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8권 수난 준비 p218~p227

562. 야브느엘 사람
1947. 2. 7.
(앞부분)
며칠이 지났음이 틀림없다. 지난 몇 번의 환시에서는 한 뼘이 될까 말까하던 밀포기가 지난번의 폭우와 그 후에 계속된 좋은 날씨 이후에는 벌써 키가 많이 자라 이삭이 생기려고 하는 것을 보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직 여린 밀포기의 줄기가 미풍에 물결친다. 미풍은 이른 유실수들의 새로 난 잎들을 살랑거리게 하는데, 그 나무들은 꽃이 막 떨어졌거나 꽃잎들이 아직 휘날리며 떨어지는 가운데, 깨끗하고 새로운 모든 것이 아름답듯이 연하고 반짝이는 작은 연초록색 잎들을 이미 돋아나게 하고 있다.
아직 헐벗고 마디들이 드러난 채로 있는 포도나무들은 더 늦게 꽃 피우겠지만, 이 줄기와 저 줄기가 서로 얽혀 있는 꼬인 포도순들 위에서 봉오리들은 그것들을 품고 있는 칙칙한 껍질을 부수었고, 비록 여전히 껍질 속에 갇혀 있지만 미래의 새 포도 잎들과 새 덩굴손의 둥지인 은회색의 솜털을 드러내고 있고, 우거진 뒤틀린 꽃 줄과 같은 가지들은 신선한 우아함으로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이미 따사로운 햇볕은 모든 것에 색조를 입히고, 야채의 정수들을 증류함으로써 그 활동을 시작했고, 며칠 전만 해도 더 창백해 보였던 것을 더 밝은 색으로 물들이는 동안에 따뜻하게 하여, 흙덩이들로부터, 꽃이 핀 풀밭들로부터, 곡식이 자라는 밭들로부터, 채소밭들과 과수원들로부터, 작은 숲들로부터, 벽들로부터, 말리려고 널어놓은 빨래들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향기들을 풍겨 그것들을 조화롭게 섞어 여름 내내 지속될 냄새를 만든 다음에 그 냄새는 포도송이가 으깨져 포도주로 변하는 양조 통들 안에서 곰팡이의 지독한 악취로 바뀔 것이다.
나무들 속에서 노래하는 새들의 합창과 양떼들 속에서 숫양들이 불안하게 우는 소리가 큰 합창을 이룬다. 비탈에는 남자들의 노래와 어린이들의 웃음소리와 여자들의 미소가 있다.
봄이다. 지금은 봄철이다. 자연은 사랑에 빠져 있다. 사람도 머지않아 자기를 더 부유하게 만들어줄 자연의 사랑을 즐기고, 그 자신의 사랑도 즐긴다. 그것은 그러한 고요한 부활 속에서 더 사랑스러워 보이고, 그의 아내는 그에게 더 다정하게 보이고, 그의 아내에게는 자기의 남편이 더 믿음직한 보호자로 보이며, 그들 두 사람에게는 그들의 아이들이 더 소중하게 보인다.
지금은 그들의 미소이고 그들의 보살핌의 대상인 아이들은 미래에 자신들이 늙었을 때는 자신들의 쇠퇴기의 기쁨과 보호가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산의 기복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밭들을 지나가신다. 그분께서는 혼자시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마지막 모직 옷을 사무엘에게 주셨기 때문에 아마포 옷을 입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꽤나 밝은 청색의 겉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신 채 부드럽게 몸에 두르고 계시는데, 그것을 그분의 가슴을 가로질러 한 팔로 들고 계신다. 그분의 팔을 덮고 있는 겉옷자락은 가벼운 미풍에 부드럽게 나부끼고, 머리에 아무것도 쓰고 계시지 않는 그분의 머리카락이 햇빛에 반짝인다.
그분께서는 지나가시며, 어린이들이 있는 곳에서는 허리를 굽혀 그들의 죄 없는 작은 머리들을 쓰다듬어주시고, 그들의 작은 비밀들을 들으시고, 어린이들이 달려와 그것들이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듯이 보여드리는 것들을 보시며 감탄하신다.
너무 작아서 아마 자기의 오빠에게서 물려받았을 너무 긴 치마에 감겨들며 달려올 때는 아직 비틀거리는 소녀가 두 눈을 반짝이게 하고 분홍빛 양 입술 사이로 작은 앞니들을 드러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그분 가까이로 온다. 그녀는 데이지 다발을 들고 있는데, 그것은 그녀의 보드랍고 작은 두 손이 겨우 들 수 있을 만큼 큰 꽃다발이다. 그녀는 그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말한다.
“이것을 받으세요! 이것은 당신 거예요. 엄마에게 줄 것은 나중에 만들 거예요. 여기 뽀뽀해주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예수께서 감탄의 말과 함께 그녀에게 고마워하시며 그 꽃다발을 받으셨기 때문에 지금은 자유로운 작은 두 손으로 자기의 작은 입술을 만진 다음 맨발로 서서 거의 균형을 잃을 정도로 머리를 뒤로 젖히고, 그 작은 몸을 예수의 얼굴에까지 들어 올리려고 애써보지만 소용없다.
그분께서는 웃으시며 소녀를 안으시고, 큰 나무에 깃들인 새처럼 그분의 양어깨에 올려놓으시고, 맑은 개울물에 새 천들을 담그고 있는 한 떼의 여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신다. 나중에 그 천들은 양지바른 곳에 널어서 햇볕에 희어지게 될 것이다.
물 위로 상체를 숙이고 있던 여자들이 일어서서 인사드린다. 그 중 한 여자가 미소 지으며 말한다.
“타마르가 당신을 귀찮게 해드렸군요… 그렇지만 그 애는 당신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겠다는 은밀한 희망을 가지고 새벽부터 여기서 꽃을 따고 있었습니다. 그 애는 그것들을 당신께 먼저 드리려고 했기 때문에 저에게는 한 송이도 주지 않았답니다.”
“이 꽃들은 왕의 보물들보다 나에게 더 소중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어린이들처럼 죄 없고, 꽃처럼 죄 없는 어린 아이가 나에게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어린 소녀에게 입 맞춰주신 다음 그 아이를 땅에 내려놓으시고 인사하시며 말씀하신다.
“주님의 은총이 너에게 오기를.”
그분께서는 여자들에게 인사하시고 계속 길을 가시며 밭들이나 풀밭들에서 손을 흔드는 농부들과 목자들에게 답례하신다.
그분께서는 그 지방의 더 낮은 곳으로, 예리코로 가는 방향으로 가시는 것 같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되돌아와 에프라임 북쪽에 있는 산들을 향하여 다시 올라가는 다른 오솔길로 들어서신다. 이곳의 곡식들이 훨씬 더 아름답다. 땅이 더 유리한 위치에 있고, 북풍에 막혀 있기 때문이다. 오솔길은 양쪽의 밭들 사이로 이어진다. 그중 한쪽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유실수들이 심겨져 있는데, 조생 과일들의 봉오리들이 이미 진주처럼 가지들에 다닥다닥 달려 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오솔길을 가로지른다. 그것들의 교차점에 로마인들이 사용하는 마일 표석들 중 하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것은 꽤나 중요한 도로임이 틀림없다. 표석의 북쪽 면에는 그들 자신들처럼 크고 정교한 글씨로 ‘네아폴리스’라고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는 긁힌 것처럼 훨씬 더 작은 글씨로 ‘스켐’이라고 돌에 새겨져 있다. 서쪽 면에는 ‘실로-예루살렘’이라고 새겨져 있고, 남쪽 면에는 ‘예리코’라고 새겨져 있다. 동쪽 면에는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다.
그러나 거기에는 도시의 이름은 없지만, 인간의 불행의 이름은 있다. 왜냐하면 로마인들이 유지·보수하는 모든 도로와 마찬가지로 비가 올 때 물이 흘러내리도록 파놓은 길옆의 도랑이 있는데 그 도랑과 도로의 표석 사이의 땅바닥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 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마비되어 있고, 넝마들과 뼈들의 뭉치에 불과하고, 아마 죽었는지도 모른다.
예수께서는 봄 소나기로 흐드러지게 우거진 길가의 잡초들 가운데에서 그를 발견하시자, 그에게로 몸을 숙이시고 그를 만지시며 부르신다.
“여보시오, 당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소?”
신음소리가 대답이다. 그러나 넝마 뭉치가 움직이고, 몸을 돌리더니,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고 비쩍 마른 얼굴이 나타난다. 그리고 피로하고 고통스러워하고 활기 없는 두 눈이 자기의 비참한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분을 보고 놀라서 쳐다본다. 그는 바싹 마른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앉으려고 애써보지만, 너무 허약하여 예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일어나 앉을 수 없을 지경이다.
예수께서는 그를 도와 그의 등을 도로의 표석에 기대게 하신 다음 물으신다.
“당신은 왜 이러고 있소? 당신은 병들었소?”
