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복음 준비
49. 목자들의 경배
나는 스승이신 예수님 앞에서 글을 쓰고 있다.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나를 위하여, 그렇게도 오랜 세월 후에,
나를 위하여, 순전히 나를 위하여 돌아오신 스승 예수님, 여러분은 아마 내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아니, 무슨 소리냐? 네가 다시 듣고 보고 하는 것이 거의 한 달이 되었는데, 그렇게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마침내 예수님을 맞이했다고 말하다니?” 나는 내가 말과 글로 여러번 말한 것을 다시 한번 대답하는 것이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은 다른 것이고, 특히 남들을 위하여 보고 듣는 것과, 순전히 나를 위하여, 나만을 위하여 보고 듣는 것은 다르다. 첫째 경우에는 나는 구경꾼이고 내가 보고 듣는 것을 옮기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것이 내게 기쁨을 주지만 -그것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주는 일들이니까- 그것이 외적인 기쁨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말들은 내가 그렇게도 잘 느끼는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이상 더 낫게 내 감정을 표현할 줄을 모른다. 요컨대 내 말은 내 기쁨이 훌륭한 책을 읽거나 아름다운 광경을 보는 어떤 사람이 느끼는 기쁨과 비슷하다는 뜻이다. 그 사람은 그 기쁨으로 감격하고, 그것을 맛보고 그 기쁨의 조화를 감탄하며 생각한다. “저 사람이 있는 처지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런데 둘째 경우에는 듣고 보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면, 그 때에는 “그 사람”이 나이다. 그 사람이 나에게는 내가 듣는 말이고, 내가 보는 얼굴이다. 나와 그분이고. 나와 마리아이고, 나와 요한이다. 살아 있고, 참되고, 실제적이고 아주 가까이 있는 분들이다. 영화필름이 돌아가는 것을 보는 것처럼 내 맞은편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살아 있는 사람들같이 내 침대 곁에, 방안을 왔다갔다 하거나 가구에 기대거나 앉거나 서거나 하는 사람들. 내 손님들이다. 이것은 누구나가 보는 환상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요컨대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니 어제 오후부터 예수님은 여기 계시다. 상아빛을 띤 흰 모직으로 지은 그분의 보통 옷을 입고 계신데, 그 옷은 하늘에서 입고 계신 옷, 너무 희어서 빛의 실로 짰다고 할 수 있을 비물질적인 아마포로 지은 것 같은 빛나는 옷과는 무게와 빛깔이 사뭇 다르다. 예수님은 여기에 오래된 상아빛 같이 흰 아름답고 길고 날씬한 손을 가지고, 적갈색을 띤 번쩍이는 밤색 속눈썹 사이에서 짙은 청옥색의 위압적이면서도 부드러운 눈이 빛나는 길고 흰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계시다. 예수님은 여기에 길고 부드러운 아름다운 금발을 가지고 계시다. 해가 닿는 부분은 더 선명하고 굽이진 안쪽에는 더 어두운 적갈색 금발이다. 예수님은 여기 계시다! 그분이 여기 계시다! 나를 보고 미소하시고, 당신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신다. 비아렛지오(Viareggio)에서 하시던 것과 같이... 또 성주간 후부터는 안하시던 것과 같이...성주간부터는 그분이 내게 열병이 되는 그 모든 슬픔을 주셨다. 그 슬픔은 그분을 잃은 고통에다 적어도 내가 그분을 보았던 그곳에서 살기만이라도 하는 기쁨을 빼앗기는 고통이 덧붙여졌을 때에는 거의 절망이 되었었다. 나는 그분을 본 그곳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가 있었다. “여기에 그분이 기대셨다. 여기서는 앉으셨고, 여기서는 몸을 굽혀 내 머리에 손을 얹으셨다”고. 또 그곳은 내 가족들이 세상을 떠난 곳인데. 아아 ! 그런 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다, 이 모든 호의를 누리겠다고 주장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가 받을 자격이 없는 거저 주는 은총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 은총들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그것들이 오래 계속되기를 바랄 수도 없다. 우리는 이것을 잘 안다. 그래서 그 은총을 우리가 많이 받으면 많이 받을수록 우리에게 주어지는 무한한 아름다움과 하느님의 부 앞에서 우리의 혐오를 일으키는 비참을 인정하면 우리를 한층 더 겸손하게 낮추게 된다.
