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뜻의 오늘

2017년 2월 14일 <노아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

Skyblue fiat 2017. 2. 14. 20:25
2017년 2월 14일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14 화요일


치릴로 성인과 메토디오 성인은 형제간으로, 그리스의 테살로니카에서 태어나 터키의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교육을 받았다. 두 형제는 전례서들을 자신들이 창안한 알파벳의 슬라브 말로 번역하였다. 둘은 체코 모라비아의 슬라브 족에게 파견되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헌신적으로 일하였다. 로마로 돌아간 두 형제 중 치릴로 성인은 수도 서원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869년 무렵에 선종하였다. 메토디오 성인은 교황 특사로 모라비아에서 활동하다

가 885년 무렵 선종하였다.

 

 

입당송
이 성인들은 천상 진리를 영광스럽게 선포하여 하느님의 벗이 되었네.

 

본기도
하느님, 복된 치릴로와 메토디오 형제를 통하여, 슬라브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셨으니, 저희 마음을 비추시어, 하느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깨닫고 참되고 올바른 신앙을 고백하며, 하느님 안에서 한 백성을 이루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악이 세상에 많아지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홍수로 쓸어버리려고 하시는데, 노아에게만은 방주를 만들어 가족과 짐승을 데리고 들어가 살아남게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분부하시지만 제자들은 깨닫지 못한다(복음).

 

 

제1독서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6,5-8; 7,1-5.10


  5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6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7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들과 하늘의 새들까지 쓸어버리겠다. 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스럽구나!”
8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의 눈에 들었다.
7,1 주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가족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거라. 내가 보니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운 사람은 너밖에 없구나. 2 정결한 짐승은 모두 수놈과 암놈으로 일곱 쌍씩, 부정한 짐승은 수놈과 암놈으로 한 쌍씩 데려가거라. 3 하늘의 새들도 수컷과 암컷으로 일곱 쌍씩 데리고 가서, 그 씨가 온 땅 위에 살아남게 하여라. 4 이제 이레가 지나면, 내가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땅에 비를 내려, 내가 만든 생물을 땅에서 모두 쓸어버리겠다.”


5 노아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 10 이레가 지나자 땅에 홍수가 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숫자의 의미>

일곱쌍 :  성서에서 7은 충만함, 완전함을 상징한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세계를 뜻하는 3 + 창조계 전체를 나타내는 수 4 = 완전함.)

사십일 : 성서에서 등장하는 40이라는 숫자는 정화의 기간, 시련이나 고행의 기간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참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삶- 아버지의 메시지1> 중에서 _ (http://blog.daum.net/skybluegirin/220)

 

"세월이 더 흐른 뒤에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나 완악해지자, 그 때에는 세상에 재난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통과 소유 재산의 파괴와 심지어 죽음을 통해서라도 사람들을 정화시키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은 재난이 바로 노아 시대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인간 사이의 전쟁들 등이었다.

 
나의 변함없는 바람은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 이 세상에 머물러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홍수 때에는 그 당시의 유일한 의인이었던 노아와 함께 있었다.

또한 다른 재난들이 일어났을 때에도 내가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의인을 늘 찾아내었고,

그를 통하여 그 시대의 사람들 가운데서 살았다. 언제나 그렇게 했던 것이다.

 
세상이 타락에서 정화되곤 한 것은, 인류에 대한 나의 이 무한한 선함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택했으니,

그들을 통하여 내 피조물인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세상에 메시아를 보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메시아의 도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무슨 일인들 하지 않았겠느냐! 

 메시아가 오기 수천 년 전부터 그를 예표하는 상징들 속에서 나를 드러내었던 것이다!>

 

 

 

신부님께서 사람들이 보기에 노아가 얼마나 바보같고 미친것 같아 보였겠느냐고...

해가 쨍쨍 빛나는 화창한 날에 산 꼭데기에 커~다란 배를 짓고 있었으니...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리 바보같은 짓으로 보이더라도, 다들 미쳤다고 욕을 해대도....

노아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

 

FIAT!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의 예수님~~!

성모님~ 제 뜻을 어머니께 드립니다. 어머니의 피앗을 제게 주십시오~!

 

 

 

 

 

화답송 시편 29(28),1ㄱ과 2.3ㄱㄷ과 4.3ㄴ과 9ㄷ-10(◎ 11ㄴ)
◎ 주님이 당신 백성에게 강복하여 평화를 주시리라.
○ 하느님의 아들들아, 주님께 드려라. 그 이름의 영광 주님께 드려라. 거룩한 차림으로 주님께 경배하여라. ◎
○ 주님의 소리 물 위에 머무네. 주님이 넓은 물 위에 계시네. 주님의 소리는 힘차고, 주님의 소리는 장엄도 하네. ◎
○ 영광의 하느님 천둥 치시네. 그분의 성전에서 모두 외치네. “영광이여!” 주님이 큰 물 위에 앉아 계시네. 주님이 영원한 임금으로 앉으셨네. ◎

 

 

 

 

복음 환호송 요한 14,23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도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가서 그와 함께 살리라.
◎ 알렐루야.

