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순교자 Ⅱ(돌린도 루오톨로 신부의 삶과 성소)
마음의 순교자 Ⅱ
돌린도 루오톨로 신부의 삶과 성소
A Martyr of the Heart
마리아 즈브랄스카
새로운 소명과 오래된 문제들
돌린도 루오톨로 신부는 이탈리아 남부에서 빈민들을 위한 구호 시설과 병원을 관리하는 소임을 맡았는데, 거기서 약 9년간 성사를 집전하고 피정 지도와 특강을 하는 등 여러 가지 특수사목을 병행했다. 그러자 미사의 참가치를 깨들은 사람들과 사제 성소자를 후원하려는 사람들, 자신의 믿음을 일상생활에서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신자들과 함께 돌린도 신부는 ‘주님께서 하시는 일Opera di Dio’이라는 이름의 단체를 만들고는, 이 단체를 통해 여러 영성서적을 저술하고 자신의 강론을 묶어 책으로 출판하기도 있다.
그는 함께 활동하는 이들에게 사실상 영적인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돌린도 신부는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과 가까이에서뿐 아니라 멀리서도 여러 측면에서 후원하며 자신의 사목에 동참하는 익명의 신자들을 위해 특별히 《작은 그림들Immaginette》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이 책은 사람들이 각각의 생활환경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수많은 어려움에 대한 구체적인 영적 조언들을 모은 것이다.
돌린도 신부가 세상을 떠날 즈음에는 그에게서 감화를 받은 사람들의 수가 무려 220,000명에 달할 정도였다. … 하지만 사람들과의 그 어떤 유대보다도 그가 더욱 공고히 하고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바로 예수님과의 관계였다. 앞서 언급한 돌린도 신부의 책은 전적인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맺어질 수 있는 예수님과의 친교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믿음을 가진 이라면 누구든지 예수님과 친해 질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내놓고 예수님께 온전히 의탁해야 한다. 그러면 그분께서 직접 활동하실 것이다.”
돌린도 신부에게는 하느님의 섭리만을 믿고 의지하며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 다시 한 번 찾아왔다. 설교와 성사 수여에 대한 제재를 또 한 번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2년간이나! 대체 왜? 돌린도 신부의 고해를 들어주었던 나폴리의 어느 신부가 고해 내용은 비밀로 간직해야 한다는 규칙을 깨고 돌린도 신부의 신비 체험을 폭로했던 것이다. 게다가 돌린도 신부에게서 영성지도를 받았던 두 여자가 바티칸에서 돌린도 신부에 관해 비난 섞인 거짓 증언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두 여자를 바티칸으로 데려가서 거짓 증언을 하도록 선동한 인물은 돌린도 신부의 친한 동료 사제였다!
이 사건은 자기가 믿었던 사람과 가까이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배신으로 일어났기에 돌린도 신부로서는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돌린도 신부는 자신에게 등을 돌린 사람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용기 있고 겸손한 자세로 그들에게 용서를 청했다. 훗날 돌린도 신부의 회고에 따르면, 그때 바로 그 시련 안에서 하느님께서 자신의 덕을 훈련시키려고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고통을 겪으면서 무수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고통을 사랑으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또 이렇게 썼다.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마라. 십자가를 거부하지 마라. 십자가를 피해 멀찌감치 서 있지도 말고, 이미 지고 있는 십자가를 내려놓지도 말아야 한다. 아무 걱정 말고 예수님께 온전히 의탁하라. 그분은 우리가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도와 주신다.”
1921년 10월이 되어서야 돌린도 신부는 혐의를 벗게 되지만 그에게 부과된 제재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복권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1937년이 될 때까지 돌린도 신부는 성무집행이 금지되었다.
삶으로 설교하는 사제
그리하여 자신의 손으로 미사를 한 번도 거행하지 못한 채 16년 하고도 반 년이 더 되는 시간이 흘렀다. 16년 만에 처음 집전했던 미사를 회상하며 돌린도 신부는 이렇게 썼다.
“나는 미사를 어떻게 집전해야 하는지 까맣게 잊어버렸을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미사를 집전하는 내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성모님께 도움을 청했다. … 이 미사는 나에게 너무나도 놀라운 체험이어서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내가 미사를 어떻게 끝마쳤는지조차 모르겠다. 한 번의 미사가 주는 은총이 이다지도 클진대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들이 대체 어떻게 죄에 빠질 수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나는 미사를 집전하는 내내 특별히 동정녀 마리아와 함께 있었다.”
돌린도 신부가 마음을 다하여 집전했던 거룩한 미사는 미사에 참례했던 모든 신자들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는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경배하고 흠숭하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예수님께서 돌린도 신부를 통해 사제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는데, 그는 성체께 지극한 공경을 바침으로써 예수님의 요청에 응답하였다.
