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시

I. 복음 준비 13. 성전에 바쳐진 마리아

Skyblue fiat 2015. 12. 7. 23:46

I.복음 준비

 

13. 성전에 바쳐진 마리아

 


나는 마리아가 아버지 어머니 가운데에서 예루살렘의 거리를 걸어가는 것을 본다.
   행인들은 눈같이 흰 옷을 입고 매우 가벼운 감으로 된 베일을 쓴 아름다운 어린 계집아이를 보려고 걸음을 멈춘다. 가벼운 옷감으로 된 베일 바탕에 더 진한 나뭇잎들과 꽃무늬를 보니 안나가 취결례날 입었던 것과 같은 베일인 것 같다. 다만 안나에게는 그것이 허리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었는데 마리아에게는 거의 땅에까지 내려오고 드물게 보는 매력이 있는 가볍고 빛나는 흰 베일로 그를 감싼다.
   어깨 위에, 또 그 보다도 낮게 가냘픈 목덜미에 흐트러져 있는 머리의 황금색이 베일의 능직무늬가 없고 매우 얇은 바탕만 있는 곳에서는 비쳐보인다. 베일이 이마에는 아주 엷은 하늘빛 리본으로 고정되어 있는데, 리본에는 틀림없이 어머니가 놓았겠지만 작은 백합꽃들을 은실로 수놓았다.
   벌써 말한 것과 같이 대단히 흰 옷이 땅에까지 내려와서 고작 마리아가 걸을 때에나 하얀 작은 샌들을 신은 그의 작을 발이 보일 정도이다. 작은 두 손은 긴 소매에서 나오는 두 개의 목련꽃잎 같다. 리본의 하늘빛 테를 빼고는 다른 빛깔은 없다. 모두가 하얗다. 마리아는 눈으로 지은 옷을 입은 것 같다.


   요아킴과 안나의 옷을 말하자면, 요아킴은 취결례 때와 같은 옷이고, 안나는 매우 짙은 자주빛 옷이다. 머리를 가린 겉옷가지도 짙은 자주색이다. 안나는 겉옷을 눈에까지 매우 낮게 내렸다. 너무 울어서 새빨개진 엄마의 가엾은 두 눈, 울지 않으려고 하지만 겉옷으로 가린 채 울지 않을 수가 없는 엄마의 가엾은 두 눈. 겉옷을 낮게 내려 쓴 조심성은 행인들과 요아킴에게까지도 먹혀들어간다. 하기는 평소에는 맑은 요아킴의 눈이 오늘은 이미 흘렸거나 아직도 흐르고 있는 눈물로 젖어 있고 흐려져 있다. 그는 터반 모양으로 꾸민 베일을 쓰고 몸을 대단히 구부리고 걷는데, 베일의 두 날개가 얼굴 양쪽으로 늘어져 있다. 요아킴은 지금 대단히 늙어 보인다. 그를 보면 그가 손을 잡고 가는 아주 어린 여자 아이의 할아버지나 증조부로까지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딸을 잃는 슬픔으로 가엾은 아버지는 발을 질질 끌다시피 걷게 되고 태도 전체가 힘이 없어져서 20년이나 더 늙어 보인다. 그의 얼굴은 늙어 보일 뿐 아니라, 병자의 얼굴 같다. 그만큼 낙심하고 침울한 얼굴이다. 입은 특별히 오늘 코 양쪽에 매우 뚜렷해진 두 개의 주름 사이에서 가볍게 떨리고 있다.


   두 사람은 그들의 눈물을 감추려고 애쓴다. 그러나 많은 사람에 대하여는 그렇게 하는데 성공하지만 마리아에 대하여는 할 수 없다. 키가 작기 때문에 마리아는 아래서 위로 쳐다보는데, 그 눈길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로 번갈아 간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딸이 미소하면서 쳐다볼 때마다 떨리는 입으로 미소를 지으려고 애쓰며, 마리아의 작은 손을 꼭 쥐고 있는 손에 힘을 더 준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자, 저 미소를 보는 것이 또 한번 줄었구나” 하고.


   그들은 천천히 조용히 걷는다. 할 수 있는대로 길을 늘이려는 것 같다. 무엇이든지 멈추어 서는 핑계가 된다... 그러나 가는 길은 결국 끝나기 마련이다! 행정(行程)이 이제 끝날 참이다. 저기 마지막 올라가는 비탈길 한 토막과 성전을 둘러싼 성벽이 나타난다. 안나는 신음 소리를 내고 마리아의 손을 더 힘추어 꼭 쥔다.


