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시(새번역)/4권 공생활 둘째해(하)

하사시4권 [246. 마리아께서 막달라의 마리아를 가르치시다]

Skyblue fiat 2025. 5. 28. 09:13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제4권 공생활 둘째 해(하)1 p120~p125

 

246. 마리아께서 막달라의 마리아를 가르치시다

1945. 8. 8.

“나의 주님, 우리는 어디에서 묵을 겁니까?”

전체가 경작되고, 밑에서부터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초록빛인 두 야산 사이의 좁은 골짜기로 일행이 길을 가는 동안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묻는다.

“갈릴래아의 베들레헴에서. 그러나 더운 시간에는 메라바를 내려다보는 산 위에서 쉬기로 하자. 그렇게 하면 네 동생은 바다를 보고 다시 한 번 기뻐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미소 지으신 다음 결론을 내리신다.
“우리 남자들끼리라면 더 멀리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제자들이 우리를 따라온다. 그들은 결코 불평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들을 지나치게 피로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결코 불평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희가 더 쉽게 불평합니다.”
바르톨로메오가 인정한다.

“그들은 우리보다 이 생활에 덜 적응되어 있는데도 말이야.” 베드로가 말한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기꺼이 그렇게 하는지도 몰라.”
토마스가 말한다.

“아니다, 토마스야. 여자들은 사랑으로 그렇게 한다. 내 어머니도, 알패오의 마리아, 살로메, 수산나 같은 다른 가정주부들도 재미삼아 집을 떠나 세상의 길들과 사람들 가운데를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희는 분명히 알아두기 바란다. 그리고 마르타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오게 될 요안나도 이런 피로에 습관이 되지 않았기에 그들이 사랑에 이끌리지 않고서는 흔쾌히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막달라의 마리아에 관해서는 강력한 사랑만이 그녀에게 이런 고통을 견뎌낼 힘을 줄 수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당신께서는 그것이 고통인 줄을 아시면서 왜 그녀에게 따라오라고 명령하셨습니까?”
가리옷 사람이 묻는다.
“이것은 그녀에게도, 우리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그녀의 변화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증거 외에는 아무것도 세상을 설득할 수 없었다. 마리아는 그것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을 설득하기를 원한다. 그녀의 과거와의 단절은 완전했다. 그 단절은 완전하다.”

“그것은 더 지켜보아야 알 일입니다. 지금 그렇게 말하기는 이릅니다. 특정한 생활양식에 적응되고 나면, 그것을 떨쳐내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우정들과 향수에 이끌려 그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그럼 자네는 자네의 과거의 생활에 향수를 느끼나?”

“나는… 아니야. 나는 지금 말하고 있을 뿐이야. 나는 나야… 남자고. 나는 선생님을 사랑해. 그리고… 요컨대 나는 내 목적 안에서 굳건하게 있도록 나를 도와주는 요소들을 내 안에 가지고 있어.
그러나 그녀는 여자야, 보통이 넘는 여자! 설령 그녀가 아주 굳세다 해도 그녀를 우리와 함께 있게 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야. 혹시 우리가 라삐들이나 사제들이나 유력한 바리사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그들의 논평이 그리 유쾌한 건 아닐 거라는 걸 자네들은 확신해도 좋아. 그것을 상상해보니 나는 지금부터 얼굴이 빨개지네.”

“유다야, 스스로 모순되는 말을 하지 마라. 네가 만일 네 말대로 네 과거와 실제로 단절했다면, 너는 왜 선을 향한 자신의 회개를 완성하려고 우리를 따라오는 한 불쌍한 영혼을 그토록 유감스럽게 생각하느냐?”

“선생님, 사랑으로요. 저도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합니다. 선생님에 대한 사랑으로요.”

“그렇다면 네 사랑을 향상시켜라. 사랑이 참으로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결코 배타적이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이 한 대상만을 사랑할 줄 알고 다른 대상을 사랑할 줄 모른다면,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에게서 사랑을 받는다 해도 그것이 참다운 사랑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완전한 사랑은 적절한 단계에 따라온 인류와 동물들과 식물들과 별들과 물도 사랑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하느님을 통하여 모든 것을 보기 때문이다. 그는 마땅히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을 사랑한다. 배타적인 사랑은 흔히 이기심이라는 것을 유념해라.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애써라.”