그러나 신부님, 무슨 말씀을 하시렵니까? 아들은 아버지 어머니를 보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내는 남편을 보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그리고 죽음이나 또는 오래 떨어져 있음으로 인하여 그들을 보지 못할 때에는 그들이 살았던 곳에서 산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지 않습니까? 만일 그곳을 떠나야 한다면, 거기 없는 사람이 그들의 사랑을 같이한 장소도 잃었기 때문에 이중으로 고통을 당하지 않습니까? 이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비난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제 경우에는요? 예수님이 제 아버지요 정배가 아니십니까? 아버지나 남편보다도 더 소중하고, 훨씬 더 소중한 분이 아니십니까? 그리고 예수님이 제게 그런 분이시라는 것은 제 어머니의 별세를 어떻게 참아 견디었는지를 가지고 판단하십시오. 저는 정말 고통을 당했습니다. 아시지요? 저는 어머니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사랑했기 때문에 아직도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고비를 어떻게 넘기는지 보셨지요? 예수님이 거기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게 어머니보다도 더 소중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저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괴로웠던 것보다 여덟 달이 지난 어머니의 죽음을 지금 더 괴로워합니다. 이것은 지난 두 달 동안 나를 위해 예수님을 모시지 못했었고, 나를 위해 성모 마리아를 모시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분들이 저를 잠시 내버려두시기만 해도 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병든 고아로서의 제 슬픔을 더 느끼게 되고, 그 무정한 날들의 인간적인 쓰라린 고통에 다시 잠기게 됩니다.
나는 예수님이 보시는 앞에서 글을 쓴다. 그러므로 과장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왜곡하지 않는다. 하기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내 방식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그런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시선 아래서 그런 사람으로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그렇게 해버릇하지 않던 이곳에서 썼다. 그것은 성모 마리아에 대한 환상은 보잘 것 없는 나를 나타내는 것으로 중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성모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한다는 것을 벌써 알고 있다. 성모 마리아의 모성이 모든 순간에 영광의 화관이 아니었던가? 나는 대단히 병든 몸이고 글을 쓰는 것이 매우 고통스럽다. 나는 기진맥진해 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가 더 사랑을 받으시도록 알려야 하는 때에는 나는 계산을 하지 않는다. 어깨가 아픈가? 심장이 약해지는가? 머리가 아픈가? 열이 오르는가? 상관없다! 마리아가 내가 보는 것과 같이 하느님의 인자와 당신의 착함으로 지극히 아름답고 다정스러운 분으로 알려지기만 하면 나로서는 만족이다.
나중에 나는 넓은 들판을 본다. 달은 중천에 올라와서 별이 총총 박힌 하늘을 조용히 지나간다. 별들은 짙은 파란색 벨벳으로 만든 거대한 천개에 박힌 금강석 못같이 보인다. 그리고 달은 한가운데에서 그 새하얀 얼굴로 웃고 있는데, 그 얼굴에서는 젖빛을 띤 광선이 강물처럼 내려와 풍경을 온통 흰빛으로 감싼다. 잎이 떨어진 나무들은 이 흰 빛깔 위에 더 크고 우중충하게 부각되고, 여기저기에 나타나는 낮은 담장들은 엉긴 우유와도 같다. 멀리 있는 작은 집은 까라라(Carrara)*의 대리석 덩어리 같다.
내 오른쪽으로는 양쪽은 가시덤불로 된 울타리가 쳐져 있고, 나머지 양쪽은 낮고 투박한 담으로 둘러쳐진 곳이 보인다. 이 담은 일종의 창고 지붕을 받치고 있는데, 그 창고는 울타리 안쪽에 일부분은 돌로 지어졌고, 일부분은 나무로 되어 있어서, 여름에는 나무로 된 부분을 치워서 창고가 문으로 변하는 모양이다. 거기서는 가끔 단속적이고 짧은 양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꿈을 꾸거나 달빛 때문에 새벽이 가까운 줄로 생각하는 양들인 것이다. 그것은 지나치다고까지 할 만큼 강렬한 빛인데, 그 천체가 땅에 가까이 오거나 알 수 없는 화재로 인하여 번쩍이는 것같이 점점 더 밝아진다.
