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사시4권 [282. 신티케가 라자로의 집에서 말하다 283. 네 사도를 유다로 파견하시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4권 공생활 둘째 해(하)1 p397~p405
282. 신티케가 라자로의 집에서 말하다
1945. 9. 22.
예수께서는 베타니아의 집 안 회랑이 있는 마당에 앉아 계신다. 그분께서 부활하신 날 아침 제자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내가 본 바로 그 마당이다. 예수께서는 집주인들, 사도들, 제자 요한, 티모네오, 요셉, 니코데모, 그리고 경건한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집의 벽에 등을 기대고 방석을 깐 대리석 의자에 앉으신 채 그분의 앞에 서서 그분의 어떤 질문에 대답하는 것처럼 보이는 신티케의 말을 듣고 계신다.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 다소간의 관심을 가지고 어떤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서, 어떤 사람들은 땅바닥에 앉아서, 더러는 서서, 더러는 기둥이나 벽에 기대 선 채로 듣고 있다.
“…그것은 제 처지의 모든 중압감을 느끼지 않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조국에서 추방된 외톨이이고 노예라는 것을 확신하지 않는 것, 확신하기를 거절하고 아버지, 어머니, 오빠, 그리고 그렇게도 상냥하고 다정한 이스메네를 영원히 잃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로마가 자유인이었던 저희를 마소처럼 갈라놓고 팔아먹었던 것처럼 온 세상이 저희를 집요하게 갈라놓으려 한다 해도 어떤 장소가 내세에 우리 모두를 다시 모아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우리의 생명이 사슬에 묶일 수 있는 물질만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했습니다. 저는 정반대로 그것은 자발적으로 도덕적인 무질서 안에서 물질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며 살겠다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어떤 사슬도 묶을 수 없는 자유로운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했습니다.
이 도덕적 무질서와 쾌락추구를 여러분은 ‘죄’라고 부릅니다. 노예가 된 저의 밤에 제 빛이 되어주었던 사람들은 그것을 다르게 정의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악한 육체적 열정으로 인하여 육체에 못 박힌 영혼은 여러분은 하느님 나라, 저희는 하데스 안에서 신들과 함께 사는 것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불멸성을 소유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재결합하려면, 자기를 위하여 성덕의 유산을 얻어 물질주의에 빠지는 것을 자제하고, 육체로부터의 자유를 얻으려고 분투해야 합니다.
저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산 사람들의 영혼을 도와주는 것은 방해받지 않으며, 그래서 딸은 자기 어머니의 영혼이 자기 곁에 와 있는 것을 느끼고 자기의 딸에게 말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딸은 대답할 수 있습니다. ‘예, 어머니, 제가 당신에게 가기 위해서요. 예,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지 않기 위해서요. 예, 당신을 울지 않게 해드리기 위해서요. 예, 당신이 평안히 계시는 하데스를 어둡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요. 저는 이 모든 것을 위하여 제 영혼을 자유롭게 보존하겠어요. 그것은 제가 소유하고 있고, 아무도 저에게서 빼앗아갈 수 없는 유일한 것입니다. 저는 제가 덕에 따라 사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제 영혼을 깨끗하게 보존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유이고, 기쁨이었습니다. 또한 그것은 제가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각은 이렇게 하고 행동은 다른 방식으로 하는 것은 반쪽만의 거짓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유배지에서도 조국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자기의 자아 안에 그 제단, 믿음, 가르침, 애정을 가진 친근한 조국을… 비록 지금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위대하고 신비로운 조국을요. 왜냐하면 비록 지금은 영혼이 마치 안개 낀 아침에 바다 가운데 있는 선원이 해안선을 볼 수 있는 것처럼, 겨우 몇 부분만이 선명하게 윤곽이 그려져 있는 거친 밑그림 안에서 희미하게 보지만, 그것만으로도 폭풍우에 시달려 피로에 지친 뱃사람이 ‘저기 항구가 있다. 저기 평화가 있다.’고 말하기에는 충분합니다. 영혼들의 고향, 우리 기원(origin)의 장소… 생명의 장소가 말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죽음에 의하여 만들어지니까요… 오! 저는 당신의 말씀들 중의 하나를 듣기 전까지는 그것을 반밖에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나중에 그것은 마치 금강석처럼 단단한 제 생각을 강타하는 햇살과도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빛 비추어졌고, 저는 그리스의 선생들이 어느 정도까지 옳았는지, 그들에게 단 한 개의 논거(datum), 삶과 죽음의 정리(the theorem of Life and Death)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논거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나중에 혼란에 빠졌는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논거는 주님이시고, 존재하는 모든 것의 창조주이신 참 하느님이십니다!
