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나콜로-마리아사제운동

[마리아 사제운동] 1.운동의 기원 2.확장

Skyblue fiat 2025. 5. 12. 10:55

[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  머릿말

 

"나는 곱비 신부와 마리아 사제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교황 강복을 줍니다."

- 1988.12.3 요한 바오로 2세 -


'마리아 사제운동' 개요

 

1991년 2월 2일 주의 봉헌 축일, 밀라노에서 스테파노 곱비 신부.

 

 제 1부: 운동의 기원, 확장 및 영성

 

1. 기원

 

1972년 5월 8일, 순례단의 일원으로 파티마에 간 스테파노 곱비 신부는 ‘(성모) 발현 소성당’에서 기도에 잠겨 있었다. 개인적으로 (사제) 성소를 저버렸을 뿐 아니라 교회 권위에 반역하는 단체 결성마저 꾀하고 있는, 몇몇 사제들을 위한 기도였다.

 

어떤 (돌연한) 내적 힘이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의 사랑을 신뢰하도록 그를 세차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때 그가 마음속으로 들은 내용은) 성모님께서 그를 비천하고 보잘것없는 도구로 쓰시어, 당신의 티 없으신 성심에 봉헌하고, ‘교황’ 및 그와 하나인 교회와 굳건히 일치하며, 신자들을 당신의 ‘어머니다우신 성심’의 안전한 피난처로 데려오라는 초대에 응답하는 ‘사제들’을 모두 모으시겠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세계 전역으로 확장되며 또 함께 모이게 될 강력한 군대를 기르실 터인데, 선전 같은 인간적 방법이 아니라 초자연적 힘으로 그렇게 하실 작정이며, 그 초자연적 힘은 침묵, 기도, 고통, 본분에 대한 항구한 충실에서 샘솟는다는 것이었다.

 

스테파노 신부는 (이 일을) 확신할 수 있게 조그만 표를 하나 주십사고 성모님께 마음속으로 청했고, 그러자 성모님께서는 그 달이 다 가기 전, 나자렛의 ‘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지’에서 바로 그 표를 내려 주셨다.

 

‘마리아 사제운동’ (Movimento Sacerdotale Mariano <M.S.M.>, Marian Movement of Priests <M.M.P.>)은 이와 같이, 곱비 신부가 파티마에서 기도 중에 받은 단순한 영감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그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겠는가? 같은 해 10월, 그는 (코모의) 제라라리오 본당에서 사제 세 사람과 기도하며 형제애를 나누는 모임을 가짐으로써 조심스러운 출발을 시도했는데, 이 ‘운동’에 관한 소식이 몇몇 가톨릭 신문과 잡지에 실렸다.

 

1973년 3월에는 가입한 사제 수가 40여명이었고, 이해 9월, 로마 근교 산비토리노에서 열린 최초의 (이탈리아) 전국 모임에는 25명이 참여했으며 당시의 가입자 수는 80명이었다.

 

사제들과 신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며 형제애를 나누는 초기 ‘다락방 모임’들은 1974년부터 시작되었고, 점차 유럽과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스테파노 곱비 신부는 1995년 말 현재까지, 적어도 900여 번의 비행기 여행 및 수많은 자동차 혹은 기차 여행으로 (세계) 5대주를 여러 차례 순방하면서 각 ‘지역 다락방 모임’들을 주도해 왔다. (도합) 2210회의 ‘다락방 모임’을 개최했는데, 그 중 1015회는 유럽에서, 840회는 (남북) 아메리카, 97회는 아프리카, 116회는 아시아, 142회는 오세아니아 주(州)에서였다. 이는 이 ‘운동’이 최근 수년 동안 놀라운 방식으로 도처에 전파되었음을 입증해 주는 사실이다.

 

2. 확장

‘마리아 사제운동’은 조용하면서도 독특한 모양으로 성공리에 전파되어 왔다.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의 거의 모든 나라에 이미 전국 ‘책임자’가 선정되어, 가입자를 모아들이며 다락방 모임을 주관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이 전국 책임자는 또한, 여러 지역과 교구 책임자를 임명하고, 모든 일이 ‘운동’의 정신에 더없이 충실하게 수행되도록 이끌며 보살피는 소임도 맡고 있다.

