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6권 공생활 셋째 해(2) p403~p412

452. 가말라를 향하여.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데 대한 복되신 동정녀의 사랑
1946. 7. 3.
저녁이 되면서 심한 더위가 가시고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와서 상쾌해진다. 저녁노을이 진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카파르나움에 계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출발을 늦추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히포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신다.
사람들은 마지못해 떠나가고, 못내 서운해 하는 몇몇 사람들은 도시 밖까지 예수를 따라온다. 그들 가운데에는 아펙의 여인도 있는데, 그 여인은 호반의 마을에서 자기의 어머니가 버린 어린 알패오의 보호자로 선택해달라고 주님께 청한 과부이다. 그 여자는 여자제자들 중의 한 사람인 것처럼 그들과 합류하여 지금은 그들과 친숙해져서 여자제자들도 그 여자를 가족처럼 생각한다. 지금 그녀는 살로메와 동행하며 작은 소리로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리아께서는 그분의 동서와 함께 한참 뒤쳐져서 오시는데, 그분들은 두 분의 중간에서 서로 손잡고 걸어오고 있는 어린 소년의 보조에 그분들의 보조를 맞추신다. 아이는 길에 깔려 있는 모든 돌을 밟지 않고 건너뛰면서 즐거워한다. 이 길에 규칙적으로 포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그것은 틀림없이 로마인들이 건설한 길일 것이다.
소년은 점프할 때마다 웃으며 말한다.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보이세요? 자, 봐요, 또 봐요!”
이것은 어린이들이 자기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손을 잡고 있을 때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하는 놀이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손을 잡고 걸어가시는 거룩한 두 여인은 그의 놀이에 큰 흥미를 보이고, 아이가 뛰는 솜씨를 칭찬한다.
그 불쌍한 어린것은 며칠 동안의 평온하고 사랑받는 생활로 활발해져서 두 눈이 행복한 어린이들의 눈과 같이 명랑하게 되고, 그의 맑은 웃음소리는 그를 더 예뻐 보이게 하고, 무엇보다 더 어린이다워 보이게 만든다. 그 아이에게서는 더 이상 카파르나움을 떠났던 날 저녁에 보였던 슬픈 아이의 표정을 찾아볼 수 없다.
알패오의 마리아는 상황을 살펴보고, 과부 사라에 대한 몇 가지 말을 듣고 자기의 동서에게 말한다.
“그렇게 되면 바람직할 거예요! 만일 내가 예수라면, 나는 이 아이를 그녀에게 주겠어요.”
“마리아, 이 애에게는 어머니가 있어요…”
“어머니라고요? 그 여자를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그 비열한 여자보다는 암늑대가 더 어미답겠어요.”
“그건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그 여자는 비록 자기 아들에 대한 의무는 깨닫지 못해도 그에 대한 권리는 항상 가지고 있어요.”
“흠! 이 애를 괴롭히기 위한 권리요! 이 애가 얼마나 나아졌나 보세요!”
“나도 알아요. 그렇지만… 예수는 아이들을 그들의 어머니들에게서 빼앗을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 애들을 사랑할 사람들에게 그 애들을 주기 위해서라도요.”
“사람들도 그럴 권리는 없어요… 더 이상 말하지 않는 편이 낫겠어요. 나도 알아요…”
“오! 나는 당신의 말을 알아들어요… 당신은 이렇게 말하려는 거지요. ‘사람들도 당신의 아들을 당신에게서 빼앗아 갈 권리가 없어요. 그렇지만 그들은 그렇게 할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의 관점에서 보아 잔인한 행위인 그 일을 함으로써 무한한 선을 유발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여자에게 무슨 유익을 끼칠 것인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그것은 아이에게는 아주 좋은 일이 될 거예요. 그렇지만 왜… 예수는 저 소름끼치는 일을 말했지요? 나는 그것을 들은 다음부터 마음의 평화를 잃었어요…”
“그럼 당신은 구세주가 고통당하고 죽어야 한다는 것을 전에도 알지 못했었단 말이에요?”
“물론 나도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나는 그것이 예수라는 것은 알지 못했어요. 나는 예수를 몹시 사랑해왔어요. 당신은 그것을 아시지요? 나는 내 친아들들보다 더 그를 사랑했어요. 그렇게도 잘 생기고, 그렇게도 친절하고… 오! 나의 소중한 마리아, 나는 그가 어렸을 적에 당신을 부러워했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도 항상… 항상… 나는 한 줄기의 바람마저도 그것이 그를 해치지 않을까 염려했어요. 그래서… 나는 그가 고문당할 거라는 것을 믿을 수 없어요…”
클레오파의 마리아가 베일 속에서 운다.
마리아께서 그녀를 위로하신다.
“마리아, 그 문제를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지 말고, 그 열매들을 생각해보세요… 당신은 매일 저녁에 내가 햇빛이 사라지는 것을 어떻게 보는지 상상할 수 있어요… 해가 질 때 나는 말합니다. 내가 예수를 가질 수 있는 날이 하루 더 줄었구나…
오! 마리아! 나는 무엇보다도 한 가지에 대하여 지극히 높으신 분께 감사드려요. 나에게 완전한 사랑,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사랑을 얻을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해서예요. 왜냐하면 그러한 사랑은 나로 하여금 ‘예수의 고통과 내 고통은 내 형제들에게 유익하다. 그러므로 고통은 복되다’라고 말하면서 내 마음을 치유하고 강화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이웃을 이토록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이 예수를 죽일 거라는 생각을 견딜 수 없을 거예요…”
“그럼 당신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에요? 그런 말을 할 수 있으려면 한 어머니가 어떤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하느냐는 말이에요. 자기의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고, 그를 보호하고, 이웃에게 ‘나의 첫째 이웃은 내 아들이에요. 나는 내 아들을 무엇보다 더 사랑해요’ 하고 말하지… 않으려면 말이에요.”
“만물보다 더 사랑받으셔야 하는 분은 하느님이세요.”
“예수는 하느님인 걸요.”
“그는 아버지의 뜻을 행합니다. 나도 그와 함께 그것을 행하고요. 내 사랑이 어떤 사랑이냐고요? 그런 말을 할 수 있으려면 어떤 사랑을 가져야 하느냐고요? 하느님과 융합되는 사랑, 완전한 일치, 완전한 굴복, 그분 안에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그분의 일부만이 되는 거예요. 마치 당신의 손이 당신의 일부분이고, 당신의 머리가 명령하는 것을 행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것이 내 사랑이고, 항상 기꺼이 하느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우리가 가져야 하는 사랑이에요.”
“그렇지만 당신은 당신이에요. 당신은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복된 분이예요. 하느님께서 예수를 가지도록 당신을 선택하신 것을 보면, 당신은 예수를 가지기 전부터 분명히 이미 그런 사람이었을 거예요. 그러니 당신에게는 그 일이 쉬운 거지요…”
“아니에요, 마리아, 나도 여느 여자와 어머니처럼 여자이고, 어머니예요. 하느님의 은혜는 사람을 억압하지 않아요.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아주 강한 영성을 주신다 해도, 그는 다른 여느 인간처럼 인성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은 내가 내 자유의지로, 그리고 그 은혜가 포함하고 있었던 모든 결과들과 함께 그 은혜를 받아들여야 했다는 것을 당신도 알지요. 왜냐하면 모든 하느님의 은혜는 큰 지복이지만, 큰 의무이기도 하니까요.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은혜를 받아들이도록 어떤 사람에게도 강요하지 않으시고, 그 사람에게 물어보셔요. 그래서 만일 그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는 영적인 목소리에 싫다고 말하면,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강제하지 않으셔요. 모든 영혼이 적어도 일생에 한번은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느님의 질문을 받아요…”
“오! 나는 질문을 받지 않았어요. 그분께서는 나에게 결코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어요!”