“예.”
매우 약한 “예”이다.
“그런데 왜 이런 상태로 혼자서 길을 떠났소? 당신에게는 가족이 없소?”
그는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그는 너무 허약하여 대답하지 못한다. 예수께서는 주위를 둘러보신다. 밭들에는 사람이 전혀 없다. 이곳은 사람이 전혀 없는 쓸쓸한 곳이다. 북쪽으로는 거의 언덕 꼭대기에 몇 채의 집들이 있고, 서쪽으로는 밭들이 아니라 풀밭들과 작은 숲들이 있는 몇 개의 언덕들과 함께 오르막의 초록 식물들 가운데 이리저리 나대는 염소 떼 가운데 몇 명의 목자들이 있다. 예수께서는 다시 그를 내려다보시며 그에게 물으신다.
“내가 당신을 도와준다면, 당신은 당신이 저 마을까지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오?”
그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두 줄기 눈물이 그의 뺨으로 흘러내린다. 그의 뺨은 나이 많은 사람처럼 주름져 있지만, 검은 수염으로 보아 그가 아직 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안간힘을 쓰며 말한다.
“그들이 저를 내쫓았어요… 나병이 무서워서요… 저는 나병환자가 아닌데요… 그래서 저는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어요…”
그는 기진맥진하여 헐떡거린다. 그는 손가락 하나를 입속으로 집어넣더니 푸르스름한 섬유질을 꺼낸다.
“보세요. 저는 낟알을 씹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풀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난회에 이어서 계속)
“나는 저 목자에게 가서 따뜻한 염소젖을 가져오겠소. 나는 지체하지 않을 거요.”
그분께서는 거의 뛰다시피 하시어 길 위 200미터쯤 되는 염소 떼가 있는 곳으로 가신다.
그분께서는 목자에게로 가셔서 그에게 말씀을 하시며 그 사람이 있는 곳을 가리키신다. 목자는 돌아서서 바라보고, 예수의 청을 들어주어야 할지, 어떨지 결심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그는 결심한다. 그는 모든 목자들처럼 허리에 차고 있는 나무그릇을 떼어내 염소 한 마리의 젖을 짜 그릇에 가득 채워 예수께 드린다. 그분께서는 조심스럽게 비탈을 내려오시는데, 목자와 함께 있던 한 소년이 그분을 뒤따라온다.
예수께서 다시 굶주린 사람 곁에 오셨다. 그분께서는 그 사람 옆에 무릎을 꿇으시고, 그를 받쳐주시려고 한 팔을 그의 등 뒤로 돌리시고, 아직 거품으로 덮여 있는 염소젖이 있는 그릇을 그의 입술에 가져다대신다. 그분께서는 조금씩 몇 모금을 마시게 하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그릇을 땅바닥에 내려놓으시며 말씀하신다.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오. 만일 당신이 이것을 한꺼번에 다 마신다면, 이것은 당신에게 해로울 거요. 내가 당신에게 준 염소젖으로 당신의 위가 기운을 내게 하시오.”
그는 저항하지 않는다. 그는 눈을 감고 입을 다문다. 어린이는 몹시 놀라서 그를 보고 있다.
잠시 후에 예수께서는 다시 그에게 그릇을 가져다대고 더 오랫동안 마시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간격을 점점 더 짧게 하시며 염소젖이 다 없어질 때까지 그렇게 하신다. 예수께서는 빈 그릇을 어린이에게 돌려주시고, 그를 돌려보내신다.
그는 천천히 회복된다. 그는 여전히 떨리는 몸짓으로 다소라도 복장을 단정하게 해보려고 애쓴다. 그는 자기 옆 풀에 앉으신 예수를 쳐다보며 감사의 미소를 짓는다. 그가 사과하며 말한다.
“제가 당신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군요.”
“염려하지 마시오! 형제들을 사랑하는 데 쓰는 시간은 결코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오. 당신이 좀 더 나아지면 이야기 합시다.”
“저는 나아졌습니다. 제 몸은 더워지고 있고, 제 두 눈은… 저는 나는 여기서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가엾은 제 아이들! 저는 모든 희망을 잃었었습니다… 그 순간까지 저는 그렇게도 많이 바랐었는데요!… 만일 당신께서 오지 않으셨다면, 저는 죽었을 것입니다… 길바닥에서…”
“그랬었다면 그것은 매우 슬픈 일이었을 거요. 그것은 사실이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그분의 아들을 굽어보시고 그를 도와주셨소! 이제 좀 쉬시오.”
한참 동안 그는 하라는 대로 한다. 그 다음에 그는 다시 눈을 뜨고 말한다.
“저는 새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오! 저는 에프라임으로 갈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왜요? 거기서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소? 당신은 에프라임 사람이오?”
“아닙니다. 저는 대양 근처 야브느엘 평야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는 해안을 따라 갈릴래아의 카이사리아까지 갔습니다. 그 다음에 저는 나자렛으로 갔습니다. 저는 여기(그가 자기의 배를 만진다) 병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이것은 아무도 고쳐줄 수 없는 병인데, 저는 이 병 때문에 밭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섯 아이들을 거느린 홀아비입니다.
저는 가자에서 태어났는데, 저희 고장의 필리스티아인 아버지와 시로 페니키아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어떤 사람, 갈릴래아의 라삐를 따라다녔던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 한 명과 함께 저희에게 와서 저희에게 그 라삐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저도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중병에 걸렸을 때 저는 말했습니다. ‘나는 시리아 사람이고 필리스티아 사람이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혐오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에르마스테오는 갈릴래아의 라삐께서는 능력도 있으신 만큼 친절하시기도 하다고 말하곤 했었다. 나는 그의 말을 믿는다. 나는 그분을 찾아가야겠다.’ 저는 날씨가 좋아지자마자 아이들을 그들의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병이 많은 재산을 먹어치웠기 때문에 제가 가지고 있던 얼마 안 되는 재산을 모아 그 라삐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여행 중에는 돈이 빨리 떨어집니다. 특히 그가 모든 종류의 음식을 먹지 못할 때는… 그리고 아파서 걸음을 걸을 수 없어 여관에 머물러 있어야 할 때는요. 저는 세포리스에서 제가 쓸 돈과 라삐에게 드릴 돈이 없어 제 나귀를 팔았습니다. 저는 제가 병이 고쳐지기만 한다면, 길을 가면서 무엇이든 먹고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밭들과 다른 사람들의 밭들에서 일하여 제가 잃어버린 것을 보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라삐께서는 나자렛에도, 카파르나움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는 유다에 있어요. 벳자타의 세포리스의 요셉의 집이나 겟세마니에서 그를 찾아보세요. 그 사람들이 당신에게 그가 어디 있는지 말해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걸어서 되돌아왔습니다. 제 병은 점점 심해지고… 돈은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보라고 사람들이 말해서 저는 그리로 갔었는데, 거기서 사람들은 만났지만, 그 라삐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오! 그들은 오래 전에 그 사람을 쫓아냈어요. 그는 산헤드린에게 저주받았어요. 그는 도망쳤는데, 우리는 그가 어디 있는지 모르오.’
저는… 마치 제가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바로 오늘처럼요. 아니 오늘보다 더했습니다. 저는 도시와 시골에서 수백 명, 수천 명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와 함께 울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때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성전 담 밖에서 구걸을 하기 시작했을 때 저는 두 명의 바라사이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나자렛의 예수가 에프라임에 있는 것을 아는 지금…’
저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이렇게 허약한 몸으로 구걸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 옷은 점점 더 누더기가 되어가고, 저는 점점 더 병이 심해지면서요. 그런데 저는 길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오늘은 저기 저 마을에서 왔습니다.
저는 이틀 동안 야생 회향밖에 빨아먹지 못했고, 치커리와 여물지 않은 낟알밖에 씹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제 얼굴이 창백하기 때문에 저를 나병환자로 생각하고 돌을 던져 저를 내쫓았습니다. 저는 빵 한 조각만을 구걸했고, 에프라임으로 가는 길만 가리켜 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쓰러졌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에프라임으로 가고 싶습니다. 저는 이제 목적지에 아주 가까이 왔는데요! 제가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할 수도 있을까요? 저는 그 라삐를 믿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에르마스테오도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데도 그분께서는 그를 똑같이 사랑해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저를 낳은 분들의 죄를 벌하시려고 그분의 무거운 손으로 저를 다루실 수 있겠습니까?”
“참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의 아버지시오. 그분께서는 의로우시지만 선하시오.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고, 죄 없는 사람들이 저지르지 않은 죄들을 이유로 그들을 벌하시지 않소. 그런데 당신은 왜 당신이 라삐의 거처를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치 당신이 왜 오늘보다 더 죽어가고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소?”
“그러니까! 왜냐하면 저는 ‘나는 내가 그 라삐를 찾기도 전에 그분을 잃었구나.’ 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 당신의 건강 때문에!”
