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5일<많은 증인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였을 때에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
2016년 9월 25일
연중 제26주일
오늘 전례
▦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흥청거리며 살아가는 삶의 끝은 무엇일까요? 하느님께서는 크신 자비와 용서로 사람들의 악행을 참아 주고 계십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처럼 위로와 고초가 뒤바뀌는 하늘 나라를 생각하며, 가난한 우리 이웃을 잊지 맙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을 얻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입당송 다니 3,29.30.31.43.42 참조
주님,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짓고 당신 계명을 따르지 않았기에, 당신은 진실한 판결에 따라 저희에게 그 모든 것을 하셨나이다.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저희에게 크신 자비를 베푸소서.
< 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크신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고, 끊임없이 은총을 내려 주시어,
저희가 약속하신 그곳으로 달려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아모스 예언자는, 시온과 사마리아에서 흥청거리며 살면서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 자들이 맨 먼저 사로잡혀 끌려가리라고 예언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라고 권고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가난한 라자로의 이야기를 들어 회개하라고 경고하신다(복음).
제1독서 <이제 흥청거림도 끝장나고 말리라.>
▥ 아모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6,1ㄱㄴ.4-7
전능하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불행하여라, 시온에서 걱정 없이 사는 자들,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 놓고 사는 자들!
4 그들은 상아 침상 위에 자리 잡고,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양 떼에서 고른 어린양을 잡아먹고, 우리에서 가려낸 송아지를 잡아먹는다. 5 수금 소리에 따라 되잖은 노래를 불러 대고, 다윗이나 된 듯이 악기들을 만들어 낸다. 6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마시고, 최고급 향유를 몸에 바르면서도,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7 그러므로 이제 그들이 맨 먼저 사로잡혀 끌려가리니, 비스듬히 누운 자들의 흥청거림도 끝장나고 말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46(145),6ㄷ-7.8-9ㄱ.9ㄴㄷ-10ㄱㄴ(◎ 1ㄴ)
◎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 주님은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고, 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 주님은 잡힌 이를 풀어 주시네. ◎
○ 주님은 눈먼 이를 보게 하시며,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이방인을 보살피시네. ◎
○ 주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나, 악인의 길은 꺾어 버리시네.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신다. 시온아, 네 하느님이 대대로 다스리신다. ◎
제2독서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계명을 지키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1서 말씀입니다. 6,11ㄱㄷ-16
11 하느님의 사람이여,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
12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
그대는 많은 증인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였을 때에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13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
그리고 본시오 빌라도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신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대에게 지시합니다.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십시오.
15 제때에 그 일을 이루실 분은, 복되시며 한 분뿐이신 통치자,
임금들의 임금이시며 주님들의 주님이신 분,
16 홀로 불사불멸하시며 다가갈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 분,
어떠한 인간도 뵌 일이 없고 뵐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께 영예와 영원한 권능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2코린 8,9 참조
◎ 알렐루야.
○ 예수 그리스도는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도 그 가난으로 부유해지게 하셨네.
◎ 알렐루야.
복음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9-31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 신경>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 형제 여러분, 부자와 가난한 라자로의 이야기로 우리를 회개하도록 이끄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를 간절히 청합시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구원자이신 주님, 주님의 백성인 교회에 슬기의 은총을 주시어, 교회가 세상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복음 정신으로 주님의 진리와 정의를 올바로 깨닫고 실천하게 하소서.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2. 세계의 경제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공평하신 주님, 세계 경제인들을 살펴 주시어, 그들이 양극화가 심해지는 세상에서 가난한 이들을 먼저 생각하고 공동선을 위하여 서로 연대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
3. 질병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위로자이신 주님, 주님은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주관하시니, 갖가지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시어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고, 그 가족들도 위로해 주소서. ◎
4.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은총의 샘이신 주님,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구원의 빛이시니, 저희가 성사에 참여하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복음의 기쁨을 누리고, 이웃에게도 전하게 하소서. ◎
✛ 영원한 빛이신 주님, 저희가 언제나 바르고 곧게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시고 저희 바람도 기꺼이 들어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예물 기도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가 드리는 예물을 받아들이시어, 이 제사로 저희에게 온갖 복을 내려 주소서. 우리 주 …….
