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 3일 ]
가족 순교자
성녀 이 바르바라/ 성녀 이영희 막달레나/ 성녀 이정희 바르바라/ 성녀 허계임 막달레나/ 성녀 이매임 데레사
성녀 이(李) 바르바라(1825-1839년 15세)
소녀 동정녀. 5월 27일 포청에서 옥사
성녀 이 바르바라는 이정희·이영희 성녀의 조카로 독실한 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 청파동에서 자랐다. 어려서 부모를 여읜 후로는 이모 이정희·이영희에게 의지해 살았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열다섯 어린 나이로 이모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온갖 고문에도 굴하지 않자 형조로 옮겨졌고, 형조판서는 배교시키기 위해 때로는 무서운 말로 때로는 부드럽게 달래기도 했지만 하느님을 향한 일편단심을 굽히지 않았다.
형조판서는 열다섯 살 소녀를 형조에서 처단하는 것이 무리임을 알고 포도청으로 되돌려 보냈다. 포청에서 심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지만 꿋꿋이 참아냈으며, 함께 옥에 갇힌 어린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던 중 5월 27일 기갈과 염병, 고문의 여독으로 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마침내 천상의 영원한 보금자리에 들어 하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품에 안겼다. 어린 나이에 순교한 것은 가슴 아프지만, 신앙적으로 볼 때 참으로 아름답고 눈물겨운 정경이 아닐 수 없다.
동정녀 이 바르바라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동정녀 이 바르바라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우리나라 모든 어린이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이영희(李英喜) 막달레나(1809-1839년 31세)
동정녀. 7월 20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녀 이영희 막달레나는 허계임 성녀의 딸이며 이정희 성녀의 동생으로 경기도 봉천(奉天: 지금의 관악구 봉천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어머니와 언니와 함께 입교했지만 완고한 아버지가 천주교를 반대해 몰래 신앙생활을 했다.
성장하면서 수정(守貞: 정결을 지키는 일)을 결심했고 집에서 혼인시키려는 것을 알고 호랑이에게 물려간 것처럼 꾸며 집을 떠나 고모 이매임의 집으로 가서 함께 동정을 지키며 살았다. 이미 순교한 교우들이 위대한 신앙정신으로 어떤 고통도 이겨냈다는 말을 듣고 순교의 열의가 가득하던 중, 고모와 언니 등 다른 교우들과 함께 1839년 4월 포졸들에게 가서 자수했다.
포청과 형조에서 모두 일곱 번의 신문과 형문을 당했으나 한결같은 신앙으로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 7월 20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받고 동정의 몸으로 순교하여, 예수님의 영원하신 사랑 안으로 뛰어들었다.
성녀 이영희 막달레나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이영희 막달레나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 가정의 성화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이정희(李貞喜) 바르바라(1799-1839년 41세)
과부. 9월 3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녀 이정희 바르바라는 허계임 성녀의 딸이며 이영희 성녀의 언니로, 경기도 봉천의 비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과부가 되어 집에 돌아온 고모 이매임의 가르침과 권면으로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입교했다.
믿지 않는 아버지가 비신자와 결혼시키려 하자 그의 양심이 허락지 않아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3년 동안 앉은뱅이 노릇을 했다. 결국 신자 청년과 결혼하지만 결혼 2년 만에 남편을 여의고 잠시 친정에 있다가 상경하여 고모와 동생과 함께 살면서 열심히 계명을 지키며 신앙생활을 했다.
기해박해가 일어난 1839년 4월 초 남명혁과 이광헌의 어린 자녀들이 흑형과 고문을 이겨내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여 순교할 것을 결심했다. 당시 한집에 살고 있던 이매임·이영희·김성임·김 루시아, 그리고 성사를 보러 상경한 어머니와 함께 4월 11일 남명혁의 집을 지키던 포졸들에게 자수했다. 그 후 포청과 형조에서 고문과 혹형을 받았으나 끝까지 이겨내고 9월 3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영원한 천국의 문으로 들어섰다.
성녀 이정희 바르바라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이정희 바르바라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 집안이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도록 빌어주소서.

성녀 허계임(許季任) 막달레나(1773-1839년 67세)
주부. 9월 26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녀 허계임 막달레나는 이정희·이영희 성녀 자매의 어머니로, 경기도 용인 지방의 비신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남편 이씨는 완고한 성격으로 천주교를 몹시 싫어하여 남편 몰래 시누이 이매임의 가르침과 권면으로 두 딸과 함께 입교했다.
1839년 3월 성사를 받으러 서울로 가서 시누이와 두 딸이 사는 집에 머무르던 중, 남명혁과 이광헌의 어린 자녀들이 흑형과 고문을 이겨내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시누이와 두 딸, 김성임과 김 루시아 등과 함께 순교를 결심했다.
4월 11일 그들과 함께 남명혁의 집을 지키던 포졸들에게 묵주를 내보이며 자수했다. 포청과 형조에서 배교를 강요하는 흑형과 고문을 받았으나 기꺼이 이겨내고 9월 26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교우 8명과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여 하늘나라로 날아들었다.
성녀 허계임 막달레나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허계임 막달레나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세상의 모든 부모와 친지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이매임(李梅任) 데레사(1788-1839년 52세)
과부, 7월 20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녀 이매임 데레사는 허계임 성녀의 시누이며, 이정희·이영희 성녀의 고모다. 비신자 집안에서 태어나 결혼했으나 스무 살에 과부가 되자, 친정인 봉천동으로 돌아와 살던 중에 같은 동네 여교우의 전도로 천주교를 알고 입교했다.
입교한 다음 친정 식구들을 가르치고 권면하여 신앙의 길로 인도했다. 조카 이영희가 혼기에 이르러 동정 생활을 결심하고 혼담을 피해 상경하자, 함께 따라가 살면서 더욱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다.
1839년 4월, 함께 살던 이정희·이영희·김 루시아·김성임과 성사를 보기 위해 상경한 허계임 등과 순교를 결심하고, 남명혁 집을 지키던 포졸들에게 함께 자수했다. 포청과 형조에서 매우 심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켰으며,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7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구세주 그리스도의 손에 이끌려 영원한 행복의 나라로 올라갔다.
성녀 이매임 데레사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이매임 데레사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 가족과 친척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가족 순교자
우리의 순교성인 가운데는 가족 순교자가 많다. 부부는 물론 한집안에서 3명 또는 4명이 순교하여 성인품에 오른 분들이 많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성인 가족은 허계임 성녀와 두 딸과 시누이와 외손녀 다섯 분이다. 우리는 다섯 성녀의 신앙을 보며 우리 가정의 믿음을 생각해 보아야겠다.
가정 성화는 하느님이 가장 바라시는 것이며,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매우 중요한 기초다. 가족이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 하느님의 은총을 끌어당기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인 가족을 생각하면서 가정 안에서 신앙생활을 되새기며 지금의 우리 가정을 반성하고, 성인 가족들에게 기도를 요청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또한 우리 가족에게 순교정신이 깊이 스며들도록 기도해야겠다. 특히 외짝 교우들은 오늘 만난 다섯 분 성녀에게 간절히 기도하여, 아직 믿음을 갖지 못한 가족이 하루빨리 복음에서 샘솟는 기쁨을 누리도록 이끌어야겠다.
-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박도식 엮음 / 바오로딸
(그림자료: 의정부교구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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