   “사랑하는 안나 언니, 제가 언니와 같이 있어요!” 하고 어떤 십자로에 있는 낮은 회랑 그늘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말한다. 그러면서 분명히 안나를 기다리고 있던 엘리사벳이 안나에게로 와서 가슴에 껴안고, 안나가 울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오세요, 이 친구의 집에 좀 오세요. 그랬다가 우리 같이 가십시다. 즈가리야도 여기 있어요.”
  모두 불이 활활 타고 있는 낮고 어두침침한 방으로 들어간다. 분명히 엘리사벳의 친구이겠지만 안나가 알지 못하는 주인여자는 이 작은 일행을 마음 편하게 남겨두려고 예의를 차려 물러간다.


   “내가 후회를 한다거나 내 보배를 주님께 마지 못해 드린다고 생각하지는 말아” 하고 안나가 눈물을 흘리며 설명한다... “그렇지만 마음이다... 아아!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움을 느끼는지, 아이 없는 어머니의 고독으로 돌아갈 내 마음에 얼마나 괴로움을 느끼는지 ... 너는 느끼지 못할거다....”
  “안나 언니, 나도 그걸 이해해요...그렇지만 언니는 착하니까 고독한 가운데 하느님께서 위로해 주실거예요. 마리아가 어머니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하느님께 기도하지 않겠어요?”
  마리아는 어머니의 손을 쓰다듬고 입 맞추고 자기 얼굴로 가져다가 쓰다듬어 주게 하고, 안나는 두 손으로 그 작은 얼굴을 꼭 싸잡고 입을 맞추고 또 맞춘다. 아직도 넉넉히 입맞추어 주지 못하였다.
   즈가리야가 들어오면서 인사한다. “의인들에게 주의 평화가 있기를.”


  “그렇데” 하고 요아킴이 말한다. “이 아이를 바치는 것 때문에 가슴이 떨리니 우리를 위해 평화를 빌어 주게. 이것은 아브라함이 제물을 바치려고 산을 올라가던 것과 같네, 그런데 우리는 이 아이를 도로 찾기 위한 다른 제물을 발견하지 못할 것일세. 우리는 하느님께 충실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것을 원치 않네. 하지만 즈가리야, 우리는 괴롭네, 하느님의 사제, 우리를 이해하고 얼굴을 찡그리지 말게.”


  “그럴 리가 있습니까? 오히려 허락된 한계를 넘지 않을 줄 알고 형님을 불충한 길로 이끌어가지 않을 줄을 아는 형님의 고통은 지극히 높으신 분을 사랑하도록 제게 가르쳐 줍니다. 하지만 안심하세요. 여예언자 안나가 다윗과 아아론의 꽃을 정성껏 돌볼 것입니다. 지금은 이 꽃이 다윗이 성전에서 가지고 있는 거룩한 후손의 유일한 백합꽃입니다. 이 백합을 왕의 진주를 보살피듯이 보살필 것입니다. 비록 기한이 다 찼고 다윗의 가문의 동정녀에게서 메시아가 나올 것이므로 다윗의 후손의 어머니들이 딸들을 바치는데 마음을 써야 할 터인데, 믿음이 줄었기 때문에 동정녀들을 위해 따로 남겨놓은 자리들이 비어 있습니다. 성전에 동정녀가 아주 적고, 왕족으로는 3년 전에 엘리세오의 사라가 나가서 결혼한 뒤로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기는 그 시기까지는 아직 5년씩 여섯 번이 모자랍니다마는... 자, 마리아가 다윗 가문의 여러 동정녀들 중에서 거룩한 장탁 앞에 서는 첫째 동정녀가 되기를 바랍시다. 그리고 또... 누가 압니까?...” 즈가리야는 다른 말은 아무말도 덧붙이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에 잠긴 채 마리아를 내려다본다. 그러다가 다시 말을 잇는다. “저도 마리아를 돌보겠습니다. 저는 사제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출입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이용해서 이 천사를 보살피겠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벳도 자주 마리아를 보러 올 것입니다‥‥”


  “오고 말고요 ! 저는 하느님이 대단히 필요합니다. 그 말을 이 아이에게 와서 하면서 영원하신 분께 그 말씀을 드려 달라고 하겠어요.”
  안나는 다시 용기를 낸다. 엘리사벳은 용기를 한층 더 북돋아 주기 위하여 안나에게 묻는다.

