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주님

의견(분별)의 은사

Skyblue fiat 2016. 12. 31. 13:18

 

의견(분별)의 은사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이후부터 내 삶에 있어 무엇을 결정내리는 것이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그러한 일에 대해 훨씬 덜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종종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아도 곧바로 무엇을 해야 옳은지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을 때면 나는 주님에게 묻곤했는데 그러면 그분은 무엇을 행해야 할지에 관해 명쾌한 깨달음을 주셨다. 때때로 이것은 주님으로부터의 직접적인 말씀으로 나타났고 어떤때는 하나의 선택에 대해 평화를 느끼게 해주시는 것으로, 또 어떤 때는 하나의 방향을 지시하는 성경의 말씀으로 나타내 보여 주셨다. 그리하여 어느 길로 가야 하는가에 소용되는 많은 시간과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뿐만아니라, 그 결정의 결과 또한 전보다 훨씬 더 지혜로운 것이었다.

- 플로리다 바톤주 공무원 -

 

 

의견의 은사는 우리가 실제적인 삶의 상황들을 성령 안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은사이다. 우리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을 때, 의견의 은사는 훌륭한 결정(갑작스레 얻은 것처럼 보이는)을 내릴 수 있는 새로운 본능으로서 나타난다. 우리는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하는지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여겨지는 것을 듣기 시작하며, 그 음성에 따름으로써 생긴 좋은 결실은 그것이 진정 우리를 주관하시는 주님이셨음을 증명해 준다.

 

때때로 결정해야 할 문제가 너무 복잡해서 인간의 이성적 사유를 통해서는 도저히 올바른 결정에 이를 수 없을 때에 우리는 의견의 은사를 통해서 보다 훌륭한 선택을 해낼 수 있다. 이러한 경우들이 바로 의견의 은사의 영향과 존재를 뚜렷이 볼 수 있는 순간이다.

 

그러나, 만약 성령 안에서의 우리의 삶 속에서 의견의 은사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종종 혼돈과 회의를 가져오기도 한다. 즉,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문제에 관해 "주님으로부터의 말씀"을 얻었으나 다른 사람 또한 같은 문제에 대해 주님으로부터 얻었다고 주장하며 또 다른 의견의 은사를 내어 놓을 때가 그렇다.

그 결과 나타나는, 무엇이 진정 주님이 말씀하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주님으로부터의 말씀"이 전혀 없었을 경우 생길 수 있는 문제보다 더 골치거리가 된다.

우리가 주님께서 주신 의견의 은사를 따라서 산다해도 우리가 이 은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가 비록 하느님으로부터의 인도하심을 따른다고 생각할지라도 잘못된 것을 선택하기 시작한다.

 

이 결과 고통을 겪게 되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고통 가운데 시험하시며 이끄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얼마 동안 이런 잘못된 영감들을 따르면서 끝에 가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의 의견의 은사를 주신다는 것에 완전히 의심을 품게 된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의견의 은사를 경험할 때 다른 유형의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 우리는 의견의 은사를 통해서만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훌륭한 상식으로 분명한 해답을 구할 수 있을 때에도 영적인 판단력만을 추구한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연역적인 접근방법에 의심을 품으며 인간적이고 세속적이라고 생각하여 주님은 분명 그것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일하시리라 생각한다.

 

이런 접근의 결실이 좋지 않았을 때에도 우리는 마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님에게 불충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에 집착하여 그분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떠한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역사하시리라고 생각한다.

그 종국의 결과는 기독교 신비주의파와 같은 영성이나, 전 세기에 걸쳐 교회 내의 성령쇄신 운동 안에서 경험했던 혼동을 선택하여 잘못된 전철을 되풀이 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의견의 은사"를 활용하는데 성장할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가 바로 앞에서 말한 문제점들을 피할 수 있을까?

 

 

의견의 은사와 예언

 

첫단계로, 우리는 "의견의 은사"와 카리스마적 "예언의 은사"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종종 의견의 은사가 예언의 은사로 오해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 그분으로부터 "개인적 예언"을 들었다고 말하는데 대부분 그것은 의견의 은사를 받은 것이다. 전반적인 개념으로 볼 때 예언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에 즉각적으로 복종하여 따르는 깊은 믿음을 요구한다.

