 말하는데, 그 말이 옳기는 하지만 단지가 공연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단지 하나에 버터를 채운 다음 뚜껑을 닫고, 가능한 한 시원하게 만들려고 우물 속으로 내려 보낸다.
예수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고, 그 선물들을 제한하려고 하신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그분의 말씀은 아무 소용이 없다. 더 많은 선물들이 사방에서 들어오고, 모든 사람들이 드리는 것이 별로 없다고 사과한다…
베드로가 중얼거린다.
“나는 목자들이 여기 있어 왔다는 걸 잘 알겠군. 개간된 땅… 좋은 땅이야.”
날씨는 여전히 덥고, 마지막 햇살이 마당을 비추고 있는데도, 마당에는 더위를 아랑곳하지 않는 의연한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시작하신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나는 이스라엘의 선생의 가르침이 나의 훌륭한 제자들의 노력으로 이곳에 이미 알려져 있다는 것을 보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되풀이하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가르치는 영광과 책임을 그들에게 남겨두고, 또한 점점 더 그렇게 하여 내가 하느님께서 언약하신 사람이고, 내 말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여러분으로 하여금 완전히 확신하게 하는 소임을 그들에게 남겨둡니다.”
“그리고 당신의 기적들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복되신 선생님!”
군중 가운데에서 한 여자가 외친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그쪽을 보려고 몸을 돌린다. 그 여자는 혈색 좋은 얼굴로 웃고 있는 소년을 자신의 양팔로 들어 올리며 외친다.
“선생님, 이 애는 당신께서 고운 내에서 고쳐주신 어린 요한입니다. 저는 양다리가 부러져서 어떤 의사도 고칠 수 없었던 어린이를 믿음을 가지고 당신께 데리고 갔었는데, 당신께서는 이 아이를 고쳐주시고, 품에 안고 계셨습니다.”
“부인, 나는 기억합니다. 당신의 믿음은 기적을 얻을만했습니다.”
“선생님, 제 믿음은 더 커졌습니다. 저의 모든 친척들이 당신을 믿습니다. 얘야, 가서 구세주께 고맙다고 인사드려라. 이 아이가 선생님께 가게 해주세요…”
그 여자가 부탁한다.
그러자 군중이 갈라져 어린이가 지나가게 해준다. 어린이는 예수를 껴안을 수 있도록 자기의 양팔을 내밀고 그분을 향하여 달려간다. 마을주민들과 외지인들의 호산나 소리들과 이런저런 말들이 들리는 가운데 예수께서 아이를 껴안는다. 왜냐하면 이 지방 사람들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놀라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어린이의 손을 잡으시고, 다시 말씀을 시작하신다.
“이렇게 감사하는 한 어머니는 내 본성과 하느님의 마음에 대한 믿음의 힘을 확인해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의 신뢰하는 정당한 간청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나는 유다 마카베오가 고르지아의 어마어마한 야영부대를 정탐하려고 이 평야에 왔을 때를 회고해달라고 여러분에게 요청합니다. 그 부대는 갑옷과 무기와 공성구를 갖추고 전투훈련이 잘 되어 있는 보병 5천명과 기병 천명의 정예 병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유다는 방패도, 검도 없는 보병 3천명을 데리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의 병사들의 마음에 공포가 스며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그는 하느님께서 인정하시는 정당한 권리로 힘을 얻어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연설은 권력의 남용이 아니라 침략당하고 더렵혀진 조국의 수호를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자들의 수에 겁먹지 말고, 저자들의 공격에 꿈쩍도 하지 마라. 파라오가 대군을 거느리고 우리 조상들을 쫓아올 때 그들이 홍해에서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기억해보아라.’ 그는 항상 의인들 편에 서시는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병사들의 믿음을 되살린 다음 도움을 얻는 방법을 그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 목소리를 하늘 높이 올려 보내자.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실 것이고, 우리 조상들과 맺으셨던 그분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오늘 우리와 대치하고 있는 저 군대를 멸망시키실 것이다. 그래서 모든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구세주께서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의로운 일에 여러분을 도와주시도록 하느님을 소유하기 위한 두 가지 핵심요소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첫째 요소는, 하느님을 여러분의 동맹자로 모시려면, 여러분은 우리 조상들의 의로운 영혼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조들의 거룩함과 주님께 대한 재빠른 순종을 기억하시오. 요구받은 일이 중요한 일이든 그렇지 않든 말입니다. 그분들이 주님께 얼마나 큰 충성심을 가지고 그분께 충실하게 남아 있었는지를 상기하시오.
우리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님께서 예전에 우리에게 관대하셨던 것처럼 더 이상 관대하시지 않다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여전히 자기 조상들의 영혼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누가 아버지와의 동맹을 깨뜨렸고, 지금도 반복적으로 깨뜨리고 있습니까?