알패오의 마리아가 자신 있게 외친다.
복되신 동정녀께서 상냥하게 미소 지으시며 대답하신다.
“당신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당신이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당신의 영혼이 대답한 거예요. 그 이유는 당신이 이미 주님을 아주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그분께서는 나에게 말씀하신 적이 진짜로 없다니까요!”
“그렇다면 당신은 왜 예수를 따라다니는 제자로 여기 있어요? 당신은 왜 당신의 아들들 모두가 예수를 따르기를 그렇게 간절하게 바라세요? 당신은 그를 따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당신은 당신의 아들들이 그를 따르기를 원해요.”
“물론이에요. 나는 그들 모두를 예수에게 주고 싶어요. 그렇게 된다면, 나는 진실로 내가 내 아들들을 빛(the Light)에게 낳아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나는 참되고 영원한 모성으로 그 애들을 빛에게, 예수에게 낳아줄 수 있도록 기도해요.”
“당신도 아시네요! 그런데 왜 그렇게 하세요? 왜냐하면 어느 날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마리아야, 너는 네 아들들을 나에게 바쳐 그들이 새 예루살렘에서 내 사제들이 되게 하겠느냐?’ 하고 물어보셨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당신은 ‘예, 주님’ 하고 대답했어요.
지금도 당신은 제자가 스승보다 낫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당신의 사랑을 시험하시려고 당신에게 다시 질문하시는 하느님께 ‘예, 나의 주님. 지금 저는 그 애들이 당신의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고 대답해요. 그렇지 않아요?”
“그래요, 마리아. 사실이에요. 나는 정말로 무식해서 영혼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해요. 그러나 예수나 당신이 나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게 하면,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말해요.
나는 말해요… 나는 그 애들이 하느님의 원수가 되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살해당하기를 원해요… 분명히… 만일 내가 그 애들이 죽는 것을 본다면… 만일… 오! 그러나 주님께서… 에! 주님께서는 그 시간에 나를 도와주실까요, 아니면 당신만을 도와주실까요?”
“그분께서는 영혼으로 순교자이거나 영혼과 육체로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순교자가 되는 그분의 모든 충실한 딸들을 도와주실 거예요.”
“그런데 누가 죽임당해야 한다는 거야?”
어린 소년이 묻는다. 그 아이는 두 분의 대화를 듣고는 뛰는 것을 그만두고 듣는 데 온통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어두워져가는 고적한 들판을 둘러보면서 반은 호기심으로, 반은 두려운 마음으로 다시 묻는다.
“이 근방에 도둑놈들이 있어? 그들은 어디 있어?”
“얘야, 도둑들은 여기 없다. 지금 당장은 아무도 죽임당하지 않는다. 뛰어라, 계속 뛰어.”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서 대답하신다.
훨씬 앞서가시던 예수께서 여자들을 기다리시느라 걸음을 멈추신다. 히포에서부터 그분을 따라온 사람들 중 세 명의 남자들과 그 과부가 여전히 남아 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씩 둘씩 예수를 떠나서 그들의 도시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두 무리가 다시 서로 함께 걷는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여기서 머무르며 달이 뜨기를 기다리자. 그 다음에 새벽에 가말라에 도착할 수 있도록 떠나자.”
“그러나 주님! 당신께서는 그들이 어떻게 거기서 당신을 내쫓았는지를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그들은 당신께 떠나달라고 간청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떠났고, 지금 다시 가려고 한다. 하느님께서는 참을성 있고 신중하시다. 그때는 그들이 흥분해 있어서 말씀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었다. 말씀을 열매 맺게 하려면 평온한 영혼으로 들어야 한다.
엘리야를 기억하고, 그가 호렙 산에서 주님과 만난 일을 기억해보아라. 그리고 엘리야는 이미 주님께 사랑받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 데 익숙한 영혼이라는 것을 고려해라. 그런데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 자연과 그의 성실한 자아의 평화 속에서 그의 영혼이 쉬고 있을 때 부드러운 미풍의 평화 속에서 비로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마귀들의 군대가 그 지방으로 지나간 추억으로―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지나가신다면 그것은 평화이고, 사탄이 지나간다면 그것은 혼란이니까―그 지방에 남겨진 두려움이 가라앉고 그들의 마음과 정신이 투명하게 맑아지기를 기다렸다가, 여전히 주님의 자녀들인 가말라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들은 우리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아펙의 과부가 앞으로 나아와 땅에 엎드리며 말한다.
“주님, 당신께서는 제 집에는 가지 않으시렵니까? 아펙에도 하느님의 자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길이 험하고, 우리가 가진 시간은 짧아요. 우리는 여자들과 동행하고 있는데, 안식일을 지내기 위하여 카파르나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부인, 조르지 마시오.”
가리옷 사람이 거의 그녀에게 면박을 주듯이 단호하게 말한다.
“사실은… 저는 제가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다는 것을 그분께 확신시켜드리기를 바랐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이 애에게는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당신은 모르시오?”
가리옷 사람이 몹시 무례하게 다시 말한다.
“당신은 가말라와 아펙 사이의 지름길들을 아시오?”
예수께서 모욕당한 여인에게 물으신다.
“오! 저는 압니다! 산을 가로지르는 길이 있는데, 상태가 양호하고 숲 가운데로 지나가기 때문에 시원합니다. 그리고 여자들을 위해서는 나귀들을 빌릴 수 있습니다. 비용은 제가 내겠습니다…”
“나는 당신을 위로하기 위하여 당신의 집에 가겠습니다. 비록 아이에게 어머니가 있기 때문에 내가 그를 당신에게 줄 수 없다 해도 말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느님께서 사랑받지 못하는 죄 없는 어린이가 다시 사랑을 찾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신다면, 나는 당신을 고려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마음이 착하십니다.”
과부가 말하면서 유다를 흘낏 쳐다본다. 그것은 ‘당신은 고약해요’라는 뜻이다.
말하는 것을 듣고,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알아들은 소년은 애무와 맛있는 것들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과부를 점점 좋아하게 되었는데, 생각의 자연적인 충동으로, 그리고 어린이들 특유의 모방정신으로 과부의 행동을 따라한다. 그러나 그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리는 대신 그분의 무릎에 달라붙으며 달빛에 하얗게 보이는 작은 얼굴을 쳐들고 말한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마음이 착하십니다.”
그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분명히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듯 결론짓는다.
“그리고 당신은 고약해.”
그는 자기가 말하는 상대방에 대하여 아무 착오가 없도록 가리옷 사람을 발로 가볍게 찬다.
토마스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그러자다른 사람들도 따라 웃는다.
“가엾은 유다! 아이들이 자네를 좋아하지 않는 건 정말 똑같구먼! 가끔씩 어린이들이 자네에 대해서 판단할 때마다 그들은 항상 자네가 나쁘다고 말하니 말이야!…”
유다는 유머감각이 없어 분노를 표출하는데, 그것을 유발한 원인과 대상에 어울리지 않는 부당한 분노이다. 그는 아이를 예수의 무릎에서 거칠게 떼어내서 뒤로 밀치면서 외치는 것으로 분을 푼다.
