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복음 준비
48. “나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됨으로써 여인의 죄를 속죄하였다”
성모 마리아가 말씀하신다.
“예수가 그의 평화를 네게 갖다주러 올 것이라고 내가 네게 약속했었다. 그런데 성탄날 내가 아기와 같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네 안에 있던 그 평화가 기억나느냐? 그때는 네 평화의 때였다. 지금은 네 고뇌의 때이다. 그러나 이제는 너도 고통 속에서 우리와 이웃을 위한 평화와 일체의 은총을 얻는다는 것을 알지 않느냐? 사람인 예수는 수난의 무서운 고통을 겪고 나서 다시 하느님인 예수가 되었다. 예수는 다시 평화가 되었다. 그가 떠나왔던 하늘, 세상에서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그의 평화를 널리 베푸는 하늘에서 다시 평화가 되었다. 그러나 수난의 시간에는 세상의 평화인 그가 이 평화를 빼앗겼었다. 만일 그가 평화를 차지하고 있었으면 고통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고통을 당해야하였다. 완전한 고통을 당해야 하였다.
나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됨으로써 여인의 죄를 대신 속죄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여인의 구속의 시초에 지나지 않았다. 동정을 서원함으로써, 일체의 인간적인 결합을 사양함으로써, 일체의 육체적 만족을 물리쳤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자격을 얻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넉넉한 것이 아니었다. 과연 하와의 죄는 가지가 넷 있는 나무와 같은 것이었다. 교오, 탐욕, 탐도, 음란이라는 네 가지. 그런데 나무를 뿌리까지 메마르게 하기 전에 이 네 개의 가지를 잘라야 하는 것이었다.
나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나를 낮추면서 나는 교오(교만과 오만)를 이겼다. 나는 모든 사람 앞에서 나를 낮추었다. 나는 하느님 앞에서의 내 겸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서는 모든 피조물은 다 겸손해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제2위 성자)도 겸손을 가지고 계셨다. 여자인 나도 겸손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내가 도무지 저항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참아 견디어야 한 그 모든 모욕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느냐?
의인이었던 요셉까지도 마음속으로 나를 비난했었다. 의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내 임신을 비방하여 죄를 지었고, 그들의 말의 소문이 가혹한 파도처럼 달려와서 내 여인으로서의 명예를 부숴뜨렸다. 이것이 예수와 인류의 어머니로서의 내 일생이 내게 마련해 준 수많은 모욕 중의 처음 것들이었다. 가난의 굴욕, 피난자로서의 굴욕, 진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청년이 된 예수에 대한 어머니로서의 내 행동을 마음이 약한 탓이라고 공격하던 친척들과 친구들의 비난으로 인한 굴욕, 예수의 전도 생활 3년 동안의 모욕, 골고타의 그 시간에 받은 가혹한 모욕, 내 아들을 장사지내기 위한 자리와 향료를 살 만한 돈이 없음을 인정하기까지에 이르는 창피 따위 말이다.
나는 미리 내 아들을 포기함으로써 첫 조상들의 탐욕을 이겼다. 어머니는 강요에 의하지 않고는 절대로 자식을 포기하지 않는다. 만일 자식이 조국이나 아내의 사랑으로나 하느님 자신에 의하여 그의 마음에 요구되면 어머니는 이별에 저항한다.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다. 아들은 어머니의 태중에서 자라는데, 그의 인격을 우리의 인격과 연결시켜 주는 끈을 절대로 완전히 끊지는 못한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배꼽의 줄이 끊어진 뒤에도 어머니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신경, 육체의 신경보다도 더 살아있고 더 민감하며, 아들의 마음에 연결된 정신적인 신경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나 어떤 인간의 사랑이나 조국에 대한 의무 때문에 아들이 어머니를 떠나가게 되면 그 줄이 고통을 줄 정도로 팽팽히 늘어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죽음이 어떤 어머니에게서 아들을 빼앗아가면 그 줄이 끊어지면서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그런데, 나는 내 아들을 가진 그 순간부터 그를 포기하였다. 나는 내 아들을 하느님께 바쳤고, 너희들에게 주었다.
나는 하느님에게서 열매를 훔친 하와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내 태에서 나온 열매를 버렸다.
나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알게 하신 것만을 알기를 수락하고, 내가 들은 것 이외에는 나 자신에게도 하느님께도 묻지 않음으로써 지식에 대한 탐도와 향락에 대한 탐도를 이겼다. 나는 탐구하지 않고 믿었다.