하느님을 소유하기 위한 두 번째 핵심요소는 겸손입니다. 유다 마카베오는 위대한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위대한 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하지 않습니다. ‘오늘 나는 저 군대를 때려 부술 것이다. 그러면 모든 민족들이 내가 이스라엘의 구원자라는 것을 알 것이다.’
아닙니다. 그는 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대치하고 있는 저 군대를 때려 부수실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약해서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을 돌보시고, 그들이 멸망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분의 강력한 군대를 보내시어 초인적인 무기로 그분의 자녀들의 적들과 싸우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때 누가 우리를 패배시킬 수 있습니까? 항상 이것을 마음에 새기시오. 지금도 생각하고, 미래에 사람들이 국가적 전쟁과 같은 상대적 중요성을 가진 일에 있어서가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시간 안에 있어서나, 그 결과들에 있어서나, 더 광범위한 이해관계에 관한 일에 있어 여러분을 쓰러뜨리려고 애쓸 때 훨씬 더 생각하시오.
실망이나 교만에 압도되지 마시오. 두 가지 다 해롭습니다. 여러분이 내 이름으로 인하여 박해당하게 된다면,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이고, 그분께서는 박해 중에 여러분에게 힘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겸손하고, 여러분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여러분이 아버지와 결합해 있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인정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유다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라는 칭호로 자기를 높이지 않고, 영원하신 아버지께 그 칭호를 드렸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사람들의 노력을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그들의 분주함은 헛수고일 뿐입니다. 반대로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분주하게 움직이지 않고서도 승리를 거둡니다. 주님께서는 언제 사람들에게 승리로 상 주시는 것이 옳고, 언제 패배로 벌하시는 것이 옳은지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판단하거나, 그분께 충고하거나, 하느님을 비판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여러분은 조각가가 일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개미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일이 서투르군요. 나라면 당신보다 더 잘하고, 더 빨리 할 텐데요.’ 하느님을 가르치려는 사람은 이 불쌍한 개미와 똑같습니다. 그는 우스꽝스러운 자신의 모습에다 자기는 피조물이고, 하느님은 창조주시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배은망덕과 오만함을 덧붙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분 자신에게 충고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한 피조물을 만드셨다면, 모든 피조물의 창조자(the Author of all creatures)의 완전은 어떠하겠습니까? 이 간단한 생각만으로도 사람의 지성 안으로 기어 들어와 그것을 파괴하고, 모든 좋은 나무들, 사람을 땅 위에서 위대하게, 대단한 부나 왕관 때문이 아니라 정의와 초자연적 지식으로 인하여 참으로 위대하게 만들어주고, 그를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모든 덕을 대체하고, 질식시키고, 죽이는 악한 악마적인 나무, 기생식물을 파괴하여 교만을 꺾기에 충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유다 마카베오와 그날 이 평야에서 있었던 일들이 우리에게 주는 다른 교훈을 고찰해봅시다. 싸움이 시작되자 하느님께서 함께 하셨던 유다의 군대는 적을 이기고 패주시켜 게제르, 아스돗, 이두매아, 얌니아까지 추격하여 적의 일부를 죽여 들판에 3천구 이상의 시체를 남겨놓았다고 역사는 말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승리에 도취된 자기의 병사들에게 말했습니다. ‘전리품을 탐내지 마라. 또 다른 전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고르기아스와 그의 군대는 우리로부터 멀지 않은 산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적들과 맞서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그 다음에 우리는 마음껏 전리품을 차지할 수 있다.’
그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대승을 거두고 많은 전리품을 얻었으며, 하느님을 찬미하며 돌아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착하시고, 그분의 자비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모든 사람은 유다인들의 거룩한 도시 주위의 밭들과 같습니다. 그는 외부와 내부의 적들에 에워싸여 있는데, 이 적들은 모두가 잔인하고 각 사람의 거룩한 도시, 즉 영혼을 공격하려고 하고 있고, 그 도시를 무수한 계략으로 교묘하게 속여서 점령하기 위하여 갑자기 공격해서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가꾸고, 자극하고, 사람이 그것을 억제하기 위하여 모든 의지를 다하여 감시하지 않는 격정들은 사람이 그것들에 굴레를 씌우지 못하면 위험하지만, 사슬에 묶인 강도처럼 감시하면 해롭지 않습니다. 세상은 격정들과 함께 육체와 돈과 교만의 유혹들을 통하여 외부로부터 음모를 꾸미는데, 그것들은 갑옷을 입고 공성루, 훈련된 궁수들, 빠른 기병들을 갖추고, 악의 명령들에 따라 항상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는 고르기아스의 군대와 아주 흡사합니다.