< 연중 주일 감사송: 173면 참조>
영성체송 시편 119(118),49-50 참조
주님, 당신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저는 그 말씀에 희망을 두었나이다. 당신 말씀 고통 속에서도 위로가 되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 세상의 재물은 우리를 하늘 나라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시고 탐욕스러운 부자는 외면하시며, 무분별한 자들의 방종을 그치게 하시고 짓눌리는 이들을 정의롭게 보살피십니다.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느님 나라에 받아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도록 합시다.
<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 신비로 저희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시어, 저희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전하며 그 수난에 참여하고, 그 영광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지옥 벌의 영원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보면 가혹한 이 가르침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부자는 지옥 불의 맹렬함에 후회를 하지만 심연으로 갈라진 천당에 건너갈 수 없었습니다. 부자는 살아 있는 동안 자기만족에 빠져 가난한 라자로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물을 나누는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어서 자신의 다른 가족은 지옥에 오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강을 건너면 더 이상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은 주님께 바쳐질 때 반드시 천상의 보상을 받습니다. 부자가 이 세상에서 대접받고 권세를 누려 행복한 것처럼 보여도 하느님의 눈에는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억눌린 사람, 소외된 사람, 가난한 사람을 먼저 보살피는 분이십니다. 오늘 비유는 이 점을 잘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두려운 것입니다. 천당에서는 이 세상에서 첫째가 꼴찌가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오늘 복음의 부자와 같이 불행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의로움은 무한한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권세 있는 사람을 낮추시고 가난한 사람을 들어 높이십니다. 하느님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됩시다. 사후에 지옥에서 후회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52. 에스드렐론에서 안식일을 지내심. - 부자와 나자로 **그리스도의 시 둘째 해
그 불쌍한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알지 못하게 되었을 음식을 – 문자 그대로 – 아귀아귀 집어삼킨다.
그 중에 꽤 나이 많은 한 남자가 열 살쯤 된 어린 아이를 곁에 꼭 붙여 앉게 하고 먹으면서 운다.
“할아버지, 왜 그러십니까? …” 하고 예수께서 물으신다.
“선생님이 너무 친절하셔서요 ….”
엔도르의 사람이 목구멍에서 울려나온 목소리로 말한다.
“맞습니다. … 그 때문에 울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슬픔의 눈물은 아닙니다 ….”
“슬픔이 없는 눈물이지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또 …
제가 바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눈물은 하나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할아버지, 무엇이 소원입니까?”
“이 아이요, 보시지요? 제 손잡니다. 지난 겨울 땅이 무너져내릴 때부터 저와 같이 있습니다.
도라는 얘가 저한테 와 있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저는 얘를 들짐승처럼 숲 속에서 살게 하고 안식일에만 얘를 보니까요.
도라에게 들키면 내쫓든지 일을 시키든지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어린 아이가 마소보다도 더 못한 대우를 받을 것입니다.
과월절에는 얘를 미케아와 같이 예루살렘에 보내서 율법의 아들이 되게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 제 외손자입니다 .”
“그러지 말고 이 아이를 내게 주시겠습니까? 울지 마세요.
나는 정직하고 거룩한데 아이가 없는 친구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이 아이를 내 길에 따라 거룩하게 기를 것입니다 ….”
“아이고! 주님! 주님께 대한 말을 들은 때부터 이것이 제 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주인에게 속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거룩한 요나에게
제 손자를 이 죽음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
“얘야, 날 따라오겠니?”
“예, 주님. 그리고 걱정을 끼치지 않겠습니다.”
“그럼 약속이다.”
“그렇지만 … 이 아이를 누구에게 주려고 하십니까?”
베드로가 예수의 소매를 잡아당기면서 말한다.
“이 아이도 라자로에게요?”
“아니다, 시몬아, 아이를 못 가진 사람이 대단히 많다 ….”
“저도 있습니다 ….” 베드로의 얼굴이 욕망으로 핼쓱해지는 것 같다.
“시몬아 네게 이 말을 했다. 너는 내가 남겨줄 모든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네게 딸린 아들의 속박에 얽메어서는 안 된다.
이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라.
너는 선생에게 너무도 필요하기 때문에
선생이 어떤 애정으로 인해서 너를 자기에게서 떼어놓을 수가 없다.
시몬아, 나는 까다롭다. 나는 가장 질투심이 많은 신랑보다도 더 까다롭다.
나는 너를 특별한 사랑으로 사랑한다.
그래서 너를 전적으로 나를 위해서 내 것으로 가지기를 원한다.”
“좋습니다, 주님 … 좋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되기 바랍니다.”
