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천상의책21-23권

천상의책 22권 14. 참되고 완전하고 보편적인 선.고갈을 모르는 샘의 발생 원리.내적 인간. 내적 행위의 가치.

Skyblue fiat 2019. 8. 6. 17:13

천상의책 22권

14

                                                          1927 7 30

 

참되고 완전하고 보편적인 선.

고갈을 모르는 샘의 발생 원리.

내적 인간. 내적 행위의 가치.

 

 

1  거룩하고 신성하신 의지를 따라다니고 있었지만, 줄곧 내 지고한 선이신 예수님의 부재라는 잔혹한 못에 박힌 상태로 그렇게 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불쑥 이렇게 중얼거렸다.

 

2  ‘당신 의지의 지극히 높은 어조로 만물을 내신 분이 나와 함께 계시지 않는데, 이때에도 '지고하신 피앗'의 행위들을 따라다니는 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분의 뜻을 따라다니면서 정작 그분은 뵙지 못하는 것, 그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그분의 작품들은 보면서 그분의 팔에 안기지는 못하는 것 - 이것이야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다. 계속 피를 흘리는 상처다.  

 

3  내가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있었을 때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기척을 내시며 이르셨다.

 “딸아, 생명은 계속적인 움직임 속에 있다. 하느님에게서 나온 모든 것에는 움직임이 있다. 우리가 빚어낸 것치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4  하늘과 땅, 태양과 바다는 죄다 중단되지 않는 질서와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그들이 움직임을 멈춘다면 생명도 멈출 것이고, 그들이 베푸는 선도 그칠 것이다. 기껏해야 마치 색칠된 그림같이 남아, 아무에게 아무런 선도 베풀지 못할 것이다.


5  하나의 선 또는 (선한) 행위는 끊임없는 활동성이 있을 때 비로소 참된 선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다.

 하느님인 우리가 우리의 모든 행위들 속에서 완전한 까닭이 여기에 있으니, 우리가 지닌 끊임없는 활동성으로 인하여 선을 행하며 주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멈춘다면 -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거니와 - 선의 생명도 그치고 말 것이다.

 

6  그런데, 거룩한 존재인 우리의 생명이며 완전한 반영인 우리의 뜻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런고로 우리의 뜻은 완전한 선이다. 그 자신을 모든 존재에게 줄 수 있는 선이다.

 이와 같이 하나의 선이 멈춤을 모르면, 그때에는 모두가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 그 선의 끊임없는 움직임이 그들로 하여금 마를 줄 모르는 샘을 소유하게 하기 때문이다. 

 

7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인 너는 따라서 내 뜻의 반영을 소유하기 마련이니,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내 뜻의 행위들을 따라다닌다. 그러면 너에게 오는 선이 너를 신적 활동의 질서 안에 위치시키면서 놀라운 속도로 활동하게 하여, 창조된 만물과 함께 돌아다니게 한다.

 

8  너의 행위들이 고갈될 수 없는 무진장한 것이어서 그 행위들의 선익을 모든 이가 누리게 되는데, 그것은 그것들이 ‘영원한 피앗’의 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처럼 언제나 샘솟는 선을 행하는 것을 너는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느냐?

 

9  참되고 완전한 선이 피조물 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덕행들이 도중에 중단되곤 하기 때문이다. 덕행이란 계속적인 움직임이 없으면 그 선의 생명이 이미 끝난 것이나 진배없다.

 끊임없는 활동성을 지니지 못한 탓에 그 맛을 잃고 속도와 힘도 잃는다. 덕행의 생명이 그들 안에 형성되지 않을뿐더러 늘 샘솟는 선행이 될 수도 없다. 오히려 피상적이고 잠시 지나가는 것이 될 뿐이다.