그러나 만일 하느님께서 의롭기를 원하는 사람과 함께 계신다면, 악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고통당하고 상처 입겠지만, 그의 자유와 생명은 구원될 것이고, 선한 싸움을 한 다음에 그는 승리를 만끽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 한번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지속되는 동안, 또는 사람이 그의 인간성을 벗어버리고, 육체보다 더 영이 되어 하느님과 강력하게 결합하여 화살과 물어뜯음과 전화(戰火)가 마치 물 한 방울이 단단하고 반짝거리는 벽옥 위에 떨어지는 것처럼 그를 피상적으로 때리고 나서 스러질 때까지 반복적으로 발생합니다.
여러분이 생명의 문턱, 땅 위의 생명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참 생명의 문턱에 있게 되기까지 약탈하느라고 멈추지 말고, 여러분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지 마시오.
여러분은 나중에 승리하게 되었을 때 여러분의 전리품을 모아 왕들의 왕의 앞으로 영광스럽게 나아가 말하시오. ‘저는 이겼습니다. 제 전리품이 여기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도우심과 제 착한 뜻으로 이것들을 모았습니다. 저는 당신을 찬미합니다. 당신께서는 선하시고, 당신의 자비는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됩니다. 그러나 나를 믿는 여러분에게는 다른 싸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니 몇 가지 싸움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의심에 대한 싸움,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할 말에 대한 싸움, 박해들에 대한 싸움입니다.
나는 머지않아 어떤 곳으로 들어 올려질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위하여 하늘에서 왔습니다. 그 장소는 여러분을 무섭게 할 것이고, 내 말을 부인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 사건을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일어나는 일이 내가 진정으로 누구인지에 대한 확인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나는 보잘것없는 나라의 보잘것없는 왕이 아니라, 강들이 대양으로 흘러들어가듯 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의 유일한 불멸의 옥좌의 발치로 들어와 ‘왕들의 왕이시며 영원한 심판자시여, 저희는 당신을 흠숭하나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거룩한 희생을 통하여 당신은 세상을 구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고 말할, 예언자들에 의하여 예언된 왕입니다.
의심에 저항하시오. 나는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예언자들이 말한 그 사람입니다. 방금 전에 요한의 어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행한 것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말하시오. ‘이 행위들은 하느님에게서 온다. 그분께서는 그것들을 믿기 위한, 바로 이 시간에 믿기 위한 확증과 도움으로 우리 기억에 남겨주셨다.’
싸우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영혼들을 숨 막히게 하는 의심을 이길 것입니다. 여러분이 듣게 될 말들을 거슬러 싸우시오. 예언자들과 내 행적들을 기억하시오. 그리고 적대적인 말들에는 예언자들과 내가 행하는 것을 여러분이 본 기적들로 대답하시오.
두려워하지 마시오. 공포로 인하여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행한 기적에 대하여 침묵함으로써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지 마시오. 박해들에 맞서 싸우시오. 그러나 여러분의 박해자들을 박해함으로써 싸우지 말고, 죽음의 위협으로 여러분으로 하여금 나를 부인하게 하려는 사람들에게 영웅적인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싸우시오.
항상 여러분의 모든 원수들과 맞서 싸우시오. 여러분의 인간성, 여러분의 두려움, 부적절한 타협, 실리적인 동맹들, 압력, 위협들, 고문, 죽음에 대항하여 싸우시오.
죽음! 나는 자기의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는 지도자가 아닙니다. ‘내가 즐기는 동안에 너희는 나를 위하여 고통당해라.’ 아닙니다. 나는 맨 먼저 싸우는 사람입니다. 나는 자기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군대의 사령관이 아닙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하여 싸워라. 내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죽어라.’ 나는 가장 먼저 싸우는 사람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죽는 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내가 가장 먼저 죽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나는 내가 사람들에게 하라고 말한 것을 항상 행하여 왔고, 가난, 금욕, 절제, 정의, 용서를 가르치면서 가난하고, 순결하고, 절제하고, 의로운 채로 있었고, 용서했으며, 앞으로도 용서할 것입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해왔던 것처럼 나는 마지막 일도 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구속하는 방법을 가르치겠습니다. 나는 말로만이 아니라 행위들로 가르치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가장 힘든 순종, 내가 죽는 순종을 함으로써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겠습니다.