“아닙니다.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에르마스테오가 그분에 대하여 어떤 것들을 말해주었는데, 만일 제가 그분을 알았다면, 저는 제가 더 이상 타락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그분이 메시아라고 믿는 거요?”
“저는 분명히 그렇게 믿습니다. 저는 메시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나자렛의 라삐께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믿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당신이 할례 받지 않았는데도 그분이 당신을 고쳐주실 것이라고 확신하오?”
예수께서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물으신다.
“에르마스테오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저는 확신합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구세주시오. 그분에게는 히브리인들이나 우상숭배자들이 없소. 다만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일 뿐이오. 주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위하여 그분을 보내셨어요.’
많은 이들이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었습니다. 만일 제가 그분께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하고 말할 수 있다면, 그분께서는 제 청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오! 당신이 만일 에프라임 분이시라면, 저를 그분께 데려다주십시오. 아마 당신도 그분의 제자들 중의 한분이신지도…”
예수께서는 점점 더 환하게 미소 지으시며 제안하신다.
“당신을 고쳐달라고 나에게 청해보시오…”
“여보세요, 당신은 착하십니다. 당신 곁에는 큰 평화가 있습니다. 그래요. 당신은… 그 라삐 자신처럼 착하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틀림없이 당신에게 기적들을 행하는 능력을 주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렇게 착하신 것을 보면, 당신은 그분의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기들이 라삐의 제자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착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육체는 고칠 수 있다 해도 영혼은 고치실 수 없다고 제가 말한다 해도, 모욕당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에르마스테오의 영혼이 고쳐졌었던 것처럼 제 영혼도 고쳐지기를 바랍니다. 의인이 되기를요… 그런데 그 라삐만이 그렇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저는 병자일 뿐 아니라 죄인이기도 합니다. 저는 제 육체가 치유된 다음 어느 날 제가 제 영혼과 함께 죽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에르마스테오는 그 라삐는 영혼의 생명이시고, 그분을 믿는 영혼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산다고 말했습니다.
저를 그 라삐에게 데려다주십시오. 친절을 베풀어주세요! 당신은 왜 미소 짓고 계십니까? 혹시 당신은 제가 헌금을 낼 수도 없으면서 병 고치기를 원하니 뻔뻔스럽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러나 일단 제가 병이 나는다면, 저는 다시 밭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주 훌륭한 유실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삐께서 과일이 익을 때 오신다면, 저는 그분께서 원하시는 만큼 오랫동안 환대하며 그분께 갚아드리겠습니다.”
“라삐가 돈을 원한다고 누가 당신에게 말했소? 에르마스테오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라삐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하시고, 그들을 먼저 도와주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의사들에게 하는 관습이고… 요컨대 모든 사람에게 하는 관습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소. 나는 장담하오.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만일 당신이 여기서 기적을 청하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을 정도로 당신의 믿음을 보인다면, 당신은 기적을 얻게 될 거라고 당신에게 말하오.”
“당신이 말씀하시는 것이 사실입니까?… 당신은 확신하십니까? 물론 만일 당신이 그분의 제자 중 한분이시라면, 당신은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틀릴 수도 없겠지요 그리고 비록 제가 그 라삐를 뵙지 못하는 것이 섭섭하긴 하지만… 저는 당신에게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그 라삐께서는 그렇게 박해당하시니 아마… 그분께서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을 원치 않으시겠지요… 그분께서는 더 이상 아무도 믿지 않으시는 것이지요. 당신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저희가 그분을 파멸시키는 자들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진짜 히브리인들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좋습니다. 저는 여기서 (그는 어렵게 무릎을 꿇는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그럼 당신의 믿음이 받아 마땅한 대로 당신에게 이루어지기를.”
예수께서 질병들에게 명령하시는 몸짓을 하시며 말씀하신다.
그는 마치 갑작스러운 빛에 얻어맞은 것처럼 현기증을 느끼는 것 같다. 그는 깨닫는다. 나는 그의 지성의 섬광을 통해서였는지, 육체적인 감각을 통해서였는지, 또는 동시에 두 가지 모두를 통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그가 자기 앞에 계시는 분께서 누구신지를 깨닫고 너무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아마도 살펴보려고 길 쪽으로 내려온 목자가 걸음을 재촉할 지경이다. 그는 자기의 얼굴을 풀 속에 묻고 땅에 엎드려 있다. 그래서 목자는 지팡이로 그를 가리키며 묻는다.
“이 사람은 죽었습니까? 사람이 이 지경이라면, 이 사람에게는 염소젖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목자가 머리를 흔든다. 그는 그 말을 듣고 튼튼하고 건강한 몸으로 벌떡 일어난다. 그가 외친다.
“죽었다고요? 나는 병이 고쳐졌습니다! 나는 새 사람입니다. 이분께서 저에게 이것을 해주셨습니다. 나는 더 이상 배고픔이나 어떤 병으로 고통당하며 죽어가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결혼식을 올렸던 날처럼 건강하다고 느낍니다! 오! 복되신 예수님! 어떻게 제가 당신을 더 일찍 알아 뵙지 못했을까요?!
저는 당신의 연민을 보고 당신의 이름을 알았어야 했는데요! 제가 당신 곁에서 경험했던 평화로! 저는 얼마나 바보입니까? 당신의 불쌍한 종을 용서해주십시오.”
그는 다시 땅에 엎드리며 경배한다.
목자는 염소들을 내버려두고 뜀박질하며 작은 마을을 향하여 달려간다.
예수께서는 병이 고쳐진 사람 옆에 앉아 말씀하신다.
“당신은 나에게 에르마스테오에 대하여 마치 그가 죽은 것처럼 말했소. 그렇다면 당신은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아는 거요. 나는 당신에게 한 가지만을 원하오. 그것은 당신이 나와 함께 에프라임으로 가서 나와 함께 있는 한 사람에게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하여 말해달라는 거요. 그 다음에 나는 당신을 예리코에 있는 내 여자제자에게 보내 그녀가 당신의 귀환여행을 도와주게 하겠소.”
“당신께서 그것을 원하신다면, 저는 가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건강해진 지금 저는 더 이상 길에서 죽을까봐 걱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심지어 풀을 먹고서도 살 수 있을 것이고, 제가 가지고 있던 재산을 방탕하게 쓰지 않고 올바른 목적을 위해서 썼기 때문에 구걸하는 것은 수치스럽지 않습니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바요. 당신은 당신이 나를 보았는데, 내가 여기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녀에게 말하시오. 그녀는 지금 올 수 있고, 아무도 그녀를 귀찮게 하지 않을 거요. 당신은 그녀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소?”
“예, 저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 그들은 왜 당신을 미워할까요. 당신께서는 이토록 착하신데요.”
“많은 사람들이 마귀들에게 들려 있기 때문이오, 갑시다.”
예수께서는 에프라임을 향하여 출발하시고, 그 사람은 비틀거리지 않고 그분을 따라온다. 눈에 띄는 수척함만이 그의 과거의 질병과 고초의 표시일 뿐이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작은 마을에서 내려오면서 소리 지르며 손짓한다. 그들은 예수를 부르며 그분께 걸음을 멈추시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시고 오히려 더 빨리 걸으신다. 그러자 그들이 그분을 뒤따라온다.
그분께서는 다시 에프라임 근처에 계신다. 해가 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농부들이 그분께 인사드리며 그분과 함께 있는 사람을 바라본다.
가리옷의 유다가 한 오솔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온다. 그는 선생님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전혀 놀람을 나타내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그 사람에게 말씀하신다.
“이 사람은 내 제자들 중 한 명이오. 이 사람에게 에르마스테오에 대하여 말해주시오.”
“예! 그것은 간단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동료와 헤어져 우리 고장에 남아 있기로 결정한 다음에도 지칠 줄 모르고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어느 누구보다 라삐님 당신을 더 알 필요가 있으며, 당신을 그의 고향에 알리고 싶고, 자기가 당신의 이름을 가장 작은 모든 마을들에 공공연하게 선포한 다음에 당신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속죄자처럼 살았습니다. 만일 어떤 동정하는 사람들이 그에게 빵을 주면, 그는 당신의 이름으로 그들을 축복했습니다. 설사 사람들이 그에게 돌을 던져도, 그는 똑같이 축복하며 물러가 야생의 열매들과 바위에서 뜯어내거나 모래를 파서 잡은 연체동물들을 먹고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미치광이’로 취급했지만, 사실은 아무도 그를 정말로 미워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은 그가 길에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국경 근처, 제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유다로 들어가는 길에서였습니다. 그가 왜 죽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문에 의하면, 그는 메시아가 전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그의 머리에는 큰 상처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말에게 짓밟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는 길바닥의 먼지 위에 사지를 뻗고 누워있으면서도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정말 엘룰 달의 가장 맑은 밤의 마지막 별들과 아침의 떠오르는 해를 보며 미소 짓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야채를 가지고 읍내로 가고 있던 몇 사람의 야채 재배자들이 동틀 녘에 그를 발견했는데, 그들이 제 오이들을 수집해가려고 들렀을 때 저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제가 그를 보려고 그리로 달려가서 보았더니, 그는 큰 평화 안에서 휴식하고 있었습니다.”
