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4권 공생활 둘째해(하)

하사시4권 [258. 예수와 그분의 사촌 야고보가 카르멜 산에서 내려오다]

Skyblue fiat 2025. 6. 6. 19:41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4권 공생활 둘째 해(하)1 p208~p218

 

 

258. 예수와 그분의 사촌 야고보가 카르멜 산에서 내려오다

1945. 8. 21.

예수께서는 카르멜 산의 평평한 곳을 떠나 이슬에 젖어 있는 오솔길을 따라 나무들 사이로 내려오신다. 숲은 산의 동쪽 사면을 금빛으로 물들이는 이른 아침 햇살을 받으며 떨리는 새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로 점점 더 활기를 띤다. 더위로 인하여 생겼던 아지랑이가 햇살을 받아 사라지자 에스드렐론 평야의 아름다운 정경이 집들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과수원과 포도밭들과 함께 펼쳐진다.

에스드렐론 평야는 양탄자처럼 보이는데, 대체로 초록색이지만 몇 군데의 누르스름한 오아시스가 있고, 군데군데 붉은 곳들이 있다. 그 붉은 곳은 밀을 베어내 이제는 개양귀비들이 불같이 타오르는 듯한 밭들이다. 이 양탄자는 카르멜 산, 타보르 산, 헤르몬 산(소헤르몬 산)으로 이루어진 삼각형의 거미발과 더 멀리 있는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산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이 산들은 요르단 강을 가리고, 동남쪽으로 사마리아의 산들과 이어진다.

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생각에 잠기신 채 팔레스타인의 이 모든 지역을 바라보신다.
야고보가 그분을 쳐다보며 말한다.

“당신께서는 이 지방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계십니까?”

“그렇다, 나는 그것도 보고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어떤 것보다 미래의 순례들과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제한된 일만이 아니라 진짜 선교 일을 하기 위하여 지체 없이 제자들을 파견할 필요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다. 아직도 나를 알지 못하는 많은 지역들이 있는데, 나는 나를 알지 못하는 어떤 장소도 남겨두고 싶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서 모든 것을 하는 것… 그것이 내 생각 가운데 항상 남아 있는 관심사이다.”

“가끔씩 무언가가 일어나 당신의 일을 지연시킵니다.”

“그것은 내 일을 지연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가야 하는 여행경로를 변경하게 만든다. 우리가 하는 여행은 결코 무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할 일이 아주 많다… 그리고 내가 한 군데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가 돌아오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출발점으로 돌아와 있는 것을 만나게 되어 완전히 일을 새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습니다. 영혼들의 무관심, 변덕 그리고 악에 대한 사랑은 지겹고 역겹습니다.”

“지겹기는 하지만, 역겹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의 일은 결코 역겹지 않다. 우리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연민을 느껴야지 혐오감을 느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항상 아버지의 마음, 착한 아버지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착한 아버지는 자녀들의 질병을 결코 혐오스러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도 싫어하면 안 된다.”

“예수님, 제가 당신께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저는 간밤에 잠자지 않고 당신께서 주무시는 것을 보면서 아주 많이 생각했습니다. 나의 아우님, 주무실 때 당신께서는 몹시 어려보이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양팔을 포개 얹고 그 위에 머리를 얹은 어린이와 똑같은 자세를 취한 채 미소 짓고 계셨습니다. 저는 간밤의 청명한 달빛 아래서 당신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숙고했고, 제 마음속에서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말해라.”

“저는 저희의 무능함을 감안할 때 당신께서 교회라고 부르신 그 조직체를 저희가 어떻게 세울 수 있는지, 제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 조직체에는 위계질서들(hierachies)이 있을 터인데, 그것이 맞는지 당신께 여쭈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 당신께서는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니면 저희끼리 생각하여 그 일을 해야 할지 저희에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때가 오면 나는 누가 교회의 우두머리인지를 너희에게 말해주겠다. 그것이 전부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동안에는 나는 사도들과 제자들, 남자제자들과 여자제자들 간의 차이로 인한 다양한 계급들을 너희에게 말해주겠다. 왜냐하면 계급들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제자들이 사도들을 존경하고, 그들에게 순종하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사도들이 제자들에게 사랑과 참을성을 가지기를 원한다.”