가엾은 베드로는 이렇게 예수의 뜻에 동의하는 것이 영웅적이다.
“이 아이는 태어나는 내 교회의 어린 아이가 될 것이다. 동감이냐?
이 아이는 모든 사람의 것이기도 하고 누구의 것도 아니기도 할 것이다.
‘우리의’ 어린 아이일 것이다. 행정(行程)이 허락할 때에는 우리와 같이 다닐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로 나중에 올 것이다. 이 아이의 보호자는 목자들일 것이다.
모든 어린 아이들을 ‘그들의’ 아기 예수로 보고 사랑하는 목자들이.
꼬마야, 이리 오너라. 이름이 뭐냐?”
“요한의 야베입니다. 그리고 유다 사람입니다.” 하고 소년은 서슴지 않고 말한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유다 사람입니다.” 하고 노인이 확인한다.
“저는 유다에 있는 도라의 소유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제 딸이 이 지방 사람에게 시집왔습니다.
저는 아리마태아 근처의 수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지난 겨울 …”
“저는 큰 불행을 보았습니다 ….”
“얘는 그날 밤 멀리 있는 친척 집에 있었기 때문에 무사했습니다. …
정말이지 제 이름값을 했습니다. 주님! 저는 딸에게 이내 그 말을 했습니다.
‘왜 그런 이름을 붙였니? 너는 옛날 성경도 기억 못하니?’ 하고요. 그러나 사위는
얘에게 이 이름을 붙여 주기를 원했고, 그래서 야베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린 아이가 주께 간청하면 주께서 그에게 강복하실 것이고,
그의 경계를 넓혀 주실 것이고,
주의 손이 그의 손에 있어 다시는 불행에 짓눌리지 않을 것이다.’
할아버지, 할아버지와 죽은 이들의 영을 위로하기 위하여, 그리고
고아의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하여 주께서 이 아이에게 그런 것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어린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여러분이 육체의 필요를 영혼의 필요에서 분리한 지금,
내가 여러분을 위해서 생각한 비유를 들으시오.
옛날에 대단히 부유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주홍빛 옷과 올이 가는 아마포 옷을 입고 광장과 집에서 으스대며 걸어 다녔습니다.
동향인들은 그를 그 지방의 가장 권세 있는 사람으로 존경했고,
친구들은 이득을 얻으려고 그의 교만을 부추겼습니다. 그의 집 방들은
날마다 호화로운 잔치를 하느라고 열려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모두가 부자인,
따라서 옹색하지 않은 많은 손님이 밀려들어 못된 부자에게 아부했습니다.
그의 잔치는 음식이 푸짐한 것과 포도주가 맛있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내에 거지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대단한 거지였습니다.
부자가 재산이 대단한 것만큼이나 이 거지의 비참도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거지 라자로의 인간적인 비참의 껍질 밑에는
라자로의 비참보다도 나쁜 부자의 재산보다도 훨씬 더 큰 보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라자로의 참된 거룩함이었습니다.
라자로는 필요 때문에도 율법을 어긴 일이 절대로 없었고,
특히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켰습니다.
라자로는 거지들이 항상 그러는 것처럼 동냥을 청해서 굶어 죽지 않으려고 부잣집 문전에 자리잡곤 했습니다. 그래서 지극히 화려한 방에 차려놓은 호화로운 잔칫상의 찌꺼기라고 좀 얻을 희망을 가지고 매일 저녁 악한 부자의 집 문 앞에 갔습니다. 그는 문 근처 길에 누워서 참을성 있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라자로가 와 있는 것이 부자의 눈에 띄면,
헌 데 투성이에 영양실조에 걸리고 누더기를 걸친 그 육체가
그의 손님들에게 너무도 마음 아픈 광경이기 때문에 그를 쫓아버리게 했습니다.
그 광경이 가슴 아프다고 한 것은 부자의 말이었고,
사실은 라자로의 비참과 착함을 보는 것이 그에게 끊임없는 비난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습니다.
값진 목걸이를 하고 영양이 좋은 부자의 개들이 부자보다 더 동정을 했습니다.
