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9일 "주 네 하느님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여라.’
2016년 8월 19일
19 금 (녹)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또는 (백) 성 요한 외드 사제 금육
평일 미사 또는 기념 미사
① 에제 37,1-14
㉥ 마태 22,34-40.
평일 또는 기념 시간 전례
대전 유흥식 주교 수품일
19 (녹)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성 요한 외드 사제
입당송 시편 105(104),3-4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안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자라나게 하시고,
저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를 뼈로 가득 찬 계곡으로 데리고 가시어 마른 뼈들을 살리시며,
이스라엘을 무덤에서 자기 땅으로 데려가시겠다고 예언하게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의 물음에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온 이스라엘 집안인 너희를 무덤에서 끌어내겠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7,1-14
그 무렵 1 주님의 손이 나에게 내리셨다. 그분께서 주님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나가시어, 넓은 계곡 한가운데에 내려놓으셨다.
그곳은 뼈로 가득 차 있었다. 2 그분께서는 나를 그 뼈들 사이로 두루 돌아다니게 하셨다.
그 넓은 계곡 바닥에는 뼈가 대단히 많았는데, 그것들은 바싹 말라 있었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내가 “주 하느님, 당신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4 그분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뼈들에게 예언하여라.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5 주 하느님이 뼈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에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6 너희에게 힘줄을 놓고 살이 오르게 하며 너희를 살갗으로 씌운 다음, 너희에게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게 하겠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7 그래서 나는 분부받은 대로 예언하였다. 그런데 내가 예언할 때, 무슨 소리가 나고 진동이 일더니, 뼈들이, 뼈와 뼈가 서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8 내가 바라보고 있으니,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라오며, 그 위로 살갗이 덮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숨은 아직 없었다.
9 그분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숨에게 예언하여라. 사람의 아들아, 예언하여라. 숨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 숨아, 사방에서 와 이 학살된 이들 위로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10 그분께서 분부하신 대로 내가 예언하니, 숨이 그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들이 살아나서 제 발로 일어서는데, 엄청나게 큰 군대였다.
11 그때에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은 온 이스라엘 집안이다. 그들은 ‘우리 뼈들은 마르고 우리 희망은 사라졌으니, 우리는 끝났다.’고 말한다.
12 그러므로 예언하여라. 그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 무덤을 열겠다. 그리고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13 내 백성아, 내가 이렇게 너희 무덤을 열고, 그 무덤에서 너희를 끌어 올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4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7(106),2-3.4-5.6-7.8-9(◎ 1 참조)
◎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분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 말하여라, 주님이 구원하신 이들,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신 이들.
해 뜨는 곳과 해 지는 곳, 북녘과 남녘, 뭇 나라에서 모으신 이들은 말하여라. ◎
○ 사막과 광야에서 그들은 헤매며, 사람 사는 성읍으로 가는 길 찾지 못하였네. 굶주리고 목말라, 목숨이 다하였네. ◎
○ 곤경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자, 역경에서 그들을 구해 주셨네. 그들을 바른길로 걷게 하시어, 사람 사는 성읍으로 가게 하셨네. ◎
○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그분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 ◎
복음 환호송 시편 25(24),4.5 참조
◎ 알렐루야.
○ 주님,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시고, 당신의 진리로 저를 이끄소서.
◎ 알렐루야.
복음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34-40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 기도
주님, 주님께 올리는 이 예물을 굽어보시고, 저희가 바치는 제사가 주님께 영광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20(19),6 참조
주님의 구원에 우리가 환호하며, 하느님 이름으로 깃발을 높이리이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성사의 은혜를 풍부히 내려 주시어, 저희가 거행하는 이 신비를 그대로 실천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보면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의 속을 떠보려고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하시지요. 당시 유다인들은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전문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나온 것입니다. 이들이 율법 학자, 곧 율법 교사들이지요.