목자 한 사람이 문지방으로 나아온다. 그는 눈을 보호하기 위하여 팔을 이마높이까지 올리고 공중을 쳐다본다. 달빛에 눈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러나 그 달빛이 어떻게나 강렬한지 눈이 부시다. 특히 일반적으로 컴컴한 울 안에서 나오는 사람은 눈이 부시다. 목자가 동료들을 부르니 모두 문으로 나온다. 각 연령층과 덥수룩한 남자 한떼다. 청소년들도 있고 벌써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이상한 사실을 이리쿵저리쿵 말하는데 나이가 더 어린 사람들은 무서워하고, 특히 열 두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은 울기 시작하여 나이 많은 사람들의 놀림을 받는다.
“뭐가 무서우냐? 바보야”하고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 말한다.
“하늘이 조용한 걸 보지 못하니? 넌 달빛을 본 일이 한번도 없단 말이냐? 넌 알을 품은 암탉의 날개 밑에 있는 병아리처럼 늘 엄마 치마꼬리나 쥐고 있었단 말이냐? 하지만 너 별별일 다 보게 될 거다! 내가 한번은 레바논 산맥 쪽으로 훨씬 더 멀리 가고 있었다. 난 올라가고 있었다. 난 젊어서 걸어도 피곤하지가 않았지. 그 시절에는 내가 부자이기도 했지. 어떤 날 밤, 난 빛을 보았는데 그 빛이 어떻게나 강한지 난 엘리아가 불수레를 타고 돌아오려나 보다고 생각했다. 하늘이 온통 불타고 있었다. 한 노인이 -그 노인은 엘리아였다-내게 이렇게 말했다. ‘멀지 않아 세상에 큰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하고. 그리고 우리에겐 그것이 로마 군인의 도착이라는 사건이었다. 아! 너도 오래 살면 별일 다 볼 거다....”
그러나 목동은 더 이상 노인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가 이제는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다. 과연 그는 문지방을 떠나 그 뒤에 숨어 있던 실팍한 목자의 어깨 뒤에 살짝 빠져 나와서 헛간 앞에 있는 울막은 목장으로 나온다.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몽유병자같이 또는 그를 온전히 사로잡는 어떤 것에 정신을 빼앗긴 것같이 걸어간다. 어느 순간 그는 “오!”하고 외친다. 그리고 팔을 약간 벌리고 화석된 것같이 서 있다. 다른 목자들은 놀라서 서로 바라본다.
“아니 대관절 저 바보가 왜 저러지?”하고 누군가 말한다.
“내일 저 녀석을 제 어머니한테 도로 데려다줄 테다. 미친놈한테 양들을 지키게 하기는 싫거든.”하고 다른 한 사람이 말한다.
그러자 앞서 말한 적이 있는 늙은이가 이렇게 말한다. “가서 보고 나서 판단하세. 자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깨우고 몽둥이들을 가져오게. 어쩌면 못된 짐승이나 강도들이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들은 도로 들어가서 다른 목자들을 불러 가지고 횃불과 곤봉들을 들고 나온다. 그들은 아이 있는 곳으로 간다.
“저기, 저기”하고 어린 아이는 미소지으면서 말한다.
“나무 위에 있는 저 불빛을 보세요. 달빛을 타고 오는 것 같아요. 가까이 오고 있어요. 아이고 참 아름답기도 하다!”
“나는 좀 더 환한 불빛 밖에 보이지 않는데.” “나도.” “나도”하고 다른 목자들이 말한다.
“아니야. 난 몸둥이 같은 물건이 보이는데”하고 또 다른 사람이 말하는데, 그는 마리아에게 양젖을 준 목자임을 알아본다. “처... 천사예요!” 하고 어린 아이가 외친다. “내려와 가까이 오고 있어요... 땅에 엎드리세요! 하느님의 천사 앞에 무릎을 꿇읍시다!”