“그러겠습니다, 선생님.”

토론의 대상인 막달라 마리아는 그 동안에 자기가 그토록 긴 대화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다른 여자들과 함께 성모님 곁에서 걸어간다.
일행은 야피아의 마을에 이르러 그곳을 가로질러 지나가는데도, 선생님을 따르거나 그분을 붙잡으려는 어떠한 갈망을 나타내는 주민은 전혀 없다. 그래서 그들은 길을 계속 가는데, 사도들은 그곳 사람들의 무관심을 개탄하고 있고, 예수께서는 그들을 진정시키려고 애쓰신다.

계곡은 서쪽으로 이어지고, 그 끝에는 다른 산 밑자락에 펼쳐져 있는 다른 마을 하나가 보인다.

메라바라고 불리는 것을 내가 들은 이 마을도 무관심하다. 몇 명의 어린이들만이 사도들이 어떤 집에 붙어 있는 맑은 샘에서 물을 뜨는 동안에 그들에게 다가온다. 예수께서 그들을 쓰다듬어 주시며 이름을 물으시자 어린이들도 그분의 이름과 그분께서 누구시며, 어디로 가고 계시는지를 묻는다. 늙고 몸이 굽은 반소경이 다가와 동냥을 얻으려고 손을 내밀어 동냥을 받는다.

그들은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하여 깊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야산으로 올라간다. 거기서 작은 개울물들이 계곡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지금 그것들은 가느다란 물줄기가 되어 돌들이 드러나 햇볕에 달구어져 있다. 양호한 상태의 길은 올리브 재배지를 통과한 다음에 다른 나무들 사이로 지나가는데, 그 가지들은 서로 얽혀 길 위에 푸른 회랑을 만들어놓고 있다. 그들은 잎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무들이 우거진 꼭대기에 올라가는데,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이것은 물푸레나무 숲인 것 같다.

그들은 거기 앉아 휴식하고, 음식을 먹으며, 매력 있는 경치도 즐긴다. 서쪽을 바라보면 왼쪽의 카르멜 산맥과 함께 펼쳐진 정경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 산맥은 녹음이 짙게 우거진 산맥인데, 녹색의 모든 아름다운 색조가 거기 있다.

산맥이 끝나는 곳은 바다이다. 바다는 반짝이고, 툭 트여 있고, 잔물결이 일렁이고 있는 수면이 북쪽으로 뻗어간다. 바다가 적시고 있는 해안은 카르멜 산맥의 마지막 지맥으로부터 프톨레마이스와 다른 도시들을 향하여 올라가서 마침내 시로 페니키아 해안 근처에서 가벼운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카르멜산 지맥의 곶 남쪽으로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예수의 일행이 있는 야산보다 더 높은 산맥이 시야를 가리기 때문이다.

바람 부는 나무 그늘 속에서 몇 시간이 흘러간다. 어떤 사람들은 자고, 어떤 사람들은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은 경치를 감상한다. 요한은 자기의 동료들을 떠나 더 좋은 조망을 얻기 위하여 가능한 한 높이 올라간다. 예수께서는 묵상하고 기도하시려고 숲속으로 들어가신다.

여자들은 꽃이 만발해 있는 인동덩굴 숲 뒤로 물러가 그곳에서 작은 샘에서 몸을 식힌다. 그 샘물은 작은 개울들과 물웅덩이를 땅에 만들어놓고 있다. 나이 많은 여자들은 피곤하여 잠들었고, 복되신 동정녀와 마르타와 수산나는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들의 집에 대하여 이야기하는데, 마리아께서는 그분의 작은 동굴을 꾸밀 수 있는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관목 숲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다.

막달라 마리아는 머리카락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서 풀었던 머리카락을 다시 묶으며 말한다.
“저는 지금 시몬과 함께 있는 요한에게 가서 그들과 함께 바다를 보고 싶어요.”

“나도 가고 싶다.”
마리아께서 대답하신다.

마르타와 수산나는 자고 있는 동료들 곁에 남아 있다.
두 사도가 있는 곳에 가려면, 여자들은 예수께서 기도하기 위하여 들어가 계시는 관목 숲 근처를 지나가야 한다.

