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베르나르도 성인 『아가에 대한 강론』의 "입맞춤" 상징 해석

Skyblue fiat 2025. 8. 21. 19:39

 

Commentary on the Song of Songs*St Bernard'

 

베르나르도 성인의 영성을 관통하는 키워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베르나르두스의 신학이자 영성의 핵심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베르나르두스는 저서 「하느님을 사랑함(De diligendo Dei)」에서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어가는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인간 영혼이 사랑 안에서 성장하는 과정 4단계 설명

 

첫 번째로, 나약한 인간은 이기적이지만 자신을 위해서 자신을 사랑합니다.

두 번째로, 여전히 인간은 이기적이지만 자신을 위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세 번째로,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하느님을 더 알게 된 인간은 드디어 하느님을 위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네 번째로, 진정한 사랑의 단계에 다다른 인간은 하느님을 위해서 자신을 사랑하는 행복한 순간을 맞게 됩니다.

 

베르나르두스는 「아가」 12장을 86편으로 구성한 저서 「아가 강론(Sermones super Cantica Canticorum)」에서 입맞춤이라는 상징으로 사랑 개념을 통해 인간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하는 신비체험을 강조했습니다. 

 

 "입맞춤" 상징 해석

 

첫 번째로, 인간은 예수님 발에 입맞춤을 하는데, 이것은 영성 생활을 시작하는 회개의 단계입니다. 

두 번째로, 인간은 예수님의 손에 입맞춤을 하는데, 이것은 영적 여정을 걸으며 영성 생활이 발전하는 단계입니다. 

세 번째로, 인간은 예수님의 입에 입맞춤을 하는데, 이것은 영성 생활이 완전한 상태에 다다른 사람에게 허락되는 매우 드문 단계로써 「아가」의 출발점입니다. 

 

따라서 베르나르두스도 ‘사랑-신비체험’을 언급하면서, 지나치게 지성적인 신학 활동으로 기우는 것보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관상 생활을 실천하는 것이 영성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베르나르두스는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참고: 굿뉴스 모바일 전영준 신부님 칼럼


 

x St Bernard On The Song Of Songs.pdf   (베르나르도 성인의 강론 영어판 전문)

 

 

베르나르도 성인의 제2강론 — 입맞춤의 여러 의미

1. 나는 자주 옛 조상들, 곧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불타는 열망으로 기다리던 성인들의 마음을 묵상합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부끄러움과 슬픔에 찔립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시대의 미지근함과 나태와 무관심은 그때의 간절한 열정을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거룩한 사람들은 오직 약속 하나만으로도 그토록 불타는 갈망으로 살았는데, 정작 우리는 이미 성탄의 완성을 보고도 깊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곧 다가올 성탄 축일을 우리는 기쁨으로 맞이할 것이지만, 과연 그 기쁨이 진정으로 아기 예수의 탄생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이 내 안에서 불을 지피기를 기도합니다. 곧 “그가 입맞춤으로 내게 입맞추기를 바라라”(아가 1,2). 구약의 의인들은 장차 메시아의 입술에서 흘러나올 은총의 풍요로움을 미리 예감하며 뜨겁게 원했습니다. 그래서 한결같이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그분의 말씀, 곧 입맞춤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2. 그 시절의 신실한 영혼은 이렇게 속으로 말합니다.

“예언자들의 긴 말은 이제 충분하다. 나는 그 약속의 말씀을 실체로 확인하고 싶다. 모세는 혀가 둔하여 더듬고, 이사야는 부정한 입술을 가졌다고 했고, 예레미야는 어린아이처럼 말문이 막혔다. 그 누구도 내 마음을 꿰뚫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증언하는 바로 그분, 인자 중 인자, 최고로 아름다운 그분께서 친히 오셔서 내게 말씀해 주시기를 원한다. ‘그가 입맞춤의 입맞춤으로 내게 입맞추라.’

내게는 비유나 환상이 필요 없다. 천사의 아름다움도, 선지자의 목소리도 내 영혼을 채우기에는 부족하다. 오직 예수만이, 주님 자신이 원천에서 솟구치는 샘처럼 내 영혼 안으로 생명을 흘려보낼 수 있다. 그는 은총을 흘려보내시는 분, 하늘의 지혜를 가득 부으시는 분, 그의 입맞춤은 단순한 입술의 닿음이 아니라 내 영혼을 빛으로 물들이는 신비의 충만이다. 그것은 곧 하느님의 빛과 사람의 정신이 하나가 되어 ‘하느님과 합하여 한 영이 된다’는 거룩한 일치다.”

 

3. 여기에서 주목할 표현이 있습니다. 성인들은 감히 “그의 입으로 나에게 입맞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의 입맞춤으로.” 이는 신비의 구별을 드러냅니다.

  • “입”이란 성육신하신 말씀, 곧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 본성을 취하시는 일이요,
  • “입맞춤”은 주고받음 속에서 태어난 새로운 실재, 곧 하느님과 사람이 하나가 된 중재자, 그리스도 예수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거룩한 입맞춤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놀라운 신비입니다. 하늘과 땅이 결합되고, 신성과 인성이 참으로 합쳐지는 사건. 곧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시키신” 성육신의 신비입니다. 이것을 하느님 백성은 목말라 기다렸던 것입니다.