“우리가 진지한 문제들에 있어 판토마임을 하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겁니다. 여자들과 고아들을 줄줄이 데리고 다니는 것은 고상하지도, 유익하지도 않은 겁니다…”
“아니야, 자네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돼. 자네는 이 애의 아버지를 알았지. 그는 합법적인 남편이었고, 의인이었네.”
바르톨로메오가 따끔하게 일침을 놓는다.
“그래서? 이 애는 지금은 떠돌이이고, 미래에는 도둑이잖아. 얘는 우리 등 뒤에서 사람들이 언짢은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거야. 어떤 이들은 이 애를 당신의 어머니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또래의 아들을 정당화할 만한 당신의 어머니의 남편은 어디 있습니까? 아니면 그들은 저희 중 한 사람의 아들로 넘겨짚고, 그래서…”
“그만해두어라. 너는 세상 사람들의 언어로 말하고 있다. 세상은 개구리들, 뱀들, 도마뱀들, 온갖 더러운 짐승들에게 상스러운 언어로 말한다… 알패오야, 울지 마라.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너를 안고 가마.”
소년은 깊이 상심한다. 평화로웠던 요사이 며칠 동안에 가라앉았던 자기 어미에게 버림받은 고아로서의 그의 모든 심적 고통이 다시 빛 비추어지고, 끓어오르고, 넘친다. 아이는 돌이 많은 땅에 쓰러지면서 입은, 여자들이 닦아주며 입 맞추어주는 이마와 양손의 타박상들로 인해서보다는 사랑받지 못하는 아들로서의 고통으로 인하여 우는 것이다. 돌아가신 자기의 아버지, 자기의 어머니를 부르면서 우는 길고 가슴이 미어지게 하는 울음이다… 오! 가엾은 어린 것!
사람들에게서 전혀 보살핌을 받지 못한 나도 이 아이와 함께 운다. 그리고 내 아버지의 기일이자 부당한 결정으로 내가 자주 성체를 모시지 못하게 된 오늘 나도 이 어린이처럼 하느님의 품안으로 피신한다…
예수께서는 달빛 아래서 죄 없는 어린이를 안고 일행을 앞장서가시며 그에게 입 맞춰주시고, 그를 어르고 위로해주신다. 아이의 울음이 천천히 잦아들고, 간격이 길어짐에 따라 고요한 밤의 적요 속에서 아이에게 말씀하시는 예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알패오야, 내가 여기 있다. 나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여기 있다. 나는 너에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어줄 것이다. 울지 마라. 네 아버지는 내 곁에 있는데, 그분은 나와 함께 너에게 입 맞춰주신다. 천사들이 어머니들처럼 너를 보살핀다. 만일 네가 착하고 죄 없이 산다면, 우리의 모든 사랑이 너와 함께 있다…”
이제는 히포에서 온 세 남자 중 한 사람의 쉰 목소리가 들리는데, 그가 말한다.
“선생님께서는 착하셔서 사람을 끌어당기신다. 그러나 그분의 제자들은 그렇지 않다. 나는 가야겠다…”
열성당원이 엄한 목소리로 가리옷 사람에게 말한다.
“자네는 자네의 행동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나?”
아펙의 과부만이 여자제자들과 함께 머무르며 그들과 함께 한숨을 쉰다. 히포에서 온 세 사람이 돌아가는 발자국 소리가 점점 약해진다. 이런 분위기는 그들이 어떤 넓은 동굴 곁에서 걸음을 멈출 때까지 바뀌지 않는다. 최근에 베어진 헤더와 양치식물들이 바닥에 한 겹 깔려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이 동굴은 목자들의 피신처인 모양이다.
“여기서 멈추자. 여자들을 위하여 섭리의 이 침대를 모으자. 우리는 바깥 풀 위에 누워서 잘 수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들은 만월이 천공을 항해하는 동안에 그렇게 한다.
453. 가말라 근처에서. 복되신 동정녀께 교회를 맡기시고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자비를 말씀하시다
1946. 7. 8.
예수께서 잠이 깨어나 흙과 풀로 만들어진 촌스러운 침대 위에 앉으실 때 막 동이 트기 시작한다. 그분께서는 일어서서 그분의 샌들과 이슬과 밤의 찬 기운으로부터 그분 자신을 보호하려고 덮으셨던 당신의 겉옷을 집으시고, 그분 주위에 잠들어 있는 사도들의 다리들, 팔들, 몸통들, 머리들이 뒤엉켜 있는 사이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신다. 그분께서는 무성한 나무들 아래서 희미한 새벽빛으로 그분의 발이 어디를 디디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자세히 들여다보시며 몇 걸음을 옮기신다.
그분께서는 나무들이 없는 풀밭에 이르신다. 나무들과 바위들 사이로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호수의 일부와 넓은 하늘이 보인다. 하늘은 동틀 녘 하늘의 전형적인 빛깔인 회청색에서 하늘색으로 변하면서 점점 선명해지고 있고, 동쪽에서는 회청색이 벌써 연노랑색으로 옅어진 다음, 다시 더 세분화되고 점점 더 깊어져 분홍색을 띤 노랑으로, 그 다음에는 지극히 아름다운 엷은 산호색으로 변한다.
햇빛에 동쪽 하늘을 빼앗기기를 거부하는 듯한 매우 엷은 안개가 끼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새벽은 좋은 날씨를 예고하며 얇은 베일의 안개구름 속에서 계속 전진하여, 푸른 하늘은 안개의 존재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마치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황금빛과 산호색 술로 장식된 순백의 장식품인 것처럼 화려하게 치장되고 점점 아름다워져 마치 새벽은 태양이 그 영광스러운 빛으로 그것을 부수어버리기까지 덧없는 아름다움의 완전에 도달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다.
반면 서쪽에서는 빛이 증가함에 따라 비록 밤의 광채는 잃었지만 아직 몇 개의 별들이 보이고, 산의 능선 뒤로 저물어가는 달은 죽어가는 행성처럼 그 빛을 잃고 아주 창백한 모습으로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이슬에 젖은 풀밭에서 맨발로 서서 팔짱을 끼시고 밝아오는 날을 보시며 고개를 드신 채 생각에 잠겨 계신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께서는 아버지와 영적인 대화를 나누고 계신다. 많은 이슬방울들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쥐죽은 듯 고요하다.
예수께서는 여전히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이신 채 서서 훨씬 더 깊은 묵상에 잠겨 계신다. 그분께서는 그분 자신 안에 완전히 침잠해 계신다. 크게 뜬 그분의 참으로 아름다운 두 눈은 마치 풀들로부터 어떤 대답을 쥐어짜내고자 하시는 듯 땅을 응시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두 눈은, 잠에서 깨어나고, 기지개를 켜고, 돌아눕고,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기 위하여 몸을 흔들고, 그렇게 하여 자신들의 모든 신경과 근육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사람들처럼 새벽의 서늘한 산들바람에 떨고 있는 풀줄기들의 느린 움직임마저도 보고 있지 않다고 확신한다.
그분께서는 바라보기는 하시지만, 그 작은 가지들, 이파리들, 우산처럼 생기거나 송이모양이나 대모양이나 군집하여 자라나고 있는 꽃받침들과 함께 풀들과 야생화들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보지는 못하신다.