“그럼 저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항상 당신을 전하는 일만을 하고, 다른 일은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필수적이다. 그 다음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사죄(赦罪)하고, 강복하고, 은총으로 다시 데려오고, 내가 세울 성사들(Sacraments)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그것들은 무엇입니까?”

“그것들은 물질적인 수단을 통하여 적용되는,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수단인데, 그것은 사제가 참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확신하게 하기 위하여 사용될 것이다. 사람은 보지 않고는 믿지 않는다는 것을 너도 안다. 사람에게는 언제나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그에게 말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기적을 행할 때 손을 머리에 얹거나, 침으로 적시거나, 물이나 술에 적신 빵 한 조각을 준다.
나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적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기적을 행하셨다’고 말할 것 같으냐? 아니다. 그들은 ‘저 환자는 병이 나을 때가 되어 나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병이 나은 공을 의사나 약이나 병자의 육체적 건강으로 돌릴 것이다.

성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사는 신자들에게 은총을 베풀거나 그 은총을 다시 베풀거나 그들 안에 있는 은총을 강화하기 위한 종교적인 형식이다. 예컨대 요한은 죄로부터 깨끗해지는 것을 상징하기 위하여 죄인들을 물에 잠기게 했다. 사실은 자신이 범한 죄로 인하여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을 고백함으로써 모욕당하는 것이 몸만을 씻는 물보다 더 유익하다.

나도 세례를, 내 세례를 가질 것이다. 내 세례는 상징일 뿐 아니라 참으로 영혼을 원죄로부터 깨끗하게 해주고, 아담과 하와가 죄짓기 전에 가졌던 영적인 상태를 영혼에게 돌려줄 터인데, 그것은 사람-하느님의 공로들을 통하여 주어지기 때문에 더 향상된 것이다.”

“하지만… 물은 영혼으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영혼은 신령하니까요. 갓난아기나 어른이나 노인 안에 있는 영혼을 누가 접촉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접촉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 너도 물이 신령한 것에 대해서는 효과가 없는 물질적인 수단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그러므로 세례 받는 사람을 원죄로부터 구속하는 기적을 행하는 것은 물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하여 봉헌된 그리스도의 교회의 일원인 사제나, 예외적인 경우에 그를 대신하는 다른 참다운 신자의 말일 것이다.”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스스로도 죄짓습니다… 누가 다른 죄들을 없애줍니까?”

“야고보야, 사죄해주는 사람들은 항상 사제들이다. 어른이 세례 받는다면, 원죄와 동시에 다른 죄들도 제거될 것이다. 사람이 이미 세례 받았는데 다시 죄짓는다면, 내가 죄인들에 대하여 하는 것처럼 사제도 한분이시고 삼위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사람이 된 말씀의 공로들을 통하여 그를 사해줄 것이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거룩하십니다! 저희는…”

“너희는 거룩한 것들을 만지고, 하느님께 속한 것을 베풀기 때문에 거룩해야 한다.”

“그럼 갈 때마다 물에 잠기게 해주는 요한처럼 저희도 같은 사람에게 여러 번 세례를 줍니까?”

“요한의 세례는 오로지 물에 잠기는 사람의 겸손을 통해서만 정화해준다. 이것은 내가 너에게 이미 말해주었다. 너희는 어떤 사람이 사도적 양식이 아닌 이교적(離敎的) 양식으로(shismatic formula) 세례 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미 세례 받은 사람들에게 다시 세례를 베풀지 마라.
그런 경우에는 그가 어른이라면 세례받기를 원한다는 분명한 요청과 참다운 교회(the true Church)의 일원이 되기를 원한다는 분명한 선언에 따라 두 번째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
그 밖의 모든 경우에는 하느님과의 우정과 평화를 그 영혼에게 주기 위하여 너희는 그리스도의 공로들에 연결된 용서의 말을 사용해라. 그러면 참된 뉘우침과 겸손한 고백으로 너희의 영혼 전체가 사해질 것이다."

“그럼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병이 중한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그는 죄 중에서 죽어야 합니까? 그에게는 임종의 고통에 하느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덧붙여져야 합니까?”