“이건 언니의 신부 면사포 아니예요? 그렇지 않으면 새 아마포를 짠거예요?”


  “내 면사포다. 나는 이것을 마리아와 함께 주님께 바친다. 이제는 내가 눈이 잘 보이지 않고... 또 세금과 실패 때문에 재원이 많이 줄었다... 많은 비용을 지출할 수는 없게 되었다. 다만 이 애가 하느님의 집에 있는 동안과 또 그 후를 위해서 옷가지는 많이 준비했다... 그것은 이 애의 결혼식 때에는 내가 옷을 입히지 못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애의 결혼을 위해 치장을 해 주고 신부의 속옷과 겉옷을 길쌈하는 것이 차고 생기 없는 손일지라도 여전히 엄마의 손이기를 나는 원하기 때문이다.”


  “아이고! 왜 그런 침울한 생각을 하세요?!”
  “동생, 나는 늙었어. 이 고통의 무게에 눌리면서처럼 고통을 느낀 적은 일찌기 없었다. 내 생애의 마지막 힘을 이 꽃을 배고 기르느라고 이 꽃에 바쳤다. 그리고 지금은... 지금은... 이 애를 잃는 고통이 이 마지막 힘 위로 불어서 그것을 없애 버린다.”
  “요아킴 옆에서 그런 말을 하면 안돼요.”
  “네 말이 옳다. 나는 내 남편을 위해서 살 생각을 하겠다.”
  요아킴은 즈가리야 쪽으로 주의를 기울이며 아무 말도 듣지 못한 체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었다. 그리고 눈에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한숨을 쉰다.


   “지금은 정확히 제 3시와 제 6시 중간입니다. 이제 갈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즈가리야가 말한다.
   그들은 겉옷을 다시 입고 떠나려고 일어난다. 그러나 나가기 전에 마리아가 팔을 벌리고 문지방에 무릎을 꿇는다.

간청을 하는 작은 케루빔 천사같다. “아버지! 어머니! 축복해 주셔요!”
  용맹한 어린 것이 울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작은 입술이 떨리고 흐느낌을 참느라고 약해진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멧비둘기의 떨리는 울음소리 같다. 얼굴은 더 창백하고 눈은 고통을 참는 고민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것으로 인하여 깊은 고통을 겪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기까지 더 강한 시선을 나는 골고타와 예수의 무덤에서 볼 것이다.


   부모는 마리아에게 축복을 하고 한 번, 두 번, 열 번 입을 맞춘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싫증날 수가 없다... 엘리사벳은 말없이 울고 즈가리야는 그것을 나타내고 싶지는 않지만 깊이 감동하였다.
   그들은 나간다. 아까처럼 마리아가 아버지, 어머니 사이에 있다. 앞에는 즈가리야와 그의 아내가 간다. 이제 그들은 성전 담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대사제에게 갑니다. 형님네들은 큰 정원까지 올라가세요.”


  그들은 마당 셋과 포개진 현관 셋을 지나간다. 그리고 이제는 꼭대기를 금으로 덮은 매우 큰 입방체 밑에 와 있다. 어마어마하게 큰 오렌지 반쪽 비슷한 볼록한 원천장 하나하나가 지금은 오정 때가 되어서, 장엄한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넓은 마당에 수직으로 내리쪼이고 성전으로 가는 넓은 층과 엄청나게 큰 계단을 꽉 채우고 있는 태양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다만 정면에 대서 쌓은 층계를 마주보고 있는 대문간만이 그늘져 있고, 청동과 금으로 된 거대한 문은 한층 어둡고 그렇게도 환한 빛과 대조가 되어 장엄하다.