어떤 꽃들은 꽃받침들이 하나씩 떨어져 있고, 어떤 것들은 빛나는 왕관처럼 생겼거나 금어초이거나 풍요의 뿔 모양이거나 깃털장식이나 장과류 모양을 하고 있다. 어떤 꽃들은 줄기 끝에 꼿꼿이 서 있고, 어떤 꽃들은 제 줄기가 아닌 줄기에 매달린 부드러운 꽃이고, 어떤 것들은 땅바닥에 누워 기고 있다. 어떤 꽃들은 작고 키 작은 많은 꽃들이 무리지어 있고, 어떤 것들은 외따로 떨어져 있는데 크고 색깔과 모양이 강렬하다.
모든 꽃들이 자기들이 더 이상 바라지 않는 이슬방울들을 꽃잎에서 떨어져버리고 이제는 햇빛만을 갈망하고 있는데, 욕망이나 생김새가 변덕스럽다. 꽃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에 결코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과 이 점에서 매우 비슷하다.
예수께서는 귀 기울여 듣고 계시는 것 같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분명히 점점 더 강해지며 이슬방울들을 흔들어 떨어뜨리는 데 재미를 붙이고 있는 바람의 살랑거림도 듣지 못하시고, 잠에서 깨어나 간밤의 꿈에 대하여 서로에게 말하거나 따스하고 듣기 좋은 소리가 나는 둥지에 대한 자기들의 견해들을 서로 교환하고 있는 작은 새들의 점점 더 커지는 소곤거리는 소리도 듣지 못하신다. 새둥지에서는 양털이나 부드러운 건초들 가운데에서 지금까지는 발가벗고 있던 새 새끼들이 깃털을 보이기 시작하거나 커다란 부리를 벌려 그놈들의 탐욕스러운 빨간 목구멍을 보이며 먹이에 대한 첫 번째 요구를 시끄러운 소리로 나타낸다.
예수께서는 귀 기울여 듣고 계시는 것 같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분명히 찌르레기의 최초의 비웃는 것처럼 부르는 소리도, 검은머리꾀꼬리의 감미로운 노랫소리도, 새벽의 태양을 향하여 신나게 날아오르는 종달새의 떨리는 금빛 곡조도, 둥지들이 지어져 있는 바위들에서 나온 제비 떼들이 조용한 공기를 가르며 피륙을 짜듯이 땅과 하늘 사이를 지칠 줄 모르고 날아다니며 내는 날카로운 소리도 듣지 못하신다.
그분께서는 또한 그분 가까이에 있는 떡갈나무에 앉아 그분께 ‘당신은 누구요? 당신은 무얼 그리 생각하고 있소?’ 하고 물으며 놀리는 것 같은 까치의 거친 울음소리도 듣지 못하신다. 이것도 그분의 묵상을 방해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까치들이 짓궂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이놈은 아마 자기의 영역인 이 작은 풀밭 위의 침입자를 쳐다보다가 지쳐 한 꼭지에 붙어 있는 두개의 도토리를 따 일등사수와 같이 정확하게 그분의 머리 위로 떨어뜨린다. 그것은 상처를 입힐 정도로 무거운 물체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떨어지는 높이를 고려할 때 그것은 묵상하는 사람의 주의를 끌기에는 충분하다.
예수께서는 위를 쳐다보시다가 두 날개를 펼치고 우스꽝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목표물에 명중시킨 쾌감을 즐기고 있는 새를 발견하신다. 그분께서는 빙그레 웃으시고, 머리를 흔드시고, 그분의 묵상의 마침표로 한숨을 쉬시고, 이리저리 걸어 다니신다. 까치는 웃고 놀리는 것처럼 깍깍 소리를 내며 풀밭으로 날아 내려와 두 날개를 퍼덕이며, 침입자에게서 해방된 풀을 뒤지고 후벼 판다.
예수께서는 물을 찾으시지만, 찾아내지 못하신다. 그분께서는 단념하시고 사도들에게로 돌아가시려고 하신다. 그러나 새들이 물이 어디 있는지를 그분께 가르쳐드린다. 새들은 떼를 지어 꽃받침이 아주 넓은 꽃들로 내려오는데, 그것들은 사실 물이 들어 있는 작은 컵들과 같다. 또한 그놈들은 털이 덮인 넓은 잎들에 내려앉기도 하는데, 그 털 하나하나에는 이슬이 한 방울씩 맺혀 있다. 새들은 거기서 갈증을 풀기도 하고, 목욕을 하기도 한다.
예수께서는 새들을 흉내 내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양손의 오목한 부분에 꽃받침들의 물을 모아 얼굴을 다듬으시고, 털이 나 있는 넓은 잎들을 따 그것들로 당신의 맨발의 먼지를 닦으시고, 샌들을 닦으신 다음 그것들을 신으신다. 그분께서는 다른 잎들을 더 따서 자신의 두 손이 깨끗해질 때까지 씻으신 다음 미소 지으시며 속삭이신다.
“조물주의 숭고한 완전들!”
예수께서는 그분의 젖은 손으로 머리와 수염을 다듬으셨기 때문에 이제는 산뜻하고 깔끔해지셨다. 이제 최초의 햇살이 풀밭을 금강석들이 점점이 박힌 매트로 만들어놓자 그분께서는 사도들과 여자들을 깨우러 가신다.
여자들과 사도들은 심한 피로로 인하여 잠을 깨기가 힘들다. 마리아께서는 깨어 계시지만, 작은 머리를 그분의 턱 밑에 대고 그분의 품에서 자고 있는 아이 때문에 움직이지 않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예수께서 동굴 입구에 나타나는 것을 보시고, 파란색의 상냥한 눈으로 미소를 지으시고, 자신의 아드님을 보시는 기쁨으로 인하여 얼굴이 장밋빛이 된다.
그분께서는 아이에게서 그분 자신의 몸을 빼시자 그 움직임으로 인하여 약간 칭얼대는 아이를 두시고 일어나 얌전한 비둘기와 같은 가볍게 구르는 듯한 걸음걸이로 예수를 향하여 가신다.
“아들아, 하느님께서 오늘 너에게 강복하시기를.”
“어머니, 하느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당신께서는 주무시기가 힘드셨지요?”
“아니다. 오히려 아주 유쾌했다. 나는 마치 어린 너를 품에 안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리고 나는 네 입으로부터 형언할 수 없는 감미로운 소리가 황금의 강처럼 흘러나오는 꿈을 꾸었는데, 한 목소리가 말했다…
오!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말했다. ‘이는 세상을 부유하게 해주고, 그것을 듣고 거기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지복을 주는 말씀(the Word)이다. 그것은 능력, 시간, 공간의 아무런 제약 없이 구원할 것이다.’
오! 내 아들아! 내 아기인 네가 말씀이다! 나를 네 어미가 되게 해주신 것을 영원하신 아버지께 감사할 수 있으려면, 내가 얼마나 오래 살고,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하겠느냐?”
“어머니, 그건 염려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심장의 모든 박동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립니다. 당신께서는 살아 계시는 하느님 찬미이신데, 항상 그러실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 때부터 그분께 감사하고 계십니다.”
“예수야, 나는 그것을 충분히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하느님께서 나를 위하여 해주신 일은 참으로 크고도 크다! 결국 내가 나와 같은 네 제자들인 저 모든 착한 여인들보다 무엇을 더 하느냐? 아들아, 우리 아버지께 내가 그분께 받은 은혜에 걸맞도록 그분께 감사드릴 기회를 주십사고 말씀드려라.”