목동들의 무리에서 길고 공손한 “오!”소리가 들리고, 그들은 얼굴을 땅에 박고 엎드리는데, 그들은 나이를 더 먹은 만큼 이 발현에 더 놀란 것 같다. 더 젊은이들은 무릎을 꿇고 천사를 쳐다보는데, 천사는 점점 가까이 와서 큰 날개를 펴고 둘러친 담 위 공중에 멈춰 선다. 날개는 천사를 둘러싸고 있는 흰빛 속에서 횐 진주빛으로 빛난다.
“두려워 마시오, 나는 당신들에게 불행을 가져오지 않아요.
나는 이스라엘 백성과 이 세상의 모든 백성에게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하러 왔습니다.”
천사의 목소리는 밤꾀꼬리의 목소리를 반주하는 듣기 좋은 하프소리 같다.
“오늘 다윗 고도(古都)에 구세주가 나셨습니다.” 이 말을 하면서 천사가 날개를 더 활짝 펴고 기쁨으로 마음이 설레는 것같이 날개를 흔드니 빛나는 금은 보석이 비오듯 쏟아지는 것 같다. 초라한 목장 위에 개선문을 그려 놓는 참다운 무지개이다.
“그리스도이신 구세주가 나셨어요.” 천사는 더 반짝이는 빛으로 빛난다. 이제는 움직이지 않고 하늘을 향하고 있는 그의 두 날개는 청옥색 바다 위에 움직이지 않고 있는 두 폭의 돛과 같고, 타고 있는 두 줄기 불꽃같다.
“...그리스도, 주님!” 천사는 빛나는 그의 날개를 접고, 마치 진주로 지은 옷을 금강석으로 지은 웃옷으로 가리듯이 날개로 몸을 가리고, 가슴을 두팔로 감싸고 경배하기 위한 것처럼 숙였기 때문에 접힌 날개 윗부분에서 드리워진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다. 이제는 대영광송(Gloria) 한번 욀 만한 동안 움직이지 않는 길고 빛나는 형체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천사가 움직인다. 그는 날개를 다시 펴고, 빛이 천국의 것과 같은 미소로 피어나는 얼굴을 들고 말한다. “당신들은 이런 표로 그분을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베들레헴 뒤편에 있는 초라한 외양간에서 당신들은 배내옷에 싸여 짐승들의 구유에 누여 있는 아기를 볼 것입니다. 메시아에게는 다윗 고도에는 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이 말을 하면서 천사는 엄숙해 지고 침울해 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하늘에서 그와 비슷한 천사들의 무리가 -아아! 얼마나 굉장한 무리인가!- 내려온다. 천사들이 환희하며 사닥다리 모양으로 내려와 그들의 낙원의 것과 같은 빛으로 달빛을 보이지 않게 한다. 천사들은 예수의 탄생을 알린 천사 둘레에 모여서 날개를 흔들고 향기를 풍기며, 음악적인 화음을 들려주는데, 거기에는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가 모두 모여 있으나, 천천히 낭랑한 목소리들이다. 그림이 빛이 되려는 재료의 노력이라면, 여기서는 아름다운 곡조가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음악의 노력이며, 이 아름다운 곡조를 듣는 것은 천국을 아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모든 것이 사랑으로 조화되는데, 이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나와 지복을 누리는 사람들에게 퍼지고, 그들에게서 하느님께로 돌아와 “저희들은 당신을 사랑합니다!”하고 말하는 것이다.
천사들의 “영광” 노래는 점점 더 번지는 음파로 고요한 들판에 빛과 같이 퍼진다. 새들도 이 빛을 환영하기 위하여 그들의 노래를 합치고 양들도 미리 찾아온 이 태양을 맞이하기 위하여 그들의 울음소리를 곁들인다. 그러나 나는 이미 동굴에서 소와 나귀에 대하여 생각했던 것처럼, 이것은 짐승들이 사람으로서뿐 아니라 하느님으로서 그들을 사랑하시려고 그들 가운데 오신 그들의 창조주께 인사를 드리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천사들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동안 노래소리도 작아지고 빛도 줄어든다... 목자들은 다시 제 정신이 된다.
“들었어?”
“가볼까?”