“아니다. 사제가 죽어가는 사람에게 가서 죄를 사해줄 것이다. 사실 사제는 그에게 더 풍부한 형태의 사죄도 줄 터인데, 그것은 포괄적인 형태가 아니라 사람이 일반적으로 죄를 짓는 개별 감각기관 하나하나에 대한 사죄일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주신 처방에 따라 합성된 성유가 있어 그것으로 제단과 대사제와 사제들과 왕을 축성한다. 사람은 참으로 제단이고, 그에 대한 하늘에서 옥좌로의 선택을 통하여 왕이 된다. 그렇기에 사람은 도유의 기름으로 축성될 수 있다.

성유는 비록 다른 용도이기는 하지만 이스라엘의 다른 예배의식과 함께 내 교회에서 채택되어 쓰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모든 것이 나빠서 버려져야 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옛 유산들 중 많은 것들이 내 교회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그중 하나가 바르는 성유인데, 이 성유는 교회에서 제단들, 대사제, 모든 성직 계급, 왕들을 축성할 때와 신자들이 하늘나라의 왕자와 상속자가 될 때나 모든 죄에서 정화된 몸과 오관(五官)을 가지고 하느님 앞에 나아가기 위하여 가장 큰 도움이 필요할 때 쓰일 것이다. 하느님께서 병자의 이익을 위하여 원하신다면, 그분의 은총이 영혼과 육체 모두를 도와주실 것이다.

평화를 어지럽게 하는 가책과 병자의 죽음을 통하여 한 영혼을 자기의 나라로 끌어가기를 바라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기를 원하는 사탄의 작용으로 인하여 질병에 대하여 육체가 저항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랬던 병자가 사탄이 떠나게도 하는 하느님의 용서에 대한 확신으로 사탄의 속박과 내적인 혼란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상태로 넘어간다.

그리고 최초의 조상들에게 있어 은총의 선물에 질병과 모든 형태의 고통이 면제되는 선물이 더해졌던 것처럼 내 세례로 세례받은 갓난아기의 은총만큼이나 큰 은총으로 회복된 병자도 질병을 극복할 수 있다. 병자는 형제들의 기도로도 도움 받을 수 있는데, 그들은 그들의 형제의 육체적, 영적 구원 모두를 얻어내기 위하여 병자에 대한 육체적인 연민뿐 아니라 먼저 영적인 연민을 가져야 한다.

야고보야, 기도는 이미 기적의 한 형태이다. 너도 엘리야에게서 보았다시피 의인의 기도는 매우 강력할 수 있다.”

“저는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것의 일부만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한 것만으로도 저는 당신의 사제들의 사제적 성격에 대하여 깊은 존경심을 가지게 됩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저희는 당신과 여러 가지 면에서 공통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설교, 사죄, 기적들에 있어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 가지 성사들에서요.”

“아니다, 야고보야. 설교와 기적들은 성사들이 아니다. 그러나 성사들은 더 있을 것이다. 성전의 성스러운 큰 촛대(the sacred candelabrum of the Temple: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에 있었던 촛대로 일곱 개의 초를 꽂게 되어 있었다.)와 사랑의 성령의 선물들(the gifts of the Spirit of Love 성령칠은: 슬기, 지각, 의견, 지식, 용기, 효경, 경외심)처럼 일곱 가지(7성사: 세례, 견진, 성체, 고해, 병자, 성품, 혼인)가 있을 것이다. 사실 성사들은 선물들이고 불꽃들인데, 그것들은 주님 앞에서 영원히 불타게 하기 위하여 사람에게 주시는 것들이다. 사람들의 혼인을 위한 성사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라구엘의 딸 사라가 마귀에게서 해방된 다음 그녀의 거룩한 혼인에서 상징으로 나타났다.(토빗 3장 이하)이 성사는 혼인한 한 쌍에게 하느님의 율법과 소원에 따라 함께 사는 데 필요한 모든 도움을 줄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한 의식 즉 생식이라는 의식을 거행하는 사제도 되며, 가정이라는 작은 교회의 사제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며 자녀를 낳고, 하느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이름을 찬미하는 자손을 기르기 위하여 축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제들은 누구에게 축성됩니까?”

“내가 너희를 떠나기 전에는 나에게. 그 다음에는 너희가 너희의 후계자들과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파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가 모을 사람들을 축성할 것이다.”