“어머니! 그런데 당신께서는 아버지께서 제가 당신을 위하여 그것을 그분께 청하는 것을 필요로 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분께서는 이 완전한 찬미를 위하여 당신께서 바치셔야 할 희생을 이미 당신을 위하여 마련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그것을 완수하셨을 때 당신께서는 완전하게 되실 것입니다.”
p 412 (다음회에 이어서 계속)
“내 예수야!… 나는 네 말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듣는다… 그러나 그 시간에 내가 생각할 수 있겠느냐?… 보잘것없는 네 어미가…”
“영원한 사랑의 복되신 정배(The Blessed Spouse of the eternal Love)! 그것이 바로 당신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사랑(the Love)께서당신 안에서 생각하실 것입니다.”
“아들아, 네가 그렇게 말하니, 나는 네 말을 근거로 마음을 놓는다. 그러나 너는… 이들 중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데 이미 임박한… 그 시간에 나를 위하여 기도해다오. 그것은 사실이지, 그렇지?”
이 대화 중의 마리아의 표정을 묘사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작가도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모호한 색조로 그것을 망치지 않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강인하면서도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마리아의 얼굴이 이 순간에 나타내는 진짜 표정을 마음속으로 자기의 얼굴에 띠게 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마리아를 바라보신다… 우리의 보잘것없는 말로는 표현할 수없는 또 다른 표정이다. 예수께서 마리아께 대답하신다.
“당신께서도 죽음의 시간에 저를 위하여 기도해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이 사람들 중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그들의 탓이 아닙니다. 사탄이 매연을 뿜어대 그들이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술 취한 사람들처럼 되고, 따라서 준비되지 못하게 하고… 휘어지기 쉽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과 저는 사탄의 계략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구할 것입니다.
어머니, 저는 지금 이 순간부터 그들을 당신께 맡겨드립니다. 저의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그들을 당신께 맡겨드립니다. 저는 제 유산을 당신께 드립니다. 저는 이 땅 위에 한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가진 것이 없는데, 저는 그분을 하느님께 바칩니다. 그 희생과 함께하는 희생(Victim with the Victim)을요.
그리고 저는 제 교회(My Church)를 당신께 맡겨드립니다. 제 교회의 유모가 되어주십시오. 방금 전에 저는 미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 안에서 가리옷 사람이 그 모든 잘못들과 함께 부활할 것인지를 생각해보고 놀라워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예수가 아닌 사람은 누구나 그 결함 있는 존재를 물리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를 물리치지 않겠습니다. 저는 예수입니다.
당신께서 땅 위에 남아 계시는 기간 동안 교계제도(ecclesiastical hierachy)에 관해서는 베드로가 으뜸이고 어머니는 한 신자이시기 때문에 베드로 다음으로 두 번째시지만, 이 신비체(mystical Body)의 머리인 저를 낳으신 교회의 어머니로서 첫째이신 당신께서는 수많은 유다들을 물리치지 마시고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베드로, 제 형제들, 요한, 야고보, 시몬,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안드레아, 토마스, 마태오에게 물리치지 말고 도우라고 가르치십시오.
저를 따르는 사람들 안에서 저를 지켜주시고, 여명기의 교회를 흩어놓고 분할하기를 원하는 자들에게서 저를 지켜주십시오. 그리고 어머니, 미래 세기들에 항상 제 교회, 제 사제들, 제 신자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고, 악과 벌에서, 그리고 그들 자신에게서 보호하시고, 지켜주시고, 도와주시는 여인이 되어주십시오…
오, 어머니, 미래의 세기들에 얼마나 많은 유다들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해할 줄 모르는 정신박약자들, 보지 못하는 소경들,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들, 올 수 없는 절름발이들이나 마비환자들과 같은 자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어머니, 그들 모두가 당신의 겉옷 안에 있게 해주십시오! 당신만이 그들 중 한 사람이나 많은 사람들에 대한 영원하신 아버지의 처벌명령을 지금도 바꾸실 수 있고, 미래에도 바꾸실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께서는 그 유일한 꽃에게 아무것도 거절하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아, 나는 그렇게 하겠다. 그것이 나에게 달려 있는 한, 너는 안심하고 네 목적을 향하여 가거라. 네 어미는 교회 안에서 너를 지키기 위하여 여기 있다, 항상.”
“어머니, 하느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기를… 이리 오십시오! 향기로운 이슬이 가득 들어 있는 꽃받침들을 따드릴 테니, 제가 한 것처럼 그것으로 얼굴을 시원하게 하십시오. 지극히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것들을 마련해주셨고, 새들이 그것들을 저에게 가리켜주었습니다.
하느님의 질서정연한 피조세계에서 모든 것이 얼마나 유익한지 보십시오! 갈릴래아의 바다에서 올라오는 수증기와 이슬을 끌어당기는 큰 나무들로 인하여 매우 비옥해져서 여름 혹서기에도 풀들과 꽃들이 무성하게 자랄 수 있게 해주는 호수 가까이에 있는 이 높은 고원을 보십시오. 그분의 사랑받는 자녀들이 세수할 수 있도록 이 꽃받침들을 가득 채우는 이 풍성한 이슬을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분께서 안배해주신 것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새 낙원의 하와를 시원하게 해주기 위한 하느님의 잔에 가득 찬 하느님의 물입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이름을 모르는 매우 넓은 꽃들을 따 그것들 안에 고여 있는 물을 마리아의 두 손 안에 부으신다.
그 동안에 다른 사람들도 몸단장을 한 다음에 휴식처에서 약간의 거리를 이동해 계시는 예수를 찾아온다.
“선생님, 저희는 준비되었습니다.”
“좋다. 이 길로 가자.”
“그렇지만 이 길이 맞는 길입니까? 나무들이 여기서 끝나는데요. 지난번에 저희는 숲 속 길을 걸었었는데요.”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이의를 제기한다.
“지난번에는 우리가 호수에서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옳은 길을 선택할 수 있다. 보이느냐? 가말라는 저기 동남쪽에 있는데, 이 길이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다른 세 방향은 다닐 수 없다. 산양을 빼놓고는 말이다.”
“당신의 말씀이 옳습니다. 우리는 마귀 들린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우리가 본 깊고 메마른 골짜기를 피하게 될 것입니다.”
필립보가 말한다.
그들은 빨리 걸어 곧 그들이 잤던 숲에서 벗어나 작은 계곡 너머에 있는 돌이 많은 길로 접어든다. 그 계곡은 가말라가 달라붙어 있는 이상하게 생긴 산으로 가까이 가면서 점점 더 넓어진다. 그 산은 세 방면 즉 동, 북, 서쪽은 아주 가파르고, 남에서 북으로 곧바로 뻗어 있는 이 길로만 나머지 구역과 연결되는데, 그 길은 동쪽에 있는 들판과 서쪽에 있는 참나무 숲을 갈라놓는 바위투성이의 황량한 두 계곡 사이에 높이 나있다.
수많은 돼지치기들이 참나무 숲을 향하여 가고 있는 꿀꿀거리는 돼지 떼 가운데에서 지나간다. 사각으로 자른 돌들을 운반하는 짐수레들이 걸음이 느린 두 마리의 멍에를 멘 소들에게 끌려 삐걱거리며 지나간다.
몇 명의 말 탄 사람들이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속보로 지나간다. 작업장으로 가는 누더기를 걸친 야윈 땅 파는 인부들이 무자비한 간수들의 감시를 받으며 지나간다. 나는 그들 대다수가 노예들이거나 모종의 이유로 노역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산이 가까워지고 오르막길이 시작되자 산비탈을 보호하는 가락지들처럼 산을 둘러싸고 있는 방어설비가 되어 있는 도랑들이 보인다. 그 도랑들을 파는 것은 틀림없이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특히 거의 수직인 특정지점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있는 방어시설들을 정비하거나 새로운 것들을 건설하기 위하여 일하고 있는데, 그들은 옷을 입지 않은 양어깨에 직육면체의 돌들을 운반하고 있어 그 돌들은 그 불행한 사람들의 등을 굽게 하고, 벌거벗은 그들의 어깨에 핏자국을 남긴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거야? 혹시 지금이 전시라서 저 사람들이 저렇게 일해야 하나? 저 사람들은 미쳤구먼!”