 

복음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4-21
그때에 14 제자들이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려, 그들이 가진 빵이 배 안에는 한 개밖에 없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하고 분부하셨다.
16 그러자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빵이 없다고 서로 수군거렸다.
17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18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 빵 조각을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열둘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0 “빵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에는, 빵 조각을 몇 바구니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 기도
주님, 복된 치릴로와 메토디오를 기리며 비오니, 주님께 올리는 이 예물이 화해의 성사가 되게 하시고, 저희가 새사람이 되어 주님 사랑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마르 16,20 참조
제자들은 떠나가서 복음을 선포하고, 주님은 그들과 함께 일하시며 표징으로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모든 민족들의 아버지이신 하느님, 복된 치릴로와 메토디오를 기리는 저희가, 분이신 성령 안에서, 한 빵을 나누는 영원한 잔치에 참여하게 하셨으니, 하느님의 수많은 자녀들이 한 믿음을 굳게 지켜, 한마음으로 정의와 평화의 나라를 세우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처음부터 악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도, 마음의 평화를 깨고, 혼란을 부추기는 일들을 만나면 나쁜 마음이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것을 봅니다. 허영, 가식, 탐욕, 권력, 교만 등은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시작되지만,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힘으로 내 삶을 흔들어 놓습니다.


빵을 부풀리는 데 필요한 중요한 생활필수품이었던 누룩이지만, 이 누룩이 인간을 죄로 이끄는 탐욕의 씨앗이 될 때 무서운 결과를 낳습니다. 누룩이 가진 두 가지 의미가 노아 이야기에서도 재현됩니다. 아름답게 창조된 세상이 죄와 악으로 물들었을 때 얼마나 큰 하느님의 진노를 겪게 되는지를 말해 주는 동시에, 아주 작은 누룩과도 같았던 노아의 의로운 모습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피조물들을 다시 구원하시고, 새롭게 창조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분부하신 것은,

 빵의 기적을 통해 깨달은 사랑의 기적보다는, 빵 자체를 탐닉하는 탐욕을 경계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게” 하는 바리사이들의 위선에 빠지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실 진리는 거짓과 기만으로 생겨 버린 편견과 선입견의 누룩이 커질수록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깨달음은 결코 바리사이식의 지적 충만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좋은 누룩을 심어 가는 오랜 수련을 통해서 얻는 것입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는

인생에서 꾸준히 심어야 할 성령의 누룩과도 같은 것입니다.

 

나는 어떤 누룩을 심어 가고 있습니까?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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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권-30,  모든 악은 인간의 뜻에 있지 본성에 있지 않다.

 

9. "딸아, 모든 악은 의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네가 아직 깨닫지 못했구나. 인간을, 곧 인간의 본성을 짓누른 것은 의지였지, 본성이 의지를 짓눌렀던것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은 제자리에, 내가 창조했던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의지 곧 그의 뜻이었다. 인간의 뜻이 바로 하느님의 뜻에 대립하였고, 이 반항적인 뜻이 그의 본성을 짓누르며 허약하게 하고 더럽혀서 극히 천박한 정욕의 노예로 만들었다.

 

 

 

 

 

16권-26,  하느님 뜻의 기쁘고 슬픈 역사.

 

 

10. 아! 우리의 뜻에 처음으로 슬픔을 끼친 것은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를 그토록 사랑하며 행복하게 해 준 이를 비탄에 잠기게 하려고 들었다. 우리의 뜻은 그러므로, 아들이 어머니의 뜻을 저버린 탓에, 오직 그 이유로 불구자가 되고 소경이 되었기 때문에 슬피 우는 자애로운 어머니보다 더 슬피 울었다.

 

11. 나의 뜻은 사람 안에서 첫 행위자가 되기를 원했었다. 오직 사랑과 기쁨과 행복과 풍요의 선물을 주기 위해서였다. 언제나 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행동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의 뜻을 행하기를 원했고, 그래서 하느님의 뜻에서 떨어져 나갔다. 절대로 그러지 말았어야 했건마는!  결국 내 뜻은 물러가고, 사람은 온갖 악의 깊은 구렁 속으로 추락하였다.

