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인들/103위 순교성인 -30일묵상

[22일]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성 남종삼 요한/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성 우세영 알렉시오(학자들의 순교)

Skyblue fiat 2025. 9. 22. 00:12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 22일 ]

 

 학자들의 순교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성 남종삼 요한/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성 우세영 알렉시오

 
 

성 유진길(劉進吉) 아우구스티노(1791-1839년 49세)
역관·학자. 9월 22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일명 용심)는 서울의 유명한 역관(譯官)이며 유대철 성인의 아버지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열심히 공부했으며, 특히 폭넓은 독서를 통해 세상 만물의 기원과 종말 등 철학적 탐구 자세로 10여 년 도교를 깊이 연구했다.

사람들은 이러한 그를 '만 권의 책을 마음에 품은 사람, 동서고금의 학문이 가슴에 가득한 인물'이라고 칭찬했지만 정작 본인은 내적 갈등과 회의, 진리를 향한 정신적 배회로 시달렸다. 1823년 우연히 옷장 속에 바른, 영혼·각혼·생혼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종이를 보고 크게 놀라 앞뒤를 맞추어 보다가 「천주실의」임을 알고, 수소문한 끝에 한 교우를 만나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그 후 성직자 영입 운동을 전개하던 정하상을 만나, 역관이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북경교회와 연락하면서 성직자 영입 운동에 참여했다. 1824년 동지사(冬至便)의 수석 역관으로 북경에 가서 세례성사를 받고 북경교회와의 연락을 담당했다. 그는 1826년 교황에게 성직자 파견을 간청하는 편지를 북경주교에게 전달하는 등 8회에 걸쳐 북경을 왕래하면서 조선교회 상황을 알렸다. 그 결과 1831년 조선교구가 설정되었고, 1833년 중국인 유방제 신부, 그 뒤를 이어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 앵베르 주교가 입국하게 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박해 초 정3품 당상역관(堂上譯官)이라는 높은 지위와 대왕대비의 오라버니 황산과의 친분으로 체포되지 않다가 황산이 죽자 7월 17일 체포되어 갖은 혹형과 고문을 받았다. 그는 서양 신부가 숨어 있는 곳을 대라며 닦달하는 것에는 함구하면서도 그들에게 교리를 설명하는 열정을 보였고, 혹독한 주리(주뢰)형과 줄톱질형을 받으면서도 의연한 자세를 지켜 믿음의 위대함을 보여주었다.

국법을 어기고 매국노와 공모한 사학의 무리라는 죄목으로 1839년 9월 22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모든 진리의 근원으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 품에 안겼다. 그의 가족과 친지들은 재산을 몰수당한 채 남쪽의 먼 섬으로 귀양 갔고, 열네 살 된 큰아들 유대철 베드로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순교하여 우리나라에서 최연소 성인이 되었다.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우리나라 모든 학자와 교직자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남종삼(南鍾三) 요한(1817-1866년 50세)
정3품 승지. 3월 7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성 남종삼 요한은 충주 지방에서 태어났다. 스물두 살 때인 1838년 문과에 급제하여 철종 때 승지까지 되었다. 조상 대대로 충신이 많았고, 조상 가운데 영의정과 좌·우의정을 지낸 재상들도 있었다. 그 또한 관직에 올라 있으면서 신앙에 지장이 있을 경우 언제든지 관직에서 물러날 것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나라에 공식 의식이 있을 때 교리에 어긋나는 조상숭배 행위에 참여해야 했으므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관직을 떠나지 못한 큰 이유 중 하나는 먼 친척에 이르기까지 온 집안의 생계를 꾸려가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단을 내려 관직을 떠나 집안을 보살피며 신앙생활에 열중하고 외국 신부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쳤다.

1863년 생활이 궁핍해지자 다시 관직에 나가 승지로 일했다. 1864년 이후 러시아 배 한 척이 함경도 국경을 넘나드는 일이 생겨 대원군이 이 문제로 고심하자 부대부인 민씨가 조선에 있는 프랑스 선교사에게 이 일을 의뢰하기 위해 남 요한을 불러 베르뇌 주교와 상의코자 했다. 그러나 베르뇌 주교는 서울을 떠난 후였고, 평안도에서 이 소식을 듣고 주교가 급히 상경했지만 이미 러시아인들이 물러간 후여서 침략의 위험이 사라진 때였다.