 

만약 하느님께서 실제로 우리에게 명령의 말씀을 하셨다면,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를 실천해야 한다. 또는 예언이 왜곡되거나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 그분의 말씀대로 따르지 않음으로 주님에게 불복종하는 일이 없도록 잘 분별해야 한다. 사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좋고 아름다운 길이다.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의견의 은사는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성숙해질 수 있도록 해주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해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가 삶 속에서 계속해서 그분을 따를 때 우리 안에 더 깊이 머무르시며, 그리하여 의견의 은사가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안에 더욱 풍요롭게 자리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예언적 은사(그 화려함 속에서 느끼는 것과는 달리 의견의 은사라고 생각되는 것)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보다 깊이 의견의 은사를 이해하고 행하면 성령 안에서 보다 성숙한 다른 이의 의견의 은사에 한층 더 개방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의견의 은사는 우리를 예언자들이 그러하듯이 선택한 것에 집착하도록 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의견이 은사는 예언의 은사에 비해 더 일상적이며 그리스도인의 사람을 사는데에 더욱 근원적인 것임을 알며 예언의 은사와 의견의 은사를 식별하며 주님의 말씀을 따르면 우리는 성령 안에서 더 큰 자유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분별

 

분별은 실제 행동에 맑은 이성을 적용하는 것으로 성경에서 상당한 가치를 갖는 덕목이다. "지혜문학"은 분별력 있는 사람을 가르치는 데에 성경 속에 상당히 많은 부분에 할애되고 있다. 내가 경험한 분별력을 기르는 데에 따라야 할 몇 가지의 밥칙들을 이야기 하겠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과거 경험들로부터, 특히 실수들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고 확신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과 보통의 습관들을 규칙적으로 반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의 매일의 기도에서 할 수 있는데 사실 이것은 우리의 기도 생활의 핵심적인 부분이 되어야만 한다.

교회는 항상 우리에게 "양심성찰"을 반드시 해야 하며 이는 그리스도인의 영성에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가르쳐 왔다. 우리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의 과정들을 고찰하는 동안에 피정과 명상의 시간들을 많이 가져야 할 것이다. 고해 성사를 자주 갖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 삶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보다 나은 안목을 갖게 해 주는 중요한 방법이다.

 

또한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성숙한 이들의 지혜를 받아들이도록 우리의 삶을 개방시켜야 한다. 그들은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기 전에 미리 경고해 줌으로써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고 난 후에야만 배우는 것을 그 고난을 겪지 않고 배울 수 있게 해 준다.

잠언 15장 5절에서 말하듯이 "미련한 자는 아버지의 교훈을 업신여기지만 그 훈계를 지키는 이는 영리해진다." 겸손한(어진) 사람은 훈계를 지킨다. 그리스도 안에서 정기적으로 고백할 수 있는 영적 형제를 갖거나 영적 지도자로서 인도해 줄 사람을 갖는다는 것은 신앙적으로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분별력 있는 삶을 사는 또 다른 방법은 예지력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얼핏보면, 이것은 주님의 계획에 방해하지 않도록 우리가 너무 많은 계획을 만들지 마라는 기본 원칙적인 성령의 가르침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것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뜻들을 바라보며 이 원칙들을 지킬 필요가 있으며 또한 마음 속에 품은 눈앞의 장래만을 위해서 계획을 세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계획이 주님의 계획에 거스리지 않기를 원하시며, 우리들 장기적인 비젼(vision 선견(지명),통찰력)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비젼이 무엇인가 알기를 원하신다. 다시 말해서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가 나아갈 것에 관해 경솔하게 방향을 잘못 들어서서 다시 되돌아 나옴으로 받는 고난을 받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만큼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 분별력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계속 성령을 향해 열려 있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품으신 그분의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갖는 불안과 대단히 큰 염력(念力 :일신의 정력을 다하는 마음 또는 그 힘) 속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하신다.

