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인들/103위 순교성인 -30일묵상

[4일] 성 남이관 세바스티아노/ 성 정화경 안드레아/ 성 박종원 아우구스티노 (회장)

Skyblue fiat 2025. 9. 4. 00:59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 4일 ]

 

헌신하는 삶 (회장)

성 남이관 세바스티아노/ 성 정화경 안드레아/성 박종원 아우구스티노

 

 

성 남이관(南履灌) 세바스티아노(1780~1839년, 60세)

회장. 9월 26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 남이관 세바스티아노는 조증이 성녀의 남편으로 서울의 양반 교우 집안에서 태어났다. 열여덟 살 때 교우 처녀 조증이와 결혼했고, 1801년 신유박해로 아버지 남필용이 체포되자 처가로 피신했다. 그러나 자신도 곧 체포되어 아버지는 전라도 강진으로, 자신은 경상도 단성으로 각각 유배되었고, 아버지는 유배지에서 사망했다.

유배 생활 30년이 지난 1832년 대사령(大赦令)으로 유배지에서 풀려난 남이관은 처가인 경기도 이천에서 잠시 살다가 상경하여, 처가와 외척이 되는 정하상을 도와 성직자 영입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833년에는 의주 변문에서 중국인 유방제(劉方濟) 신부를 맞아들여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은 후 회장 직무를 맡아 열심히 교회 일을 도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이천으로 피신했으나 9월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고, 포청에서 간단한 신문을 받고 형조를 거쳐 의금부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 정하상·유진길 등과 함께 국문을 받은 후 다시 형조로 이송되어 사형선고를 받아, 9월 26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천국의 문을 열고 영원한 기쁨을 얻었다.

성 남이관 세바스티아노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남이관 세바스티아노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 교회 모든 회장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정화경(鄭化慶) 안드레아(1807~1840년, 34세)

회장. 1월 23일 포청 옥에서 교수

성 정화경 안드레아는 충청도 정산의 부유한 교우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계명을 지켰으며 성장해서는 신앙생활을 위해 고향을 떠나 수원 근처로 이사해 회장 일을 맡아보며 공소를 세우는가 하면, 서울을 왕래하며 교회 일을 힘껏 도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순교를 예비시키는 한편, 앵베르 주교를 맞아 은신처를 마련했다. 그러나 밀고자에게 속아 주교의 은신처를 알려주었고, 또다시 신부들을 잡으려고 밀고자 일당이 계교를 꾸미자 이를 눈치채고 피신한 후, 신부를 찾아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고해성사를 보았다.

9월에 체포되어 포청에서 주리를 틀리고 대꼬챙이로 찔리는 형벌을 받았으며, 백 대의 치도곤과 매질 등 형벌을 용감히 참아 받았다. 다섯 달 동안 옥고의 고통을 겪었지만 조금도 마음을 굽히지 않고 신앙을 증거하다가, 마침내 1840년 1월 23일 포청 옥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여 끝없이 그리던 구세주의 품에 안겼다.


성 정화경 안드레아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정화경 안드레아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 교회 모든 공소 회장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박종원(朴宗源) 아우구스티노(1792~1840년, 49세)

회장. 1월 31일 당고개에서 참수

성 박종원 아우구스티노(일명 이선)는 고순이 성녀의 남편으로, 서울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매우 가난하게 살았으나 어머니와 함께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으며, 성장해서 교우 고순이와 결혼하여 삼 남매를 둔 모범 가정을 이루었다.

교리를 많이 알고 있어서 선교에 힘을 쏟으면서 죽음을 앞둔 사람한테는 잊지 않고 대세를 주었고, 성품이 온화하여 성을 내는 일이 없었다. 그의 덕과 재능이 앵베르 주교에게 알려져 회장에 임명되었으며, 회장 직무를 더욱 성실하게 수행하여 교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체포될 위험을 무릅쓰고 옥에 갇힌 교우들과 연락하는 한편, 뿔뿔이 흩어진 교우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다가 10월 26일 체포되었다. 그 이튿날 체포된 부인과 함께 포청에서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기꺼이 이겨내고, 고순이가 순교한 지 한 달 되던 1840년 1월 31일 당고개(堂峴)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부부가 함께 영원한 천국의 복된 가정으로 들어갔다.

성 박종원 아우구스티노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박종원 아우구스티노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 본당 모든 교우가 선교 열의를 지니도록 빌어주소서.



 헌신하는 삶

평신도의 노력으로 시작된 이 땅의 복음화는 신자들의 헌신적 봉사로 확장되어 갔으며, 그들을 지도하며 희생한 분들이 박해 때의 회장들이다. 회장 직분은 여러 가지로 고달프고 힘든 일이었다. 순교 성인 가운데 회장 직분에 있던 분들은 특히 순교 정신의 모범이며 신자들의 훌륭한 지도자였다.

현재 교회 안에서 회장직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직무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과연 올바르고 겸손하게 이행하고 있는지, 신자들은 회장이 하는 일을 기꺼이 도와주는지 돌아보아야겠다.

특히 도시에 있는 신자들은 공소 회장들을 위해 얼마나 기도했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겠다. 그리고 회장이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일에 비방은 하지 않았는지, 또한 좋지 못한 감정으로 비협조적이거나 반대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아야겠다. 아울러 회장에게 못마땅한 일이 있을 경우 건의하거나 충고해 교회 발전에 동참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겠다.

교회 내 임무를 맡은 회장들의 성화를 위해 세 분 성인에게 열심히 기도하고, 순교 정신을 본받게 해달라고 도움을 청하자. 

 

 

-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박도식 엮음 / 바오로딸

  (그림자료: 의정부교구 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