사도들이 자기들끼리 말하고, 여자들은 제대로 먹지 못하고 힘겨운 노동을 강요당하는 반라의 불행한 사람들을 동정한다.
“도대체 누가 저 사람들에게 중노동을 강요하는 거야? 분봉왕인가, 아니면 로마인들인가?”
사도들이 재차 묻는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그 문제에 대하여 서로 토론한다. 왜냐하면 가말라는 말하자면 필립보의 사분령과 헤로데의 사분령에서 독립해 있다시피 하고, 또한 몇몇 사도들에게는 로마인들이 미래에는 자신들과 대적하여 사용될 수도 있는 요새들을 다른 나라에 건설하기 위하여 애쓴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편집광의 고정관념과도 같은 메시아의 일시적 왕국(the temporal kingdom of the Messiah)이라는 영원한 사상이 마치 이미 보장된 승리와 민족의 영광과 독립의 깃발인 양 표방된다.
그들이 큰 소리로 떠드는 바람에 몇몇 공사감독들이 가까이 와서 듣는다. 그들은 유다 민족이 아닌 교양 없는 사람들인데, 많은 사람들이 나이 들었고, 그들 중 몇 사람들은 몸에 상처자국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신원은 그들 중 한 사람의 경멸적인 말로 분명해진다.
“‘우리나라’라고! 티투스, 자네도 들었나? 매부리코들! 당신들의 나라는 벌써 이 돌들 아래에서 으깨져버렸소. 적과 맞서 건설하는 데 있어 적을 사용하는 자는 적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푸블리우스 코르피니우스의 이 말은 당신들에게 하는 말이오. 만일 알아듣지 못하겠거든, 오래 사시오. 돌들이 수수께끼를 풀어줄 거요.”
그러면서 그는 기진맥진하여 비틀거리다가 주저앉는 일꾼을 보고 채찍을 들면서 웃는다. 만일 예수께서 앞으로 나아가 그에게 말씀하시며 그를 제지하지 않으셨다면, 그는 그 사람을 때렸을 것이다.
“당신은 그렇게 하면 안 되오. 이 사람도 당신과 같은 사람이오.”
“당신은 대체 누구이기에 끼어들어 노예를 변호하는 거요?”
“나는 자비요. 사람으로서의 내 이름은 당신에게 아무 뜻도 없을 거요. 그러나 내 속성은 당신에게 자비로우라고 일깨워주오. 당신은 말했소. ‘적과 맞서 건설하는 데 있어 적을 사용하는 자는 적을 섬기는 것이다.’ 당신은 비통한 진리를 말했소.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빛나는 진리 하나를 말해주겠소.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은 자비를 얻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수사학자요?”
“나는 당신에게 말했소. 나는 자비라고.”
자기들의 고장을 향하여 가고 있는 몇 명의 가말라 사람들이 말한다.
“이분께서는 갈릴래아의 라삐시다. 이분께서는 질병들과 바람과 물과 마귀들에게 명령하시고, 돌을 빵으로 변하게 하시는 분이신데, 아무것도 이분에게 반항하지 못한다. 읍내로 달려가서 알리자. 병자들이 올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도 이분의 말씀을 듣자. 우리도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뛰어가고, 어떤 사람들은 그분의 주위로 모여든다.
방금 전의 그 공사감독이 말한다.
“저 사람들이 당신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까?”
“그렇소, 사실이오.”
“기적을 일으켜보십시오. 그러면 저는 믿겠습니다.”
“기적은 믿기 위하여 청하는 것이 아니오. 믿기 위하여 믿음을 청해야 하고, 그렇게 하여 기적을 얻게 되는 것이오. 믿음과 당신의 이웃에 대한 연민을 청하시오.”
“나는 이교도인데…”
“그것은 합당한 이유가 아니오. 당신은 이스라엘에서 살고 있고, 이스라엘은 당신에게 돈을 주오…”
“내가 일하기 때문입니다.”
“아니오. 당신은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기 때문이오.”
“나는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는 법을 압니다.”
“그렇소, 무자비하게. 그러나 만일 당신이 로마인이 아니고 유다인이었다면, 당신이 이 사람들의 처지에 빠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소?”
“허!… 물론이지요… 그렇지만 나는 신들의 가호로 인하여 유다인이 아닙니다.”
“만일 참 하느님께서 당신을 치고자 하셨다면, 당신의 헛된 우상들은 당신을 보호할 수 없었을 거요. 당신은 아직 죽지 않았소. 그러니 자비를 얻기 위하여 자비를 베푸시오…”
그는 대꾸하고 토론하려다가 무시하는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등을 돌리고 가서 단단한 암석층에서 곡괭이로 작업하는 일을 중단하고 있는 어떤 사람을 때린다.
예수께서는 매 맞은 불쌍한 사람과 때린 사람을 바라보신다. 같지만 다른 연민을 나타내는 두 개의 시선이다. 그 시선들은 참으로 깊은 슬픔이 깃든 시선이어서 그리스도의 수난 중의 그분의 어떤 시선을 나에게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분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겠는가? 그분께서는 개입하실 힘이 없기에 그분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방금 보신 불행의 짐을 지신 채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하신다.
그러나 유력자들임이 분명한 몇 명의 주민들이 가말라에서 뛰어내려와 예수께 이르러 그분 앞에 깊이 몸을 숙여 인사드리고 나서 자기들의 고장으로 들어오셔서 주민들에게 말씀해달라고 청한다.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무리지어 오고 있다.
“여러분은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 사람들은(그분께서는 일꾼들을 가리키신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아직은 시원한 시간이고, 여기서는 햇볕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저 불행한 사람들도 생명의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저 사람들의 곁으로 갑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가장 먼저 앞장서서 오셨던 길을 되짚어가신 다음 작업이 더 힘든 산 아래로 내려가는 울퉁불퉁한 오솔길로 들어서신다. 그러고 나서 그분께서는 유력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여러분이 할 수 있다면, 일을 중단하라고 명하시오.”
“물론 저희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저희가 일을 시키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도 돈을 준다면, 저희가 돈을 내기 때문에 아무도 불평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말라 사람들이 대답한 다음 감독자들에게 말하러 간다. 잠시 후에 나는 후자들이 어깨를 으쓱하는 것을 보는데, 그들은 마치 이렇게 말하려는 것 같다.
‘당신들이 좋다면야 우리도 좋소.’
그 다음에 그들은 작업자들에게 호각을 부는데, 그것은 분명히 휴식하라는 신호이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가말라의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셨다. 나는 그들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한 다음 속보로 도로 시내로 돌아가는 것을 본다.
일꾼들은 깜짝 놀라 감독자들을 쳐다보며 서둘러 그들 주위로 모여든다.
“일을 그쳐라. 너희가 내는 소음은 철학자에게 방해된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명령을 내리는데, 아마 그들 모두의 우두머리인 모양이다.
일꾼들은 자신들에게 휴식을 선물하고 있는 ‘철학자’라고 지목된 사람을 피로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 ‘철학자’께서는 그들을 연민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시선들과 감독자의 말에 대답하신다.
