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시

I. 복음 준비 40. 세례자를 성전에서 드림

Skyblue fiat 2016. 1. 2. 23:08

 

I. 복음 준비

 

40. 세례자를 성전에서 드림

 

 


  성주간의 수요일 밤부터 목요일까지 내가 본 것은 다음과 같다.

 

  마리아의 나귀로 매여 있는 편안한 마차에서 즈가리야와 엘리사벳과 어린 요한을 안은 마리아와 어린 양 한 마리를 데리고 있는 사무엘과 새장에 들어 있는 비둘기 한 마리가 내리는 것이 보인다. 그들은 성전에 가는 모든 순례자들이 자신들의 타는 짐승을 임시로 맡기기 위하여 으레 들르는 마구간 앞에서 내린다.


  마리아는 마구간 주인인 작은 사람을 불러 전날이나 아침 이른 시간에 나자렛 사람이 아무도 오지 않았느냐고 물어본다. “아무도 안왔습니다.” 하고 작은 노인이 대답한다. 마리아는 놀란 얼굴로 있다. 그러나 아무 다른 말도 덧붙이지 않는다. 마리아는 요셉이 늦어지는 것을 설명한다. “무슨 일로 붙잡혔을 거예요. 그렇지만 분명히 오늘 올 것입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주었던 아기를 다시 받아 안고, 그들은 성전으로 향한다.


  즈가리야는 수위들의 경의와 다른 사제들의 인사와 축하를 받는다. 그의 사제옷을 입고 행복한 아버지로 기뻐하는 즈가리야가 오늘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성조(聖祖)와도 같다. 나는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주님께 드리는 것을 기뻐할 때 즈가리야와 비슷하였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새로 난 이스라엘 사람의 봉헌과 어머니의 취결례의 예절을 본다. 예절은 마리아의 봉헌 때보다 더 호화롭다. 요한이 사제의 아들이어서 사제들이 크게 환대를 하기 때문이다. 사제들이 많이 달려와서 여인들의 작은 집단과 갓난아기를 둘러싸고 분주하게 왔다갔다 한다.


  일반 사람들도 호기심으로 가까이 왔고,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이 들린다. 일행이 늘 가는 장소로 가는 동안 마리아가 아기를 안고 있으므로 사람들은 마리아가 어머니인 줄로 믿는다. 그러나 한 여인이 말한다.

 

 “그럴 수가 없어요, 저 여자가 임신한 걸 못보세요? 아기는 난지 며칠 밖에 안되었는데, 저 여자는 벌써 배가 불렀어요.”
 “하지만” 하고 다른 사람이 말한다. “어머니일 수 있는 것은 저 여자 밖에 없어요. 또 한 여자는 늙었거든요.

아마 친척이겠지만, 그 나이에 어머니가 될 수는 없어요.”
 “우리 따라갑시다. 그래서 누구 말이 맞나 봅시다.”
그리고 취결례의 의식을 행하는 여자가 엘리사벳인 것을 보자 사람들의 놀람은 더해진다.

엘리사벳은 희생 제물로 매애매애 하고 울고 있는 어린양을 바치고, 보속을 위하여 비둘기를 바친다.
 “저 여자가 어머니예요, 보셨지요?”
 “아니예요!”
 “그렇다니까요.”
 사람들을 아직도 믿을 수 없어서 속삭인다. 그들이 하도 소리를 내는 바람에 예절에 참례하는 사제들의 집단에서 명령적인 “쉿” 소리가 나올 지경이다. 사람들은 잠시 입을 다문다. 그러나 엘리사벳이 거룩한 긍지로 빛나는 얼굴을 하고 아기를 받아 가지고 아기를 주님께 바치기 위하여 성전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속삭이는 소리가 더 커진다.


 “저 여자가 맞아요.”
 “봉헌을 하는 것은 언제든지 어머니거든요.”
 “그러면 이런 기적이 또 있었어요?”
 “저렇게 늙은 나이에 저 여자에게 태어난 어린아이는 장차 무엇이 될까요?”
 “이게 무슨 징조지요?”
 “당신네들은 몰라요?” 하고 숨이 턱에 닿아서 오는 사람이 말한다.

 “저애는 아론 가문의 즈가리야의 아들입니다. 지성소에서 향을 드리는 동안에 벙어리가 되었던 그 사람의 아들이오.”
 “신비요! 신비! 그런데 지금은 말을 다시 해요! 그의 아들이 나면서 그의 혀가 풀렸어요.”
 “어떤 영이 그 사람에게 말을 하고, 하느님의 비밀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는 습관을 들이라고 그의 혀를 죽여 놓았었을까요?”
 “신비예요! 어떤 진리가 즈가리야에게 계시되었을까요?”
 “그의 아들이 이스라엘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아닐까요?”
 “아기가 유다에서 나기는 했지만 베들레햄에서 나지 않았고, 동정녀에게서 나지도 않았어요. 그러니 메시아일 수가 없어요.”
 “그러면 어떤 사람일까요?”
 그러나 대답은 하느님의 비밀 속에 남아 있고, 사람들의 호기심은 풀리지 않은 채로 있다.
  