“기도는 내 아들의 휴식이다.”
마리아께서 조용히 말씀하신다.

막달라 마리아가 그분께 대답한다.
“저는 세상이 가혹하게 시험하는 선생님의 놀라운 자제력을 유지하려면 저렇게 외따로 계시는 것이 그분께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 아시지요? 저는 당신께서 저에게 말씀해주신 대로 했습니다. 저는 매일 밤 많은 것들로 어지러워진 저의 마음 안에 평온함을 회복하기 위하여 다소 긴 시간 동안 외따로 떨어져 지냅니다. 그 다음에는 제가 훨씬 더 강해진 것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 너는 더 강하다고 느끼지만, 나중에는 더 행복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마리아야, 내 말을 믿어라. 평화를 누릴 때나, 싸울 때나,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우리 영혼은 세상과 사건들이 파괴하는 것을 다시 세우고, 점점 더 높이 올라갈 새 힘을 얻기 위하여 묵상의 대양으로 뛰어들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에서 우리는 말로 하는 기도를 사용하고, 그것을 남용하기도 한다. 그것이 무익하다거나 하느님께서 좋지 않게 보신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하느님을 향한 정신적 상승인 묵상이 항상 영혼에 훨씬 더 유익하다고 말한다. 하느님의 신성한 완전과 우리의 비참함을 숙고하거나 참으로 많은 불쌍한 영혼들을 비판하기보다는 그들에게 관용하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죄짓지 않도록 지켜주시거나 우리를 용서해주시어 우리가 죄 가운데 있지 않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기 위하여 그들의 비참함을 숙고하고 묵상하다보면, 우리는 참으로 성공적으로 기도하기에 이른다. 다시 말해 사랑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사랑이어야 하고, 실제로도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이 빠져 있는 입술만의 중얼거림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입술이 너무나 많은 불경스러운 말로 더럽혀져 있을 때 하느님께 말씀드려도 됩니까? 저는 지극히 상냥한 제 사도이시자 어머니이신 당신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행하는 묵상 시간에는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고 하느님께 말씀드리고 싶어 하는 제 마음을 억제하고 있습니다.”

“안 된다! 너는 왜 그렇게 하느냐?”

“제 마음을 바침으로써 저는 제가 하느님을 모독하는 제물을 드리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나의 소중한 딸아, 그렇게 하지 마라. 네 마음은 먼저 아들(the Son)의 용서로 다시 거룩하게 되었는데, 아버지께서는 그 용서만을 보신다.

그러나 설령 예수가 너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다 해도 알려지지 않은 고독 속에서―이 고독은 물질적일 수도 있고, 정신적일 수도 있다―네가 하느님께 ‘아버지,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제 잘못들을 용서해주십시오. 그것들이 당신을 슬프시게 해드리기에 저는 마음이 아픕니다’ 하고 부르짖으면, 마리아야, 내 말을 믿어라.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몸소 네 죄를 용서해주실 것이고, 네 사랑의 부르짖음은 그분께 소중할 것이다.

너 자신을 사랑에 내맡겨라. 사랑을 억제하지 말고, 오히려 불꽃처럼 맹렬하게 타오르게 해라. 화염은 물질적인 모든 것을 태워버리지만, 공기는 분자 한개도 파괴하지 못한다. 공기는 무형의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은 바람에 불려오는 아주 작은 부스러기들을 깨끗이 태워 공기를 더 가볍게 만든다.

사랑은 영혼에 대하여 같은 일을 한다. 만일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사랑은 사람의 물질을 더 빨리 불사르겠지만, 영혼을 파괴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사랑은 영혼의 활기를 증가시키고, 순수하고, 민첩하게 만들어 하느님께로 올라갈 수 있게 한다.
저기 요한이 보이지? 그는 아직 소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는 독수리다. 요한은 모든 사도들 중 가장 강하다. 왜냐하면 그가 힘, 영적 함양(spiritual formation)의 비결, 즉 사랑 가득한 묵상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깨끗합니다. 그런데 저는… 요한은 소년입니다. 저는…”