“너는 들었느냐?”
예수께서 유다에게 물으신다.
“예, 저는 들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그에게 그가 당신을 섬기고 오래 살 거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정확히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지나간 세월로 네 생각에 혼선이 생겼구나. 그는 선교지들에서 복음을 전하며 나를 섬겨 긴 생명을 얻지 않았느냐? 하느님을 섬기다가 죽는 사람들이 쟁취한 생명보다 더 길고 영광스러운 것은 어떤 생명이냐?”
유다는 나를 화나게 만드는 그 교활한 웃음을 웃으며 대답하지 않는다.
그 동안 작은 마을의 사람들이 여러 명의 에프라임 사람들과 합류하여 그분을 가리키며 에프라임 사람들에게 말한다.
예수께서 유다에게 명령하신다.
“이 사람을 집으로 데려가서 음식을 먹게 해주어라. 이 사람은 지금 시작되는 안식일 후에 떠날 것이다.”
유다는 순종한다. 예수께서는 혼자 남아 이삭이 패기 시작하려는 징후를 보이고 있는 밀대를 살펴보시려고 상체를 숙이신 채 천천히 걸어가신다.
몇 명의 에프라임 사람들이 예수께 묻는다.
“이 밀은 아름답지요, 그렇지요?”
“아름답소. 그러나 다른 지방들의 밀과 같소.”
“물론이지요, 선생님. 그것은 다 똑같은 밀이니까요! 그러니 같을 수밖에 없지요.”
“당신들은 그렇게 생각하오? 그렇다면 밀은 사람들보다 낫소. 왜냐하면 밀은 씨가 잘 뿌려지기만 하면, 그것은 유다에서나 갈릴래아에서나 또는 대양변의 평야들에서나 같은 열매를 맺소. 이와 반대로 사람들은 같은 열매를 맺지 않소. 땅도 사람들보다 낫소. 왜냐하면 씨앗이 땅에 맡겨지면, 땅은 그 씨앗이 사마리아 출신이든, 유다 출신이든 차별하지 않고 그것에게 친절하게 대하기 때문이오.”
“그것은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당신께서는 왜 땅과 밀이 사람들보다 낫다고 말씀하십니까?”
“왜냐고요?… 얼마 전에 한 사람이 어떤 마을의 한 집의 문전에서 자기를 불쌍히 여겨서 빵 한 조각을 달라고 청했소. 그런데 그곳 사람들은 그가 유다인인 줄 알고 내쫓았소. 그들은 그에게 돌을 던지며 그를 ‘나병환자’라고 부르며 내쫓았소. 그는 자기가 야위었기 때문에 나병환자라고 불렸지만, 자기의 출신지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고 생각했소.
그래서 그는 길에서 굶어죽을 뻔했소. 그러므로 그 마을 사람들, 나에게 질문해달라고 당신들을 보냈고, 기적적으로 고쳐진 사람을 보려고 내가 살고 있는 집에 오고 싶어 하는 그 사람들은 밀과 땅보다 더 나쁘오. 왜냐하면 비록 그들은 오랫동안 나에게 배워 왔지만, 유다인도, 사마리아인도 아니고 나를 보거나 내 말을 들은 적도 전혀 없어도 내 제자들 중 한사람의 말을 받아들여 나를 알지 못하면서도 나를 믿었던 저 사람이 맺은 것과 같은 열매를 맺을 줄 몰랐기 때문이오.
그리고 그들은 저 사람이 다른 씨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그를 배척했기 때문에 그들은 땅보다 더 나쁘기 때문이오. 그들은 지금 기진맥진한 사람의 굶주림을 만족시켜줄 줄 몰랐던 그들이 지금 자신들의 호기심의 욕구를 만족시키려고 오고 싶어 하오. 선생님은 그런 헛된 호기심을 만족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하시오.
당신들 모두는 사랑의 큰 법을 배우시오. 사랑이 없이는 당신들은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될 수 없기 때문이오. 그 자체로 당신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나에 대한 당신들의 사랑이 아니라 내 가르침에 대한 사랑이오.
내 가르침은 인종차별이 없는 형제적인 사랑을 가르치오. 그러니 내 마음을 고통스럽게 한 냉혹한 마음을 가진 그들은 돌아가라고 하시오. 만일 그들이 내가 그들을 사랑하기를 바란다면, 그들이 뉘우쳐야 한다고 말하시오.
나는 착하지만 공정하기도 하다는 것을 유념하시오. 내가 차별을 두지 않고 내가 갈릴래아인들과 유다인들을 사랑하듯 당신들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인하여 당신들이 너무 어리석게 교만해져서 당신들이 편애를 받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거나, 나에게 질책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악을 행해도 좋다고 허락받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오. 나는 다른 사람들뿐 아니라 내 친척들이나 내 사도들도 정의에 따라 칭찬도 하고 꾸짖기도 하오. 그리고 내 질책에는 사랑이 들어 있소. 나는 내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정의를 바라고, 그래서 어느 날 내가 그것을 실천한 사람에게 상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렇게 하오. 당신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이것을 알려 이 교훈이 모든 사람 안에서 열매 맺게 하시오.”
예수께서는 겉옷을 잘 여미시고, 대화 상대방들을 떠나 에프라임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신다. 그들은 꽤나 풀이 죽어서 동정심을 가지지 않았던 그 작은 마을 사람들에게 선생님의 말씀들을 되풀이하려고 떠나간다.
563. 사무엘, 가리옷의 유다와 요한. 꿀벌들의 비유
1947. 2. 10
예수께서는 에프라임 서쪽의 울창한 숲 속을 생각에 깊이 잠기신 채 혼자서 천천히 걸어가신다. 개울에서는 물이 흘러내려가는 소리가 올라오고, 나무들에서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봄날의 밝은 햇빛은 우거진 가지들 아래에서 화사하고, 풍성한 풀밭의 양탄자를 밟는 발걸음은 조용하다. 햇살은 푸른 풀 위에 움직이는 둥근 양탄자들과 초록빛 풀 위에 황금빛 줄무늬들을 그려놓고, 아직 이슬에 젖어 있는 어떤 꽃들은 주위는 온통 그늘인데 둥그런 빛살을 정면으로 받아, 그 꽃잎들이 마치 귀중한 보석들이라도 되는 양 반짝인다.
예수께서는 아래의 텅 빈 공간 위에서 발코니처럼 돌출해 있는 바위를 향하여 올라가신다. 그 발코니 위에는 거대한 참나무 한 그루가 우뚝 솟아 있고, 블랙베리, 들장미, 인동초, 참으아리들이 그 아래로 늘어져 있는데, 그것들은 자기들이 사는 곳이 그것들의 넘치는 생명력을 발휘하기에는 너무 비좁아 뻗거나 의지할 데가 없어서 그놈들이 기댈 무언가를 찾아내기를 바라며 풀어헤쳐지고 부스스한 머리채처럼 허공으로 축 늘어져 있다.
예수께서는 지금은 돌출해 있는 바위와 같은 높이에 계신다. 그분께서는 우거진 넝쿨을 옆으로 제치시며 돌출부의 맨 끝을 향하여 가신다. 한 떼의 작은 새들이 놀라 짹짹거리며 푸드덕 날아올라 다른 데로 날아간다.
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분보다 먼저 그리로 올라와 있는 사람을 살펴보신다. 그는 돌출한 바위의 거의 가장자리의 풀 위에 엎드려 팔꿈치를 땅에 대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예루살렘 쪽의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요나탄 벤 우지엘의 이전 제자 사무엘이다. 그는 생각에 잠겨 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머리를 흔든다…
예수께서는 그의 주의를 끌기 위하여 나뭇가지를 흔드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분의 시도가 헛된 것을 보시고 풀 속에서 돌 하나를 주워서 그것을 오솔길 아래로 굴려 내려 보내신다. 비탈 아래에서 튀어 오르는 돌의 소리에 젊은이는 정신을 차리고 놀라서 뒤돌아보며 말한다.
“거기 누가 있소?”
“사무엘, 나요.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기도장소들 중 하나에 나보다 먼저 왔소.”
예수께서 오솔길 끝에 있는 참나무의 거대한 줄기 뒤에서 나타나시며 말씀하시는데, 그분께서는 마치 그곳에 방금 도착하신 것처럼 말씀하신다.
“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는 즉시 당신의 자리를 내드리겠습니다.”
사무엘이 벗어 바위에 깔았던 겉옷을 집으면서 서둘러 일어나며 말한다.