천주교를 반대하던 대신들의 탄원으로 1866년 천주교 박해령이 내렸다. 이때 남 요한이 체포되었으며, 의금부에 국청이 마련되어 그는 여섯 번에 걸쳐 베르뇌 주교와 다블뤼 주교 등 다른 교우들과 함께 엄중 문초를 받았다. 그는 1866년 3월 7일,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홍봉주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하늘나라에서 순교 성인이란 지위를 얻었다.

성 남종삼 요한과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남종삼 요한과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우리나라 모든 정치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정(鄭)문호 바르톨로메오(1801-1866년 66세)

원님. 12월 1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일명 계식)는 충청도 임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많이 하여 고을 원님까지 지냈다. 그는 학식과 교양을 겸비해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었으나 세례 받은 뒤에 모든 관직을 버렸다.

그는 품행이 단정하고 성격이 강직하여 신자뿐 아니라 비신자들한테까지 존경을 받았다. 박해를 피해 고향을 버리고 여러 지방을 유랑하며 살다가 병인박해 때는 전주 지방 교우촌 대성동 신리골에 살았다.

1866년 12월 초 사람들을 시켜 전주 감영 동태를 살피러 보냈으나 그 소식을 듣기 전인 12월 5일 대성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한재권·손선지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12월 1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순교하기 전 옥중에서 기도로 순교를 예비했고, 형장에 끌려가면서도 "오늘은 우리가 천국으로 과거 보러 가는 날이다. 오늘은 정말 기뻐해야 할 날이다.” 하며 진심으로 순교를 기뻐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주님께 바쳤다.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우리나라 모든 공직자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우세영(禹世英) 알렉시오(1845-1866년 22세)
진사시 합격자. 3월 11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

성 우세영 알렉시오(일명 세필)는 황해도 서흥 향교골에서 태어나 총명한 재주로 열여덟 살 때 진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우연히 만난 김기호 회장의 가르침과 권면을 받아들여 관직에 대한 뜻을 버리고 입교를 결정했다.

그는 서울로 올라와 정의배 회장에게 교리를 배워 베르뇌 주교에게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와 천주교를 반대하던 부모와 가족을 인내와 열정으로 입교시켰고,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평안도 논재로 이사하여 가족과 함께 열심히 계명을 지키며 신앙생활을 했다.

1866년 2월 16일 이웃 마을 고둔리 공소에서 축일을 지내다가 유정률 등 5명의 교우와 함께 체포되었으나 평양감영에서 혹형을 이겨내지 못하고 배교했다. 그러나 석방되자 배교한 것을 크게 뉘우치고 스승 정의배를 만나기 위해 상경했다가 정의배의 집을 지키던 포졸들에게 자수했다. 3월 11일 정의배와 함께 새남터에서 군문효수로 순교하여 천국의 과거에 훌륭하게 급제했다.

성 우세영 알렉시오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우세영 알렉시오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시여, 우리나라 모든 학생, 특히 신학생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학자들의 순교

우리 순교성인들은 참으로 신분과 직업이 다양하여 성인들의 간략한 전기를 읽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 오늘 우리가 만난 네 분 성인은 모두 관직이나 학문에 뜻을 두었고 높은 벼슬을 지낸 분도 있다.

유진길 성인은 참으로 박식한 학자였다. 철학까지 깊이 공부했지만 「천주실의」를 읽으면서 인생관과 우주관이 완전히 바뀌어 신앙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순교까지 했다. 이렇게 훌륭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가장 나이 어린 유대철 성인이 태어났다. 유진길 성인은 우리나라 모든 대학교수와 교사의 수호 성인으로 모시기에 합당한 분이다.

높은 벼슬을 지낸 남종삼 성인은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고 대 가족의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했다. 정치인과 공무원은 이 성인에게 특별히 기도를 바쳐 자신의 영리나 명예만을 생각하는 치졸한 정치인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원님을 지낸 정문호 성인은 강직한 성품으로 존경을 받았고, 우세영 성인은 학문과 관직에 뜻을 두었다가 신앙생활에 맛들여 끝내는 순교까지 했다.

오늘 네 분 성인을 만난 우리는 참된 진리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얄팍한 지식을 내세워 오만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어떠한 지식이나 기술이든 배운 것은 사회의 참된 발전을 위해 다시 활용하고 전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교직에 있는 사람이나 지성인한테도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도록 충고해야 한다.

네 분 성인의 도움으로 한국 천주교회 안에 수많은 학자가 배출되고 우리 조상의 순교정신을 더욱 깊이 연구하기를 바란다.

 

 


-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박도식 엮음 / 바오로딸
  (그림자료: 의정부교구 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