“당신께서는 저희에게 가르쳐주실 거지요?”

“나와 내가 너희에게 보낼 분께서 가르쳐주실 것이다. 그분의 오심도 하나의 성사일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그분의 최초의 공현(公現, Epiphany 그리스도 승천 후 오순절 날 있었던 성령강림.)을 통하여 자발적으로 주실 성사이고, 그 다음에는 완전한 사제직을 받은 사람들(주교들)이 줄 성사이다. 이 성사는 힘, 총명, 믿음의 확인일 것이다. 그것은 거룩한 경건과 거룩한 두려움일 것이고, 조언에 있어서의 도움과 초자연적인 지혜일 것이며, 그 성질과 힘에 의하여 그것을 받는 아이를 어른이 되게 하는 정의의 소유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너는 이 성사를 이해할 수 없다. 너희가 그분을 받아들일 순간이 되었을 때 하느님의 성령이시고 영원한 사랑이신 그분께서 너희에게 그것을 이해하게 하실 것이다. 이 성사는 너무도 숭고하여 천사들도 거의 이해하지 못할 정도이다. 그러나 순전히 사람인 너희는 믿음과 사랑의 힘으로 그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이 성사를 사랑하고 그것으로 자기 영혼을 기르는 사람들은 손상을 입지 않고 마귀를 짓밟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형제여, 이것들을 기억하려고 노력해라. 너는 네 동료들과 신자들에게 그것들을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해주어야 한다.
그때 너희 모두는 이미 너희의 성직을 통하여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그분께서는 카르멜 산에서 내려오시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나는 이스라엘 교회의 머리가 되기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당신께 여쭙고 싶은 질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간밤에 저는 그것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곳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라고 제가 동료들에게 말해야 합니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말씀하신다면 저는 그렇게 하겠습니다만, 제 마음이 내키지는 않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파라클리토 성령께서 너희 모두에게 내려와 거룩한 생각들을 너희 안에 넣어주실 것이다. 너희 모두가 하느님의 교회 안에서의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같은 생각들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저희가 지금 하고 있는 그… 몹시 불쾌한 토론도 없어지겠습니까? 심지어 시몬의 유다도 더 이상 불화의 원인이 안 될까요?”

“그도 더 이상 그렇게 되지 않게 될 터이니 안심해라. 그러나 여전히 의견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너에게 네 의무를 끝까지 다하면서 결코 싫증내지 말고, 주의하고, 살피라고 말했던 것이다.”

“나의 주님, 또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박해 시에 저는 어떻게 처신해야 합니까? 당신의 말씀에 따르면 열두 사람 중 저 혼자만 남아 있어야 되는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박해를 피해 떠나겠군요. 그럼 저는요?”

“너는 네 자리에 남아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가 굳건하게 세워지기까지는 너희가 몰살당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고, 그래서 많은 제자들과 거의 모든 사도들이 흩어지는 것이 이것으로 정당화되지만, 어떤 것도 네가 임지를 이탈하는 것과 예루살렘 교회를 버리는 것을 정당화해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예루살렘 교회가 처한 위험이 크면 클수록, 너는 그 교회가 마치 죽어가는, 네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것을 더 보살펴야 할 것이다.

네 모범이 신자들의 영혼을 강화해줄 것이다. 그들이 시련을 극복하는 데는 그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들이 약한 것을 네가 보면 볼수록, 너는 연민과 지혜를 가지고 더욱 더 그들을 부축해주어야 할 것이다. 네가 강하다고 해서 약한 사람들에게 무자비하지 말고, ‘나는 모든 것을 하느님에게서 받아 이렇게 강하게 되었다. 나는 겸손하게 그것을 인정해야 하고, 그렇게 많은 하느님의 선물들로 축복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비롭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의 힘을 북돋아주고, 네 말, 네 도움, 네 침착함과 모범으로 네 힘을 나눠주어야 한다.”