“아니오. 왜? 두 사람이 있을 만한 자리가 있는데. 이곳은 참으로 아름답소. 외따로 떨어져 있고, 고적하고, 허공에 매달려 있고, 햇빛이 잘 들고, 전망이 넓게 펼쳐져 있소! 당신은 왜 이곳을 떠나기를 원하오?”
“글쎄요… 당신께서 자유롭게 기도하시게 하려고요…”
“우리가 함께 기도할 수는 없겠소? 아니면 우리가 서로 대화하고, 우리의 영혼들을 하느님께로 들어 올리고… 사람들과 그들의 결점들을 잊고,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착한 뜻을 가지고 그분을 찾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인자하신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생각하며 묵상할 수는 없겠소?”
사무엘은 예수께서 ‘그리고 사람들과 그들의 결점들을 잊고…’라고 말씀하실 때 놀라움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다시 앉는다.
예수께서는 그의 곁 풀 위에 앉아 말씀하신다.
“여기 앉으시오. 함께 있읍시다. 오늘은 날씨가 쾌청하여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시오. 만일 우리가 독수리의 눈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예루살렘 주위의 산꼭대기들 위의 하얀 마을들을 볼 수 있을 거요. 그리고 아마도 우리는 허공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한 지점, 즉 하느님의 집의 황금 돔들을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우리의 심장들은 고동칠 거요…
보시오. 저기 베텔이 있소. 당신은 그곳의 흰 집들을 볼 수 있을 거요. 그리고 저기 베텔 너머에는 브에롯이 있소. 그곳과 그 인근의 주민들은 얼마나 교활하고 교묘했었소! 비록 속임수는 결코 좋은 무기가 아니지만, 그것은 좋은 결과를 내었소. 왜냐하면 그 간교로 인하여 그들이 하느님을 섬기게 되었기 때문이오.
신성에 다가가려면 항상 인간적인 명예를 잃는 편이 좋소. 설령 인간적인 명예가 크고 귀하다 해도, 신성에 다가가는 것은 겸손하고, 알려지지 않는 것이오. 그렇지요?”
“예, 선생님. 당신의 말씀이 옳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로 인하여 당신은 행복해야 할 텐데 슬퍼하고 있소. 당신은 울적해하고 하오. 당신은 고통당하고 있소. 당신은 외롭게 지내고 있소. 당신은 당신이 떠나온 곳들을 바라보곤 하오. 당신은 새장의 창살 속에 갇혀서 그놈이 좋아하던 곳을 몹시 동경하며 바라보는 새장에 갇힌 새와도 같소. 나는 당신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하지는 않겠소. 당신은 자유롭소. 당신은 가도 되오. 그리고…”
“주님, 유다가 혹시 저에 대해서 나쁘게 말했기 때문에 당신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오. 유다는 나에게 말하지 않았소. 그는 나에게가 아니라 당신에게 말했소. 그래서 당신이 슬퍼하는 거요. 그리고 당신은 그 때문에 낙심하여 외롭게 지내고 있는 거요.”
“주님, 아무도 당신께 그것을 말씀드리지 않았는데도 당신께서 그 모든 것들을 아신다면, 당신께서는 제가 회개한 것을 후회하거나,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거나, 사람들이 저에게 그들이 저를 처벌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입하여 제가 그들을 두려워하여 당신을 떠나기를 원하기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아실 것입니다.
제가 저쪽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예루살렘 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리로 돌아가기를 갈망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의 취지는 제가 과거의 저로 돌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분명히 다른 모든 사람처럼 하느님의 집으로 들어가 지극히 높으신 분께 경배하기를 좋아하는 한 이스라엘 사람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신께서 그것을 이유로 저를 책망하실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두 개의 내 속성 안에서(in My double Nature) 그 누구보다 그 제단을 갈망하고, 그 제단이 명실상부하게 거룩함으로 둘러싸여 있기를 바라오. 하느님의 아들로서 그분을 영예롭게 해드리는 것은 무엇이든 나에게 감미로운 목소리이고, 사람의 아들, 이스라엘 사람, 따라서 율법의 아들로서 나는 성전과 그 제단을 이스라엘의 가장 신성한 장소라고, 우리 인성이 신성에 다가갈 수 있고, 하느님의 어좌를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의 향기에 젖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오.
사무엘, 나는 율법을 폐지하지 않소. 그것은 내 아버지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 신성한 것이오. 나는 그것을 완성하고 새 부분들로 그것을 완전하게 만드오. 하느님의 아들로서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소.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소. 나는 내 교회의 영적인 성전을 세우러 왔는데, 사람들도, 마귀들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오.
율법의 석판들은 그 안에서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할 것이오. 왜냐하면 그것은 영원하고, 완전하고, 불가침의 것이기 때문이오. 하느님의 눈에 의롭게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그 정교한 간결함 속에 함축하고 있는 그 석판들에 포함된 ‘이러이러한 죄를 짓지 마라’는 계명은 내 말에 의하여 폐지되지 않소.
반대로! 나도 당신들에게 그 십계명을 주오. 나는 이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키라고, 즉 당신들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당신들의 아버지이신 당신들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지키라고 말하오.
나는 아들들인 당신들의 손을 당신들의 아버지의 두 손 안에 놓아드리려고 왔소. 얼마나 긴 세월 동안 그 손들이 떨어져 있었소! 벌이 그것들을 갈라놓았고, 죄도 그것들을 갈라놓았소. 구속자가 와 있는 지금 죄가 막 취소되려 하오. 장벽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소. 당신들은 다시 하느님의 아들들이 되오.”
“그것은 사실입니다. 당신께서는 선하시고, 위로해주십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아십니다. 그러니 저는 제 고민을 당신께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께 여쭙겠습니다. 사람들은 왜 이다지도 악하고, 실성해 있고, 어리석습니까? 그들은 어떻게, 무슨 방법들로 저희에게 악한 일들을 하도록 악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저희는 무슨 연유로 실제 사실들을 보지 못하고 거짓 사실들을 믿도록 눈이 멀 수 있습니까? 그리고 저희가 어떻게 그런 마귀들이 될 수 있습니까? 그리고 당신 가까이에 있는 자가 어떻게 집요하게 마귀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까?
저는 저기를 바라보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 저는 얼마나 많은 독의 물줄기들이 그곳에서 흘러나와 이스라엘의 자녀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라삐들의 지혜가 사람들을 속이기 위하여 사실들을 왜곡하는 그렇게도 많은 불의와 결합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특히 그것을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격정적으로 말하던 사무엘이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다…
예수에서 그 문장을 마무리하신다.
“…왜냐하면 내 제자인 유다는 그의 정체가 그렇고, 나와 내 주위에 있거나 당신처럼 나에게 오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이오. 나도 아오. 유다는 당신을 여기서 떠나보내려고 애쓰고 있고, 그래서 그는 당신에게 암시들을 주고 당신을 조롱하는 것이오…”
“그는 저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예. 그는 정의를 향하여 온 제 기쁨을 독살합니다. 그가 얼마나 교묘하게 제 기쁨을 독살하는지, 저는 여기서 당신과 저 자신을 배반하는 배반자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저는 제가 당신의 파멸의 원인이 되었을 터인데, 더 착해졌다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아직 저 자신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만일 제가 성전의 사람들을 만난다면, 제 결심을 포기하고, …될지도 모릅니다. 오! 만일 제가 그때 그렇게 했다면, 저는 당신이 무엇이지를 알지 못한다는 변명거리를 가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당신에 대해서 저를 저주받은 사람이 되게 만들려고 사람들이 저에게 말하는 대로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만일 제가 지금 그렇게 한다면! 하느님의 아들의 배반자가 받을 저주는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여기서…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예. 저는 저 자신과 그들에게서 저를 구하기 위하여 어디로 도망칠까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느 먼 곳으로 도망쳐서 디아스포라의 사람들과 합류할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먼 곳으로, 마귀가 저로 하여금 죄짓지 못하게 하려고…
당신의 사도가 저를 믿지 않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그는 저를 압니다. 왜냐하면 그는 저희의 지도자들을 알기에 저희 모두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저를 의심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당신은 그분이 우리에게 우리가 약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는 걸 모르오? 한 번 상상해보시오. 우리는 그분의 사도들이고 그래서 우리는 그분과 오랫동안 같이 있어 왔소. 그런데 옛 이스라엘에 찌들어 있는 당신은 이제야 왔고, 상황들이 우리를 몸서리치게 하는 시기에 온 당신이 의롭게 남아 있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오?’ 하고 그가 말할 때 그의 말은 옳습니다.”
그는 낙심하여 고개를 떨어뜨린다.
“사람의 아들들이 그들 자신들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는지! 사탄은 참으로 그들의 이런 기질을 활용하여 그들을 완전히 공포에 질리게 만들고, 그들을 구해주려고 그들을 향하여 오는 기쁨(the Joy)에서 그들을 갈라놓소. 왜냐하면 영혼의 슬픔, 내일에 대한 공포, 걱정들은 항상 사람 자신이 상상하는 똑같은 환상들로 그를 두렵게 만드는 그의 원수의 손에 들려주는 무기들이오. 또한 진정으로 사탄과 동맹하여 그의 형제들을 두렵게 만드는 데 있어 사탄을 돕는 다른 사람들이 있소.