제가 이교도인 제 입술로 그분의 이름을 말할 수 있습니까? 물론 저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저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분으로부터 왔으니까요. 그분께서 모든 사람의 생각에 지성을 주셨고, 더 지혜로운 사람들에게는 우월한 지성을 주셔서 그것으로 그들은 초인적인 능력으로 반신들(demigods)처럼 보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그 자체가 이미 종교로서 당신의 것처럼 하느님의 종교는 아니지만 윤리적인 종교여서, 영혼들을 여기 땅에 머무르는 동안뿐 아니라 영원히 ‘산 채로’ 보존할 수 있게 하는 진리들을 기록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저는 ‘생명은 죽음에 의하여 만들어진다(Life is generated by death)’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지성이 둔해진, 완전히 술에 취한 사람과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숭고한 말을 했지만,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주님, 제 교만을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그가 이해한 것보다 더 잘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순간부터 행복해졌습니다.”
“너는 무엇을 이해했느냐?”
“이 세상의 생명은 생명의 배아적 시작에 지나지 않고, 참 생명은 죽음이 우리를 낳아줄 때… 이교도로서 말씀드리면 하데스에, 당신을 믿는 사람으로서 말씀드리면 영원한 생명에 낳아줄 때에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틀렸습니까?”
“네 말이 맞다.”
예수께서 수긍하신다.
니코데모가 끼어든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선생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소?”
“배고픈 사람은 음식을 찾습니다, 어르신. 저는 제 음식을 찾고 있었습니다. 저는 좋은 목소리와 분명한 발음을 가진데다 학식도 있어 낭독자가 되어 제 주인들의 서재에서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인간 학문으로 장식된 벽들 너머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금을 찾는 죄수로서 그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하여 제 주먹으로 벽을 두드리고, 문을 열어 제치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제가 마지막 주인을 따라 팔레스티나로 왔을 때 저는 제가 암흑 속으로 떨어지지 않나 하고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저는 빛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카이사리아에서의 하인들의 말은 그 말의 횟수만큼의 곡괭이로 벽을 부수는 것과 같아서 갈라진 틈을 점점 더 크게 했고, 그 구멍을 통하여 당신의 말씀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말씀들과 그 소식들을 주워 모아서 마치 어린이가 구슬을 꿰듯이 줄지어놓아 그것으로 저 자신을 장식하고,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점점 더 깨끗해지게 하는 힘을 거기서 끌어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깨끗하게 함으로써 제가 진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땅에서도 말입니다.
저는 진리, 지혜, 신성을 만나기 위하여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깨끗하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주님, 저는 어리석은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저분들은 깜짝 놀라서 저를 쳐다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저에게 말하라고 요구하셨기에…”
“말해라, 계속 말해라. 그것은 필요하다.”
“저는 힘과 절제로 외적인 압력에 저항했습니다. 만일 제가 원했다면, 세상이 볼 때 저는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지식을 쾌락과 바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지혜가 없다면, 다른 성덕들을 가져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그 철학자는 말했습니다. ‘지식과 분리된 정의, 절제, 힘은 그림으로 그려진 아름다운 풍경과 같고, 확고하고 실제적인 것이 없는 노예에게나 어울리는 성덕들이다.’
저는 실제적인 것들을 가지기를 원했습니다. 바보 같은 제 주인은 제 앞에서 당신에 대하여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자 마치 벽들이 휘장이 되는 것처럼 저에게 느껴졌습니다. 휘장을 찢고 진리와 결합하기를 원하기만 하면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우리를 만나게 될 거라는 것을 알지 못했었지요.”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저는 신(the god)이 성덕을 보상해주신다는 것을 믿을 줄 알았습니다. 저는 황금이나 명예나 육체적인 자유를 원치 않았습니다. 저는 육체적인 자유마저도 원치 않았어요.
저는 진리를 원했습니다. 저는 진리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하느님께 청했습니다.
저는 ‘물건(object)’이 되는 굴욕을 면하게 되기를 원했고, 물건이 되는 것에 동의하는 굴욕을 면하게 되는 것을 훨씬 더 원했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을 찾으면서 육체적인 것을 모두 버렸습니다. 오관을 통한 탐구는 언제나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당신을 뵈었을 때 제가 제 눈에 속아서 도망치는 것을 당신께서 보셨듯이 말입니다. 저는 우리 위에,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시고 영혼들에게 당신을 알려주시는 하느님께 저 자신을 맡겼습니다. 제 영혼이 저를 당신께로 인도했기 때문에 저는 당신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영혼은 이교도의 영혼인데요.”
