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것은 영원하신 분의 전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천상의 책 제12권 41장 1-11절 (1918년 4월 8일)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것은 영원하신 분의 전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1 (루이사)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그것이 하느님과 결합된 상태로 사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시자마자, “딸아, 나와 결합되어 사는 것과 내 의지 안에서 사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2 그러면서 그분은 내 쪽으로 두 팔을 뻗치시면서, “단 한 순간만이라도 내 의지 안으로 들어와 보아라. 그러면 네가 그 큰 차이를 알게 될 것이다.” 하셨다.
3 그러자 나는 예수님 안에 있었다. 작디작은 티끌에 불과한 내가 그분의 영원한 의지 안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이 영원한 의지는 단 하나의 행위 안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행위들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나는 피조물로서 가능한 정도만큼 모든 행위들을 내포하는 그 단 하나의 행위에 참여하였다.
4 또한, 아직은 존재하지 않으나 하느님이 하느님이신 한 세기의 종말까지 존재하게 될 모든 행위들에도 참여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들을 위해서도 그분께 사랑과 감사와 찬미 등을 드렸다. 내게서 빠져나가는 행위는 하나도 없었다.
5 나는 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랑을 내 것으로 삼았고, 마찬가지로 이 성삼위의 뜻도 내 것으로 삼았다. 그리고 마치 나 자신의 것인 양 이 뜻을 그분들께 드렸다. 그분들 자신의 사랑도 내 것인 양 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쁘던지!
6 그러자 그분들은 나에게서 당신들 자신의 사랑을 받으시면서 흡사 나의 사랑을 받기나 하시는 것처럼 너무나 충일한 만족과 완전한 사랑의 분출을 보시는 것이었다.
7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누가 다 말할 수 있으랴? 나로서는 표현할 재간이 없다.
8 그때 복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의지 안에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보았느냐? 그것은 사라져서 영원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영원한 분의 전능 속으로, 창조되지 않은 그 정신 속으로 들어가서, 피조물로서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에 참여하고 각각의 신적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다.
9 그것은 지상에 있는 동안에도 신적인 모든 속성들을 누리는 것이고, 신적인 방식으로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지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모든 이에게 확장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피조물에게 생기를 주는 뜻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10 그리고 그것은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으나 내가 앞으로 알릴 성덕이다. 이 성덕은 다른 모든 성덕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빛나는 마지막 장식물을 (인간에게) 달아 줄 것이다. 그것은 다른 모든 성덕들의 완성이요 승리의 화관이 될 것이다.
11 그런데 나와 결합되어 사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두 존재가 함께 있음이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사람은 영원 속으로 들어가서 신적인 모든 행위에 참여할 수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그러면 네가 그 큰 차이를 알게 될 것이다.”』
『천상의 책 제11권 69장 1-12절 (1914년 3월 17일)
하느님 뜻을 행하는 영혼은 성삼위 하느님의 내적 활동에도 참여한다.
1 (루이사) 평소대로 머물러 있노라니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온 존재 안에 계신 모습을 보게 해 주셨다. 그것은 내가 그분의 모든 지체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2 그분께서는 크게 기뻐하시는 것 같았고, 이 기쁨을 억누를 수 없어지신 듯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내 딸아, 나의 뜻을 행하는 영혼은 성삼위 하느님의 ‘내적’(ab intra) 활동에 참여한다. 이 특별한 은혜는 오직 나의 의지를 이루는 영혼을 위하여 예비되어 있는 것으로서, 우리 성삼위의 모든 ‘외적’(ad extra) 활동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이 외적 활동에서 내적 활동으로 넘어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4 그런 까닭에 나는 내 의지로 사는 사람을 만족시켜 주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혼은 나의 뜻 안에 있으므로 우리 성삼위의 마음과 열망과 애정과 생각의 내밀한 곳에 있는 것이고, 그러니 그의 심장 박동과 호흡이 우리와 하나인 것이다.
5 따라서 그가 우리에게 주는 만족과 기쁨과 영광과 사랑은 모두 무한한 성질을 띠고 있어서 우리 자신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고 그만큼 수없이 많기 때문에, 영원한 사랑 안에서 서로를 황홀하게 하며 서로의 기쁨을 이루는 우리 성삼위가 이 사랑과 기쁨을 억제할 길 없어 번번이 외적 활동으로 나가는 것과 흡사하다.
6 이와 같이 우리의 뜻을 행하는 영혼으로 말미암아 황홀한 기쁨 속에 있게 되는 우리가, 그토록 우리를 기쁘게 하는 영혼을 어떻게 만족시키지 않을 수 있겠느냐?
7 또한, 우리 자신과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그를 우리가 어떻게 다른 피조물을 사랑하듯 사랑할 수 있겠느냐? 바로 우리 성삼위가 서로를 사랑하듯 사랑하지 않겠느냐?
8 이 영혼과 우리 사이에는 막으로 가릴 비밀이 없다. 모든 것을 우리와 공유하는 영혼이기에 ‘우리 것’이니 ‘네 것’이니 하는 구분이 없는 것이다.
9 그리고 - 죄를 지을 수 없는 본성, 거룩한 본성 등 - 본성적으로 하느님인 우리는 우리와 이 영혼 사이에 서로 다른 점이 없도록 은총에 의하여 그를 신화(神化)한다.
10 또 우리가 우리의 사랑을 억제할 길 없어 외적 사업들로 나가는 것과 같이, 우리의 뜻을 행하는 이 영혼의 사랑도 억제할 길 없어 그로 하여금 우리 자신 밖으로 나가게 한다. 그리하여 그를 우리의 사랑을 받는 사람, 우리의 총애를 받는 사람으로 사람들에게 가리켜 보인다.
11 우리가 땅 위에 좋은 것들을 내려보내는 것은 오로지 이 영혼과 이와 비슷한 영혼들 때문이다. 오로지 이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땅을 보존하는 것이다.
12 그런 다음 우리는 즐기기 위하여 그를 우리 안에 들어오도록 한다. 하느님 성삼위가 나뉠 수 없는 한 분이듯이, 우리의 뜻을 행하는 영혼도 우리와 나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루이사에게 하느님 뜻의 나라의 자녀들도 위계(位階)가 서로 다른 구단(九段)의 천사 합창단과 같은 합창단을 이룰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 뜻 안의 천상 영혼들 중 천사들의 최고 계급인 치품천사(Seraphim)처럼 가장 높은 계급을 이루는 영혼들은 지상에서도 하느님의 활동 안을 순례했던 이들입니다.
하느님 뜻에 대한 인간 뜻의 전적인 일치로서 자고로 영적 체험의 극치로 간주되어 왔던 그 ‘혼인’도 하느님의 뜻을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며 실제로 활용하는 이 선물에 비하면 아주 많이 부족한 것입니다.
루카 17,20-22 : 하느님 나라의 도래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