“짐승들은 어떡하구?”
“뭐! 별일 없을 거야.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게 가세!‥‥”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하지?”
“아기가 오늘 났구, 또 베들레헴에서 방을 구하지 못했다구 천사가 말하지 않았어?”
그러자 이번에는 양젖을 준 목자가 말한다. “가세 내가 아네. 나는 이 여자를 보았는데, 불쌍한 생각이 들었네. 나는 이 여자가 방을 얻지 못할 걸로 생각했기 때문에 여자를 위해 어떤 장소를 일러주었어. 그리구 남자에게는 여자에게 먹이라고 양젖을 주었어. 그 여자는 아주 젊고 대단히 아름다워. 우리한테 말한 천사만큼 착할 게 틀림없어. 양젖과 치즈와 어린 양과 무두질한 양가죽을 가지러 가세. 그 사람들 틀림없이 매우 가난할 거야, 그런데 내가 감히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아기가 얼마나 추울 지 누가 아나! 그리고 내가 아기 어머니에게 하찮은 여인에게 말하는 것처럼 말한 것을 생각하니!”
그들은 헛간으로 간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어떤 사람은 양젖 그릇을. 어떤 사람은 골풀로 짠 그물에 싼 둥근 치즈를, 어떤 사람은 매애매애 하고 우는 어린 양을, 어떤 사람은 마무리를 한 양가죽들을 가지고 나온다.
“나는 한 달 전에 새끼를 낳은 양을 가지고 가네, 요놈 젖이 아주 훌륭하거든, 만일 여자가 젖이 부족하면 양젖이 대단히 유익할지도 몰라, 그 여자는 아주 어려 보였어, 아주 창백하구! 달빛을 받은 쟈스민 빛깔이었어”하고 양젖을 준 목자가 말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한다.
그들은 헛간과 울타리 문을 닫은 다음 달빛과 횃불로 길을 밝히며 간다. 그들은 들판의 오솔길로 해서, 겨울이라 잎이 떨어진 가시나무 울타리들 사이로 지나간다. 그들은 베들레헴을 한 바퀴 돌아서 외양간에 이르렀지만, 마리아가 온 길로 해서 오지 않고 반대쪽으로 해서 왔다. 그래서 그들은 더 낫게 정돈된 동굴들 앞을 지나지 않고, 그들이 찾는 피신처를 곧 발견한다. 그들은 구멍으로 가까이 간다.
“들어가!”
“난 못들어가겠어.”
“자네가 들어가게.”
“아니.”
“들여다보기라도 해.”
“천사를 제일 먼저 본 레위, 너는, 그러니까 우리보다 낫다는 표니, 네가 들여다 보아라.”
정말이지 그들이 처음에는 꼬마를 미치광이로 취급하였으나 지금은 그들이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을 꼬마가 하니 그들에게 쓸모가 있다.
소년은 망설이다가 결단을 내린다. 그는 피신처로 가까이 가서 겉옷을 조금 젖히다가... 황홀해서 딱 멎는다.
“뭣이 보이니?”하고 그들은 작은 목소리로 걱정스럽게 묻는다.
“아주 젊고 예쁜 여자와 구유에 몸을 숙이고 있는 남자가 보여요. 그리고 소리도 들려요. 아기 우는 소리하고 여자가 아기에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요. 아이고 기가 막힌 목소리예요!”
“뭐라고 하니?”
“이렇게 말해요. ‘내 아기 예수야! 네 엄마의 사랑 예수야! 울지 말아라, 아가!’ 여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아아! 네게 <아가, 젖 먹어라>하고 말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니! 그렇지만 젖이 아직 안나온단다!’하고. 또 이렇게 말해요. ‘내 사랑아, 몹시 춥지! 건초가 찌르지. 네가 이렇게 우는 소리를 들으니 엄마는 얼마나 괴로운지 모르겠다!’ 또 이렇게 말해요. ‘내 어린 것아, 자거라! 네 우는 소리를 듣고 네 눈물을 보니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구나.’ 여자는 아기에게 입맞추고 손으로 그 작은 발을 녹여 주고 있어요. 구유에 손을 내리뜨리고 몸을 숙이고 있어요.”