그런데 유다인들에게 시련이 닥칩니다. 이민족이 침입하여 유다인들의 종교심을 훼손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에 종교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바리사이가 등장합니다. 바리사이란 분리된 자들이란 뜻이지요. 그들은 율법 학자들이 해석한 율법을 정성껏 지키려고 온 힘을 다했습니다. 모든 계명을 다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그렇게 경건할 수 없었고, 직업에도 충실했지요.
문제는 그들이 율법 자체에만 집착하다 보니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잃어버린 적이 많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계명의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기계적인 신앙생활이 되기 쉽습니다. 원칙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큰일 나는 줄 압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시각에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전례의 정신도 마찬가지이지요.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 계명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자칫 글자 그대로의 계명에만 집착한다면 그만 사랑을 놓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 “내가 왜 신앙생활을 하는가?” 이같이 스스로 자문하는 습관을 길러 나갔으면 합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15. 과월절 전 수요일 : 낮 - 종말, 가장 큰 계명,그리스도의 시 수난 2
“선생님, 율법에서 어떤 계명이 제일 큰 계명입니까?”
그를 등 뒤에 두고 계시던 예수께서 몸을 돌리시며 그를 바라보신다.
부드럽고 환한 미소가 그분의 얼굴에 떠오른다. 그런 다음 머리를 드신다.
왜냐하면 키가 작고 게다가 경의를 표하려고 몸을 굽히고 있는 율법학자 때문에
머리를 숙이고 계셨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군중 쪽으로 눈길을 돌리시고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학자들의 집단을 뚫어지게 보시다가 뚱뚱하고 값진 옷을 입은
바리사이파 사람 뒤에 반쯤 가려진 요엘의 창백한 얼굴을 알아보신다.
예수의 미소는 환해진다. 그것은 마치 성실한 율법학자를 쓰다듬어 주는 빛과 같은 것이다.
그런 다음 이야기 상대자를 보시려고 다시 머리를 숙이시며 대답하신다.
“모든 계명중의 첫째 가는 계명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주 네 하느님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여라.’
이것이 첫째 가고 가장 큰 계명입니다. 그 다음 둘째 계명은 이것과 비슷하니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 하여라’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습니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입니다.”
“선생님, 지혜롭게 진리로써 대답하셨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한 분뿐이시고 그분 이외에 다른 하느님은 없습니다.
하느님을 자기 마음을 다하고 지능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은 모든 희생과 모든 제물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저는 다윗의 ‘당신께는 희생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은 뉘우치는 마음입니다’
하는 말을 묵상할 때에는 완전히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희생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으니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희생이 가장 완전한 희생입니까?”
하고 율법학자는 무슨 비밀이라도 말하는 듯이 빨리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가르치심을, 하느님의 나라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그 사람의 마음에 이 보배를 떨어뜨리시면서 사랑으로 얼굴이 환해진다.
그래서 그에게도 몸을 숙이시고 말씀하신다.
“완전한 희생은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고 원한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평화를 차지할 것입니다.
유순한 사람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고, 풍부한 평화를 차지할 것이다. 하는 이런 말이 있지요.
정말 잘 들어 두시오. 제 원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완덕에 이를 것이고 하느님을 차지합니다.”
율법학자는 공손히 예수께 인사하고 그의 무리로 돌아가니
그들은 그가 선생님을 칭찬한 것을 작은 목소리로 나무라고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한다.
“자넨 그에게 무엇을 물어 보았나? 혹시 자네가 그에게 사로 잡힌 건가?”
“나는 하느님의 성령께서 그분의 입술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네.”
“자넨 바보야 자넨 아마 그가 그리스도라고 믿는 건가?”
“난 그렇게 믿네.”
“정말이지, 이제 얼마 안가서 우리 율법교사들의 학교들이 텅 비고
저 사람을 따라 헤메는 것을 보게 될 걸세.
그런데 자넨 무엇으로 그가 그리스도라고 생각하나?”
“무엇 때문인지는 나도 모르겠어. 나는 그분이라고 느끼는 거야.”