그러나 내 소중한 아들이여, 하늘에 한 아버지께서 계시지 않소? 이 바위틈에서 이 풀을 위하여 공급해주시는 한 아버지―이 틈에는 흙이 가득 차 있는데, 매끈한 저 돌 위에서 흐르고 있는 이슬의 습기가 이 가는 고랑에 모이도록 되어 있어, 이 여린 풀포기가 살아서 이 작은 꽃을 피울 수 있게 하오. 그런데 이 작은 꽃은 그 아름다움에 있어 저 위에서 빛나고 있는 위대한 태양보다 덜 감탄스러운 것이 아니오. 그것들은 둘 다 창조주의 완전한 작품이오. 한 아버지께서 바위 위에서 자란 풀포기를 보살펴주시는데, 그분께서는 그분을 섬기기를 굳게 원하는 그분의 아들들 중의 한 사람을 보살펴주시지 없겠소? 오!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사람의 ‘착한’ 소원들을 실망시키지 않으시오. 왜냐하면 당신들의 마음 안에서 그것들을 불붙이시는 분은 바로 그분이시기 때문이오.
그분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의 소원들을 격려하시기 위하여, 그리고 불완전한 길로 나아가면서 그분을 공경하고자 하는 소원을 바로잡고 완전하게 해주어, 올바른 길을 따라가면서 그분을 공경하고자하는 욕망으로 이끌어 가기 위하여 섭리적으로, 그리고 지혜롭게 상황들을 창조하시오.
당신은 후자 가운데 있었소. 당신은 나를 박해함으로써 하느님을 공경한다고 믿었고, 그것을 원했고,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소.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마음이 하느님을 증오하지는 않고, 다만 당신이 하느님의 원수이고 영혼들을 타락시키는 자라고 들었던 그 사람을 세상에서 없앰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를 갈망하는 것을 보셨소.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당신의 주님께 영광을 드리려는 당신의 소원을, 찬미하겠다는 당신의 욕망을 들어주시기 위한 상황들을 조성하셨소. 그렇게 하여 지금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게 된 거요.
그런데 당신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이리로 데려오신 지금 그분께서 당신을 버리실 거라고 믿을 수 있소? 오로지 당신이 그분을 버릴 경우에만 악의 힘이 당신을 압도할 수 있을 거요.”
“저는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제 뜻은 진실합니다!”
그가 언명한다.
“그럼 당신은 무엇을 걱정하오? 한 사람의 말에 대해서요? 그 사람이 말하도록 내버려두시오. 그는 그 자신의 생각으로 생각하오. 그런데 사람의 생각은 항상 불완전하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돌보겠소.”
“저는 당신께서 그를 질책하시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죄짓지 않을 것이라는 당신의 확인이라면, 그것으로 저에게 충분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확인하오. 당신은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당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요. 아들이여, 알겠소? 당신의 영혼을 그리스도에 대한 증오로부터 지키고, 그런 증오에 대한 처벌을 면하기 위하여 디아스포라나 세상의 끝까지 간다 해도 그것은 당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요.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으로는 그 죄(the Crime)로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을 거요. 그러나 그들은 나를 단죄하고, 그 선고를 집행할 사람들보다 죄가 덜하지 않을 거요.
나는 이 문제들에 대하여 당신에게 말할 수 있소.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모든 것이 그것들을 위하여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오. 당신은 가장 무자비한 내 원수들의 이름들과 생각들을 알고 있소. ‘유다는 모든 지도자들을 알기 때문에 저희 모두를 압니다’ 하고 당신은 말했소.
그러나 만약 그가 당신들을 안다면, 당신들은 주요한 행성들 가까이에 있는 작은 행성들과 같기 때문에, 당신들도 무엇이 행해지고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행해지고 있는지, 누가 그것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음모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어떤 방법들이 연구되고 있는지를 알고 있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과 말할 수 있소.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말할 수 없을 거요… 내가 어떤 고통을 당할 수 있고, 무엇을 견뎌야 하는지를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오…”
“선생님, 그러나 당신께서는 그것을 아시면서 어떻게 그렇게… 누가 오솔길로 올라오지?”
사무엘이 보려고 일어선다. 그가 외친다.
“유다가!”
“그렇소, 나요. 나는 선생님께서 여기를 지나가셨다고 들었는데, 그분 대신 당신을 만나는구려. 그럼 당신의 생각에 잠겨 있도록 나는 돌아가겠소.”
유다가 교활하게 웃는데, 그 웃음은 너무 가식적이어서 올빼미의 울음소리보다 더 음산하다.
“나도 여기 있다. 사람들이 마을에서 나를 찾느냐?”
예수께서 사무엘의 뒤에서 나타나시며 말씀하신다.
“오! 당신께서! 그럼 사무엘, 당신은 좋은 동반자와 함께 있었구려! 선생님, 당신께서도 그러시고요.”
“그렇다. 정의를 포옹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항상 좋다. 그럼 너는 나와 함께 있으려고 나를 찾고 있었구나. 오너라. 네가 앉을 자리가 있다. 만일 요한이 너와 함께 왔다면, 그의 자리도 있었을 것이다.”
“요한은 저 아래 마을에서 다른 순례자들과 드잡이하고 있습니다.”
“순례자들이 있다면 내가 가야겠구나.”
“아닙니다, 그들은 내일까지 하루 종일여기 있을 거랍니다. 요한은 그들이 머무를 수 있도록 우리 침대들에 자리를 배정해주고 있는 중입니다. 그는 그렇게 하는 걸 기뻐합니다. 물론 그 사람은 모든 것을 기뻐합니다. 당신과 그 사람은 정말 닮으셨습니다. 저는 어떻게 당신과 그가 일들이 가장 염려스러울 때에도 항상 행복하실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왔을 때 나도 똑같은 질문을 하려던 참이었소.”
“아! 그래요? 그렇다면 당신도 자신을 행복하지 않은가 보오. 그리고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처지보다 훨씬 더… 어려운 처지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데 대하여 놀라고 있구려.”
“나는 불행하지 않소. 나는 나 자신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 않았소. 나는 자신의 미래를 알고 계시면서도 그 무엇에도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으시는 선생님의 침착성이 어떤 근원에서 오는지 생각하고 있었소.”
“물론 천상의 근원에서 오는 거지요! 그건 당연하오! 선생님께서는 하느님이시니까! 당신은 그것을 의심하오? 하느님께서 고통당하실 수 있소? 그분은 고통을 초월해 계시오. 그분께는 그분의 아버지의 사랑은 취하게 하는 술과 같소… 그리고 그분의 행동들은… 세상의 구원이라는 확신은 그분에게는 취하게 하는 술이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가지는 육체적인 반응들을 가지실 수 있겠소? 그것은 상식에 어긋나오.
만일 죄 없는 아담이 어떤 종류의 고통도 느끼지 않았고 무죄한 채로 남아 있었다면 그는 고통을 알지도 못했을 터인데, 더할 수 없이 무죄하시고,―나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소―하느님이시니 창조되지 않으셨거나, 부모들이 계시니 창조되신 인간이신… 오! 나의 선생님, 미래의 세대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불가해한 ‘왜’들이 있겠습니까! 만일 아담이 그의 무죄로 인하여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웠다면, 예수께서 고통당하셔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소?”
예수께서는 고개를 숙이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다시 풀 위에 앉으셨다. 그분의 얼굴은 그분의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어 나는 그분의 표정을 보지 못한다.
서 있는 유다 앞에 서 있는 사무엘이 대답한다.
“그러나 만일 그분께서 구속주가 되셔야 한다면, 그분께서는 실제로 고통당하셔야 하오. 당신은 다윗과 이사야를 기억 하지 못하오?”
“나는 그들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소! 그러나 비록 그들은 구속주의 얼굴을 보았다 해도, 그들은 그분이… 뭐랄까, 고문당하면서도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받았을 무형의 도움은 보지 못했던 거요.”
“무슨 도움이오? 사람은 그의 의덕의 완전함에 따라 고통을 사랑하거나 체념으로 그것을 당할 수 있을 거요. 그러나 그는 언제나 고통을 느낄 거요. 그렇지 않다면… 만일 그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닐 거요.”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오.”
“그러나 그분께서는 유령이 아니시오! 그분께서는 진짜 육체시오! 육체는 고문당하면 고통을 느끼오. 그분께서는 참다운 사람이시오! 그리고 사람의 생각은 모욕당하고 무시당하면 고통을 당하오.”
“그분의 하느님과의 결합은 그분 안에서 그런 인간적인 것들을 제거하오.”
예수께서는 얼굴을 드시고 말씀하신다.