가리옷 사람이 한 번 더 말한다.
“그러나 영혼은 항상 자기 안에 신성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그 영혼이 오류로부터 보존되기 위하여 분투해 왔을 때는 더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영혼은 그 자신의 본성을 가진 것들을 지향합니다.”
“당신은 자신을 하느님과 비교하고 있는 거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그런 말을 합니까?”
“뭐라고요? 선생님의 제자인 당신이 그것을 나에게 묻습니까? 그리스 여인이고 최근에야 자유를 얻은 나에게 말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실 때 당신은 듣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당신 안의 육체의 흥분이 너무 커서 그것이 당신의 생각을 둔하게 만듭니까? 그분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이라고 늘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만일 우리가 아버지의 자녀들이라면, 선생님께서 항상 말씀하시는 것처럼 당신과 우리의 아버지이신 분의 자녀들이라면, 우리도 신들(gods)입니다. 당신은 내가 겸손하지 않다고 비난할 수는 있어도, 내가 믿지 않는다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한단 말이오? 당신은 그리스의 책들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고 생각하는 거요?”
“아닙니다. 둘 다 아닙니다. 그러나 현자들의 책들은 그들이 어디 출신이든 나를 지탱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주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사람이 나보다 낫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나에게 오는 운명으로 인하여 행복합니다. 내가 그 이상 무엇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나는 선생님을 만남으로써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내 운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참으로 큰 힘이 나를 살펴보시고, 나에게 위대한 운명을 확정해주시고, 그 운명이 좋은 것이라고 내가 느끼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것을 따랐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좋다고요? 당신은 노예였고, 그것도 잔인한 주인들의 노예였어요… 가령 만일 마지막 주인이 당신을 다시 붙잡았다면, 그렇게도 현명한 여자인 당신은 어떻게 그 운명을 따를 수 있었겠소?”
“당신의 이름은 유다지요, 그렇죠?”
“그렇소, 그런데?”
“그런데…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당신의 빈정거림뿐만 아니라 당신의 이름도 기억해두고 싶습니다. 빈정거리는 것은 유덕한 사람들에게도 권장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유념하시오…
내가 어떻게 내 운명을 따를 수 있었겠느냐고요? 어쩌면 나는 자살 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어떤 경우에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신들만이 자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불러갈 권리가 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살하는 것은 옳지 않고, 불경한 일이라고 그 철학자는 말했지만 말입니다.
나는 늘 자살하는 데 있어 이렇게 신들의 신호를 기다리다가 내 비참한 운명의 속박 속에서도 늘 그것을 결행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더러운 주인에게 다시 붙잡힐 경우에 나는 그것을 신들의 신호로 생각하고 삶보다는 죽음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여보세요. 나도 내 품위를 가지고 있어요.”
“그 주인이 당신을 지금 다시 붙잡는다면? 당신은 여전히 같은 처지일 거요…”
“이제 나는 자살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나는 육체에 대한 폭력이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영혼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이제 나는 힘으로 부수어지고, 폭력으로 살해당할 때까지 저항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하느님께서 그러한 폭력을 통하여 나를 그분께로 부르시는 표지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내가 없어질 것을 잃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면서 안심하고 죽을 것입니다.”
“당신은 아주 잘 대답했습니다.”
라자로가 말하고, 니코데모도 그 말에 동의한다.
“자살은 결코 용인되지 않아요.”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많은 것들이 금지된 것이지만, 그 금지는 준수되지 않는다. 그러나 신티케, 너는 하느님께서 항상 당신을 인도해주셨고, 그래서 그분은 당신 자신에 대한 폭력을 막아주셨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제 가보아라. 아이를 찾아 이리로 데려와주면 고맙겠다.”
예수께서 친절하게 말씀하신다.
여자는 땅바닥에 닿도록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나서 나간다. 그들 모두가 그 여자가 나가는 것을 지켜본다.
라자로가 중얼거린다.
“저 여자는 늘 이렇습니다! 저 여자에게는 ‘생명’이었던 것이 왜 저희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죽음’인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일 당신께서 저 여자에게 다시 질문할 기회를 가지신다면, 당신께서는 헬레니즘이 이미 지혜를 가지고 있는 저희는 타락시킨 반면 저 여자는 구해주었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왜일까요?”