“미쳤어!” 그러면서 그들은 화가 나서 그에게 등을 돌린다.
예수께서는 그 대화를 지켜 보셨다.
천상의 책 제20권
1926년 12월 15일
37 사랑의 작은 가락. 하느님 뜻의 행위는 그때마다 지복을 하나씩 더 받게 한다.
1. 창조된 만물 안에서 지고하신 뜻을 따라가기 위하여 만물 안의 순례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스쳤다. '마치 차례차례 다시 검열하듯이
만물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그들 안에 다만 나의 작은 '사랑합니다.'나 박아 넣는
것 - 그렇게 하는 것으로 내가 어떤 선을 행하는 것이며, 어떤 영광을 이 흠숭하올
'피앗'에 드리는 것일까? 이 때문에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누가 알랴?'
2.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이르셨다. "딸아, 대체 무슨 소리냐? 내 뜻과 함께라면 시간을 낭비하는 법이 없다.
그 반대로 사람은 내 뜻을 따라가는 행위로 영원한 시간을 얻는다.
3. 너는 이게 이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조물은 제각기 서로 다른 하나의 즐거움을
속에 지니고 있는데, 이 즐거움들은 우리가 넣어 둔 것으로서 우리 자신과 사람을
즐겁게 하는 데에 이바지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제 각 조물 안에 우리의 사랑이 흘러들고,
그들 사이를 지나감에 따라 너도 내 사랑의 작은 가락이 흘러들게 한다.
4. 그러나 우리의 그 많은 사랑 앞에 '사랑합니다.'라고 하는 너의 작은 가락과 마침표와
쉼표와 글자의 획들을 두어, 우리의 사랑과 조화를 이루면서 우리 자신을 위해서나
너를 위해서나 우리가 원한 즐거움을 이루지 않겠느냐? 오로지 동반자가 있을 때에만
더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고립은 즐거움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5. 그러므로 네가 만물 가운데를 두루 순례하는 것으로 우리를 동반해 주는 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리가 각 조물 안에 넣어 둔 우리의 수많은 즐거움을 기억하게 된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다시 우리의 즐거움으로 살게 한다. 또한 너는 우리를 즐겁게
하고, 우리는 너를 즐겁게 한다.
6. 게다가 너도 우리의 뜻이 고립되어 있도록 내버려 두고자 하느냐?
아니, 아니, 그럴 수 없다. (내 뜻의) 작은 딸이 자기 어머니를 홀로 내버려 두는 것은
그녀에게 합당한 태도가 아니다. 합당한 태도는 언제나 어머니와 무릎 위에 머물며
그분의 모든 활동 속에서 그분을 따르는 것이니 말이다."
7. 그 후 내 정신은 '영원한 피앗'의 끝없는 바다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덧붙여 말씀하셨다. "딸아, 내 뜻은 여러 속성과 고유성을 내포하고 있고,
그들 가운데에는 결코 중단되지 않는 지복의 행위도 있다. 그러니 영혼은 내 뜻 안에서
하는 행위들과 같은 수의 각기 다른 지복들을 그 영혼 속에 모아들인다.
8. 그리고 이 '피앗' 안의 행위를 많이 할수록, 그 지복들의 자금(資金)을 그만큼 더 많이
자기 안에 형성하며 그 소유주가 된다. 이로 인해 현세에서는 극히 숭고한 평화를 얻고,
하늘에서는 그 자신 안에 이미 형성된 그 지복들의 모든 효과와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9. 보아라. 그것은 어쩌면 지당한 일인지도 모른다. 네가 지상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하늘에 있는 내 뜻이 무한한 지복의 항상 새로운 행위를 그 자신 밖으로 내놓는다.
그러면 결코 그치지 않는 이 새로운 행위를 누가 받아 가지겠느냐?
바로 성인들과 천사들이다. 이들은 하늘에서 하느님 뜻으로 살기 때문이다.