 

12. 그러자 이 두 뜻을 다시 결합하기 위하여, 자신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지닐 사람이 필요하였다. 영원한 말씀인 내가 이 사람을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할 것이기에, 우리 성삼위는 내가 육화하여 사람이 되기로 함께 결정하였다. 세상으로 가서 인간을 구원하고 단절된 두 뜻을 다시 결합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어디로 내려갈것인가? 누가 자기 창조주께 자기의 살을 빌려 줄 것인가?

 

 

...

 

17. 피조물의 각 행위가 우리에게는 하나하나 다 슬픔이었으니, 그 행위마다 신적인 가치가 비어 있고 아름다움도 거룩함도 없어서 우리의 행위들과는 완전히 딴판임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 이 천상적인 아기는 우리의 그 지극한 슬픔과 우리의 뜻을 떠난 인간의 엄청난 불행을 얼마나 깊이 이해했는지 모른다! 우리의 그 슬픔과 인간의 그 불행을 보고, 오, 얼마나 자주 뜨거운 눈물을 쏟곤 했던지!

 

...

 

18. 그러므로 이 천상 아기(동정 마리아)는 두려움으로 떨면서 자기 자신의 뜻에는 단 하나의 행위로도 생명을 주기를 원치 않았다. 이 때문에 언제나 작은 사람으로 있을 수 있었다. 자기의 뜻이 자기 안에서 도무지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어떻게 클 수 있었겠느냐?

 

19. 하지만 그가 행하지 않았던 것을 우리의 뜻이 행하였다. 우리의 뜻이 그를 온전히 아름답고 거룩하고 신적인 사람이 되게 길렀고, 얼마나 풍요하게 해 주었는지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이 되었다. 이 사람이야말로 우리 뜻의 기쁨 - 은총과 아름다움과 거룩함의 기적이었다.

 

 

 

 

 

 

 

16권-27 하느님 뜻의 갓난아이

예수님의 인성에 각인된 가장 길고 넓은 십자가는 하느님의 뜻이었다. 

하느님 뜻과 대립되는 인간 뜻의 각 행위가 예수님께 끼친 무수한 고통의 십자가들.

 

1923년 11월 28일    

 

 

1. 언제나 예수님의 거룩하신 뜻 안에 깊이 잠겨 있는 느낌이다. 내 작은 영혼이 갓난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복되신 예수님께서 이 갓난아이를 팔에 안으시고 그분 뜻의 입김으로 기르시면서 다른 아무것도 보거나 듣거나 손대지 않도록 빈틈없이 돌보고 계셨다. 아무것도 아이의 주의를 흩트리지 않게 하시려고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에 대한 가르침의 황홀한 매력으로 계속 그 마음을 사로잡고 계신 것이었다.

 

2. 이 작은 갓난아이는 그와 같이 제 예수님 뜻의 입김을 마시며 자라고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작은 빛의 십자가들로 아이를 온통 뒤덮기도 하셨는데, 내가 보니 내 몸의 각 부분마다 그 빛 십자가가 하나씩 찍혀 있었다.

 

3. 그리고 예수님은 즐거워하시면서 이 십자가들을 더 많이 불리실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나로 하여금 눈길을 그분께 고정하고 그분의 말씀들을 하나하나 죄다 헤아리게 하기도 하셨다. 이 말씀이 내게는 음식이요 성장의 수단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4. 나중에 예수님께서 내게 이르셨다. "내 작은 딸, 하느님 뜻의 내 갓난아기야, 내 의지가 너를 잉태했고 태어나게 했으며 이제 사랑을 다하여 기르고 있다. 내가 얼마나 큰 사랑으로 너를 팔에 안고 있는지, 또 내 뜻의 입김 말고는 다른 어떤 음식도 먹지 못하게 하고 있는지 너는 보지 않았느냐? 그것, 곧 내 뜻의 갓난아기는 지금까지 창조된 만물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사랑스러우며 가장 소중한 것이다.

 

5. 그런즉 아무도 이 갓난아기에게 손대지 않도록 내가 빈틈없이 지키겠다. 내 뜻이 너에게는 모든 것이 될 것이다. 곧 너의 생명과 음식과 옷과 장신구와 십자가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 뜻은 가장 위대한 것이기에 이 뜻을 우리 (성삼위)의 뜻에서 태어나지 않은 다른 것들과 섞는 것은 네 예수에게 의합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6. 따라서 너는 모든 것을 잊어야 한다. 영원한 의지의 무한한 바다가 네 주위와 안팎을 에워싸고 다른 어떤 물도 너를 에워싸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나는 진실로 내 뜻의 갓 태어난 딸로서의 영예와 고상함과 품위를 너에게서 보기를 원한다."

 

7. 그 말씀을 듣자 나는 기쁘기는커녕 당황해서 죽을 것 같은 심정이어서,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 저의 사랑이시여, 제가 작은 자라는 것은 맞는 말씀입니다. 저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한 악하기도 한 작은 자입니다. 한데 당신께서 그 모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어떻게 그러실 수 있으십니까? 저를 놀리고 싶으십니까?