 

마지막으로 개인의 삶 안에서 분별력을 개발시키기 위해서는 항상 바른 방법으로 신중을 기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께서 자유로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실 수 있도록 과도하게 예민하지 않으며,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하기 전에 우리의 선택을 둘러싼 환경들 모두를 적절히 고려하도록 유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 자신이 나약하고 죄인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면서 많은 생각과 게획들과 묘책들을 만들어 내고는 처음에 뿜어내던 뜨거운 열성 때문에 성취해 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을 주님 안에 내적 힘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실패하고 마는가? 분별력이 없어 만들어진 다른 모든 실수들이 그러한 것처럼, 이것 또한 영적 생활에 상당히 혼란과 좌절을 안겨 줄 것이다. 

 

 

 

 

 

 

의견(분별)의 은사

 

의견의 은사의 영향력

 

의견의 은사를 소유하면 영적 생활의 아주 일반적인 장애물들 중 많은 부분을 극복하는 데에 커다란 도움을 받게 된다. 의견의 은사 때문에 극복할 수 있는 주요한 장애물들 중 하나가 '소심함'이다. 소심한 사람은 윤리적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주님의 뜻을 명확히 가려내지 못하고 영적 삶에 있어서 마비상태를 보이며, 종국에는 그들의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죄책감과 혼란 때문에 전혀 영적 삶을 하지 못하게 되고 만다. 의견의 은사를 통해서 성령은 우리가 윤리적 선택을 명확히 할 수 있게 하시고, 그 훌륭한 선택 속에서 우리의 영을 굳건하고 힘있게 하신다. 의견의 은사는 우리에게 명확한 윤리적 판단을 개발케하여 굉장히 복잡한 선택과 우리를 억누르는 것을 올바르게 분류해 제거해 낼 수 있도록 도와 준다.

 

의견의 은사는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의 은사에 더욱 개방할 수 있도록 주님으로부터 필요한 방향지시를 구하려 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을 때는 그분은 이미 그 능력을 준 다른이들에게 우리가 의존하기를 원하신다. 그들을 통해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는 것은 바로 의견의 은사이다. 우리 앞에 직면한 선택에 대해 생각할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없는 갑작스러운 뜻 밖의 상황에서 우리는 의견의 은사의 도움을 받는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의견의 은사는 확실히 언급되었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법정에 넘길 때, 무슨 말을 할까 미리 걱정하지 마라. 그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시는 대로 말하여라.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다." (마르 13,11)

 

의견의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은사이다. 많은 복잡한 문제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람들은 끊임 없이 한 발자국 더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이때 그들의 지도자들은 인간적인 지혜와 지극히 개인적인 분별력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만약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영적으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견의 은사를 지속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지도자가 하느님의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카리스마를 가졌다 해도 충분치 않다.

성령께 그리고 그분께서 주시는 의견의 은사에 마음이 열려 있어 온 마음으로 따를 수 있는 사람만이 그리스도교 단체들을 하느님의 목적에 맞게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

 

 

의견의 은사를 배양함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한번 얻은 성령의 은사를 계속 유지하고 배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선 겸손해야 하며, 우리는 나약하다는 것과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 오직 성령께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의견의 은사를 훌륭히 사용할 때 악마는 우리에게 "이제 우리는 현명하므로 모든 문제들을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있고, 모든 이들을 인도할 수 있다."고 유혹한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일하시는 하느님의 전능하심과 그분의 지도에 힘입어 이 어리석은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우리는 주님께서 진퇴양난(進退兩難 :이러기도 어렵고 저러기도 어려운 매우 난처한 처지)의 궁지 속에서 구해주실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며 참고 인내해야 한다.

 우리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분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았으며"(시편 106,13) 그들 자신이 계획을 만들어 스스로 희생되었던 과오를 저지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개인적 기도 생활을 끊임없이 계속하여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말씀을 하실 때에 그분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도록 항상 방심하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 몸인 교회에 주신 의견의 은사에 순종하며 자기 만족적이고 반항적인 영혼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의견의 은사는 모든 사람을 위한 은사이며 종종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를 위해 사용된다. 우리는 그분의 몸인 교회에 관련해서만 이 은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

 

 

(발췌:<성령께서 주시는 힘>, 요셉 바기아카스 / 이광해(안드레아) 옮김 /성요셉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