10. 하지만, 귀양살이하는 땅에서 내 뜻 안에 사는 사람이 그 모든 지복의 행위들을
잃는 것은 공정한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 행위들이 그의 영혼 안에 예비로 보존되는
편이 공정하다. 그가 천상 아버지의 나라로 떠날 때가 오면 그 모든 것을 함께 누리게
하려는 것이요, 결코 중단되지 않는 지복의 저 새로운 행위들을 받으며 다른 이들을
따라잡게 하려는 것이다.
11. 그러니 너는 내 뜻 안에서 하나의 행위를 더 하거나 덜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느냐? 그것은 사람이 내 뜻을 더 많이 행한 횟수만큼 지복의 행위들을 소유하고,
자기 자신의 뜻을 행한 횟수만큼 지복의 행위들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가 내 뜻을 행한 횟수만큼, 다만 지복의 행위들뿐만이 아니라, 성덕과 거룩한 지식의
행위들, 아름다움과 사랑의 독특한 행위들도 소유함을 뜻한다.
12. 그리고 그가 늘 내 '영원한 피앗' 안에 있으면, 자기 창조주와 비슷한 거룩함을 그 안에 지닐 것이다.
오! 그는 얼마나 아름답겠느냐! 이 복 받은 피조물을 통하여, 하늘에 우리 지복의 메아리와 우리 거룩함의 메아리와 우리 사랑의 메아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땅에서 우리의 메아리이고 천국에서도 우리의 메아리가 될 것이다."
1926년 12월 19일
38 하느님과 만물 안에 동시에 공존하시는 하느님 뜻.
하느님 뜻은 만물의 행위자요, 그 본질은 행복이다.
1. 계속 지고하신 의지 안에 나 자신을 맡기고, 창조된 만물 사이를 정신적으로
두루 돌아다니고 있었다. 만물 안에서 지고하신 의지를 따라가며 내 의지를
그 의지에 결합시켜 단일한 행위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그때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를 잠깐 쉬게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하느님은 만물을 내시면서 그분의 뜻을 두 지점에 동시에 공존하게 하셨다.
그 하나는 우리 (성삼위) 안에 남아 있었으나, 우리의 통치 체제와 기쁨과 행복과
만족 및 우리가 소유한 무수하고 무한한 지복을 위해서였다. 그것은 우리의 뜻이
우리의 모든 행위 속에 첫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하나의 뜻은 우리에게서
나와 피조물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에게 거룩한 영예와 영광 및 무수한 행복과 기쁨을
외적으로도 주기 위해서였다.
3. 사실 우리의 뜻은 기쁨과 행복과 지복을 그 자신의 속성으로 가지고 있다. -
이것이 우리 뜻의 본질이다. 그러니 내 뜻이 소유한 그 무수한 지복과 만족들을
스스로에게서 내놓지 않으면, 그 자신의 본질을 거스르는 무엇이 될 것이다.
4. 그러니 지극히 높으신 임금님께서 우리의 뜻 하나를 창조된 만물 속에 내놓으시어
각 조물의 생명과 행위가 되게 하시고, 이 뜻으로부터 무한한 재신과 셀 수 없이 많은
지복과 기쁨들이 나오게 하셨다. 이들은 오직'영원한 피앗'의 능력만이 통치 체제를 유지
하며 보존할 수 있는 것들로서 만물의 무결함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5. 우리가 내놓은 그 모든 재산은 우리를 찬양하면서 세상 빛을 보게 된 조물들과 같은
수의 지속적이고 거룩한 행위들의 영광을 우리에게 주는 한편, 사람들의 재산으로
정해지게 되었다. 이 사람들은 우리 뜻의 거룩한 행위가 각 조물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자기들의 뜻을 우리의 뜻과 결합시켜 우리 뜻의 각 행위 안에 그들의 행위가 있게 하는
이들이어서, 우리는 (우리 안에) 부어 넣어진 그 행위를 단 한 사람의 행위인 것처럼
여긴다. 그리하여 사람은 우리 뜻의 부를 알게 되고, 알게 됨으로써 사랑하게 되고,
마침내 그것을 소유할 권리를 얻게 된다.
