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27권 19-20장 하느님의 사업들 사이의 균형.— 삼중의 완전한 균형.20 만물을 낳으신 하느님의 의지와 그 생성력.
천상의 책 27권
19장
하느님의 사업들 사이의 균형.
— 삼중의 완전한 균형.
1929년 12월 3일
1 하느님의 뜻 안에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긴 채 이 뜻 안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데, ‘아, 참 피곤하구나.’ 하고 낮게 귓속말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내가 누가 이리도 피곤해하는지 알려고 하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이동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2 “내 딸아, 그것은 나다. 내가 오랜 기다림의 모든 무게를 느끼고 있고, 이것이 내 안에 적지 않은 피로감을 일으킨다. 선을 행하고 싶으나 이를 받아야 할 사람들의 준비 부족으로 행할 수 없으니 말이다. 오! 애써 어떤 선을 마련하여 막 내어 줄 태세로 있는데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어찌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있겠느냐!
3 이제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나의 ‘피앗’이 활동 현장에 있을 때에는 이 피앗의 단일 행위가 생겨나게 하는 것과 동일한 권능의, 지혜의, 무한성의, 다양성의 효과들을 낸다. 일단 그 자신의 신적 활동 영역 속으로 들어가기로 작정하면, 그 행위가 이것과 저것 사이의 균형을 이루면서 동일한 가치와 무게와 척도를 내포하는 것이다.
4 내 거룩한 뜻이 창조 활동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면, 너무나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드러내 보이기에 사람은 그것을 다 헤아릴 수 없고 각 작품의 가치를 정확하게 알 수도 없다. 비록 그것들을 보고 만지며 그 유익한 효과를 누리지만, 사람은 창조물 가운데에서 가장 작고 무지한 자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5 사실, 태양이 얼마나 많은 빛과 열을 함축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효과들을 내는지, 그리고 그 빛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누가 말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모든 이가 태양을 보고 그 열을 느낀다. 다른 모든 것도 그렇다.
6 그런데 내 구원 사업도 창조 사업과 손을 잡고 있고, 창조 사업이 가진 것과 같은 수의 행위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서로 완전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창조 사업은 내 거룩한 뜻의 행위였고, 내 거룩한 뜻의 한 행위가 구원 사업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7 이제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아버지의 위대한 '피앗'을 이루기 위하여, 곧 피앗 볼룬타스 투아 (Fiat Voluntas Tua)를 위하여 이 뜻의 또 하나의 행위를 해야 하므로, 내 ‘거룩한피앗’ 안에 다른 많은 행위들이 준비되어 있다. 그 삼중의 행위들이 균형을 이루면서 동일한 가치와 무게와 척도를 지니게 하려는 것이다.
8 그럼에도 나는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내 ‘피앗의 나라’가 땅에서 다스리기는커녕 알려지지도 않아서, 내가 하고 싶은 수많은 선행들이 마음속에만 그득할 뿐 실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나 자신을 보면서 나는 큰 피로를 느끼고, 조바심을 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의 선물들을 받고 싶어 하지 않다니 어찌 이럴 수 있을까? ’
9 또한 내가 고통 속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나의 현동(現動)이, 곧 내 ‘거룩한 의지’의 권능과 그 빛과 행복과 아름다움이 사람들과 형제적 관계로 묶여 있지 않아 그들 가운데로 흘러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0 네가 그런 나를 보고 내 침묵의 소리를 알아듣는다면, 나에게 따뜻한 동정심을 표해 다오. 이토록 오랜 기다림에서 오는 피로감이 너무나 큰 나머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어졌으니 말이다.”
천상의 책 27권
20장
모든 선을 창조할 힘을 지니신 예수님은
아무 조물도 필요하지 않으셨지만,
사람의 각 행위 안에서 사랑할 필요는 절감하셨다.
만물을 낳으신 하느님의 의지와 그 생성력.
1929년 12월 16일
1 ‘거룩하신 피앗’ 안의 순례를 계속하였다. 이 피앗이 우리 모두에 대한 사랑으로 하신 모든 활동 및 그분의 조물들과 일치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여느 사람처럼 엄마의 젖을 빨고 음식을 먹고 마시며 일을 하기도 하시는 모습을 보니 여간 놀랍지 않았다.
2 모든 선을 창조할 힘을 지니신 그분은 본성상 (전혀 궁하지 않기에)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셨고, 따라서 친히 창조하신 것들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지내실 수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 모습을 드러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3 “딸아, 내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네 말은 맞다. 그러나 하늘 저 높은 곳에서 땅 저 밑에까지 내려온 내 사랑은 잠자코 있을 수도 가만히 정지해 있을 수도 없었다. 내 사랑을 내보내어, 사람이 필요에 의해서 하는 행위들 안에서 사랑하고 싶은 억누를 길 없는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4 내가 그 필요에 응하면서 내 사랑을 사람을 향해 달리도록 했는데, 그것은 그에게 이렇게 말하기 위해서였다.
‘보아라,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해 왔는지를! 너의 더없이 작은 행위들 안에, 너의 가난 안에, 너의 일 안에 — 요컨대 (너의) 모든 것 안에 내려오기를 바랐으니, 이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려는 것이었고, 그렇게 나의 사랑을 주고 또 너의 사랑을 받으려는 것이었다.’