 

4–7. 예언자들은 이미 수없이 평화를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기다림 속에 백성의 믿음은 흔들리고, 원망과 회의가 자주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호소합니다.
“언제까지 약속만 들려 주겠습니까? 평화를 약속하시면서도 여전히 불행만 닥칩니다. 주님, 이제 직접 말씀해 주십시오. 친히 내려오셔서 입맞춤으로 우리와 화해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사람들은 점점 더 열망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아들께서 친히 사람이 되셔서 내게 오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나는 확신할 것입니다. 그분이 나의 형제가 되고, 나의 살과 피를 함께 나누시는 분이라면 나는 외면당하지 않으리라.”

이렇듯 조상들의 불만과 갈망은 결국 성육신의 신비, 곧 “입맞춤”을 요청하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8. 드디어 “평화의 입맞춤”은 아기 예수의 모습으로 세상에 주어졌습니다. 시메온은 그 표징을 보고 “주여, 이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하소서”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언했습니다. “이 아기는 반대받는 표징이 될 것입니다.”

참으로 그러했습니다. 평화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에게 그분은 걸려 넘어지는 돌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목자들에게는 천사의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오늘 너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으니…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곧 구유에 누운 아기가 바로 하느님의 성육신이요, 세상을 화해시키는 거룩한 입맞춤이었습니다. 그분은 죽음으로 우리 죄를 없애시고 부활로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과 화해하는 평화의 표징’이 마침내 드러난 것입니다.

 

9. 이제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이 거룩한 입맞춤, 곧 성육신하신 중재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흔들리던 믿음을 굳세게 하기 위하여,
둘째, 열망하던 성인들의 갈망을 채워 주시기 위하여.

그리고 이 입맞춤은 곧 주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인간으로 오신 참 하느님, 성부와 성령과 함께 영원히 다스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아멘.


 

[“입맞춤의 주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예: 성체 성사, 기도 생활, 관상생활과의 연결)]

참고: [교부들의 성경주해] (151) 아가 (4) 교회의 입맞춤은 사랑의 표시

 

입맞춤(아가서의 "입맞춤"에 대한 교부적 영해)은 천주교 전통에서 성체 성사, 기도 생활, 관상생활과 깊이 연결되어 해석·활용되어 왔습니다.

 

1. 성체 성사(영성체)와의 연결

  • 입맞춤은 영혼과 하느님, 신자와 그리스도 간의 내밀한 결합을 상징합니다.
  • 실제로 교부들은 “영성체의 순간, 우리는 신랑의 손발을 안고, 그분을 껴안고 입맞추듯,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하나가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영성체를 '입맞춤'으로 묘사함으로써, 단순히 육의 양식을 받는 것 그 이상, 영혼의 일치와 사랑의 참여임을 강조합니다.

2. 기도 생활과의 연결

  • 기도란, 신자와 하느님, 말씀과 영혼이 입맞춤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 하느님의 말씀(성서, 복음, 가르침)이 영혼 깊이 받아들여질 때, 기도를 통해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듣고' 입술을 맞추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 교회는 “그분의 말씀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며 마음에 간직한다”고 표현합니다. 이는 묵상적·대화적 기도가 곧 하느님의 입맞춤을 갈망하는 행위임을 시사합니다.

3. 관상생활(영적 묵상) 및 신비 체험

  • 입맞춤은 관상(Contemplatio), 곧 하느님과 영혼이 신비 안에 일치하는 궁극의 상태로 풀이됩니다.
  • 성 베르나르도는 “입 맞추시는 분(성부), 입맞춤 받는 분(성자), 그리고 입맞춤 자체(성령)”라는 비유로 이 신비를 해설합니다. 삼위일체적 사랑의 일치 속에서 영혼이 하느님의 불 속에 녹아드는 것, 그 자체가 거룩한 입맞춤이라 하였습니다.
  • 입맞춤은 단순한 애정의 몸짓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agape)과 평화, 은총이 내적으로 나눠지는 표징입니다.
  • 참고:  성령 칠은七恩과 아홉 열매 – 벤지
 

성령 칠은七恩과 아홉 열매 – 벤지

 

benjikim.com

 

 

4. 전례(미사)와 교회공동체의 의미

  •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로마 16,16 등)는 말씀처럼, 신자들 사이의 형제적 사랑·화해·일치를 의미합니다.
  • 이는 미사에서 평화의 인사, 성사적 친교, 교회 공동체의 영적 친밀함으로 구현됩니다.

정리

  • 입맞춤은 단순히 감각적 표현, 은유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 이는 곧 “하느님의 신비에 참여하는 영혼의 체험, 사랑과 평화의 일치, 성체 성사와 관상적 기도, 교회의 공동체성” 등 신앙 전체를 아우르는 깊은 상징입니다.

 

  • “입맞춤은 사랑의 표시, 영혼과 말씀의 결합, 교회의 주님에 대한 타오르는 그리움, 영성체에서 그리스도를 껴안는 체험, 기도·묵상에서 말씀과의 일치 등 신앙 전체를 아우르는 신비입니다.”(가톨릭평화신문, 교부들의 성경주해)

 

  • “입 맞추시는 분(성부), 입맞춤 받는 분(성자), 입맞춤 자체(성령) — 나뉠 수 없는 사랑의 일치이자 평화, 삼위일체의 신비적 상징.”(성 베르나르도, 아가 설교 8편, 인용)

 

  • “입맞춤은 화해의 표시이자 신뢰와 애정, 평화의 인사 — 공동체 안에서의 거룩한 일치와 사랑의 상징.”(cpbc 신문, ‘성경 속 궁금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