“그 소음은 나에게 방해되지 않지만, 여러분의 비참함은 나를 가슴 아프게 합니다. 나의 자녀들이여, 오시오. 여러분의 몸을 쉬게 하고, 특히 여러분의 마음을 하느님의 그리스도 가까이에서 쉬게 하시오.”
주민들, 노예들, 죄수들, 사도들, 제자들이 산과 해자 사이의 공터를 가득 채우고, 거기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더 높은 해자 위로 올라간다. 운이 덜 좋은 사람들은 단념하고, 이미 햇볕이 내리쬐고 있는 길로 간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가말라에서 오고, 다른 고을들에서 오거나 가말라로 가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춘다.
많은 군중이 운집해 있다. 그런데 방금 전에 떠나갔던 사람들이 군중을 헤치고 온다. 그들은 바구니들과 무거운 그릇들을 가지고 온다. 그들은 예수께서 계시는 곳까지 오는데, 예수께서는 일꾼들을 맨 앞줄에 앉게 하라고 사도들에게 명하셨다. 그들은 바구니와 항아리들을 예수의 발치에 내려놓는다.
“이분들에게 사랑의 선물을 주어라.”
예수께서 명하신다.
“이들은 이미 음식을 먹었소. 그리고 아직도 빵과 식초를 탄 물이 남아 있소. 그들이 너무 많이 먹으면 몸이 무거워져서 일하기가 힘들어요.”
감독들 중 한 사람이 외친다.
예수께서는 그를 바라보시고, 그분의 명령을 되풀이하신다.
“이 사람들에게 사람이 먹을 만한 음식을 주고, 그들의 음식은 나에게 가져오너라.”
사도들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명령을 이행한다. 그들의 음식! 짐승들이 먹기에도 부적합한 일종의 딱딱하고 검은 빵 껍질과 식초를 탄 약간의 물이다. 이것이 죄수들의 음식이다! 예수께서는 그 보잘것없는 음식을 들여다보시고, 그것을 산비탈에 놓아두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그것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 과도한 피로로 인하여 지나치게 발달한 근육만이 부어올라 탄력 없는 피부로부터 튀어나가는 것을 섬유 다발로 버티고 있을 뿐인 영양실조에 걸린 몸들, 열에 들뜨고 겁에 질려 있는 눈들, 훌륭하고 풍부한, 예기치 않았던 음식을 베어 물고, 진정 원기를 돋우어주는 신선한 포도주를 마실 때 동물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탐욕스러운 입들을 바라보신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식사를 끝내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시는데, 오래 기다리실 필요가 없다. 그들의 왕성한 식욕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해치우게 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시작하시려고 할 때 늘 하시는 대로 한 팔을 앞으로 내미신 다음 말씀하신다.
“사람의 눈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봅니까?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보다 더 깊은 계곡들, 사람이 만든 방벽들을 가진 언덕들, 짐승들의 굴처럼 산을 관통하는 꼬불꼬불한 길들을 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왜 만듭니까? 어디서 올지는 모르지만, 어두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우박을 동반한 폭풍처럼 임박해 있다고 느껴지는 위험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가장 유효한 방법인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불행들을 방어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자기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예언자의 말에 유의하지 않고, 인간적인 힘과 인간적인 수단으로, 그리고 때로 비인간적인 수단으로 자신들을 방어하고, 공격방법을 준비합니다.
그는 외칩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 예루살렘을 달래라. 왜냐하면 그 노예생활이 끝났고, 그 죄가 속죄되었으며, 예루살렘이 주님의 손에서 그 모든 죄의 곱절의 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약속한 다음에 그 약속을 실현시키는 길을 설명합니다. ‘주님의 길들을 닦고, 광야를 가로질러 하느님의 길들을 곧게 해라. 모든 골짜기는 메워질 것이고, 모든 산은 낮아질 것이며, 꼬불꼬불한 길은 곧아질 것이고, 울퉁불퉁한 길은 평평해질 것이다. 그러면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것을 볼 터인데, 주님의 입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하느님의 사람, 세례자 요한이 다시 했고, 죽음만이 그의 입술에서 이 말씀을 침묵하게 만들었습니다.
오, 여러분, 이것이 인류의 불행들에 대한 참다운 방어입니다. 무기에 대한 무기, 공격에 대한 방어, 교만이나 사나움이 참다운 방어가 아닙니다. 초자연적인 무기들, 고독한 가운데에서, 즉 개인의 내면에서, 사랑의 산을 쌓아올리고, 교만의 산꼭대기들을 깎아내리고, 정욕의 꼬불꼬불한 길을 곧게 하고, 자기의 길에서 관능적인 장애물을 치워 자기를 거룩하게 하려고 홀로 힘씀으로써 얻어지는 성덕들이 참다운 방어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고, 사람은 원수들의 영적, 물질적 덫들에 대한 하느님의 보호를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몇 개의 해자, 몇 군데의 경사면, 몇 군데의 요새가 사람의 사악함이나 냉담함이 자신들에게 초래하는 하느님의 벌을 막아줄 것이라고 기대합니까?
옛날에는 바빌로니아인, 필리스티아인, 이집트인이라고 불렸고, 지금은 로마인이라고 불리게 될 벌은 사실 다름 아닌 지나친 교만, 육욕, 탐욕, 거짓말, 이기심, 거룩한 십계명에 대한 불복종으로 받게 된 하느님의 벌입니다.
비록 사람이 가장 강한 자라 해도, 그는 파리 한 마리에 의하여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가장 요새화된 도시라도 사람과 도시에 대한 하느님의 보호가 없을 때 폭풍우에 의해서도 점령될 수 있고, 사람이나 도시의 죄들에 의하여 사라지거나 쫓겨날 수 있습니다.
예언자는 계속 말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고, 그 모든 영광은 야생화와도 같다. 주님의 입김이 그것들 위에 불면,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
여러분은 어제까지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도록 강요당하는 기계들처럼 보았던 이 사람들을 오늘 내 뜻에 의하여 동정을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오늘 내가 이 사람들을 형제들 중의 형제들로, 부유하고 행복한 여러분 가운데로 데려다놓았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사람들을 그들 본연의 모습으로 봅니다. 업신여김과 무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사라졌고, 연민이 그것들을 대체했습니다.
그러나 압제받는 그들의 육체를 넘어 그들을 더 친근하게 여기시오. 그 육체 안에, 그 육체들 안에는 여러분 안에 있는 것처럼 영혼, 생각, 감정들이 있습니다. 한때 이 사람들도 여러분처럼 건강하고, 자유롭고, 행복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사람들은 더 이상 그렇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사람의 생명이 마르는 풀과 같다면, 그의 복지는 훨씬 더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건강한 사람들이 내일 병들 수도 있습니다. 오늘 자유로운 사람들이 내일 노예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행복한 사람들이 내일 불행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 중 몇 명은 분명히 죄지었습니다. 그들의 죄들을 심판하지 말고, 그들의 속죄를 기뻐하지 마시오. 내일 여러분 자신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죄인들이 될 수 있고, 혹독한 속죄를 강요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자비를 베푸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미래를 알지 못하는데, 그 미래는 여러분의 현재와 판이하게 다를 수 있고, 여러분에게 하느님과 사람의 모든 자비가 필요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쉽게 사랑하고, 용서하시오. 하느님과 동료인간들 중 몇 명에게 용서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은 땅 위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용서받기 위하여 용서하시오.
예언자는 계속 말합니다.