5 한데 너는, 내가 나 자신을 낮추어 격이 낮은 인간적 행위들을 그처럼 많이 한 까닭을 알고 싶으냐?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그렇게 한 까닭을? 그것은 그 하나하나의 행위 안에 하느님의 뜻을 가득 채우기 위함이었다.
6 만물이 ‘거룩한 피앗’의 날인을 받고 태어난 모습 그대로 내 앞에 있는데다 이 거룩한 피앗이 원하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소유하곤 하였다. 그러니까 내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말씀’으로서 본성적으로 지닌 내 거룩한 뜻이, 온 피조물 안에 퍼져 있는 내 거룩한 뜻과 서로 경쟁을 벌이는 셈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7 정녕 나는 만물 안에서 내 거룩한 뜻 말고는 아무것도 보거나 알지 않았다. 내 뜻이 나의 양식이요 음료이며 일이었고 다른 모든 것은 내게서 자취를 감추었으니, 나의 관심사는 언제나 내 거룩한 뜻이었던 것이다.
8 나의 그 거룩한 뜻이 나로 하여금 사람들의 행위들 속으로 내려가게 하자, 나는 그들 각자의 인간적 행위들을 모조리 불러내었다. 그들 행위들의 원초적인 행위요 생명으로서 내 거룩한 의지를 보내면서 이 위대한 선물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9 오! 사람들이 조물들을, 그 기원에서 나온 모습대로, 곧 그 본연의 모습대로 본다면, 누가 그들을 기르며 보존하는지, 누가 그토록 많은 것을 내놓아 인간의 삶에 소용되게 하는지를 안다면, 내 거룩한 뜻을 너무나 사랑하며 그 조물들의 본질적인 속살을 취하려고 하련마는!
10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들의 바깥쪽을 보고 그것에 집착하기에 조물들의 안쪽에 있는 속살은 잃어버리고 그 겉껍질만 먹고 산다. 그 속살은 우리에게서 나온 것으로, 사람들이 우리 거룩한 뜻의 수많은 행위들을 다할 수 있게 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11 슬프게도 나는, 사람들이 그 양식과 음료를 먹지 않고 그 일도 하지 않아 내 거룩한 의지를 받아 가지지도 가득 채우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따라서 자기네 인간적인 뜻을 채우기에만 급급하고, 내 거룩한 뜻은 그들의 행위 밖으로 몰아낸다.
12 우리 (성삼위)는 그 반면, 우리의 거룩한 뜻을 은행에 예치하듯 사람들 가운데에 맡기려고 그 많은 것들을 창조하였다. 이들을 먹고 일하여 우리의 거룩한 뜻을 채우게 하려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이 뜻을 계속적인 파산 상태에 방치해 둔 것이다.
13 그들이 모든 행위를 내 거룩한 뜻으로 채우고 또 이 뜻을 소유하고자 했다면 반드시 섭취했을 그 모든 선이 무용지물이 된 상태로 남아 있으니, 우리는 이 뜻이 모든 인간 행위들의 지배자요 여왕의 위치에 있지 않는 것을 보고, 슬픔에 싸여 있는 것이다.”
14 그 뒤에도 나는 계속 ‘거룩하신 피앗’ 안에 나 자신을 내맡기고 있었다. 이 피앗과 이 피앗의 빛의 바다 안에 항상 머무르며 결코 밖으로 나가지 않을 필요를 강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15 그러자 이 피앗이 심장 박동과 숨결처럼 느껴졌고, 공기처럼 내 안에 생기를 불어넣어 질서와 조화를 유지하면서 한낱 작디작은 물방울 같은 나를 피앗의 ‘거룩한 바다’에 녹아들게 하는 것이 느껴졌다.
16 그리하여 내 하찮은 정신에 하느님의 뜻에 대한 생각들이 떼 지어 밀려들고 있었을 무렵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 ‘거룩한 피앗’의 바깥에는 질서도 안식도 참생명도 없다.
17 실상 각 피조물의 생명과 그 생명의 첫 행위는 창조주의 태 안에서 생성된다. 그런 다음 우리 (성삼위)가 그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다. 우리 안에 생성력이 있기에 우리의 한 아기로 태어난 그는 새로운 개체를 낳을 씨앗을 소지(所持)한다. 이 씨앗으로 인해 다수의 다른 이들도 태어나는 것이다.
18 그는 삶을 살아가면서 거룩한 생각들을 태어나게 하고, 순수한 말을, 아름답고 매력적인 일을, 유쾌한 발소리를, 섬광 같은 심장 박동을 태어나게 한다. 이들은 다 피조물들에게서 출생한 것들이니, 그들의 창조주에게 올라가는 길로 들어선다.
19 그들의 창조주가 그들의 아버지임을 인정하고, 그분을 사랑하며, 수행 행렬을 지어 그분을 에워싸고, 대대로 그분 자손들의 긴 세대들을 이루려는 것이다. 우리의 영광과 우리 생성력의 영광을 위해서 말이다.
20 그러나 이것이 열매 풍성한 생성력이 되려면, 우리에게서 태어난 것들 안에서 다스리는 우리의 거룩한 뜻이 필요하다. 이 뜻이 없으면 짐승 같은 난폭한 피조물로 변질될 위험이, 선을 낳을 능력을 잃고 말 위험이 있다.
21 그래도 무언가를 태어나게 할 수 있다면 정욕과 나약과 악덕 같은 것들뿐인데, 이것들은 우리에게 올라올 힘이 없다. 오히려 그 출생 즉시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 것들로 단죄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