개들은 불쌍한 라자로에게 가까이 와서 그의 헌데를 핥아 주고,
그가 쓰다듬어 주기 때문에 좋아서 짖으며,
호화로운 식탁에서 남은 음식들을 그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 짐승들 덕택으로 라자로는 음식을 주지 않는 데도 살아 남았습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식사가 끝난 다음에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우려고
방에 들어가는 것까지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라자로가 죽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라자로가 죽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아무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도 도무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날과 그 후 부자는
그가 ‘치욕’이라고 부르던 그 비참한 꼴을 그의 문지방에서 보지 않게 된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그 죽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라자로가 숨을 거둘 때 차고 아무것도 없는 그의 굴에는 하늘의 군대가 와서
눈부신 빛 속에서 그의 영혼을 거두어 가지고 환희의 노래를 부르며
아브라함의 품으로 데려갔습니다.
얼마 지나서 부자도 죽었습니다.오! 얼마나 호사스러운 장례식이었는지요!
그가 죽어간다는 소식을 벌써 듣고, 호기심으로 또는 유족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 사람의 친구로 점찍히기 위해 그의 저택이 우뚝 솟아 있는 광장에 몰려들었던
온 시내 사람이 슬픔을 같이 해서 울음소리가 하늘까지 올라갔고, 슬픔의 울음소리와 함께
죽은 ‘위인’, ‘은인’, ‘의인’에 대한 거짓 찬사들도 올라갔습니다.
사람의 말이 하느님의 심판을 바꿀 수 있습니까?
인간의 변호가 생명의 책에 기록된 것을 바꿀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판결된 것은 판결된 것이고, 씌어진 것은 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호화로운 장례식에도 불구하고 나쁜 부자의 영은 지옥에 묻혔습니다.
그러자 그 소름끼치는 감옥 속에서 불과 어두움을 먹고 마시며,
사방에서 또 그 영원의 순간마다 미움과 고통을 보면서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번개치는 것 같은 빛 속에서 지극히 짧은 순간 동안 보았던 하늘을 쳐다보았는데,
그의 머리 속에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는 하늘의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혹독한 고통 중에서도 혹독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저 위에 아브라함이 보였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빛나고 지극히 행복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
그리고 그의 품에는 역시 빛나고 지극히 행복한 라자로가 있었습니다.
전에는 업신여김 받고 혐오감을 일으키고 초라하던 거지 라자로가, 그런데 지금은? …
그런데 지금은 하느님의 빛과 그의 거룩함의 빛으로 아름답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부유하고, 사람들에게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천사들에게서 찬미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나쁜 부자는 울면서 부르짖었습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직접 그렇게 하시기를 바랄 수는 없으니까 라자로를 보내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셔서 손가락 끝을 물에 적셔서 제 혀에 얹어 시원하게 해주십시오.
저는 끊임없이 제 속으로 파고 들어와 저를 태우는 그 불꽃 속에서 무섭게 고통을 당하고 있으니까요!’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들아, 너는 살아 있는 동안 모든 복을 누렸었고,
라자로는 모든 불행을 겪었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라자로는 그의 불행을 가지고 선을 할 줄 알았는데,
너는 네 재산을 가지고 악 밖에 할 줄을 몰랐다.
그러므로 라자로는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
게다가 지금은 이미 그렇게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세상에는 성인들이 여기저기 퍼져 있어 사람들이 거기에서 이익을 얻게 하였다.
그러나 이웃에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 네 경우에는 마귀로 - 나중에는 성인들의 도움을 청해도 소용없다.
이제는 우리들이 갈라져 있다. 밭에서는 풀들이 섞여 있다.
그러나 풀을 벤 다음에는 좋은 풀과 나쁜 풀을 갈라놓는 너희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서는 우리가 같이 있었는데, 너희들은 우리를 쫓아내고 수백 수천 가지 모양으로 우리를 괴롭혔고,
너희는 사랑의 법을 지키지 않고 우리를 잊었다. 이제는 우리가 서로 갈라져 있다.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하도 깊은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들에게로 건너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도 그렇게 할 수가 없고,
거기 있는 너희들도 그 무서운 심연을 건너 우리에게로 올 수가 없다.’
부자는 더 크게 울면서 부르짖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의 집에만이라도 보내 주십시오.
저는 형제가 다섯이 있습니다. 저는 친척들 사이에서까지도 사랑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제가 있는 이곳은 미움뿐이기 때문에 제 영혼이 눈 깜박할 사이에 하느님을 본 그동안 사랑이 무엇인지를 이제는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 형제들이 저와 같은 벌을 받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들이 저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그들 때문에 몹시 겁이 납니다.