“그런데 만일 신자들 중 다른 사람들에게 위험과 스캔들의 원인이 되는 나쁜 사람들이 있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을 받아들일 때 신중해라. 수가 많으면서 좋지 못한 것보다는 수가 적으면서 좋은 편이 더 낫기 때문이다. 너는 좋은 사과와 나쁜 사과에 대한 오래된 우화를 안다. 그런 일이 네 교회에서도 일어나지 않게 해라. 그러나 너도 너를 배반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모든 방법을 써서 그들을 도로 데려오려고 애쓰고, 엄격한 방법은 마지막 수단으로 남겨두어라.

그것이 사소한 개인적인 잘못의 문제일 때는 너무 엄격하게 처리하여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마라. 용서해라, 항상… 사람의 마음은 저주보다는 눈물과 사랑의 말과 결합된 용서에 의하여 더 쉽게 구속된다.

만일 잘못이 중한데도 그것이 사탄의 갑작스러운 공격의 결과라면, 그리고 잘못이 너무 커서 죄지은 사람이 네 면전에서 도망갈 필요를 느낄 정도라면, 그는 길 잃은 어린양이고 너는 목자이니 그 죄지은 사람을 찾아 나서라. 영혼들을 찾아 진창길을 가고, 늪과 벼랑을 뒤짐으로써 너 자신을 비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렇게 되면 네 이마에는 사랑의 순교자의 관이 씌워질 터인데, 그것은 세 가지 관들 중 첫째 것이 될 것이다… 너 자신이 세례자와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배반당하게 된다면, 모든 성인은 다 배반자를 가졌으니 그를 용서해라. 네가 다른 어떤 사람을 용서하는 것보다 그 배반자를 더 용서해라.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용서하셨고, 앞으로도 용서하실 것처럼 너도 용서해라. 너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을 다시 ‘아들’이라고 불러라. 아버지께서 내 입을 통하여 너희를 그렇게 부르시기 때문이다. 실로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 깊은 슬픔을 끼쳐드리지 않은 사람은 없다.”

양들이 여기저기서 풀을 뜯고 있는 초원을 그들이 가로질러 가는 동안 긴 침묵의 시간이 이어진다.

마침내 예수께서 물으신다.

“너는 더 이상 나에게 질문할 것이 없느냐?”

“없습니다, 예수님. 오늘 아침에 저는 제 엄청난 임무를 더 분명하게 이해했습니다.”

“왜냐하면 너는 어제보다 마음이 덜 어지럽기 때문이다. 네 때가 이르면, 너는 훨씬 더 차분해질 것이고, 훨씬 더 잘 이해할 것이다.”

“저는 모든 것을 기억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다만…”

“무엇 말이냐, 야고보야?”

“지난밤에 울지 않고는 당신을 쳐다보지 못하게 했던 것만은 빼놓고 말입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말씀해주셨는지, 진짜로 저에게 말씀해주셨다면 제가 믿어야 할지, 아니면 그것이 마귀가 주는 두려움인지 제가 잘 알지 못하는 것 말입니다. 만일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면… 당신께서는 어떻게 그리도 침착하실 수 있습니까?”

“그럼 만일 내가 너에게 ‘저 목자가 불구가 된 다리 때문에 몹시 힘들게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니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 사람을 고쳐주어라’고 말한다면, 네가 침착해지겠느냐?”

“주님, 아닙니다. 저는 제가 주님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어찌할 바를 모를 것입니다.”

“만일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면?”

“저는 순종으로 그렇게 하고, 더 이상 혼란스러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당신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 것이고, 어떻게 할지 알지 못할까봐 염려하지 않을 테니까요. 왜냐하면 만일 당신께서 저를 보내신다면, 당신께서는 분명히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을 할 힘을 저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 말이 맞다. 그렇게 해서 너는 내가 아버지께 순종함으로써 항상 평화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고보는 고개를 숙이고 운다.

“너는 정말로 잊기를 원하느냐?”

“나의 주님,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요…”

“너는 두 가지 선택지를 가지고 있다. 잊어버리는 것과 기억하는 것. 잊어버림으로써 너는 심적 고통과 네 동료들에게 절대적으로 침묵할 필요에서 풀려날 것이다. 그러나 너는 준비되지 않은 채로 있게 될 것이다. 기억함으로써 너는 네 사명을 위하여 준비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결코 불평하지 않고, 가장 밝은 빛 안에서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봄으로써 영적으로 강화되려면, 사람의 아들이 지상 생활에서 고통당했던 것을 기억하는 것 그것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네가 선택해라.”