   이렇게 햇빛을 쨍쨍하게 받으니 마리아는 한결 더 눈같이 희다. 마리아가 계단 밑에 가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이 세 사람의 가슴이 얼마나 뛸 것인가! 엘리사벳은 안나 곁에 있다. 그러나 반 걸음쯤 뒤에 있다.
   은나팔 소리가 울리고 문의 돌쩌귀가 돌아간다. 문이 청동 원 위에서 돌고 있는 동안 거문고로 알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저 안쪽에 등불들이 켜진 성전 내부가 나타나고 안쪽에서 오는 행렬이 문을 향하여 나아온다. 은나팔 소리와 구름처럼 피어 오르는 향과 불빛을 곁들인 장엄한 행렬이다.
   이제 행렬이 문지방에 와 있다. 맨 앞에는 대사제일 것이 분명한 사람이 있다. 아주 고운 아마포로 만든 옷을 입고, 그 첫 번 옷 위에 역시 아마포로 만든 더 짧은 웃옷을 입고, 또 그 위에 제의와 부제복 중간치 같은 일종의 제의를 입은 엄숙한 노인이다. 그 제의 같은 옷은 여러 가지 빛깔로 되어 있어, 주홍과 금빛, 자주와 흰빛이 갈아들고 햇빛에 보석들처럼 반짝인다. 그리고 진짜 보석 두 개가 이 모든 것 위에 어깨 높이쯤에서 한층 더 세게 반짝인다. 그것들은 아마 귀금속을 물린 고리들인 것 같다. 가슴에는 금사슬로 지탱되는 보석이 번쩍거리는 넓은 판대기가 달려 있다. 늘어뜨린 보석 장신구와 다른 장식들이 짧은 웃옷 아래쪽에서 빛나고, 이마에서는 관 욋쪽에서 금이 빛나고 있는데 가톨릭의 주교관처럼 위가 뾰족하지 않고 둥근 관은 정교 신부들의 관을 생각나게 한다.


   장엄한 인물이 혼자서 현관 앞 계단이 시작되는 데까지 앞으로 나아와 황금 햇빛을 받으니 한층 더 찬란해 보인다. 다른 사람들은 문밖의 그늘진 현관에 둥그렇게 늘어서서 기다린다. 왼편에는 흰옷을 입은 처녀 한 떼가 여예언자 안나와 다른 나이 든 여자들과 같이 있는데, 그 여자들은 아마 선생들인 모양이다.


   대사제는 어린 소녀를 내려다보고 미소짓는다. 에집트의 신전에도 어울릴 만한 현관 앞 계단 밑에 있는 이 소녀는 그에게 몹시도 작게 보일 것이다! 그는 기도하며 팔을 하늘로 쳐든다. 모든 사람이 영원히 위엄하신 분과 같이하는 사제의 위엄 앞에서 어리둥절해진 듯이 머리를 숙인다. 그런 다음 이제는 마리아에게 어떤 신호를 한다.


   그러자 마리아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홀린 듯이 계단을 올라간다. 마리아는 웃는다. 마리아는 성전의 그늘진 곳, 귀중한 휘장이 내려오는 곳에서 웃는다... 마리아가 현관앞 계단 위에 올라가서 대사제의 발 앞에 가니 대사제는 그의 머리에 두 손을 얹는다. 희생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성전은 이보다 더 깨끗한 어떤 제물을 일찍이 본 일이 있는가?
   그런 다음 대사제는 몸을 돌이켜 티 없는 어린 양인 마리아를 제단으로 데려가려는 듯이 한 손을 어깨에 얹고 성전 문을 향하여 데려간다. 마리아를 성전에 들여보내기 전에 대사제는 이렇게 묻는다.

 “다윗의 후손 마리아야, 이것이 네 서원이냐?”
  “예” 하고 은처럼 울리는 대답이 나오자 대사제는 외친다.

 “그러면 들어와서 내가 있는 앞에서 걷고 완전한 여자가 되어라.”


  그러니까 마리아가 들어가고, 어둠이 그를 집어삼키며, 그 다음에는 동정녀와 선생들의 떼와 그 뒤에 따라가는 레위파 신관들이 마리아를 점점 더 가리고 떼어놓는다...


  마리아는 이제 거기 없다... 이제는 문의 돌쩌귀가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점점 더 좁아져가는 열린 틈으로 지성소를 향하여 걸어가는 행렬을 볼 수가 있다. 이제는 조그만 틈에 지나지 않다가 이제는 아무것도 없다. 문이 닫힌 것이다.


   문의 돌쩌귀가 마지막 돌아가는 소리에 두 노인의 흐느낌과 오직 한마디로 된 “마리아야! 내 딸아!” 하는 부르짖음이 들리고, 그 다음에는 “언니!”, “형님!” 하고 엇갈리는 두 탄식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들은 계속한다.

 

“마리아를 당신 집에 받아 당신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미합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이렇게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