“그럼 열성당원을 보아라. 그는 젊은이가 아니다. 그는 산전수전을 다 겪었고, 싸웠고, 미워했다. 그는 솔직하게 그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묵상하기를 배웠다. 그래서 그도 아주 높이 올라갔다. 정말이다. 알겠느냐?
저 두 사람은 서로 닮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찾는다. 그들은 똑같은 영혼의 완전한 나이에 이르렀는데, 똑같은 방법 즉 묵상으로 거기에 이르렀다. 묵상을 통하여 한 젊은이가 영혼 안에서 성년이 되었고, 묵상을 통하여서 이미 늙고 삶에 지친 한 사람이 강력한 원기를 회복했다.
그리고 너는 사도가 아니면서도 묵상에 대한 자신의 타고난 경향 때문에 매우 앞서게 될, 아니 이미 매우 앞서 가는 다른 사람을 아느냐? 그는 예수의 친구가 된 다음부터 그의 영적인 필요가 되었다. 그것은 네 오빠다.”

“제 라자로 오빠요?… 오! 어머니! 당신께서는 하느님께서 그것들을 당신에게 가르쳐주시기 때문에 많은 것을 알고 계시니 우리가 처음 만날 때 제 오빠가 저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말씀해주세요.


전에 그는 멸시하며 침묵했습니다. 그가 타이르는 말을 제가 참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저는 제 오빠와 언니에게 대단히 잔인했습니다…
지금 저는 그것을 깨닫습니다. 그가 자기가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지금 그는 저에게 무어라고 말할까요? 저는 그가 터놓고 저를 비난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오! 그는 틀림없이 저 때문에 겪어야 했던 모든 심적 고통을 저에게 상기시킬 것입니다.

저는 제 오빠에게 날아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가 두렵습니다. 전에도 저는 집에 가긴 했지만, 돌아가신 엄마의 추억, 엄마가 쓰셨던 물건에 여전히 남아 있는 눈물, 제 잘못 때문에 저를 위하여 엄마가 흘리셨던 눈물마저도 제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제 마음은 냉소적이고, 후안무치하고, ‘악’이 아닌 어떤 목소리에도 귀머거리였습니다.
지금 저는 더 이상 악의 사악한 힘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떨립니다… 그는 저를 어떻게 대할까요?”

“라자로는 너에게 두 팔을 벌리고, 입술보다는 마음으로 너를 ‘지극히 사랑하는 동생’이라고 부를 것이다. 라자로는 하느님 안에서 굳게 세워져서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는 네 과거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나는 내가 라자로를 보는 것이나 다름없이 알 수 있는데, 그는 저기 베타니아에 있지만, 기다리는 세월이 그에게는 몹시 길게 느껴진다. 그는 너를 가슴에 꼭 껴안고 오빠로서의 자신의 사랑을 말하려고 너를 기다리고 있다. 같은 태에서 태어났다는 즐거움을 누리려면, 그가 너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도 그를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

“설령 그가 저를 꾸짖는다 해도, 저는 그를 사랑할 것입니다. 저는 그런 말을 들어 마땅하니까요.”

“그러나 그는 너를 사랑하기만 할 것이다. 다른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성모님과 막달라 마리아는 앞으로 있을 여행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요한, 시몬과 합류한다. 그들은 주님의 어머니께서 도착하시자 공손하게 일어선다.

“우리도 주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작품들을 보면서 그분을 찬미하러 왔다.”

“어머니, 당신께서는 바다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오! 그래. 비록 그때 바다에 폭풍우가 불었다 해도 그것은 내 마음이 불안한 것보다 덜했고, 아기를 안고, 헤로데에 대한 공포를 뒤로 하고 홍해를 향하여 가자에서 해안을 따라 도주하는 동안에 흘린 내 눈물보다 덜 쓰라렸다.
나는 돌아올 때도 바다를 보았다. 그때는 땅도, 내 마음도 봄날이었다. 우리가 고향으로 돌아올 때는 봄날이었다. 예수는 새로운 것을 보고 기뻐하며 그의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손뼉을 쳤었다… 비록 인자하신 주님의 자비가 우리의 마타레아에서의 피난생활을 덜 고통스럽게 해주셨지만, 요셉과 나 역시 기뻤었다.”

그분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러나 나는 그 이상 보고 들을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