나는 향락의 탐도를 이겼다. 육체의 감각적인 만족을 일절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내 육체를 발로 밟았다.
사탄의 도구인 육체를 사탄과 더불어 내 발뒤꿈치 밑에 넣어 하늘에 가까이 가기 위한 발판을 만들었다.
내 목적인 하늘! 내 유일한 갈망이신 하느님이 계신 곳, 이 갈망은 탐도가 아니고, 우리가 당신만을 갈망하는 것을 보기를 원하시는 하느님께 축복을 받는 필요사이다.
나는 게걸스럽게까지 되는 탐도인 음란을 이겼다. 과연 억제되지 않은 악습은 더 큰 악습으로 이끌어 간다. 그렇지 않아도 비난할 만한 하와의 탐도가 그를 음란으로 이끌어 갔다. 자기 혼자서 만족을 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하와는 그의 죄를 정교함에까지 이끌어 갔다. 하와는 음란을 알았고, 그것을 남자 동무에게 가르쳤다. 나는 경계표(境界標)를 뒤엎어서, 내려보내는 대신에 항상 올려보냈다. 타락시키기는 고사하고 나는 항상 정상을 향하여 끌어당겨서, 성실한 사람이던 내 짝을 천사를 만들었다.
하느님을 차지하고, 하느님과 더불어 그분의 무한한 보물을 차지하기가 무섭게, 나는 서둘러 나를 버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아기를 위하여, 아기에 의하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육체뿐 아니라 애정과 생각까지도 자제하는 사람이야말로 순결한 사람이다. 나는 육체와 마음과 정신이 추잡한 여자를 완전히 멸망시키기 위하여 순결해야 하였다. 나는 이 자제를 버리지 않아, 하늘에서는 오직 하느님의 것이고, 세상에서는 오직 내 것이던 내 아들에 대해서까지도 “이 애는 내 것이다. 나는 내 아들을 원한다”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와 때문에 잃어진 평화를 여자에게 돌려주는 데에는 이것도 아직 충분하지 못하였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본 그 아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 이 평화를 십자가 아래에서 얻었다. 죽어가는 내 아들의 외치는 소리에 오장육부가 쏟아져 나오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 나는 여성성을 모두 잃었다. 나는 이미 육체가 아니고 천사였다. 정배로서 성령과 결합한 동정녀 마리아는 그 순간에 죽었다. 남아 있는 것은 은총의 어머니, 그의 고통으로 너희들을 은총에 낳아 주고 너희들에게 은총을 준 은총의 어머니였다. 성탄날 밤 내가 다시 여자로 확립한 암컷이 십자가 아래서 하늘의 인간이 되는 방법을 얻었다.
나는 만족을, 거룩한 만족까지도 일절 거부하면서 너희를 위하여 이렇게 하였다. 하와로 인하여 동물의 암컷보다 나을 것이 없는 계집들의 처지가 되었던 너희들을 나는 너희들이 원한다면 하느님의 성녀들로 만들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이 정상에 이르렀다. 요셉과 같이 너희들도 하늘로 인도하였다. 골고타에 있는 바위가 내게는 올리브나무 동산이다. 거기서 나는 다시 거룩하게 된 여자의 영혼과 동시에, 하느님의 말씀을 가짐으로 해서 찬미를 받은 내 육체를 하늘에까지 올려가기 위하여 비약하였다. 그리고 내 안에서 하와의 마지막 흔적까지, 독이 든 가지 넷이 달린 그 나무의 마지막 뿌리까지, 인류를 타락으로 끌고 간 관능에 깊이 박힌 뿌리에 이르기까지 없애버렸다. 육체의 감각에 깊이 박힌 이 뿌리는 세상 마칠 때까지, 또 마지막 여인에 이르기까지 너희들의 마음속을 괴롭힐 것이다. 내가 사랑의 빛남 속에서 반짝이는 그곳에서 너희들을 부르며, 너희 자신을 이길 수 있는 구제책을 가르쳐 준다. 그 구제책은 내 주님의 은총과 내 아들의 피이다.
그리고 내 대변자인 너는 네가 면하지 못할 십자가의 못 박음 가운데에서 힘을 가지기 위하여 예수의 이 첫새벽의 빛 속에서 네 영혼을 쉬게 하여라. 우리는 네가 여기 오기를, 고통의 길로 해서 올라오는 이곳에 오기를 원하기 때문이고, 세상에 은총을 얻어 주기 위하여 더 많은 마음 고통을 겪을수록 그만큼 더 높이 올라오는 이곳에 네가 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평안히 가거라, 나는 너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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