“성체는 너희 사제들이 원하는 전부가 되어야 하고, 너희 신심의 정점이 되어야 한다. 나는 언제나 성체 안에서 너희와 함께 머무를 것이니, 어떤 일을 하든지 너희 사제들의 유일한 목적은 오로지 성체뿐이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성체 안에 현존하는 것은 너희와 함께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너희 안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다. … 너희 사제들이 행하는 사목 중 미사를 거룩하고 엄숙하게 봉헌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고 숭고한 것은 없다.”
돌린도 신부는 성체조배를 통해서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공경하였다. 그는 탄식하며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께서 이토록 신비롭게 현존하시는데 사람들이 어째서 이 사실을 모를 수가 있단 말입니까?”
기도로써 견뎠던 인고의 시간은 결과적으로 돌린도 신부의 사목 활동에 영적인 깊이를 더해주었다. 그는 평신도들과 함께 사도직 단체를 조직했으며, 저술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그가 남긴 작품들 중 33권으로 된 성경주해는 매우 특기할 만하다. 수공예로 직접 십자가와 묵주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고 병자들도 돌보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미래의 일을 예견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으며, 동시에 서로 다른 두 장소에 나타나거나 환시를 보는 등의 초자연적인 은총을 계속적으로 받았다. 그는 오상의 비오 신부를 만나서, 이른바 “새로운 요한”을 통해 폴란드에서부터 공산주의 체제가 몰락하게 되리라고 예언한 적도 있다. 사람들은 “새로운 요한”과 관련된 예언이 훗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현대 교회사에서 돌린도 신부를 빠트려서는 안되는 것은, 그가 받은 비범한 능력과 은사 때문이 아니라 그가 평생 바쳤던 지극히 단순한 기도, 바로 이 기도 때문이다.
“예수님, 당신 뜻대로 하소서!”
예수님, 당신 뜻대로 하소서!
돌린도 신부의 이 기도가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서 생겨났는지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이 기도의 원래 문장은 “주님, 당신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그러니 저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으렵니다.”이다. 이 문장은 돌린도 신부에게서 영성지도를 받은 이들 중 한 명인 엘레나 몬텔리에게 쓴 돌린도 신부의 1940년 10월 6일자 편지에 있다. 돌린도 신부와 엘레나 몬텔리가 주고받은 편지는 소실되어 현재는 부분적으로만 남아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돌린도 신부에게 이 짧은 한 마디의 기도를 언제 어떻게 알려주셨는지를 파악할 방법이 없다.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즉, 하느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하느님께 모든 희망을 두라는 말씀이다. “하느님, 당신 뜻대로 하소서!” 이 기도는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포기하고 예수님께서 해결하시도록 모든 것을 그분께 완전히 의탁해야 한다는 명령이 내포되어 있다.
돌린도 루오톨로 신부는 생애 내내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의탁하였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파우스티나 성녀(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를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하느님께 대한 어린아이 같은 단순하고 전적인 신뢰의 영성을 읽을 수 있다. “예수님, 당신 뜻대로 하소서!” 돌린도 신부의 이 기도는 단순하고 전적인 의탁 영성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명심하여라. 수도 없이 많은 기도들이 있지만 단순하고 소박한 이 짧은 기도 하나에 견줄 만한 것은 없다. 예수님, 저 자신을 당신께 온전히 봉헌합니다. 오직 당신 뜻대로 하소서! 가장 강력한 9일기도는 바로 이것이다.”
돌린도 신부는 예수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삶을 사람들에게 널리 전하였는데, 이 신심이 효과적으로 전파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스스로가 먼저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생의 마지막 10년간 돌린도 신부는 편마비로 심하게 고생해야 했지만 고통과 장애마저도 하느님을 향한 그의 희생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신자들의 영혼을 돌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 누구든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것,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천국에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것, 이것이 자신이 받은 사명이라고 여겼다.
영원에 이르는 길이란 돌린도 신부에게는 참으로 “기도와 인내와 겸손” 이외에 다른 어떤 것이 아니었다. 돌린도 신부에 따르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내어드리고, 설령 그분께서 우리를 십자가로 이끄신다 하도라도 그분께 한없이 의탁하는 것이다. 그는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영원한 생명은 결코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돌린도 루오톨로 신부는 1970년 11월 19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나폴리에 있는 루르드의 동정 마리아와 성 요셉 성당에 묻혔는데, 그의 유언에는 죽어서까지도 양떼를 돌보고자 하는 진정한 목자의 정신이 담겨 있다.
“돌린도 신부를 만나려고 무덤까지 찾아오셨군요. 노크하고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저 세상에서도 제가 해주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께 의탁하십시오.”
박규희 옮김
(마리아지 2019년 9•10월호 통권 217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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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느님 뜻의 나라 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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