“불러라! 네가 거기 있다는 걸 알려라!”
“난 싫어요. 차라리 우리를 인도했고 저 여자를 아는 아저씨가 부르세요.”
목자는 입을 벌리고 요란한 한숨만 내고 만다.
요셉이 몸을 돌려 문으로 나온다. “누구요?”
“목자들입니다. 먹을 것과 양털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구세주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들어들 오시오.” 그들이 외양간으로 들어가서 외양간이 횃불로 환해진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젊은이들을 앞으로 민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미소를 보이며 “오세요” 하고 말한다. “오세요!”하고 말하면서 마리아는 손과 미소로 그들을 권유하고, 천사를 본 소년을 잡아 구유 아주 가까이에 있는 자기에게로 끌어당긴다. 그러자 소년은 기뻐하며 들여다본다.
다른 목자들도 요셉의 권유로 선물들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온다. 그리고 짤막한 감격의 말을 하며 선물들을 마리아의 발 앞에 내려놓는다. 그런 다음 가만히 울고 있는 갓난 아기를 들여다보며 감격하고 행복해서 미소짓는다.
그중에서 더 대담한 사람이 말한다.
“아기 어머니, 받으세요, 이건 부드럽고 깨끗합니다. 나는 이걸 오래지않아 우리 집에서 날 아기를 위해 준비했던 것이지만, 당신께 드립니다. 아드님을 이 양털 속에 누이세요. 부드럽고 따뜻할 겁니다.” 그러면서 양가죽 한 장을 바친다. 털이 새하얗고 긴 매우 아름다운 양가죽이다.
마리아는 예수를 들어올려 양가죽으로 싼다. 마리아가 아기를 목자들에게 보이니, 이들은 땅바닥에 깔린 건초 위에 무릎을 꿇고 황홀해서 쳐다본다.
그들은 더 대담하게 되어, 그 중 한 사람이 제안한다. “아기에게 양젖 한 모금이나 더 낫게는 꿀물을 좀 주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꿀이 없어요. 갓난 아기들에게는 꿀을 주는건데. 난 아이가 일곱이나 있기 때문에 그런 걸 알지요.”
“여기 양젖이 있어요. 아기 엄마, 받으세요.”
“하지만 젖이 찬걸 따뜻한 젖이 있어야 해. 엘리아가 어디 있나? 그 사람이 양을 가지고 있는데”
엘리아가 양젖을 준 사람인 모양인데. 여기에 없다. 그는 밖에 남아서 틈으로 들여다보며 밤의 어둠 속에 숨어 있다.
“누가 이리로 데려왔어요?”
“천사가 우리에게 가보라고 말했구, 엘리아가 우리를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지금 어디 있을까?”
양이 우는 바람에 탄로가 났다.
“이리 오게. 자네를 찾는 중일세.”
그는 그중 주목을 많이 받는 바람에 주삣주삣하며 양을 데리고 들어온다.
“당신이요?” 하고 요셉이 그를 알아보고 말한다. 그리고 마리아는 미소를 보내면서 “아저씨 친절하십니다.” 하고 말한다.
그들은 양젖을 짠다, 그리고 마리아는 따뜻하고 거품이 이는 양젖에 린네르천 끝을 담가서 아기의 입술을 적시니, 아기는 그 달콤한 크림을 빤다. 그들은 모두가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 입술에 아직 천 귀퉁이를 문 채 예수가 따뜻한 양털 속에서 잠이 들자 한층 더 미소짓는다.
“그런데 여기 남아 있으면 안됩니다. 춥고 축축해서요. 그리고 또...이 짐승들 냄새 하고! 안됩니다. 또...구세주께 이건 안됩니다.”
“알아요. 그렇지만 베들레헴에는 우리가 있을 자리가 없는 걸요” 하고 마리아가 크게 한숨지으며 말한다.
“용기를 내세요. 아기 엄마, 우리가 집을 구해 보겠습니다.”
“난 우리 주인 아주머니에게 말하겠습니다.” 하고 양젖을 준 사람인 엘리아가 말한다. “주인 아주머니는 착하거든요. 자기 방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네들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우리 주인 집이 꽉 찼지만 자릴 내줄겁니다.”