“믿고, 기억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죽는 것입니다, 주님.”

야고보는 계속해서 소리 없이 울고 있다. 눈물이 그의 갈색 수염에서 반짝이지 않는다면, 나는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가 울도록 내버려두신다…

마침내 야고보가 묻는다.

“그런데 만일 당신께서 장차 당신의… 순교에 대하여 다시 암시하신다면, 저는 제가 알고 있다고 말해야 합니까?”

“아니다. 침묵해라. 요셉은 자기의 신부가 자기에게 불충실하다고 생각했을 때 신랑으로서의 자신의 고통과 마리아의 동정녀로서의 잉태의 신비와 내 본성(My Nature)의 신비에 대하여 침묵할 줄 알았다. 그분을 본받아라.

그것 또한 엄청난 비밀이었다. 그 비밀은 지켜져야 했다. 교만이나 부주의로 그 비밀이 알려졌다면 구속사업 전체가 위태롭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끊임없이 살피고, 행동한다. 그것을 기억해라. 만일 지금 네가 말한다면, 너는 너무 많은 사람들과 너무 많은 일들에 타격을 입힐 것이다. 침묵해라.”

“저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중의 부담이겠는데요…”

예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야고보가 아마포 두건으로 가린 채 실컷 울도록 내버려두신다.

그들은 불행한 어린이를 등에 업은 채 오는 사람을 만난다.

“이 아이는 당신의 아들이오?”
예수께서 물으신다.

“그렇습니다. 이 아이는 이런 상태로 태어났는데, 얘 어미는 얘를 낳느라고 죽었습니다. 이제는 제 어머니도 돌아가셨기 때문에 저는 일하러 갈 때 이 애를 데리고 다닙니다. 저는 벌목공입니다. 저는 풀 위에 제 겉옷을 깔고 그 위에 이 애를 눕혀놓습니다. 제가 나무를 베는 동안 이 불쌍한 어린것은 꽃들과 놉니다!”

“이건 크나큰 불행이군요.”

“예,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평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안녕히 가시오. 평화가 당신과 함께.”


“안녕히 가십시오. 당신께도 평화.”


그 사람은 산으로 올라가고, 예수와 야고보는 계속 내려온다.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저는 당신께서 그 아이를 고쳐주시기를 바랐습니다.”

야고보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예수께서는 못 들은 것처럼 보이신다.

“선생님, 만일 저 사람이 당신께서 메시아시라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 그는 당신께 기적을 청했을 겁니다.”

예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신다.

“예수님, 제가 돌아가서 그 사람에게 말해주어도 되겠습니까? 그 아이가 불쌍합니다. 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그 어린이가 병이 낫는 것을 보는 기쁨만이라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럼 가거라. 나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다.”

야고보는 되돌아서 뛰어간다. 그는 그 남자를 따라잡은 다음 그를 부른다.

“여보시오. 걸음을 멈추고 내 말을 들으시오! 나와 함께 계셨던 분은 메시아시오. 당신의 아들을 그분께 데려가도록 그 아이를 나에게 주시오. 당신도 오고 싶으면 와서 그분께서 이 아이를 고쳐주시는지 보시오.”

“당신 혼자 가시오. 나는 이 나무들을 다 잘라야 합니다. 나는 아이 때문에 이미 시간을 지체했어요. 나는 일하지 않으면,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어요. 나는 가난하고, 이 아이에게는 비용이 아주 많이 들어갑니다. 나는 분명히 메시아를 믿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내 대신 그분께 말씀드리는 편이 더 나아요.”

야고보는 풀 위에 누워 있는 어린이를 안아 올리려고 몸을 숙인다.

“조심해요.”
나무꾼이 주의를 준다.
“그 애는 온몸이 아프니까요.”

과연 야고보가 그 아이를 안으려고 하자마자 아이가 애처롭게 운다.

“오! 너는 얼마나 아프니!”
야고보가 한숨을 쉬며 탄식한다.

“끔찍한 고통입니다.”
벌목공이 단단한 나무줄기를 톱으로 자르면서 말한다.

“당신은 그 애를 고쳐줄 수 없습니까?”