‘풀은 마르고, 꽂은 시든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남는다.’
이것이 무기이고, 방어물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행동들의 규범이 된 영원한 말씀 말입니다. 임박한 위험에 대하여 그러한 진정한 장벽을 세우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 즉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는 사람을 받아들이시오. 그것을 물질적으로, 도시의 성벽 안에 단지 한 시간 동안 받아들이지 말고, 여러분의 마음속에 영원히 받아들이시오. 나는 알고, 행동하고, 권능으로 통치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에게 의지하는 양떼에게 풀을 뜯기는 착한 목자이며, 아무도, 미약한 자들도, 지친 자들도, 불운으로 상처나 타격을 입은 사람들도, 자기의 잘못들을 비통해하는 사람들도, 부유하고 행복하면서도 참된 재산과 참된 행복, 즉 죽을 때까지 하느님을 섬기는 행복을 위하여 모든 것을 무시하는 사람들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내 위에 계십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온유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상심한 사람들을 고쳐주고, 노예들에게 자유를, 죄수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도록 나를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내가 선동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반란을 선동하지 않고, 노예들과 죄수들에게 탈출하라고 권하지 않고, 사슬에 묶인 사람들과 노예들에게 참된 자유와 참된 해방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빼앗길 수도, 제한될 수도 없는 자유, 사람이 그것에 자신을 맡기면 맡길수록 더 커지는 자유, 즉 영적인 자유, 죄로부터의 해방, 고통 중에서의 온유함입니다.
나는 그에게 죄수들을 사슬로 묶는 사람들 너머 하느님을 보도록, 하느님께서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사람이 용서하지 않을 때 용서하신다는 것을 아는 자유, 불운들 속에서 착할 수 있고, 자기의 죄를 뉘우칠 수 있고, 주님께 충실할 줄 아는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으라고 가르칩니다.
여러분, 내가 지금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여러분은 울지 마시오. 나는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모으고, 그들의 어둠에 빛을, 그들의 영혼에게 평화를 가져다주고, 뉘우치는 사람들과 죄 없는 사람들 모두에게 기쁨의 처소를 약속하려고 왔습니다. 자신들이 처해 있는 상황 안에서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늘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 현재를 막을 수 있는 과거는 없습니다.
나의 불쌍한 자녀들 여러분, 주님을 섬기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그분을 섬길 수 있는 쉬운 길을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여러분이 하늘에서 행복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사랑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겉보기에는 가장 인간적인 일들에도 감추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나는 혹시라도 여러분의 형제들의 피를 흘렸을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습니다―여러분이 폭력을 휘둘렀던 것은 분명히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을지라도, 지금 여러분이 속죄를 통하여 사랑에 대한 여러분의 빚을 없애는 것은 그분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여러분의 원수들에게 반항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을지라도, 한때 여러분이 교만하여 여러분의 불행을 초래한 것만큼 겸손해지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크든 작든 여러분의 것이 아닌 것을 속여서 얻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을지라도, 여러분의 마음 안에 죄를 지닌 채 하느님께 여러분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도록 지금 벌을 받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행복한 사람들, 자신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 어리석은 안전감 때문에 자신들 안에 하느님의 나라를 준비하지 않고, 그래서 시험당할 때 아버지의 집을 멀리 떠나 고통의 채찍 아래 폭풍우에 내맡겨진 채로 있게 될 사람들도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는 정의로 행동하고, 아버지의 집을, 하늘나라를 향하여 눈을 드시오. 하늘나라의 문을 열려고 온 사람에 의하여 그것이 활짝 열리면, 그것은 의덕을 얻은 사람은 그 누구라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지가 잘리고, 절름발이가 되고, 고자가 된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 안에서 사지가 잘리고, 절름발이가 되고, 고자가 되고, 이스라엘에서 거절된 여러분도 하늘나라에서 자리를 얻지 못할까봐 두려워하지 마시오. 사지의 절단, 다리 저는 것, 신체의 손상은 육체와 함께 끝납니다. 어느 날 감옥이나 노예 신분과 같은 정신적인 것들도 끝납니다.
영혼의 장애들은 과거의 죄들의 열매인데, 그것들은 착한 뜻으로 고쳐집니다. 육체적인 절단은 하느님의 눈에는 고려되지 않고, 영적인 절단들은 다정한 뉘우침으로 덮일 때 그분의 눈에서 취소됩니다.
사람이 거룩한 민족에 속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지금 주님을 섬기는 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땅의 모든 경계들이 유일한 왕, 모든 왕들과 민족들의 왕, 모든 민족들을 그분의 새 백성으로 만들기 위하여 유일한 민족으로 모으는 왕 앞에서 사라지는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유다인들이건, 이방인들이건, 우상숭배자들이건, 모든 선의의 사람들이 따를 수 있는 주님의 십계명에 대한 거짓 순종으로 그분을 속이려고 하는 사람들만이 이 민족에서 배제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착한 뜻이 있는 곳에는 정의를 지향하는 자연적인 경향이 있는데, 의덕을 지향하는 사람은 참 하느님을 알게 되면 그분을 흠숭하고, 그분의 이름을 존경하고, 거룩한 날들을 지키고, 부모를 공경하고, 사람을 죽이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거짓 증언하지 않고, 간통죄나 간음죄를 짓지 않고, 자기의 것이 아닌 것을 탐내지 않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던 사람은 지금부터 계속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그의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고, 그가 하늘나라에서 자기의 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내 계약을 지킨다면, 나는 내 집안의 한 자리를 그들에게 마련해주고, 그들을 기쁘게 해주겠다.’ 이것은 거룩한 뜻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 관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거룩한 분들 중에서도 거룩하신 분(the Holy of Holies)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내 말은 끝났습니다. 나에게는 이 사람들에게 줄 돈이 없습니다. 돈이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쓸모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처음 만난 이후 주님의 길에서 많이 나아간 가말라의 주민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여러분은 여러분의 도시를 위하여 가장 유효한 방어물을 세워야 합니다.
즉 여러분 상호간에 사랑하고, 이 사람들이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는 동안에 내 이름으로 그들을 도움으로써 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예, 주님”
군중이 외친다.
“그럼 갑시다. 만일 여러분이 내 부탁에 대하여 여러분의 냉혹한 마음이 ‘아니오’라고 대답했다면, 나는 여러분의 도시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남아 있게 되는 여러분은 축복받기를… 갑시다…”
그분께서는 지금 해가 쨍쨍 내리쬐는 길로 돌아와 도시로 올라가신다. 이 도시는 혈거인의 도시처럼 거의 바위 안에 지어져 있는데, 잘 관리된 집들이 있고, 하우란의 산들이나 갈릴래아 바다, 멀리 대 헤르몬 산이나 초록빛 요르단 강의 계곡 등 보는 방향에 따라 다양한 경관을 가진 지극히 아름다운 도시이다.
이 도시는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독특한 양식으로 건설된 데다, 거리들이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게 되어 있어 시원하다. 이 도시는 도시라기보다는 거대한 성이나 일련의 요새와 비슷하다. 왜냐하면 반은 벽돌조이고, 반은 산 속에 파묻혀 있는 집들이 요새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모든 광장들 중 가장 높은 도시의 가장 높은 부분에 있는 중심광장에―이곳에서는 산들, 삼림들, 호수들, 강들, 아래에 펼쳐져 있는 모든 것들의 광대한 파노라마를 즐길 수 있다―가말라의 병자들이 있다. 예수께서는 지나가시면서 그들을 고쳐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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