“유다야,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하는데, 나는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니 모든 사람보다 더 고통당하고 있고, 앞으로도 고통당할 것이다. 그러나 나도 하느님의 뜻을 그들의 유일한 신부로 선택했기 때문에 세상의 슬픔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한 사람들의 거룩하고 영적인 행복을 향유하며 똑같이 행복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 같은 행복과 행복에 대한 염려에 관한 인간적인 개념을 극복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
나는 사람들이 행복의 요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과 정확히 정반대의 것에 내 기쁨을 둔다. 그것은 사람이 부담스럽고 고통스럽다고 여기기 때문에 회피하고 업신여기는 것들이다. 나는 한 시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는 한 시간이 영원한 삶 안에 가져올 수 있는 결과들을 생각한다. 내 에피소드는 끝나겠지만, 그 열매는 지속된다. 내 고통은 끝나겠지만, 내 고통의 가치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내가 수년 동안 추구한 끝에 마침내 얻은 한 시간이 영원한 삶 안에서 나와 함께 기쁨으로 오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함께 하지 못하고, 나 혼자만이 그것을 즐겨야 한다면, 그 한 시간으로 땅에서 소위 ‘행복한 상태’라고 부르는 것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만일 당신께서 승리하신다면, 당신의 추종자인 저희는 당신의 행복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유다가 외친다.
“너희에게? 그런데 내 고통이 기쁨을 가져다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수많은 무리와 비교해볼 때 너희는 누구냐? 나는 땅의 행복 너머 멀리 본다. 나는 그것을 넘어서 초자연적인 것들을 본다. 나는 내 고통이 수많은 사람들의 영원한 기쁨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완전한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큰 힘으로서 고통을 포옹한다. 그 완전한 행복이란 자기의 이웃에게 기쁨을 주기 위하여 고통당하고 그를 위하여 죽을 정도로 사랑하는 것이다.”
“저는 그 행복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유다가 말한다.
“너는 아직 지혜롭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너는 그것을 이해할 것이다.”
“그럼 요한은 지혜롭습니까? 그는 저보다 더 무식한데요.”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그는 무지하다. 그러나 그는 사랑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
“좋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랑이 몽둥이들을 몽둥이들이 아니게 하고, 돌들을 돌들이 아니게 하고, 그것들이 때리는 몸이 고통당하지 않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께서는 고통이 당신께는 사랑이기 때문에 그것이 당신께 소중하다고 항상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진짜로 붙잡혀 고문당하게 되셨을 때에도―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말입니다―여전히 똑같이 생각하실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당신께서는 당신이 고통을 피하실 수 있는 동안에 그것을 생각하시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 고통은 무서울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만일 사람들이 당신을 붙잡을 수 있다면… 오! 그들은 당신을 존경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바라보신다. 그분께서는 매우 창백하시다. 크게 뜨인 그분의 두 눈은 유다의 얼굴 너머로 그분을 기다리고 있는 모든 고통들을 보고 계시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눈들은 슬픔에도 불구하고 온유하고, 친절하시며, 무엇보다 차분하시다. 평온한 무죄한 사람의 맑은 두 눈이다. 그분께서 대답하신다.
“나도 안다. 나는 네가 알지 못하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의 자비를 바란다. 죄인들에게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나에게도 자비로우실 것이다. 나는 그분께 고통당하지 않기를 청하지 않고, 고통당할 줄 알게 해주시기를 청한다. 그러면 지금 가자. 사무엘, 당신은 우리보다 약간 앞서 가 내가 곧 마을에 도착할 것이라고 요한에게 말하시오.”
사무엘은 절하고 나서 빨리 떠나간다. 예수께서는 내려오기 시작하신다.
오솔길은 몹시 좁아 두 사람이 나란히 내려올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다가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저 사람을 너무 믿으십니다. 저는 그가 누군지 당신에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는 요나탄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성마르고 흥분하기 쉬운 사람입니다.
물론 지금은 너무 늦었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저 사람의 손아귀에 집어넣으셨습니다. 저 사람은 당신 가까이에 있는 밀정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한 번 이상 저를 밀정이라고 생각하셨고, 다른 사람들은 당신보다 더 여러 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밀정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돌아보신다. 고통과 위엄이 그분의 얼굴과 그분의 사도를 응시하시는 예수의 두 눈에 섞여 있다.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그렇다, 너는 밀정이 아니다. 너는 마귀(a demon)다. 너는 사람들을 하느님에게서 떼어놓기 위하여 유혹하고 속이는 뱀의 특권(the Serpent’s prerogative)을훔쳤다. 네 행동은 돌도, 몽둥이도 아니지만, 돌이나 몽둥이로 때리는 것보다 나에게 더 상처 입힌다. 오! 나의 소름끼치는 고통 중에 순교자(the Martyr)를 고통스럽게 하는 네 행동보다 더 큰 것을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마치 그토록 끔찍한 공포를 숨기기를 원하시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오솔길로 뛰어내려오기 시작하신다.
유다는 그분의 뒤에서 외친다.
“선생님! 선생님! 당신께서는 왜 저를 괴롭히십니까? 그 거짓말쟁이가 분명히 당신께 중상했군요… 제 말을 들으십시오, 선생님!”
예수께서는 듣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날다시피 내리막길을 뛰어 내려오신다. 그분께서는 인사드리는 벌목꾼들과 목자들을 지나치실 때 멈추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손을 흔드시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으신다. 유다는 체념하고 침묵한다…
그들이 거의 다 내려왔을 때 그들은 요한과 마주친다. 그는 그의 조용한 미소로 환해진 맑은 얼굴로 그들을 향하여 올라오고 있다. 그는 벌집을 빨아먹으며 재잘거리는 한 어린 소년의 손을 잡고 있다.
“선생님, 제가 왔습니다! 그 사람들은 카이사리아 필리피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당신께서 여기 계신다는 것을 듣고 왔답니다. 참 이상합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데, 모두들 당신께서 어디 계시는지 아니 말입니다! 그들은 지금 쉬고 있습니다. 그들은 피로에 지쳐 있습니다.
병자 한 사람이 있어 저는 디나에게 가서 양젖과 꿀을 얻어 왔습니다. 저는 그를 제 침대에 눕혔습니다. 저는 무섭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린 안나가 저와 함께 오고 싶어 했습니다. 선생님, 이 애를 만지지 마십시오. 얘는 온통 꿀로 끈적거립니다.”
착한 요한은 많은 꿀방울들이 떨어져 있고 손가락 자국들이 나 있는 옷을 입은 채 웃는다. 그는 반쯤 빨아 먹은 벌집을 예수께 드리러 가려고 하면서 외치는 어린이를 제지하려고 애쓰며 웃는다.
“오세요. 선생님, 당신께 드릴 게 많이 있어요!”
“예. 디나의 집에서는 벌집들을 떼어내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벌들이 얼마 전에 분봉했거든요”
요한이 설명한다.
그들은 다시 출발하여 첫 번째 집에 이른다. 그곳에서는 양봉가들이 벌통 옆에서 귀를 윙윙거리게 만드는 예의 큰 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다. 벌떼가―그것들은 이상하게 생긴 커다란 포도송이처럼 보인다―한 나무의 가지들에 매달려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들을 새 벌통들로 가져가려고 따고 있다. 더 먼 곳에서는 지치지 않고 윙윙거리는 벌들이 이미 자리 잡은 벌통들에 들락날락한다.
남자들이 예수께 인사드리고, 한 여자가 매우 아름다운 몇 개의 봉방들을 가지고 다가와 그것들을 그분께 드린다.
“당신은 왜 이것들을 나에게 주시오? 당신은 이미 요한에게도 몇 개를 주었잖소…”
“오! 제 벌들은 많은 꿀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드리는 것은 제 기쁨입니다. 그렇지만 새 분봉들에 강복해주십시오. 보세요. 저 사람들은 마지막 분봉을 거두고 있습니다. 올해 저희는 벌통들을 곱절로 늘렸습니다.”
예수께서 벌들의 작은 도시들로 가셔서 일하기를 멈추지 않는 일벌들이 윙윙거리는 가운데 손을 들어 한 통, 한 통 강복하신다.
“벌들은 모두 기뻐하고 있고, 흥분해 있습니다. 새 집이니까요…”
한 남자가 말한다.
“그리고 새 결혼식인 것 같아요. 이놈들은 정말로 혼인잔치를 준비하는 여자들 같아요.”
다른 남자가 말한다.
“맞아요, 그러나 여자들은 일하기보다 수다를 더 떨지요. 그러나 벌들은 반대로 말없이 일합니다. 그리고 이놈들은 혼인잔칫날에도 일을 합니다. 이놈들은 자기들의 나라와 재산을 만들려고 끊임없이 일합니다.”
세 번째 사람이 말한다.