 

8. 하기야 많은 사람들이 당신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게 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슬픔을 이기시려고 저에게 장난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며 재미있어하신다고 봅니다. 그 말씀 때문에 저는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계속하시려면 당신 뜻에 대한 농담으로 해 주십시오."

 

9. 그러자 예수님은 나를 더 세게 껴안으시며 이어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네 예수가 너를 놀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재미있어 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내가 너에게 한 말이 진실임을 나타내는 확실한 표가 있다. 그것은 내 뜻이 너에게 찍어 둔 빛 십자가들이다.

 

10. 이것을 알아 두어라. 딸아, 내 인성에 있어서 가장 넓고 가장 긴 십자가, 결코 나를 떠난 적이 없는 십자가는 곧 하느님의 뜻이었다. 더욱이, 하느님의 뜻에 대립되는 인간 뜻의 각 행위가, 지고한 뜻이 내 인성의 가장 깊은 곳에 각인했던 하나하나의 뚜렷한 십자가였다.

 

11. 사실 인간의 뜻이 행동하려고 땅에서 움직이면, 하느님의 뜻은 인간의 뜻을 만나 그것을 자신의 뜻과 하나 되게 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온다. 인간의 그 행위 안에 은총과 빛과 거룩함이 강물처럼 흘러들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인간의 뜻이 하느님 뜻과의 이 만남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마치 자신의 창조주와 맞서 전쟁을 벌이는 격이 되고, 그러니 창조주께서 자기에게 쏟아 부어 주려고 했던 그 선과 빛과 거룩함을 하늘 속으로 도로 몰아넣게 된다.

 

12. 그러므로 모욕을 당한 지고한 뜻이 나에 의해 보상을 받기를 원하였으니, 인간 뜻의 행위 하나하나에 대해서 내게 고통의 십자가를 가했던 것이다. 그리고 비록 이 십자가와 함께 받긴 했으나 나는 그들이 거부한 모든 선도 받았다. 인간이 그의 행위 속에 하느님 뜻과의 만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를 위하여 그 선을 나 자신 안에 맡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1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리도 숱한 십자가들의 혹심한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내면을 보아라. 내 인성이 얼마나 무수한 십자가를 내포하고 있는지!  내 뜻의 십자가들은 과연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내 뜻의 고통이 무한했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 무한한 고통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였다. 그 고통은 내게 순간마다 죽음을 줄 정도로, 하느님 뜻과 대립하는 인간 뜻의 행위 하나하나에 대해서 내게 하나의 십자가를 줄 정도로 강한 힘 가지고 있다.

 

14. 내 뜻의 그 십자가는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나무 십자가는 다만 그 무게와 고통을 느끼게 할 따름이지만, 내 뜻의 십자가는 빛과 불로 된 십자가로서, 타고 또 타면서 인간의 본성과 단 하나가 될 정도로 깊이 각인되는 것이다.

 

15. 내가 너에게 내 거룩한 뜻이 내게 준 십자가에 대해 말하기를 원한 것은,사람들의 모든 행위들을 한데 묶어 네 앞에 있게 하여, 내 뜻이 정당한 보속을 요구하며 얼마나 내게 십자가에 십자가를 가했는지를 너 자신의 손으로 만져 보게 하려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모욕하며 이 뜻과의 관계를 끊어 버린 것이 인간의 뜻이 아니었더냐?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이 그때 나의 인간적 본성과 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아 고통을 받게 했던 것이다.

 

16. 인간의 다른 모든 것은 표면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선이든지 악이든지 그것의 원천과 뿌리와 실체는 인간 뜻의 깊은 곳에 있다. 그러니 오직 하느님의 뜻만이 내게 그리도 숱한 인간 뜻의 악을 속죄하게 할 수 있었다. 네가 온전히 내 뜻 안에 있기를 내가 바란 까닭이 이것이니, 이 하느님의 뜻이 행했던 것과 내게 겪게 했던 것, 지금 행하기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에게 알려 주기 위함이다.

 

17. 그리고 이것이 너에게 수많은 빛 십자가들이 각인되어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너의 십자가는 나의 뜻이고, 이 뜻이 너를 준비시켜 내 뜻의 참된 갓난아이가 되게 하려고 모든 것을 빛으로 바꾸었으니, 내가 이 갓난아이에게 충실한 딸에게 하는 것처럼 내 뜻의 신비와 기쁨과 슬픔들을 맡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면 이 딸은 나의 행위들과 하나 되어, 내 뜻이 땅에 내려와 알려지고 받아들여지며 사랑 받게 되도록 하늘을 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