아이고! 라자로를 보내셔서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무슨 이유로 여기에 와 있는지 알려 주고,
지옥이 있고, 지옥은 소름끼치는 곳이며,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온다고 말하게 해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 주십시오! 그래서 그들이 늦지 않게 대비해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 이 곳에 끌려오게 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형제들은 모세와 예언자들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말을 들을 것이다.’
그러니까 고통을 당하는 영혼으로 신음하면서 나쁜 부자는 대답했습니다.
‘아이고 아브라함 아버지, 죽은 사람이 가면 그들에게 더 깊은 감명을 줄 것입니다. …
제 청을 들어 주십시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으니, 그들에게 진리의 말을 하기 위해
한 시간 동안 다시 살아난 사람의 말은 더구나 믿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지극히 행복한 사람이 내 품을 떠나서 원수의 아들들의 모욕을 받으러 가는 것은 옳지 않다.
그에게는 이제 모욕의 때가 지나갔다. 지금은 평화를 누리고 있으며,
하느님의 말씀도 믿지 않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 않는 사람들을 회개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이 쓸 데 없는 일임을 아시는 하느님의 명령으로 평화 속에 머물러 있다.’
이 비유는 아주 분명한 뜻을 가지고 있어서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서는 새로운 라자로인 내 요나가 성덕을 닦으면서 정말로 살았습니다.
요나가 하느님 곁에서 영광을 누리고 있다는 것은 그에게 바라는 사람에게 주는 보호로 명백해집니다.
그렇습니다. 요나는 여러분에게 보호자와 친구로 올 수 있고, 또 여러분이 언제나 착하게 살면 실제로 올 것입니다. 지난 봄에 요나에게 한 말을 여러분에게도 합니다만,
여러분 모두를 물질적으로도 도우러 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하늘을 가리킬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미래의 나라를 약속하면서 체념이라는 큰 지혜를
가르치는 일 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이유로도 미워하지 마시오.
미움이 이 세상에서는 강력합니다. 그러나 미움은 항상 한계가 있습니다.
사랑의 능력은 이 세상에서도 한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해서 사랑이 이 세상에서 여러분을 보호하고
여러분의 용기를 돋워 주게 하고 하늘에서는 여러분에게 상을 주게 하시오.
나쁜 부자가 되는 것보다는 라자로가 되는 것이 낫습니다. 이것을 믿으시오.
이것을 믿게 되면 여러분은 지극히 행복할 것입니다.
이 밭들이 받은 벌에서 미움의 말을 보지 마시오.
비록 사실들이 이 미움을 정당화할 수는 있어도 말입니다.
기적을 잘못 해석하지 마시오. 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벌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잔인한 부자를 복종시킬 수가 없었으므로 그를 정의에 맡겼습니다.
그래서 정의가 도라와 그의 형제들에 대한 박해에 보복을 행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기적에서 교훈을 얻으시오.
정의는 없는 것 같이 보일 때에도 항상 깨어 있다는 것,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만물의 주재자이시기 때문에 정의를 행사하기 위하여
애벌레와 개미같이 가장 보잘것없는 것을 써서 잔인하고 탐욕스러웠던 자의 심장을
물게 하시고 그의 목을 조르는 독을 토하면서 죽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는 여러분에게 강복합니다. 그러나 새벽마다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내게 맡기는 어린 양 걱정은 하지 마세요.
내가 이따금씩 이 아이를 할아버지한테 데려와서 이 아이가 하느님의 길에서
지혜와 착함이 자라는 것을 보고 기뻐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이 어린 아이가 이번 과월절의 할아버지의 어린 양이 될 터인데,
야훼의 제단에 바친 어린 양 중에서 가장 하느님의 뜻에 맞는 어린 양일 것입니다.
야베야, 할아버지께 인사드려라. 그리고 네 구세주, 네 착한 목자에게로 오너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고! 선생님! 착하신 선생님! 선생님을 떠나다니! …”
“그렇습니다. 이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여기 있는 것을 감시인이 보면 좋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벌을 피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이 곳에 왔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충고를 하는 사랑에 대한 사랑으로 순종하시오.”
불쌍한 사람들은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일어나 그들의 고난을 향하여 간다.
예수께서는 다시 그들에게 강복하신다.
그리고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한편에는 엔도르의 사람이 걷는 가운데 이미 가셨던 길로 해서 미케아의 집으로 돌아오신다. 그동안 망보는 일을 마치고 형제들에게 돌아오는 안드레아와 요한이 예수와 합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