“덕행을 위하여 항상 일하는 것은 옳은 일이고, 의무이기도 하오. 이익을 얻기 위하여 끊임없이 일하는 것은 그렇지 않소. 자기들이 하느님의 날에 공경 받으셔야 할 한 하느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그렇게 할 수 있소. 말없이 일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벌들에게서 배워야 할 공로입니다. 왜냐하면 거룩한 일들은 침묵 중에서만 거룩하게 행해지니까요. 의덕에 있어서 당신들의 벌들처럼 지칠 줄 모르고 침묵하며 일하시오. 하느님께서 보시고, 그분께서 갚아주시오. 당신들에게 평화.”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두 사도와 따로 계시게 되자 말씀하신다.
“나는 특히 하느님의 일꾼들에게 나는 벌들을 그들의 본보기로 제시한다. 그놈들은 끊임없는 노동으로 건강한 꽃부리들에서 따서 그놈들 안에서 만들어진 꿀을 벌통의 은밀한 속에 저장한다. 그놈들이 그토록 많은 선, 의지, 황금빛 점들처럼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니고, 그러고 나서는 즙을 가득 채우고 들어와 그놈들의 은밀한 방들 안에서 꿀을 정성들여 만들어내는지, 그놈들의 피로는 피로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꿀과 같은 덕행과 정의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많은 건강한 요소들로부터 추출해낸 꿀처럼 진정한 성덕의 즙들을 생산할 수 있는 가르침들, 건전한 교리들과 건전한 우정들을 골라 적극적으로 모아들여진 것을 사용하여 정교하게 다듬기 위하여 외따로 떨어져서 살아야 하는데, 중요한 요소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착한 뜻이다. 그것이 없다면, 여기저기서 모아들여진 즙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가 보고 들은 좋은 것에 대하여 우리는 마음속으로 겸손하게 묵상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일벌들 가까이에 여왕벌들이 있어도, 즉 묵상하는 사람 곁에 그보다 더 의로운 사람이 있어도 시샘하지 말고, 자기의 마음속 은밀한 곳에서 겸손하게 묵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벌통 안에는 여왕벌들과 일벌들 둘 다 필요하다. 만일 그놈들 모두가 여왕벌들이거나 일벌들이라면, 그것은 재앙일 것이다. 여왕벌들과 일벌들이 다 죽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벌들이 없다면, 여왕벌들이 먹을 것이 없어 생식하지 못할 것이고, 여왕벌들이 생식하지 못한다면, 일벌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왕벌들을 질투하지 말아야 한다. 그놈들도 그놈들의 노동과 그놈들의 인내가 있는 것이다. 그놈들은 자신들의 유일한 짝짓기 비행 시에 단 한번만 태양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전과 그 후에는 그놈들은 벌통의 호박색 벽들 안에서 영구적인 격리 안에 있다.
각자는 그놈의 임무를 가지고 있고, 각 임무는 임명이며, 각 임명은 영예일 뿐 아니라 책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벌들은 헛되이 날아다니거나 병들거나 독 있는 꽃들 주위에서 위험한 비행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놈들은 모험적인 시도들을 하지 않는다. 그놈들은 그놈들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그놈들이 창조된 목적을 거슬러 거역하지 않는다. 오! 경탄할 만한 작은 존재들! 너희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가르치느냐!…”
예수께서는 침묵하시며 묵상에 잠기신다.
유다는 갑자기 자기가 어딘지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거의 뛰어서 멀어져간다.
예수와 요한만이 남아 있다. 요한은 예수께서 눈치채지지 않게 그분을 바라본다. 근심하는 사랑의 열렬한 시선이다. 예수께서는 머리를 들고 약간 돌아서서 그분을 살펴보고 있는 그분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사도의 두 눈을 보신다. 그분의 얼굴이 환해지며 그를 그분께로 끌어당기신다.
요한은 이렇게 안긴 채로 걸으며 묻는다.
“유다가 또 다시 당신을 고통스럽게 했지요, 그렇죠? 그리고 그는 사무엘의 마음도 어지럽혔을 것입니다.”
“왜? 그가 너에게 무어라 말했느냐?”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알았습니다. 그는 이렇게만 말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말 착한 분 곁에서 살면 착하게 되네. 그렇지만 유다는 3년 동안이나 선생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착하지 않아. 그는 마음속 깊은 곳까지 타락하여 그리스도의 선하심이 그를 관통하지 못해. 그만큼 그는 악으로 가득 차 있어.’
저는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유다는 왜 그 모양입니까? 그가 결코 변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요? 하지만… 저희는 모두가 같은 가르침들을 받고 있고… 그가 저희 가운데 왔을 때 그는 저희보다 더 나쁘지도 않았는데요…”
“나의 요한! 나의 온유한 아이!”
예수께서는 그의 넓고 깨끗한 이마에 입 맞추시고, 가볍게 물결치는 그의 금발에 대고 속삭이신다.
“자기들 안에 있는 선을 파괴하기 위하여 사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너는 어부이니 폭풍이 휘몰아칠 때 돛이 어떻게 하는지 알지. 그것은 물 가까이로 심하게 기울어져서 거의 배를 뒤엎어 배에 위험이 된다.
그래서 때로는 돛을 내리고 날개들 없이 자기의 둥지로 돌아와야 한다. 왜냐하면 폭풍에 휘말린 돛은 더 이상 날개가 아니라 바닥짐이 되어 배를 구원이 아니라 물밑으로, 죽음으로 끌고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폭풍의 격렬한 바람이 잠깐이라도 가라앉기만 하면, 돛은 즉시 다시 날개가 되고, 그 배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어 항구를 향하여 빨리 달려간다.
많은 영혼들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격정들의 폭풍이 가라앉기만 하면, 굽혀 있던 영혼, 말하자면 좋지 않은 것 속에 거의 잠겼던… 영혼이 다시 선을 향하여 갈망하기 시작한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그러나… 그건 그렇고…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언젠가 유다가 당신의 항구에 이르겠습니까?”
“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도들 중 한 사람의 미래를 바라보게 하지 마라. 나는 내 앞에 내 고통들이 그들에게는 무익할 수백만의 영혼의 미래를 가지고 있다!… 나는 내 앞에 세상의 모든 비열한 행동들을 가지고 있다… 그 메스꺼움이 나를 어지럽힌다. 강물이 땅을 덮고 있고, 덮을, 서로 다른 모습으로, 그러나 시간의 끝까지 항상 완전(the Perfection)에게 끔찍할 더러운 것들이 부글부글 끓는 역겨움 말이다. 나로 하여금 보게 하지 마라! 나로 하여금 부패의 맛이 없는 샘에서 내 목마름을 가라앉히고 위로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고, 내 평화인 너만을 바라보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의 해충으로 뒤덮인 부패를 잊게 해다오!”
그분께서는 깨끗하고 다정한 사도의 맑은 두 눈을 깊숙이 들여다보시며 다시 그의 미간에 입 맞추신다…
그들은 집안으로 들어온다. 사무엘은 노파에게 불 피우는 수고를 덜어주려고 부엌에서 장작을 패고 있다.
예수께서 여인에게 물으신다.
“순례자들은 자고 있습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저는 탈 짐승들에게 이 물을 가져다주겠습니다. 그놈들은 땔감 창고에 있습니다.”
“할머니, 그것은 제가 할게요. 당신은 라헬의 집으로 가시는 편이 더 낫겠어요. 그녀는 약간의 신선한 치즈를 주겠다고 저에게 약속했습니다. 제가 안식일에 그녀에게 돈을 주겠다고 하더라고 그녀에게 말씀하세요.”
요한이 물이 가득 찬 두 개의 물통을 집어 들며 말한다. 예수와 사무엘만이 남아 있다. 예수께서는 불 위로 몸을 숙이고 불꽃을 일으키려고 불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그분의 한 손을 얹으시며 말씀하신다.
“유다가 저 위에서 우리 이야기를 방해했소… 나는 안식일 다음 날 당신을 사도들과 함께 보내기를 원한다고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소. 아마 당신은 그 편을 낫게 여기겠지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당신 곁에 있지 못하는 것이 유감입니다만, 저는 당신의 사도들에게서도 다시 한 번 당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예, 저는 유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을 더 낫게 생각합니다. 저는 감히 그것을 당신께 청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좋소. 그렇게 결정되었소. 그리고 내가 그를 동정하는 것처럼 그를 동정하시오. 그리고 베드로나 다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시오…”
“저는 침묵할 줄 압니다. 선생님 !”
“제자들이 나중에 올 거요. 헤르마와 스테파노가 있고, 이사악이 있소. 두 현인과 한 의인, 그리고 많은 다른 사람들이 있소. 당신은 참 형제들 가운데 있는 것을 좋아할 거요.”
“예, 선생님, 당신께서는 저희를 이해해주시고, 도와주십니다. 당신께서는 참으로 좋으신 선생님이십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예수의 손에 입 맞춘다.
(다음회에 이어서 계속됩니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영문판번역) > 8권 수난준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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