6. 내 지고한 뜻은 각 조물 안에서 거룩한 행위들을 많이도 하지 않느냐? 그런데 사람은
이 행위들에 대하여 극히 작은 지식도 없다. 하지만 그 행위들을 모른다면 - 그 행위들이
사람에게 미지의 것으로 남아있다면, 어떻게 사랑하며 소유할 수 있겠느냐?
7. 그러면 창조된 만물 안에 있는 모든 부와 행복과 거룩한 행위들이 사람들에게는
생명도 움직임도 없는 것들이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무언가를 받는다면, 그것은
재산으로서 받는 것이 아니라, 지고한 선함이신 분께서 항상 풍부하게 당신의 것을
내주시는 결과로서 받게 되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소유권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자선을 베풀듯 은혜를 베푸시는데, 어떤 이들은 은혜를 강탈하기도 한다.
8. 사실, 사람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만물 안에 내놓으신 그 좋은 것들을 소유하려
면 힘을 다하여 정진해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과 하나가 되도록 그 자신을 들어
높여야 한다. 이는 그 뜻과 함께 일하고, 같은 행위들을 하고, 그것들을 실행하기 위한 지식
을 갖추기 위함이요, 그리하여 '거룩하신 뜻이 하시는 것을 나도 한다.' 고 말하기 위함이다.
9. 그리하면 지고하신 뜻의 모든 행위들 안에서 그 소유권을 획득하게 된다. 두 뜻이
오직 하나의 뜻을 이루면, '나의 것'이니 '너의 것'이니 하는 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당연한 권리에 의하여 나의 것이 너의 것이 되고 너의 것이 나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10. 따라서 내 지고한 뜻이 각 조물 안에서 너를 부르며 기다리는 까닭은, 내 뜻 안에
있는 부를 너에게 알리고, 너로 하여금 내 뜻과 함께 내 뜻의 거룩한 행위를 반복하게
하며, 그 소유권을 너에게 주려는 것이다. 즉, 네가 내 뜻의 소유가 되어 내 뜻의
무한한 부와 행위들 안에 녹아들면, 오, '거룩한 피앗'이 너를 그 무한한 부의
소유자가 되게 하는 것에 얼마나 큰 즐거움을 느끼는지 모른다!
11. 이 '피앗'은 그 자신의 상속자들을 선정하려는 열망이 너무나 큰 나머지,
구군가가 그의 재산을 알고 그의 거룩한 행위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을 보면
두 배의 행복을 느낀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이 그에게서 물러감으로써
그 뜻의 통치권을 소유할 길을 잃은 것을 보면서도 기다림을 멈추지 않았다.
12. 오히려 넘치는 사랑으로, 또 그의 재산이 사람들의 선익을 위해 활동하지
못함을 보는 극심하고 오랜 고통 속에서도, 영원한 말씀'이 인성을 취한 즉시
그 각각의 행위마다 생명이 되어, 그들을 위한 재산을 더 많이 형성하고, 타락한
인류의 손이 더 잘 닿는 범위 안에 강력한 도움과 효과적인 약을 마련하였다.
우리 (성삼위)가 만물 안에 내놓은 것을 그들이 소유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13.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치고 이 목적을 가지지 않은 것이 없으니,
그것은 바로 사람과 만물이 우리의 뜻 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우리의 작품들과 아무 관계가 없을 것이다.
14. 그러니, 딸아, 창조사업도 구원사업도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우리의 뜻이 전부가
되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우리의 뜻은 따라서 어디에나 흘러들며
모든 곳에 있다. 모든 것을 우리 뜻의 소유로 삼고, 우리 뜻에 속하는 모든 것을
주기 위함이다. 너는 주의를 기울여 우리의 업적들을 따라가면서, 사람들이
내 지고한 뜻의 좋은 것들을 소유하기를 바라는 이 뜻의 간절한 소망을 채워 다오."