예절이 끝났다. 사제들이 이제는 어머니와 아기에게도 축하를 한다.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의 몸의 상태를 알아차리고는 멸시하듯 피하기까지 하는 오직 한 사람, 그는 마리아이다.
 축하가 끝나자 대부분의 사람은 다시 길을 떠나고, 마리아는 요셉이 도착하였는지 보려고 여관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요셉은 도착하지 않았다. 마리아는 실망하여 생각에 잠긴다.

엘리사벳은 이 상황을 걱정한다. “우리는 제6시까지는 남아 있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 뒤에는 초경(初更)까지 집에 닿을 수 있게 떠나야 합니다. 아기가 아직 너무 어려서 밤이 될 때까지 남아 있을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마리아는 침착하고 슬프게 말한다. “나는 성전의 어떤 마당에 남아 있겠어요. 선생님을 찾아가 뵙겠어요.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어떻게 해보겠어요.”
 즈가리야가 어떤 계획을 내놓으며 개입하니, 그것이 좋은 해결책이라고 이내 수락된다.

 “제베대오의 친척집으로 갑시다. 마리아를 데리러 요셉이 틀림없이 그리로 올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요셉이 오지 않으면 갈릴래아로 마리아와 동행할 사람을 만나기가 쉬울 것입니다. 그 집에는 겐네사렛의 어부들이 끊임없이 왕래하거든요.”
 그들은 마리아의 나귀를 찾아가지고 제베대오의 친척집으로 간다. 그들은 결국 넉달 전에 마리아와 요셉을 유숙시켰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데 요셉은 도무지 나타나지 않는다. 마리아는 아기를 흔들어 주면서 걱정을 억제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에 잠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몸의 상태를 숨기기 위해서 그런 것처럼, 더워서 모두들 땀을 흘리지만 마리아는 겉옷을 벗지 않았다.
  마침내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로 요셉이 왔음을 알린다. 마리아의 얼굴이 명랑해져서 환히 빛난다.
  마리아가 먼저 나가서 공손히 인사를 한 후에 요셉은 마리아에게 인사를 한다.

 

“마리아, 하느님의 축복이 당신 위에 내리기를!”

“요셉, 당신께두요. 그리고 당신이 오신 것 때문에 주님을 찬미합니다! 

즈가리야와 엘리사벳이 밤이 되기 전에 집에 가려고 떠나려던 참이었거든요.”
“당신의 심부름꾼이 내가 일 때문에 가나에 가 있는 동안에 나자렛에 도착했소. 어제 저녁에 소식을 듣고 곧 떠났소. 하지만 쉬지 않고 왔는데도, 나귀가 편지 하나를 잃었기 때문에 늦어졌소, 용서하오.”

“이렇게 오랫동안 제가 나자렛에서 멀리 떨어져 있은 것을 당신이 용서해 주셔야 해요. 그렇지만 보세요, 저분들이 저를 데리고 있는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저분들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했어요.”
“여보, 당신이 잘했소. 그런데 아기는 어디 있소?”
 

그들은 떠나기 전에 요한에게 젖을 먹이는 엘리사벳이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요셉은 부모에게 아기가 건장한 것을 축하한다. 엘리사벳은 아기를 요셉에게 보이려고 젖에서 떼었다. 그러나 아기는 누가 껍질이라도 벗기는 듯이 울고 발버둥을 친다. 모두가 아기의 항의에 웃음을 터뜨리고, 모두에게 신선한 과일과 우유와 빵과 생선을 담은 큰 접시를 가지고 달려온 제베대오의 친척들까지도 웃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끼어든다.


  마리아는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 한구석에서 조용히 말없이 겉옷 속으로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있다. 그리고 우유 한 잔을 마시고 황금빛 포도 한송이와 빵을 조금 먹을 때에도 말을 별로 하지 않고 잘 움직이지도 않는다. 마리아는 요셉을 걱정과 불안이 섞인 눈으로 쳐다본다.


  요셉도 마리아를 바라보고 조금 후에는 마리아의 어깨 위로 몸을 숙이고 묻는다.
  “피곤하오? 어디 아프오? 얼굴이 창백하고 침울한데.”
  “어린 요한을 떠나는 것이 슬퍼요, 저는 아기를 사랑해요. 아기가 세상에 난 뒤로부터 거의 제가 안아 주었거든요....”
  요셉은 다른 질문은 하지 않는다.
  