“주님의 길들은 놀랍고, 그분께서는 그것들을 그에 합당한 모든 사람에게 열어주시기 때문이오. 자, 이제는 친구 여러분, 밤이 되었으니 돌아가십시오. 나는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 여자가 말하는 것을 듣게 되어 기쁩니다. 하느님께서 그분 자신을 가장 착한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다는 것을 여러분도 확인했다시피, 여러분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하느님의 백성에서 배제하는 것은 끔찍하고 위험한 일이라고 결론지어야 합니다. 미래를 위하여 이것을 마음에 새기시오… 시몬의 유다야, 불평하지 마라.
그리고 요셉, 당신은 불필요한 가책을 가지지 마시오. 당신들 중 누구도 그리스 여자 곁에 있었다는 이유로 부정해지지 않았어요. 당신들은 마귀를 가까이하지 않았고, 그를 환대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하시오.
요셉, 안녕히 가십시오, 니코데모, 안녕히 가십시오. 내가 여기 있는 동안에 당신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겠습니까? 마르지암이 여기 왔습니다… 얘야, 이리 와서 산헤드린 위원들께 인사드려라. 너는 이분들에게 뭐라고 말씀드리겠니?”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저는 또 말하겠습니다. ‘향 피우는 시간에 저를 위하여 기도해주십시오.’”
“얘야, 너에게는 그것이 필요 없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 시간에?”
“제가 예수님과 함께 성전에 처음 들어갔을 때 그분께서는 저녁기도에 대하여 저에게 말씀해주셨기 때문이에요… 오! 그것은 정말로 아름다워요!…”
“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주겠니? 언제?”
“저도 기도하겠어요… 아침과 저녁에요. 하느님께서 낮 동안과 밤 동안에 당신들을 죄에서 보호해주시라고요.”
“얘야, 그럼 너는 뭐라고 말씀드리겠니?”
“저는 말씀드리겠어요. ‘지극히 높으신 주님, 요셉 어른과 니코데모 어른이 예수님의 진짜 친구가 되게 해주십시오.’
그것으로 충분할 거예요. 왜냐하면 참다운 친구는 자기 친구를 슬프게 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예수님을 슬프게 만들지 않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늘나라를 소유할 거예요.”
“얘야, 하느님께서 너를 이대로 보존해주시기를!”
산헤드린 위원들이 아이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선생님, 복되신 동정녀, 라자로에게 개별적으로 인사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단체로 인사한 다음 떠나간다.
283. 네 사도를 유다로 파견하시다
1945. 9. 23.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베타니아 인근에서 전도여행을 마치신 다음 돌아오고 계신다. 그들이 식량가방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보면, 그것은 짧은 여행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한다.
“뱃사공 솔로몬의 생각이 그럴듯하지요, 선생님?”
“그래, 그렇다.”
물론 가리옷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반대한다.
“저는 그것이 그리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제자인 자기에게는 더 이상 쓸모없게 된 것을 우리에게 준 것입니다. 그가 칭찬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집은 언제나 유익한 거야.”
열성당원이 근엄하게 말한다.
“그게 자네 집 같다면야 그렇겠지. 하지만 그 사람의 집이라는 건 뭐야? 그것은 비위생적인 초라한 집일 뿐이야.”
“그것은 솔로몬이 가진 것 전부야.”
열성당원이 대꾸한다.
“그리고 그가 그 집에서 질병과 고통 없이 늙었으니 우리도 이따금씩 거기 머무를 수 있을 거야. 자네는 무엇을 기대하나? 모든 집이 라자로의 집과 비슷하기를 원하나?”
베드로가 덧붙인다.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 나는 그 선물이 필요한지 모르겠어. 그곳에 갈 거면 예리코에도 갈 수 있어. 그곳과 예리코는 불과 몇 스타드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박해받는 사람들처럼 늘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몇 스타드가 무슨 대수야?”
분명한 징후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다른 사도들의 모든 인내심이 바닥에 이르기 전에 예수께서 개입하신다.
“솔로몬은 자기의 재산에 비하여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이 주었다. 그는 모든 것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으로 그것을 주었다. 그는 우리가 인심이 그리 좋지 않은 그 지방에서 비나 홍수에 갇히거나, 특히 유다인들의 악의가 너무 심하여 우리가 강 건너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경우에 우리에게 거처를 마련해주기 위해서이다.
선물에 대해서는 이쯤 해두고, 비천하고 교양도 별로 없지만 몹시 충실하고 자발적인 한 제자가 그토록 관대할 수 있었다는 것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영원히 내 제자로 있겠다는 그의 확고한 의지의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에 그것은 나를 큰 기쁨으로 가득 차게 한다.