“아기를 위해서만이라도 요셉과 저는 아직 땅바닥에 있어도 상관없어요. 그렇지만 아기는...”
“아기 엄마, 한숨짓지 말아요. 나는 우리가 들은 말을 많은 사람에게 하겠습니다. 당신들은 부족한 게 없을 겁니다.
지금 당장은 가난한 우리가 드리는 걸 받으세요. 우린 목자들이랍니다.”
“우리도 가난하오.” 하고 요셉이 말한다.
“그래서 당신들에게 보상을 해줄 수가 없구려.”
“아! 우리는 보상을 원치 않습니다. 당신들이 보상을 할 수 있다 해도 우리는 원치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벌써 우리를 보상해 주셨습니다. 평화를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천사들은 ‘마음이 착한 이들에게 평화’ 하고 말했어요.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평화를 벌써 주셨습니다. 이 아기가 구세주, 그리스도, 주님이라고 천사가 말했거든요.
우리는 가난하고 무식합니다. 하지만 구세주는 평화의 왕일 것이라고 예언자들이 말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우리에게 아기에게 가서 경배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또 그분의 그리스도이신 아기에게도 영광!
그리고 아기를 낳은 엄마, 축복받으세요! 당신은 그리스도를 가질 자격이 있었으니 거룩합니다!
여왕과 같이 우리들에게 명령하세요. 우리는 당신을 섬기는 것이 기쁠 테니까요. 당
신에게 뭘 해드릴 수 있을까요?”
“내 아들을 사랑하고,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을 늘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을 위해서는 희망하는게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 아들이 났다는 것을 알릴 만한 친척도 없습니까?”
“예, 있어요. 그렇지만 이 근처에 있지 않고 헤브론에 있습니다.”
“내가 거길 가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고 엘리아가 말한다.
“사제 즈가리야와 사촌언니 엘리사벳입니다.”
“즈가리야님, 아! 그분을 잘압니다. 여름에는 좋은 풀이 많은 그 산으로 가지요. 그리고 그분의 목자하고는 친구입니다. 아기 엄마가 정돈이 된 것을 알게 되면 즈가리야님을 찾아가겠습니다.”
“엘리아, 고맙습니다.”
“천만에요.보잘 것 없는 목자인 내게는 사제에게 가서 ‘구세주가 나셨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큰 영광입니다.”
“아니예요. ‘사제님의 사촌 나자렛의 마리아가 예수가 났다고, 베들레헴으로 오시라고 하더라’고 말해 주세요.”
“그렇게 말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갚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을, 당신들 모두를 기억하겠습니다‥‥.”
“아기에게 우리 얘기를 해 주겠습니까?”
“예.”
“나는 엘리아입니다.”
“저는 레위구요.”
“저는 사무엘.”
“나는 요나.”
“나는 이사악.”
“저는 도비아.”
“나는 요나타.”
“그리구 저는 다니엘입니다.”
“저는 스므온이구요.”
“제 이름은 요한입니다.”
“저는 요셉이고 제 동생은 베냐민입니다. 우리는 쌍동이지요.”
“여러분의 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우리는 가야 합니다.하지만 또 올 겁니다. 그리고 경배하라고 다른 사람들도 데리고 오겠습니다!...”
“아, 아기를 놔두고 어떻게 목장으로 돌아가지?”
“아기를 우리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께 영광!”
“아기 옷에 입맞추게 해 주세요” 하고 레위가 천사와 같이 웃으며 말한다.
마리아는 예수를 살그머니 들고, 건초에 앉아서 린네르천으로 싼 조그만 발을 입맞추라고 내민다.
수염이 있는 사람들은 먼저 수염을 닦는다. 거의 모두가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떠나야 할 때에는 마음을 구유 곁에 남겨둔 채 뒷걸음질로 나간다.
내게는 환상이 이렇게 끝난다.
마리아는 아기를 안고 짚 위에 앉아 있고, 요셉은 구유 전에 팔꿈치를 괴고 바라보며 경배한다.
*역주: 이탈리아의 지중해 근처 도시. 큰 대리석 채석장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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