즈가리야가 떠날 시간이 되었다. 마차가 대문 앞에 멎고 모두가 가까이 간다. 두 사촌자매는 다정스럽게 얼싸안는다. 마리아는 벌써 마차안에 앉아 있는 어머니 품에 아기를 다시 안겨 주기 전에 여러번 입을 맞춘다. 그런 다음 즈가리야에게 인사를 하고 축복을 청한다. 마리아가 사제 앞에 무릎을 꿇을 때 겉옷이 어깨에서 미끄려져 내려와서 그의 몸매가 여름날의 오후의 강한 빛 속에 나타난다. 요셉은 그 순간에 엘리사벳에게 인사를 하는 데 골몰하고 있었으므로 그것에 유의했는지 모르겠다. 마차가 멀어져 간다.


  요셉은 마리아와 함께 다시 들어오는데, 마리아는 빛이 덜 환한 구석에 그가 앉았던 자리에 다시 가서 앉는다.

“밤에 길을 가는 것이 싫지 않으면 저녁 때 떠났으면 하는데 어떻소. 낮에는 더위가 심해요. 반대로 밤은 서늘하고 조용하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당신이 햇볕을 너무 쬐지 않도록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오. 내게는 삼복 더위를 무릅쓰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소. 하지만 당신은....”

 “요셉, 당신 좋을 대로 하세요. 그래요. 밤에 길을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집이 잘 정돈되어 있고 정원도 그렇소. 당신은 정말 아름다운 꽃들을 볼거요. 당신은 꽃이 만발한 것을 보기에 알맞게 오는 거요. 사과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넝쿨에 전에 없이 열매가 많이 맺혔고, 석류나무 가지에는 근래에 그런 일을 절대로 볼 수 없었을 만큼 벌써 형상이 갖추어진 열매가 어떻게나 많이 달렸는지 버팀막대를 세워 주어야 했소. 그리고 또 올리브나무는 기름을 많이 얻게 될 거요. 기적같이 꽃이 많이 피었었고, 꽃이 하나로 그냥 떨어지지 않았소. 모두 벌써 작은 올리브를 맺었소. 그놈들이 익으면 나무에는 흑진주가 가득 찰거요.
 나자렛 전체에 그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사람은 당신 밖에 없소. 친척들까지도 그것을 놀라워 하고 있소. 그리고 알패오는 기적이라고 말하오.”
  “당신이 보살펴서 그렇게 잘 되었어요.”


  “아! 아니야! 나 같은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대관절 내가 뭘 했소. 나무 손질 좀 해 주고 꽃에 물좀 준 것뿐이오. 이것 봐요. 당신을 위해 샘을 하나 파놓았소. 이제는 물 길으러 밖에 나갈 필요가 없게 되었소. 물을 안쪽 동굴 근처까지 끌어오고 거기에 수반을 하나 갖다 놓았소. 물은 마티아의 올리브나무 윗쪽에 있는 샘에서 끌어왔소. 물이 맑고 풍부해요. 작은 개울로 해서 당신에게까지 끌어왔소. 잘 덮인 작은 수도를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물이 흘러 오면서 하프처럼 노래하오. 당신이 마을의 샘에까지 가서 물을 가득 채운 항아리들을 들고 오는 것을 보기가 괴로웠었소.”


  “요셉, 고마워요. 당신은 친절해요!”
  두 부부가 이제는 피곤한 듯이 말이 없다. 요셉은 졸기까지 한다. 마리아는 기도를 드린다.
  저녁 때가 되었다. 주인들은 길을 떠나기 전에 무엇을 먹으라고 간절히 권한다. 요셉은 빵과 생선을 먹고, 마리아는 과일과 우유만을 먹는다.


  그런 다음 출발이다. 그들은 나귀에 오른다. 올 때와 같이 요셉은 마리아의 궤를 자기 나귀에 실었고, 마리아가 나귀에 오르기 전에 안장이 제 자리에 놓여 있는지 살핀다. 나는 마리아가 나귀에 오를 때 요셉이 그를 쳐다보는 것에 유의하였다. 그러나 요셉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별들이, 제일 이른 별들이 하늘에서 깜박이기 시작할 때에 길을 떠난다.
   그들은 성문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하는데, 아마 성문이 닫히기 전에 도착하려고 그러는 것 같다.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나와 갈릴래아로 가는 큰길로 접어들었을 때에는 하늘 전체에 별이 쫙 깔렸다. 들판은 아주 고요하다. 들리는 것은 오직 밤꾀꼬리의 노래와 여름 가뭄으로 인해 딴딴해진 길을 보조를 맞추어 나가는 나귀들의 발굽 소리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