나는 실로 수많은 제자들이 나에게서 받은 얼마 안 되는 가르침으로 그토록 많이 받은 너희를 능가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너희는, 특히 너 유다는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는 것, 즉 네 개인적인 의견마저 희생하지 않는다. 너는 네 의견을 완고하고 완강하게 고수한다.”
“당신께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싸움이 가장 힘든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너는 그것이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는다는 내 말이 틀렸다고 나에게 말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맞느냐? 그러나 너는 내 말의 뜻을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사람들에게는, 그런데 너는 현실적인 사람이어서 거래의 대상이 되는 것만이 너에게 가치가 있다.
사람의 ‘자아’는 돈을 받고 팔지 못한다. 사람이 이득을 얻어내기를 바라며 자기 자신을 누군가에게 팔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것은 영혼이 사탄을 상대로 행하는 것과 같은 불법적인 거래이고, 그보다 더 악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에는 영혼 외에 사람의 생각이나 판단이나 자유 그밖에 네가 좋을 대로 부르는 모든 것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런 불행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 나는 그의 행위가 얼마나 착한지를 보기 때문에 그를 칭찬한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침묵이 흐른 다음에 예수께서는 다시 말씀을 시작하신다.
“며칠 후에는 에르마스테오가 어렵지 않게 걸어 다닐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갈릴래아로 돌아가겠다. 그러나 너희 모두가 나와 함께 가지는 않을 것이다. 몇 명은 유다에 남아 있다가 유다인 제자들과 함께 나중에 올라와서 우리 모두가 봉헌절에 다시 모이자.”
“그렇게 오랫동안이요? 오! 이런! 이번에는 누구 차례지?”
사도들이 자기들끼리 말한다.
예수께서 그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으시고 대답하신다.
“이번에는 시몬의 유다, 토마스, 바르톨로메오, 필립보의 차례다. 그러나 나는 봉헌절까지 유다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반대로 나는 너희가 제자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봉헌절을 지내기 위하여 거기 와 있도록 알리기를 원한다.
따라서 지금 너희가 가서 그들을 찾고, 모으고, 그들에게 말해라. 그 동안에 그들을 보살펴주고, 도와주고, 나중에 내 뒤를 따라오는 너희가 만난 제자들을 데려오고, 다른 제자들을 위해서는 오라는 명령을 전달해라. 이제 우리는 유다의 주요 지역들에 친구들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이 우리를 위하여 제자들에게 알리는 일을 거들어줄 것이다.
내가 게라사와 보즈라와 아르벨라를 거쳐 아에라까지 갈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요르단 강 동안(東岸)을 따라 갈릴래아로 올라가면서, 내가 지나갈 때 감히 나에게 와서 가르침이나 기적을 청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사람들도 모아서 나에게로 데려오너라. 나는 너희가 도착할 때까지 아에라에 머물러 있겠다.”
“그럼 저희는 지금 즉시 그리로 가는 것이 좋겠는데요.”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아니다, 너희는 내가 떠나기 하루 전날 떠나서 다음 날까지는 겟세마니에서 요나와 함께 머물러 있어라. 그 후에 유다로 떠나거라. 너는 그렇게 해서 네 어머니도 뵙고, 그분이 농작물을 판매하는 일을 도와드리기도 해라.”
“제 어머니는 몇 해 전부터 혼자서 그 일을 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자네는 작년 포도수확기에 자네의 어머니가 자네 없이는 일해가실 수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나?”
베드로가 상당히 교활하게 묻는다.
유다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지고, 분노와 수치심으로 인하여 추하게 보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셔서 있을 수 있는 일체의 대꾸를 미리 막으신다.
“아들은 언제나 어머니에게 도움과 위안이다. 네 어머니는 그 다음에는 파스카와 그 후까지 너를 보지 못하실 것이다. 그러니 너는 가고, 내가 너에게 말하는 대로 해라.”
유다는 베드로에게 대꾸하지 않고 예수께 분통을 터뜨린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하는지를 아십니까? 저는 당신께서 저를 의심하시기 때문에, 제가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잘못 생각하시기 때문에, 저에게 사랑을 가지고 계시지 않기 때문에… 저를 제거하려고 하시거나, 적어도 저를 멀리하려고 하신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다야! 그만해라! 나는 너에게 많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만을 하겠다. ‘순종해라.’”
예수께서는 위엄 있게 말씀하신다. 키가 크신 예수께서 반짝이는 눈과 엄한 얼굴로 사람들을 떨게 하신다…
유다도 떤다. 유다는 다른 모든 사도들의 뒤에 가서 서는데, 그 동안에 예수께서는 혼자서 앞장서 걸으신다. 침묵하는 사도들의 무리는 그들 사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