나는 나를 하늘에서 떼어낸 인류를 내 요람의 짚 위에서 내가 용서했듯이 내 최후의 고통 중에서 용서함으로써 여러분에게 용서하는 법을 가르치겠습니다. 나는 내가 항상 용서해왔듯이 미래에도 용서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을, 나에 관한 한 모든 사람을. 나는 내 작은 원수들 즉 무기력하고, 무관심하고, 변덕스러운 사람들을, 그리고 내 능력과 그들을 구원하려는 내 갈망에 대하여 무관심함으로써 나를 고통스럽게 할 뿐 아니라, 하느님을 죽이는 자들이 됨으로써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앞으로도 고통스럽게 할 큰 원수들도 용서하겠습니다.
나는 용서하겠습니다. 하느님을 죽이고, 뉘우치지 않는 사람들을 내가 용서해줄 수는 없을 것이므로, 나는 내 마지막 고통 가운데서 그들을 위하여 아버지께…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청하겠습니다. 그들은 사탄의 술로 취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용서하겠습니다… 나는 여러분도 내 이름으로 용서해주기를 여러분에게 청합니다. 그리고 사랑하시오. 내가 사랑하듯이,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고 영원히 사랑할 것처럼 사랑하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날이 저물어갑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여러분 모두는 마음속에 주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집으로 돌아가시오. 그 말씀이 여러분의 미래의 굶주림을 달래는 여문 이삭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친구이고 선생인 구세주의 말을 더 듣기를 갈망할 때 오로지 여러분의 영혼을 하늘로 들어 올림으로써만 여러분을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한 그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
예수께서는 북향한 면의 칙칙한 벽에 기대어 세워진 높고 흰 십자가와 같은 모양으로 두 팔을 벌리시고 주의 기도를 천천히 외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모세의 축복으로 강복하시고, 어린이들에게 입 맞추시고 다시 한 번 강복하신다. 그분께서는 작별인사를 하신 다음에 엠마오 읍내로 들어가시지 않고, 엠마오의 성벽을 돌아 북쪽으로 가신다. 황혼의 보랏빛이 그분의 운명을 향하여 점점 더 나아가시는 그분의 온유한 모습을 천천히 흡수한다.
어둑어둑한 마당에는 고통스러운 평화의 침묵이 흐른다… 이것은 거의 기다림의 침묵이다. 그러다가 혼자 있게 된 어린양의 애처로운 울음처럼 어린 미카엘의 울음이 주문에 걸린 듯한 분위기를 깨뜨리자 많은 눈들에서 눈물이 솟아나오고, 많은 입술들이 어린이의 무죄한 말을 되풀이한다.
“오! 그분은 왜 가셨어요? 돌아와요, 돌아와!… 주님! 그분을 돌아오게 해주세요.”
아이는 예수께서 완전히 사라지셨을 때 그분께서는 더 이상 여기 계시지 않는다는 현실을 슬프게 확인한다.
미카엘의 어머니가 그를 위로하려고 애쓰지만, 소용없다. 그는 엄마보다 더한 것을 잃은 것처럼 울고, 엄마 품에서도 예수께서 사라지신 지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두 팔을 내밀면서 부른다.
“예수! 예수!”
예수께서는 좀 더 멀리 가신 다음에 말씀하신다.
“우리는 야포로 갈 것이다. 제자들이 그곳에서 일을 많이 했고, 그곳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다.”
길을 더 많이 걷는다는 계획은 열광적인 호응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열성당원 시몬은 야포에서 니코데모와 요셉의 소유지까지는 길이 좋아 빨리 갈 수 있다고 콕 집어 말한다. 요한은 바다로 가게 되어 기뻐한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그 생각에 설득되어 더 기꺼운 마음으로 바다를 향하는 길을 따라간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너는 여기에 1944. 9. 20.에 본 환상 ‘해안도시에서의 예수와 이방인들’을 삽입해라. 너는 그 환상을 ‘예수께서 야포에서 가리옷의 유다와 몇 명의 이방인들에게 말씀하시다’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일화는 기적들과 가르침이 있었던 날 다음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다른번역) > 6권 공생활 셋째 해(2)'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사시6권 [404. 예수께서 야포에서 가리옷의 유다와 몇 명의 이방인들에게 말씀하시다] (0) | 2025.11.04 |
|---|---|
| 하사시6권 [403. 어린 미카엘. 평야의 엠마오 근처에서의 설교(2)] (0) | 2025.11.01 |
| 하사시6권 [399. 베텔에서 베드로와 바르톨로메오와 함께(2) 400. 베텔에 대한 작별인사 401. 요나의 시몬의 갈등과 영적 승리] (1) | 2025.10.30 |
| 하사시6권 [398. 베텔에서. 399. 베텔에서 베드로와 바르톨로메오와 함께(1)] (0) | 2025.10.29 |
| 하사시6권 [396. 헤브론에 대한 작별인사 397. 벳 추르에 대한 작별인사] (0) | 2025.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