 

(그런데 각 나라의) 전국 ‘본부’에 자율성이 부여되어 있으므로, (이 운동의 가입자) 수를 정확히 나타내 보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기야, 이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마주 대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정신’이고, (이 정신은) 외적 확인으로 포착되는 것이 아니라 (이 운동에) 속한 모든 사제가 마리아께 바친 자신의 봉헌을 날마다 삶에 옮기고자 노력하는 정도에 따라서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입 신청서로 볼 때, 현재 가입자 수는 ‘주교’가 약 400명이고, ‘사제’는 교구 소속 및 모든 수도회 소속 사제를 합쳐서 100,000명을 웃돌고 있다. 일반 수도자와 평신도에 대해서는 소정 가입 양식이 없으므로 근삿값을 구할 수도 없지만 수천만 명에 이를 것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이 운동에) 공감하는 사제들의 거대한 무리가 있음이 확인되니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아직 가입은 하지 않았지만, 이 운동에 대한 그들의 연대성을 여러 모로, 기회 있을 때마다 표명하는 사제들이다. 그 수가 어쩌면 가입자들의 수를 능가할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명단에 이름이 나와 있지 않아도 이 운동의 정신으로 살고 있는 한, 그들은 이미 그 본질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다수의 (대원을 가진 큰) 군대가 되었지만, 가까이서 살고 있는 이 운동의 형제 대원들을 아직 모르고 지내는 사제들이 많이 있다. 이는 ‘마리아 사제운동’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는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일일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으니, (체계적이고 철저한) 조직을 갖추지 않는다는 점 – 이 점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이 운동의 한 특성이기도 하다 – 과 신중함이다. 신중함이란 ‘운동’(의 성격)이 영적 선택, 특히 내적 서약에 있는 것이기에 누구라도 요구만 하면 (다른 대원의) 명단이나 주소 따위를 예사로 건네주는 (조심성 없는) 일을 하지 않음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디서나 놀라운 사실을 목격하게 되는데, 성모님께서 기도와 형제애의 ‘다락방 모임’을 통해 당신 사제들로 하여금 친형제처럼 서로 알고 지내며 서로 돕고 사랑하게 배려하시며 이끄시어, 이 모든 성직자가 하나로 결속된 (강한) 힘이 되도록 해 주신다는 점이다.

 

‘성인들의 통공’도 고무적인 실제이니, 그 덕분에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간 사제들을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가까이 두고 여전히 활동 중인 대원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들 중에는) 몇 명의 추기경 – 첫 가입자는 당시 볼로냐의 대주교였던 지아코모 레르카로였다 – 과 많은 주교들 – 이들 중에 기억나는 이는 당시 레이리아 및 파티마의 대주교였던 몬시뇰 요아오 베난치오 페레이라인데, 1973년에 가입하고 1985년에 선종하였다 – 과 5000여 명의 사제들이다. 열렬한 사도직 활동이나 질병(의 고통)을 통해 말년을 풍요하게 (장식한) 그들은, 성모님의 초대를 받아들여 ‘마리아 사제운동’(의 정신)을 실천에 옮긴 사제들이다. 그 가운데 특히 기억나는 ‘하느님의 종’은 유명한 성서학자 가브리엘레 알레그라이다. ‘성서’를 중국어로 번역했던 그의 마지막 작업이 바로 이 책, 『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를 중국어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마리아 사제운동’이 (그렇듯) 빠르고 광범위한 신장세를 보이는 동안 마주친 어려움은 염려한 것보다는 훨씬 덜한 것이었다. 이 운동의 특징이 교회에 대한 충실 및 (교회)법상 정당한 ‘웃어른’에 대한 순종에 있으므로, 이 장상들 – 특히 주교 급의 어른들 – 이 호감을 보이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 곳에서는 매사가 그만큼 더 순조롭게 발전되었고, (반면에) ‘교회 당국자’들이 난색을 표하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더 큰 인내로 적당한 시기가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무엇보다도 (늘 우리 곁에) 현존하시면서 보살피고 비춰 주시는 성모님께서 ‘당신의’ 이 운동을 이끌고 계신다. 우리가 어려움 속에 있을 때는 격려해 주시고 (과도한) 열광은 바로 잡아 주시며, 하느님 자녀로서의 자유를 용감하게 쓰는 법을 가르쳐 주신다.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웃어른을 거스르거나 반역하는 태도를 취하지 못하게 하신다. 그렇게 하는 것은 ‘마리아 사제운동’의 제2서약, 곧 교황 및 교황과 일치하는 교계제도에 대한 사랑의 서약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