 

10  그런 그들이 어떻게 덕행들의 선익을 모든 이에게 줄 수 있겠느냐?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에게 아무리 주어도 결코 고갈되거나 없어지지 않는 그 덕행들의 생명과 샘을 그들 자신이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태양이 모든 이에게 빛을 주기 때문에 그 자신의 빛을 좀이라도 잃는 일이 있느냐? 절대로 없다. 왜냐하면 태양은 빛의 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빛을 주는 행위를 끊임없이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11  딸아, 그러니 너는 내 거룩한 뜻 안에서 하는 너의 (순례) 행위, 기도, 내 뜻의 나라에 대한 간청을 끊임없이 이어지는 활동이 되게 하여라. 그래야 모든 사람이 ‘거룩한 피앗’을 알고 사랑하게 되는 은혜를 얻을 수 있다. 

 

12  그 후 나는 지극히 거룩하고 흠숭하올 하느님 뜻을 내적으로 따라가고 있었는데,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영혼의 내적 행위는 어떤 사악도 결함도 없다. 그리고 오직 하느님만이 그 행위를 목격하실 수 있다.

 

13  아무도 그 영혼을 가리키거나 보거나 그에 대해서 언급할 수 없는 반면, 하느님만은 이 피조물의 내적 활동의 목격자로서, 아무에게도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그의 내면에서 그를 가리키시고 보시며 그의 내적 활동의 놀라운 위대성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온 천상뿐만 아니라 이 지상 주민들에게도 자주 말씀하신다.

 

14  이와 같이 하느님의 가리킴과 주목을 받는 것, 하느님으로 하여금 일개 피조물인 그에 대하여 말씀하시게 하는 것이야말로 그가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영광스러운) 행위이며 영예. 그러니 그는 하느님께서 그를 통하여 완성하실 위대한 사업들에서 제외될 수 없다. 

 

15  내적 행위들은 하느님의 가슴을 향해 쏘아 올리거나 던지는 (사랑의) 화살들이며 그 상처들이고, 그 사람에게서 나와 홀로 사람을 빚어 만드신 그의 창조주에게로 날아가는 천상적 사자(使者)들로서, 그분께 영광과 사랑과 기쁨의 표지를 전하는 사자들이다.

 실상, 네가 네 마음속으로 하는 모든 활동을 누가 보고, 듣고, 평가할 수 있겠느냐? 아무도 그럴 수 없다. 오직 나만이 그 활동들을 다 보고, 듣고, 평가할 수 있을 뿐이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가장 큰 사업들을 할 때, 겉보기에 대단하거나 놀라운 것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 내적인 사람들을 선택한다. 이들은 인간적인 관점으로 인한 흠이거나 외적 활동의 떠들썩한 소음과 영광과 자부심으로 인한  흠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17  사실, 구원 사업을 통하여 우리는 단순한 한 동정녀를 택하였다. 그 동정녀는 외적인 화려함이 없는 대신 내적인 언어를 소유하고 있어서 자기 창조주에게 많은 말을 조목조목 할 수 있었고, 결국 그분을 이겨 구원 사업이라는 은혜를 얻어낼 수 있었다.

 

18  우리는 이제 ‘거룩한 피앗의 나라’를 위해서도 같은 일을 한다. 또 하나의 동정녀를 택했으니, 이는 온전히 내적인 사람으로서 내적인 많은 말로 하느님께 그 대망의 나라를 내려 주시기를 간구할 사람이다.   

 

19  외적인 행위들, 역시 선하고 거룩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적 행위들만큼 우리의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외적인 것에는 거의 항상 자기과시, 인간적인 평가 방식, 때로는 비난 받을 만한 허물도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어리석은 마음은 모든 것을 다 버린 후에도 칭찬이나 비난의 영향은 받기에, 인간적인 것이 그 현장 안으로 들어와 그의 모든 행위들을 그것의 어두운 기운으로 뒤덮는다. 그러니 그 행위들이 얼마나 깨끗하든 나에게 다다를 수는 없는 것이다.  

 

20  내적인 행위들은 그 반면, 아무에게서도 비난이나 칭찬을 받지 않고, 인간적인 것이 들어올 길도 없다.

 그런 영혼은 아무도 자기를 주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 자신이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따라서 그의 행위들에는 온통 천상적인 기운이 스며들어 있다.

 

21  그런즉 너는 조심하여, 너의 마음이 항상 내 뜻 안을 돌아다니게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