“나는 메시아가 아니오. 나는 제자일 뿐이오…”

“그래요? 의사들은 다른 의사들한테 배우고, 제자들은 선생에게 배웁니다. 자, 선심을 쓰시오. 그 애를 고통스럽게 하지 마시오. 해보세요. 만일 선생님께서 여기 오시기를 원하셨다면, 그분께서는 오셨을 겁니다. 그분께서는 이 애를 고쳐주시기를 원치 않으셨거나 당신이 이 애를 고쳐주기를 원해서 그러셨을 것입니다.”

야고보는 어쩔 줄을 모른다. 마침내 그가 결심한다. 그는 일어서서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것을 자기가 본 대로 기도드린다. 마침내 그가 명령한다.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라.”

그는 즉시 무릎 꿇고 말한다.
“오! 나의 주님, 용서하십시오! 저는 당신의 허락 없이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이스라엘의 어린이에 대한 연민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나의 하느님,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이 어린이와 죄인인 저를!”

그는 풀밭에 사지를 쭉 뻗은 채 누워 있는 어린이 위로 몸을 숙이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운다. 뒤틀리고 움직이지 못하는 두 다리에 그의 눈물방울들이 떨어진다.


예수께서 갑자기 오솔길에 나타나신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를 보지 못한다. 나무꾼은 일하고 있고, 야고보는 울고 있고, 어린이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야고보를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아이가 야고보를 어루만지며 묻는다.

“아저씨, 왜 울어?”

아이가 그를 다시 어루만지려고 귀여운 손을 내민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혼자 일어나 앉은 다음 다시 일어나 야고보를 위로하려고 껴안는다. 야고보가 외치는 소리에 벌목공이 뒤돌아서서 자기의 아이가 이제는 축 늘어져 있지도 않고, 뒤틀리지도 않은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을 본다. 그는 뒤돌아서며 예수를 발견한다.

“그분께서는 저기 계십니다!”

벌목공은 야고보의 등 뒤쪽을 가리키며 외친다. 야고보가 뒤돌아보자 기쁨으로 빛나는 얼굴로 자기를 바라보시는 예수께서 보이신다.

“선생님! 저는 어떻게 이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동정… 이 사람… 이 어린이…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일어나라. 제자들이 선생보다 높지는 않지만, 그들이 거룩한 동기로 할 때 선생이 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일어나 나와 함께 가자. 당신들 두 사람은 축복받으시오. 그리고 하느님의 종들도 하느님의 아들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예수께서는 계속 말하는 야고보를 그분께로 끌어당기시며 가신다.

“제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저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당신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했습니까?”

“야고보야, 동정함으로써. 그 죄 없는 어린이와 믿으면서도 동시에 의심하기도 하는 그 사람에게 내가 사랑받게 하려는 네 갈망으로 그렇게 했다. 요한은 사랑으로 야브느엘 근처에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기도하면서 기름을 발라 그의 병을 낫게 함으로써 기적을 행했다. 너는 여기서 네 눈물과 네 연민으로, 그리고 내 이름에 대한 믿음으로 병을 고쳤다. 너는 제자가 좋은 의향을 가지고 있을 때 주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평화로운지 알겠지?

저 사람이 우리를 뒤따라오고 있으니 이제 빨리 걷자. 지금 당장은 네 동료들이 이 일을 알게 되는 것은 좋지 않다. 나는 머지않아 내 이름으로 너희를 보내겠다… (예수께서 깊은 한숨을 쉬신다) 시몬의 유다가 기적을 행하기를 갈망하니 말이다(예수께서 다시 깊은 한숨을 쉬신다). 너희도 기적을 행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에게 유익한 것은 아닐 것이다. 걸음을 재촉하자, 야고보야!

네 동생과 시몬 베드로와 다른 사람들도 이것을 알면 그것이 편애라도 되는 것처럼 괴로워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편애가 아니다. 이것은 너희 열두 명 중에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누군가를 준비하는 것이다. 나뭇잎들로 뒤덮여 있는 저 급류의 자갈 덮인 하상으로 내려가자. 우리의 모든 흔적이 없어질 것이다… 너는 그 어린이 때문에 마음이 아프냐? 오! 우리는 그 어린이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